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기맥

한강기맥: 제 3 부

김완묵 2010. 2. 16. 19:19

 

제 3 구간: 비슬고개 - 신당고개 /15km

 

3월 28일 양수리에서 한강기맥 발대식을 시작한 후로 3개월 만에 본대와 합류하고 보니 감회도 새롭고, 건강미 넘치는 모습들을 대하고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作心三日이라 하지 않던가. 3개월 만에 종주인원이 반으로 줄었지만, 의지만은 대단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열기를 더 한다. 양평을 지나 단월면에 들어서니 송이재봉위로 걸쳐있는 뭉게구름이 아침햇살에 눈부시고 비 온다는 예보가 없었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비슬재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고개 마루에는 성황당을 지켜주는 장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고, 가파른 절 개지를 치고 오르는 건각들의 거친 숨소리는 조용한 숲속을 흔들어 깨우고 비지땀 흘리며 된비알 길 을 올라서니 산불감시초소와 삼각점(21재설/1976건설부)이 있는 소리산(658m) 정상이다. 지난밤에도 비가 내렸는지 풀잎마다 이슬이 맺혀 바짓가랑이를 적시고 숲 사이로 파고드는 아침햇살이 더욱 따가운데, 오르락내리락 574봉을 넘어 방촌리에서 하계터골로 이어지는 희미한 고개안부를 지난다.

 

오늘의 구간에서 가장 높은 송이재봉(670m). 초반부터 된비알을 만났으니 체력안배를 위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파른 오름길에 발자국과 호흡을 조절하며 큰 어려움 없이 정상에 올라섰지만, 좁은 공터에는 그 흔한 표지석하나 없고 산악회에서 깔아놓은 비닐 표지로 확인을 한다. 시원한물로 갈증을 풀며 10분간 휴식을 하는 중에 떡갈나무를 때리는 빗방울소리가 종주 길에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인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가파른 비알 길을 내려서서 임도와 만나고 곧이어 숲속으로 들어서는데, 점점 더 거세지는 빗줄기속에 천둥번개까지 동반을 한다. 배낭커버를 씌우고 폭우 속을 걸어가는 몰골이 처량하기 그지없지만, 쉽게 그칠 비가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행보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어느새 등산화에도 물이 들어와 장단 맞추고 물에 빠진 새앙 쥐 신세가 되어 하염없이 걷고 있다. 지저귀던 산새들도 날갯짓을 멈추고 숲속을 뒤 흔드는 폭우가 지나기를 기다리는데,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옷이 몸에 칭칭 감기고 빗물이 눈으로 파고들지만 마음을 비우고 나니 내딛는 발걸음이 경쾌한 리듬으로 속도가 빨라지고 562봉을 지나며 나 홀로 산행을 하게 된다.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폭우 속에서 방향감각도 상실한 채 믿는 것은 오직 선행자들의 표지기. 빼 꼼이 틔워진 오솔길에서 갈림길마다 리본이 길잡이가 되지만 필요한 자리에 리본이 없으면 엄마 손을 놓친 어린 아이마냥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허둥대기 일쑤이다.

 

하지만 산행경험으로 축적된 노하우는 제집을 찾아가는 동물들의 예민한 촉각으로 산마루를 넘는다. 산행개념도도 물먹은 솜뭉치가 되어 소용이 없고 방향을 가늠하며 1시간동안 행군을 하다 보니 빗줄기도 가늘어지고 고개안부로 내려서며 284번 철탑을 확인하면서, 미로 속을 용케도 빠져나온 안도감으로 희열을 맛본다. 임도를 지나 다시숲속으로 들어서니 나뭇잎에서 쏟아지는 물바가지 세례는 오히려 시원한 폭포수가 되어 피로에 지친 몸을 달래준다.

 

비알 길을 내려서니 일차선 아스팔트길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밭배고개로 단월에서 홍천의 굴업리로 넘든 지방도로인데 이제는 터널이 개통되어 찾는 이 없는 쓸쓸한 고개 마루에 이따금 마루 금을 밟는 건각들과 산나물 뜯는 사람들의 휴식처로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임도를 버리고 다시 숲속으로 들어서면 완만한 구릉지가 전개되는데 비도 완전히 그치고 따사로운 햇살아래 느긋한 행보를 하며 397봉에서 선두그룹을 기다리지만 종내 그들을 만날 수가 없어 또다시 길을 재촉한다.

 

억새밭과 산딸기, 산초나무가 앞길을 가로막는 마루금은 언뜻언뜻 시야를 틔워주며 지루함을 달래주고 급기야 숲길도 끝이 나고 마루 금을 따라 개설된 임도로 내려선다. 널찍한 신작로를 따라 철탑들이 높고 낮은 산등성이를 타고 넘으며 끝없이 이어지고 278번 철탑아래서 심호흡을 하며 옆길로 새지 않고 제대로 마루 금을 밟으며 이곳까지 왔다는 자부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한낮의 태양이 내려 쪼이는 임도는 짜증나는 구간이다. 젖은 옷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온몸이 한증막의 열탕 속으로 들어온 듯 후끈거리고, 칭칭 감겨드는 바짓가랑이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타구니를 비벼대며 허물이 까지고 쓰라린 고통 속에 통골 고개를 지나 277번 철탑을 지나고 시멘트 포장이 끝나는 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다시 숲길로 들어서야 되는데 특별한 표시가 없으니 무심코 지나치다가 알바들을 많이 한다고 하니 주의가 요망되는 곳이다.

 

잣나무가 무성한 오솔길은 푹신한 갈비까지 깔려있어 임도에서 지친 몸을 추스르기에 안성맞춤이고 완만한 경사에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힘들이지 않고 무심결에 398봉을 넘어 오늘의 구간 중에서 가장전망이 좋은 273번 철탑아래 도착한다.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탑을 따라 진행하는데, 특히나 이곳에서 바라보는 철탑들의 행렬은 우리가 일구어낸 경제기적의 상징처럼 장관을 이룬다. 산과 계곡을 가로질러 용광로에 쇳물을 녹이고 산업현장에 불을 밝히며 우리가정에 행복을 안겨주는 물과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산업의 동맥으로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신당고개도 멀지않은 듯 동쪽으로 다음 행선지인 갈기산의 모습이 선명하고, 그 너머로 금물산이 희미한 자태로 유혹을 하며, 올망졸망 이름 모를 봉우리들이 파노라마를 이루며 끝없이 이어진다. 완만하게 오르는 408봉은 중간에 억새밭이 펼쳐진다. 한낮의 기온이 후끈 달아오르고 주체 할 수 없는 땀으로 다시 젖어오는 옷으로 온 몸이 휘감긴다. 표시도 없는 정상에는 삼각점이 나 뒹굴고, 굉음소리 들리는 발밑으로 양평에서 홍천을 지나 설악산으로 향하는 차량들이 44번 국도를 달려간다.

 

왼쪽으로 마루 금을 따라 270번 철탑을 향해 내려가면 참나무의 껍질을 벗겨놓은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밑둥치에서 50여cm 되는 곳부터 2m 높이까지 뺑 둘러가며 가죽을 벗겨 놓았는데 처음에 한 두 그루는 심술 사나운 사람의 소행으로 치부하였지만, 길섶을 내려가며 미끈하게 잘생긴 나무마다 수 십 그루가 똑같은 수난을 당하고 있으니 이것은 의도적으로 저지른 소행이 틀림없지 않은가? 무슨 연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가슴 아픈 현장을 뒤로하고 마루금을 밟는다.

 

목적지가 가깝다는 안도감으로 알바하기 쉬운 270번 철탑에서 우측 숲길로 올라서서 다음 철탑을 바라보며 내려가면 가파른 절개지가 나타난다. 조심조심 내려서면 철탑아래서 왼쪽으로 희미한 길 따라 잡풀이 무성한 임도가 나타나고 2-3분간 진행하면 계곡으로 내려가는 잣나무숲속으로 들어선다. 경사가 아주심한 비알 길을 미끄러지듯 조심스럽게 통과하면 시원하게 뚫린 44번국도가 눈앞에 펼쳐지며 건너편으로 홍천 휴게소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도상거리 15km에 6시간을 예상하였지만 5시간 만에 종주를 하고보니 아직까지 준족의 발걸음이 녹슬지 않았다는 자부심으로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일주일에 3회 이상 중랑천에서 하이워킹을 한 것이 주효하여 한 시간에 7km의 속도로 걷기를 반복하다보면 올라가는 길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오늘과 같이 경사가 완만한 구간에서는 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앞으로도 체력을 유지하기위해 기본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제4구간: 신당고개 - 상창봉리/ 20km

 

지루하던 장마도 물러가고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삼복더위에 무박으로 산행을 한다는 것이 여간한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진달래 피는 춘삼월 양수리에서 시작한 한강기맥 종주도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 경기도를 지나 강원도 땅으로 접어들며 산세도 험해지고 장거리 구간에 탈출로도 만만치 않아 산행준비를 하면서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다.

 

산행기점이 가까운 곳이라 느긋한 마음으로 10시30분 집결장소인 종로 5가에 나가보니 25인승 미니버스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무박산행이 아무래도 엄두가 나지 않는가 보다. 출발시간을 훌쩍 넘겨도 모두가 16명. 불편한 의자에서 토끼잠을 자고 있는 저들은 무슨 미련이 있어 고생을 자처하는지?

 

심야의 한강변은 휴가를 떠나는 차량으로 홍수를 이루고, 선 잠속에 눈을 떠보니 어느새 홍천 휴게소 앞마당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는 별도달도 자취를 감추고 풀벌레 소리만 처량하게 들려온다. 출발시간은 아직도 2시간이나 남아있지만 잠은 저만치 달아나고 휴게소 앞마당에 둘러앉아 무료하게잡담으로 시간을 보낸다. 

 

03시55분 홍천휴게소 뒤쪽의 잣나무 숲속으로 들어서자 야심한 시각 불청객의 방문에 놀란 개들이 방정맞게 짖어대지만 인해전술로 맞서는 우리의 기세에 눌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만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우측의 절 개지를 내려서자 임도가 나타나고, 한 무더기를 이루어 진행하면서 오늘만큼은 절대로 선두에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9시간이 넘는 길고도 지루한 구간에서 잠시만 방심해도 등로를 이탈하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 이대장의 뒤꽁무니에 붙어 숲길로 들어선다.

 

대청봉을 수 십 번 오르고도 설악폭포를 한 번도 구경 못하듯이 야간산행이란 무료하기 짝이 없지만, 피할 수 없는 사정이 있기에 어둠속을 달려간다. 불빛에 드러나는 오솔길 따라 399봉을 꿈결에 넘어서면, 청운사 2.4km, 갈기산 0.8km의 이정표가 어둠속에서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거침없는 발걸음에 가파른 비알을 치고 올라 돌탑2기와 양평군에서 세운 표지석(685m)이 있는 갈기산 정상에 올라선다.

 

15분간 휴식을 하는 동안 주위도 훤히 밝아오고 동녘하늘에 아침노을이 붉게 물드는 것으로 보아 비소식과 무관하지 않지만, 미리부터 걱정할일도 아니고 서둘러 길을 재촉하며 새터 갈림길(갈기산0.2km, 신대마을 1.6km)에서 등로를 이탈하는 순간 총무의 지적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좌측의 가파른 경사지를 내려서면 262번 철탑이 나타나고 597봉을 우회하여 소나무와 참나무가 즐비한 오솔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590봉에 올라 잠시 휴식을 하고 20여 분간 완만한 능선을 달려가면 널찍한 임도가 나타난다. 건너편의 260번 철탑을 지나 절 개지를 치고 오르면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숲속에 바위가 듬성듬성 놓인 쉼터가 반겨준다.

 

시원한 음료수와 간식을 들면서 후미와 합류하는 동안 20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도 다짐을 했지만 어느덧 선두에서 길을 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성가신 거미줄을 걷어내며 아침이슬에 바지가랑이 를 적신다. 좋든 싫든 전신주와 인연을 맺었으니, 전신주번호만 잘 식별하면 등로 이탈은 걱정을 안 해도 될 만큼 259번 전주를 지나 10여 분만에 발귀현에 내려선다.

 

발귀현은 양평군 청운면 양지촌에서 홍천군 남면 신대리로 이어지는 지방도로인데, 비포장이라 차량의 왕래도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고갯마루에 전을 펴고 둘러앉아 막걸리로 입가심을 하며 곁들이는 아침식사는 풍성한 산해진미보다도 우리의 입맛을 돋운다. 화이트 벨리 입간판을 뒤로하고 오른쪽의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서면 식곤증 탓인가? 포만감속에 발걸음도 느려지고 눈꺼풀이 내려안는다.

 

10여 분간 숲길을 지나면 임도가 나타난다. 금물산(791m)을 오르는 관문으로 가파른 벼랑에는 무성한 잡목이 가로막아 진입로 찾기에 여념이 없다. 지도를 정치하며 왼쪽으로 산굽이 돌아 자갈길과 시멘트 포장길을 30여 분간 돌아가면 오른쪽으로 희미한 오솔길이 나타난다. 절 개지로 올라 노송의 그늘 속으로 파고들면 이곳 또한 장난이 아니다. 이곳의 고도가 300여m인데 금물산의 높이가 791m이고 보니 표고차가 500여m나 되는 수직상승을 해야 하는 난코스가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현재시각이 오전 8시라고는 하지만 4시간의 산행으로 파김치가 된 몸으로, 코가 땅에 닿도록 가파른 급경사에 없는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 육탄전으로 무성한 산초나무와 잡목들이 뜯고 할퀴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안간힘을 쓰며 올라선 곳이 선들바람 불어오는 시루봉(504m)정상이다.

 

억새밭에 숨어있는 삼각점을 찾아내는 기쁨으로 주위를 살펴보면, 지나온 발자취들이 일렬종대로 늘어선 고압선 철탑을 따라 이어지고, 야심한 새벽녘에 지나온 갈기산(685m)이 아득히 멀어만 보인다. 조금 전에 지나온 임도가 산허리를 파고들며 미로 속을 헤매고, 뒤돌아보면 성채와도 같이 아찔한 금물산(791m)과 성지봉이 우리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다.

 

일어나기 싫은 유혹을 뿌리치고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무성한 산초가시와 억새풀, 산딸기, 다래넝쿨이 뒤엉킨 등산로는 여름 내내 오간 사람들의 흔적도 없이 실종된 길을 찾아 사투를 벌인다. 너럭바위를 지날 때는 말벌과 독사들에 대한 경계심으로 더욱 마음이 오그라들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기맥을 이어간다는 종주의 사명감도 사라지고 만다.

 

금물산까지만 오르면 힘든 고비를 넘긴다는 희망으로 안간힘을 쓰며 바위능선을 올라서니 아늑한 쉼터가 반겨주는 성지봉과 금물산의 분기점이다. 직진하면 성지봉 이요. 1분 거리에 태양열 전지 안테나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면 잡목사이로 우리가 힘들여 올라온 능선들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인다. 삼복더위 의 가마솥 열기 속에서도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지나왔다는 자부심으로 희열이 넘쳐흐른다.

 

되돌아 내려와 갈림길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금물산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분수령으로 양평군과 홍천군, 횡성군이 경계를 이루는 상징적인 봉우리인데, 잡목만 무성한 채 이름표하나 달지 못하고 외로움에 떨고 있다. 쉴만한 장소도 없는 정상을 지나쳐 10여 분간 북사면으로 내려서면 왼쪽으로 90도 꺾어지는 갈림길에서 배낭 속을 털어 시장기를 달래는데,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잘 참아오던 날씨가 비를 뿌리고 마니, 이번 종주 길은 이래저래 비를 피할 수가 없나보다. 그래도 험준한 정상을 지난 뒤에 비를 만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배낭 속에 준비한 우비를 챙겨 입으며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등산로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천지개벽을 하려는지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속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물에 빠진 새앙 쥐가 되어 무작정 목적지를 향해 내 달릴 뿐이다.

 

금물산을 지나 또다시 오름길이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하고 내려가는 길에만 정신을 팔다보니 또다시 792봉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으니 속된말로 죽을 맛이다. 철탑을 지나 전망대 바위에 올라섰지만 빗속에 흐린 장막을 드리우고, 깔딱 고개 오르는 발길은 한발에 두 번씩 미끄러지며 애간장을 태우고 가까스로 정상에 올라 심호흡한번 할 겨를도 없이 왼쪽의 경사진 비알 길로 내달린다.

 

임도와 만난 뒤로 247번 철탑을 지나 다시 숲속으로 들어서면 가시덤불이 앞길을 가로막고 다리에 휘감기는 바짓가랑이가 쓸리며 허벅지가 아려오기 시작한다. 떼어놓는 걸음마다 사타구니에 피멍이 들고 몸도 마음도 지탱할 의지력이 없이 허물어지고 만다. 산이 좋아 나선길이지만 이런 고통 속에 무슨 보람을 찾겠다는 것인지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기만 하다.

 

475봉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가파른 절개지가 앞길을 가로막고 로프가 있어야만 내려설 수 있는 곳이다. 할 수없이 다시 숲속으로 들어갔다 임도로 빠져나와 15분간 진행하면 무선 송신탑이 있는 410봉 에 도착한다. 이제 상창봉리 고개 마루도 지척에 내려다보이고 갖은 고통과 악천후 속에서도 무사히 종주를 마감하게 되었다는 안도감으로 극심하던 고통도 봄바람에 눈 녹듯 사그라들고 다음의 종주길인 삼마치 고개로 눈길이 가는 것은 산 꾼들의 씻지 못할 고질병이 아닐까?

 

홍천에서 양덕원으로 이어지는 494번 고개 마루에는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기다리고 새벽부터 시작된 종주 길도 9시간 30분의 대장정을 마감하며 우리들만의 행복한 뒤풀이 시간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