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 1
일시: 2012년 2월 2일
구간: 충주 탄금대 - 단월 - 수주팔봉 - 수회리 - 수안보 온천
1. 수주팔봉(30km)
금년겨울 들어 가장추운 날씨가 되겠다는 일기예보가 2일전부터 뉴스시간을 타고 전해지는 가운데 雪上加霜으로 폭설까지 쏟아지고 말았으니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평정심을 잃고 우왕좌왕 하면서도 오기가 생긴다. 산을 오르는 것도 아니고 강을 따라 가는 길이라 여차하면 중간에서 돌아서면 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얻는다.
어쩌면 일기예보가 이렇게도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지. 이른 새벽 뉴스 첫머리에 한파특보가 계속 전해진다. 서울지방 현재기온 영하17도. 2월 기온으로는 56년 만에 찾아온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고 2일전에 내린 눈으로 길이 미끄러우니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는 당부의 말까지 잊지 않는다.
한번 빼어든 칼을 도로 넣을 수도 없는 일이라 두툼한 방한복차림으로 동서울터미널로 향한다. 6시20분 출발하는 고속버스에는 승객이라야 몽땅 4명. 마음이 착잡하기는 매한가지라 잡념을 떨쳐버리기 위해 눈을 질끈 감는다. 충주시내로 접어들며 동녘하늘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고운 빛깔로 주위를 밝히지만, 눈 폭탄을 맞은 대지에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다.
인적도 자취를 감춘 탄금대는 영하19도에 강한바람까지 불어오니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에 온몸이 오그라든다. 千여山을 오른 오기로 발목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치며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탄금교 쪽으로 접근하자 자연의 신비함에 넋을 잃고 만다.
주위에 펼쳐지는 모든 사물이 눈 속에 몸을 숨기고 강물도 흐름을 멈추는 빙판 속에서 한 줄기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농무가 탄금대 일대를 휘감는다. 天地調和는 지금부터시작이다. 피어오른 물안개가 황량한 대지위에 내려앉으며 벌거벗은 나무와 갈대숲에 눈꽃을 피워낸다. 겨울 산을 오르며 상고대를 많이 보았지만, 눈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는 처음이다.
충주시 하수처리장 진입로 쪽으로 새재길이 연결되고 강 뚝 으로 조성된 자전거길이 달천 쪽으로 이어진다. 강둑에서 시내 쪽을 바라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비닐하우스가 장관이다. 전에는 충북 북부지방의 곡창지대라 할 수 있는 황금들녘이었지만, 쌀 소비량이 급감하면서 소득이 높은 대체작물로 전환하며 비닐하우스로 변신한 것이다.
충주대학 쪽으로 달천과 합류하는 요도천은 가엽산(710m)에서 발원하는 하천으로 길이가 26km에 유역면적이 150.5㎢이다. 내 고향이 주덕이라 초등학교시절 다리도 없던 요도 천을 건너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남금북정맥상의 보현산(483m)에서 분기해서 부용산(644.3m) -수레의산(678m) -매방채산(375m) -자주산(483m ) -평풍산(395m) -삼봉(276m)을 지나 요도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 산자락을 내려놓는 도상거리 43km의 부용지맥이 있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치는 것이 만만치는 않지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공기와 사방 100리 까지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날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으니 집을 나서기를 잘했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탄금대3.8km 이정표가 있는 달천 교에서 자전거 길은 다리 밑으로 내려선다.
철교를 지나 다시 강둑으로 올라선 답사 길에서 모든 시선이 강물로 쏠린다. 시루속의 백설기처럼 짐승들의 발자국 하나 없이 순백색의 눈가루가 곱게 깔려있는데, 맹추위속에 온몸을 결박당한 강물이 답답함을 못 이겨 뒤채던 몸부림인가? 밤을 지새우며 울부짖던 고통소리에 강바닥이 쩍쩍 갈라진 흔적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자연의 신비함을 바라보며 이어가는 강둑에 버드나무 한그루와 상면한다. 수령이 자그마치 450년, 나무둘레가 280cm에 높이가 13m나 되는 거목이다. 홍수로 강둑의 범람이 잦았던 이곳에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희귀한 버드나무는 달천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충주시에서 보호수로 관리하고 있다.
활등처럼 돌아가는 제방 왼쪽으로 건국대학교 단월캠퍼스와 임경업장군의 사당인 충렬사가 있다. 선조 27년(1594) 충주 대림산 기슭에서 태어난 임경업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에 출중하여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1등에 서훈되고, 정묘(丁卯), 병자호란(丙子胡亂)때는 백마산성(白馬山城)과 의주성(義州城)을 수축하여 국방강화에 전력하였다.
청나라와 명나라의 간섭이 심하던 시절, 일관되게 반청친명(反淸親明)의 입장을 주장했던 장군은 청의 요청으로 명을 공격하기 위해 출병하였으나, 명과 내통하여 오히려 청을 공격하려다 청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때 국내에서 좌의정 심기원(沈器遠)의 모반(1644)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인조의 요청으로 청나라에서 송환되어 친국(親鞫)을 받다가 억울한 일생을 마쳤다. 장군이 죽고 5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숙종의 특명으로 복관되어 그의 고향인 단월에 사당을 건립하고, 영조 3년(1727) 충렬사(忠烈祠)의 사액(賜額)을 받았다.
단월정수장을 지나면 곧바로 유주막 삼거리에 도착한다. 탄금대에서 충주시내를 감싸고 있는 제방을 돌아오는 거리가 9km에 이른 것이다. 시내를 뒤로하고 수안보로 향하는 길은 삼초대쪽으로 진행한다. 임경업장군이 어린 시절 무예를 연마하기위해 가파른 바위에 3단의 석축을 쌓고 하루에 세 번씩 오르내리며 심신을 단련하던 곳을 삼초대라 부르며 지금은 정심사가 자리 잡고 있다.
강을 거슬러 오를수록 산세가 험해지고 강물의 흐름 또한 빨라진다. 嚴冬雪寒의 기세로 강물도 얼어버린 두메산골.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수직절벽 밑으로 길이 이어지고, 산굽이가 심해질수록 물길도 휘돌아 흐른다. 살미면 경계석 옆으로 대림산성 들머리가 보인다. 충북 기념물110호인 대림산성은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 있는 대향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경사면과 암벽을 이용하여 축조하여 자연스럽게 치와 옹성의 구조를 갖춘 성으로 고려 고종40년(1253년) 제5차 대몽항전 시에는 70일간의 항전으로 몽고군의 남진을 봉쇄한 곳이다.
달천을 일명 달래강으로 부르는 연유는 옛날 부모를 일찍 여윈 오누이가 인근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여름날 길을 가는 중에 달래 강을 건너다 소나기를 만나 누이의 몸에 옷이 달라붙어 아름다운 여체가 그대로 나타났다고 한다. 누이의 모습을 본 남동생은 욕정이 발동했지만, 도덕적 윤리규범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한 동생이 스스로 자기의 거시기를 돌로 찍어 죽었다고 한다. 이 광경을 본 누이가 슬피 울면서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했다는 애절한 전설이 전해온다.
향산 삼거리에서 남한강을 따라 가면 싯계 보호비가 반겨준다. 충주시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수질이 양호하며 야생 동, 식물과 철새들이 많이 살고, 멸종위기에 있는 수달의 서식지로 알려지면서 ‘충북의 자연환경’ 명소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달천은 속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하여 괴산의 명소들을 두루 거치며 128Km를 흘러 충주 탄금대에서 남한강에 합류하는 아름다운 강이다. 미원, 청천, 괴산, 음성등지의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수질을 오염시키지만, 강가의 수초와 자갈들의 정화작용으로 자정능력이 되살아나 충주시의 상수원으로 1급수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으니, 인위적인 노력도 자연의 위대함을 앞설 수 없다는 교훈을 알려주고 있다. 참고로 달천의 물은 조선시대 오대산의 우통수, 속리산의 삼파수 등과 함께 "조선 3대 좋은 물"로 알려져 왔다.
싯계교를 건너면 그 유명한 수주팔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승천하는 용이 꼬리를 물에서 치켜 올리는 형상이라. 수주팔봉(水周八峰 493m)은 물레산의 암맥이 뻗친 칼바위, 송곳바위, 중바위 등 창검을 곧추세운 날카로운 바위들이 수직절벽을 이루고, 백설이 뒤덮인 기암괴석과 폭포수에 소나무, 그 아래 정자까지 구색을 갖추었으니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절경을 이룬다.
背山臨水의 마을(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는 우참찬 이자, 이조참판 이연경, 이조참판 김세필, 영의정 노수신 등 네 분의 위패를 모신 팔봉서원이 있고, 산 주위에 물이 흐르고 8개의 봉우리가 있어 물놀이를 겸한 가벼운 산행지로 좋은 곳이다. 마을아래는 조선시대 기와를 굽던 와요지가 보존되어 선조들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곳이다.
달래강으로 합류하는 석문천(石門川)의 물줄기가 칼바위를 한참이나 돌아가므로, 중간의 낮은 협곡을 절단하여 물을 바로 빼면 수 십 만평의 하천부지를 옥토로 이용 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1963년 이곳 능선을 절단하여 달천으로 물길을 연결하게 된다. 석문천에서 이어지는 물길과 달천의 낙차가 약 10m가 되므로 이곳에 폭포가 생기고, 1981년 폭포 오른쪽 봉우리에 모원정을 건립하니, 수주팔봉의 운치가 한층 더 아름답게 보인다.
한남금북정맥이 음성지방의 보현산(478m)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가엽산(709.9m), 어래산(393m), 고양봉(503m), 풍류산(485.2m)을 세우고 달천 하문리 하소마을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4km의 산줄기를 가엽지맥이라 하며, 끝자락에 수주팔봉의 그림 같은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달천과 작별하고 석문천을 따라 5km를 진행하면 문강온천과 만난다. 전국제일의 유황온천으로 이름난 문강온천은, 유황이 주성분인 온천으로 썩은 달걀의 유황냄새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유황이 피부에 닿아 피부의 각질을 연화시켜 피부병, 만성피부염, 만성류마티스, 동맥경화, 부인병, 당뇨병과 무좀에 특히 효과가 있으며, 식수로도 사용 가능해 유황수를 마실 경우 신진대사가 왕성해지고 혈색소재생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강지교를 지나 낮은 언덕을 넘어서면 수회리의 너른 벌판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곳 수회리에는 중앙경찰대학과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가 있다. 민주경찰을 양성하여 올바른 공직관과 인권의식을 함양하는데 목적을 두고, 전문적인 경찰의 실무적인 능력을 배양하는 기관이고,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에서는 식물 신품종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인정하고 보호하므로 육종가의 권익보호와 신품종 개발촉진 및 종자산업 발전을 위하여 기여하고 있다.
원통교를 지나며 중원대로 옆으로 동행한다. 제설작업을 하면서 뿌려놓은 염화칼슘으로 질척거리는 눈이 차가 지나갈 때 마다 흙탕물세례를 퍼부으니 도저히 지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별다른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통과하는 6km야말로 절박하고 애간장을 녹이는 구간이다. 惡戰苦鬪속에 온천비각이 있는 수안보입구에 들어서니 온몸이 파김치가 되고 만다. 그래도 56년 만에 찾아온 한파 속에서도 30km를 완주하고 보니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우리나라 최초의 용출온천수로 유명한 수안보온천은 약 알카리성 온천수로 인체에 이로운 각종광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일찍이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보러가는 길에 들렸다가는 길목이라,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정기를 받아 과거에 급제한다는 속설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쇠는 풀무질에 단단해지고 장인의 망치질에서 명검으로 태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극한 속을 헤치며 감행하는 것도 건강이 우선하는 것이고,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몸을 항상 단련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일 것이다. 온천 욕실로 들어서면 뿌연 김이 온몸을 감싸고, 탕 속으로 몸을 밀어 넣으면 피로도 말끔히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