경기옛길: 의주길

화석정 길

김완묵 2014. 4. 16. 04:42

일 시: 2014년 4월 15일

제3길: 윤관장군묘 - 화석정  - 광탄면 사무소 - 신산5리(광탄 어린이 집) (6 km)

 

                                            의주길 답사. 2

 

자가용이라면 2~30분이면 도착할 길을 2시간을 돌고 돌아 도착하니 8시10분이다. 지난번 구간을 이어가는 의주길 두 번째 코스의 시발점인 윤관장군 묘가 있는 분수리는 고요한 적막 속에 잠들어 있다. 분수리는 조선시대 역원인 분수원이 있던 곳이다. 용미리와 분수리가 만나는 용암사 사찰이 있는 곳에 작은 고개가 있는데, 이곳에서 한강과 임진강이 갈라진다하여 분수리(汾水里)로 부른다고 한다.

 

 

분수리에서 광탄면으로 이어지는 78번 혜음로가 원래 의주길이지만, 좁은 차도에 차량의 통행이 많아 왼쪽으로 개천이 흐르는 제방 길을 걷게 된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산 벚꽃이 흐드러진 시골마을에는 산새들이 지저귀는 낙원이 펼쳐진다. 진달래 꽃잎 떨어진 양지쪽에 새순이 돋아난 상수리나무들이 싱그러움을 더하고, 염소 똥처럼 뾰족뾰족 솟아난 드룹나무 새 순이 앙증맞기만 하다.

 

 

광탄면 소재지인 신산리에 도착한다. 면소재지로는 제법 번잡한 곳이다. 때맞추어 5일장이 서는 날이라 시전골목이 시끌벅적하다. 광탄농협건물 옆으로 실개천을 따라 진행하는 의주길은 신탄막(새술막) 마을 앞을 지난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을 피해 경복궁을 나선 때가 1592년 4월 29일. 의주로 몽진하는 선조의 피난행렬이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추적추적 내리던 봄비가 이 마을을 지날 무렵 장대비로 변하여 줄기차게 쏟아지는지라 허기와 추위에 지친 선조일행들이 불을 피우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게 되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숨겨두고 아껴 쓰던 숯을 가져온 덕에 비로소 불을 피워 옷을 말리고 식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본 선조임금이 이 숯은 처음 보는 탄(炭)이라 하여 그때부터 이 마을을 신탄(新炭) 또는 “새술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새술막 마을을 지나 여울물을 따라가던 중 외화산교를 건너 부대 담장을 따라가면 56번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신산5리 표지석과 의주길 4구간이 시작되는 이정표가 있다.

 

 

윤관장군 묘에서 이곳까지가 6km이고, 바로 옆에 있는 광탄 어린이집 정문에서 선유삼거리까지 11.6km가 제4구간이다. 혜음로를 따라 100여m 진행하면 군부대 담장이 나오고 왼쪽으로 담장을 따라 의주길이 열린다. 전방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성벽은 만리장성과도 같이 육중하여 높이가 10여m에 양쪽의 산등성이까지 철옹성으로 축조하여 적의 탱크를 저지하고, 아군이 이동하며 방어할 수 있는 벙커를 겸하고 있다.

 

 

잠시 후, 좀 전의 여울물을 다시 만나 부곡교까지 진행하면, 양주군 백석면과 광적면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하여 문산천을 이루는데, 바로 이곳을 광탄(廣灘)이라한다. 광탄이란 너른 여울이란 뜻으로, 이곳 지명이 광탄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광탄은 개성과 한양의 중간에 있어 朝鮮 初 양경을 오가는 길손들이 쉬어가는 역원을 두었는데 廣灘院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다리를 건너면 부곡3리 이고, 금병산(256m)줄기가 내려앉은 구릉지대에 농공단지가 펼쳐진다.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면 흐드러진 벚꽃과 개나리가 진동을 하고, 그림같이 펼쳐지는 전원주택이 나그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조국근대화의 바람을 안고 도시로 나간 젊은이들이 어느새 초로의 신세가 되어 고단한 육신을 누일 안식처를 찾는 곳이 전원주택이 아닌가 싶다.

 

 

오봉교에 당도하면 봉서산 자락에 터를 잡은 파주읍이 손짓을 한다. 파주 땅을 손금 보듯이 누볐어도, 이곳만은 처음이다. 유서 깊은 파주고을도 현대화의 물결 속에 읍사무소마저도 최신시설로 치장을 하고, 아파트가 숲을 이루니, 옛 발자취를 찾아보기가 난감하기만하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파주삼거리에서 옛 정취를 찾아볼 수가 있다. 낮은 지붕에 좁은 골목, 한가로운 村老 들의 모습이 70년대의 거리풍경이다.

 

 

삼거리에서 왼쪽골목으로 들어서면 파주초등학교가 보인다. 삼층 건물의 교사와 널찍한 운동장에 재잘거리는 웃음소리가 교정을 떠들썩하게 울려 퍼진다. 파주초등학교는 파주읍에서 가장 높은 봉서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이 파주목사가 살던 관아 터와 향교가 있던 자리다. 교사(校舍)뒷편으로 파주교육박물관이 있고, 앞뜰에는 파주목사들의 송덕비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파주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가면 웅장한 주내 교회가 나타난다. 교회이름에 큰 관심이 없이 굉장히 큰 건물이라는데 경탄을 하지만, 백여 년 전에는 파주군 주내면이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교회이름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1980년 12월 1일 주내읍으로 승격되어 1983년 파주읍으로 명칭이 변경될 때까지 읍소재의 이름을 달고 있었던 것이다.

 

 

울창한 숲속으로 산책로가 이어지고, 봉서산 산림공원입구에서 오른쪽으로 파주향교가 보인다. 군부대의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외진 골자기에 터를 잡은 향교가 어울리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파주향교(坡州鄕校)는 태조7년(1398년)에 처음 세워 선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배향과 파주지역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현종원년(1660년)에 사액되어 돈암서원 이라고 명명하였으며 고종7년(1870년)에 수해를 당하여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대성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된 것을 1973년부터 본격적으로 보수를 시작하여 1999년에 명륜당을 준공하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의 뒤안길에 숨어있는 선현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며 봉서산 자락으로 파고든다. 봉황이 즐기며 노래하던 곳으로 알려진 봉서산은 파주의 진산으로 정상에 두 개의 우물이 있었는데, 하나는 장사가 먹었다는 우물이고, 하나는 명주실 한 꾸러미를 다 풀어도 닿지 않는다는 전대우물 이라고 한다.

 

 

산마루에는 장사가 가지고 놀았다는 공기바위도 있고, 경기북부의 군사 요충지로 임진왜란 때는 권율장군이 행주대첩이후 주둔했던 봉서산성이 남아있다. 왕 벚꽃이 흐드러진 산정에서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휴식을 하고 있던 차, 상냥하게 말을 걸어오는 아낙이 있어 파주고을의 풍문을 귀동냥 하면서 “물길따라 삼천리” 수필집 한권을 건네주니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다.

 

 

기약은 없지만 훈훈한 인정을 뒤로하고 봉서산자락을 넘는다. 돌무더기 수북한 서낭당에서 통일동산 쪽으로 진행하면 오르락내리락 계단 길로 이어지고, 완만한 송림 속에서 피톤치드 세례를 받아가며 온갖 시름을 다 잊는다. 싱그러운 숲속을 빠져나오면, 임진강에서 퍼 올린 물줄기가 수로를 가득 메우고, 봄 가뭄이 심한 금년에도 물 걱정 없이 풍년의 꿈이 시작되는 영농 철이 아닌가.

 

 

청명이 지났으니 곡우가 다가온다. 곡우 때쯤이면 봄비가 내리고 백곡이 윤택해진다. 그래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는 말이 있다. 곡우에는 못자리를 만들고 논갈이하는 농부들과 소들이 겨우내 게으름피운 몸동작으로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때이다.

 

 

三月은 暮春이라 淸明 穀雨 節氣로다/ 春日이 載陽하여 萬物이 和暢하니/ 白花는 爛漫하고 새 소리 各色이라/ 堂前의 쌍제비는 옛집을 찾아오고/ 花間의 범나비는 분분히 날고 기니/ 微物도 得時하여 自樂함이 사랑홉다.

 

 

농업을 천하의 근본으로 삼았던 우리 조상들을 위해 지은 농가월령가는 조선말기의 실학자 정약용선생 의 둘째 아들 정학유선생이 지은 가사이다. 정감어린 가사를 읍 조리며 중에교를 건너가면, 지난해의 앙상한 삭정이 속에서도 새 생명을 잉태하는 봄의 전령사가 고개를 살그머니 내민다. 춘궁기를 맞아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조상님들이 쑥의 정기를 받아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는 명약이 아닌가.

 

 

화사한 복사꽃이 붉은빛으로 손짓하는 동문천 제방 길을 거슬러 오르면 선유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이야 신시가지 건설로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끝난 뒤로 미군들이 주둔하면서 기지촌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가던 고장이다. 영화 “거미의 땅”에서 우리의 아픈 상처를 재 조명하며 다시는 비극이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일깨운다.

 

 

선유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마을로 들어가면 선유삼거리에서 4번째 구간을 마감한다. 제5구간 임진 나루 길은 선유삼거리에서 임진각까지 12.7km 이다. 일명 독서삼거리로 부르는 이곳에서 직진하면 의정부와 법원리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전곡과 적성으로 가는 길이다. 의주길은 적성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고갯마루를 올라가는 중에, 왼쪽으로 “이세화선생묘지” 이정표가 있다.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인 쌍백당 이세화선생은 효종8년(165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평안도, 황해도, 전라도, 관찰사를 지냈고, 인현왕후를 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정주로 유배를 가기도 했다. 다시 조정에 돌아와 공조, 형조, 병조, 예조, 이조판서를 두루 거치고, 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조정에서는 청백리로 이름이 높은 이세화선생의 고향에 충신의 상징인 정문(正門)을 세우고, 영의정의 관직을 내렸다.

 

 

고갯마루 삼거리에서 적성쪽을 버리고 왼쪽으로 올라서면, 그 유명한 화석정도 아련히 모습을 드러낸다. 몽진하던 선조의 행렬도 이 고개를 넘었으리라.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으니, 통탄할 신세가 아닌가. 가정에서는 가장이 중심을 잡아야 자식이 편안하고, 나라에서는 임금이 현명해야만 백성들이 행복한 것이 아닌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도리는 변함이 없으니, 나라의 근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드디어 화석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역사에서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화석정은 이이 율곡 선생의 혼이 서려있는 곳이다. 10만 강병을 주장하며 일본의 침략을 예견한 율곡선생은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임진강 나루터에 있는 화석정을 매일같이 기름걸레로 닦아 앞으로의 환난에 대비하였다. 선조일행이 소나기가 퍼 붙는 야심한밤에 임진강에 당도하여 건널 길이 막연하던 차 화석정에 불을 질러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하였으니 이이 율곡선생의 선경지명(先見之明)을 그 누가 따를 것인가.

 

 

경기유형문화재 61호인 화석정은 율곡선생이 자주 들러 학문을 연구하던 곳으로, 임진강을 굽어보는 명당자리다. 세종25년(1443년) 율곡의 5대 조부 이명신이 지은 정자로 성종9년(1478년) 이숙함이 화석정(花石亭)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유년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율곡은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제자들과 담론을 나누던 곳이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화석정은 현종14년(1673년) 율곡의 후손들에 의해 다시 지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1966년 파주유림들에 의해 다시 건립되었다.

 

 

화석정에서 바라보는 임진강은 너무도 고요하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경계선을 가르며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은 말이 없어도, 수 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애환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아닌가. 자연의 섭리에 따라 굽이치는 강물의 흐름대로 우리 인간들도 순리대로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이야말로 사람을 망치고 나라를 망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조금 모자라면 어떠하리 마음이 편하면 그것이 행복인 것을!

 

 

 

 

 

 

 

 

 

 

 

 

 

 

 

 

 

 

 

 

 

 

 

 

일  시: 2014년 4월 15일

제4길: 파주고을길(신산5리 - 부곡교 - 오봉교 - 파주읍사무소 - 파주초교 - 봉서산 - 중예교 - 동문천 - 선유삼거리 (11.6km)

 

 

 

 

 

 

 

 

 

 

 

 

 

 

 

 

 

 

                                                                         파주읍사무소

 

 

 

 

                                                                            파주 초교

 

 

 

 

 

 

 

 

 

 

 

 

 

 

 

 

 

 

 

 

 

 

 

 

 

 

 

 

일  시: 2014년 4월 15일

제5길: 선유3거리 -  화석정(2.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