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남한강 삼백리. 4

김완묵 2011. 12. 28. 06:49

 

일시: 2011년 12월 26일

코스: 강천보 - 영동고속도로 - 강천섬 - 섬강(고속도로) - 부론면(법천교) -  영죽 - 비내마을 - 능암온천(7시간)

 

 

                                                                    4 . 능암 온천(32km)

금년 들어 가장추운 영하15도. 터미널 앞에 길게 늘어선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지만 정작 오가는 행인도 없이 매서운 한파가 여주의 강바람을 몰아친다. 일주일전 여주를 돌아본 여세를 몰아 한강에서 낙동강까지 국토순례 길에 나서고 보니 동장군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의지를 불태우는 집념 앞에서 그 정도의 장애물쯤이야 거뜬하게 뛰어 넘는다.

 

 

지난번 답사한 가야리까지 택시로 이동하여 자전거 길로 올라서면 팔당대교72km, 충주댐64km의 이정표가 반겨준다. 강을 중심으로 마을이 생겨나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소통의 길이 강을 따라 이어지니, 선조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강 건너 아홉 사리 길은 도리와 흔암리를 잇는 강변길로 충주 이남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위해 지나던 길이다.

 

 

길이 좁고 험하여 아홉 굽이를 돌아가는 아홉 사리 고개는 매년 9월 9일 아홉 번째 고개에 피어나는 구절초를 달여 먹으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다리가 영동고속도로를 지나는 남한강교다. 남한강교를 중심으로 조성되는 가야지구는 갈대와 버드나무숲이 무성하여 철새들의 도래지와 오토캠핑장으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공원조성공사가 한창인 굴암습지를 지나면 강천섬이 시야에 들어온다. 철새들의 솟대가 반겨주는 강천 섬에는 단양쑥부쟁이가 강변을 중심으로 자생하고 있다. 연한 보랏빛 꽃잎과 노란 꽃술이 있는 쑥부쟁이는 선한 배품과 효를 우선시 했던 전설 속 대장장이 딸처럼 ‘기다림과 인내’를 상징하는 꽃말이 있다. 남한강의 애환이 담겨있는 ‘바위 늪의 찬가’ 노래비를 뒤로하고 강천섬을 빠져나오면 강천보건소가 있는 본 마을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강변을 버리고 북동쪽의 산기슭으로 자전거 도로가 이어진다. 영문도 모른 채, ‘남한강자전거 우회도로’ 표지판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서면 전면에 영동고속도로가 나타난다. 새말교차로를 지나 영동고속도로 밑에서 부론면 방향으로 창남이고개와 다뚜리고개를 넘는다. 자동차도 힘에 겨운 고갯길을 자전거로 넘자면 온갖 삭신 녹아나는 고초가 따르게 마련이다.

 

 

강천 섬을 떠난 지 1시간 만에 도착하는 섬강. 390m의 협곡을 이어주는 수십 미터의 다리위에 올라서면 그동안 답답하던 가슴속이 후련하게 터진다. 자동차로 순식간에 지나던 섬강의 진면목을 자세히 볼 수 있으니 山川景槪를 답사하는 데는 다리품 파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강을 사이에 두고 솟아오른 기암절벽. 그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섬강의 푸른 물과 백사장이 아름다운 산수화를 빗어낸다.

 

 

섬강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와 평창군 봉평의 경계에 솟은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원주를 지나 경기· 강원 일대를 넘나들며 청미천 맞은편에서 남한강과 합류하는 길이 93km의 강이다. 경안천과 함께 남한강에서 가장 큰 섬강의 상류는 자연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산삼, 복령, 가재와 같이 청정지역에서만 발견되는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섬강을 건너 강천보16km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비알 길을 내려온 자전거 도로가 다리 밑을 지나 남한강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남한강과 합류하는 흥호배수장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가히 남한강 제일의 경관을 자랑한다. 휘돌아 흐르는 남한강이 紫山자락을 파고들어 수 십 길 벼랑을 만들고,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산줄기가 연봉을 이루며 강물 속으로 다리를 뻗는다.

 

 

댐이나 수중보로 가둔 물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흘러온 섬강과 청미천이 남한강과 만나는 강어귀는 육지속의 바다처럼 잔잔한 호수를 이룬다. 강천섬에서 흥화저수장까지 직선거리로는 1km에 불과하지만 망재산과 자산의 수직절벽을 피해 돌아오는 우회도로가 자그마치 6km에 이르니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강변마을인 부론면에는 흥원창이 있었다. 『동사강목』에 의하면, 한강의 본류와 섬강이 합류하는 곳에 흥원창을 두어 적재량이 200석인 평저선(平底船) 21척으로 강원도 남부지방의 세곡을 수납하여 한강을 따라 예성강 입구의 경창(京倉)으로 운송하였다고 전한다. 새로 조성된 법천리 제방을 지루하도록 걸어가면 법천 소공원(하늘이 내린 숨 쉬는 땅! 강원도)이 나오고 강천보 20.5km 표지판이 반겨준다. 이곳에서 자전거 도로공사도 끝이 나고, 남한강대교에서 자전거 도로는 다리를 건너 충주시 앙성면(생명과 태양의 땅! 충북)으로 들어선다.

 

 

강과 산이 마을을 갈라놓고 생활습관과 언어까지도 생판 다른 두 마을. 충청도와 강원도가 강심을 가운데 두고 멀고도 가까운 이웃으로 지나오면서, 시집간 딸이 못내 그리워 강 언덕에서 눈물짓는 어미의 모습도 옛 추억에 등장하는 눈물겨운 정경이 아닌가 싶다. 산악지대가 많은 앙성면에서도 산간오지인 영죽리는 남한강을 품고 있으면서도 외지와 단절된 고립무원의 마을이다.

 

 

서울에서 충주로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가 이곳만큼은 아직도 가파른 산허리를 허무는 발파작업으로 완전개통이 되지 않고 있다.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땅. 영죽리는 지난여름 홍수에 떠내려가던 부유물이 버드나무에 걸려 너풀거리고 강가의 수초와 갈대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생태공원에는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천국을 이룬다.

 

 

비내섬이 시야에 들어온다. 낙조 드리운 강가에 떼 지어 날아오르는 철새들의 군무는 세상의 어느 춤사위보다도 일사불란한 움직임 속에 화려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남한강의 철새낙원 비내 늪 철새 도래지” 에 도착한다. 비문에 의하면「남한강변의 자연늪지인 이곳은 물에서 서식하는 수서(水棲)식물이 풍부하고 백로 및 청둥오리 등 각종철새가 계절에 따라 찾아오는 철새 도래지일 뿐만 아니라 어류 생태계의 서식환경이 우수하여 충북의 자연환경명소로」지정하였다고 적고 있다.

 

 

복탄 나룻 터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조대고개를 넘는다. 산등성이만 넘으면 휴식이 기다린다는 생각만으로도 피로가 싹 가신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능암온천이 내려다보인다. 겨울의 짧은 해가 서산마루에 모습을 감추고, 화려한 불빛이 온천 지구를 밝히고 있다. 즐거운 것이 여행이라면 피로를 풀어주는 데는 온천만한 곳이 없다.

 

 

충북 충주시 앙성면 능암리와 돈산리 일대에 자리 잡은 능암온천은 지하 600m 이상의 깊이에서 용출되는 25〬c~38〬c의 온천으로 높은 농도의 탄산이 함유된 세계적으로 희귀한 온천이라 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 속에 몸을 담그면 30여 km를 걸어오며 쌓인 여독이 한 순간에 풀어지고 짜릿한 소주한잔에 10년은 젊어지는 기분 좋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