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 - 앵자지맥
앵자 지맥 /63.5km
앵자지맥은 한남정맥이 두창리 고개를 넘어 용인시 원삼면 문수봉(403.2m)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곱든고개(57번국지도), 칠봉산(447m), 갈미봉(447m), 용실산(422m), 배마실고개, 마수고개, 방도리고개, 성황당고개, 해룡산(367m), 회고개, 중부고속도로, 국수봉(427m)갈림길, 넉고개(3번국도), 정개산(433m), 천덕봉(635m), 남이고개(98번국지도) 앵자봉(667m)을 거쳐 염치고개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쳐 해협산(531m)과 정암산(403m)을 빚어놓고 종여울(337번 지방도)에서 남한강으로 그 맥을 다하는 약 63.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앵자지맥도 검단지맥과 같이 수년에 걸쳐 일반산행으로 다녀온 구간을 보충하여 종주산행으로 정리해본다.
제1구간: 문수봉 - 성황당 고개 / 16km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날이다. 2009년의 마지막 산행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앵자지맥을 선택한다. 대중교통으로 서초 구민회관 앞에서 경부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용인터미널로 운행하는 5002번 광역버스(40분소요)에 오른다. 용인 버스터미널에서(운학리- 원삼면 경유) 8시10분발 10-4번 버스로 곱든 고개를 지나면, 중소기업인력개발원입구 내동부락(버스정류장엔 용암) 삼거리에서 하차한다. 오른쪽 도로 옆에는 중소기업 인재개발원, 법륜사, 용인시 농촌기술센터, 삼성 국제경영연구소 등의 간판이 있다.
내동교회 앞을 지나 중소기업 인재개발원 본관 건물 직전의 주차장에서 오른쪽 숲 속으로 들어가면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나타나고, 부지런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약수터를 중심으로 문수봉 정상까지 이어진다. 용인을 지나며 피어오르기 시작하던 안개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어진다.
문수봉(403m)정상에는 이정표(↑곱든고개, ←묵리.학일, ↓매봉재)와 삼각점(448재설, 78.9 건설부), 무인관측소와 운동시설에 휴식공간인 팔각정이 반겨준다. 양재역에서부터 함께 온 부천의 서원수 님(011-712-7380)은 쌍용지맥을 타기위해 매봉재에서 올라온 한남정맥을 따라 서쪽의 묵리쪽으로 진행하고, 제각기 가는 길이 다르니 아쉬운 작별을 한다.
북쪽으로 열리는 곱든고개 방향의 등산로는 약간의 굴곡이 있고, 소나무와 참나무가 많은 호젓한 능선길이다. 짙은 안개로 주위를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엉덩방아로 톡톡히 신고식을 치루고 정신을 바짝 차린다. 이정표(↑곱든고개, ↓문수봉, →삼성레포츠센타)가 있는 무명봉에서 약20여 m를 지나 면 선명한 직진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희미한 능선을 따라야 한다. 이정표는 직진을 가리키고 있지만 그대로 따르면 곱든고개(57번국도)로 내려선 다음, 다시 동물이동통로 위로 올라오는 번거로움이 있다.
왼쪽으로 능선을 따라가면 곱든고개 옛길이 나타난다. 홍명희 선생이 지은 소설 “임꺽정”에서 임꺽정 행세를 하다 진짜 임꺽정에 걸려드는 곱든고개가 바로 이곳이다. 57번 국도가 생기기 전에는 용인에서 경안천을 따라온 사람들의 발길이 이곳을 통해 원삼면과 외사면으로 왕래를 하게 되면서 산적들의 은신처가 되었으리라 짐작을 해 본다. 고갯길을 따라 오른쪽 사면 길을 내려서면 곱든고개 위로 설치한 동물이동통로가 나오고, 철도 침목으로 깔아놓은 통로가 엉성하기 짝이 없다.
고갯마루를 넘는 자동차의 굉음소리가 안개 속을 뚫고 귀청을 파고든다. 안개는 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에 많이 일어나는 현상으로 호수나 습지가 많은 곳에서 안개 끼는 빈도가 많아진다. 지면이 그 상층의 공기보다 더 차가울 때, 즉 기온역전(氣溫逆轉)이 존재할 때 나타난다. 또한 안개는 찬 공기가 따뜻하고 습윤한 지면 위를 이동할 때도 나타나는데, 이는 지면에서 수분이 증발되어 포화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대류는 안개를 위로 수송하여 습윤한 지면으로부터 김이나 연기가 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 백과사전-
곱든고개를 지나며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고 겨울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설화가 피어난다. 함박눈처럼 탐스러운 설화는 아니라도, 사슴뿔에 돋아나는 보송보송한 솜털처럼 억새풀과 나뭇가지에 돋아난 새하얀 결정체. 빨간 열매와 탕감나무 가지에 피어나는 설화는 꽃꽂이의 장인들도 흉내 낼 수 없는 신이 내려주신 선물이다. 실눈처럼 태양이 안개 속을 파고들면, 사르르 녹아내리는 설화는 부지런한 산 꾼들만이 즐길 수 있는 공유물이다.
산책로처럼 뚜렷한 일반등산로는 사암리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로이고, 왼쪽으로 내려다보이는 해곡동 계곡에는 열반종의 총 본산인 와우정사가 있다. 연화산 기슭의 와우정사는 불교 박물관처럼 수많은 부처님들이 모셔져 있고 공원처럼 아름답게 조성된 명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대한불교 열반종의 총본산으로 1970년 실향민인 김해근(법명 해곡 삼장법사)이 부처의 공덕으로 민족화합을 위해 세운 호국사찰이다. 열반전에는 인도네시아 향나무로 조성한 세계최대(길이12m, 높이3m)의 열반상(와불상: 누워있는 불상)이 봉안되어있고, 대각전에는 석가모니가 고행 끝에 해탈의경지에 달함을 표현한 석가모니의 고행상이 있다.
범종각에는 제24회 올림픽경기대회 때 타종했던 무게 12만 톤의 통일의종,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세계 만불전에는 한국불상을 비롯하여 중국·인도·미얀마·스리랑카 등 아시아 각지에서 들여온 3,000여 점의 불상이 봉안되어있다. 이밖에 경내에는 황동 8만5천근으로 10여 년간 만든 장육존상 오존불과 국내 최대의 청동미륵반가유상, 그리고 석조약사여래불이 있다. 절 입구에는 높이 8m의 거대한 불두(佛頭)가 있는데 불신(佛身)이 완성되면 100m가 넘는다고 한다. -백과사전-
곱든고개 이후에도 소나무와 참나무 숲속으로 연결되는 일반 등산로를 따라 약간의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좌우로 굴곡이 있지만, 뚜렷한 능선을 따른다. 365봉을 지나며 고만고만한 봉우리 4-5개를 넘으면, 천주교 양지성당에서 세운 흰 철판의 이정표(↙미리내성지(은이공소), ↖골배마실, ↑등산로)에서 직진으로 능선을 따른다. 앵자지맥을 따르다보면 천주교의 성지와 인연이 깊은 곳을 경유하게 된다.
미리내 성지(美里川 聖地)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있는 한국 천주교의 사적지이다. 1801년 신유박해와 1839년 기해박해 당시 경기도와 충청도의 천주교 신자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았던 지역이며, 1846년 병오박해때 순교한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신부와 1866년 병인박해때 순교한 이윤일(요한)의 시신이 이곳에 안장되면서 순교 사적지가 되었다. 1853년 4월 12일에는 김대건신부에게 신품을 준 천주교 조선교구 교구장인 페레올 주교도 이곳에 안장되었다.
김 신부가 소년 시절을 보낸 골배마실에서 불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은이 마을은 그가 모방 나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신학생으로 간택되어 마카오로 파견된 곳이다. 또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지가 바로 은이 공소로서 「용인 천주교회사」(오기선 신부 감수, 조성희 지음)는 이에 대해 "은이 공소는 조선 교회 사상 최초의 본당"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골배마실 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소년시절을 보낸 곳으로, 부친을 따라 충남 당진에서 이사 온 김대건은 골배마실에서 모방신부를 만났고, 그에 의해 마카오로 유학 보내기까지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닦으며 유학을 준비했다고 한다. - 백과사전 -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산등성이에 모처럼 소나무가 숲을 이루는 형제봉 갈림길을 지난다. 가파른 경사면에는 안전로프가 걸려있고 등산로 좌우로 나무벤치가 있는 곳을 지나면, 삼각점(312복구 769건설부)과 이정표(←2.2km 곱든고개, 칠봉산, 갈미봉1.2km→)와 표지목이 있는 칠봉산(446.8m)에 도착한다. 갈미봉 방향으로 내려서는 능선주변에는 참나무와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동안 완만하고 편안한 지맥을 따라가면 안전로프가 설치된 통나무 계단이 나온다.
왼쪽 계곡에는 골프장의 클럽하우스가 내려다보이고, 건너다보이는 산 정상에는 유난히도 커다란 골프공의 조형물이 시선을 끈다. 등산로 좌우로 나무벤치가 있는 곳에서 살짝 내려섰다 가파르게 올라서면 이곳에도 수백 년 된 소나무가 숲을 이루는 갈미봉(443m)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 만든 긴 나무의자 2개와 이정표 (←2.2km 칠봉산, 갈미봉 400m, 용실산0.8km↗)가 있다. 갈미봉에서 서북쪽(10시방향)으로 내려서면, 듬성듬성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발길에 차이는 낙엽소리를 반주삼아 달려가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의 사암리 방향은 입산 통제 지역이고, 왼쪽의 용실산 방향으로 진행을 하여 통나무 계단을 올라서면 용실 고개에 도착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슬로프를 지치는 스키어들의 모습도 보이고, 전망 좋은 공터에 오르면 곤돌라와 설원의 슬로프, 그 아래로 골프장의 그린이 한 폭의 그림처럼 환상적이다. 길지는 않지만 가파른 경사면을 치고 오른다. 왼쪽으로 작은 초록색 산불감시 초소로 보이는 시설물을 지나 30여m 진행하면 파인리조트 리프트 종착점이다.
정상에 있는 나무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하며 경사면을 내려다보면 설원의 슬로프에는 젊음을 불사르는 스키어들의 행진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제 스키와 골프도 대중 스포츠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60년대를 생각한다면 먹고살기도 급급한 시절에 스키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지 않았던가. 넘기 힘든 보리고개를 극복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불꽃같이 타오르는 새마을 운동으로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국력이 신장되었으니 우리의 자식들이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흐믓한 마음으로 발길을 재촉하면, 왼쪽 사면으로 리조트와 골프장의 전경이 펼쳐진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용실봉(422m)에 올라서면, 이정표(←0.8km 갈미봉 - 용실산 - 독조봉1.0km→)와 나무벤치가 있어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 쉬어갈수가 있다. 용실산에서 북동쪽으로 5-6분을 내려서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무수막-갈미봉-청소년수련원→)가 지시하는 대로 지맥은 왼쪽 무수막 방향이고, 오른쪽의 청소년수련원 쪽은 독조지맥이 분기되는 곳이다.
독조지맥이란 한남정맥의 문수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앵자지맥이 칠봉산(447m)과 갈미봉(447m)을 거쳐 용실산(422m)에서 앵자지맥은 북쪽 앵자봉으로 이어지고 또 하나의 산줄기가 동쪽으로 분기하여 독조봉(432m), 건지산(411m), 소학산(309m), 봉의산(315m), 대덕산(309m), 마옥산(445m), 노성산(269m), 돌박지산(166m), 철갑산(225m), 신통산(279m), 달걀봉(218m), 중군이봉(223m)을 거쳐 청미천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59km의 산줄기를 말한다.
獨朝峰(독조봉) 가는 길. 400여 m의 높이라면 대수로울 것이 못되지만, 주위를 압도할 만큼 뾰족하게 첨탑을 이루고 있는 산이라 만만하게 볼일이 아니다. 하지만 先踏者(선답자)들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다녀오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언젠가는 독조지맥을 종주하게 될 경우, 진입로가 만만치 않은 독조봉을 빼놓아서는 의미가 없으므로 미리 답사를 하자는 뜻이 아닐까 싶다. 급경사로 내려가는 길은 다시 올라와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전면에 보이는 목표물이 점점 높아진다는데, 오금이 저리고 만다. 안부에 내려서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으로 임도 수준의 등산로가 열린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정상에 올라서니, 노송의 그늘아래 시원하게 펼쳐지는 전경이 너무도 아름답다. 우선 목재로 만든 전망대가 예술적인 작품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남쪽으로 바라보는 전경은 흐린 연무에도 지나온 앵자지맥과 지나야할 독조지맥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또한 멋지게 생긴 정상석(432m)과 양지주민들이 매년 해돗이 행사로 축제의장이 열리는 곳이라 말끔하게 정비가 되고 통신 안테나가 자리 잡고 있다.
생각지도 않은 융숭한 대접을 받고 보니, 피로도 말끔히 사라지고 되돌아오는 발걸음이 아주 편안하다. 왕복 20분이 아깝지 않을 독조봉을 뒤로하고 무수막쪽으로 내려서며 지형을 살펴보면, 칠봉산에서 배미실 고개까지는 골프장을 왼쪽으로 끼고 도는 형상이라 갈림길이 나오면 무조건 왼쪽으로 돌면 된다. 고도는 점점 낮아지고 평지나 다름없는 안부에서, 전면에 높은 봉우리하나가 앞을 가로 막는다. 326.8봉 오름길이 독조봉 오르는 것 보다 더욱 힘이 드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산의 높이보다는 표고차에 의한 경사각이 더 중요한 때문이 아닐까.
다리에 경련이 일도록 안간힘을 쓰며 올라선 326.8봉은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지맥은 선답자들의 리본이 가리키는 왼쪽 능선이다. 274봉을 내려서면 골프장(파인리조트)진입로가 나오고,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도로가에는 골배마실성지 2km의 표지석이 있고, 17번국도(舊도로)의 도로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100m정도 가면 아우디자동차 광고판이 있는 배미실고개가 나온다.
배미실고개에서 마수고개까지는 낮은 구릉으로 지맥이 연결되지만, 갈림길이 수시로 나타나고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는데 어려움이 많으므로, 도로를 따르는 것이 편하다. 배미실고개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새로 건설된 17번국도가 지나는 사거리에서 양지IC 진입로가 있는 왼쪽으로 따른다. 42번 국도와 교차하는 사거리에서 42번 국도를 따라 오른쪽(이천방향)으로 가면 마수고개에 도착한다. 마수고개에서 양지보도육교로 도로(42번국도)를 건너면 표지판(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1500m)이 보인다.
총신대 방향으로 원옥FA엔지니어링, 담안빌라, 화신가구, 삼성전원마을 입구를 지난다. 왼쪽으로 보이는 능선이 지맥이지만 영동고속도로의 관통으로 지맥이 단절되어 우회로를 택한다. 도로를 따라 영동고속도로를 통과하면,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표지판 직전에서 왼쪽능선으로 올라서는 길이 들머리가 된다. 오른쪽 능선으로 정돈이 잘된 묘지위로 오르면, 총신대학교 전경이 내려다보이고, 뚜렷한 산길이 능선을 따라간다.
경사면이 급한 능선을 올라 신학대학원 방향에서 오는 갈림길을 만나고, 지맥의 주능선을 따라 53번 송전탑을 통과한다. 송전탑아래 공터에서 지나온 양지리조트와 지맥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등산로는 그런대로 뚜렷이 나있지만 수시로 나타나는 갈림길이 애를 먹인다. 오른쪽으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바라보며 돌아간다. 삼각점봉을 지나면 철탑공사를 위한 임도공사가 한창이다.
임도를 따라가면 왼쪽으로 아시아나 골프장이 내려다보인다.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서면 왼쪽으로 멀리 기남이고개도 보이고, 무명봉을 넘어 다시 임도로 내려선다. 삼각점(이천 488, 1989 재설)이 있는 420봉을 내려서면 "제일리" 이정표가 나무에 걸려있고, 마루금은 왼쪽으로 내려서는데, 잘 정비된 헬기장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면 이정표(←아시아나 C C, 정수리 ↑금박산, 추계리→)가 있는 고개가 나온다.
가파른 경사면을 치고 올라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이정표(↑벧엘교회)가 있는 고개를 지나 금박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마루금은 직진이지만 20여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금박산을 마다할 리가 있는가? 오른쪽 사면 길을 따른다. 이정표(기념관, 벧엘교회)를 지나 오르내림을 반복하면 삼각점(판독불가)과 표지목(금박산 418m), 이정표(순교자 기념관 2km)가 있는 정상에 올라선다. 되돌아온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425봉에 올라선다.
전방에 군부대 철조망과 초소가 나온다. 여기서는 철조망을 따라 왼쪽으로 내려간다. 내무반 건물이 나오고, 다시 초소가 나온다. 철조망이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곳에서 철조망을 버리고 왼쪽능선으로 내려가면 방도리 도로가 나온다. 초조와 긴장 지루함속에 1시간이 넘는 철조망과의 동행은 마루 금을 잇는 산 꾼들에게는 가장 피곤하고 고달픈 구간이다. 한남정맥을 진행하며 수시로 지나던 곳이 군부대 철조망인데 이곳같이 제지가 심한 곳이 없다. 우리야 알 길이 없지만 군부대의 중요한 기지가 있는 것으로 짐작을 하며, 초병들의 지시대로 중간에 마루금을 탈출하여 도척 저수지가 있는 공말쪽으로 내려서고 만다.
허탈한 마음으로 마을길을 따라 가면서도 시선은 마루 금을 향하고, 방도리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고갯마루 오른쪽에 보이는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창원황씨 묘지가 있다. 등산로 중간에 있는 표지석(시멘트구조물)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부대연병장이 내려다보이고 왼쪽으로도 건물이 보인다. 전면으로 벌목지대가 펼쳐지며 시야가 트인다. 왼쪽으로 벌목지대 경계선을 따라 내려오면 함평이씨 묘를 지나 임도로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푸른색 플라스틱 대형 물통이 있고, 묘지위를 지나 작은 무명봉에 오른다. 실향민들의 묘지를 지나면 망향비가 서있다. 왼쪽으로 농공단지가 성황당고개까지 이어지고 평지돌출 형으로 도척면의 너른 분지위에 솟아오른 태화산(641m)이 주위를 압도하며 그림같이 펼쳐진다. 공장의 앞마당을 가로질러 32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성황당 고갯마루에 올라 제1구간의 산행을 종료한다.
제 2 구간 : 성황당고개 - 넉고개(3번국도) / 12km
2년 전 종주산행으로 넉 고개에서 성황당 고개까지 종주 한 것을 편집하여 역주행으로 정리한다. 오늘은 일 년 중에서도 가장 춥다는 大寒 이다. 대한이 동생인 소한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이 있듯이, 오늘아침 서울지방의 최저기온이 영하 2도에 낮 최고 기온이 6도로 예보하고 있으니, 평년 기온보다 무려 6도나 높아 춘 삼월의 날씨를 보이고 있다. 우리 서민들이야 겨울나기가 수월하지만 그래도 추울 때는 추워야 제 맛이 아닌가?
전국을 누비며 산을 찾아가는 우리 산 꾼들도, 자연이 집근처를 중심으로 산을 오르게 되는데, 이번에는 이천시와 광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양각산과 해룡산을 찾아가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앵자 지맥이라는 생소한 이름이 나의 시선을 끌게 된다. 지도를 정치하여 보니 그럴싸한 산맥이 형성되고, 이미 여러 명의 산객들이 산행기를 올려놓은 상태이다.
문헌에 의하면 광주시 남종면의 검천리를 시작으로 정암산과 해룡산을 거쳐 앵자봉을 정점으로 남쪽으로 내 달리는 지맥은 남이고개를 지나 천덕봉에서 남서진하며 정개산을 일구고, 동원대학의 뒤편으로 내려와 3번국도가 지나는 넉 고개를 통과하게 된다. 이곳까지는 지맥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답사가 끝난 곳이라, 넉 고개에서 해룡산을 지나 성황당 고개까지가 오늘 종주의 일정이 전개된다.
등산은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을 낸다는 나의 습관대로 서울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는 산이지만, 새벽부터 서둘러 도봉산역의 환승을 시작으로 건대 앞에서 2호선으로 강변역에서 동원대를 오가는 1113-1번의 좌석버스로 순례하며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천호동의 시가지를 통과하고, 중부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광주에서 곤지암으로, 종점인 동원대입구의 넉 고개 정류장에 내려선다.
선답자 들의 종주기록에 의하면 7시간이 넘는다고 하지만, 기록과 알바를 하며 보낸 시간이라 11km에 대략 6시간을 잡으면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을 한다. 들머리를 찾기 위해 고개 마루에 올라섰지만 절개지에는 키 높은 펜스가 가로막아 어쩔 수 없이 되돌아 내려와 무선송신탑이 있는 골목길로 들어선다. 숲 사랑 농원의 입간판이 있는 왼쪽의 묘목 밭을 가로 질러 절개지위로 올라서며 본격적인 들머리가 시작된다.
산행에 필요한 장비로 중무장을 하고 보무도 당당히 서진하는 발걸음에는, 나 혼자만의 여유로움으로 경쾌한 리듬 속에 두 활개 활짝 펴고, 가시덤불 헤치며 284봉을 향하는 중에 잡목이 발길을 부여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시야는 별로 좋은 편이 아니지만, 등산로는 뚜렷하여 2005년 利川 市界답사 리본과 지금은 진양기맥을 더듬고 있을 화요맥의 竹川 선생의 리본이 길잡이가 되어 수월한 산행이 이어진다.
광주시와 이천시의 경계를 아우르는 종주 길은 말끔하게 간벌을 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는 곳이지만, 거칠 것이 없고 길섶에는 약용으로 널리 알려진 엄나무가 앙살 맞은 가시를 내보이며 자신을 과시한다. 산초나무와 아카시아는 날카로운 가시로 자신을 보호하고, 옷 나무는 진한 액으로 남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신책으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10여분 만에 284봉의 정수리에 올라서면, 1987년 재설된 이천 476번의 삼각점이 낙엽 속에서도 고개를 내 밀고, 민 대머리로 밀어버린 정수리는 그런대로 조망이 이루어진다. 뒤편으로 정개산의 정기를 받은 동원대학이 아늑한 분지 속에 둥지를 틀고 있다. 종주 길은 남쪽으로 틀어지고,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라서 인지 낮은 구릉지대로 내려서는 경사가 제법 가파르다.
아름드리 거목들이 길가에 누워 있는 것을 바라보며 뿌리 약한 나무들이 비바람에 맥을 못 추고, 허장성세로 풍채가 거창해도 내실이 없으면 저 나무 등걸과 다를 바 무엇이 있겠는가? 대표적인 나무가 우리나라 야산의 계곡을 점령하고 있는 아카시아라 할 수 있겠다. 완만한 능선 길에는 간벌로 잘려진 나무들이 등산로를 가로막아 장애물을 통과하기에 진이 빠진다.
광주시 신촌리와 이천시의 수광리를 잇는 서낭당 고개 마루에는, 고목나무에 청사초롱을 달아놓고 앙증맞은 신랑각시의 목각 인형을 놓아둔 것으로 보아 그 옛날 결혼한 새 색시가 가마를 타고 이 고개를 넘으며,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던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서낭당 고개에서 절 개지를 치고 오르는 길은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고, 삼각점이 있는 319봉에서 한 숨을 돌리는데, 갑자기 달려드는 개(犬)에 氣節草風(기절초풍)으로 머리칼이 곤두서며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주위를 빙빙 돌며 냄새를 맡아보고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데,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꼬리를 흔들며 주인에게로 달려간다. 주인의 손에는 송아지만한 개들이 두 마리나 더 있는 것이 아닌가?
훈련 받은 개들이라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사람을 물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하지만, 산속에서 느닷없이 달려드는 맹견에 놀라지 않을 장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글자도 없는 삼각점을 디카에 담고 서둘러 현장을 떠나는데, 머지않은 곳에서 아빠를 따라 산에 올라온 삼남매의 천진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에 평온을 되찾는다.
한북정맥의 종주 길에서 삽살개에 당한 수모를 떠올리며 단숨에 344봉에 올라서니 잡목 사이로 건너편의 국수봉(427m)이 어른거리고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딛는 발길에 걷어차이는 낙엽소리만이 정적을 깨트린다. 안부에 내려서면 완만한 분지가 형성되고 종주 길은 북서쪽으로 진행한다. 참나무가 무성한 능선에서 앙상한 가지사이로 실촌읍(곤지암)의 너른 평야와 앵자봉(667m), 무갑산(578m)이 마루금을 이루며, 실안개가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오늘의 구간에서 가장 높은 국수봉(427m) 오름길에서 또 한 번, 비지땀을 쏟으며 목구멍에서 가래 끊는 소리가 절로난다. 한겨울의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정상에는 참나무들이 즐비하게 공터를 이루고 한 여름 쉬어가기 좋은 쉼터가 마련되어 있지만, 삼각점도 이정표도 없는 쓸쓸한 산정에서 외로움이 가중된다. 북쪽으로 열리는 일반등산로를 따라 시원스런 영봉들이 유혹을 하지만, 종주의 사명을 앞 세우며 남쪽으로 열려있는 종주 길로 내려선다.
한 겨울임에도 무성한 잡목으로 시야를 가리고, 길목마다 간간이 붙어있던 리본들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겨울 내내 오간사람 하나 없는지, 급경사 내리막길에는 발목을 덮는 낙엽들이 지천으로 깔려있고, 중부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의 굉음소리가 귀청을 파고든다. 어느새 고속도로 절개지위에 도착하며 주위의 경관이 펼쳐지는데, 안타깝게도 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루 금을 이탈하고 말았다.
종주의 마루금은 남쪽으로 활등같이 휘어진 다음 능선으로 300여 m의 간격을 두고 있지만, 급경사를 20여 분간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간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설일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고속도로를 건너는 비상통로가 계곡의 수문으로 연결되어 어차피 이곳에서 합류를 하게 된다. 큰 위안을 가지며 미안한 일이지만, 도로공사의 직원들이 사용하는 철 사다리로 50여 m나 되는 절개지의 벼랑길을 내려와 왼편으로 돌아가니 차량들이 통과할 수 있는 큰 암거로 수월하게 고속도로를 통과한다.
밤나무 밭을 거슬러 오르며 절 개지를 향하는 비알 길은 가시덤불과 앙살 맞은 철쭉나무가 사정없이 앞길을 가로막는다. 수십m의 절개지 아래로 달리는 차량들이 홍수를 이루고,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며 마루 금에 올라서니 건너편의 종주길이 나의 변칙적인 산행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반색을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으로 호흡을 가다듬는다. (고속도로 통과하는데 20여 분간 소요 )
가시덤불 헤치며 오르는 386봉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쇠 음달 사면에는 수북이 쌓인 낙엽위로 지난번에 내린 눈이 살포시 덥혀있어, 눈 위에 발 도장을 찍으며 한발 한발 내 딛는다. 천신만고 끝에 정수리에 올라서니 이곳 또한 아무런 흔적도 없이 무명봉의 서러움에 떨고 있는데, 건너편으로 높이가 한 치도 틀리지 않는 양각산(386m)이 지척에서 미소 지으며 해룡산(367m)이 마주보고 손짓을 한다. 남쪽으로 내려딛는 발걸음은 목적지가 멀지 않다는 희망으로 가볍기만 하고, 동지섣달의 짧은 해가 중천에 떠있어도 해거름의 한기가 옷깃을 파고들며 갑자기 허기가 진다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는 양지바른 너럭바위에 자리를 잡고 간단한 행동식으로 요기를 하고 양주한잔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보니, 짜릿하게 흐르는 엔돌피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듯 내딛는 발걸음에 힘이 솟는다. 잠시 후 가지가 두 갈래로 갈라진 시커먼 거목이 버티고선 서낭당이 바로 회고개다. 서쪽은 천문대 돔과 같이 생긴 농장을 지나 노곡리로 가는 길이고, 동쪽은 서 이천 인터체인지가 있는 장암리로 가는 길이다.
계곡으로 직진하여 언덕을 올라 곧바로 우측으로 90도 방향을 틀면 해룡산으로 가는 마루 금이 되고 앞에 보이는 높은 봉우리는 종주 길에서 벗어난 양각산 정상이다. 아직 시간도 이르고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양각산(384m)을 찾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무리인줄 알면서도 발길을 내딛는다. 무성한 잡목사이로 뚜렷한 오솔길을 따라 십 여분을 진행하면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되고, 낙엽이 수북이 깔린 비알 길에는 100여 m 에 걸쳐 로프까지 설치되어 후둘 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정상에 올라선다.
남쪽으로 도드람산(349m)과 설봉산(394m)이 마루금을 이루고, 북쪽으로 국수봉(427m)과 386봉이, 서쪽으로 해룡산(366m)과 태화산(641m)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정상에는 표지석이 둘씩이나 서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금강 산악회에서 세운 비석에는 높이를 564m로 적어 놓아 실소를 금할 수 없으며 그 옆의 검은 오석에는 양각 산악회의 명단을 모조리 적어 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또한 국토 지리정보원에서 펴낸 1:50.000의 지도의 표기가 잘못된 것을 확인하게 된다. 지도상에는 북서쪽으로 700여 m 떨어진 표고 241봉을 정상으로 표기하고 있어, 회고개 에서 지도를 보며 아리송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예정대로 양각산을 답사하고 회고개 까지 되돌아오는 데는 45분이 소요되고 해룡산으로 가는 길목에 리본 하나를 걸어놓고 잡목을 헤치며 달려간다. 무수한 가시덤불이 앞을 가리고 천문대의 돔과 같이 생긴 농장을 옆으로 바라보며 소나무 숲 속을 지나 임도 사거리에 도착한다. 너른 분지에는 조경농장이 자리 잡고, 도척면 소재지인 노곡리와 마장면 유다리로 통하는 길목을 가로 질러 야산의 숲 속으로 들어선다.
한동안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는지 희미한 오솔길에 낙엽만 풀풀 날리고 완만한 구릉지를 십 여분 진행하면 맞은편으로 양의 뿔처럼 뾰족한 양각산(386m)이 올려다 보이고 참나무의 거목들이 숲을 이루는 해룡산(366m) 정상에 올라선다. 오늘의 주 임무를 완수했다는 자신감으로 주위를 둘러보지만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조금 빗겨난 곳에 글자도 없는 삼각점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 그 옆에 리본 하나를 걸어 놓고 느긋한 마음으로 지도 정치를 시작한다.
서쪽으로는 도척 저수지 건너편으로 태화산(641m)이 우뚝 솟아있고, 남서쪽으로는 낮은 구릉이 이어지는 성황당고개를 지나 되재 까지 실금을 이루며 종주길이 이어진다. 가파른 경사지에서는 스틱도 무용지물로 나무 등걸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면서 안부로 내려선다. 성황당고개는 눈짐작으로도 이탈할 염려가 없고, 갈림길이 수시로 나타나지만, 물류센타를 겨냥하여 공장사이로 빠져 나오면 32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방도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며 앵자지맥의 2번째 구간도 종료한다.
제 3 구간: 넉 고개 - 남이고개 / 14km
2005년 일반산행으로 다녀온 구간을 재구성해 본다. 겨울 산행으로 안성맞춤인 불갑산을 마음에 두고 2개월 전부터 수첩에 메모를 하며 손꼽아 기다리던 중 12월 들어서며 매서운 한파와 함께 서해안에 쏟아지는 폭설이 정읍과 고창을 중심으로 기상 관측대가 생긴 이래 연일 신기록을 세우며 애간장을 태우더니 드디어 21일에는 하루의 적설량으로는 최고기록인 40여cm가 몰아치며 호남고속도로까지 눈 속에 발이 묶이고 수천채의 비닐하우스와 주택이 붕괴되는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말았다.
부랴부랴 서울근교의 산을 물색하던 중, 이천시와 광주시를 가르는 정개산과 천덕봉 산줄기를 답사하기로 변경을 하고 이른 새벽 집을 나선다. 시시각각으로 전해지는 서해안의 눈 소식과 서울의 아침기온이 영하 11도라는 한파 소식으로 출근길의 시민들이 동동걸음을 친다.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짓날이다. 강변역에서 동원대를 오가는 1113-1번의 좌석버스로 동원대까지 이동하는 중에도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눈이 쌓여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갖가지 상념에 사로잡힌다.
동원대에 도착하니 아침8시, 바람까지 불어오는 살인 한파에 두려움이 앞선다. 오그라드는 몸을 추 수리며, 중무장을 하고 서둘러 들머리로 나선다. 3번국도가 지나는 넉고개에서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이천의병전적비가 나온다. 1896년(고종 33) 1월 이천수창의소(利川首倡義所) 의병들이 일본군 수비대 1백 명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적군을 거의 전멸시키며 승리를 거두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1988년 7월 이천 지역 토박이 원로들의 모임인 이원회(李元會)가 중심이 되어 넓고개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고 이천수창의소 의병들의 구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철탑공사를 위해 개설한 임도를 따라가면 이정표(등산로.약수터) 앞에서 들머리가 시작된다. 허물어진 나무계단을 따라 가파른 절개지를 올라서면 왼쪽으로 동원대학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황금색 돔으로 치장을 한 거대한 건물을 중심으로 증축 공사가 한창이다. 동녘의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꽁꽁 얼어버린 이천 벌을 녹여주지 못하고, 비수처럼 냉기를 내 품는다. 주능1봉에는 이정표(←범바위 약수터290m. ↑정개산1.36km. 원적산5.78km)가 있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살짝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면,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2번째 이정표(철탑, 정상), 세 번째 이정표(봉현리, 지석리, 철탑, 정상)를 차례로 지나면 전망이 좋은 공터에 올라선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지맥이 시원하게 꼬리를 물고 국수봉으로 이어지고, 동원대학이 아늑한 분지속에 잠들어 있다. 멀리서 보아도 소당 뚜껑을 엎어놓은 것처럼 표족한 봉우리의 급사면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여있고 낙엽 속으로 얼음까지 깔려있어 아이젠을 차고도 미끄러지기 일쑤이니 힘겨운 사투 끝에 올라선 곳이 정개산(433m)의 소당봉 이다.
앙증스러운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정수리는 이천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로 이천 새마을 금고 산악회에서 등산로 개설 1주년기념으로 세운 정상석과 이 고장의 유래를 자세히 적어 정겨움을 더하는데 407m의 소당봉에서는 매년 산신제를 지낸다는 설명으로 그 옛날 이곳에 신이 내려와 살아서 주변의 골짜기와 마을 이름이 여인네들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베틀골, 도리봉(족도리에서 유래), 장터벌(장독대), 국수사리, 지방골(부엌), 문등바위, 요꼴(이불), 방아다리, 능말(농밑)등 우리조상들의 풍류해학이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로움을 되찾을 수 있는 정겨움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내 고향 충주를 오가며 바라보던 정개산이 491번째 정상으로 병술년 1월 22일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500산 특별산행으로 이천의 진산인 설봉산에 올라 조촐하게 기념행사를 하기로 예정이 되어있으니 이 어찌 기쁨이 아니겠는가?
오늘의 산행에서 즐거움이 있다면, 시야가 탁 트이는 전망대가 많아 산행하는데 지루함이 덜하고 볼거리가 많아, 따스한 봄날 이곳을 찾는다면 멋진 산행이 되었으리라는 상상을 해본다. 481봉을 내려서면 지석리 갈림길이 나온다. 새재와 지석리 사람들이 이 고개를 통해 서로안부를 전하고, 문물교환을 하며 정답게 살아오던 소통의 자리로 생각을 해본다. 급경사 비알 길에는 유리알 같은 빙판길이라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고지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된다.
490봉에 올라서면 등줄기에서는 땀이 흥건히 흘러내려도 볼 딱지는 감각이 없어 온몸이 오그라든다. 배낭속의 양주로 언 몸을 녹이고, 주위를 둘러보면 동장군의 기세에 눌려 온 세상이 눈 속에 조용히 잠들고, 추위 속에서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상책이라, 살길 찾아 달려간 토끼의 발자국 따라 묵묵히 발걸음을 재촉한다.
고려의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는 데서 유래가 된 공민봉(547m)을 올라서면 아무런 표시도 없이 칼바람만 몰아친다. 하지만 시원한 조망으로, 이천 도자기 전시장의 주 무대인 설봉산(392m)과 도드람산(349m)이 정다운 모습으로 내려다보인다. 왼쪽으로 남촌 CC와 그린CC의 너른 분지도 동면 속으로 빠져들고, 장동리 고개로 내려서는 비알 길 또한 장난이 아니다. 잠시잠간 방심하다가는 엉덩방아 찧기가 일수이고 급경사 비알 길에서 간이 콩알만 하게 오그라든다.
광주의 외선마을과 이천의 장동리를 오가는 고개 마루에서 바람막이 양지쪽에 자리를 잡고 행동식으로 민생고를 해결하는데, 옷깃을 파고드는 칼바람 속에 곱은 손 호호 불며 곁들이는 양주한잔으로 언 몸을 녹인다. 천덕봉 오르는 길은 삭막한 광야를 걸어가는 외로운 나그네의 처량한 모습이라 할까. 산등성이에는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이, 삭발로 밀어버린 민둥성이가 수 만평의 분지를 이룬다.
급경사 비알 길에는 듬성듬성 바위 벼랑도 나타나고, 북사면으로 광주시 실촌면의 너른 분지에는 수십만 평의 그린 힐이 자리를 잡고, 주능선을 사이에 두고 남서쪽의 이천시 신둔면 장동리의 양지바른 급사면에는 군 사격장이 버티고 있으니 어울리지 않는 두 곳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비극이 아닐 런지. 붉은 깃발로 사격장의 경고표시를 지날 때는, 死地를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숨이 턱에 차도록 안간힘을 쏟는다. 장동리 갈림길에서 빤히 올려다 보이는 천덕봉을 오르는 데는 1시간이 소요된다.
흰 눈이 수북이 쌓인 천덕봉(634m) 정상. 이천 뜰에서 가장 높은 정수리에 걸맞게 막힘없이 펼쳐지는 조망으로 용문산(1157m)에서 시작되는 파노라마는 주읍산(582m), 고래산(542m), 우두산460m)을 지나 마루금에 태기산1.261m), 치악산의 높은 영봉(1.288m)이 제천의 백운산(1.087m)을 품에 안고, 명봉산(598m), 오갑산(609m), 보련산(764m), 국망산(770m), 부용산(644m), 칠장산(492m)으로 돌아가며 영동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사통팔달의 중심축이 되어 태화산(641m)에서 백마산(502m)으로 무갑산(581m), 앵자봉(670m), 양자산(704m)까지 원을 그리며 도도히 흐르는 남한강은 중부내륙의 너른 평원을 살찌운다.
이천, 여주, 광주의 삼개 시군이 경계를 이루는 천덕봉 정상은 너른 헬기장이 자리를 잡고 새로 세운 표지석에는 이천시 신둔면 장동리 산1번지의 문패를 달고 삼각점(이천 24, 1987재설)이 눈 속에서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바로 건너다보이는 원적산(583m)을 외면할 수 없어 잠시 외도를 하게 된다. 세찬바람 몰아치는 민 대머리 원적산.
헬기장이 자리 잡고 있는 정수리는 남으로 기름진 이천의 너른 들판이 질펀하게 펼쳐지고 임금님께 진상하는 잡채 쌀이 생산되는 인심 좋은 고을이다. 하지만 천덕봉을 중심으로 수십만 평의 임야를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씨알머리 없이 삭발을 하고 높은 봉우리마다 붉은 깃발로 경계를 표시하여 삭막한 몰골을 드러내니, 수천 수 만년 지켜온 금수강산이 군 사격장으로 산허리가 마구 잘리고 있어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적산에서 동쪽으로 분기하는 능선을 따르면, 산수유 마을로 유명한 송말리와 유서 깊은 영원사가 자리 잡고 있다. 천년고찰 영원사는 신라 선덕여왕 7년(서기 638년)에 개호선사가 창건한 곳으로 오랜 역사에 비해 규모가 작고 한적한 곳이었지만, 대규모 불사로 황금기와를 얹은 대웅전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어 대 가람으로 탈바꿈 중이다. 경내에는 800년 된 은행나무(경기도 보호수)가 눈길을 끄는데, 높이 25m에 나무둘레 4,5m의 거목으로 싱싱한 자태는 앞으로 천수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되돌아 온 천덕봉에서 지맥은 국정고개를 바라보며 진행한다. 이곳 또한 시야가 확보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능선을 따라 왼쪽으로 내려갔다 올라서면 헬기장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고 두 번째 헬기장인 564봉에 올라선다. 헬기장에서 동쪽 능선을 따르면 대렴봉(418m)으로 가는 알바구간이니 왼쪽의 사면 길로 내려서는 것이 정석이다. 급경사를 내려서면 갈림길이 자주 나온다. 유의할 것은 왼쪽으로 2번, 세 번째는 무조건 오른쪽을 택해야한다. 절개지가 있는 능선을 지나 도로표지판(↖양평, 신북면. 이포→)이 있는 국정고개 도로가 나온다.
천덕봉에서 북쪽의 후미진 계곡에 삼합리가 있는데, 국정포(國井浦/국정개), 야포(冶浦/풀무개)와 지음(智音/징골)등 세 곳의 자연부락이 삼합리(三合里)로 부르게 된 데는, 고려말 공민왕이 이곳에 피신 온 데서 유래된다. 공민왕이 샘물을 식수로 썼다는 국정포, 천덕봉에서 진을 친 고려군들이 풀무질을 하여 무기를 만들었다는 야포, 공민왕이 매일 음주가무를 즐기느라 징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지음으로, 뒤돌아보면 천덕봉의 산줄기가 동쪽의 남한강으로 힘차게 달려간다.
도로를 건넌 다음, 공장들이 밀집한 사이로 임도를 따르면 가족묘지가 나오고, 뒤편으로 가족 납골당의 뒤 능선으로 올라 북쪽으로 진행하면 삼각점이 있는 289.6봉에 올라선다. 정수리에서 30여 m를 진행하여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240번 고압송전탑까지 임도가 이어지고, 멀리 상품리의 렉스 C.C가 조망된다. 임도는 철탑에서 끝나고 등산로는 작은 길로 변하여 이어진다.
삼합리와 상품리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자주 만나게 되지만 전면에 보이는 343봉을 겨냥하여 진행하고, 정수리에 올라선 다음, 첫 번째 고압전신주가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간다. 송신탑과 절개지를 지나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남이고개로 내려선다. 남이고개는 곤지암에서 양평을 오가는 98번국도이며 이곳에서 3구간의 산행을 종료한다.
4구간: 남이고개 - 염치고개 / 11.8km
계절의 변화가 무상하여 어느덧, 6월도 중순으로 접어든다. 이맘때쯤이면 우리네 주변이 가장 바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산과 들녘에는 만화방창 호시절에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고, 모내기가 끝난 농부들의 가슴에 희망이 가득한데, 짝짓기가 끝난 동물들도 자연을 노래하니 우리네 산 꾼들의 발걸음도 자연이 바빠질 수밖에. 일 년 중에 낮의 길이가 가장 길어 종주산행으로 가장 좋은 계절이다.
먼동이 터오는 이른 새벽. 집을 나서도 이리저리 환승을 하며 곤지암에 도착하면 8시가 넘는다. 곤지암에서 08시30분에 출발하는 양평 행 버스로 건업리에서 내려 남이고개까지 차도를 따라 큰 어려움 없이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지난겨울 넉고개에서 남이고개까지 종주하는 날은 몹시도 추웠는데, 오늘은 너무도 화창한 날씨에 길옆으로 흐드러진 밤꽃 향기가 진동을 한다.
들머리는 절개지의 북쪽사면을 올라서며 시작된다. 하루가 다르게 짙어가는 녹음으로 햇볕조차 비집고 들어오기 어려운 무성한 숲속이라, 주위를 둘러본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버리고 빼꼼이 터진 그늘 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때 이른 원추리가 고개를 내밀고, 피톤치드의 향기 가득한 숲속에는 풀벌레소리가 요란하다. 솔푸더기 속에서 호들갑을 떨며 날아오르는 까투리에 기겁을 하며 놀라는 것도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철탑공사 현장을 지나 393.7봉에 오르고, 두 번째 철탑 공사장을 통과하여 자작봉(567m)에 올라선다. 나무둥치에 매달린 아크릴표지판으로 확인을 하고 진행하는 능선은 광주시와 여주군의 경계를 이루며 건업리와 상품리를 가르는 분수령으로 주민들의 산책로가 곳곳에 열린다. 건업리쪽으로 내려서는 소망 수양관 갈림길을 지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늘 속으로 파고드는 열기로 촉촉하게 땀이 배어 나오고 완만한 오솔길을 지나 귀염둥이 바위에 올라 주위를 둘러본다.
왼쪽은 이스트 밸리 골프장이요, 오른쪽으로는 렉스필드 골프장이 질펀하게 자리를 잡고, 정면으로 앵자봉이 코끝에 닿을 듯이 다가온다.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리고 정수리를 향하는 가파른 비알 길에서 거친 숨결을 토해내며 안간힘을 쏟는다. 암릉에 계단을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인 경사면을 오르면 왼쪽으로 골프장과 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곧 바로 앵자봉(667m) 정상에 도착한다.
보라! 一望無際(일망무제). 앵자지맥 63km의 길고긴 여정 속에 주봉으로 자리 잡은 정수리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고,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넓은 가슴을 한껏 벌려 포근한 융단 속으로 모든 사물을 감싸 안는다. 5년 전 양자산을 경유하여 이곳에 올랐을 때는 태극기가 휘날리는 게양대가 있었는데, 그 사이 없어지고 정상 표지석과 수련원에서 세운 이정표, 사방을 둘러보며 조망 할 수 있도록 사진까지 곁들인 조망 안내도를 설치하였다.
광주시와 여주군, 양평군이 접경을 이루는 3개군의 경계봉으로 영동의 三道峰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鶯子峰.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줄기는 四通八達(사통팔달)로 동쪽은 양자산(709m)으로, 남쪽은 지나온 지맥이 천덕봉(634m)으로 향하고, 서쪽은 광주의 진산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무갑산(581m)과 관산(555m)으로, 북쪽은 지맥의 끝자락인 정암산(402m)으로 향하는 줄기가 선명하여 광주, 여주, 이천, 용인, 양평의 산과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의 줄기 따라 서울의 북한산(837m)과 도봉산(740m), 남산의 타워까지 선명하다.
정상에서 발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우산리 계곡에는 천주교의 성지인 천진암이 자리 잡고 있다. 백년에 걸쳐 대역사가 이루어지는 본당 건물은 10여년이 지났어도, 드넓은 광장에 터 닦기로 하 세월이다. 지난해도 무갑산을 경유하여 천진암을 찾아 성현5인의 묘소를 참배한 추억이 있다.
1779년(정조 3) 학자 권철신(權哲身)은 경기 여주군 금사면(金沙面)에 있던 주어사(走魚寺)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강의하던 중, 정약용(丁若鏞) 등과 함께 강학회(講學會)라는 학문강의 모임을 가졌다. 그 후 장소를 천진암으로 옮겨 10여 일 동안 강학회를 계속하였는데, 이때 참석한 대표적인 사람은 권철신· 정약용· 이벽· 정약전(丁若銓)· 정약종(丁若鍾)· 이승훈(李承薰) 등이었다. 이 강학회에서 이벽은 《천주공경가(天主恭敬歌)》를, 정약종은 《십계명가(十誡命歌)》를 지었으며, 삼종기도(三鐘祈禱) 대신 주자(朱子)의 사물잠(四勿箴) 같은 것을 경문(經文)으로 삼아 외우기도 하였다.
가톨릭의 교리를 탐구·신봉·실천·전파하기 시작한 것은 이 강학회를 계기로 비롯되었지만, 이 강학회가 처음부터 가톨릭의 교리 연구만을 위하여 계획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모임은 천주학(天主學)을 하나의 단순한 학문에서 종교에로 이끈 동기가 되었는데, 이 일에는 특히 이벽의 역할이 컸다. 결국 천진암 강학회는 서학(西學)을 서교(西敎)로, 천주학을 천주교로, 즉 학문적 지식을 종교적 신앙으로 변환시킨 일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천진 암은 경기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에 있는 사찰 터로서, 현재는 이벽· 권철신· 권일신 형제와 이승훈· 정약종의 묘소가 이장되어 있으며 성역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 백과사전 -
옥빛보다도 청명한 정수리에서 20여 분간 눈길이 가는 곳마다 나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급경사 하산 길을 내려서면 천진암으로 내려서는 앵자현에 이르지만, 출입금지 안내판이 서 있다. 또 다시 거친 발걸음은 우산봉의 정상으로 향하고, 앵자봉 보다도 높은 670m의 우산봉. 너른 공터에는 헬기장이 자리 잡고 무성한 억새밭이 바람결에 휘날리는 3번째 헬기장에 올라선다. 분기봉(655m)인 헬기장에서 직진하면 양자산(709m)을 거쳐 백병봉(423m)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江下面 리버사이트 호텔 앞에서 남한강으로 잠겨든다.
지맥은 왼쪽으로 억새밭을 헤치면 오솔길이 나타난다. 철탑공사장을 지나서 진행하면 등산로는 천진암이 있는 왼쪽으로 내려서고, 마루금은 직진을 하게 된다. 지난해 일반산행으로 천진암 쪽으로 내려섰다가 웃지 못 할 일을 경험하게 된다. 성현5인의 묘도 참배하고, 공원처럼 깔끔하게 조성된 경내를 두루 구경하며 정문까지 내려왔는데, 느닷없이 앞길을 가로막는 관계자와 실랑이를 하게 된다. 신성한 경내를 무단으로 내려왔으니 도로 올라가라는 시비였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지나치려했지만 막무가내다. 통사정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돌아오는 내내 찜찜한 기분을 가실수가 없었다.
직진으로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가면 두 번째, 세 번째 철탑공사장까지 진행한다. 임도를 따라 넓은 공터에 도착하여 뒤돌아보면 앵자봉과 양자산이 스카이라인을 이룬다. 왼쪽으로 천진암의 성지가 내려다보이고, 관산에서 흐르는 계곡을 따라 음식점을 바롯한 위락시설들이 즐비하게 펼쳐진다. 염치고개로 향하는 능선에는 울창한 수림이 펼쳐지지만 철탑공사가 한창이라 이탈할 염려는 별로 없다.
오른쪽 아래로 내려서면 형사소송을 내겠다는 협박성경고판이 걸린 성황당안부를 지나 벌목능선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한강이 시야에 들어온다. 통나무의자가 있는 쉼터를 지나 희미한 삼각점이 있는 501봉에 올라선다. 안부로 내려서면 왼쪽으로 관음리 태황정사와 오른쪽의 영동리 거먹골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나오고 지맥은 직진으로 방공호가 있는 봉우리를 넘어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내려서면 울창한 잣나무 숲속으로 들어선다.
잣나무는 가평을 중심으로 중부지방에 많은 분포를 보이는데, 한 여름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시원한 바람결에 더 이상 피서가 따로 없다. 숲을 지나 안부에 올라서면 임도길이 나오고 묘1기를 지나 능선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진행한다. 굴곡이 심한 봉우리를 넘나들며, 피로에 지친 몸이 파김치가 되도록 안간힘을 쓰며 올라선 315봉. 전면으로 해협산(527m)이 올려다 보이고, 염치고개를 넘나드는 차량들의 소음이 귀전으로 들려온다.
거미줄처럼 나타나는 갈림길을 헤쳐 나가는 것도,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예민한 판단과 감각으로 주위의 지형지물을 살피는 세심한 눈길이 필요하다. 허물어진 무덤을 지나면 내리막이다. 울창한 숲을 사이에 두고 지척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경적 음을 따라 88번 국지도의 절개지에 올라선다.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88번 국지도가 지나는 2차선 포장도로가 고갯마루를 가르고, 약수터와 간이매점이 있는 공터에는 표지석(영동리)이 반겨준다. 제4구간의 산행도 염치고개에서 종료한다.
5구간 : 염치고개 - 귀여리 / 8km
중국을 다녀온 뒷마무리로 20여일 만에 산을 찾으니 신록이 무성한 산에는 철쭉도 낙화되어 땅위로 떨어지고 보라색 제비꽃이 다투어 피어나는데, 양수리 에서 바라보는 정암산과 해협산은 수반위에 피어나는 한 떨기 꽃처럼 아름다운 자태로 산 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서울에서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교통의 사각지대라, 의정부에서 도봉산역으로 군자역에서 강동역으로 환승을 하며, 상일동 정류장에서 퇴촌행 13-2번 버스에 몸을 싣고 면소재지에 도착하여 수청리행 완행버스에 탑승하여 여우고개를 넘어서면 목적지인 귀여리 귀실 마을에 도착한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 물머리 정자나무가 마주보이는 팔당 호수는 언제보아도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진정시켜주는 곳이다. 두 물머리 나루터를 중심으로 족자도와 큰 섬이 호수위로 떠오르고 다산 정약용의 생가가 있는 능 내리는 한북정맥에서 분기한 천마지맥이 호반으로 내려앉으며 아름다운 산수화를 그려낸다. 반갑게도 정류장에는 정암산 오르는 이정표가 산 나그네를 유혹하고(정상까지 2,7km) 길을 건너 들머리인 숲속으로 들어선다.
잠시 후 두리봉(103m)에 올라서면, 용마산과 예봉산의 협곡을 가로지른 팔당댐이 明鏡止水의 잔잔한 수미강으로 거듭 태어나 능내리의 산자락을 파고든다. 양수리는 어떠하고. 두 물줄기가 부둥켜안은 양수리는 호수위에 떠도는 부평초처럼 선경속의 무릉도원이 아닌가? 양지바른 산 비알에는 가족묘지가 자리를 잡고, 호젓하고 시원한 솔밭 속에는 짝을 찾는 산새들이 목청을 높인다. 주능선에 올라서면 ←정류장 0,7km →정상 1,7km의 이정표를 만나 나뭇가지에 리본하나 걸어놓고 정상으로 향한다.
남종면에서 삼림욕장으로 조성해놓은 등산로가 정비되어 오르기에 아주 편안하다. 소나무 그늘에 바위가 듬성듬성 나타나며 정암산(403m) 정수리에 올라선다. 무성한 나무숲이 주위경관을 가로막지만, 시원한 그늘 속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즐긴다.
2003년 3월 1일 정상석을 세우면서 이름三字 표시 없이 무명으로 남겨두니, 조그만 일에도 자기를 과시하는 요즘 세상에 우리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삼각점(양수461번.1998년 복구)이 선명한 정상은 모든 잎 새 떨 구고 사주경계 확실한 겨울철에 찾아와야 제격인 것을.
20여m 전방의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 달리면, 십자로 안부를 지나 시원한 강바람이 능선위로 불어오는 싱그러운 오월의 화창한 봄날, 휘적휘적 걸어가는 발걸음에 느닷없이 달려드는 송아지만한 개의 공격에 魂飛魄散(혼비백산)하여 바라보니 意氣揚揚(의기양양)한 개새끼는 이빨을 갈아 대고, 백주대낮 에 산속에서 당하는 봉변으로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주루루 흘러내린다. 하지만 나물 뜯는 토박이는 天 下 太平이라, 치미는 울화통을 꾹꾹 눌러 참으며, 위기를 모면하려는 窮餘之策(궁여지책)으로 통사정을 하는 수밖에.
목사리도 없이 산천을 활개 치는 개를 피해 340봉을 단숨에 넘고, 410봉까지 정신없이 달리면서, 신선놀음으로 삼림욕을 즐기다가 고약한 개에게 봉변을 당하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하는 몰골이 한심스럽기만 하다. 410봉에서 무성한 나무사이로 수청리를 확인하고 오른쪽으로 90도 방향을 틀어 된 비알을 내려오니, 개놈에게 놀란 가슴 진정도 되려니와 여유로운 발걸음에 떡 취들이 길섶에 돋아나고 향긋한 그 내 음에 어찌 그냥 지나치랴.
한 잎 두 잎 따 모아 비닐봉지에 담아보니, 하루저녁 쌈 싸먹기 알맞은 분량이라. 쉬엄쉬엄 오름길에 해협산(531.7m) 정상에 올라서면 무인 통신탑을 철조망으로 보호하고, 외부인 접근금지 서슬 퍼런 경고문에 죄 지은일 없으면 그만이지 주눅 들일 없는 것을, 정상석 옆으로 짐 보따리 풀어놓고 시원한 강바람에 두활개 활짝 편다. 윤기 나는 오석에는 531.7m 해협산 이름삼자 확실하고 우정산악회에서 정성스레 세워놓은 정상 표지석 뒷면에는 산의 전설까지 친절하게 소개하니 흙에 뭍인 삼각점에 내용물이 없다한들 무엇이 아쉬우랴.
천지개벽 당시에 온 천지가 물바다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피난을 하던 중, 정상에 있는 “군두바위”에 말뚝을 박고 배를 잡아매었다하며, 배가 있던 곳이 골짜기라 하여 海峽山(해협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정상에서 서쪽의 능선을 따르면 수리울 마을을 지나 분원리로 내려서게 된다. 퇴촌의 명물은 팔당호에서 잡아 올린 붕어요리가 장안의 화제가 되어, 분원리의 붕어탕(찜)은 호식가들이 군침을 흘리는 보양식으로 유명하다. 예정대로 진행하는 만족감에 삼각대 세워놓고 요리조리 폼을 잡고 배낭 속에 막걸리로 갈증을 해소하며 20여분 휴식 뒤에 주능선을 따라 벼랑길을 내려선다.
차 소리 붕붕 나고 2차선 포장길이 펼쳐지는 염치고개에 도착한다. 남쪽은 강상면으로, 북쪽은 퇴촌 가는 길이 확실한데 5km거리는 아득히 멀기만 하고, 지나는 차들은 무심히 지나친다. 하지만 무엇이 걱정인가? 8km의 짧은 거리를 종주하고도 해가 중천에 있는데,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 장승을 세운 휴게소에서 이곳의 명물인 붕어찜으로 소주한잔을 걸치고 퇴촌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2004년 회갑기념으로 중국의 서안, 장가계, 계림을 다녀온 여독을 풀기위해 서울근교의 정암산과 해협산을 일반산행으로 종주하고 앵자지맥으로 연계하여 정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