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세계/시와산 계간지.2

제 73 호 - 겨울을 보내는 마음

김완묵 2012. 3. 9. 10:24

 

 

북한산 종주(약 35km)

 

 

                            제1구간 : 육모정고개 - 국민대학교 앞(약 13km)

한북정맥흐름 따라 도봉산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천하명산 북한산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우이령 고갯마루에서 온갖 삭신 녹여가며 주능선에 올라서지만 애석하게도 정맥이 서쪽으로 몸을 틀어 상장봉으로 향하고 만다.

 

 

실망감속에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영봉을 지나 백운대, 대동문, 보현봉, 북악마루, 백악산, 창의문, 인왕산, 무학재, 안산, 금화터널, 숭레문, 남산, 응봉산까지 줄잡아 35km의 맥을 이어갈 수 있는 지맥을 형성하고 있으니 이 또한 멋진 코스가 아닌가. 만사 제쳐놓고 북한산 종주 길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우이동 도선사 입구에서 북쪽의 유원지 입구로 들어서면 두 갈래 길이 있으니 오른쪽의 우이령 길이 정석이지만 고갯마루에서 군인들의 제지로 출입이 어렵기에 왼쪽의 호젓한 오솔길로 접어든다. 인적도 드믄 포장길을 300 여m 올라가면 오크벨리 카페 옆으로 육모정 탐방 안내소가 반겨준다.

 

 

육모정고개1.3km 영봉2.6km의 이정표를 뒤로하고 계곡으로 들어서면 처음부터 가파른 비알 길에 너덜지대가 펼쳐진다. 무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오가는 사람도 없이 산새들의 천국에서 가는 여름이 아쉬운지 자지러지는 매미소리가 요란스럽다.

 

 

협소한 공간을 비집고 터를 잡은 용덕사를 뒤로하고 올라서는 안부에는 나무계단으로 길을 터주어 한결 수월하게 올라선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주위를 둘러보지만 산악인을 추모하는 이은상님의 노래비가 보이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20여 년간 휴식년제로 입산이 금지된 탓인지 개방이 되었어도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드리워진 그늘 속에는 벤치까지 놓여있어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남쪽으로 터지는 오솔 길 따라 가쁜 숨을 몰아쉬면 널찍한 전망대 바위가 나타난다. 툭 터진 공간속으로 도봉산의 전모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어느 곳에서 보아도 아름다운 도봉산. 오봉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비경도 상장봉 줄기가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코끼리 바위를 지나며 인수봉이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푸른 숲 사이를 뚫고 우뚝 솟아오른 인수봉은 사바세계의 속물들을 품어 안는 高僧大德의 인자한 모습으로 보인다. 604m의 영봉도 810m의 인수봉 앞에서는 왜소한 몸짓으로 군왕 앞에 머리 조아리는 신하와 같다고 할까. 이곳에서 바라보는 인수봉은 정말로 아름답다. 특히 비온 뒤 계곡을 파고드는 운해가 인수봉을 집어삼킬 듯 요동치는 모습은 이곳이 아니고는 볼 수 없는 천혜의 전망대라 할 수 있다.

 

 

둔탁한 목탁소리에 낭낭한 도선사의 염불소리. 森羅萬象(삼라만상)과 山川草木(산천초목)에도 大慈大悲한 복음이 울려 퍼진다.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선사는 1863년(철종14년) 김좌근의 시주로 중수하고, 1903년에는 혜명스님이 고종의 명을 받아 대웅전을 중건하여 이듬해에 국가기원도량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낙락장송 흐드러진 비알 길을 내려서면 하루재 고갯마루다. 백운대를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로 도선사 입구에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경유하여 백운대로 오른다. 인파에 떠밀려 도착한 곳이 북부 경찰서 산악구조대 건물이다.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인수봉은 너무도 평화롭고 조용하다.

 

아침햇살에 비치는 거대한 화강암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하여 누구라도 감싸줄 것만 같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다가 불귀의 혼이 되고 말았으니 輕擧妄動(경거망동)이야말로 큰 화를 자초한다는 교훈을 안겨준다.

 

 

산이 좋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일상의 피곤함에서 탈피하여 숲속을 찾으면 시원한 공기와 자연이 주는 상쾌함으로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 그렇다고 무조건 산이 좋은 것은 아니다. 무모하게 덤비다가 예기치 못한 화를 자초하게 되니 산행규칙을 준수하고 평소의 체력을 조절하여 항시 여유 있는 행동을 할 때 산의 고마움을 알게 되고 건강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위문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온다. 산이 어디 편안한 길만 있는가. 깔딱 고개라 부르는 이런 곳에서는 보폭을 반으로 줄이고 속도를 천천히 자주자주 쉬어가며 체력을 조절해야한다. 자기 체력은 생각지 않고 일행을 따라가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오버페스를 한다면 다리에 경련이 이는 고통 속에 큰 고역을 당하게 된다.

 

 

중간지점에 백운대피소가 반겨준다. 백운대를 오르다 지친 이들이 쉬어갈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는 곳이다. 식당의 벽면에는 인수봉 등반루트 사진이 걸려있다. 암벽등반의 메카인 인수봉. 젊음의 혼을 불사르는 암벽등반은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스릴 있는 종목이다. 그만큼 위험을 수반하는 산행이기에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뒤 안전수칙에 따라 숙련된 조교의 도움을 받아야하고 강력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渾身(혼신)의 힘으로 올라선 위문. 만경대와 백운대를 이어주는 협곡의 고갯마루다. 千軍萬馬(천군만마)를 호령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지다. 새로 복원된 성벽이 우람하게 앞을 가로막고 위문을 통해서만 북한산성유원지나 용암문으로 나갈 수 있다.

 

 

암문은 비상시에 사용하는 문으로 일반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만들어 전시 상황이 되면 군수물자를 조달하거나 비밀리에 군사를 이동시키는 용도로 사용된다. 숲이 우거진 곳이나 성곽 깊숙한 곳에 만들어져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는 문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들어진다.

 

 

북한산성은 선조에 이어 숙종때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어 전국에서 부역에 동원된 인원과 승군이 총 10만 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3군문으로 구역을 분담해서 성을 쌓도록 했으며, 성곽의 총 길이가 약 12.7㎞에 달하고 14개소의 성문 중 5개소에 문루가 세워졌으며 3개소의 장대지가 있었다고 한다.

 

 

서쪽으로 성벽을 따라 백운대 오름길로 들어서면 새로 조성한 나무테크 계단이 반겨준다. 위문의 높이가 725m이고 백운대의 높이가 836m이니 고도 차이가 110m에 불과하지만 정상까지 바위 골과 절벽, 급경사 사면으로 이루어져 철 계단과 와이어로 만든 안전시설이 없다면 감히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태극기 휘날리는 정상에 올라서면 진땀 흘리며 올라선 보람이 있어 북한산의 전모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깎아지른 만경대(799m), 민대머리 인수봉(811m)을 일컬어 삼각산이라 부르는 것도 빼어난 경관 때문이다.

 

 

고구려를 떠나온 온조와 비루가 이곳에 올라 지세를 살피고, 한양천도의 구심점이 된 곳도 이곳이라 하니 삼각산의 늠름한 기상과 옹골찬 지세를 바라보며 정상석에 새겨진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조국강산 겨레도하나 나라도 하나이기에 피와 사랑으로 한 덩이 되어 우리 손으로 통일을 이루 오리다” 이은상님의 노랫말을 음미해 본다.

 

 

의상봉에서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의상봉능선과 원효봉에서 염초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길. 보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에 12.5km의 성채를 둘러 아늑한 분지위에 중흥사지를 조성하니 유사시 나라를 지키는 천혜의 요새지가 예 아닌가. 그만큼 중요한 거점이기에 고구려와 신라가 격전을 벌이고 조선조에 들어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이곳을 중요하게 인식하였다고 한다.

 

 

다시 되돌아온 위문을 빠져나오면 가파른 벼랑길에 나무계단이 반겨준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면 북한산성 유원지로 가는 길이고, 왼쪽의 벼랑길은 용암문 방향이다. 만경대 암릉 길이 너무도 험해 우회로로 개설한 길이지만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벼랑길에 설치한 계단과 와이어 줄,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경사진 바위에서 미끄러지기 일쑤이니 잠시라도 한눈을 팔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노적봉 갈림길까지 0.9km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제법 많이 걸린다.

 

 

노적봉 갈림길을 지나며 위험구간도 벗어나고 모처럼 편안한 산행길이 이어진다. 백운대에서 시작된 성벽이 만경대 암릉을 넘어 이곳 용암문에서 다시 만나 북한산성 순례길 따라 원효봉의 북문까지 종주가 가능하다. 용암문은 1711년 (숙종37년)지어진 암문으로 왼쪽으로 내려서면 도선사 가는 길이고, 오른쪽 계곡은 중흥사지로, 남쪽으로 성벽을 따라가면 대동문에 이른다.

 

 

잠시 후 북한산 대피소를 지나 동장대를 만난다. 백운대와 만경대, 노적봉의 험준한 암릉과는 다르게 수 천 명의 장졸들이 쉬어갈수 있는 너른 분지가 있어 힘들여 올라온 행락객들이 편히 쉬어갈수 있는 공간이 펼쳐진다. 장대란 장수가 산성을 지킬 때에 올라가서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든 대를 말하며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설치하게 되며 북한산성에는 남장대와 북장대 3곳이 있다.

 

 

용암문에서 대성문까지는 북한산의 동쪽성벽을 따르게 되는데, 강북구 쪽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어느 곳이라도 탈출이 가능하다. 경관이 뛰어난 대동문은 백운대에서 3km 지경이라 어느 곳에서 산행을 해도 이곳에서 휴식을 하게 된다. 소귀천계곡과 진달래능선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이곳 대동문 주위에 자리를 잡는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먹 거리를 펼치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에서 행복을 찾는다.

 

 

남쪽으로 성벽을 따라가는 발길이 보국문에 닿는다. 동쪽으로 아슬아슬한 칼바위 능선에서 젊음을 불사르는 곡예를 한다. 스릴 넘치는 암릉 길은 화계사와 조병옥 박사 묘소가 들머리다. 보국문 역시 암문으로 동쪽은 정릉 매표소에서 올라오는 길이고 서쪽은 중흥사지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대성문과 대동문이 각기 0.6km이니 중간지점이지만 대성문쪽의 성벽이 갑자기 가파르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선 무명봉에서 바라보는 칼바위는 정말로 환상적으로 삼양동과 수유리 쪽의 도심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대성문을 내려서는 발걸음에 거칠 것이 없다. 힘들여 올라온 만큼 내려가면서 받는 보상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공평하다. 산성을 종주한다면 서남쪽 대남문 방향으로 가야하지만 북한산 종주를 하자면 북악터널 쪽으로 내려서야 하겠기에 대성문을 빠져나와 남쪽으로 형제봉을 바라보며 진행한다. 가파른 비알 길엔 나무테크로 계단을 만들어 보행이 편안하다.

 

 

맥을 이어가는 종주 길에 보현봉(714m)을 올라야하지만 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되므로 일선사 갈림길을 지나 형제봉(467m)쪽으로 내려선다. 평창동과 정릉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수시로 나타나므로 조심스럽게 능선 길을 따른다. 북악터널을 빠져나오는 차량들의 경적소리가 가까워 오며 북한산 둘레길(명상의 길)을 만나 북한산 1구간을 마감하고 북악안내소를 지나 국민대학교 정문 앞에 안착한다.

 

 

한북 정맥

               제 7구간 울대고개 - 솔 고개 / 15.5 km

세상사 모든 일이 뜻대로 될 수만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으랴? 산을 찾는 건각들의 바램은 장대한 태산준령과 마루 금을 한없이 걸어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새로운 루트를 찾아 나선다. 지리산의 웅석봉에서 시작하여 인월의 덕두산까지 80여 km에 이르는 장대한 산맥을 태극능선이라 부른다.

 

3구간으로 나누어 종주하는 아이템이다. 인월에서 성삼재 구간과 성삼재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까지 구간은 완주를 하였고 이번에 추성리에서 시작하여 왕등재를 거쳐 산청의 경호강까지 15시간이라는 만만치 않은 구간에 도전장을 내민다. 10여일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발 시간을 기다렸지만 산악회의 사정으로 일정이 취소되고 보니 허망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생각다 못해 한북정맥의 도봉산 카드를 빼어드는 수밖에... 사실 이 구간은 집근처에 있는 곳이라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달려갈 수 있는 곳이다. 해서 주머니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가 꼭 필요할 때 써 먹으려는 비상약인데, 아깝지만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안성맞춤이라 새벽바람 맞으며 울대고개로 달려간다.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가 임박 한 탓에 새벽 5시가 되기도 전에 동녘하늘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살포시 미소를 짓는다.

 

검은 굴뚝이 있는 옹벽으로 올라서면 잠귀 밝은 개들의 합창으로 고요하던 산마루가 한동안 시끄러운 난장판이 되고 서둘러 방카를 돌아 오솔길을 찾아든다. 녹양동 36번 철탑을 지나며 의정부시와 양주시 경계능선을 따른다. 이후 좌측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강북구, 고양시 덕양구로 바뀌지만 우측은 노고산을 지나 343봉 부근까지 계속해서 양주시 장흥면 땅이다. 숲속을 헤치며 나아가는 발걸음이 싱그러운 새벽 공기에 경쾌하지만, 아침이슬 맺힌 거미줄의 덫에 걸려 얼굴이 엉망이 되고 만다.

 

화생방 교육장인 360봉에 올라서면 울대고개를 넘는 차량들의 행렬이 꼬리를 문다. 양주시 장흥면 송추와 의정부시를 넘나드는 39번 국도와 나란히 교외선이 지나고 서울시 외곽 순환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머리위로는 사패산의 암 봉이 아침햇살에 눈이 부시고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능선과 계곡을 따르면 안골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만난다. 가능동 사람들이 아침마다 올라오는 산책로는 고속도로보다도 널찍하고, 나무계단의 층계를 따라 송이버섯(일명 샌드위치 바위)바위를 지나면 사패산(562m)정상이다. 

 

조선 14대임금인 선조가 여섯째 딸 정휘옹주를 유정랑에게 시집보내며 하사한 뒤로 사패 산으로 부른다. 너른 암반이 깔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천하제일의 전망대가 쾌청한 날씨로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도봉산의 불꽃같은 암봉들이 하늘높이 솟아오르고 오봉의 화려함에 눈이 부시다. 북녘으로는 지난번 걸어온 임꺽정봉, 오산삼거리, 호명산, 한강봉, 챌봉이 천주교 묘지를 지나 이곳까지 연결된다.

 

 

수락산과 천보산, 불곡산, 사패산으로 이어지는 분지 속에 자리 잡은 의정부는 40여만 인구가 살아가는 보금자리다. 한강이북의 거점도시인 이곳은 함경도와 강원도, 경기이북 사람들이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으로 양주군으로 부르다가 1963년 행정개편으로 의정부시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상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이른 새벽에 부지런한 사람들도 많다는 생각으로 인사를 나누고 보니 밤새 달려온 부산갈매기들의 도봉산 원정 산행이다. 산사람들의 깊은 우정이 각별해서, 금 새 친숙해지고 초행길인 그들에게 길안내를 자처하며 내딛는 발걸음에 신바람이 난다. 잠시 후 회룡 골재를 통과하여 가파른 비알 길을 거슬러 오르면 사패능선과 포대능선의 분기점인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649봉이다.

 

매일 보는 우리도 포대능선과 선인봉, 백옥 같은 오봉의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데, 부산갈매기들이야 오죽할까? 천하절경의 화려한 모습에 매료되어 환호성으로 자리를 뜰 줄 모른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출근시간이 임박해오며 도봉동에서 의정부 쪽으로 차량들이 뿜어내는 매연으로 스모그 현상을 이루고 있다.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 공간속에서 우리들의 심장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아기자기한 포대능선의 암 봉을 넘나들며 날렵하게 생긴 바위에 올라 친절한 가이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수년전 금정산 원정에서 받은 그들의 친절함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하다. 자운봉(740m)이 지척에 보이는 벙커가 있는 716.7봉에 올라서면 의정부시와 도봉동이 경계를 이루는 다락능선과 천년고찰 망월사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물 한 모금으로 휴식을 끝내고 서둘러 도봉능선이 시작되는 신선대의 쎄미 클라이밍 계곡으로 내려선다.

 

집 가까이 있는 도봉산은 아침 먹고 천천히 시작해도 될 터이지만, 지금 통과하는 이곳은 휴일 이면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어 고속도로의 정체구간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넉넉잡아 10여분거리를 2,3시간씩 지체하다보니 종주산행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쇠말뚝을 타고 오르는 부산갈매기들. 도봉산의 진수를 만끽하며 오금이 저려오는 암봉 위에서 멋진 포즈로 사진도 찍어주고 신선대 정상에서 가슴을 활짝 열어 제친다.

 

신선놀음에는 막걸리가 제일인기라. 널찍한 암반위에 자리를 잡고 먹 거리 풀어헤친 진수성찬에 서울의 산 꾼이 부산 갈매기들에게 주는 정표인기라. 자 한잔 받으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30여분이 꿈결같이 지나도 아쉬움만 남는다. 오봉갈림길에서 아쉬운 작별을 한다. 오봉까지 다녀오는 그들을 끝까지 안내하고 싶지만 나에게는 한북정맥의 종주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에. 부산갈매기 잘들 가이소. 

 

도봉 주능선이 끝나고 우이남 능선이 시작되는 분기점에서 갈등이 생긴다. 우이령으로 내려가면 정맥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진행하면 우이 암으로 해서 방학동이나 우이동 유원지로 내려서게 된다. 원칙대로 한다면 당연히 우이령으로 내려서는 것이 정석이지만 철통같은 군부대의 저지선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으니 불가항력이다.

 

 

수년전 멋모르고 우이령으로 내려섰다가 군부대의 경비병과 실랑이를 하던 때를 생각하며 정맥의 마루 금을 밟아가는 사명감도 중요하지만, 국가를 보위하는 군부대를 비껴가는 것도 우리 민간인들이 지켜야할 의무라고 생각하고 우이동까지 내려가서 육모정 고개로 진입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보문 산장으로 진로를 정하고 만다.

 

정상 코스보다 길어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달려가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10시 정각 우이동 그린파크 앞의 너른 광장에 도착해서 나무 그늘아래 자리를 잡고 제2라운드의 산행준비로 간식을 들며 배낭을 꾸리고 산행계획서를 다시 한 번 점검한다. 우이동 종점에서 장흥면으로 넘어가는 도로는 70년 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왕래하던 곳이다. 하지만 68년 김 신조의 사건이 있은 뒤로 수도 서울의 안전을 위해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육모정 매표소는 우이령 쪽으로 10여분 거리에 있는데 두 갈래 길 중에 우측은 군인들이 통제하는 곳이라 접근이 불가능하고 왼쪽의 고급요정들이 자리 잡고 있는 소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선다. 그 많던 인파들이 자취를 감추고 조용한 산책로에 계곡의 물소리만이 정적을 깨트린다. 불길한 예감이 들긴 하지만 일말의 희망을 품고 매표소 앞에 도착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휴식년제로 통행이 불가능하니 돌아가라는 한마디에 모든 일정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아무리 사정해보지만 벽창호가 따로 없다. 되돌아오는 발길이 천근만근의 무게로 어깨를 짓누른다. 만리장성보다도 높아 보이는 철조망이 원망스러워 혹시나 개구멍이라도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는데 산기슭으로 희미한 오솔길이 보인다. 앞뒤 가릴 것도 없이 물 찬 제비처럼 계곡으로 파고들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위험지역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으로 바위그늘에 자리를 잡고 잠시 휴식을 하며 생각해도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인간의 발자취가 미치지 못하는 20여 년간 자연의 품으로 돌아온 숲속이 별천지를 이루고 있다. 나무뿌리가 드러나도록 상처 깊던 등산로에는 야생화가 만발하고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나던 바위모서리에는 담쟁이와 이끼가, 쓰러진 고목위로 버섯들이 천국을 이룬다. 산 까치들이 날아오르는 계곡을 파고들면 희미한 오솔길에 다래넝쿨이 앞을 막는다.

 

 

천만이 숨 쉬는 수도 서울에 이렇게 아름다운 명산을 품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크나큰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휴일이면 골짜기와 능선을 찾아 심신을 단련하는 삼림욕장이요 공해로 찌든 도심을 정화하는 산소공장이다.

 

 

어느 신문에서 읽은 깃대종이란 단어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국립공원에 자생하고 있는 수많은 동식물 중에 생태적, 지리적, 문화적으로 가장 상징적인 것을 깃대종으로 선정하여 보호하고 자연 생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휴식년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공원마다 각기 다른 깃대종이 있지만 이곳 북한산 국립공원에서는 오색딱따구리를 선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한국전역에 살고 있는 텃새로 검은색, 붉은색, 흰색 깃털이 난 오색딱따구리는 나무에 구멍을 뚫고 긴 혀를 집어넣어 해충을 잡아먹거나 호두, 옻나무열매를 먹고 산다.

 

 

바람 한 점 없이 후덥지근한 열탕 속에서 가시덤불을 헤치며 아슬아슬한 암릉 길을 돌아간다. 한시라도 빨리 궁지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지만 길도 없는 벼랑에서 숲속의 포로가 되고 만다. 1시간동안의 사투 끝에 올라선 주능선은 영봉과 육모정고개의 중간지점인 코끼리바위가 있는 장군봉이다. 인수봉과 백운대의 숨겨진 뒷모습이 시원하게 펼쳐지며 억눌렸던 가슴이 툭 터진다.

 

아침에 지나온 도봉산의 연봉들과 오봉의 또 다른 일면을 볼 수가 있고, 상장봉으로 향하는 능선이 정맥의 마루 금을 이루고 있다. 일단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으로 소나무 그늘에서 마시는 막걸리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감칠맛이 나고 안주삼아 먹는 김밥 또한 꿀맛이다.

 

30여 분간 느긋한 휴식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육모정 고개에 도착하니 솔 고개 쪽에서 올라온 등산객으로 제법활기가 넘친다. “산을 사랑하다 산으로 돌아간 ”어느 시인을 추모하는 이은상님의 노래비를 바라보며 마음이 숙연해진다.

 

육모정고개를 뒤로하고 오르는 무명봉은 날카로운 암봉이다. 아슬아슬한 암장을 돌아갈 때는 모골이 송연하지만 시원한 조망으로 절경을 이룬다. 드디어 우이암에서 올라오는 정맥의 갈림길에 도착한다. 직선으로는 1.5km에 불과한 짧은 거리지만 장애물을 피해 돌아오는 길이 이다지도 멀고 험난할 줄이야.

 

 

마주친 산 꾼들로부터 철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그래도 해냈다는 자부심에 긍지를 느낀다. 도봉산(716m)은 정맥을 관통하고 있지만 북한산(837m)은 아쉽게도 이곳에서 남쪽으로 영봉(604m), 만경대(799m), 문수봉(715m), 향로봉(535m), 족두리봉(367m)까지 15km가 넘는 지맥을 이루고 있다.

 

민 대머리 상장봉(543m)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아슬아슬한 슬랩지대를 형성하고 있어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이곳의 조망은 천의 얼굴을 가진 인수봉의 뒷모습과 숨은 벽의 날카로운 암 봉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하루재의 휴식년제가 해제된다면 북한산 종주의 새로운 루트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솔 고개로 내려오는 하산 길에는 여러 곳에 아름다운 전망대가 있어 북한산과 도봉산, 오봉과 건너편의 노고산(495m)을 바라보며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수가 있다. 건너다보이는 노고산은 겹겹이 철조망으로 중무장을 하여 범접하지 못할 철옹성으로 보인다.

 

 

우이령 구간을 지나오며 당한 수모를 생각할 때 제대로 마루 금을 밟지 못하면서 종주를 고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회의적인 생각에 가슴이 무겁다. 수많은 산 꾼들이 도봉산에서 한북정맥의 종주를 접게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지만 솔 고개에서 나의 종주도 접어야 할 것 같다.

 

 

 

                                       제 8 구간 솔 고개 - 3 9 번국도 /17km

도봉산 우이령구간을 지나며 군부대의 제지로 진정한 의미의 종주를 하지 못한 喪失感(상실감)으로 솔 고개에서 한북정맥을 접 은지 4년. 많은 번민 속에 종주란 무엇인가? 수없이 自問自答(자문자답)을 하며, 도시발전과 군부대의 진지가 있어 원형이 변화 될지라도 그 근거는 있게 마련이라 그 시대의 事實感(사실감)에 충실한 기록을 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에 나머지 2구간의 답사에 나선다.

 

 

大寒을 앞세우고 찾아온 강추위가 몸을 움츠리게 하는 이른 아침(영하 10도). 곤하게 잠든 아내를 깨워 솔 고개까지 편하게 이동을 한다. 솔 고개는 양주시 장흥면과 고양시 효자동이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의정부나 양주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이다. 312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는 군부대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어 거대한 장벽 앞에서 진입로 찾기에 골몰한다.

 

 

산세를 보면 부대 안으로 정맥이 흐르고 있지만 철조망을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다. 땡감 씹은 얼굴로 右往左往(우왕좌왕)하던 끝에 의정부 쪽으로 부대철조망이 끝나는 골목길로 들어서면 한진 농원이 반겨주고, 철조망을 따라가면 이방인을 경계하는 견공들의 합창으로 조용하던 마을이 한동안 소란스럽다.

 

심요동 마을의 산 모 랭이 전신주에 리본이 바람결에 나부끼고, 실낱같은 희망으로 절 개지를 치고 오르면 철조망이 산 중허리를 가로 지르며 송추 쪽으로 희미한 오솔길이 나타난다. 급사면에 잡초와 낙엽에 가시덤불로 뒤 덮인 비알 길이지만, 종주의 사명감으로 어려움도 참아 낼 수가 있다. 뒤돌아보는 상장봉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319봉에 올라서면, 송추 쪽으로 향하던 철조망이 반원을 그리며 노고산 쪽으로 돌아선다.

 

한 여름 울창하던 나뭇잎도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백설 같은 상고대로 단장을 하고보니 자연의 신비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남쪽으로 철조망을 따라 10여 분간 진행하면 철조망 밖으로 참호가 있고 절 개지를 내려서면 콘크리트길이 나온다. 군 장병들이 청룡사로 다니는 진입로인 듯 부대에서 나온 길이 오른쪽 계곡으로 이어진다.

 

절 개지를 치고 올라 철조망을 따라 진행하면 노송의 그늘아래 쉼터가 나오고 끈질기게 따라오던 철조망도 왼쪽으로 꼬리를 감춘다. 군부대가 없었다면 솔 고개에서 시작하는 정맥이 이곳으로 연결될 것인데. 덕분에 1시간이상 철조망과 씨름하며 진땀을 흘린 후에야 마루 금을 만나게 된다.

 

 

정상으로 오르는 비상도로를 따른다.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벙커들이 산의 정수리마다 진을 치고 민간인들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아도 조국의 산하를 누비는 산 꾼들의 집념을 어찌 막을 수 있는가? 도봉산과 상장봉, 북한산의 화려한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멘트 길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면서도 눈길은 연신 북한산의 숨은 벽 쪽으로 향한다.

 

정상이 가까워 오며 정문을 지키는 경비견의 울부짖음에 주눅이 들어 왼쪽으로 가시덤불 이 엉켜있는 방공호를 따라 철조망을 통과하며 긴장감으로 온몸이 오그라든다. 부대철조망을 벗어나면 전망 좋은 헬기장이 반겨준다. 노고산에 군부대가 없었다면 북한산의 뒷모습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곳이라 등산애호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명당자리인데, 종주 꾼이 아니면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에 갈 길을 잊은 채 자리를 뜰 줄 모른다.

 

노고산(487m)정상을 뒤로하고 정맥의 마루 금을 따라 남쪽으로 진행하면 반가운 이정표가 자리를 잡고 나뭇가지 사이로 리본들이 손짓한다. 망가진 좌대의 삼각점이 박힌 340봉. 축석고개에서 시작한 양주시를 벗어나 고양시 덕양구 땅으로 들어선다.

 

8번 철탑아래 이정표에서 삼막골 방향으로 진행한다. 다음 이정표에서는 사격장이 있는 경내를 통과하므로 평일에는 접근이 금지되고 주말에만 통행이 제한되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9번 철탑을 통과 한 후, 수색 정찰요령 간판이 있는 정수리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돌무덤이 있는 사거리로 내려선다.

 

남쪽을 바라보며 옥녀봉(212m)정수리에 올라서면 군부대의 초병이 근무 중이고 산행 중 처음으로 산객(강시범 님)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서쪽으로 철조망을 따라 급경사를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인근의 주민들이 올라오는 널찍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가파른 비알 길을 치고 오르면 전망 좋은 헬기장이 반겨주고 삼각산의 자태가 멀어만 간다.

 

 

경사심한 절개지가 빙판을 이루어 간이 콩 알 만하게 얼어붙는다. 아 차 한번 실수라도 하면 수 십 길 벼랑 아래로 곤두박질을 치기 십상이다. 장흥면 삼하리와 고양시 지축동을 오가는 매내미 고개를 확장공사하며 깊고 깊은 절개지가 생겨난 곳이다. 건너편으로 삼오조경 간판을 바라보며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종주 길의 리본들이 반색을 한다.

 

이후 임도인지 아니면 주민들의 산책로인지 널찍한 길을 따르게 되는데 삼송역까지 2.7km의 산책로엔 등산안내 팻말이 두 곳, 쉴 수 있는 정자가 셋 그리고 운동시설과 휴식공간으로 마을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삼림욕장이 펼쳐진다. 노고산을 지나오며 얼어붙던 긴장감도 봄눈 녹듯 사라지고 산책 나온 주민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여유까지 생긴다.

 

 

등산은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이다. 유산소 운동이란 산소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하며 사람이 등산을 하게 되면 평소보다 심장박동수가 배로 빨라지고, 우리 몸의 심장과 페기능이 향상되어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규칙적으로 꾸준히 등산을 하면 혈액속의 나쁜 콜레스테롤이 줄어들어 고지혈증을 예방할 수가 있고, 혈액속의 노폐물을 걸러내는 작용을 하므로 정상적인 혈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등산은 경사진 곳을 오르내리는 반복된 동작을 하므로 근력강화에 도움을 주고 울창한 숲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흡수하므로 만성피로가 사라지고 스트레스 해소나 우울증 예방에도 좋다. 하지만 등산을 시작할 때는 기본적인 주위가 필요하다. 자신의 체력이나 신체 상태를 테스트하여 몸에 적응이 될 때까지는 평지에서 걷는 연습을 하여 차츰차츰 경사진 곳을 오르고 산행시간도 점차적으로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동료들과 산을 오를 때 보조를 맞추기 위해 오버패스를 하면 몸에 무리가 올수 있으므로 체력의 70% 범위 내에서 운동을 하고 올라갈 때 보다는 내려올 때 더욱 조심하여 부상을 미연에 방지해야한다. 특히 겨울에는 빙판길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안전장구를 구비하고 가급적이면 장거리 산행을 삼가는 것이 좋다.

 

 

이층의 정자를 지나며 삼송역 방향의 이정표와 작별하고 잡목이 무성한 마루 금을 따라 포장된 도로를 건너 숲속으로 들어서면 1번국도가 지나는 숫돌고개에 도착한다. 마루 금에는 군부대의 정문이 가로막고 좌측으로 철조망을 따라 고양 중학교 뒷담을 바라보며 야산으로 접근하여 작은 암자 육 화사를 찾아가는 길은 어릴 적 숨바꼭질하던 골목과 흡사하여 정감이 간다.

 

 

좌로 우로 방향을 바꾸며 찾아가는 미로에는 소슬 대문 모서리에 리본이 나부끼고 텃세 부리는 견공들의 울부짖음에 공포를 느끼며 육 화사 채마밭을 지나 비로소 정맥의 마루 금으로 올라선다.

 

끈질긴 철조망이 마루 금을 뒤덮고 완만한 주능선엔 산악자전거 팀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소음을 내뿜는다. 삼각점이 있는 무 명봉을 지나 잰걸음으로 달려가면 빈번하게 나타나는 갈림길에서 우측 방향으로 13번 고압 전신주를 지나 농협대학의 울창한 조림지를 만난다.

 

 

우측으로 뉴 코리아 골프장엔 녹색의 그린도 눈 속에 잠이 들어 찬바람만 몰아치고, 육중한 철조망이 마루 금으로 치닫는데 정수리를 넘어서면 종 마장으로 이어진다. 좌측으로 농협대학 건물들이 솔밭 속에 자리 잡고, 원당 경주마목장 경마교육원 정문으로 내려서면, 가로수 숲길에 연인들의 속삭임이 정겹게 들려오고, 좌측의 고개 마루를 넘어서면 허브 향이 가득하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서삼릉 삼거리. 마루 금이 한양 골프장의 그린위로 달려가지만 철조망이 가로막아 접근할 수가 없고 363번 1차선 지방도로를 따라 가는 길은 군데군데 웅덩이가 패여 있다. 승용차도 비켜가기 어려운 길을 따라, 허브 랜드, 대천 낚시터, 서삼릉 보리밥집을 지나면 젓 소 개량 종축장과 보이스카웃 훈련원이 나오고 쥐 눈이 콩 마을 이정표를 따라가면 송화간판이 있는 곳에서 그린도 끝이 나고 다시 숲길로 이어진다.

 

 

작년 말 개통된 수도권 외곽 고속도로에는 질주하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지하 통로를 빠져 나오면 고양시에서 의정부로 연결되는 39번 국도의 전주 민속 박물관 앞에 도착하며 6시간의 종주도 마감을 한다.

 

  

 

                                         제 9 구간 39번국도 - 장명산(102m) /18km

지난주 솔 고개에서 512탄약중대까지 무사히 마루 금을 밟아오며 마지막 구간도 빨리 끝내고 싶은 욕심으로 2주 연속 도전장을 내민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섰지만 의정부역 버스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3700번(의정부에서 인천을 오가는 노선)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 터미널로 가서야 승차를 한다.

 

하지만, 기사님의 말씀에 가는 길은 맞지만 왕능골이나 탄약중대 앞에서는 정차를 하지 않으니 대자리에서 800번을 갈아타야 한다는 친절한 말씀에 대자리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린다. 영하 10도의 추위 속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20여분을 기다린 끝에 구세주 같은 버스에 오르고 보니 낙타고개를 지나며 곧바로 탄약 중대 앞이 아닌가?

 

1시간 이상이나 늦어진 시간을 보충하기위해 군부대로 진입하는 도로를 따라 종종 걸음을 친다.10여분 후 부대정문에서 우측으로 숲길을 따르면 비닐하우스가 나오고 좌측으로 등로가 이어진다. 부대철조망으로 접근하여 잔설이 쌓인 절 개지를 통과하는 중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뒤돌아보니 대전의 김태식님과 의정부의 김창수님이다. 가는 길이 같은 동반자를 만나니 意氣投合(의기투합)하는 반가움에 악수를 나누고 외로운 종주 길에 백만 원군을 만난 듯 발걸음에 활기가 넘친다.

 

부대후문에서 우측의 산길로 들어서면 평지나 별반 차이가 없는 숲길을 지나 좌측의 2차선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절 개지를 치고 오른다. 잠시나마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 속에 과수원 너머로 교회의 첨탑이 보인다. 좌측으로 내려서면 광목장의 정문으로 표지기가 걸려있는 울타리를 경계삼아 마루 금이 이어진다. “江陵金氏 支山君 長湍派 望鄕의 祭壇“은 고향을 이북에 두고 온 실향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곳으로 휴전선이 가깝다는 표시이기도 하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현달산(138m) 오름길이 시작된다.

 

해발 138m의 정수리는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가 있고, 삼각점이 3개나 되지만 정작 표지석이 없다. 서쪽으로 높다란 송신탑을 머리에 이고 있는 고봉산(206m)이 건너다보이고, 북쪽으로 낮은 구릉의 끝자락에 금촌 시내의 아파트들이 아련히 보인다.

 

10여 분간 주위를 조망하며 앞으로 진행해야할 방향을 숙의하는 등, 나 홀로 산행의 외로움에서 해방된 즐거움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정상에서 다시10여 m를 내려오면 우측“으로 마루 금이 이어지고 평지돌출형의 산세답게 가파른 벼랑길이 잠시나마 이어진다.

 

곧 이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문봉동재 삼거리에서 도로를 건너 동국대 병원 방향으로 들어선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도 없이 건축 폐자재를 실은 덤프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위험한 길에서 자욱한 먼지를 마셔가며 골프연습장을 지나 10여 분간 진행하면 좌측으로 예빛 교회가 나타나고 마루금은 우측의 숲속으로 이어진다.

 

 

부대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진행하면 고봉산의 고압철탑이 점점 가까워지고, “밝은 마음, 웃는 얼굴, 활기찬 모습”의 구호가 적힌 백마사단의 예하부대 정문에 도착한다. 40여 년 전 피와 땀이 서려 있던 부대(월남 파병부대)라 감회가 새롭고 철조망을 따라 한 동안 진행하면 석수오리와 궁중한방 삼계탕 간판이 걸려있는 성동고개다.

 

이곳에서 고봉산들머리가 시작된다. 산책 나온 주민들과 마주치며, 완만한 경사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면 만경사에 이른다. 잠시 숨을 돌리고 100여m 를 거슬러 오르면 정상을 우회하는 갈림길에서 우측의 임도로 들어선다. 몸뚱이는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천하재물 취득자” 장승을 지나 주능선에 올라 거미줄 같이 얽혀있는 등산로에서 좌측으로 이동하여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 중산동 두산아파트 방향으로 내려선다. 10여 분간 진행하면 고봉산(206m) 정수리가 시원스레 조망되는 헬기장에 이르고, 잠시 후 군 통신 안테나가 있는 삼각점 봉을 지나면 팔각정(高峰亭)이 반겨준다.

 

소나무 숲 사이로 두산아파트 상징물이 보이고 시원스레 펼쳐지는 중산고개에 도착한다. 307번 도로의 중산고개는 일산동에서 조리면으로 오가는 4차선이다. 고개 마루에는 S K 주유소와 종주 팀들이 식사하기 좋은 순두부 집이 있다. 가지고온 간식을 먹을 곳을 찾아 길을 건너 금정굴 가는 표시목과 장승을 만난다.

 

 

절 개지를 치고 올라 100여 m 진행하면 통한의 양민학살의 현장인 금정굴에 이르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위령탑 건립을 위한 현수막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민족의 비극인 6.25 전쟁 중에 9.28수복으로 점령 중이던 인민군이 물러가자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남녀노소를 비롯하여 억울한 사람들이 반공단체와 경찰에 의해 대량으로 학살된 곳이다)

 

잔솔들이 무성한 등산로를 따라 식사하기 좋은 곳을 골라 자리를 펴고 의정부에서 온 김창수님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망중한을 즐긴다. 산행경력이야 2년차 새내기지만 6개월 동안 100여 회의 산행으로 산의 매력에 푹 빠져 한북정맥을 단독으로 주파하는 저력을 보이고 있으니 우리 산 꾼들 세계에 커다란 거목으로 빛을 보게 될 날도 멀지않으리...

 

10여 분간 휴식으로 체력을 보강하고 완만한 솔밭을 지나 108봉 정상에 올라서면 삼각점과 함께 모진 비바람 맞아가며 명당자리 고수하는 무덤3기가 반겨준다. 정상에서 되돌아 내려와 큰 마을 방향으로 이정표를 따라가면 돌탑 7기가 외로운 종주꾼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잠시 후 큰 마을 아파트 경내로 들어선다.

 

이제부터는 그나마 산길도 끝이 나고 일산의 도심지를 통과하게 된다. 직진하면 큰 마을 마트에 이르고, 왼쪽으로 정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경의선 철도 위를 지나 일산 가구공단 정문으로 들어선다. 건널목을 건너 제1문을 통과하여 골목길로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라자가구 전시장이 있고 계속 직진하면 노송가구 건물이 반겨준다. 이제 건물도 듬성듬성 서부개척시대의 황무지처럼 너른 벌판에 벌집 쑤셔 놓은 듯 택지개발이 한창이다.

 

우측으로 비포장 길을 걸어가노라면 언 땅이 녹은 진창길에서 등산화에 흙이 묻을 새라 요리조리 피해가며 골프 연습장을 지나면 좌측으로 소나무 숲이 나타나고 잠시 후 창건사에 이른다. 창건사를 뒤로하고 오른쪽으로 조금가면 뚝 방의 절개지 위로 올라선다. 앞에 보이는 너른 벌판이 그 유명한 운정택지개발 현장이다. 좌측으로 토성 비슷한 뚝 방이 활처럼 휘어있지만 자세히 보면 마루금은 건설현장의 제물이 되어 평지로 변하고 건너편의 붉은 벽돌집 개발인력 건물 쪽으로 마루금의 흔적이 남아있다.

 

여기저기 붉은 깃발이 꽂혀있는 현장으로 내려가 분주히 움직이는 덤프트럭사이를 지나 절개지로 오른다. 뚝 방에 올라서면 문화유적 발굴현장에 이른다. 마구 파 헤쳐진 벼랑에서 미로를 헤매듯, 경기인력 개발원 건물의 골목길로 올라서며 황무지를 벗어나 마루 금을 다시 밟게 된다. 4차선 도로에서 우측으로 인도를 따라 지루한 행진이 시작되고, 목동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무한정 도로를 따라가면 교하1차 월드 메르디앙 아파트 정문을 지난다.

 

도로를 따라 진행방향으로 10여분을 더 가면 정면으로 아파트 숲이 나타나고, 전신주에 걸려있는 보리암과 임진강 장어구이 간판을 꼭 확인해야한다. 만약 이곳에서 직진을 한다면 다 된밥에 코를 빠뜨리는 격이 되고 만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소나무 숲이 있는 오솔길로 진행하면, 교하읍 고인돌 삼림욕장 안내도가 세워진 갈림길에 이른다. 다시 파평 윤씨 정정공파 묘지 입구의 갈림길에서, 좌측의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들꽃 어린이집이 나오고 차량들의 통행이 많은 절개지위로 올라선다.

 

좌측임도를 따라 100 여m 진행하여 넓은 도로 좌측의 지하도를 빠져나와 절개지 쪽의 성재암 가는 진입로를 따른다. 시원스레 질주하는 4차선도로와 고압전신주의 철탑대신 소각장의 굴뚝같이 세워진 신기한 모습을 바라보며, 절개지정상에 올라 왼쪽으로 사찰의 진입로를 따른다. 곧이어 자연석에 새겨진 성재암 표지석이 있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고인돌 삼림욕장 간판이 나오고, 파평윤씨 가족묘의 비석에서 우측으로(좌측에는 교하 중학교)고개를 넘어 2차선 포장도로인 핑 고개에 이른다.

 

도로에 내려서면 버스 정류장과 유진 케미갈 안내간판이 있고, 이곳에서 우측의 샛길로 진행하면, 교하읍의 공단 중에서도 성림문화사 건물이 유난히 돋보인다. 미진사의 정문에서 우측으로 고개 마루를 바라보며 좌측의 절 개지를 치고 올라 공단의 뒤 능선으로 진행하면 우측으로 흙더미를 쌓아놓은 사이로 장명산(102m)이 바라보인다.

 

장명산 전위봉은 골재 채취로 만신창이가 되어 산더미를 이루고 분쇄기의 굉음소리와 부지런히 움직이는 덤프트럭으로 흙먼지가 자욱한 공사현장에서 장명산도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운명으로 가파른 절 개지를 이루고 있다.

 

 

좌측의 능선으로 오르면 잠시 후 열린 산악회에서 종주기념으로 소나무 가지에 걸어 놓은 ”한북정맥 완주“ 현수막이 반겨준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 방공호를 겸하고 있는 정수리에 올라서면 시원하게 펼쳐지는 공릉천이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 오두산이 바라보인다.

 

그 먼 길을 달려오며 오매불망 그려오던 장명산. 100여 m의 낮은 곳이지만 파주 문산의 곡창지대를 아우르는 파수꾼이요, 정맥의 꼭지 점이다. 울대고개에서 시작하는 공릉천의 물길을 피해 남쪽으로 도봉산과 상장봉, 노고산의 군부대를 거쳐 옥녀봉에서 삼송리로, 현달산(138m)을 지나 고봉산(206m)으로 고양시와 파주시를 누비는 한북 정맥의 줄기는 영원토록 나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리.

 

한북정맥의 백미는 타종식이 아닌가? 쇠망치 높이 들어 내려치는 종소리는 멀리멀리 한북정맥의 마루금 따라 수피령까지 울려 퍼진다. 온갖 오물로 뒤범벅이 된 공릉천에 손을 담그지는 못했어도 그 숱한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완주했다는 만족감으로 행복의 순간을 만끽한다.

 

 

시작은 달라도 졸업을 함께한 인연으로 금촌의 족발 집에서 대전의 김태식 님(호는 무학이요. 닉네임이 통영마루로 홀대모의 회원)과 의정부의 김창수님과 술잔을 높이 들어 다시 만날 기약은 없지만 우리의 산하를 마음껏 누비며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봄의 화신

                                                                  김 선화

 

                        떼 지어 달려드는 솔개마을 견공들 

                        꽁지가 빠지도록 줄행랑으로  

                        솔밭 길로 들어서니

                        때늦은 폭설도 봄바람에 녹아들고

                        낙엽 속에 쑥부쟁이 살며시 고개 내 민다

 

                        별 천지 이루는 광릉수목원

                        새벽잠에 취한 식구들이 행여 깰세라

                        숨소리 죽이며 소리봉 오름길에

                        앙증맞은 곤줄박이 마중 나오고

                        목청 좋은 크낙새 잠을 깨운다.

 

                        오지 말라 애원해도 찾아오는 불청객

                        먼 길을 날아온 흙먼지 속에

                        수락산도 죽엽산도 고개 떨 구고

                        아침 햇살도 정기를 잃는다.                      

 

                        소리봉 물푸레봉 넉넉한 품안에서

                        청솔무 산비둘기 둥지를 틀고

                        부지런한 아낙네들 깔깔대는 웃음 속에

                        봄의 화신도 자리를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