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세계/시산 반년간지

제 79호 - 산고의 계절... 봄!

김완묵 2014. 3. 17. 04:42

2014년 3월 15일 발행

 

유럽 여행기 .2

 

 

                                                3. 스위스

광활한 대지에 빽빽이 들어찬 숲속을 바라보며 경제선진국 독일이 한없이 부럽다. 하지만 우리의 삼림자원은 어떠한가. 50년 전만해도 벌거벗었던 민둥산을 울창한 숲으로 가꾸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 않은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근면한 정신으로 일구어낸 소중한 유산이라 더욱 자부심을 갖게 된다.

 

 

독일과 스위스의 국경도시에 도착하면, 관광객은 버스에서 기다리고, 독일에서 물건을 산 관광객은 스위스 겸역소에서 신고를 하고 국경을 통과한다. 중립국을 표방하고 있는 스위스는 유럽 연합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스위스로 들어갈 때나 다른 나라로 나갈 때도 같은 방식으로 국경을 통과하게 된다.

 

 

프랑스나 이태리의 관광이 인간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역사 관광이라면, 스위스는 자연경관을 감상하는 관광이다. 따라서 날씨가 관광의 큰 변수로 작용한다. 오늘아침 융프라우의 날씨가 좋지 않아 관광열차가 운행을 중지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희망에 부풀어 있는 우리에게 찬물을 끼얹는 순간이다. 알프스의 날씨가 너무도 변덕스러워 제대로 관광을 하는 날이 일 년에 40여일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하늘의 도우심이 꼭 필요한 곳이다.

 

 

알프스 산맥이 가까워지며 광활하게 펼쳐지던 평원이 산악지역으로 바뀌고, 하얀 눈으로 덮인 새로운 세상이 전개된다. 융프라우를 찾는 관광객들이 필히 거쳐야하는 인터라켄은 “호수의 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스위스 중부지방에 자리 잡은 베른주에 속하는 인터라켄은 남동쪽 26km지점에 툰호와 부리엔츠호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드디어 툰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명경지수와 같이 맑은 호수위로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자락이 내려 안고, 녹색융단의 초원위로 그림 같은 집들이 펼쳐진다. 짙은 먹구름이 알프스의 산정을 우리의 시야에서 빼앗아간 채 심술을 부린다. 도심지에는 시계, 스위스 칼, 초코릿을 파는 점포를 비롯하여 숙박업소들이 밀집되어 있다.

 

 

그 중에서 규모가 큰 쇼핑센터 전면에는 수 천 만원을 호가하는 로렉스 시계로부터 각종 고급브랜드가 진열되어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중저가 물건이 진열되어있는 매점 앞으로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도심지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아간다. 도심지는 중세유럽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자연을 배경으로 자리를 잡고, 뒷골목까지도 흐트러진 곳이 없는 청결하고 깨끗한 마을이다.

 

 

저녁을 마치고 도심지 산책길에 나선다. 이곳에는 2개의 역이 있는데, 외부로 연결되는 곳이 서역이고, 산악열차를 타는 곳이 동역이다. 인터라켄은 스위스의 대표적인 관광지라서 서독의 초고속 열차인 이체와 프랑스의 테제베가 이곳에서 시작되고, 유럽전역의 외부도시와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시내중심가를 흐르는 하천은 알프스에서 녹아내린 만년설이라 수량도 많고 물살이 세어 가슴속이 시원하게 녹아내린다.

 

 

호텔로 돌아와 알프스 정상에 오르는 꿈으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융프라우의 악몽에 시달리며 창밖을 바라보니 청명한 날씨는 아니라도 어제보다는 시야가 확보되어 정상에서의 조망을 기대해본다. 서둘러 호텔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융프라우를 오르기 위해 동역으로 이동한다. 알프스를 오르는 모든 관광객이 겨울옷으로 중무장을 한 채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관광객들이 아수라장을 이루고, 환승열차에서 일행들과 떨어지면 다시 만나기가 어렵고, 지정된 열차를 놓치게 되면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많은 손해를 보며 생고생을 하게 되니 개인행동을 하지 말라는 가이드의 신신당부가 계속된다.

 

 

처음 출발하는 산악열차에 몸을 싣는다. 융프라우관광은 3번의 열차를 갈아타고 2시간 30분간 고도3,454m의 전망대까지 올라간다. 동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동화속의 나라 라우터부루넨 마을을 지난다. 이곳에는 부라이튼 빙하에서 발원한 루치네 강이 U형으로 흘러내리는 협곡이 있어 산허리를 흘러내리는 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융프라우(4.158m)는 스위스 베른주의 알프스 산맥에 속하는 산으로 대부분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터라켄의 오스트역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아이거글레시어(2320m) 까지는 바깥을 관망할 수 있는 산악지역을 지난다. 열차를 타고 오르다보면 차창 밖으로 그림 같은 전원풍경이 펼쳐지고, 전날내린 눈으로 하얀 은빛세계에 푸른 상록수가 어우러진 숲속을 지날 때는 감탄사가 절로난다.

 

 

카메라로 차창 밖의 풍경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첫 번째 역에서 내려 두 번째 열차로 갈아탄다. 산악열차에서 바라보는 빙하. 만년설의 무게를 이기지못하고 융프라우에서 흘러내리는 옥색 빛을 띠는 세계에서 가장 긴 알레치 빙하는 유네스코에서 자연유산으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 역에서 눈보라가 비껴간 틈새를 타고 정상이 얼굴을 내민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지만 잠시 후 눈보라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만다.

 

 

세 번째 열차를 갈아탄다. 산장 같은 숙소와 호텔을 뒤로하고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바위암반을 뚫어 만든 7.2km의 터널을 통과 하는 동안 5분씩 두 번 정차한다. 톱니바퀴의 힘으로 25도의 경사로를 올라가는 열차가 첫 번째 정차역인 아이거반트(2865m)에 도착한다. 터널전망대에서 글라이네 샤이텍, 튠 호수 등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전날내린 폭설로 호수도 마을도 눈 속에 묻혀 은빛세계가 펼쳐진다.

 

 

융프라우가 "신이 빚어낸 알프스의 보석" 이라는 칭송을 받는 데는 숨겨진 이유가 있다. 융프라우의 두 번째 정차역인"아이스 메어"(3160m) 터널 전망대에서 드넓게 펼쳐진 빙하와 암벽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이곳에는 철도를 설계하고 기획한 아돌프 구에르 첼러 두상이 있다. 알프스의 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에 만들었다고 하나, 폭풍우로 제대로 볼 수가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전망대 지하 200m에 있는 마지막 정거장에서 내려 얼음동굴로 향한다. 만년설을 쪼고 다듬어서 만든 동굴은 방문객들의 체온이 얼음을 녹이기 때문에 영하3도의 냉각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동굴 통로 옆으로 독수리, 펭귄, 곰, 로마시대의 항아리, 에스키모 얼음집, 등 수정 같은 예술작품들이 우리의 시선을 압도하고 수직승강기 앞에서도 장사진이다.

 

 

초고속 승강기로 순식간에 올라선 곳이 "TOP OF EUROP"유럽의 정상(스핑크스 전망대)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알레치빙하와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의 3개 봉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 기대가 컸지만, 몸이 날아갈 정도로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는 북풍한설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상을 볼 수 있는 행운은 얻지 못했지만, 만년설을 밟아보는 것만으로도 알프스의 신에게 감사를 드린다.

 

 

융프라우는 알프스의 봉우리 중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융프라우의 변화무쌍한 날씨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이유라는데, 자연유산에 등재된 날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강풍에 몸이 날아갈 지경으로 영하의 혹한 속에서 잠시도 머물 수가 없다.

 

 

우리가 타고 온 융프라우 철도는 1896년-1912년 건설되었으며 최대경사도 25도의 아프르식으로, 9.3km를 오르는데 50분이 걸린다. 클라이네샤이텍(2061m)에서 약 2km는 완만한 초원이고 나머지 7km는 모두 아이거와 묀히의 산허리를 뚫은 터널이다. 아이거 북벽은 알프스 3대 북벽(마테호른, 아이거, 그랑죠라스) 중 하나로 꼽히며 험난한 모험을 뜻하는 대명사가 되기도 한다.

 

 

암벽을 뚫고 1912년부터 운행되기 시작한 산악열차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3454m)인 융프라우요흐까지 이어진다. 1811년 마이어 형제가 발레 쪽에서 등정에 성공하였으며, 1865년 영국의 G영과, H.B조지가 인터라켄 쪽에서 1927년에는 2명의 가이드가 남쪽에서 각각 정상에 오르며 융프라우에 인간의 발자취를 남겼다.

 

 

동역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이 전망대로 몰려드니, 난장판이 따로 없다. 사람의 물결 속에서 일행들과 떨어지지 않으려면 개인행동을 자제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먹는 컵라면이 최고의 추억이라 하여 한국에서부터 준비를 해 갔지만, 배낭을 열어볼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대신 산악열차운행 100주년을 기념하여 나누어준 여권에 스탬프 찍는 것으로 대신한다.

 

 

알프스열차관광도 추억 속으로 남겨두고 하산 길에 오른다. 두 번째 역인 클라이네 샤이텍에서 라우터부루넨과 그린델발트로 방향이 갈라진다. 이곳에서도 일행들과 떨어지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 우리는 올라오던 계곡과 반대방향인 그린델발트로 내려온다. 하얀 눈이 가득한 설원에서 스키어들의 신나는 질주가 이어진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신이 내려준 선물이고, 깨끗한 공기는 인간이 유지해야할 자연유산이다.

 

 

달력에 단골로 등장하는 그린델발트 산간마을. 알프스소녀 하이디가 뛰어 노는 동심의 세계는 하얀 만년설과 푸른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떼들과 통나무집에서 들려오는 감미로운 요들송, 에메랄드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잔잔한 호수 가를 지나며 열차도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에게 마지막 서비스를 한다. 때 마침 아이거 북벽의 날카로운 암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들 감탄사로 답례를 하며 인증 샷을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동역에 도착하여 중심가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것으로 알프스관광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스위스는 면적이 4만천㎢에 7백7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중립국으로 700여 년간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수도는 베른(행정수도)과 로잔(사법수도)으로 나누어진다. 국토의 1/4이 높은 알프스 산맥으로 이루어진 스위스는 서쪽으로 프랑스, 북쪽으로 독일, 동쪽으로 오스트리아와 리히텐슈타인공화국, 남쪽으로 이탈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내륙국가로 남북길이가 약 225km에, 동서 최대 폭이 약 336km이다.

 

 

 

 

                                       4. 밀라노 - 베니스 - 피렌체

알프스의 여진을 남겨 둔 채 유적의 도시 이탈리아로 떠나는 길에는 인터라켄의 비경을 마지막으로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펼쳐진다. 왕복2차선의 좁은 길이 초원위로 이어지고 설악산의 한계령을 오르는 길처럼 산자락을 파고들며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수 백길 절벽에서 쏟아지는 폭포와 호수가로 이어지는 인터라켄이 그림속의 풍경처럼 아름답다.

 

 

좁은 협곡과 터널을 지나는 알프스산맥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은 길이가 17km에 이르는 쌍코테르도 터널이다. 통과하는데 25분이나 걸리는 터널에서 사고라도 난다면 하루 종일 정체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여 국경지역에 있는 휴게소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알프스산은 푸른 초원위로 솟아오른 만년설이 인상적이다.

 

 

이탈리아 국경을 통과하여 밀라노까지 가는 데는 5시간이 걸린다. 관광의 천국 이탈리아에는 자국인 가이드를 동반해야 한다는 관광수칙이 있다고 한다. 규칙을 위반할 경우에는 많은 벌금을 물어야 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가이드에게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이 아까워 짧은 일정의 밀라노에서는 눈으로 보는 관광으로 대신 할 수밖에 없다.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먼저 찾은 곳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과 베르디 “나부코”와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초연한곳으로 유명한 스칼라극장이 있는 광장이다. 아케이드로 이어지는 빅토리오 엠마뉴엘 2세 갤러리는 150년 전에 만들어진 건물이지만,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케이드란 건물과 건물사이 천정을 유리로 씌워 실내공간처럼 만든 것을 말하는데, 쇼핑몰이나 놀이공원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그 원형이 밀라노의 엠마뉴엘 2세 갤러리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케이드를 통과해 두오모 성당이 있는 광장에 도착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건물 앞에서 입이 벌어지고 만다.

 

 

길이157m에 높이가 108.5m인 두오모 성당은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폴, 독일의 괼른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며, 한번에 2만 명이 들어 갈수 있다고 한다. 138개의 첨탑과 3400개의 조각품으로 장식된 장엄하고 아름다운 건물의 가장 높은 첨탑에는 도시를 수호하는 황금마리아상이 세워져있다.

 

 

1386년 갈레치오 비스콘티공작의 명으로 착공되어 450년 간 공사 끝에 19세기 초에 완공된 두오모성당은 지금도 보수공사로 빔을 설치하여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정면으로 광장이 조성되어 관광객들로 붐비고, 두오모성당을 사진에 담기에 분주하지만, 관광객을 노리는 노숙자들의 횡포가 심하여 소지품에 신경이 쓰인다. 이탈리아에서 주교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을 두오모라 부르며, 큰 도시에는 모두 두오모가 있다고 한다.

 

 

도심지에 있는 4성급 golden mile hotel에 여장을 푼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롬바르디아 지역의 주도이고, 인구130만 명의 패션도시로 이탈리아에서 로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15세기에 비단생산이 활성화하여 16세기에는 베네치아나 피렌체와 함께 사치품의 생산이 발달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전통의 맥을 이어온 밀라노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로서, 12,000개의 기업과 800개의 전시장, 6,000개의 의류 매장이 있고 아르마니, 베르사체, 돌체 앤 가바나 등이 이지역의 대표적인 기업이다.

 

 

다음날 아침. 밀라노에서 베니스(베네치아)로 가는 길가에는 포도밭과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전원풍경이 펼쳐진다. 285km의 거리를 4시간의 여정 속에 베니스에 도착하니 짓궂게도 빗방울이 먼저 반겨준다. 베네치아는 한때 지중해 전역에 세력을 떨쳤던 해상공화국의 요지였고, 유서 깊은 베네치아 시는 북동쪽에서 남서쪽까지 약 51㎞로 뻗은 초승달 모양의 석호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가면의 도시. 영화의 도시. 곤돌라의 도시로 명성이 높은 베네치아는 452년 로마가 멸망하고 훈족이 침입할 때 도망하여 생성된 도시로 진흙습지에 말뚝을 박아 112개의 인공 섬을 연결하여 길이 3㎞, 너비 1.5㎞의 모래언덕들이 군도를 이룬다. 베네치아는 118개 섬 사이를 400여 개의 다리로 연결되고, 중심 수로인 그란데 운하가 2개의 넓은 만곡부 주위를 흘러 도시를 통과한다.

 

 

베네치아에서의 교통은 주로 수로를 이용하게 되며, 실제로 수상 택시와 버스, 경찰쾌속선, 유명한 수동식 곤돌라 등으로 운하를 통해 정기적으로 운행한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수상버스로 이동을 한다. 수상도시 베네치아의 이색적인 경치를 바라보며 30여 분간 이동하면 그란데 운하와 넓은 산마르코 저지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선착장에 도착한다.

 

 

이태리에 유학 와서 정착한 성악가 출신가이드의 설명이 유머러스하게 이어진다. 건물과 건물은 좁은 수로를 사이에 두고 밀집되어 있는데, 시궁창같이 불결한 물길을 따라 배로 이동을 하고 우산도 펴지 못하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 한다.

 

 

우리가 찾은 탄식의 다리는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이지만, 그 길이가 10여m에도 미치지 못하는 좁은 수로 위에 걸려있다. 16세기 베네치아 죄수들이 감옥에 수용되면서, 다시는 햇빛과 자유를 보지 못할 것을 깨달은 한 죄수의 한숨소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다리를 건넌 사람 중 유일한 탈옥수는 바람둥이 “카사노바”다. “당신들이 나를 가둘 때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이 나도 자유를 찾아 이곳을 떠나면서 당신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겠다.” 라는 메모를 남기고 탈옥을 했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중심부는 산마르코 광장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나폴레옹이 극찬했다는 광장은 하얀 대리석 주랑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어 커다란 홀에 서있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 등대로 쓰기위해서 세운 종탑은 중세시대에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건축물이다.

 

 

광장의 정면에 있는 산마르코 성당은 화재로 인해 여러 번 복구과정을 거치며 원래 건축양식인 비잔틴 양식에 로마네스크와 르네상스 양식까지 복합적인 양식의 결정체로 변하고 말았다. 내부를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있지만, 사진 찍는 것을 금지하고, 배낭의 반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고딕양식의 결정체라고 하는 두 칼레 궁전은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흰색과 회색의 대리석이 만들어낸 마름모꼴의 문양이 건물전체를 두르고, 규칙성 있는 외관의 기둥들의 모양이 더욱더 아름답다. 흰색 기둥들 사이에 2개의 핑크빛 기둥이 있는데 이곳은 군주가 광장에 모인 백성들에게 연설도하고 답례를 보내던 장소라고 한다.

 

 

베니스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곤돌라를 타고 관광길에 나설 시간이다.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모두들 실망의 빛이 역역하다. 50유로의 선불로 곤돌라 예약이 완료된 상태에서 옵션이 날아갈 처지에 놓인 가이드의 표정 또한 난처하기는 마찬 가지다. 하늘도 무심치 않았는지, 한 시간 동안 거세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서서히 가늘어지고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낭만의 베니스 곤돌라 관광! 11세기경부터 등장한 곤돌라는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교통수단이다. 선두와 선미가 모두 휘어져 있는 선체와 그 위에 서서 긴 노를 젓는 사공(곤돌리에르)은 언제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이 로맨틱한 전통 배를 타고 운하 곳곳을 음악과 함께 누빌 때 베니스의 낭만이 물결처럼 흐른다.

 

 

가는 빗줄기속에서 한손엔 카메라 한손엔 우산을 받쳐 들고 흔들리는 몸과 떨리는 손으로 베네치아 풍경을 담는다. 흔들흔들 불안하지만 베니스의 풍경에 매료되어 눈과 손을 계속 움직여댄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골목에서 산타루치아의 구성진 노래 가락이 들려오고 뱃노래로 흥을 돋운다.

 

 

700년 된 창틀의 문양, 500년 된 고딕에서 350년 된 르네상스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미로를 헤치며 40분간의 곤돌라여행도 종지부를 찍는다. 아름다운 베네치아여!!! 꿈속에서도 잊지 못할 추억을 가슴에 안고, 수상택시로 고풍스런 운하를 빠져나와 베니스 시내에 있는 홀리데이 인 호텔에 여장을 푼다.

 

 

다음날 호텔식으로 아침을 마친 우리는 피렌체로 이동하는 버스에 오른다. 베니스에서 피렌체까지는 270km에 4시간이 걸린다. 르네상스의 발원지. 꽃의 도시인 피렌체. 중세도시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피렌체는 아르노 강이 시내중심가를 흐르는 구 시가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을 빼놓을 수가 없다.

 

 

메디치 가문은 1397~1743년까지 346년간 유럽최고의 귀족 가문이었다. 르네상스를 후원하고 우피치 미술관 소장품을 피렌체에 기증하고, 레오10세 및 클레멘트 등 2명의교황과 프랑스 왕비 2명을 배출한 가문이다. 오페라의 탄생과 서양식 식사 예절, 하이힐 패션 등이 모두 메디치가와 관계가 있다. 또한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갈릴레요 갈릴레이 등을 후원하고, 아메리카대륙의 유래가 된 '아메리고 베스푸치'도 후원하여 아메리카 대륙 행을 도와주었다.

 

 

Mugello 지방의 조그만 농장주였던 메디치가문은 근처 마을 피렌체에서 은행업을 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교리상 은행업을 할 수 없었기에 장부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신용과 재량으로 이자를 주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 메디치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1. 신의를 중시하고, 2. 내면을 풍족케 하면서 3. 미래를 위하여 참고 인내하는 모습에서 몇 백 년이 지난 현재에도 위대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는 곳이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시뇨리오 광장이다. 교황으로부터 바티칸의 성 배드로 대성당을 설계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두오모 보다 더 크게 지어드릴 수는 있지만, 더 아름답게 지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라는 일화가 전해오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1292년에 착공하여 1436년에 완공하였으며 정식명칭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이다.

 

 

175년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아름다운 꽃의 성모마리아성당 두오모는 쿠폴라(돔)의 높이가 106m, 둘레가 114m에 464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외벽은 대리석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고, 내부는 전성기 고딕 아치형 천정이 아치들로 받쳐져 있다. 그 커다란 돔을 지지대 없이 그 당시의 건축기술로 세웠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피렌체 시내 어느 곳에서도 두오모의 아치형 돔이 보일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한 성당이다.

 

 

두오모 대성당의 동쪽을 마주보고 있는 천국의 문은 당시 최대의 조각가 로렌조 기베르티가 구약성서를 상징한 작품으로 르네상스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천국의 문은 오랜 세월 먼지로 덮여 있어 검은 빛을 띠고 있었는데, 2차세계대전후 도로에서 튄 작은 돌로 손상된 부분을 수리하다가, 금을 입힌 황금 문이 드러났다고 한다.

 

 

85m의 높이에 414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지오토 종탑은 외관을 장식하고 있는 겉면의 기하학적 무늬가 매우아름답다. 크림색과 그린색, 적색대리석을 쌓아서 무늬를 만들었다. 1334년 지오토가 설계하였으나 3년 만에 죽고, 타렌티가 14세기 말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1576년 암만나티가 제작한 르네상스양식의, “냅튠의샘”은 토스카나해군의 승리를 축하하는 작품으로 바다의신 “포세이돈”을 묘사하고 있다. 로마와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약한 펠리니는 파리에서 대성공을 거둔 뒤 피렌체로 돌아와 토사카나 대공 코사모1세의 요청에 의해 “메두사의 머리를 손에든 페루세우스”라는 조각상을 완성했다.

 

 

꽃의 도시 피렌체는 강력하고도 거대한 적들로 둘러 싸여 있었다. 다비드(다윗)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소년장수로 적군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뜨리고 승리하여 왕이 된다. 피렌체의 영주 메디치의 뒤를 이은 종교적 압제자 사보나롤라를 몰아낸 피렌체 시민들에게 다비드는 힘과 분노의 재현을 상징하는 인물로 묘사되어 다빈치가 25세 때 만든 걸작 품이다.

 

 

르네상스시대 3대화가인 다빈치, 미켈란젤로, 사파엘로가 사랑한 도시이며, 신곡으로 유명한 단테와 천재수학자 갈릴레이 갈리에오의 고향이 피렌체이다. 피렌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산타크로체 성당 광장에는 거리의 악사 집시들이 머무는 곳이다. 이곳에는 롯시니, 갈릴레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브루니, 마키아벨리, 등 피렌체출신의 명사 276명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금은세공업과 패션도시, 가죽제품으로 명성이 높은 피란체는 기원전 59년 시저의 정복으로 프랑스를 정복하기위해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거점도시로 성장화면서 상업도시로 발전했다. 점심메뉴로 나온 스파게티 정식은 우리의 여행길에 추억을 담기에 충분한 음식이다. 명품 가죽제품이 진열된 쇼핑센터에서 아이쇼핑으로 시간을 보낸 뒤 피렌체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미켈란젤로언덕에 올라 그림 같은 피렌체를 바라보며 로마를 향해 4시간이 소요되는 300km여정 길에 오른다.

 

 

 

 

                                                  5. 로마 관광

드디어 유적의 도시 로마에 입성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시내 중심가로 향하는 대로는 시원한 가로수의 그늘 속에 석양으로 붉게 물든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중심가에서 30여분 거리에 있는 4성급 ENEA HOTEL에 여장을 풀고, 2일간 머물게 된다.

 

 

로마는 땅속이 모두 유물이라 함부로 개발을 하기가 어려운도시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로마는 교통의 지옥일 수밖에 없다. 해서 대중교통인 버스들이 도심지로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면서 로마관광은 발품 파는 관광으로 이루어진다. 로마를 제대로 보자면 일주일도 모자라는데, 하루에 그 많은 곳을 다닐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아쉬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발품을 팔아서는 3-4곳을 다니는 것이 고작이라, 가이드가 추천하는 벤스 관광이라는 이색적인 풀코스가 옵션으로 등장한다. 벤스란 외국의 사절들을 경호하는 의전용이라, 특별한 보호아래 로마의 명승지마다 자유롭게 진출이 가능하여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는 특전이 있어 한나절에 10여 곳을 돌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매력적인 벤스 관광은 1인당 50유로(75.000원)라는 비싼 요금이 부담되지만, 쉽게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곳이라도 더 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승낙을 하게 된다. 콜로세움관광을 마치고 시작되는 벤스 관광은 정장을 한 기사가 문을 열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귀빈의 신분이 된 우리는 안락하고 편안한 벤스로 로마의 중요한 유적지를 답사하게 된다.

 

 

가장먼저 찾은 곳이 콜로세움 원형경기장이다. 역사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던, 로마의 상징인 거대한 원형경기장은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네로황제의 궁전 뜰에 있던 인공연못에 AD72년 건설을 시작하여 80년에 완성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이다. 검투사와 짐승과의 격투가 벌어지던 경기장은 80개의 출구를 통해 5만 5000명의 관객이 입장할 수 있는 규모로, 2천 년 전의 시설로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고대 로마 유적지중 규모가 가장 큰 원형경기장은 최대지름188m, 최소지름156m, 둘레 527m, 높이57m의 4층으로 된 타원형 건물이다. 콜로세움은 거대하다는 뜻으로 근처에 거대한 네로상이 있어서 이름 지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1층은 토스카나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의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려면 입구 반대편에서 엘리베이트를 이용하지만, 시간상 내부를 관람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콜로세움경기장 하나만으로도 로마관광의 진면목을 볼 수가 있고, 어린 학생들 수학여행 나온 것처럼 마음이 들뜬다. 로마관광 온 외국인들이 의무적으로 이탈리아 가이드를 동반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합류한 가이드. 원래는 이탈리아 가이드의 통역으로 관광을 해야 하지만, 시간상 번거로움 때문에 동참하는 것으로 의무를 다 하고 만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실감나는 장면이다.

 

 

나폴레옹이 로마를 정복하고 이곳의 모형을 본떠 파리의 개선문을 만들었다고 하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개선문은 콜로세움경기장 옆에 있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진실의입. 그레고리팩과 오드리 햅번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곳이다. 이 원형 석판은 기원전 4세기경쯤 로마시대에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된 물건이라고 한다.

 

 

바다의 신 트리톤을 조각한 진실의 입에 자신의 신분을 속인 앤 왕녀가 두려워하며 손을 넣었다고 한대서 유래되었다. 사람들을 심문할 때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린다고 하지만, 권력자가 반대파를 숙청할 때 뒤에서 손을 자르는 형벌을 가했다는 속설이 있다. 진실의 입을 지나면 자연스레 산타마리아 코스메딘 성당 안을 지나게 된다.

 

 

무료화장실을 찾아 올라온 언덕에서 바라보는 로마는 보이는 곳마다 유적전시장이다. 캄피돌리오 광장은 고대 로마의 발상지로 전해지는 7개 언덕 가운데 하나인 카피톨리노 언덕에 미켈란젤로의 구상으로 1547년에 건설되었다. 124개 계단을 올라가면 양쪽으로 카피톨리노 미술관과 콘세르바토리 미술관이 마주보고 있고, 가운데는 시청사 건물로 둘러싸인 광장이 나오는데, 광장의 가운데는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이 있다.

 

 

캄피돌리오 광장은 미켈란젤로가 실제보다 넓어보이게 설계했다는데 코르도나타 라고 부르는 계단위로 갈수록 좁아져서 위에서 보는 것과 아래서 보는 원근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또한 광장의 바닥에 그려진 그림은 천재수학자 미켈란젤로의 치밀한 작품이다.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세나토리오 궁전 옆으로 돌아가면 포로 로마노의 전경이 펼쳐진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인의 광장”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흩어진 돌덩이와 폐허로 보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와 함께 고대 로마시민생활의 중심지였다.

 

 

기원전 1세기 시저와 아우구스투스가 기초를 닦은 후, 공화정시대에 웅장한 공회당과 여러 신전, 원로원, 상점 등이 들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제정시대가 들어서며 공화당의 기능이 쇠퇴하고, 정치활동의 중심이 황제의 궁전이 있는 팔라티노 언덕으로 옮겨지면서 포로 로마노는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영화 벤허로 더욱 유명해진 대전차경기장이다. 로물루스시대 경마와 육상경기가 열렸던 곳으로 제정시대에는 길이 610m 넓이 약 450m의 직사각형의 호화스러운 스탠드에 30만 명을 수용하였으며, 현재의 지면보다 10m 아래 스탠드가 있었다고 한다. 벤스의 기동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시내관광은 많은 인파를 비집고 유적지를 잘도 찾아간다.

 

 

베네치아광장은 콜로세움이나 콘스탄티노 개선문과 가까워서 10여분 이면 갈 수가 있다. 광장정면에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있으며, 광장의 왼쪽에는 베네치아 궁전이 있다. 외관이 하얗다고 해서 “웨딩 케잌” 이란 별칭을 가진 건물이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통일 이탈리아의 초대 국왕으로서 그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지은 기념관이라고 한다.

 

 

2000년 된 건축물 판테온은 기원전 27년 올림포스의 모든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설계”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판테온의 기둥이 모두 16개이며, 판테온의 직경과 높이가 43.3미터라고 한다. 중간에 기둥이 하나도 없는데도 오랜 시간동안 붕괴되지 않은 것은 현대과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라고 한다. 또한 돔의 꼭대기에 구멍이 뚫려 있어 자연채광과 함께 공기를 순환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더욱 유명해진 트레비 분수는 많은 연인들이 찾아와 달콤한 아이스크림 본젤라를 먹으며 사랑을 확인하고 동전을 던지는 곳이다.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에게 한 처녀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전설이 있는 샘을 수원지로 사용하고 있어 처녀의 샘이라 부른다.

 

 

교황 클레멘스 13세(제248대)에 의해 분수설계공모전에서 당선된 니콜라 살비의 작품이다. 1732년 공사에 착수하여 1762년 완공된 트레비 분수는 나폴리궁전의 벽면을 이용한 조각으로 이루어졌으며, 바다의신 포세이돈과 그의 부하 트리톤, 해마를 모델로 삼고 있다.

 

 

포폴로 광장의 중심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집트에서 직접 가지고 온 기원전 13세기의 유물인 높이 24미터의 오벨리스크가 있다. 이집트에서 로마까지 그 먼 거리를 손상된 곳 하나 없이 가지고 왔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벤스 관광의 마지막 코스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스페인 계단에 앉아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스페인사람들이 거주하며 인구가 늘어나자, 프랑스 쪽에서 계단을 만들어 경계로 삼은 것이다. 계단 중앙에 4개의 돌덩이가 있는데 프랑스 왕가의 백합문장과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있는 문장이 조각돼 있다. 계단아래 보이는 조각배모양의 분수가 프랑스왕 루이14세와 교황님의 우정을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 로마도 유적지마다 관광객으로 넘쳐나다 보니 줄서는 것이 생활화 되어 따가운 햇볕아래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질서정연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벤스 덕분에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돌아볼 수 있어 오전 중에 로마관광을 끝내고 오후에는 로마교황청을 방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