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세계/시와산 계간지.2

제 67 호 - 올레는 설레임일까 그리움일까

김완묵 2010. 9. 29. 03:50

 

                                      실바람에 미소 짓는 시산

일시: 2010년 6월6일

장소: 인왕산

 

현충일은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나라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몸 바친 영령들을 추모하는 경건한 기념일이다. 이날만큼은 음주가무도 삼가고 엄숙한 마음으로 선현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되돌아보며 우리의 각오를 다짐한다. 특히 금년 3월 25일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천안 함이 격침되는 비극을 맞고 보니 우리의 슬픈 현실이 더욱 가까이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뜻 깊은 날. 우리 시산의 친구들이 인왕산에서 시산제를 겸한 정기산행을 갖게 된다. 금년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시산의 미래를 위한 우리의 정성을 모으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자리이기에 계절이 바뀌었다 해서 흠 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약속시간이 가까워오며 3호선 경복궁역으로 모여드는 반가운 얼굴들. 바쁜 일정으로 행사에 참석이 어려웠던 고양규시인과 김천수 시인, 양재호 시인이 모습을 드러내고 개인사정으로 한 동안 시산을 떠나있던 박계수 시인과 한 상철 시인에 박천순 시인은 친구까지 대동하고 나타나니 이런 반가운 일이 또 어디에 있는가

 

누구의 권유도 없이 자청해서 모여드는 옛 친구들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百萬援軍을 얻은 듯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다. 바닥이 어딘지도 모르게 추락하던 시산. 암울하던 그 시기에 최후의 한사람이 남을 지라도 시산의 깃발만은 내려놓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자리를 지켜오던 우리의 굳은 의지가 빛을 보게 되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百年大計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우리 시산이 17년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어느덧 66호로 발 돋음하고, 어려운 시기에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으니 자부심과 함께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굳굳하게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할 때, 북악을 주산으로 하여 “右社左廟(인왕산의 사직단과 왼쪽의 종묘)”의 원칙에 따라 우백호인 인왕산 동남쪽 기슭에 사직단(土地의 神인 社와 穀食의 神인 稷)을 조성하여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국태민안을 빌던 곳. 사직공원 신사임당 동상 앞에서 우리 13인은 새로운 다짐으로 결의를 하고 일찍 찾아온 불볕더위를 피해 숲속으로 들어선다.

 

인왕산은 호랑이가 깃들만큼 울창하고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며 풍수지리를 생각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명당자리다. 그만큼 나라의 운명과 함께 시련을 견뎌온 산이기에 68년 김신조의 청와대 사건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오다가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시민의 손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군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아니다.

 

바위능선에 올라서면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서울의 도심이 한눈에 들어오고, 새로 복원된 경복궁이 부처님의 손바닥에 올라앉은 듯, 세세하게 들여다보인다. 정수리의 한길 남짓한 바위에 올라서면 장안을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는 조망으로 황홀경속에 빠져든다. 남산의 푸른 숲속에 솟아오른 남산타워를 정점으로 고층빌딩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는 6백년 도읍지. 臨山背水의 명당자리에 천만인구가 숨 쉬는 박동소리가 요란하다.

 

백두산에서 맥을 이어온 대간이 추가령에서 한북정맥으로 분기하고, 도봉산에서 정기를 모아 삼각산(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으로 갈라지고, 북악터널을 넘어오면 곧 바로 북악산 정수리다. 서쪽으로 자하문을 경계로 마주보는 산이 바로 오늘 우리가 찾아가는 인왕산인 것이다.

 

우리 민족과 애환을 함께 해온 인왕산에서 시산제를 올리게 된 것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시산이 가는 길이 너무도 절박하여 새로운 계기로 삼고자 함이며, 하늘도 무심치 않아 옛 동지들이 다시모여 머리를 조아리니 우리 시산의 앞날에 서광이 비추게 될 것으로 확신을 한다.

 

참석회원

전호영 회장 라용준 고양규 김천수 주진하 전산우 김완묵

문영호 양재호 박계수 한상철 박천순 외 1 13명

 

 

                       

 

                                      호국원을 품고 있는 노성산

 

독조지맥의 중간지점인 노성산구간은 동서울터미널에서 일죽까지 고속버스를 이용하게 된다. 용인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목적지에 도착하여 덕현 고개까지 택시로 10여분 거리다. 안성시 일죽면과 이천시 설성면이 경계를 이루는 329번 지방도로 오른쪽으로 마을 사람들이 산책길로 이용하는 오솔길이 시원하게 열린다. 하지만 충효의 고장 이천이 자랑하는 호국원을 외면할 수 없어 500여 m 떨어진 공원으로 향한다.

 

노성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호국원은 입구에서부터 거창한 건물들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호국 영령들이 편안히 영면할 수 있도록 새로 단장한 장내는 정갈하고도 엄숙한 분위기가 풍긴다. 원호의 달을 맞아 영내에는 태극기로 물결을 이루고 위령탑 앞에서 경건한 묵념으로 예를 올린다. 말로만 듣던 호국원. 예로부터 충신열사들을 많이 배출한 고장의 후손들이 선열을 기리는 정성으로 훌륭한 공원을 조성하였으니 자손만대에 길이 남을 업적이라 하겠다.

 

들머리로 되돌아와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울창한 숲속으로 층층계단이 이어지고, 삼거리 갈림길에 오르면 노성산 0.7km의 이정표가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운동기구와 쉼터가 있는 250봉에 올라서면 너른 헬기장이 자리 잡고 모처럼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전망이 펼쳐진다. 268봉을 지나 약간 오른쪽으로 올라서면 삼각점(장호원 26.1985 복구)과 노승산. 장수봉(將帥峯)이라 표기된 2개의 정상석과 국기게양대가 반겨준다.

 

정상석 이름이 여러 개로 표기된 것은 산이 지니고 있는 명성과 전설에 따라 부르게 되는데, 예로부터 소나무가 많아 노송산(老松山)이라 부르고 말머리 바위에 얽힌 전설에 따라 장수봉이라 하며, 老스님이 부유한 산서(山西)마을에서 탁발하여 가난한 산동(山東)마을 사람들을 살려준 미담 때문에 노승산(老僧山)으로 부르고 있다. 또한 낮은 산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선정될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산세와 희귀식물인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어 노성산(老星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노성산은 웅장하거나 거창한 산이 결코 아니다. 높이라야 274m에 불과한 작은 산이다. 하지만 주위를 압도하는 기암괴석과 수 백 년을 자랑하는 노송들이 품어내는 솔바람이 가슴속을 시원하게 어루만지며, 솔밭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심신이 지친 이들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는 삼림욕장이다. 이곳의 조망 역시 막힘이 없어, 설성면과 일죽면을 중심으로 경기 남부의 너른 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동쪽으로 널찍한 등산로를 따라 내려서면 왼쪽으로 수 십 길 벼랑위에 그림 같은 정자가 있어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다.

 

잠시 주변 경관을 돌아본 후 내려서는 등산로는 왕사토의 비알길이라 방심을 해서는 안 된다. 경내로 들어서면 새로 조성된 약사여래좌상을 중심으로 많은 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연대는 잘 모르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7층 석탑이 원경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고고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천왕상이 있는 일주문을 나서면, 내소사 숲길에 버금가는 울창한 소나무가 하늘을 뒤덮고, 다람쥐와 청솔무가 숨바꼭질하는 고목나무 그늘 속으로 빠져나오며 노성산 탐방도 끝이 난다. 진입로를 따라 금당리까지 진행해도 되지만, 마루금을 이어간다는 사명감으로 잡목을 헤치며 왼쪽능선으로 들어선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묵정밭에는 산딸기의 날카로운 가시들이 옷깃을 부여잡고 흐드러진 개망초가 허리를 휘어 감는다. 밭두렁을 따라 설성공원묘지 주차장까지 내려선 다음, 진입로를 따라 329번 도로가 지나는 설성자동차 정비공장 앞 삼거리에 도착한다.

 

여주방향으로 333번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 2차선 지방도로는 화물차들이 수시로 질주하고, 갓길도 없는 도로에서 무자비하게 달려가는 차량들을 피하느라 신경이 곤두선다. 장천2리 버스정류장을 지나 계원율림농장 입구(이정표) 갈림길에서 오른쪽 1차선도로를 따른다. 간담이 서늘한 2차선도로를 벗어나 한가로운 시골길을 걷노라면, 길옆으로 인삼밭과 과수원, 목장들이 펼쳐지고 구수한 쇠똥 냄새가 코끝을 파고든다.

 

모처럼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사색을 즐기며 계원율림농장 앞에 도착하니 육중한 철문에는 “이곳은 사유지이므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경비견의 위세에 눌려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왼쪽으로 농장의 철조망 사이로 난 임도가 길을 틔워준다.

 

흐드러진 밤꽃향기가 진동하는 계원율림농장은 수 십 만평의 분지위에 아름드리 밤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지방마다 특산물이 있어 상주에는 곶감이요. 가평에는 잣, 라주 하면 배가 유명 한 것처럼 공주 밤을 가장 알아주는데, 이곳에 대단위 밤 농장이 있을 줄이야 어찌 알았으리요.

 

시골집 뒤란에 밤나무 한그루가 동심의 놀이터가 아니던가. 소슬바람 불어오는 가을이 되면, 밤새 떨어진 밤 줍기에 잠을 설치고 화롯불에 익어가는 밤 까먹던 재미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지금이야 품질개량으로 어린아이 주먹만 하게 커지고 웰빙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유실수가 아닌가?

 

논둑을 가로질러 후문을 찾아왔지만 이곳역시 지맥을 점령하고 있는 밤나무단지로 인해 허탈한 마음으로 마루 금을 바라보며 서쪽으로 임도를 따른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농로에 고만고만한 산자락, 마루 금을 차지하고 있는 목장들 탓에 지맥을 찾아가는 길이 막연하기만 하다.

 

다람쥐 체 바퀴 돌듯, 송계리를 한 바퀴 돌아 울창한 숲 사이로 살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산불감시초소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밭고랑을 가로지른다. 돌박지산(산불초소, 삼각점 장호원 447, 1988 재설) 165m의 낮은 키에 빈약한 몸집이라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낮 간지러운 곳.

 

하지만 호랑이 없는 골에 고양이가 왕이라고 했던가. 망루에 올라 사방을 굽어보니 설성면과 모가면, 가남면과 장호원 읍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무성한 가시덤불사이로 빠끔히 터진 길을 찾아 과수원으로 내려서면 왼쪽으로 가족묘지 가운데 커다란 비석이 눈길을 끈다. 유명인사의 묘역이 아닌가 하여 호기심으로 달려가니“예의바른 실천운동”의 문구가 반겨준다. 충효의 고장임을 일깨워주는 교훈으로 각박한 세상에 가문을 이어가는 한줄기 빛이 아닌가 싶다.

 

순탄하게 진행하는 안도감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왼쪽으로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가남면 소재지인 태평리에서 설성면 금당리를 오가는 2차선 지방도로와 만난다. 금당리쪽으로 방향을 잡아 300여 m 진행하면 삼거리 이정표가 나온다. 직진은 안성, 금당리 방향이고, 왼쪽은 전파연구소 이천 분소 가는 길이다. 전파연구소 방향으로 진행하면 왼쪽으로 송암목장의 전경이 펼쳐지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말들이 평화롭게 보인다.

 

목장의 말들을 바라보며 10여 분간 진행하여 도로가 구부러지는 지점에서 왼쪽의 사면으로 접어들면 도로변에 김해김씨 묘가 반겨준다. 한 여름 웃자란 가시덤불을 헤치면 뚜렷한 등산로를 만나고 164봉을 올라서면 설성산 갈림길이 나온다.

 

설성산이 마루 금에서 비껴나 있지만 지척에 있는 정상을 어찌 외면할 수 있으리요. 잡목을 헤치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중에, 계곡에서 들려오는 총소리가 귀청을 파고든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유탄이 날아오는 사거리에서 사명감이 무슨 소용이냐. 머리칼이 곤두서며 온몸이 오그라든다. 三十六計 줄행랑으로 현장을 벗어나기에 여념이 없다. 전방의 산을 오르다보면 종종 이런 일을 당하게 되지만, 위험지역에는 경비병들이 안내를 하곤 했는데 오늘은 그런 징후도 없이 갑자기 당한 일이라 모골이 송연하다.

 

얼결에 225봉과 253봉을 지나고나니 총소리도 멀어지고, 위험지역을 빠져 나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긴장이 풀린 탓인지 피로감이 몰려온다.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풀며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는 중에 육중한 철조망과 함께 견고한 망루가 앞을 가로 막는다. 육군 교도소의 철조망을 따라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는다.

 

새로 신설되는 도로의 절개지로 올라서면 모처럼 설성면의 너른 들녘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방금 지나온 능선과 송암목장, 돌박지산이 손금 들여다보듯이 선명하고 금당리 뒤편으로 노성산이 가물거린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문드러니 고개도 멀지 않은 듯,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들려온다. 248봉에 올라서면 직진은 골프장 가는 길이고 문드러니고개는 왼쪽으로 활등처럼 휘어진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따르면 또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193봉을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문드러니 고개 절개지에 안착하며 13km에 이르는 제3구간도 마감을 하게 된다.

 

여주시 가남면과 이천시 장호원읍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의 대 동맥인 3번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중부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충주에서 서울로 가는 관문이기도 했다. 고개 마루에서 장호원쪽으로 300 m 를 가면 상승대(교도소 입구)이정표가 있는 이황리 버스 정류장이 있어 동서울 행 직행버스가 20분마다 있다.

 

 

 

 

 

 

연재

                                백두대간에 부는 바람 . 8

제2부 - 중부지역 3

 

         17. 버리미기재(490m) - 밀재(701m) - 늘재(375m) / 17.5km

버리미기재는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서 충북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를 오가는 922번 지방도로의 고개로 백두대간의 구간을 이어주는 날머리이기도 하다. 이곳은 아홉 번 시집을 가서 낳은 자식들을 벌어먹이던 팔자 센 주막거리 과부의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문경새재가 양반들의 길이었다면 대야산 주변의 고개는 민중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으로 전해진다. 버리미기-(벌어먹이다의 사투리)

산행시작은 남쪽으로 전나무 숲을 지나 1시간동안 급경사를 치고 올라 곰넘이봉(733m)에 이른다.

 

곰의 등처럼 생겼대서 곰넘이 봉으로 부르고 있는데 커다란 암반위에 정상석이 자리 잡고 있다. 곰넘이봉 구간에서 밀재까지는 위험한 암릉 구간이 도사리고 있어 잠시도 방심할 수 없다. 20여 분간 암릉과 씨름을 하며 미륵바위를 지나고 몇 차래 로프의 신세를 지며 내려선 곳이 불란치 재(옛 지명은 불한령) 이다. 버리미기재가 개설되기 전에는 완장리와 관평리를 이어주는 중요한 길목이었지만 지금은 오가는 사람도 없고 너른 헬기장 옆에 옛길이 남아있을 뿐이다.

 

묘지가 있는 촛대봉(668m)을 넘어 촛대재에 이르면 버리미기재 까지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는 이정표가 있고, 남쪽으로 난 갈림길은 대야산 정상에서 피아골로 내려가는 길과 만나 월영대로 내려선다. 이제부터 올라야할 직 벽은 대간 길에서 희양산의 직 벽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가장 위험한 곳으로 특히 겨울등반에는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100 여m의 벼랑에 걸려있는 로프를 필두로 아슬아슬한 암 릉 구간을 통과하면 드디어 대야산(930m) 정상에 올라선다.

 

일명 상대봉이라 부르고 있는 정상에서 남쪽에 있는 용추계곡과 선유동계곡은 아름다운 절경으로 여름철 피서객 들이 즐겨 찾는 곳이며 서쪽으로 중대봉(846m)을 내려서면 속리산국립공원의 선유동구곡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대야산의 암릉 미가 천하절경이라 하지만 두 계곡을 끼고 있어 더욱 각광을 받는다. 낙락장송이 어우러진 암릉을 넘나들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코끼리바위와 거북바위를 내려서면 밀재에 도착한다. 동쪽의 용추계곡과 서쪽의 농바위골을 넘나드는 분수령으로 경상도와 충청도가 경계를 이루지만, 옛적부터 고개를 사이에 둔 정다운 이웃이 아닌가. 대야산 1.5km 통시바위 2.5km의 이정표가 반겨주는 고개 마루에서 잠시나마 속리산 국립공원과 작별을 하게 된다.

 

남쪽의 급경사를 치고 오르면 849봉에 이르고 동쪽으로 선회하여 854봉에서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마귀할미 통시바위(889m)에서 동쪽으로 둔덕산(969m)의 줄기를 따라 용추계곡으로 내려 설 수 있다. 대간 길은 남쪽으로 급경사를 이루며 계곡으로 내려선다. 주위에 펼쳐지는 암릉길은 조물주가 빗어놓은 아름다운 절경의 연속이다. 층층이 쌓아올린 기단위에 올라앉은 솟대바위는 불심을 가득담은 돌탑으로, 낙락장송 휘늘어진 벼랑 끝에 올라앉은 독수리바위는 마귀할미(통시 바위)로부터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진한 모성애와 같고, 정상에 우뚝 솟은 장군바위(집채바위)가 삼라만상을 굽어보지만 애석하게도 경관 좋은 무릉도원에 채석장이 흠집을 내고 만다.

 

무릉도원의 황홀감속에 고모치에 도착하면 발치에서 솟아나는 옹달샘이 반겨준다. 멀고도 험한 길을 이어가는 산 꾼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갈증을 풀어주기에 족하다.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와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를 오가는 이곳은 부근에 광산들이 많이 있어, 그들이 왕래하는 통로로 이용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항산 1.2km 대야산 3.8km의 이정표를 보면서 조항산(953m)이 머지않았음에 용기를 갖지만 급경사 오르막에서 기력이 쇠진하고 만다.

 

정수리에는 새로 세운 표지석이 산 꾼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오랫동안 이곳을 지나는 이들에게 길동무가 되어주던 비목이 한 모퉁이에서 초라한 몰골로 서있다. 피곤한 몸을 쉬어갈 수 있는 너른 공터에는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지나온 산들과 가야할 산들이 파노라마를 이룬다.

 

정상에서 갓 바위재로 내려서는 암릉 길은, 잠시라도 한 눈을 팔다가는 날카로운 비수에 정강이를 훌치기 십상이다. 그래도 하산길이기에 주위에 펼쳐지는 산줄기와 계곡을 바라보며 체력을 재충전할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반대로 거슬러 오른다면 체력의 소진이 극심한 구간이다. 마루금은 좁은 암벽사이로 이어지고, 그 아래는 절벽이라 주의를 요한다. 뒤돌아보는 조항산은 멀리서 보면 볼수록 그 웅장한 모습이 진가를 발휘한다. 삼송리 의상저수지와 옛날 견훤이 활을 쏘며 무예를 연마한 농암면 궁리를 넘나드는 갓 바위재에 도착한다.

 

갓 바위재는 헬기장과 함께 너른 공터가 있어 시야도 좋고, 양지바른 곳이라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부드러운 능선 길. 대간의 줄기 따라 청화산을 바라보며 20여 분간 진행하면 801봉(헬기장)에 도착한다. 왼쪽으로 약간 방향을 틀어 안부로 내려섰다가 급경사 암릉 길에서 또 한 번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선 곳이 858봉이다. 이곳부터는 초원을 걸어가는 기분으로 모처럼 망중한을 즐기며 편안한 대간길이 이어진다. 물푸레나무와 졸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비알 길을 치고 안부에 올라선다. 이곳은 알바하기 쉬운 곳이다. 왼쪽으로 힘차게 뻗어 내린 능선은 시루봉(876m)과 연엽산(775m)으로 가는 길이고, 대간 길은 오른쪽으로 90도 방향을 틀어 진행해야 한다.

 

청화산 정상에 올라서면 암봉의 좁은 공간 속에 아담한 돌비석과 시원한 조망이 터진다. 청화산은 경북 문경시 농암면과 상주시 화북면, 충북 괴산군 청천면이 경계를 이루는 3면 경계 지점이다. 늘재 3.5km 조항산 8.3 km의 이정표가 있는 쉼터에서 정면으로 문장대(1033m)와 천황봉(1057m)도 보이고 관음봉(985m)과 묘봉(874m), 멀리 조그마한 봉우리는 형제봉(803m)이다. 백악산(858m)과 도명산(632m), 지나온 조항산(951m), 구름위의 둔덕산(969m), 시루봉(876m)과 도장산(827m)등 시원하게 이어지는 줄기들은 청화산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멋진 조망이다.

 

택리지에 의하면 이중환은 스스로의 호를 청화산인(靑華山人)이라 칭하고 다음과 같이 청화산을 극찬했다고 한다. ‘청화산은 내선유동과 외선유동을 위에 두고, 앞으로는 용유동을 가까이 두고 있는데, 수석의 기이함은 속리산보다 훌륭하다.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나, 속리산 같은 험한 곳은 없다. 흙으로 된 봉우리에 둘린 돌은 모두 밝고 깨끗하여 살기가 적다. 모양이 단정하고 좋으며 빼어난 기운을 가린 곳이 없으니 거의 복지福地다.’

 

청화산을 내려서는 발길에는 거칠 것이 없고 헬기장을 지나 벼랑 끝 전망대에 올라서면 속리산의 연봉들이 화려한 불꽃을 피워 올리며 화북면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암 능 구간에는 로프도 걸려있고, 정국 기원 단이 조성된 전망 좋은 암 봉에 올라 국태민안을 바라는 마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대간 길의 무사종주를 빌며 구간을 이어가는 고개 마루에 도착한다.

 

늘 재는 괴산군 청천면과 상주시 화북면을 잇는 32번과 49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고개 마루에는 한강과 낙동강 분수령의 표지판이 있다. 한줄기 빗방울이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가 되어 머나먼 천리 길로 갈라지니 우리네 인생살이도 한 순간의 판단에 따라 가는 길이 사뭇 다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교훈을 안겨준다. 350년 된 엄나무는 당집과 함께 고개 마루의 수호신으로 오가는 길손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18. 늘재(375m) - 갈령(443m) / 19.5km

대간 길은 서쪽으로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으로 처음부터 고된 신고식을 해야 한다. 또다시 속리산 국립공원으로 접어들어 한동안 비지땀을 흘린 후에야 696.2봉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백악산(858m)줄기가 분기하며, 암 봉에 올라서면 문장대를 비롯한 속리산의 연봉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급경사 비알 길을 20여분 내려서면 997번 지방도로인 밤티재에 이른다. 밤티재는 상주시 장암리와 운흥리를 오가는 고개로 운흥리에서 37번 국도와 연결된다.

 

문장대 가는 길에 594봉에 이르고, 이곳에서 왼쪽으로 분기된 능선에는 견훤산성이 있다. 경북 상주시 장암리 북쪽에 있는 장바위산 정상부를 외워 싼 퇴뫼식 산성으로 견훤이 쌓았다하여 견훤산성으로 부른다. 상주지역의 옛 성들이 견훤과 관련이 있는 것은 그의 아버지 아자개가 상주출신이란 기록 때문이다. 견훤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신라의 장군으로 있다가 이곳에서 군사를 양성하여 진성여왕 6년(892년)에 반기를 들고 신라의 여러 성을 공격하여 효공왕 4년(900년)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이 산성은 사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성벽의 둘레는 650m이고 성위에 올라서면 상주 쪽으로 조망이 시원하다.

 

아슬아슬한 암벽의 모서리에는 로프가 걸려있다. 세미 클라이밍 지역을 오르는 손끝에 간담이 서늘하고, 조물주가 빗어놓은 아름다운 절경은 마음을 비워야 오를 수 있는 속리산의 관문이기도 하다.

 

문장대(1.054m)는 속리산의 천황봉(1,058m)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거봉으로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 위치한다. 거대한 암봉이 구름 속에 묻혀있다 하여 운장대라 하였으나 세조가 이곳에서 문무대신 들과 시를 읊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문장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문장대정상에는 50여명이 앉을 수 있는 너른 암반으로 이곳에 올라서면 속리산 국립공원의 모든 사물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천하제일의 전망대라 할 수 있다.

 

문장대에서 오른쪽으로 뻗은 능선은 관음봉(982m), 묘봉(874m), 상학봉(834m), 미남봉(610m), 활목고개를 지나 금단산(756m)으로 이어지는 충북 알프스의 제 3구간이다. 법주사를 외워 싸고 있는 병풍 같은 암봉을 넘나들며 이어가는 종주 길은, 속리산이 자랑하는 클라이밍 코스이다. 문장대에서 곧바로 하산하면 법주사로 가는 길이고, 대간 길은 왼쪽으로 암릉의 전시장을 넘나들며 문수봉(1,005m)을 지나 신선대(1,016m)에 이른다. 우리 조상들은 명산대찰을 찾아 풍류를 즐기며 아름다운 경승지를 정하게 되는데, 특히 속리산에는 8자와 연관되는 지명이 많이 있다.

 

광명산, 지명산, 구봉산, 미지산, 형제산, 소금강산, 자하산, 속리산이 8산이요. 내석문, 외석문, 상환석문, 상고석문, 상고외석문, 비로석문, 금강석문, 추래석문을 8석문이라.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은선대, 봉황대, 산호대가 8대요. 천황봉,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을 8봉이라 1,000m를 오르내리는 높지 않은 봉우리들이지만 빼어난 절경으로 대 가람인 법주사를 품고 있는 명산으로 사시사철 많은 인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신선대에 자리 잡은 주막집은 대간 길에 지친 산객들의 객고를 풀어주는 휴식 터로, 막걸리 한사발이면 피로가 싹 가신다. 입석대의 늠름한 기상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내딛으면 오른쪽으로 깊은 계곡의 너른 분지에 법주사가 자리 잡고 관음사, 복천암, 상고암을 끼고 도는 대간 길은 왼쪽으로 상주시 화북면의 들녘이 포근히 다가온다. 이곳 속리산도 불가와 인연이 깊어 봉우리마다 비로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의 이름을 달고 있으며 모든 중생들을 굽어 볼 수 있는 천황봉(1,058m)에 오른다.

 

천황봉에서 서쪽으로 뻗어가는 능선이 한남금북 정맥이고 이곳은 三破水라하여 동쪽으로 내리는 빗물은 낙동강으로 북쪽은 한강, 남쪽은 금강으로 흘러든다. 일반 등산객들이 많이 오르는 동쪽의 장각 계곡에는 높이 6m의 장각 폭포가 있고 금난정의 정자가 소나무그늘에 자리 잡고 있어 운치를 더 하고 있다. 정상에서 왼쪽으로 급경사를 내려서며 대목리 갈림길에 도착한다. 동남쪽으로 휘어지는 대간 길은 지금까지 암릉에 시달린 지친 몸을 어루만진다. 순하게 열리는 대간 길에서 체력을 보강하며 쉬엄쉬엄 진행하면 봉긋하게 솟은 667봉 정상이다.

 

667봉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700여 m를 전후로 고도를 유지하며 30여 분간 진행하면 만수리로 내려서는 피앗재에 도착한다. 천황봉 5.8km 형제봉 1.6km의 이정표가 반겨준다. 40여 분만에 형제봉에 올라서면 초라한 표지목이 반겨주고, 직진하면 충북 알프스의 제1구간인 구병산(876m)과 연결된다. 대간 길은 동쪽으로 선회하여 급경사를 10여 분간 내려서면 갈령 삼거리에 도착하며 구간의 종주를 마감하지만 977번 도로인 갈령까지 30여분 진입로를 따라야 한다.

 

형제봉에서 속리산 국립공원도 끝이 난다. 충북 보은군, 괴산군, 경북 상주시의 경계에 있는 속리산 국립공원은 법주사지구, 학소대 주변 은폭동(隱瀑洞)계곡, 만수계곡, 화양동지구 화양동계곡, 선유동계곡, 쌍곡계곡과, 장각폭포, 오송폭포(五松瀑布)등의 명소가 있으며, 정이품송(正二品松 천연기념물 제103호),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호) 등 1,055종의 식물과 까막딱다구리(천연기념물 제242호),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제328호) 등 희귀 동물을 포함하여 1.831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자연자원의 보고(寶庫)로 면적은 283.4㎢이 이른다.

이곳에서 잠시 잠간이지만 충북의 경계선을 벗어나 경북의 상주지방으로 이어지고 강원도의 도래기재에서 시작하여 중부지방의 허리를 관통하던 대간 길도 이곳에서 남쪽으로 덕유산을 지나 지리산까지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