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누리길

사창리- 곡운구곡

김완묵 2013. 10. 29. 11:21

일   시: 2013년 10월 27일

경유지: 지촌삼거리 - 오탄리 - 곡운구곡 - 사창리( 16km)

 

                                제2구간 : 곡운구곡(谷雲九谷) 17km

 

 

만산이 홍엽으로 불타는 단풍의 계절을 맞아, 유명한 화천의 곡운구곡(谷雲九曲)을 찾는 것도 의미가 깊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마음을 정하고 만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춘천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날이라, 돌아오는 길이 막힐 것을 염려하여 사창리에서 화천으로 진행하려던 코스를 지촌리에서 사창리로 변경하고 보니 경춘선 새벽 전철이 북새통이다.

 

 

만 이천 여명이 참가하는 마라톤대회는 저마다의 실력을 뽐내는 축제의 장이다. 10년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완주하여 이번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다는 78세의 노익장을 바라보며 지칠 줄 모르는 도전정신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자신에게 적합한 취미활동이야말로 삶의 활력을 일깨우는 원동력인 것이다. 춘천역에서 화천 행 버스로 환승하여 지촌 삼거리에 도착하니 8시 20분이다.

 

 

그들에게 마라톤이 지상의 목표라면 나에게는 전국을 순회하는 트레킹이야말로 삶의 목표다. 지촌상회를 가운데 두고 화천과 사창리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출발하는 누리 길은 춘천호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지촌 천을 따라 슬금슬금 기어오르고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서오지리가 한 폭의 그림처럼 신비스럽다.

 

 

안개가 많이 낀 날은 햇살이 푹 퍼지고 나면 매우 맑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사창리로 향하는 56번 국도가 九折羊腸으로 산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다. 움막 하나 세울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비좁은 협곡을 지나고 나면 비로소 오탄리 마을이 나타난다. “온새미농촌관광체험마을”이라는 현수막이 시선을 끄는 곳이다.

 

 

온새미란 가르거나 쪼개지 아니하고 생긴 그대로의 형태를 이르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이곳 특유의 가양주 제조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함께 나무 문패 만들기, 옥수수 수확하기, 막국수 눌러보기 등을 개발하여 삭막한 도시민들의 마음을 순화시켜주는 현장으로 벼농사대신 특산물인 옥수수더미가 집집마다 가득가득 쌓여 있다.

 

 

지촌천을 거슬러 오르며 좁은 협곡에 펼쳐지는 시오리 길의 오탄리도 끝이 나고, 그 유명한 곡운구곡이 시작된다. 때맞추어 안개도 서서히 물러가고 맑은 물과 아름다운 산, 형형색색의 단풍이 화려하게 불타오른다. 전망대 바위에서 바라보는 화악산자락이 열두 폭 치마를 펼쳐놓은 듯, 한 겹 두 겹 계곡을 돌아가면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아름다운 교향곡이 울려 퍼진다.

 

 

백운계곡을 달려가는 자동차도 오색 물결 속에 푹 빠져 탄성이 터져 나오지만, 순식간에 스쳐가는 차창 밖의 풍경보다는 다리품을 파는 것이 제일 아닌가. 600여 년 전 세상을 비관하며 이곳에 은거하던 김시습이나, 400여 년 전 이곳의 비경을 세상에 알린 곡운 김수증선생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요.

 

 

“谷雲九曲圖”를 세상에 내놓은 김수증(金壽增, 1624~1701)선생은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장손으로 태어나 효종 임금이 죽자(1659) 일어난 예송논쟁으로 권력의 부침을 겪으면서 벼슬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아버지 김광찬(金光燦)의 3년 상을 치른 뒤 47살(1670)이 되던 봄날 화천 땅을 찾아온다.

 

 

북한강의 지류인 사내천(史內川)이 흐르는 골짜기를 은둔지로 삼아 그 이름을 주자(朱子)가 은둔했던 운곡(雲谷)을 거꾸로 해서 곡운(谷雲)으로 정하고, 주자가 무이산에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노래한 것처럼 곡운구곡을 설정하여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겼다. 우암 송시열(宋時烈)과 영의정을 지낸 아우 김수항(金壽恒) 등이 유배 길에 오른 1675년 겨울에는, 온 가족을 데려와 살면서 곡운정사(谷雲精舍)라는 현판을 내걸고, 농수정(籠水亭)을 짓고 가묘도 세웠다.

 

 

우암과 아우 수항이 사사된 기사환국(1689)을 맞아 이곳에 다시 들어와 화악산 북쪽에 화음동정사(華陰洞精舍)를 짓고 권력무상을 처절하게 느끼며 곡운에 철저히 은둔하다가 1701년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는 곡운구곡을 매우 사랑하여 아들 창국, 창직과 조카들에게 곡운구곡의 시를 한편씩 짓게 하고, 당대 최고의 화가 패천(浿川) 조세걸(曹世傑, 1635-1705)을 불러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게 하였으니, 그 유명한 곡운구곡도(谷雲九曲圖)가 탄생하게 된다.

 

 

제1곡인 방화계는 춘천과 화천의 경계지점에 있다. 봄에는 바위마다 꽃이 만발하여 ‘방화계(傍花溪)’라 부르는 이곳은 널찍한 암반 위를 흐르는 청정옥수가 용소를 이루고, 절정에 이른 단풍이 어우러진 선경이다. 지금이야 축대를 쌓아 계곡이 많이 손상되었지만, 김수증 본인의 시구절을 인용하면

 

 

                 세상 멀리 이 경지 마음 닦기 좋으니 /    저문 나이 기쁨은 산과 물에 있구나

                 백운산 동쪽이라 화악산 북녘에 /          구비마다 물소리 귀에 가득 하여라

 

 

제1곡 방화계 - 김수중 -

                 일곡이라 세찬여울 들이기 어려우니 /    복숭아꽃 피고지고 세상과 격하였네

                 깊은 숲에 길 끊어져 오는 사람 없으니 / 어느 곳 산골 집에 개가 짓고 연기 나랴.

 

 

제2곡인 청옥협은 방화계에서 500m 거슬러 오르면 억겁을 지나오는 동안 암반을 갈고 다듬어 맑고 깊은 물이 옥색처럼 푸른 골짜기라 하여 ‘청옥협(靑玉峽)’이라 부르는 곳에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돌탑들이 가지런히 쌓여있고, 주위환경과 어우러진 강변언덕에 사내면 로터리 클럽에서 아담한 공원을 조성하였다.

 

 

제2곡 청옥협 - 아들 김창국 -

                이곡이라 험한 산에 옥 봉우리 우뚝하니 /  흰 구름 누런 잎은 가을빛을 발 한다.

                걸어 걸 어 돌사다리 신선세계 가까우니 /  속세 떠나 몇 만 겁 돌아 온 줄 알겠네

 

 

제3곡 신녀협(神女峽)은 청옥협으로부터 2.5Km 상류의 물안교 부근에 있다.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공원 가장자리에 ‘청은대(淸隱臺)’라는 정자가 있어 주변의 경관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청은대 옆에는 하늘 향해 세운 기다란 철판에 고은, 김지하, 박경리, 김용택, 정호승 시인 의 시를 새긴 조형물을 ‘말씀의 기둥’이라는 이름으로 둥글게 세워 놓았다.

 

 

제3곡 신녀협 - 조카 김창집 -

                삼 곡이라 빈터에는 신녀자취 묘연한데 /   소나무에 걸린 달은 천년을 흘렀세라

                청 한자 놀던 뜻을 이제야 알겠으니 /        흰 돌 위에 나는 여울 그 모양이 아름답다.

 

 

송정교에서 삼일리 쪽으로 가다가 보면 군부대가 나타나고, 부대 바로 앞에 제4곡 백운담(白雲潭)이 자리 잡고 있다. 백운담은 오랜 세월을 두고 물에 씻긴 기암괴석들이 정겨운 곡선을 이루는데, 김수증은 “거북이와 용이 물을 먹고 있는 것 같다”라고 칭송하였다.

 

 

제4곡 백운담 - 조카 김창협 -

                사곡이라 시냇물 푸른 바위 기대보니 /    가까운 솔 그림자 물속에서 어른댄다

                날뛰며 뿜는 물 그칠 줄을 모르니 /         기세 좋은 못 위엔 안개 가득 끼었네

 

 

백운담에서 300m 거리에 있는 제5곡 명옥뢰는 낮게 깔린 바위를 타고 맑게 흐르는 물가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곳곳에 흩어져 바위를 흐르며 부딪치는 소리가 옥이 부서지는 소리 같다 하여 ‘명옥뢰(鳴玉瀨)’라 하였다고 한다.

 

 

제5곡 명옥뢰 - 조카 김창흡 -

                오곡이라 밤은 깊어 냇물소리 들리니 /    옥패를 흔드는 듯 빈 숲속에 가득하다

                솔문을 나서면서 가을 밤 고요한데 /       둥근달 외로운 거문고 세상밖에 마음이라

 

 

삼일리 휴양소 앞에 있는 와룡담은 주자(朱子)가 여산에 와룡암(臥龍菴)을 지어 제갈량의 위폐를 봉안하였다는 고사를 상기하며, 자신의 곡운정사를 주자의 와룡암에 비유하여 이곳을 와룡담(臥龍潭)으로 부르며 농수정사(籠水精舍)를 짓고 여울물 소리로 세속의 번거로움을 피하며 살았다고 한다.

 

 

제6곡 와룡담 - 아들 김창직 -

                 육곡이라 그윽한 곳 푸른 물을 베개 삼고 / 천길 물 송림사이 은은하게 비친다

                 시끄러운 세상일 숨은 용은 모르니 /        물속에 들어 누워 한가로이 사누나

 

 

명월계 표지석은 사창리로 가는 영당교 난간 앞에 있다. 평탄한 지형에 잔잔히 흐르는 물 위로 밝은 달 비치는 곳이라 하여 ‘명월계(明月溪)’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물 위로 다리가 놓이고 메마른 강바닥에 을씨년스런 모습을 바라보며 옛날의 달빛 정취를 느끼기 어렵다.

 

 

제7곡 명월계 - 조카 김창업 -

                 칠곡이라 넓은 못은 얕은 여울 연했으니 / 저 맑은 물결은 달밤에 더욱 좋다

                 산은 비고 밤은 깊어 건너는 이 없으니 /   큰 소나무 외로이 찬 그림자 던진다

 

 

제8곡 융의연(隆義淵)은 제갈량과 김시습의 절의를 기려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개인이 경영하는 펜션 경내의 물가에 있어 주인의 허락을 얻어야 들어갈 수가 있다. 건너편으로 유원지 횟집이 보이고, 잔잔한 물가로 바위들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다.

 

 

제8곡 융의연 - 조카 김창즙 -

                 팔곡이라 함은 물 가득히 고여 있고 /     때마침 저 구름 그늘을 던지누나

                 맑기도 하여라 근원이 가까운가 /          물속에 노는 고기 앉아서 바라보네

 

 

기이한 바위 사이로 일사천리로 흘러간다고 노래한 층층 바위도 간곳이 없는 제9곡 첩석대는 흐르는 세월 따라 변화가 무쌍하여 많은 실망감과 함께 격세지감을 느끼는 곳이다. 하지만 그 옛날 사람의 그림자도 없는 첩첩산중에서 외로운 나그네의 발길이 머문 자리가 예 아니겠는가.

 

 

제9곡 첩석대 - 외손자 홍유인 -

                 구곡이라 층층바위 또 다시 우뚝한데 /    첩첩히 쌓인 벽은 맑은 물에 비치네

                 노을 속에 저 물결 송풍과 견주우니 /      시끄러운 그 소리 골짜기에 가득하다

 

 

16km 답삿길도 끝이 나고 사창리로 들어서니 조용하던 시골마을이 소란스럽다. 하늘에는 애드벌룬이 떠 있고 우렁찬 함성소리가 사내면 골자기를 뒤흔든다. 사내면에 주둔하고 있는 이기자 부대에서 군관민 화합의 장을 마련하여 고향의 부모님까지 모셔다 효도잔치를 벌이고 있으니 자랑스러운 군인들의 늠름한 모습에 마음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