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낙동강 천리 길 : 12

김완묵 2012. 12. 19. 03:03

 

일시: 2012년 123월 17일

장소: 삼랑진 - 작원관진 -원동 - 가야진사 - 물금 - 호포 ( 26km)

 

                                             양산 통도사

안동에서 시작된 낙동강 답사 길도 그 여정을 마무리하는 순간이다. 사통팔달의 교통요지인 삼랑진을 찾아가는 길이 녹녹치를 않다. 고속버스와 KTX가 삼랑진을 지나면서도 정차를 하지 않으니 "앞마당을 내주고도 잿밥은 남들이 차지하는 꼴이다". 밀양이나 구포에서 다시 갈아타야 하지만, 그나마도 산간마을까지 찾아가는 시골버스로는 하루해가 저물도록 애간장이 녹을 판이다. 다행이도 30분후에 도착하는 무궁화호(서울발 부산행 10시 45분)가 있어, 밀양역에서 다시 갈아타고 보니 10분 만에 삼랑진에 도착한다.

 

 

2달 전에 다녀간 삼랑진은 영하의 날씨와 폭설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에도 따뜻한 남쪽나라답게 훈풍이 불고 있다. 경부선과 경전선이 만나고 헤어지는 곳.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 세 갈래의 물결이 어우러지는 삼랑진은 영남대로와 함께 낙동강에서 가장 큰 포구였다. 콰이강의 다리를 비롯하여 5개의 다리가 건설되며 화려한 영화를 누렸지만, 언제부터인가 시간이 정지되어버린 곳이라 더욱 쓸쓸해 보인다.

 

 

경부철도 지하도를 빠져나오면 삼랑진 생태공원이다. 낙동강변의 드넓은 고수부지에 조성되는 강변공원은 자연생태를 그대로 유지하여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습지공원으로 낙동3경에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낙동강 하구언이 45km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면, 4대강 살리기 사업현장에서 발굴된 처자교를 만난다.

 

 

처자교는 조선시대 영남 대로상에 남아있는 보기드믄 쌍홍예교로 폭이 4.25m에 길이가 25.3m 높이3.2m의 교량으로 그 당시의 건축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 받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작원관 근처의 작은 절에 있던 스님이 인근마을의 처녀를 사모하면서, 두 남녀가 사랑 놀음으로 다리 놓기 시합을 했다고 한다. 처녀의 연약한 힘을 깔본 스님이 게으름을 피운 사이 열심히 다리를 놓은 처녀가 이기자 이를 부끄럽게 여긴 스님이 낙동강 물에 빠져 죽자, 슬픔에 잠긴 처녀도 죽었다는 슬픈 사연이다. 스님이 만든 다리를 승교, 처녀가 만든 다리를 처자교로 불렀다고 한다.

 

 

삼량진읍 검세리는 영남지방을 관통하는 四通八達의 교통요지로 작원관(鵲院關)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여행하는 관원의 숙소를 제공하고, 나루터를 출입하는 사람들과 화물을 검문하던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여행하던 관리들의 숙소를 院이라 하였고, 출입하는 사람과 화물을 검문하는 곳을 關관이라 하였다. 삼랑진 검세리에 있는 작원관진(鵲院關津)은 문경의 조령관과 함께 부산포에서 한양에 이르는 2대 중요 요충지로, 비석만 있던 자리에 1995년 성문을 복원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밀양부사 박진 장군이 지휘하는 軍.官.民 300여명이 왜적1만 8천여 명을 맞아 결사적으로 항전하던 救國忠魂의 성지로서, 경부철도가 개설되면서 원래의 자리에서 밀려나 낙동강 변에 조성하였으나 1936년 대홍수에 휩쓸려 흔적조차 없어진 것을 삼랑진 읍민들의 정성으로 복원하였다는 설명이다.

 

 

삼랑진이 자랑하는 특산물로는 딸기를 꼽을 수 있다. 1943년 삼랑진 금융조합 이사였던 송준생씨가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벼슬딸기’ 모종 10여포기를 가져와 심은 것이 우리나라 딸기재배의 시초라고 한다. 따뜻한 기후와 비옥한토지에서 재배하는 딸기가 품질이 우수하여 경남지역딸기생산량이 전국의 42%를 차지하고, 밀양시에서 도전체의 26%를 생산하고 있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는 안태공원은 삼랑진 양수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조성된 공원이다. 상부저수지까지 6km의 도로 주변경관이 수려하여 드라이브 코스로 아주 좋은 곳이다. 1급수 맑은 물을 담수하고 있는 상하부 댐과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삼랑진양수발전소의 전시실에서는 에너지 발달사를 한눈에 볼 수가 있다.

 

 

양수 발전소는 수력 발전의 일종이다. 전력 수요가 적은 심야 또는 주말의 여유전력을 이용하여 하부저수지의 물을 높은 곳에 있는 상부저수지에 끌어 올려 물을 저장하였다가 전력사용이 가장 많은 시간에 상부저수지의 물을 다시 하부저수지로 낙하시키면서 전기를 발생하는 방식이다.

 

 

작원터널이 나타나며 산세가 험해진다. 천태산 자락이 낙동강 물에 발을 담그며 수직 단애를 이루는 절경이다.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경부선 철로와 강물에 다리발을 세운 자전거 도로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삼랑진의 새로운 명소로 탄생하였다. 지루하던 자전거 길에 강물 위를 걸어가는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요. 산수화 속으로 빠져드는 행운이다.

 

 

절벽 중간지점이 밀양시와 양산시 접경지역이다. “아름다운 변화 희망찬 양산”의 슬로건을 내건 양산시는 영남알프스로 부르는 영축산과 신불산이 있고, 낙동강이 흐르는 산수가 수려한 청정 지역이다. 또한 부산광역시의 위성도시로서 기능을 발휘하여 인구 27만 명이 상주하는 쾌적한 환경 속에 부산지하철 2호선이 연결되어 있다.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는 가야진사가 있다. 신라의 눌지왕이 가야를 정벌하기위해 건너던 용당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일명 옥지주(玉池州)라고도 불렀다. 공주의 웅진과 함께 나라에서 향촉과 칙사를 보내어 제사를 올리고 장병들의 운을 빌던 곳이다. 용당 나루의 전설을 바탕으로 龍을 主神으로 모시고 있는 내부에는 가야진사 전설의 주인공인 머리가 셋 달린 龍이 그려져 있다.

 

 

전설에는 한 마리의 황룡(남편)과 두 마리의 청룡(처와 첩)이 살고 있었는데, 첩을 시기한 처가 사자(使者)에게 첩을 죽이도록 부탁을 하였다. 사자가 이 사정을 딱하게 여겨 첩을 죽이기 위해 용소에 갔는데, 실수로 황룡을 죽이는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슬피 울던 본처용이 사자를 용궁으로 데리고 간 뒤로, 마을에 재앙이 끊이지 않아 억울하게 죽은 황룡의 넋을 달래는 용신제를 지낸다고 한다.

 

 

낙동강 천리 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루터가 이곳 용당 나루터라 할 수 있다. 천태산 자락이 내려앉은 수 십 만평의 고수부지에 조성된 가야진사와 강 건너 용산이 그림처럼 솟아있고, 대구부산 고속도로가 질주하는 정경이야말로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진다.

 

 

새벽부터 천리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터라 시장기가 돌기시작 한다. 언덕위에 자리 잡은 정자를 찾아가니 때 마침 양산에서 달려온 자전거 팀들이 술파티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지나는 길손을 그대로 보내는 것이 우리네 인정이 아니기에, 초면이지만 자리를 함께하자고 불러들인다. 염치불구하고 자리를 비집고 들어서니 군침 도는 홍어회가 기다리고 있다. 초고추장을 듬뿍 찍은 홍어회의 맛은 山海珍味가 따로 없고, 목울대를 넘어가는 시원한 소주야말로 피로를 풀어주는 보약이 따로 없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통성명이 시작되고, 인천의 아라 뱃길에서 한강과 문경새재를 넘어 낙동강 하구언을 찾아가는 4대강 답사 국토대행진 중이라는 설명에 모두들 놀라고 만다. 자전거로도 어려운 길을, 걸어서 간다는 말에 감탄사와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보니, 마음이 우쭐해지는 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에 차이가 없다.

 

 

공짜 술이 어디 있는가. 백두대간 종주 수필집(백두대간에 부는 바람)을 건네주니 더 한층 반가워하며 연거푸 술잔이 건네진다. 생각지도 못한 술대접을 융숭하게 받고 보니 피로도 싹 가시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발걸음에 거침이 없다. 신 바람나는 발걸음에 말을 걸어오는 인기척에 돌아보니, 자전거로 에스코트를 하고 있는 양산의 박춘석 씨다. 배낭에 달고 있는 국토대행진 깃발을 보고 말동무를 하는 중이다.

 

 

종주 길에서 흔히 있는 일이기에 간단하게 설명을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자세한 일정까지 물어 온다. 30여 분간 에스코트를 받으며 주고받는 대화는 끊임이 없고, 걸어서 국토대행진을 하는 사람이 처음이라며 인증 샷으로 기념사진까지 찍고, 기다리는 일행들에게 소개까지 시켜준다.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영남대로는 한양에서 부산의 동래부에 이르는 조선시대 9대 간선도로 중에 하나였다.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과거보러 가던 길이요, 보부상들이 등짐을 지고 넘던 길이다. 이곳 황산잔도는 영남대로 상에서 문경의 고모산성 토끼비리와 창녕군의 청한정 길과 함께 3대 험로라 전해질 정도로 낙동강이 흐르는 기암절벽의 벼랑 사이를 지나야하는 아슬아슬한 구간이다.

 

 

“황산 베랑 길”로 부르는 이곳은 지금도 KTX 경부선 복선철도가 한쪽은 터널로, 다른 한쪽은 비좁은 벼랑사이를 달리고 있어 마치 단선 철도로 보인다. 강심에 다리를 박은 2km의 자전거 길은 종주 팀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다리아래 보이는 경파대(鏡波臺)는 조선시대 선비 정임교가 친구들과 시를 읊던 장소로, 중국 당나라 詩 채련곡(採蓮曲)에서 “거울 같은 물, 바람 없어도 절로 물결 인다.” 는 구절을 인용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양산 물 문화회관 인증센터를 지나 스릴 넘치는 2km의 황산 베랑 길도 끝이 나고, 양산시 물금취수장이 반겨준다. 동지섣달의 짧은 해가 낙동강에 낙조를 드리우는 시간. 물금읍을 보듬어 안고 있는 고수부지위로 황산 문화체육공원이 펼쳐진다. 직선거리로 4km에 이르는 황산 문화체육공원은 갈대숲이 무성한 낙동강의 둔치에 각종위락시설을 조성하여 양산천을 따라 조성하였다.

 

 

양산천(梁山川)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영취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양산시를 관통하는 길이가 32km에 이르는 하천으로, 양산시 동면(東面) 가산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하천변에는 자연생태공원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수달과 천연기념물 제327호인 원앙이 발견되기도 한다.

 

 

부산 하구언 24km 이정표가 있는 호포역에서 하루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예정된 양산역으로 향한다. 양산에서 가장 중요한곳이 통도사다. 영축산자락에 터를 잡은 통도사는 천년 고찰로서 우리나라 3보 사찰 중 해인사(법보사찰), 송광사(승보사찰)와 함께 불보사찰로 꼽히는 명찰이다. 당나라에 修道를 다녀온 자장율사가 석가의 진신 사리를 모시고와서 선덕여왕 15년(646년)에 건립하였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시고 있는 설악산의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영월의 법흥사, 정선의 정암사와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한곳이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 유형불교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43종)하고 있으며, 1999년 신축 개관한 성보박물관은 세계박물관 중에서 가장 풍부한 불교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불교회화 전문 박물관이다.

 

 

참고로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경로를 소개하면, 고구려 소수림왕(372년)시절에 전진에서 승려 순도가 외교사절과 함께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왔으며, 374년 아도에 의해 전파된 불교는 신라 법흥왕(527년)때 이차돈이 천경림(天鏡林)에 절을 짓다가 대신들의 반대에 몰려 순교를 당하면서 신라에 불교가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백제는 제15대 침류왕이 즉위한 서기 384년 전남 영광 법성포(法聖浦)에 들어온 마라난타가 불갑사를 창건하고, 다음해 백제의 수도인 한산주로 올라가 침류왕을 예방하여 절을 짓고 승려 열 명을 허락하였으니, 이것이 백제 불교의 시초라고 한다. "불법이 들어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에서 법성포(法聖浦)란 지명으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