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

한남정맥 - 검단지맥

김완묵 2009. 12. 20. 07:53

 

 

                                               검단지맥 - 48km

 

칠장산에서 서북쪽으로 분기한 한남정맥이, 용인의 석성산과 할미산성을 지나며 북진하다 신갈 나들목을 향해 서쪽으로 꺾이는 향린동산 위에서 북쪽으로 검단지맥을 내보낸다. 이 지맥은 팔당호에서 한강본류와 북한강이 만나는 경안천의 서쪽 벽을 이루며, 88골프장 중앙의 낮은 능선을 따라 법화산(383m), 불곡산(313m), 영장산(413m), 검단산(535m), 청량산(479m), 벌봉(521m), 용마산(595m), 검단산(685m)을 지나 하남시 바깢 창모루에서 한강으로 여맥을 마감하는 48km이며, 남한산성 도립공원을 경유하게 된다.

 

검단지맥이라는 의미도 모르면서 10여 년 전부터, 검단산과 남한산성, 분당의 영장산을 일반산행으로 다녀왔다. 한남정맥을 종주하며 중요성을 깨닫고, 중간 중간 빠진 구간을 보충하여 지맥을 재구성해본다.

 

 

                                    제1구간: 바깥창모루 - 은 고개 / 11km

검단산(685m)은 구리시를 지나 양평으로 가는 팔당대교 옆으로 봉긋이 솟아 오른 산, 팔당호를 사이에 두고, 예봉산과 呼兄好材하는 산이기에 더욱 매력이 넘치는 산이다. 아내도 산에 대한 매력에 빠져, 산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던 시절. 검단산을 꼭 가보고 싶다고 졸라댄다. 다정하게 손잡고 들머리인 바깥 창모루에 도착한다. I. M. F 전이라 등산인구도 그리 많지 않고, 등산로도 지금처럼 정비가 되지 않은 시절이다.

 

마을의 토담 길을 돌아 검단산 약수터를 다녀오는 주민들의 안내로 쉽게 들머리를 찾았다. 등산은 들머리를 찾는 것만으로도 절반이상의 성공을 이룬 셈이다. 소나무와 신갈나무가 사이좋게 자리 잡고 있는 오솔길은 가파른 오름길로 이어진다. 하루가 다르게 신록이 두터워지고, 산새들의 지저귐도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한바탕 비지땀을 흘린 뒤에 삼각점이 있는 291봉을 내려서면, 큰 고개 안부에는 창우동 버스 종점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로 제법 부산스럽다.

 

고도가 높아지며 경사도 심해지고, 암릉 길을 오르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며 숨소리가 턱에 닿는다. 호곡사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만나며 등산객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아름드리 노송이 휘늘어진 전망바위에 올라서면, 흐르던 땀방울도 잦아들고 감탄사가 절로난다. 그림 같은 팔당대교와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고, 구리시와 와부읍, 하남시의 아파트가 숲을 이룬다. 585봉을 지나며 등산로도 완만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눈길 속에 발걸음도 느려진다.

 

헬기장을 지나 정상에 올라서면, 시원한 바람과 즐거운 눈요기로 마음이 활짝 열린다. 너른 공터가 비좁을 정도로 수도 서울의 등산객들이 하루코스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검단산을 찾아 만원을 이룬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아내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주위를 둘러보는 눈길이 팔당호로 고정된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어우러지는 양수리가 육지속의 바다로 점점이 섬을 만들고, 산자락을 파고드는 골골마다 물길이 이어진다.

 

용마산 가는 길엔 억새가 군락을 이룬다. 오월의 싱그러운 햇살아래 잎 새 들이 너울춤을 추고, 숲속에는 때 늦은 철쭉이 배시시 웃음 짓는다. 신작로와 다름없이 널찍한 등산로를 내려서면, 절벽위에 노송 한그루. 옹골차고 아름다운자태에 반하여 그늘 밑을 차지하려고 야단들이다. 큰 삼거리에서 탄탄대로를 따라 직진을 한다면, 산곡초등학교로 내려서는 길이라 무조건 알바를 하는 곳이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호젓한 오솔길로 접어들면 554봉에 올라서고 지맥으로 연결된다.

 

용마산 가는 길은 여유로운 길, 상수리와 소나무의 두터운 숲 사이로 열리는 전망대는 조안면 능내리의 전경을 비춰준다. 팔당호에 넘친 물이 큰 호수를 이루고, 정약용 선생이 태어나신 안마당 까지 넘실대는 물결 속에 선경이 따로 없다. 철탑고개를 지나 전망대 바위에 올라서면, 또 한 번 감탄사가 절로난다. 중부고속도로를 보라! 8차선 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끝은 어디일까.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차량의 행렬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이어지고, 번영하는 우리의 국력을 실감하게 된다.

 

고추봉(555m)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용마산이 손짓하고,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여 정상(595m)에 올라서면 정상석과 삼각점이 반겨준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각화사를 경유하여 과학동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지맥은 오른쪽이다. 안부로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거문다리 방향의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으로 415봉에 오르면 또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잘 발달된 능선을 따르면 지난 2월 미투리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지낸 도마리로 가는 알바 구간이다.

 

태초에 우리 조상들은 사냥을 나갈 때나 부족 간에 싸움이 일 때 마다, 신에게 제를 올리며 많은 소득과 무사귀환을 비는 무속적인 행사를 중요하게 생각 하였다. 이러한 풍습들이 지금까지 풍년을 기원하고 가정의 안녕을 비는 고사 등 많은 형태로 이어져 내려온다. 하늘과 땅을 주재하는 우주 섭리에 비해 너무도 미약한 인간들이 숭배의 대상으로 천지신명께 정성을 다하여 장중하고, 엄숙한 의식을 봉행하는 제례의 일부가 된 것이다.

 

415봉에서 오른쪽(서남방향)으로 바라보면 중부고속도로가 지나는 협곡(은고개)을 사이에 두고 가파른 남한산(521m)이 정면으로 보인다. 철탑아래 묘소를 내려서면 사거리 안부에 도착한다. 직진하는 능선이 지맥이지만 길의 흔적도 없고, 만리장성보다도 위험한 고속도로를 통과하기위해서는 왼쪽으로 내려서야 한다. 낚시터를 지나고 굴다리 두개를 통과하여 43번 도로가 지나는 엄미리 정류장에 도착하며 1구간의 산행을 종료한다.

 

 

                                     제 2 구간: 은고개 - 이배재 / 14km

지난번 검단산과 용마산을 경유하는 제1구간이 힘에 벅찼던지, 아내는 기권을 하고 나 홀로 집을 나선다. 강변역에서 퇴촌 행 13-1번 버스를 타고 1시간 만에 은 고개에 도착한다. 하남시(상산곡동)와 광주시(중부면)가 접경을 이루고 있는 은고개는 중부면 소재지에서 43번 국도를 따라 하남쪽으로 약 1.5km 지점에 마을 어귀가 나온다. 奄現(엄현)을 속칭 은 고개라 부르며, 은고개 마루턱에서 교차로신문사 오른쪽의 숲길이 들머리가 된다.

 

은 고개식당 입구 돌계단을 올라서면, 가족묘지가 나온다. 호젓한 오솔길. 이른 아침이라 오가는 사람도 없고, 싱그러운 공기를 가슴깊이 들여 마시며, 산으로 향하는 나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불태운다. 오월도 중순으로 접어들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산. 연록 색이 진초록으로 변하고, 갖가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데, 흰 눈이 쏟아져 내리는 아카시아 꽃이 산 전체를 뒤덮고, 짙은 꽃향기로 벌 나비를 불러 모은다.

 

삼각점(식별이 불가)이 있는 301.5봉에 올라서지만, 빽빽이 들어선 잡목으로 답답하기 그지없고, 엄미리 계곡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왼쪽으로 열린다. 엄미리는 본래 엄현과 미라동으로 나누어 진 마을 이지만 행정개편으로 엄자와 미자를 합하여 奄尾里(엄미리)로 통합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마을에는 경기도 기념물 제 166호로 지정된 의안대군의 묘가 있고, 미라울 입구에는 3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장승과 300년 된 느티나무와 160년 된 음나무가 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사랑을 받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고도를 높이며 전망이 트이는 능선에 올라서면 서남쪽으로 검단산이 마루 금 사이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동쪽은 중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용마산이 손에 잡힐 듯, 지척에서 반긴다. 송전탑 2개를 지나 삼거리 안부에 이르면 이정표(↑벌봉1.3km ↙엄미리계곡0.7km ↓은고개 입구3.0km)가 서있다. 한 바탕 후줄근하게 땀을 쏟은 후에야 남한산성이 시작되는 외성에 도착한다. 남쪽은 한봉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지맥은 벌봉 쪽으로 진행한다.

 

삼각점이 있는 벌봉(521.1m)에서 북쪽은 객산(290m)을 경유하여 만남의 광장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서쪽으로 장대한 성벽을 따라 남한산성이 시작된다. 치성터를 겸하고 있는 벌봉에 올라서면, 남한산성에서 봉화대와 함께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동쪽으로 검단산과 용마산이 남북으로 힘차게 내 달리고, 은 고개를 지나는 중부 고속도로가 내일의 번영을 약속하며,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중심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도심지의 빌딩들이 숲을 이룬다. 도봉산과 북한산, 수락산이 너른 분지를 감싸 안으며, 초여름의 햇살아래 진초록의 바다 숲에 눈이 부시다.

 

천년세월을 비껴간 허물어진 성터에는 잡초만이 무성하고, 그사이로 편안한 오솔길이 열린다. 암문을 을 지나면 봉암성 표지석이 반겨준다. 봉암성은 숙종 12년(1686년) 부윤 윤지선이 처음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1.142m에 암문이 4개, 군포가 15곳이라고 한다. 병자호란 때 청병들이 벌봉에서 성의 동태를 살폈기 때문에, 본성의 보강 차원에서 쌓았다고 전해진다.

 

녹음의 숲길은 동암문을 통과하여 남한산성 본성에 들어오면서 여러 갈래로 갈려진다. 지맥은 새로 복원한 산성을 따라 돌아가면 북문이 나오고, 보수공사가 한창이라 차양 막으로 가려놓아 아쉬움이 남는다. 성벽을 따라 걷는 발걸음은, 경쾌한 리듬으로 속도감이 붙고 성벽을 경계로, 안쪽은 울창한 소나무가 숲을 이루는데 반해, 성 밖은 참나무, 단풍나무, 자작나무를 비롯해 활엽수림이 대조를 이루며 도심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으로 탄성이 절로난다.

 

한양을 지키는 외곽에 4대 요새가 있으니 북쪽의 개성, 남쪽의 수원, 서쪽의 강화, 동쪽의 광주로 남한산성은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4km, 성남에서 북동쪽으로 6km지점에 있는 남한산의 정수리 너른 분지에 쌓은 성으로 길이가 9km 높이가 7.3m에 이른다. 한강을 중심으로 백제를 세운 온조왕이 이곳에 토성을 쌓았으나, 신라 문무왕 때 다시 쌓아 주장성을 만들고, 그 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보수를 하였다.

 

조선 광해군(1,621년)때 대대적으로 축성을 하여 관아와 창고 행군을 건립하여 광주읍의 행정처도 이곳으로 옮기고, 인조 17년(1639)에는 기동훈련까지 실시하며 유사시를 대비하였지만, 막상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내부의 분열로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고 말았으니 애석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남한산성만은 2000년의 역사 속에서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한양을 지키는 보루로, 동문인 좌익문(左翼門), 서문인 우익문(右翼門), 남문인 지화문(至和門), 북문인 전승문(全勝門) 등의 4대문과 비밀문인 암문(暗門)이 16개, 5개의 장터와 병사들의 숙소인 군포(軍鋪)가 125개, 80개의 우물과 45개의 연못을 설치하고, 성벽에는 30여개에 달하는 수구를 설치하였다.  일제시대에 방화로 폐허가 된 채 방치되어 오다가 복원작업으로 현재는 도 유형문화재 1호인 수어장대를 비롯하여 많은 건물들이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새로 축성한 국가사적 57호인 남한산성이 북문을 지나 연주봉까지 지맥을 따라 이어지고, 연주봉의 옹성에서 내려다보는 경치 또한 일대 장관을 이룬다. 금암능선과 객산능선 사이의 너른 분지에 자리 잡은 상사창동은 도심에서 빗겨난 가내 공업단지와 비닐하우스의 농촌마을이 함께 어우러진 산골마을 이고, 금암산(322m)과 이성산(209m) 너머로 서울의 도심지가 빌딩숲을 이룬다. 서문 쪽으로 오르는 산책로에는 마천동에서 올라오는 인파로 만원을 이룬다.

 

서문을 지나 수 십 길 단애를 이룬 벼랑위로 올라서면,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이 그림 같고,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지형지물이 손금 들여다보듯이 선명하여 외적을 막아내기에는 더없이 좋은 천연요새지다.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보루지만, 쇠약한 국력이 어찌 이런 성 하나로 지탱할 수 있단 말인가?

 

守禦將臺(수어장대)는 군 통수권자의 지휘본부로 성의 주위가 잘 보이는 높은 곳에 자리를 잡은 탓에 산성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하지만, 보수공사가 한창이라 경내를 둘러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간직한 채 남문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솔향기 가득한 싱그러움 속에 산성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산책 나온 인파로 활기가 넘쳐흐른다.

 

울창한 송림 속에서 솔향기에 취해 남문으로 내려서면 성남쪽에서 올라오는 순환도로와 만난다. 산성마을의 향토음식점과 중부면 소재지로 내려가는 남문은 남한산성의 관문이기도하다. 제1옹성 암문을 빠져나온다. 이 옹성은 둘레가 408.7m 이며 옹성 끝에는 7개의 대포혈(大포穴)이 뚫려있다. 원성과 연결되는 시축(始築)지점이 약간 넓게 벌어졌다가 가운데는 잘룩하고 끝부분은 다시 넓어져 뭉턱하며 옹성 끝부분에는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다. 본성에 대한 외적의 직충(直衝)을 막고 성문을 가리는 일차적 방어 시설물이다.

 

남장대지 앞에서 검단산 정상까지는 시멘트 도로 따라 걷는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은 따분하면서도 피로가 빨리 오기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하고 싶은 길이다. 소나무 그늘 밑에 진을 치고 있는 목로주점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천천히 걷다보니 검단산이 가까이 다가온다. 오른쪽으로 철조망이 삼엄하게 접근을 거부하며, 검단산(534m) 정상을 점령하고 있다. 정상석이 있는 헬기장을 둘러 성남시와 광주시의 경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선다,

 

남한산성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이 소나무 숲이다.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소나무라고 하지만 재선충의 공격을 받은 솔밭이 전멸을 당하고, 소나무처럼 생명력이 강한 나무도 자연 생태계의 천적으로 참나무만 만나면 맥을 못 쓴다고 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늘 푸른 소나무를 간직하고 있는 남한산성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휴식처가 아닌가 한다.

 

사거리/불당리(1km),약수터 갈림길을 지나며, 산을 찾는 등산객도 많이 줄어들어 한가롭기 까지 하다. 또 한 이곳부터는 소나무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신갈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그늘 속을 따라 사기막 고개를 지나 정상석과 쉬어갈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는 왕기봉(500m)에 올라선다.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산자분수령의 귀한 이치를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 나름대로 사명감이 있기에 멀쩡하게 잘 나 있는 길을 마다하고, 동네 뒷산 같은 밋밋한 곳을 찾아 가시덤불과 씨름하고 없는 길을 만들어 가는 그들이 있기에, 내가 가는 길도 행복하다. 차량의 소음이 점점 가까이 들리고 급경사를 내려서면, 성남시와 광주시를 연결하는 이배재에 도착하며 2구간의 산행을 종료한다.

 

 

                             제 3 구간: 이배재 - 부천당고개 / 14.5km

날씨도 계절을 비껴가지는 못하는가. 11월 내내 영상의 포근한 날씨로 가로수의 푸라타나스가 푸름을 간직하더니 12월 들어서며 수은주가 곤두박질을 치며 첫눈까지 내린다. 서설치고는 제법 많은 눈이 내리고(서울 적설량 8cm), 영하5도에 강풍까지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10도를 넘는 한파에 게으름 피우기에 알맞은 일요일아침이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이른 새벽 한강위로 떠오르는 태양은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모란역 4번 출구로 올라선 성남의 거리는 밤새내린 눈이 도시를 말끔하게 뒤덮고, 빙판길로 변한 노변에는 오가는 차량도 없이 삭막하고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성남시와 광주시를 연결하는 순환도로를 따라 거북이걸음을 하는 택시로 고개 마루에 올라서면 매서운 바람이 몰아친다. 귀마개에 스피치까지 단단히 중무장을 하고 검단지맥 3구간의 기치를 내건다. 이배재고개 표지석과 검단산 등산 안내도를 뒤로하고, 오르는 남쪽 능선은 가파른 비알길에 로프가 매어있다.

 

검단산에서 시작한 성남시계 능선 종주 길을 개발하며 갈림길마다 이정표를 세우고, 등산로를 정비하여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림욕장의 산책로처럼 아주 편안하게 이어진다.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부지런한 사람들의 발자국이 눈 속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완만한 능선 길에는 운동기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건강다지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17번, 16번 고압송전탑을 지나 목현리 능선 분기봉에 오르면 대원약수터 이정표가 서있다. 다북 솔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우수수 떨어지는 눈 벼락이 산행 길에 즐거움을 더하고, 오가는 사람들과 정다운 인사를 나누며 15번 송전탑을 지나면 연리지의 표지목 앞을 지난다.

 

연리지란?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서 한 나무가 된 것을 連理枝(연리지)라 한다. 이같이 서로 다른 두 나무가 하나 되어 자라는 것은 매우 희귀한 현상이다. 두 몸이 한 몸이 된다고 하여 남녀 간에 애틋한 사랑과 비유하여 일명 사랑나무라고도 부른다. 연리지가 되면 하나가 죽어도 다른 나무의 영양을 공급받아 다시 살아나 두 몸이 하나가 되고나면 영원히 산다하여 부부간의 길고도 끝없는 사랑을 의미하며 사랑하는 남녀가 연리지 앞에서 사랑을 맹세하면 영원할 것으로 믿는다. - 남광주 로타리 크럽 -

 

무심코 지날 수 있는 나무의 사랑이야기를 전해주는 남광주 로터리 크럽의 배려로, 새로운 사실을 음미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예상치 못한 눈 산행에 즐거움도 있지만, 고도가 높아질 수 록 가파른 경사면에 발목까지 빠지는 눈으로 속도가 마냥 느려진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산등성이에서 맞바람을 맞으며 올라선 봉우리 마다 정자와 쉼터를 깔끔하게 조성하여 산책하는 이들이 쉬어가기 편하다.

 

3번 국도가 지나는 갈마터널위로 설치한 동물 이동통로는, 동물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여 보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온다. 시야가 터지는 능선에 올라서면 지나온 왕기봉과 검단산이 하얀 눈을 머리에 쓰고 아득하게 멀어 보인다. 가지런히 쌓아올린 돌탑과 고압송전탑(11번)이 있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의 모리야산 기도원 방향으로 진행한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듬성듬성 바위들이 낙락장송의 그늘아래 쉼터를 만들어 주고, 삼각점이 있는 322.7봉에 올라서면, 흰 고깔 머리에 쓴 영장산이 멋진 자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앙상한 가지들이 을씨년스러운 산책길에 雪(눈)도장 찍으며 달려갈 때, 우리 몸의 동맥과도 같이 잠시라도 없어서는 안 될 전기를 공급하는 송전탑들의 사열을 받는다. 야탑 도촌동 이정표(左 이당골, 右 남서울 공원묘지)를 지나고 靈長山(영장산) 오름길이 시작된다. 매서운 찬바람 속에서도 후줄근히 땀을 흘리며 경사면을 치고 오르면, 오늘의 구간에서 가장 높은 영장산(413m)에 올라선다.

 

잡목이 무성한 정상이지만 모든 잎 새 떨 군, 앙상한 가지사이로 남한산성의 군부대가 아련히 바라보이고 쌍봉으로 보이는 문형산(496m)의 자태가 완연하다. 정수리에는 아담한 정상석과 삼각점(수원 437 1987년 재설), 성남시의 경계를 표시하는 이정표가 자리를 잡고, 벤치에는 손바닥에 모이를 들고 새를 부르는 신선이 있으니, 그의 착한 심성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싶다. 영장산에서 내려가는 급사면에는 로프가 걸려있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이라 세찬바람 속에서도 눈이 녹아 질퍽거리고, 발길에 차이는 눈 속에서 스피치와 아이젠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그대로 진행을 하다 보니, 등산화속으로 습기가 차오르며 발목이 시려온다. 바람도 잔잔한 안부에 내려서면 거북터 이정표가 자리를 잡고, 곧이어 곧은 골 고개를 지나며 미로와도 같이 얽혀있는 등산로에서 마주 오는 사람들에게 문형산 가는 길을 재차 확인해 본다.

 

완만한 능선이라도 눈 속의 산행은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세찬바람 맞으며 일곱 삼거리에 올라서면 아담한 정자와 이정표가 반겨주고, 주위에는 수 십 년 된 참나무들이 시듬병의 모진 고통 속에 허리가 잘려나간 안타까운 모습이다. 남쪽으로 분지위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25만평의 강남 300 골프장. 廣野의 丘陵地에 쌓인 눈이 능선과 골짜기마다 은빛 세계를 연출하는 모습은 골프장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별천지를 이룬다.

 

골프장의 펜스를 따라 내려서는 동쪽으로 인근에서 가장 높은 문형산(496m)이 주위를 압도하며 고개를 내밀고, 골프장과 부대시설의 철조망을 따라 일곱 살 삼거리를 내려서면 아름다운 초원위에 그림 같은 전원주택들이 남진의 노래를 재현 해 놓은 듯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새마을 고개로 내려서면, 문형산은 저만큼 멀어지고, 분당이 자랑하는 율동공원의 너른 호수와 점프장이 눈 속에 졸고 있다. 분당의 시가지를 바라보며 태재고개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234봉을 넘으면 오른쪽으로 열병합 발전소의 웅장한 건물이 깊은 숲속에 자리 잡고, 아담하게 조성된 가족 묘지를 지나 태재에 도착하면 가파른 절개지 위에 올라선다. 돌계단을 따라 서현역과 오포읍을 오가는 삼거리에 내려서면 유흥 음식점과 간이 골프장이 자리를 잡고, 舊 도로 한 모퉁이 머슴해장국집 옆으로 성남시 경계를 도는 산행지도가 있어 진입로를 쉽게 찾을 수가 있다.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형제봉(285m)에는 운동시설과 벤치에 정자까지 설치되고, 잡목사이로 불곡산의 정수리가 모습을 내 보이는데, 눈 속을 헤치며 산책 나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올라선 312.9봉에는 삼각점(수원 312 1987년 복구)과 불곡산 명상의 숲에는 김용택 시인을 비롯한 유명 시인들의 주옥같은 시편들이 걸려있다.

 

꽃한송이           -김 용택-

 

간절하면 가 닿으리

너는 내 생각의 끝에 아슬아슬 서 있으니

열렬한 것들은 다 꽃이 되리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꽃 한 송이

 

표지등산길을 오르내리며 올라선 곳이 불곡산 정상. 아담한 정상석(334.5m)과 정자가 있고, 이정표와 벤치까지 세심한 배려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휴식 공간이다. 서쪽으로 내려서는 등산로는 정자동의 토지개발공사와 이마트 쪽이고, 주능선은 남쪽으로 진행한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전망대에 올라서면, 분당시가지와 아파트 숲, 그 뒤로 한남정맥의 주봉인 광교산(582m)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잠시 후 부천당 고개에 도착하며 검단지맥 제 3구간의 산행을 종료한다. 이정표(左 신현리, 右 골안사 )가 있는 쉼터에는 원형 탁자까지 갖추어 있어, 쉼터로도 안성맞춤이다. 오른쪽 갈림길을 내려서면 오리역과 연결이 된다.

 

 

              제 4구간 : 부천당 고개 - 향린 동산 / 8.5km

또 한해가 지나고 어느덧 11월도 하순이 되었다. 짧은 해가 마음에 걸려 먼 곳의 산행을 가급적이면 삼가고 근교산행으로 검단지맥 마지막 종주 길에 오른다. 아직까지 첫눈이 내리지 않은 야산에는 벌거벗은 활엽수들의 앙상한 가지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지하철은 회룡역에서 분당의 오리역까지 2시간이 족히 걸린다.

 

오리역 1번 출구로 올라서니, 새벽 공기가 싸늘하게 옷깃을 파고든다. 이곳은 수년전 한강 고수부지 걷기의 일환으로 전부하 씨와 함께 청담대교 아래서 오리역까지 27km를 걸어온 적이 있어 잊지 못할 곳이다.

 

오리공원으로 내려서면 주민들의 산책로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구미교 못 미친 지점에서 징검다리를 건너 구미교로 올라선 다음 횡단보도를 건넌다. 구미공원을 따라가는 길옆으로 불곡초등학교가 나오고 구미동 주민센터 앞에서 무지개 마을길을 따라 진행한다. 구미 사거리에서 직진하면 신세계빌라와 청구빌라가 나오고 곧 바로 골안사 올라가는 진입로와 연결된다.

 

임도수준의 널찍한 등산로를 따라 가면 암자 비슷한 골안사를 지나 갈림길이 나타난다. 모두가 주능선으로 연결되지만, 부천당 고개는 왼쪽의 나무계단을 따라 진행하게 되며 처음부터 가파른 비알 길에서 가쁜 숨을 몰아쉰다. 안부에 올라서며 남쪽으로 종주가 시작되고, 초겨울에 흔히 일어나는 뿌연 가스로 시야는 별로 좋지 않지만, 편안한 산길에서 콧노래가 절로 난다. 300여 m를 남진하면 골안사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에도 이정표(↑부천당고개, ←골안사, →광주시 신현동, ↓성남 용인 갈림능선)와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거침없는 발걸음에 속도가 붙고, 로프가 걸린 무명봉(318m)에 올라서면 쉼터에는 조류학습장이 있다. 이곳에서 오른쪽은 성남시계를 따라 가는 곳으로 휘남애 고개를 지나 광교산(582m), 백운산(564m), 바라산, 국사봉(540m), 청계산(582m), 남한산성(479m), 검단산(535m)으로 맥을 이어가는 성남시의 경계선 잇기 종주코스가 된다. 검단지맥은 왼쪽(용인, 죽전)의 철탑방향으로 내려선다. 상수리와 신갈나무가 숲을 이루는 주능선은 등산객들의 숫자도 많이 줄어들고, 호젓한 오솔길에서 나 홀로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게 된다.

 

63번 철탑을 지나 안부에 내려서면 왼쪽으로 오포읍 능평리의 계곡이 조망되고, 곧바로 대지산(326m) 정상에 올라선다. 잘 생긴 소나무아래 정상석과 이정표에 간단한 운동시설이 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는 길에는 펜스가 있어 길동무 삼아 진행하다 펜스가 왼쪽으로 휘어지는 갈림길에서도 계속 펜스를 따라간다. “龍仁李公”가족묘지로 내려서면 철탑이 보이는 맞은편 능선으로 지맥이 연결된다.

 

철탑아래 공터는 전망이 아주 좋아 죽전시가지의 빌딩과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수원의 광교산과 백운산이 스카이라인을 이룬다. 또한 왼쪽의 사면으로 희창 냉장과 골프연습장, 소음이 심한 레미콘 공장이 내려다보인다. 펜스를 따라 산마루 촌 앞마당에 내려서면, 대지고개 舊도로와 합쳐지고, 수십 길 절벽 아래로 새로 건설된 4차선의 대지고개(43번국도)가 관통을 하고 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터널로 도로를 건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수직으로 절벽을 이루는 절개지를 통과한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되고, 검단지맥 최대의 난관인 우회로를 찾아 舊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내려선다. 로드힐골프클럽(좌)과 다솔조경(우)을 지나면 新43번국도 밑으로 레미콘공장의 진입로가 연결되고, 그 길을 따라 고개 마루로 돌아오는 20여분이 지루하기만 하다. 소음과 분진이 심한 레미콘 공장의 담장을 따라가는 길은 가시덤불이 뒤엉켜 겨울에도 통과하기가 어려운데, 한 여름에는 종주를 포기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일단 첫 번째 철 계단은 올랐는데, 두 번째 계단에는 칡넝쿨이 통째로 점령을 하여, 도저히 접근을 할 수가 없다. 경사가 심한 벼랑아래는 차량들이 질주하고, 進退洋亂(진퇴양란)의 처지에서 惡戰苦鬪(악전고투) 끝에 절개지를 통과하지만, 이번에는 왼쪽으로 유진레미콘 공장에서 부지공사를 하며 산등성이를 반으로 쪼개놓은 절개지가 다시 나타난다. 이곳에는 안전시설이 없어, 낙반사고가 우려되는 지역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올라선 곳은, 명동성당 공원묘지 순환도로의 화장실이 있는 지점이다. 역주행으로 온다면 진입로 찾기가 애매한곳이다.

 

우리강산 종주의 사명감이 없이는 이런 험로를 찾아오는 사람도 없거니와 남이야 알아주던 말던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저 줄 거울 따름이다. 오른쪽으로 순환로를 따라 진행하는 지맥은 수 십 만평이나 되는 공원묘지의 경계선을 따라 돌아간다. 김수환 추기경이 잠들어계신 이곳에도 사람들의 차별이 심해 보인다. 죽어서나, 살아서나 빈부의 차이는 외형으로 구분 할 수 있지 않은가. 20여 분간 경계능선을 돌아가면 송신안테나가 있는 공터에 도착하며 공원묘지도 끝이 난다.

 

이곳에서의 조망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천주교 묘지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고, 서남쪽으로 수지지구와 광교산이 보인다. 산등성이에 있는 하얀 건물,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접시모양의 위성안테나가 있는 3층 건물은 (주)위아로 명명 돼 있다. 법화산 1.3km의 이정표를 따라 숲길로 들어서면, 대지고개와 공동묘지를 지나오며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가다듬으며 모처럼 사색에 잠겨본다. 나무계단과 운동시설이 있는 무명봉을 3-4개 넘어서면 법화산 오르는 정자가 반겨준다.

 

공원묘지를 지나오며 처음으로 등산객들과 마주할 수 있는 법화산(383m). 산책삼아 올라온 주민들이 정상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산의 높이보다 웅장한 정상석. 이천의 설봉산 정상석과 크기나 모양이 비슷하다. 산불감시 경보시스템과 삼각점(수원472, 1987년 복구)이 있는 정상에서 남쪽으로 할미산성과 석성산이 조망되고, 동백지구와 지맥으로 연결되는 88 C.C의 그린이 시원하게 전개된다.

 

전망대 바위에서 지맥이 통과할 88 C.C의 그린을 자세히 관찰하고 정자(30여 m거리)가 있는 쉼터로 돌아온다. 정상에서 직진하면 구성 지구로 내려서고, 돌이킬 수 없는 알바가 되고 만다. 오른쪽으로 시원하게 뚫린 등산로를 따라 27번과 84번을 겸하고 있는 고압송전탑까지 내려온다. 돌아보면 지나온 명동성당공원묘지가 보인다. 고압송전탑에서 10여 분을 내려오면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 길을 따라야 한다. 잠시 후 왼쪽으로 88 C.C 그린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골퍼들의 모습도 내려다보인다.

 

이제부터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88 C.C 를 통과하는 순서가 된다. 펜스를 따라 내려서면, 물푸레 고개에 도착한다. 골프장이 생기기전에는 인근 주민들이 많이 사용했던 곳으로 짐작이 된다. 골프장의 후문과 같이 철문이 잠겨 있다.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구성지구 물푸레 마을로 내려서고, 지맥은 펜스를 따라 잣나무 숲속으로 들어선다. 아름답게 조성된 그린이 발밑으로 내려다보이고, 관계자들에게 발각되는 날에는, 무단침입으로 인한 곤경에 처할 수도 있는 사항이므로 신속하게 현장을 빠져 나가야 한다.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정면으로 절개지를 내려서면 골프장의 카트 순환로를 만난다. 오른쪽으로 순환로를 따라 20여 m 진행하면 왼쪽으로 휴식공간인 정자가 있고, 그린위에서는 골퍼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골퍼들의 시선을 피해 잽싸게 정자 뒤편의 잣나무숲속으로 몸을 숨긴다. 88 C.C는 그린이 동서로 나뉘고, 그 가운데로 지맥이 흐르고 있다. 풍납토성보다도 낮은 언덕에는 잣나무 숲으로 조경을 하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이다 보니, 가시덤불이 무성하여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곳에서 그린으로 내려서고 만다.

 

난데없이 나타난 불청객으로 당황한 골퍼들이 경기를 중단하고, 잠시 후, 직원들이 달려오는 소동이 벌어지고 만다. 先踏者들의 조언으로 골프장의 분위기를 다 알고 있는 처지에 당황할 것도 없고, 길을 잘못 들어 이리로 내려오게 되었으니 미안하다는 사과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카트카를 대령하여 정문까지 호송하며 위험한 곳이니 앞으로는 절대로 들어오지 말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는다.

 

직원들의 경고가 아니라도, 날아오는 공에 맞기라도 한다면 큰 부상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쭈뼛 솟아오른다. 역주행 하는 경우, 동백지구의 물푸레마을을 경유하는 우회로가 바람직하다. 범의 아가리를 벗어났다는 안도감으로 몸을 추 수리고, 주차장 뒤편으로 콘테이너 박스가 있는 계단을 올라서면, 앙상한 참나무아래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다. 길도 없는 비알 길을 각개전투로 주능선에 올라서면 펜스가 앞길을 가로 막는다. 향수산 쪽으로 100여 m를 진행하여 펜스가 끝나는 곳에서, 펜스 안으로 들어오며 검단지맥도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분기봉에서 바라보는 88 C.C의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