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 제2부
제 3 구간: 하고개 - 양고개 /18km
지난번 구간에 이어 이번에도 용인시를 左衝右突(좌충우돌)식으로 지나게 된다. 동장군이 기세를 부리는 嚴冬雪寒(엄동설한)에는 눈의 고장을 찾아다니며, 정맥종주를 중단하고 춘삼월의 해동기를 맞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로 용인시에 도착하여 택시로 하고개 진입로에 도착하며 종주가 시작된다.
“生居鎭川 死後龍仁”의 전설이 아니라도, 용인에는 명당자리가 많은 탓인지 공원묘지가 유난히 많다. 시발점인 하고개에 올라서면 지나온 구간의 서울 공원묘지가 가지런히 열병식을 하고, 용인대학 캠퍼스가 숲속에 포근히 안겨있다. 꽃샘추위로 두터운 방한복으로 중무장을 하고, 33번 송전철탑을 지나 359봉에 올라선다. 이정표와 위험표시 경고표지판에는 부이산으로 표시가 되어있다. 남쪽으로 상덕저수지와 코리아C.C 의 그린이 아직까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는 않았지만 시원하게 전개된다.
봉우리마다 간단한 운동시설과 벤치가 있고, 제법 가파른 비알 길 을 올라서면 부아산(402.7m) 정상이다. 정상에는 삼각점(용인22 1994복구)이 있고, 육각정과 체육시설이 있어 인근주민들의 산책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으로 보인다. 정자 왼쪽의 지곡리 방향으로 내려선다. 336봉 오른쪽으로 송전철탑이 있고, 21번 송전철탑을 지나고, 소나무 숲을 빠져오면 절개지가 나타난다. 차선이 없는 도로의 왼쪽은 지곡리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42번 국도와 연결된다. 오른쪽으로 영진골프 랜드가 보인다.
도로를 건너 철 계단이 있는 절개지위로 올라서면 묘지가 있고, 서북방향으로 진행한다. 일렬종대로 이어나가는 고압전신주가 장관을 이룬다. 286봉 왼쪽으로 24번 송전철탑이 있고, 숲 속을 빠져나오면 25번 송전철탑을 차례로 만난다. 지곡리와 삼가동이 분수령을 이루는 정맥을 따라가면 65번 송전철탑이 있는 303봉 정상이고, 오른쪽(2시 방향)으로 진행하면 왼쪽으로 용인 정신병원이 시야에 들어온다.
송전철탑을 제외하고는 별로 특징이 없는 정맥은 218봉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서면 절개지가 나타나고 도로 건너편으로 주유소가 보인다. 절개지위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왕복4차선의 42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내려선다. 차량통행이 뜸한 틈을 이용하여 도로를 횡단하여 조금 전 절개지 위에서 보았던 현대오일뱅크 성산주유소 앞에 도착한다.
수원에서 용인으로 연결되는 42번 국도는 수도권 남쪽을 동서로 연결하며, 물동량 수송과 지역개발 및 관광 진흥 개발에 크게 이바지한다. 326km에 이르는 42번 국도는 영동고속도로와 비슷한 경로를 이어가는 국토의 대동맥으로, 인천광역시 수출 공단에서- 시흥시- 안산시- 수원시- 용인시- 이천시- 여주읍- 문막읍- 원주시- 새말휴계소- 평창읍- 정선읍- 정선아우라지- 임계면- 동해시 북평항으로 연결된다. -백과사전-
주유소 뒤의 절개지로 올라 12시 방향으로 진행한다. 도로경계표지석과 조수보호구 표지목이 있는 삼거리를 지나 248봉에 올라서면 왼쪽전면으로 동백지구 아파트단지가 내려다보인다. 펜스 안에는 용인배수지가 있고, 왼쪽으로 한국지역난방공사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5번국도가 지나는 멱조고개 삼거리에 도착한다. 구성읍에서 용인시로 연결되는 新,舊도로가 갈라지는 곳으로 용인으로 향하는 신도로와 용인배수지와 화운사로 가는 구도로가 된다.
멱조 고개: 옛날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부역 때문에 집을 비우게 되었고 시아버지가 대신 나무를 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돌아올 때면 아이를 업고 고갯마루에서 기다렸는데 어느 날 밤이 깊어도 오지 않는 시아버지가 걱정되어 찾아 나서다가 길을 잃었다. 한참을 헤매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혹시나 하여 달려갔더니 그곳에는 시아버지가 배고픈 호랑이를 만나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를 본 며느리는 호랑이에게 배가 고프다면 내 아이라도 줄 터이니 시아버님을 다치게 하지 말라며 아이를 던져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가 자신은 늙었기에 죽어도 한이 없을 텐데 어찌하여 어린 손자를 죽게 했느냐고 꾸짖자, 며느리는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으나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느냐며 모셔왔다고 한다.
도로를 건너 철 계단을 오르고, 분묘이장 안내문이 있는 정상에서 안부로 내려서면“←멱조고개”라고 적힌 나무표지판이 걸려있다. 9번 송전철탑을 지나 앞에 보이는 송전 철탑을 바라보며 진행한다. 맨홀 뚜껑이 있는 안부를 지나면“석성산 1.4km”라고 적힌 나무표지판이 있고,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은 통화사 가는 길이고 왼쪽은 부대 진입로가 된다.
부대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커다란 바위를 돌아 샘터에 도착한다. 이정표가 있는 석탑삼거리에서 로프를 따라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통화사가 보인다. 석성산 안내판이 있는 샘터에 도착한다. 석성산(472m)은 용인시에서 10번째 높은 산으로 성산, 구성산, 보개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오산천(烏山川)의 발원지로 기흥읍 중앙을 가로질러 신갈저수지로 흘러든다. 영동고속도로의 마성터널과 연결되고, 마성톨게이트와 그 뒤쪽으로 에버랜드가 펼쳐진다.
길이가 약 2km인 석성은 1500년 전(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의 개로왕을 죽이고 쫒기는 백제군을 따라 남하하면서 천연 요새인 이곳에 축성을 한 것으로 추정한다. 동쪽은 산의 경사가 완만하고, 서쪽은 산세가 험악한 이점을 살려 봉수대를 설치하여 통신수단으로 사용하였으며 지금도 이곳에는 통신대가 주둔하고 있다.
로프와 계단을 따라 능선을 올라서면 헬기장이 나오고, 석성산(471.3m)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삼각점(수원321 1988재설)이 있고, 휘날리는 태극기와 무인감시카메라에 망원경까지 설치되고 동백지구와 호수마을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휴게시설이 잘 갖춰진 정상에는 막걸리와 맥주를 팔고 있는 잡상인들이 있다고 하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보이지를 않는다.
북쪽으로 할미산성과 에버랜드의 전경이 조망되고, 오른쪽으로 영동고속도로와 용인시가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남쪽은 지나온 정맥이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고, 서쪽으로 구성읍을 대표하는 동백지구와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분기하는 신갈 인터첸지가 일대 장관을 이룬다.
계단을 따라 내려선 안부에는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다. 왼쪽은 호수마을로 내려서는 길이고, 정맥 은 마성 방향이다. 불에 탄 소나무숲길을 따라 460봉, 446봉, 372봉을 지나면 13번 삼각점을 만난다. ←마성·할미산성. 동백리→라고 적힌 이정표가 나무에 걸려있다. 정맥은 할미산성 쪽이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마성터널 위를 지나게 된다. 벤치2개가 있는 정상을 내려서면 “마가실 서낭 魔姑仙人”이라고 적힌 비석이 있는 작고개에 도착한다. 도로 건너편으로 에버랜드 입구인 마성IC가 보이고, 터키군 참전비 앞에서 중앙분리대 왼쪽으로 횡단한다.
에버랜드야 말로 우리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니 설명을 생략하고. 터키군 참전비에 관한 내용을 간추려 본다. 터키라면 먼저 2002년 월드컵을 생각하게 된다. 4강전에서 우리와 대전한 터키는 형제의 나라라는 친숙함으로 더욱 가까워지고, 이일용 선수가 진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碑의 全文: 유엔군의 기치를 들고 터어키 보병여단은 한국의 자유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침략자와 싸웠다. 여기 그들의 전 사상자 3.064명의 고귀한 피의 값은 헛되지 않으리라. - 1950년 10월 17일부터 휴전 시 까지 주둔 -
배수로와“양보 YIELD”라고 적힌 표지판 뒤로 들머리가 연결된다. 허물어진 성터를 따라 왼쪽으로 올라서면 헬기장이 나오고, 할미산성(349.7m)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할미산성 안내판이 있다. 돌을 이용해 쌓았으며 성벽의 전체 둘레는 651m이다. 성벽의 일부가 파괴되었으나 원래의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1999년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발굴 작업을 한 뒤, 경기도 박물관에 의해서도 조사를 하여,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북쪽의 내성과 남쪽의 외성으로 구분되며, 신라시대의 산성 축조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2007년 9월 7일 경기도기념물 제 215호로 지정되었다. -백과사전-
복원공사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복원공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정맥은 11시 방향으로 능선을 내려선다. 지적 경계점이 있는 봉에서 오른쪽으로 철조망을 따라 내려서면 광케이블이 지나는 고개가 나오고, 향린동산으로 향하는 콘크리트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왼쪽의 나무 사이로 향린동산의 그림 같은 고급주택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북쪽의 너른 분지에는 88 C.C 가 천국을 이룬다.
정맥이 아무리 물길 피해 가는 길이라 해도, 너무나 심한 굴곡의 연속이다. 부아산을 지나며 북쪽으로 달려온 정맥이 향린 동산을 꼭지 점으로 한 바퀴 돌아 서남쪽 방향으로 선회한다. 한반도의 지도가 북한의 선봉과 온정을 돌아 백두산으로 향하는 두만강줄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향린동산에는 어느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지, 정문에서부터 그들의 아방궁을 보호하는 이색 문구가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88 C.C 진입 철책문이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또 하나의 지맥이 분기 하고 있으니 검단지맥이다. 88골프장 중앙의 낮은 능선을 따라 법화산(383m), 불곡산(313m), 영장산(413m), 검단산(535m), 청량산(479m), 벌봉(521m), 용마산(595m), 검단산(685m)을 지나 하남시 바깢 창모로루에서 한강으로 여맥을 다하는 48km이며, 남한산성 도립공원을 경유하게 된다.
향린동산 입구를 지나 실외골프연습장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통과한다. 또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건너야하는 시련이 있다. 청덕리 덕수동과 구성읍 동막동을 연결하는 도로를 따라 영동고속도로를 무사히 통과한다. 고속도로 아래로 지나는 갈림길의 이정표에는 ↑성남.죽전 수지.신갈↗의 이정표가 있고, 청덕마을 아파트 왼쪽 숲으로 올라선다. 사방을 둘러봐도 화려한 아파트의 숲속에 남한의 지형과 흡사하여 동쪽의 속초에서 남해를 거쳐 서쪽의 강화도를 지나 백령도로 빠져 나가는 형상이다.
삼각점이 있는 182.4봉을 지나 마을길과 뒷산을 넘나들며 펜스와 철조망을 빠져나오면, 왕복2차선도로가 지나는 아차지 고개에 도착한다. 도로 왼쪽으로 어정가구단지 안내판이 있고 오른쪽으로 엠.렌트카(주) 회사가 있다. 도로를 건너 내촌숯불갈비 간판 뒤 숲속으로 올라선다. 남쪽(6시방향)으로 육중한 펜스를 따라 160봉을 지난다. 펜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90°방향을 틀어 189봉을 지나고, 194봉에 올라서면 삼거리 갈림길이다.
아차지 고개 : 자린고비의 전설에서 나온 지명. 전하는 말로는 충북 충주에 사는 고비란 사람은 조선조 중엽에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 先祖의 제삿날마다 '지방'을 다시 쓰는 종이가 아까워서 한번 썼던 것은 기름에 절여서 두고두고 다시 썼다 하여 '절인 고비'로 불렸는데 이 말이 변해서 '자린고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독한 구두쇠인 자린고비가 며느리에게 지키도록 한 간장이 자꾸 줄어드는 것을 이상히 여겨 스스로 지키고 있노라니 파리가 앉았다 날아가는 양을 보고, 용인 땅까지 쫓아가 결국 파리를 잡아 뒷자리에 묻은 장을 빨아먹고 왔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도망가던 파리가 어정대던 곳이라서 어정개, 자린고비 영감이 파리를 놓치고 "아차 이제 놓쳤구나!"하였다고 해서 '아차지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정맥은 오른쪽(2시 방향)으로 돌아서고, 능선을 내려서면 사거리 갈림길이다. 왼쪽은 동백지구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오른쪽은 산업폐기물을 가공하는 골재 채취장이 넓게 자리를 잡고 있어 굉음소리가 요란하다. 직진하여 193봉에서 또 다시 오른쪽으로 90° 방향을 틀어 소나무 숲의 완만한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능선삼거리에 정자와 체육시설이 있는 쉼터에 이정표가 서있다. 성원APT 방향으로 완만한 능선을 지나 198봉에 도착하면 펜스 앞으로 수원C.C가 전개되고 구갈단지의 아파트가 내려다보인다
울창한 산과 계곡을 파헤치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골프장. 우리의 생활이 넉넉해 졌다는 표시로 전망 좋은 산정에 올라서면 보이는 것이 골프장이다. 수도권 2천만 인구가 숨 쉬고 있는 경기도에만 현재 운영중인 골프장이 115개(2천223개 홀)에 부지면적(1억1천995만895㎡)이 여의도의 40배가 넘는 규모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으뜸인 곳이 용인시로 26개, 여주군 17개, 안성시 10개, 화성, 광주, 포천이 8개씩, 가평군 7개, 파주시와 고양시 5개 순이라고 한다.
수원C.C를 왼쪽으로 바라보며 펜스를 따라 완만한 능선을 지루하게 진행한다. 초원마을 210동 앞의 산책로를 따라 204동 앞에 있는 약수터에는 간단한 운동시설이 있다. 주공 513동 앞에서 녹원마을 5단지 방향으로 진행하여 구갈 2지구의 아파트 숲을 헤치며 실종된 정맥을 뒤로하고 오늘의 산행을 종료하는 양고개에 도착한다. 왕복4차선인 23번 국도가 지나는 왼쪽으로 용인운전면허시험장이 있고 오른쪽으로 영동고속도로를 지나는 굴다리가 있다.
제 4 구간: 양고개 - 지지대 고개 / 17.2km
또 한 장의 달력이 넘어간 4월 중순. 이제 봄볕이 완연하여 길가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만발하고, 화사한 벚꽃 들이 상춘객을 불러 모으는, 산행하기에 가장 좋은 호시절이 돌아왔다. 四通八達(사통팔달)로 시원하게 뻗어가는 국토의 대동맥. 국토의 어느 곳이든 신갈I.C 에서 못가는 곳이 없다. 눈이 어지럽고, 귀가 멍멍할 정도로 차량들이 홍수를 이루는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23번 국도는 정맥을 이어가는 유일한 생명선이다.
23번 국도를 따라 영동고속도로 밑을 지나고 “참숯오리굽는화로” 식당의 왼쪽으로 진행한다. 여성능력개발원에서 올라오는 길과 수원국도유지건설사무소 펜스를 만나 여성능력개발원이 보이는 펜스 앞에 도착한다. 정맥은 왼쪽으로 휘어지고 군부대 펜스를 따라 진행하면 경부고속도로가 나타난다. 고속도로 옆의 넓은광장을 지나 왼쪽으로 보이는 지하통로를 빠져나오며 경부고속도로를 통과하고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진행하여 한진교통 앞에 도착한다.
철옹성 같은 고속도로를 건너기 위해 가시덤불을 헤치며, 40여 분을 소모한 끝에 절개지를 오르며 정맥이 시작된다. 마을 뒤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을 지나면 수원시와 용인시가 경계를 이루는 152봉에 오른다. 잠시 잠간이지만 시 경계를 따라 거리둥이고개까지 진행한다. 포장도로가 지나는 마을길을 건너 능선에 올라서면 수자원공사 경계펜스와 근무초소가 있는 163봉이다. 수자원공사 정수장과 자이아파트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오른쪽으로 펜스를 따라 능선을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삼막골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밭둑을 따라가면 소현 초등학교 펜스가 나타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이로 정맥이 진행되지만 중학교 쪽으로 우회하여 정문을 빠져나와 소현초등학교 정문 앞을 지나 엘지자이아파트 907동에서 수지주성교회가 있는 상가를 차례로 지나 엘지상현자이아파트 정문 앞을 통과한다.
용인시 수지구의 새로 개발된 도심지는 실금같이 이어가는 정맥을 송두리째 뭉개버리고 아파트가 천국을 이룬다. 엘지자이아파트 902동, 두산 We’ve 정문 앞에서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쌍용스위닷홈(만현마을 쌍용1차아파트)에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외환은행, Buy the way 수지 상현점, 거묵공인중개사와 수지센트럴 I’PARK FITNES, 현대성우 상현5차 아파트 정문을 차례로 통과하여 지하통로를 따라 43번 국도를 건너간다.
43번 국도는 분당신도시와 동 수원 진입로를 연결되는 관문으로, 수원 정자동에 계시는 처이모 댁을 다니며 수시로 이용하는 곳이다. 의정부에서 동부간선도로를 이용하여 청담대교를 건너고 분당까지 분당고속화도로를 따라 오리역까지 달리는 속도감은 도심지의 화려한 빌딩숲을 헤치는 상쾌감으로 수원으로 오는 지름길이기도하다.
桑田이 碧海로 변신을 한 서원아파트 305동, 심곡초등학교, 금호베스트빌 5단지, 벽산106동을 차례로 통과하여 삼호벽산아파트 안으로 들어선다. 벽산 104동, 103동을 지나 풀빛 촌 벽산불루밍 아파트 정문을 빠져 나가 구43번 국도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있는 망가리고개에 도착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아파트와 상가 사이로 정맥이 연결된다. 숲속으로 들어서면 도심지의 현란한 아파트 숲길을 빠져나오는 고통으로 어지러웠던 머릿속도 진정이 되고, 가슴속이 후련하다. 통나무 계단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면, 벤치와 이정표(↑상현동 1.2km ↓약수터 1.2km), 군부대 철조망이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펜스와 철조망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벤치가 있는 삼거리까지 진행하여 왼쪽으로 또다시 왼쪽으로 돌아 부대 정문 앞을 지나게 된다.
등산로를 따라 운동시설과 사각정자가 있는 매봉샘에 도착하고, 이어 능선으로 올라서면 왼쪽에서 연결되는 시경계선 마루금과 만난다. 겨우내 앙상하던 나무들도 파릇파릇 새순이 돋아나고, 바람결에 흩날리는 벚꽃들이 코끝을 자극한다. 직진하여 완만한 능선을 내려서면 수원시 이의동과 용인시 성복동을 잇는 버들치고개가 나온다. 이정표와 광교산 등산안내판이 있고, 간이매점까지 자리를 잡고 있어 상춘객들의 구미를 당기는 곳이다.
지적삼각점(경기420)이 있는 185봉과 17번 송전철탑이 있는 곳을 지나며 서서히 고도를 높이면, 35번 송전철탑이 나오고 천년약수터가 있는 안부사거리에 도착한다. 시원한 약수로 갈증도 풀어보고 잠시 휴식을 한 뒤에, 수원시경계를 나타내는 이정표(←수원시 하광교동 →용인시 성복동)가 있는 325봉에 서 안부로 내려서면 경기대에서 올라오는 이의동갈림길과 만난다. 이정표(↙경기대 2.426m, ↑형제봉 1.030m, ↑지지대 11.732m)를 보면 오늘의 목적지인 지지대고개까지 12mk가 남았다고 알려준다.
수원시민들이 광교산과 백운산, 바라산까지 종주산행을 위해 들머리로 이용하는 탓에 등산로는 널찍한 신작로나 다름이 없다. 내리막 능선을 내려서고 완만한 능선을 지난 다음, 묘2기가 있는 안부를 지나 백년수 약수터가 있는 안부사거리에 도착한다. 왼쪽은 약수터와 문암골 방향이고 오른쪽은 용인시 성복동 방향이다. 직진하여 오르막 능선을 올라 형제봉 삼거리에 도착한다.
“ 산에서 ” 박재삼의 시
그 곡절 많은 사람은
기쁘던가 아프던가.
젊어 한창때
그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기쁨이거든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들고
年中들어 肝臟(간장)이 저려오는 아픔이거든
가을날 울음빛 단풍에 젖어 들거라.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평생
그가 다스리는 시냇물도
여름엔 시원하고
가을엔 시려 오느니
사랑을 기쁘다고 말할 것이냐,
아니면 아프다고만 할 것이냐,
가족동반 혹은 연인과 친구들과 함께 올라온 사람들이 휴식을 한다. 이제 본격적인 광교산 오름길의 전위봉이나 다름없는 형제봉은 암팡진 암릉이 버티고 있어, 자칫 방심하기 쉬운 등산객들에게 경고를 알리는 구간이기도 하다. 길게 늘어진 로프를 잡고 정상에 올라서면 신선이 따로 없다. 큰 암릉 길은 아니지만 정상에 올라왔다는 자신감으로 희색이 만면하고 바위봉에 올라서면, 수원시와 화성일대, 멀리 서해바다까지 조망이 되고, 동쪽으로 지나온 정맥이 끊어질듯 이어지는 분지 속으로 수지지구, 죽전지구, 동백지구의 아파트 숲이 일대 장관을 이룬다.
계단을 따라 경사가 심한 능선을 내려서면 이정표와 간이화장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양지재를 지난다. 360봉 정상에는“趙山界”라는 비석이 땅에 박혀 있다. 숲이 좋아서, 산이 좋아서 산을 찾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그늘 속에 자리를 잡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따사로운 봄볕 속에서도 산을 오르는 등줄기에는 땀방울이 흥건히 옷을 적신다. 거친 숨소리와 진땀을 흘리며 올라선 비로봉은 이정표와 정자가 길손들을 반겨준다.
『山 中 好 友 林 間 鳥 世 外 淸 音 石 上 泉』
산중의 좋은 친구는 숲속의 새요 세상에서 가장 맑은 소리는 돌 위에 흐르는 물소리다.
정자에 걸려있는 시 구절을 음미하며, 우리네 각박한 인생살이를 잠시나마 접어두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에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않을까 싶다.
이곳에서의 경치 또한 일대 장관을 이룬다. 바위전망대에 올라 광교산과 백운산으로 향하는 능선을 조망하며, 등산 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는 토끼재를 지난다. 고도를 높이며 진행하는 속도에 따라 광교산이 가까이 다가온다. 드디어 이정표가 있는 시루봉(572m) 삼거리에 도착한다. 용인시와 수원시의 경계를 따라 올라온 정맥에서 오른쪽으로 빗겨있는 광교산(582m). 한남정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요. 수원성을 연상하는 정상 표지석과 삼각점(수원23 1998복구)이 있었지만, 용인시 경내에 있는 정상이라는 주장을 내세워 정상석을 허물고 새로이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 중이라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群鷄一鶴으로 주위를 압도하는 조망권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수지구 고기동과 멀리 분당 일대의 아파트가 보이고, 연주대를 비롯한 관악산 줄기와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통신철탑이 장엄하게 솟아있다.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 시루봉 갈림길에서 서북 방향으로 능선을 따르면 운동시설이 있는 노루목대피소에 도착한다. 이정표와 초소가 있는 노루목을 지나며 백운산 을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이정표가 있는 송신소 앞을 지나고, 정상에 벤치 2개가 노여 있는 524봉을 지난다. 억새밭으로 부르는 안부사거리에는 돌무덤과 이정표(←절터, →수지구 고기동)가 있다. 상광교동에서 올라오는 인파와 마주치는 일이 많아지며 넓은 등산로가 붐빈다. 전망 좋은 바위 봉우리를 지나 군부대 펜스를 따라가면, 부대 정문과 통신대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왼쪽은 정맥으로 연결되는 지지대고개 방향이고, 미군 부대 펜스를 따라 북쪽으로 진행하면 전망 좋은 헬기장에 백운산의 정상석이 있다. 또한 이곳에서 관악지맥이 분기하여 백운산에서 북쪽으로 흘러 고분재, 바라산, 하오고개, 국사봉을 거쳐 청계산 줄기의 이수봉, 절고개, 매봉(응봉)을 지나 과천시가지로 내려간다.
과천시 찬우물에서 시가지구간을 일부 지나 중앙공무원교육원내 능선으로 이어진 산줄기는 관악산 줄기의 6봉을 경유하여 8봉 갈림길과 관악산 정상인 연주대를 거쳐 북동 방향으로 선회하여 남태령으로 이어진다. 남태령을 지난 산줄기는 우면산을 넘어 서울시 공무원교육원 뒤 능선으로 뻗어나가 경부고속도로를 건너고 서초구청 앞 양재사거리를 지나 약95봉을 거쳐 한강변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29km의 산줄기다.
통신대 갈림길에서 수원시와 의왕시의 경계를 따라 수 백 개의 계단이 있는 비알 길을 내려서면, 미군부대가 마루금을 차지하고 있다. 펜스 왼쪽으로 내려선 다음, 오르막 능선을 올라 미군부대 정문 앞을 통과한다. 아스팔트포장도로를 따라 통신대 헬기장에 도착한다. 이정표(←수원시 상광교동 →의왕시 왕곡동)가 있고, 벤치에는 인근 주민들이 휴식공간으로 활용하며 백운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장소가 된다.
이정표를 무시하고 직선방향으로 숲속을 들어선다. 벤치3개가 있는 359봉, 373봉을 지나며 고도가 낮아지고, 무성한 숲 사이로 가는 길이지만 등산로가 선명하다. 또한 쉼터마다 벤치를 마련하고, 이정표를 세워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이정표는 인공 세멘트 불록이지만, 나무 그루터기 모양으로 친환경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이정표와 광교산 휴식년제(2단계) 안내판이 서있는 광교 헬기장에 도착한다. ↙지지대 2.607m, 시루봉 5.693m →의 이정표를 바라보며 오늘의 일정도 머지않았다는 자신감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울창한 소나무그늘이 시원하다. 살랑대는 봄바람에 완만한 정맥길, 모처럼 여유를 부리며 열쇠잠긴 초소와 수의 사거리(←파장동 정수장, ↑지지대1.469m, ↓통신대 헬기장2.579m, 의왕시1225m→)를 지난다. 범봉을 지나고 산마루 이정표와 송전철탑 이정표를 지나면 발밑으로 북수원 인터첸지와 정자동의 빌딩들이 푸른 숲속에 자리 잡고, 왼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삼거리로 내려선 다음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지하통로(토끼굴)를 따라 고속도로를 통과하고 지지대고개에 도착하며 산행을 종료한다. 지지대고개는 수원시와 의왕시를 잇는 1번 국도가 한남정맥의 주능선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도로는 왕복8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이며, 주변에는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와 지지대쉼터 등이 자리하고 있다. 참전비의 내용: 정의와 승리를 추구 하며 불가능이 없다는 신념을 가진 나폴레옹의 후예들이 세계의 평화와 한국의 자유를 위해 몸 바친 288명의 고귀한 이름위에 영세무궁토록 영광 있으라.(참가용사 4000여명, 사망 288명, 부상 818명, 실종 18명)
지지대 고개는 효심 높은 정조대왕의 일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지금이야 8차선 도로가 지나고 있지만, 예전에는 높은 산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이 고개를 미륵댕이 또는 미륵당 고개로 부르기도 했다. 정조 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현륭원)을 참배하기 위해 이 고개에 오르며 능이 있는 화산을 보고 싶은 마음에 늦은 행차를 탓하는 말로 왜 이리 더디냐고 채근을 하고, 참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올 때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이 고개에서 행차를 늦추고, 한참을 머물렀다고 한다. 발걸음이 더디어 행차가 지체되었기 때문에 더딜지(遲) 두자를 붙여 지지대(遲遲臺)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