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기맥

한강기맥: 제 4 부

김완묵 2010. 2. 21. 04:57

 

 

                     제5구간: 상창봉리 - 화방재/ 23km

 

메기(태풍)가 지나 간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전국적으로 비소식이 또 전해지고 참가인원도 점점 줄어들어 25인승 심야버스가 헐렁한 13명. 아쉬움이 많지만 정예의 용사들로 구성된 우리는 늘 상 동반하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56년 만에 올림픽 8강에 오른 축구경기에 관심이 집중된다.

 

새벽 1시30분 강원휴게소에 도착하여 2시30분에 시작하는 아테네 올림픽 중계 팀에 눈과 귀를 모으며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월드컵 4강의 신화가 재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1대0으로 지고 있는 전반전이 끝난 뒤 오늘의 들머리인 494번 고개 길에 도착하여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응원을 하였지만 우리선수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실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3대2로 석패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최선을 다한 우리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05시 예정대로 동쪽의 기맥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축구경기로 1시간 늦게 출발한 탓으로 임도를 지나 590봉에 올라서니 먼동이 터오고 자욱한 안개 속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 맞으며 걷는 일에도 이골이 난 터라, 스피치를 하고 배낭에 커버까지 씌웠으니 무엇이 두려울 소냐. 능선을 달려가는 발걸음은 멈출 줄 모르고 홍천에서 횡성으로 연결되는 5번국도가 지나던 삼마치에 도착한다. 도로정비로 터널이 관통된 뒤로는 오가는 사람도 없는 쓸쓸한 고개 마루. 한창시절 힘겹게 올라온 차량들이 숨을 돌리고, 전망 좋은 쉼터에서 주변의 산과 계곡을 바라보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시절도가고 폐허로 변한 휴게소를 바라보며 隔世之感(격세지감)을 느낀다.

 

콘크리트 도로위에도 새싹이 돋아나고 무성한 숲으로 돌아가는 회귀본능의 순환법칙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동료들의 가뿐 숨소리로 적막을 깨트리며 590봉 헬기장에 도착하니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신비함을 더한다. 오음산(930m)정상이 화려한 날개 짓으로 손짓하고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심심찮게 나타나는 암 봉을 타고 넘어서니 깔딱 고개 비알길이 앞을 가로막는다. 하기야 오늘의 길고긴 구간의 주봉으로 930m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으니 호락호락하게 정상을 내줄 수야 없겠지.

 

비지땀 흘리며 암릉을 타고 오르면 정상은 전위 봉에 가려 자취를 감추고, 벼랑 길 을 올라서면 휘늘어진 노송아래 멋진 전망대가 펼쳐진다. 비 그친 삼마치 계곡에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산자락을 파고드는 운해는 신비감이 더하여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갈대숲이 무성한 헬기장에 올라서면 커다란 바위에 페인트로 표시한 오음산(930m) 정상이(실제는 군부대가 있는 곳이 정상임)반겨준다.

 

컬컬한 막걸리로 갈증을 풀며, 후미가 도착할 때까지 30분여 분간 휴식을 하고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사거리안부가 나타난다. 왼쪽은 홍천읍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오른쪽은 횡성군 상창봉리로 내려서는 일반인들의 하산 로가 된다. 직진하여 벼랑길을 오르면 헬기장이 나타나고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는 정상이 올려다 보인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벼랑위에 우뚝 솟은 군부대는 일반인들이 범접하지 못할 위압감으로 주눅이 들고 만다.

 

기맥 꾼이 아니면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위험지역. 살을 파고드는 원형철조망이 앞길을 가로막고 잡초가 무성한 바닥에는 철조망의 뭉치들이 흩어져 긴장감을 더한다. 밤 고양이 담장을 뛰어 넘듯 잽싸게 철조망에 달라붙어 유격 훈련을 시작한다. 일분일초가 왜 그리 지루한지, 온갖 장애물과 씨름하며 간담이 서늘한 벼랑길을 통과할 때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해야 하고, 지뢰경고판을 보는 순간 오금이 저려온다.

 

가까스로 안부에 도착하여 직진하면 상창봉리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되므로 왼쪽으로 철조망을 따라 정문이 나올 때 까지 진행한다. 정문의 보초병에게 인사를 건네자 삼엄한 경계 속에서도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을 하고, 사자의 소굴을 빠져나온 안도감 속에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오늘의 종주 길에서 가장 편안한 임도는 능선과 나란히 진행하는데 포장과 비포장이 번갈아 나타난다.

 

오음산의 군부대가 멀어질수록 긴장감도 풀리고, 주위에 펼쳐지는 전망도 좋아 소풍 나온 이이들처럼 마냥 즐겁기만 하다. 임도를 따라 30여분을 내려오면, 임도가 오른쪽 계곡으로 방향전환을 한다. 이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절개지에 희미한 발자취를 따라 능선으로 올라서서 숲속을 헤치면 잠시 후에 672봉의 정상에 올라서고 평화로운 어둔리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고꾸라지듯 가파른 벼랑길을 내려서면 잡목이 무성한 오솔길에는 희미한 발자취가 이어지고, 하늘도 보이지 않는 울창한 樹林(수림)속에서 방향감각도 잊은 채 先踏者들의 발자취 따라 590봉 556봉을 지나 능선분기점에서 왼쪽능선으로 진행하여 556봉에 올라선다. 홍천430으로 1988년에 재설한 삼각점이 있고 발치로 홍천에서 원주로 이어지는 중앙고속도로의 시원한 질주가 국운이 열리는 번영의 상징으로 가슴이 뿌듯하다.

 

고만고만한 능선들을 넘나들며 안부에 내려서면 작은 삼마치의 표지석이 잡초 속에 묻혀있다. 1974년 11월 공병부대에서 이 길을 개통하였다는 내용이 표 지석에 있지만 중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이곳 또한 찾는 사람이 없다보니 포장길에도 새싹이 돋아나고, 아카시아가 천국을 이루어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한다.10여 분간 땀을 식히며 수직으로 단애를 이룬 앞산을 바라보며 오금이 저려오는데, 어차피 지나야할 관문이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산 비알을 기어오른다.

 

그늘에 앉아 있어도 땀으로 주체를 못하는 것이 三伏인데 비알 길을 치고 오른다는 것은 사명감이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의 순간들이다. 어려운 사투끝에 올라선 630봉에는 시원한 바람이 반겨주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마루금은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심심찮게 암릉길을 넘나들며, 직선거리로는 수백 미터에 불과한길을 물길피해 능선 따라 수km를 돌고 돌아 홍천 307, 1988년에 재설된 삼각점을 확인하며 739,6봉에 안착한다.

 

갈증에는 막걸리가 최고라. 시원한 막걸리 한잔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710봉을 향하는 마루금은 바위와 소나무가 적당히 어우러진 완만한 능선길이다. 모처럼 편안한 오솔길에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지나온 길도 돌아보며 바람결에 710봉을 지나 새벽6시 새목이 고개에서 출발했다는 인천의 기맥꾼들과 반가운 만남으로 인사를 나누고, 표시도 없는 만대산(670m)을 임도에 내려서서야 지나온 것을 확인하게 된다.

 

홍천군에서 세운 자연보호 입간판 앞 소나무 그늘아래 자리를 잡고, 옆 사람의 눈치 볼 겨를도 없이 은박지속의 김밥으로 허기를 채우기에 바쁘다. 엊저녁에 식당에서 산 것인데 쉬었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다행이 꿀맛 같은 김밥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고이 간직한 고량주까지 한잔 곁들이니 이 세상 부러울 것이 무엇인가?

 

솔바람 불어오는 나무그늘에서 몰려오는 식곤증으로 졸음이 쏟아지는데 팔 베게하고 한잠 늘어지게 잤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갈 길이 10km나 남아있으니 한가하게 여유를 부릴 수도 없고, 절 개지를 기어올라 마루 금 따라 발길을 이어간다. 산기슭의 오솔 길 따라 터벅터벅 걷는 발길이 무겁기만 한데, 8월 하순의 열기는 대지를 녹일 듯 후끈 달아오르고 천근만근 무너져 내리는 몸을 주체 못하여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갈증 난 목을 축이기에 여념이 없다.

 

526봉을 지나 ┬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다 나오는 정점이 570봉으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숲속에는 천수를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고사목이 즐비하게 쓰러져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우수수 허물어져 한줌의 흙으로 변하는 모습이 신비스럽기도 하고 오묘한 자연의 이치에 경건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570봉을 지나 분기점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면 십자로 갈림길이 나타나고,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사면 길을 치고 오르면 무성한 숲속에 빼 꼼이 터진 응곡산(603m) 정상에 오른다. 정일 315, 1989년에 복구된 삼각점으로 정상임을 확인한다. 시야가 별로 좋지 않은 정상에서 북쪽으로 공작산(887m)만이 확실하게 구분할 수가 있고, 동쪽의 봉복산(1.021m), 태기산(1.261m)과 남쪽의 치악산(1.288m)은 어림짐작으로 가늠하기도 어렵다.

 

정상에서 내리막길로 줄달음치면 좌운리와 노천리를 잇는 개고개가 나타나는데, 이곳도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이라 잡초만이 무성하다. 낮은 절 개지를 치고 오르면 왼쪽으로 뚜렷한 길이 열리고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522봉 정상에 오른다. 완만한 능선 길 에는 등산로도 뚜렷하고 왼쪽의 내리막길을 가다보면 방심하기 쉬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희미한 오른쪽 길로 들어서야한다.

 

오른쪽 길에서 100m쯤 전진하면 방화선이 나타난다. 군부대에서 새로이 철조망을 가설하여 안쪽으로는 정지작업으로 평탄한길이 펼쳐지지만, 우리가 걷는 바깥쪽은 무성한 억새들과 산딸기들이 앞길을 가로막아 유격 훈련장이 따로 없다. 철조망을 따라 30여 분간 진행하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630봉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철조망을 버리고 오른쪽 소나무가 무성한 숲속으로 들어서면 리본도 많이 보이고 등산로가 비교적 뚜렷하다.

 

630봉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 더 겁이 나는 것은, 앞산의 높이가 그만큼 점점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헬기장을 지나 고사목을 헤치며 안부에 도착하여 바라보는 앞산이 하늘높이 솟아올라 지레 겁을 먹고 만다. 풀 섶에 주저앉아 비상으로 간직한 토마토 화채를 집어 든다. 프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는 토마토는 먹기 좋게 저민 후, 설탕까지 살짝 뿌려서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맛깔스런 영양식이다.

 

젓가락도 필요 없이 땀에 절 은 손가락으로, 입안에 살짝 집어넣으면 살살 녹아내리는 감칠맛에 파김치로 녹초가 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가파른 630봉도 거뜬하게 올라선다. 사실은 이곳이 630봉인지 덕구산인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300여m를 진행하면, 무성한 숲속에 빼꼼이 터진 공터가 있고 낮 익은 리본들이 걸려있는 덕구산(652m)정상에 도착한다.

 

이제 미로와도 같은 숲길을 무사히 빠져 나왔다는 안도 감속에 심호흡을 하고, 북사면 하산 길로 내려선다. 고꾸라질 듯 가파른 벼랑길을 기어 내린다. 소나무와 낙엽송의 진한 향기가 피로한 심신을 달래주고 몇 년 전 지리산 당일종주이후 가장 길고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기맥종주를 완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사하며 왼쪽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진군의 나팔소리와도 같이 활력을 불어넣는다.

 

마지막으로 치고 오르는 475봉이 힘들지 않은 것은 대망의 종착점이 발아래 펼쳐지고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길 따라 새목이고개에 도착하며 도상거리 22km, 산행거리 27km를 11시간 20분 만에 완주하며 건재한 나의 체력에 자긍심을 갖는다. 

 

하지만 어쩌랴. 진이 빠진 늘보의 이 대장. 고뇌에 찬 표정으로 다음 산행의 중지를 선언하고 만다. 종주산행의 자부심도 산악회의 운영이 적자로 돌아서며 더 이상의 종주가 불가능하다는데 미련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허탈한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