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구간: 달맞이 고개
일 시: 2013년 1월 20일
경유지: 미포(해운대) - 달맞이 동산 - 청사포( 어울마당) - 구덕포 - 송정해변 - 해동용궁사 - 수산과학관 - 오랑대공원 - 대변항 ( 16.7km)
제2구간 : 미포 - 대변항
초아흐레 상현달이 서산으로 넘어간 지도 서너 시간이 지나고, 칠흑 같은 어둠속에 몸체를 숨긴 파도소리가 해운대의 정적을 깨트린다. 해운대는 최치원선생의 자인 해운(海雲)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최치원선생이 낙향하여 해인사로 들어가는 길에 우연히 해운대에 들렀는데, 주변경관이 너무도 아름다워 이곳에 머물며 동백섬에 海雲臺(해운대)라는 글자를 새긴 후, 해운대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제2구간이 시작되는 미포(尾浦)는 해운대해수욕장의 동쪽 끝에 있는 해운대 삼포 중 한곳으로, 해변의 모퉁이 바위라는 뜻에서 미암(尾岩)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은 오륙도까지 돌아오는 유람선 선착장으로 변신하여 선상에서 해운대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
동이 트기를 기다려 출발한 우리는 달맞이 공원으로 들어선다. “문텐 로드”로 명명된 오솔길은 공원의 벼랑 끝을 돌아가는 아슬아슬한 절경 속에 수백 년 된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싱그러운 바다 내 음과 진한 솔향기가 가슴속을 파고든다.
정월초하루 새아침이 밝아오면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는 명소를 찾아, 한해의 무사안녕을 비는 의식을 하게 된다. 전국 유명관광지마다 해돋이 명소는 있어도 달맞이 공원은 찾아보기가 쉽지를 않다. 이곳이 달맞이 공원으로 명성을 얻게 된 데는, 소가 누워있는 형상의 와우산에 송아지로 변신한 사냥꾼 총각과 나물 캐는 처녀가 사랑을 불태우다 정월보름달에 소원을 빌어 부부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달맞이 고개에서도 월출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해월정은 대한 팔경에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정작 해돋이만큼은 조망이 신통치 않다고 한다. 시간상 해월정을 오르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발길을 돌린다. 해월정을 중심으로 조성된 달빛 바투 길을 돌아가면 청사포 전망대에 도착한다.
청사포에는 수령이 자그마치 300여년이나 되는 망부송이 있다. 이 마을에 금실 좋은 정씨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고기 잡으러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망부송에 올라 남편을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아내가 죽고 만다. 마을 사람들이 사당을 지어 그녀의 넋을 위로하고, 남편을 기다리던 바위를 망부석으로, 올라갔던 나무를 망부송이라 부르고 있다.
달맞이 공원에서 일출과 월출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청사포라 할 수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탁 트인 수평선위로 떠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다. 맑은 날에는 일본의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하니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바라보며 우리의 무한한 희망을 품어본다.
겨울 추위에도 절개를 잃지 않는 동백나무와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가면 철길을 만난다. 부산진역에서 출발하여 울산, 경주, 포항까지 남동해안을 연결하는 동해남부선은 총길이가 145.8㎞에 이른다. 해운대역에서 송정역까지는 우리나라 철길 중에서 가장아름다운 명소로 선정될 정도로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단선철도에 운행횟수도 적어 철로 위를 걸어가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옛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낭만이 흘러넘친다.
철길을 건너 해변으로 내려서면 구덕포 마을이다. 조선말기 동래군 원남면의 아홉 포구 중 하나로 매년 음력 정월 14일과 6월 14일 자정에 용왕제를 지낸다고 한다. 해운대3포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구덕포는 물이 어찌나 맑은지, 물속의 조약돌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깨끗하여 이곳에서 채취하는 해산물은 그대로 보증수표가 되는 청정해역이다.
구덕포를 지나 북쪽으로 펼쳐지는 송정해수욕장은 부드러운 모래와 완만한 경사, 얕은 수심으로 가족과 어린이들이 물놀이하기에 좋은 곳이다. 백사장 길이가 1.2km에 폭이 60여m나 되고 14만 명을 수용할 수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송정해수욕장은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부산의 3대해수욕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앞이 막혀 눈물 흘리는 죽도공원! 나도 눈물이 흐른다~” 아름다운 해변 가에 내걸린 현수막의 섬뜩한 문구에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기장군에서 유일한 섬이고, 팔경에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워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자주 찾았던 기장의 대표적인 명소다. 그러나 개인소유로 넘어간 뒤로 철조망으로 가로막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 되고 말았다.
사유지라 그 누구도 간섭할 권한은 없지만, 여러 사람이 공유해야할 방법을 마련하여 송정해수욕장을 찾는 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죽도공원에서 바라보는 송정해수욕장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가슴의 응어리가 풀리는 듯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린다.
그림 같은 송정포구를 지나면 기장군이 시작된다. 부산에 속하면서도 도시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전형적인 농어촌 모습을 보여주는 공수항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어촌체험관광마을”로 조성 중에 있다. 해변의 바위섬에 모여 있는 갈매기들도 풍어의 깃발을 올리며 돌아올 어선들을 기다리고, 이고장의 특산물인 기장미역 양식장이 포구 앞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제 그 유명한 해동용궁사에 도착한다. 대개의 사찰이 산중 깊은 곳에 있는 것과는 달리 검푸른 바닷물이 발아래서 용트림하는 水上法堂이다.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님은 이런 바닷가 외로운 곳에 상주하며 용을 타고 회현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관음신앙이 해안이나 섬에 자리 잡고 있으니, 양양의 낙산사, 남해의 보리암, 해동용궁사를 한국의 삼대 관음성지로 꼽고 있다.
해동용궁사는 1376년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대사에 의해 창건되어, 壬辰倭亂의 戰火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 초 300여 년 만에 통도사 운강화상이 보문사를 창건하고, 여러 대를 거친 끝에 1974년 정암스님이 부임하여 관음도량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춘원 이광수는
“바다도 좋다하고 靑山도 좋다거늘 / 바다와 靑山이 한 곳에 뫼단 말가 /
하물며 淸風明月이 있으니 / 여기곳 仙境 인가 하노라”
아름다운 시로 노래하였다. 무언의 기도 속에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산문을 빠져나온다.
일사 분란한 회원들의 발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예정시간보다 두 시간이상 빠른 행보를 보인다. 이익수 대장의 善心으로 수산과학전시관에 들어서면, 물고기를 형상화하여 도자기로 빚어낸 장인들의 손길이 살아 숨 쉬는 현장이다. 동암항을 지나면 오징어 덕장을 만난다. 사열하는 군인들처럼 질서정연하게 걸려있는 오징어들이 청정지역의 상품으로 변신하는 과정이다. 용대리에서 북풍한설 맞아가며 태어나는 황태와 함께 동해안이 자랑하는 명물 중에 명물이다.
갯바위 사이로 담방거리는 해녀들의 물질이 신비스럽고, 갓 잡아 올린 소라를 안주삼아 술 한 잔 걸치는 것도 해파랑길을 걸어가는 매력이 아닌가싶다. 쫀득쫀득하게 씹히는 감칠맛이 고소한 여운을 남기며 목울대를 넘어가고, 격의 없이 나누는 대화 속에 십년은 젊어진다.
바다와 동백꽃, 청초한 그 모습이 가련한 여인으로 묘사된다. 세찬바닷바람에도 꽃을 활짝 피워내는 진홍색 동백꽃은 한 남자를 위한 절개를 지키다 봉오리 째 떨어지고 마는 꽃이다. 함부로 꺾지 마라, 짙은 향기로 유혹의 손길을 내밀어도 그녀의 지조를 꺾지 못할 것이기에.
목적지인 대변항이다. 활등처럼 휘어진 포구는 어머니의 품속처럼 아늑하고, 이고장의 대표상품인 기장미역으로 손님을 부르며 호객행위가 한창이다. 우리가 찾아간 식당에서 내놓은 메뉴는 멸치회와 멸치찜이다. 어느 곳에서도 쉽게 먹어볼 수 없는 고소한맛, 통 미꾸리로 만든 추어탕처럼 뼈가 연하여 씹으면 씹을수록 감칠맛 나는 칼슘덩어리다. 지난번 미포항에서 먹은 할미원조 복국처럼, 가는 곳마다 특색 있는 음식을 찾아내는 것도 해파랑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각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