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낙동강 천리 길 . 8

김완묵 2012. 6. 15. 21:00

 

일시: 2012년 6월15일

경유지: 현풍 - 낙동대교(중부내륙고속도로) - 장미나루 - 송당서원 - 부리나루 - 답곡진 나루 - 우곡교 - 자라고개 -          합천보  - 이방약국(약 29km)

 

 

                                         8 . 충효의 고장 현풍

종주 삼일 째 되는 날이다. 서울 올라가는 차편을 물색하던 중, 의령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창녕군 이방면에서 정차한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하루에 3회 운행하는 버스가 11시에 있다고 하니 새벽4시에 출발을 해야 한다. 낮이 길다는 하지가 임박했어도 가로등 불빛만이 시가지를 밝혀줄 뿐, 오가는 인적도 없이 깊은 잠속에 빠져있는 시각이다.

 

싱그러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는 낙동대교 굴다리를 빠져 나오면, 강물이 서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낙동강가에 자리 잡은 달성군은 선사시대부터 달구벌이라 부르던유서 깊은 곳으로, 1995년까지는 경상북도에 속해 있었으나, 이후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어 3읍6면을 관할하고 있다.

 

달성군에 속한 현풍면은 임산배수의 고장으로 낙동강을 바라보며 용리산(483m)기슭에 자리 잡은 어촌 마을이다. 인구 일만 이천 5백여 명이 살고 있는 현풍은 충효의 고장이다. 현풍을 본으로 하는 현풍 곽씨(玄風 郭氏)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에서 건너온 곽경(郭鏡)이다. 고려 인종(1122~1146) 때 귀화하여 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내고 금자광록대부로 포산군(苞山郡)에 봉해진 인물이다.

 

현풍의 대명사가 된 현풍 곽 씨는 충신 열녀를 많이 배출한 명망 있는 가문이다. 후손 중에는 임진왜란 때 홍의 장군으로 명성을 날린 의병장 곽재우장군이 있다. 학문은 물론 무예도 뛰어나, 34세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으나 그의 글이 임금의 뜻에 거슬렸다 하여 급제가 취소되자 벼슬을 포기하고 고향에서 은거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 백성들이 처참하게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의병을 일으켰다. 정유재란 때에는 경상 좌도 방어사가 되어 왜병을 물리쳤으며, 그 해 계모가 세상을 떠나자 울진으로 가서 바깥출입을 삼가며 3년 상을 모셨다고 한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한 망우당 곽재우는 우리의 귀감이고, 현풍면 지리에 있는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은 조선시대 충신, 열녀, 효자에게 내리는 임금의 하사품으로 현풍 곽 씨 가문의 명예이고, 이고장의 자랑이다. 동녘하늘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수초에서 잠든 물고기들을 깨우고, 잠시 후 도동서원이 있는 도동리를 지난다.

 

도동서원은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위해 설립한 서원이다. 1607년 '도동'(道東)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고,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존속한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김일손(金馹孫), 정여창(鄭汝昌) 등과 함께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소학〉을 배우고, 조광조(趙光祖)에게〈소학〉을 전수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 때 무오당인이라는 죄목으로 죽음을 당했으나,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어 1507년(중종 2) 도승지에 추증되고, 1517년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낙동강변의 맑고 푸른 물줄기가 흐르는 곳에 철을 따라 새들이 찾아오고, 그 옛날 팔만대장경을 운반해 해인사까지 머리에 이고 옮겼다는 개포나루에서 낙동강물줄기는 남쪽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요즈음 MBC에서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는 ⌜무신⌟에서 몽고의 침입으로 전국토가 유린되고, 대구 구인사에 있던 대장경이 불에 타는 수난을 당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아 강화도로 천도한 최우는 백성들의 마음을 수습하고저 팔만대장경의 제작에 착수한다. 그 시절 나라형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업을 수행해 나가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지리산에서 벌목한 산 벚꽃 나무가 만 그루에 이르고, 소금에 절여 말리는데 3년 글씨를 파고 옻칠하는데 십 수 년이 걸렸다고 한다. 낙동강을 거슬러 이곳 개포나루에서 해인사로 옮기는 과정 또한 만만치가 않으니, 불심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현풍면에서 동쪽으로 높이 1,084m에 이르는 웅장한 비슬산이 있다. 대구광역시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비슬산은 북쪽의 팔공산과 함께 달구벌을 보듬어 안고 있는 명산이다. 가장 높은 대견봉(大見峰)을 중심으로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빗어놓은 암석들이 장관을 이룬다.

 

 1,000m 이상의 산정상은 평탄하고, 남쪽과 북쪽은 급경사를, 북동쪽은 완만하다. 봄철에 피는 진달래와 철쭉, 능선을 따라 자생하는 억새풀, 그리고 울창한 수림과 어우러진 계곡이 아름다워 1986년 비슬산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북쪽 기슭에는 신라시대 선덕여왕1년 보양국사(寶壤國師)가 창건했다고 하는 용연사(龍淵寺)를 비롯하여 유가사(瑜伽寺), 소재사(消災寺), 용문사(龍門寺), 용천사(湧泉寺) 등 많은 사찰이 있다.

 

구지면에서 강줄기는 또다시 서남쪽으로 몸을 튼다. S자를 포개 놓은 것처럼, 이리저리 구불거리며 감입곡류(嵌入曲流)로 흘러가니, 지나는 고을마다 생명수가 넘쳐나고, 강가의 습지와 전원풍경이 아름다운 산수화를 그려낸다.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이노정이 대표적인 건물이다.

 

조선 성종 때 대유학자인 김굉필과 정여창이 무오사화를 당하여 시골로 내려와 지내면서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며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 ‘제일강정’이라고도 하며, ‘이노정(二老亭)’이라는 이름은 김굉필, 정여창을 두 늙은이라 칭하여 붙인 이름이다.

 

고령 땅으로 달려온 자전거 도로가 우곡교를 건너 대암리로 넘어온다. 박석진교에서 현풍면 쪽으로 달려온 자전거 도로가 우곡교 아래서 합류한다. 달성군보다는 고령군 쪽의 도로가 1km정도 더 길고, 우회로를 따라가는 길이 험하여 양자택일하여도 큰 무리는 없다.

 

창녕군 이방면 지경으로 들어온 도로가 굽은 다리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송곡리 강변의 벼랑길을 따라 가면 회천(回天)과 만난다. 고령군 운수면(雲水面)에서 시작하는 회천은 고령읍 본관리(本館里)에서 소가천(小伽川)이 흘러들고, 고령읍 동남 하부지역에서 안림천(安林川)과 만나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德谷面)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24.5㎞의 하천이다.

 

율지교를 지나면 강물은 또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합천 창녕보가 손짓을 한다. 곧게 뻗은 제방을 따라가면 드넓은 호수위로 위용을 드러내는 합천보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부산 하구둑146km, 안동댐239km의 이정표를 바라보며 감회가 새롭다. 3일 동안 자전거도로 81km에 진입로 까지 90 여km를 답사했으니, 아직도 녹슬지 않은 체력에 자부심을 갖고 국토대행진을 완주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합천 창녕보는 창녕군 이방면과 합천군 청덕면 사이에 막은 길이328m(가동보 138m, 고정보 190m)이며, 가동보는 승강식 수문과 회전식수문으로 구성되고, 창녕과 합천을 이어주는 교량역할을 한다. 국내최대의 원시적 습지인 창녕 우포늪을 연결하는 생태복원의 일환으로 멸종위기에 있는 따오기를 낙동강 살리기의 희망 심 볼로 도입하여, 푸른 날개를 달아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창녕보는 누수로 인한 부실공사로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외관은 그럴듯하게 모양을 갖추었으나, 부실공사로 준공식까지 미루어가며 보강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백년대계를 내다보며 진행돼야할 공사를 임기 내에 마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졸속공사가 이루어진 결과이다.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을 좀 더 세심하게 보살피고 완벽한 공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