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기맥

한강기맥: 제 2 부

김완묵 2010. 2. 12. 12:04

 

 

                      

                          한강 기맥

 

산을 오르지 않더라도 산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다면, 백두대간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전국토의 7할이나 되는 산악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그 많은 산들을 어찌 다 기억을 할 수 있으며 올망졸망한 야산 까지도  체계 있게 정리하여 분류할 수 있을까? 신기한 일이지만 산의 바이불로 일컬어지는 산 경표에 의하면 한반도의 지형을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분류하여 지맥을 따라 모든 산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정맥에 못지않은 세력이 큰 여러 개의 산줄기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중 하나가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1.422m)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맥으로 계방산(1.577m), 태기산(1.261m), 오음산(930m), 용문산(1.157m), 청계산(658m)을 거쳐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으로 꼬리를 내리며 생을 마감하는 능선을 한강기맥이라 일컫게 되는데 도상거리로 장장 162,6km에 이른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정된 명칭은 아니지만, 先踏者 들이 부르고 있는 지명으로 통일하기로 하고, 교통이 불편한 이곳을 개인적으로 답사한다는 것이 불가능 하겠다는 생각으로 늘보산악회와 함께 종주 길에 나서게 된 것이다.

                                           산행일시 : 2004년 3월 28일 

 

 

 

 

 

                제 1 구간 : 양수리 - 농다치 고개 / 16.5km

 

길고 지루하던 추위도 물러가고 남쪽에서 불어오는 훈풍 따라 도로변의 개나리가 노란꽃잎을 피워 올리고, 수줍은 목년도 꽃망울을 터트리는 삼월의 하순, 한강기맥의 종주를 알리는 대장정의 진군 나팔소리가 들려오는 이른 아침, 동녘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유난히도 밝게 빛난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따라 양수리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은 마냥 부풀어 오르고, 얼큰한 해장국에 인심 좋은 아줌마가 건네주는 더덕주로 신발 끈을 졸라맨다.

 

 

넓고 넓은 강어귀에 두 물이 합쳐지고 무성한 수초사이로 아침햇살이 반짝이는 양수리가 기맥의 시발점이지만, 중앙선의 철교가 가로놓이고 도심지개발로 기맥이 훼손되어 1,5km를 생략한 채, 양서종합고등학교 정문에서 시작되는 기맥의 첫 구간으로 농다치까지 16.5km가 이어진다.

 

 

구릉지대 과수원 둔덕길을 가로질러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서면, 앞서간 산 꾼들의 발자취 따라 수북이 쌓인 낙엽이 포근한 융단길이 되어 반겨준다. 산이라고 할 것도 없이 100m안 밖의 언덕을 넘나들며 끊어질듯 이어지는 기맥의 등줄기를 따라 삼림욕을 하듯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양지바른 언덕에는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왼쪽으로 북한강의 물줄기와 주변에 들어선 모텔들이 그림같이 펼쳐지며 강 건너 영화촬영소가 아득히 바라보인다.

 

 

한시간만에 골무봉(201m)을 지나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서서히 고도를 높이면, 왼쪽으로 노적봉을 끼고 214봉에 올라선다. 공사가 한창인 갑산 공원묘지는 45도나 되는 경사진 석벽에 산허리를 자르고 계단을 만들어 자연을 훼손하는 난개발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고 있으니, 장마철이면 산사태로 마을을 덮치고 유골들마저 유실되는 불상사를 초래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340봉을 오르는 길은 순하게만 달려오던 산길이 갑자기 급경사를 이룬다. 공원묘지 우측 절 개지를 따라 깔딱 고개를 치고 오르는 산 꾼들의 가뿐 숨소리와 무거운 발걸음에 심한 갈증을 느낀다. 340봉을 올라서면 소나무 그늘아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한다. 양서면과 서종면의 경계를 이루는 주능선은 동쪽으로 진로를 바꾸고 서종면에서 산 더덕 재배지로 조성하고 있는 탓에, 개활지 너머로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조망이 일품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늘어진 전선줄에는 접근금지 팻말이 붙어있고 수 만평의 너른 산자락에 수 십 년 된 거목들을 베어내고, 산 더덕과 산나물 재배지를 조성하는 것은 농촌소득을 위한 작목반의 활동으로 이해를 하겠으나 인가도 없는 첩첩산중에 거미줄 같은 미로를 만들어 산사태의 원흉이 되고 있는 임도의 볼썽사나운 모습은 산사나이들의 가슴에 또 한 번 깊은 상처를 안겨준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안부로 내려섰다가 완만한 능선을 여러 차례 오르내리며 힘을 비축하지만 전면에 보이는 461봉이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험준한 산세를 이루며 앞길을 가로막는다. 지금까지는 평탄한 길이라 선두그룹의 7명과 합류하여 큰 어려움 없이 행동을 함께 했지만 오르막길에서는 그들의 주행속도를 따르기에 역부족이라 점점 뒤로 처지고 만다. 나이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虛張聲勢(허장성세)가 아니고 보면 나이 60에 어찌 그들을 따를 수가 있단 말인가.

 

 

심한 고통 속에 정상에 올라서니 삼각점도 이정표도 없지만, 오른쪽으로 산굽이를 따라 목왕리가 내려다보이고, 전방으로 청계산의 주봉이 팔당공원묘지를 품에 안고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벗 고개를 오가는 차량들의 행렬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2시간동안의 산행으로 지친 몸을 보충하기위해 전망 좋은 정수리에서 배낭들을 풀고 있지만, 양수리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한 여력으로 아직까지는 참을만하여 물 한 모금으로 휴식을 끝내고 나 홀로 쉬엄쉬엄 길을 나선다.

 

 

전형적인 육산에서 유일하게 펼쳐지는 암릉 구간이 반가워 가파른 벼랑길을 조심조심 내려서면, 심한 봄 가뭄으로 대지가 바짝 마르고, 발자국에 걷어차이는 낙엽으로 뽀얀 흙먼지가 코로 입으로 마구 들어온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는 갈참나무 숲속의 사양 진 비알 길에는 생강나무가 샛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의 전령사로 길손을 유혹한다.

 

 

노란리본의 밤 도깨비가 누구의 분신인지 알 수는 없지만, 先踏者(선답자)의 발자취 따라 홀로 가는 이 길이 사색의 길이요. 휴식의 공간이라. 앞서가는 사람 없으니 조바심 나지 않고, 뒤처지는 사람 없으니 기다리지 않아도 좋으니 주위를 둘러보며 忙中閑(망중한)을 즐긴다. 아무리 등산이 혼자 하는 운동이라고 하지만 일행이 있다 보면, 남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오기로 무리한 주행을 하게 되고,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심한 부상을 입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몇 구비를 돌아가면 벗 고개로 내려선다. 산허리를 두 동강으로 잘라낸 깊고 깊은 절개지. 목왕리에서 문호리로 넘나드는 지방도로에는 이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많은 차량들이 지난다. 벗 고개를 넘어 문호리 쪽으로 가는 수능리 길목에는 현대문학의 거장인 황순원의 소나기 마을이 있어 서정시가 흐르는 무대가 펼쳐진다. 아늑한 분지 속에 그 분의 업적을 기린 문학관에 들어서면, 현대를 살아가는 각박한 우리에게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해 준다.

 

 

철조망을 피해 도로를 가로질러 잡목을 헤치며 능선을 따라 100여m 전진을 하면 목왕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고 청계산 4,5km의 이정표를 지난다. 3-400m의 무명봉 2개를 넘어 463봉에 올라서니 청계산이 지척에서 손짓하고, 남쪽으로 진로를 바꾸어 로프가 걸려있는 급경사를 내려서면 송골재에 도착한다. 소나무가 많아서 송골 재라고 한다지만, 옛사람들이 전해 오는 말이고 잡목들이 무성한 가운데 큰 소나무 한그루가 쉼터를 지켜주고 있다.

 

 

송골재에서 서남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목왕리 마을 뒷산에는 十八代祖 翼元公 金士衡 할아버지의 묘소가 있다. 경기도 문화유적으로 지정된 할아버지께서는 고려 충숙왕(1341년)에 태어나셔서 이성계를 도와 이씨조선을 개국한 공로로 좌의정이 되셨고, 태종7년(1407년)에 돌아가시기까지 많은 업적을 남기셨으나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混一彊理歷代國都之圖?(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제작하신 것이다.

 

할아버지의 가장 큰 업적인 混一彊理歷代國都之圖(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지리적 지식을 과학적으로 수집, 편집한 세계적인 지도로 그 원본은 미국 워싱턴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있고, 사본은 일본 京都의 龍谷大學과 島原市 本光寺등에 전해지고 있으며, 그 복사본이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지도는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의 古地圖일뿐만 아니라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로 길이가 171㎝, 넓이 164㎝의 대폭 지도로 絹紙(견지)에 그려진 彩色筆寫(채색필사) 지도이다. 태종 2년(1402년)에 좌의정 김사형, 우정승 이무, 이회가 만든 것으로 명나라와 일본 등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보완하여 완성을 하였으니 그 업적은 후세에 길이 남을 일이다.

 

 

친절하게 세운 이정표와 오르막 길섶에는 너구리길, 노루길, 청설모길, 다람쥐길을 알리는 앙증맞은 이름들이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듯 안내판에 생태학적인 설명까지 자세하게 기록하여 힘들여 오르는 산길에 쉬엄쉬엄 다리쉼도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산 교육장으로 양평군 관계자들의 정성어린 보살핌에 감사를 드린다.

 

 

오늘의 구간은 658m인 청계산을 정점으로 4-500m급의 능선을 오르내리는 완만한 산행이라는 대장의 설명에 얕잡아 보았지만, 벗 고개를 지나며 浮沈(부침)이 심한 전형적인 육산으로 50m의 비알 길을 내려가면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100m를 올라가야 하는 힘든 코스가 이어진다. 460봉을 오르는 가파른 오름길에서 성큼성큼 앞질러가는 선두가이드의 모습을 바라보며 젊음이 부럽기도 하고,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듯하여 흐뭇한 마음으로 쉬엄쉬엄 다리쉼을 하며 거북이 행진을 계속한다.

 

 

4시간 만에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청계산 정상에 올라서면 널찍한 공터에 세워진 정상석이 반겨주고,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가슴속이 후련하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한 몸 되어 넓은 바다를 이루는 두 물머리는 양수리를 부평초처럼 물위에 띄워 놓고, 실낱같이 이어지는 기맥의 주능선이 파노라마를 이루며 이곳으로 연결된다.

 

 

한국의 마테호른으로 불리는 백운봉의 멋진 자태가 용문산의 등줄기로 이어지고, 행그라이더 활공장으로 더욱 친숙한 유명산이 민 대머리 누런 고깔을 눌러쓰고 다음 종주 길에 만날 것을 기약하는 듯 반겨준다. 바람한 점 없이 따스한 봄볕아래 도시락을 풀어헤치고 겻 들이는 동동주 한잔으로 입가심을 하고 후미가 도착할 때 까지 30여 분간 꿈같은 휴식을 즐긴다.

 

 

정상에서 직진하면 국수역으로 내려가게 되고 종주 길은 동쪽으로 90도 방향을 틀어 급경사 길을 내려선다. 괴목과 바위가 어우러진 곳을 지나 10여 분간 진행하면 노송이 몇 그루 서있는 쉼터에서 서후리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산로가 나타나고, 양평군에서도 가장 오지로 손꼽히는 서후리가 왼쪽으로 내려다보인다. 주능선을 따라 쉬엄쉬엄 진행하면 서차남에서 고현으로 이어지는 된고개를 지나 490봉의 정상에 오른다.

 

 

높낮이가 별로 없는 무명봉을 넘나들며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고, 완만한 능선을 지나 살짝 올라간 곳에 538봉의 삼각점(양수 471, 1988 재설)이 있다. 20여 분간 주능선을 진행하면 느티나무가 있는 말고개에 도착한다. 서종면 서후리와 옥천면 신복리를 연결하는 통로인 이곳은 아직도 두 마을의 왕래가 빈번한지 족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노송 한 그루가 있는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가면, 옥산 1km못 미친 말머리봉에 오른다. 말머리봉에서 옥산을 지나 농다치 까지는 일반 등산객들이 다니는 길이라 등산로가 넓고 뚜렷하게 이어진다. 곳곳에 한화리조트에서 세운 이정표가 있어 등로를 이탈할 염려가 없다. 오른쪽으로 한화콘도의 하얀 건물이 유난히도 돋보이고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옥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석(578m)과 이정표(말머리봉 1.0km, 노루목 0.7km), 삼각점(양주 322, 1988 복구)과 벤치가 있는 공터는 힘들게 올라온 산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가다가 공터를 지나면 이정표(선녀탕 1.0km, 옥산 0.7km, 농다치고개 0.9km)와 벤치가 있는 노루목이 나온다. 직진(오른쪽은 한화리조트로 내려가는 하산로 임)하여 나무 계단을 따라 정상까지 올라간 다음, 왼쪽의 넓고 뚜렷한 등로를 따라가면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계곡에서 올라오는 37번 국도가 그림같이 펼쳐지고, 고개를 오르는 자동차도 힘에 겨운지 굉음소리가 요란한 농다치에 도착하며 남은구간도 무사히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속에 새로운 각오를 다짐해본다.

 

 

 

 

 

 

 

 

제 2 구간: 비슬고개- 농다치까지/ 20km

 

한강기맥 종주만은 산악회와 함께 완주하겠다고 수없이 다짐을 하였지만 집안의 대소사로 시간이 여의치 않아 4,5월을 불참하고 보니 초반부터 차질을 빗게 된다. 계획이 어그러지게 되어 종당에는 포기하고 마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으로 궁리 끝에 나 홀로 산행으로 빈 공간을 메우고 다음 일정에는 동참하겠다는 각오로 일주일 전부터 착실하게 준비를 한다.

 

 

한강기맥 중에서도 가장 험준한 용문산을 통과하는 구간이라 긴장도 되고 정상의 군부대를 어느 방향에서 지나는 것이 유리한지 하산지점은 어느 곳으로 할 것인지 고민 끝에 통행이 적은 비슬고개를 출발지로 정한다. 새벽 일찍 일어나 상봉동으로 달려갔지만 05시50분에 출발하는 첫차는 떠나버리고 6시 25분차로 단월면으로 가는 도중에 용문산의 허리에 걸려있는 먹구름이 마음에 걸려 초조한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정류소 맞은편 슈퍼에서 렌터카를 빌려 타고 비슬고개로 오르는 동안 남서풍의 강한 바람이 먹구름을 동쪽으로 밀어내며 답답하던 가슴도 활짝 열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장도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인적이 끊긴 비슬고개는 공허로운 바람만 불어오고 고개 마루 왼쪽으로 산불 강조기간 동안 입산을 금지하는 입간판이 붙어있는 비상도로를 따라 조금 진행한다. 완만한 절개지가 나오고 낮 익은 표지기들이 손짓하는 길 따라 숲속으로 들어서면 싸리봉까지 400여m의 고도차를 실감할 수 있는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20여 분간 안간힘을 쓰며 된비알을 오르다 완만한 능선에서 거친 호흡을 진정하면 또다시 급경사가 나타나고 20여 분간 비지땀을 쏟은 후에야 싸리봉(811m)에 올라선다. 작은 돌무더기와 119긴급구호 간판이 있는 이곳은 지난가을 도일봉(841m)에서 중원산(799m)으로 산행을 하면서 다녀간 곳이라 눈에 익은 곳이다. 진달래와 철쭉,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숲 속을 무한정 걸어야하는 답답함이 배너머 고개까지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90도 방향을 꺾어 급경사 내리막이 싸리재까지 이어지고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싸리재에서 또다시 오르내림이 반복되며 이정표가 세워진 770봉에 올라선다. 남쪽의 중원산 쪽으로 많은 리본이 달려있지만 이곳 까지는 안면이 있는 곳이라 느긋한 마음으로 휴식을 하며 앞으로의 여정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본다. 오른쪽으로 60도 방향을 틀어 진행하면, 얼레지 지는 곳에 샛노란 야생화가 다투어 피어나고 바람결에 너울대는 곰 취의 춤사위에 꾀꼬리가 화답하는 숲속의 요정에서 한없는 행복감속에 무아지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급경사 내리막길로 조개고개를 통과하면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고, 삼각점이 있는 735봉은 용조봉에서 올라오는 분기봉이다. 주위를 분간하기 어려운 숲속에서 용조봉(635m)쪽으로 내려서다 이상한 예감으로 뒤돌아보니 우측의 철쭉나무 가지사이로 빨간 리본이 고개를 내밀고..... 아 뿔사 철렁 내려않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원위치로 되돌아와 바로잡는다.

 

 

주능선에만 올라서면 용문산의 정상이 길잡이가 되어 편안한 산행이 될 것으로 예상을 하였지만, 막상 산에 들어서고 보니 울창한 숲속에 빠져 상황을 판단하기가 어렵고, 지나온 봉우리들도 어쩌다 모습을 보여주는 고독감속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735봉에서 한없이 내려서는 벼랑길은 문례봉(992m)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두려움이 앞선다. 300여m의 고도차를 극복해야하는 난관을 앞에 두고 계곡으로 곤두박질치는 발걸음에 문례봉이 하늘위로 점점 솟아오른다.

 

 

무뎌지는 발걸음이 천근의무개로 내려누르고, 높디높은 문례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애처롭기만 하다. 용문산의 수호신인가? 길섶에 버티고선 용두목이 힘겨운 발걸음에 쉬어가라며 자리를 내어주고 가파른 산 비알에 배낭을 풀고 시원한 맥주로 갈증을 푼다. 천신만고 끝에 올라선 문례봉 갈림길. 내친김에 정상에 올라섰지만 정상석은 고사하고 비닐조각에 그려진 안내문이 아니면 확인할 길이 없는 문례봉(992m).

 

 

무성한 숲이 시야를 가리는 정상에서 북쪽은 봉미산에서 올라오는 주능선으로 언젠가는 걷고 싶은 곳이기에 유심히 바라보며 갈림길로 되돌아선다. 갈림길에서 직진은 갈현마을로 이어지고, 기맥은 왼쪽의 내리막길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십자로 안부를 지나 무명봉을 넘어 문래재에 도착하면 펑퍼짐한 분지에는 蘭草芝草(난초지초) 흐드러진 야생화단지가 펼쳐지고, 나물 채취하는 약초꾼들의 구성진 가락이 계곡으로 울려 퍼진다.

 

 

용문봉(947m) 갈림길을 지나 비알 길 을 올라서면 전망대바위가 나타나고 육중한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는다. 용문산 코스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용문산의 줄기를 따라 기라성 같은 암봉들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용문산 관광단지를 사이에 두고 중원산(799m)과 도일봉(863m), 칠읍산(583m)이 머리를 조아리며 문래봉 너머로 오늘 걸어온 길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산 아래 관광단지 안에 있는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2년(913년)에 대경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지만, 절보다는 은행나무가 더욱 유명하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용문사입구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1,100~1,500여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62m, 밑 둥 둘레가 14m로 동양에서는 가장 큰 은행나무다. 신라의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심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를 내렸다는 전설이 있다.

 

 

녹슨 철조망 사이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철쭉향기에 벌 나비들도 자유롭게 넘나들건만 정상(1.157m)을 지척에 두고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 속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전망대바위에서 20여 분간 식사를 하고 철조망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길은 가시덤불 우거진 비알 길로 잠시라도 방심할 수 없는 긴장감 속에 중간 중간 지뢰경고판이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40여 분만에 정문 앞에 도착하니 빨리 내려가라고 호통을 친다.

 

 

마루금과 합류하여 뒤돌아보는 용문산의 정상은 공군부대의 중요 시설들이 밀집되어있는 천연요새로 한반도를 지켜주는 파수꾼이요. 우리 국민들이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24시간 철통같이 지켜주는 불침번이다. 어려운 코스를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에 피로도 말끔히 가시고 경쾌한 발걸음을 이어간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마루금은 무성한 숲 사이로 임도를 넘나들며 넓은 공터가 있는 절 개지를 두 번 지나며 30여 분간 진행하여 시멘트기둥이 있는 910봉에서 잠시 휴식을 한다.

 

 

방심은 금물인가? 내리막길로 내려서며 보이지 않던 리본들이 나타나고 우측으로 돌아가라는 표지가 붙어있지만  우회로로 판단을 하고 진행방향의 내리막길로 10여 분간 신바람 나게 달리며 미심쩍은 생각에 주위를 살펴보니 사라사 계곡과 용천사 계곡을 가로 지르는 능선 위를 내려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종주 길과는 너무도 멀어져 있는 발걸음. 뒤돌아보는 910봉은 몇 개의 전 위봉을 거느리고 하늘높이 솟아있는 난공불락으로 결국은 이곳에서 종주를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이다. 허탈감속에서도 다시 한 번 도전한다는 각오로 지친 몸을 이끌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다시 돌아온 910봉은 말이 없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에 순간적인 판단이 幸, 不幸의 갈림길이 되니 어찌 한시라도 방심할 수 있겠는가? 

 

 

커다란 교훈을 가슴에 안고 알바로 허비한 30분을 보충하기위해 휴식시간도 줄여가며 임도를 따라 내려오는 갈림길에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 는 심정으로 확인 또 확인하며 숲의 터널을 빠져나오면 옥천면에서 갈현리로 오르는 배너미고개에 도착한다. 비슬고개에서 배너미고개까지 한 구간으로 하는 종주 팀들이 있고 보면 6시간 30분 만에 1차적인 목표는 달성한 셈이지만 농다치 고개까지 종주 구간이 남아 있으니, 길옆의 간이주점에서 막걸리 한 사발로 원기를 돋우고 유명산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포장마차를 뒤로하고 임도를 가로막은 철 대문 왼편 숲속으로 들어서면, 낮 익은 표지기 들이 손짓을 하고 평탄한 마루 금을 3분간 진행하면 조금 전에 대문이 잠겨있던 임도로 내려선다. 고랭지 채소밭으로 통하는 길을 따라 10여 분간 진행하면 숲길도 끝이 나고 광활한 대지위에 펼쳐지는 수백만평의 고랭지 채소밭, 민 대머리 황토밭 이랑사이로 미로와도 같이 뻗어있는 임도를 따라가다 제풀에 지친다. 

 

 

아침부터 흐렸다 개였다 변덕을 부리던 날씨가 드디어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를 뿌리며 주위가 어둠속으로 묻혀버린다. 거센 비바람에 평화롭던 숲속의 산새들도 숨을 죽이고 인적이 끊긴 황량한 벌판 위를 걸어가는 몰골이 처량하지만 목적지를 향하는 발걸음을 어찌 막을 수 있는가? 하지만 용문산의 태산준령을 무사히 넘도록 배려해준 날씨에 감사를 한다. 감시초소를 지나 대부산(743m) 갈림길에 들어섰지만 악천후로 10분 거리에 있는 정상을 포기하고 피곤한 육신을 이끌며 악전고투로 활공장 정상에 오른다.

 

 

평소 같으면 하늘을 날아오르는 헹그라이더의 묘기를 감상할 수 있겠으나 지근거리에 있는 유명산의 정상도 모습을 감추는 악천후 속에서 언덕아래 나무숲속으로 피신을 한다. 비 개인 유명산(862m) 정상이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사방 백리길이 한눈에 들어오는 기맥종주 최고의 전망대가 펼쳐진다. 제철만난 야생화가 지나는 길손을 유혹하지만 건너편의 소구니산(800m)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늦출 수가 없다.

 

 

울창한 숲속으로 접어들어 급경사 내리막길로 곤두박질치며, 올려다 보이는 소구니산에 미리 겁을 먹지만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에 800m의 정상도 발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오늘의 어려운 여정도 마감을 하게 된다. 아직도 농다치 까지는 30여분이 소요되지만 내려가는 수월한 구간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숲길을 거닐며 770봉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진행하여 양평에서 청평으로 오가는 37번국도상의 농다치고개에 도착하며 20여km의 장거리구간을 8시간 45분 만에 완주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