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세계/시와산 계간지.2

제 64 호 - 가을빛 추억속으로

김완묵 2009. 11. 13. 05:25

 

                                       백두산 트레킹

 

 

                                         제 1부 : 백두산 가는 길

 

금강산 관광을 다녀오며 계획을 세운 백두산관광이 결실을 본다. 금강산을 다녀오던 2년 전만해도 남북이 화해의 물결 속에 개성관광이 시작되고, 백두산도 중국의 먼 길을 돌아가지 않고 평양을 경유하여 삼지연으로 오를 수 있겠다는 장밋빛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 일어난 후로 양측의 경색된 국면이 일촉즉발의 긴장감속에 풀릴 기미가 없으니, 나의 꿈이 실현되기는 요원하지 않은가?

 

 

남측의 백두대간을 완주하고 금강산의 세존봉에서 바라보는 북측의 대간길이 너무도 황홀하였다. 비록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내 조국의 맥박이 요동치는 산줄기를 바라보며 조국분단의 아픔을 더욱 실감한다. 비록 금수강산의 등줄기를 밟아보지는 못하지만 시발점인 백두산이라도 오르는 것을 소원으로 가슴속에 새겨두고 차근차근 준비를 하였다.

 

 

백두산은 동경 128도, 북위 42도상에 걸쳐있고 해발 2,744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여행사의 안내서에 의하면 산행을 할 수 있는 기간이 6월에서 9월까지 4개월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일반인들의 관광에는 7월과 8월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해설이다. 그만큼 우리의 영산을 찾아가는 데는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세심한 일정과 행선지를 꼼꼼하게 챙기고 믿을 수 있는 여행사를 선정하는 것이 필수 여건이다.

 

 

지난 5월부터 백두산 트레킹을 준비하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은 사진으로 보는 험한 산세와 중국과 북한이 국경선을 이루는 곳이라, 우리의 계획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또한 장마철의 우기에 일정이 잡혀있어 천지를 보지도 못하고 안개 속을 헤매다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지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연도에는 오랜만에 비추는 햇볕이 불안한 마음을 녹여준다. 아시아의 허브임을 자랑하는 우리의 인천공항. 수많은 여행객들이 물결을 이룬다. 최신시설의 공항이 우리의 자부심이요. 지구촌으로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는 국력의 상징이 아닌가? 우리가 3박 4일간 동고동락할 33명이 하나둘 모여든다. 우리의 영산을 찾아가는 이들의 얼굴에는 설레 임이 가득하다. 축제의 분위기속에 출국 수속이 끝나고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활주로를 박차고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1시간의 시차가 있다. 일정표만 본다면 비행시간이 50분으로 되어 있지만 1시간 50분이 소요되고 기내식까지 제공받고 나면 1,196km를 날아온 비행기가 장춘공항에 안착을 한다. 우리에게 처음으로 안겨주는 선물은 그렇게도 염원하던 햇볕이 아니고 차창을 타고 내리는 빗줄기이다. 해도 너무하다는 실망감에 부푼 희망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오그라들고 입국수속을 마친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오른다.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곳. 다정한 이웃들이 살고 있는 고향 마을과 같이 정감이 간다. 곧게 뻗은 고속도를 달리는 연도에는 옥수수 밭과 콩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한반도의 넓이와 비슷한 길림성의 광활한 대지가 아득하게 지평선을 이룬다. 변덕스러운 것이 날씨인가?

 

한 줄금 소나기가 지난 뒤에는 쨍하고 반가운 햇살이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는가 싶다가도 먹장구름이 대지위에 비를 뿌린다. 날씨의 변덕에 울고 웃다 어느덧 해는 지고, 고속도로를 벗어나며 느림보 운행 속에 도로공사의 훼방꾼이 갈 길을 가로 막는다. 장춘에서 송강하까지 490km라면 서울에서 부산보다도 먼 거리, 6시간이면 충분하다던 가이드의 멘트는 시간이 갈수록 엿가락처럼 늘어난다.

 

 

칠흑 같은 어둠속을 달리는 자동차의 게걸음에 파김치가 된 우리는 백두산의 트레킹을 뒷전으로 호텔의 숙소에 도착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현지 시간으로 11시 30분, 8시간 30분의 지루한 여행 끝에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방배정과 함께 첫날밤을 보낸다.

 

 

선 잠속에 기상을 하여 고양이 세수와 함께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버스에 올라 백두산의 남파를 행해 출발을 한다. 밤새 비가 왔는지 개천에는 흙탕물이 흐르지만 다행이 비가 그쳐 안도의 한 숨을 내쉰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날씨로 우리가 가는 길에 어찌 순탄하기만을 바라겠는가? 2인1실로 방 배정을 받아 룸메이트가 된 김광문씨와는 공항에서 첫눈에 반하여 십년지기가 되어 버스에서도 한자리에 앉았다.

 

 

날씨걱정을 태산같이 하는 나에게 걱정 말라고 호언장담을 한다. 자기는 동문들의 산악회장으로 300여산을 오르며 오던 비도 그치는 신통력이 있다며 우리의 장도에 좋은 징조가 있을 것이라며 여유가 만만하다. 백두산 가는 길은 무성한 낙엽송이 숲을 이루고, 다리공사로 지반이 약한 구간에서는 모두 내려서 다리를 건넌다. 3시간 20분간의 버스여행 끝에 백두산 남파 주차장에 도착하여 입산 수속을 하고 2일째행사로 관광과 트레킹이 시작된다.

 

 

민족의 성산을 우리의 땅으로 오르지 못하고, 이역만리 멀고 먼 길을 돌아 오르는 우리의 각오는 대단하다. 태초에 단군왕검께서 이곳의 신단수에서 나라를 펼치신 후로 고구려의 전성기 까지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중심지가 아니던가? 그 성산의 천지연못은 화산의 폭발로 생긴 호수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수면표고 2,189m)이라고 한다.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2,500m가 넘는 봉우리가 16개에 달하고 둘레가 14km, 최고 수심이 384m가 된다고 하니 가히 신비의 성산이라 하여 부족함이 없다.

 

 

남파 오르는 주차장에서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2일간 작별을 하고 이곳부터는 서틀 버스를 이용해야한다. 무거운 짐은 버스에 두고 2일간 산행에 필요한 짐을 배낭에 꾸린다. 장백산의 현판이 걸려있는 산문에서 인원점검과 함께 중국 가이드가 동승하면서 미니버스 2대에 나누어 타고 산문을 들어서면 울창한 수림 속으로 별천지가 열린다. 어느 장인의 손끝에서 다듬어진 정원수처럼 융단같이 부드러운 초원에는 야생화가 만발하고 구상나무와 자작나무, 낙엽송이 사이좋게 공존을 하고 있다. 숲 사이로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압록강의 발원지라는 사실을 알고는 코끝이 찡한 감동을 받는다.

 

 

강물 따라 굽이굽이, 물길 따라 천리 길, 우리 조상들이 터전을 잡아 살아 온지 반만년, 우리의 힘이 강성할 때는 만주벌판을 호령했지만 국력이 약할 때는 압록강을 경계로 수없는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던 전략적인 요충지. 지금도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철조망이 차창으로 스쳐가며 나라사랑의 징표로 가슴이 찡하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백두산. 백두산이라면 천지와 장백폭포를 연상하게 되지만 지금 우리가 오르고 있는 이곳은 화산 폭발당시 용암에 의해 생긴 압록강 대협곡사이로 불에 탄 나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탄화 목 형성대를 지나 낙타봉 전망대에서 절정을 이룬다. 수십 길 단애를 이룬 협곡의 벼랑에는 만고풍상의 풍화 속에 깎이고 다듬어진 주상절리의 아름다운 절경이 우리의 시선을 압도한다.

 

 

소나기라도 한 줄금 하려는지 먹구름이 몰려오지만 우리가 지나는 연도를 중심으로 햇볕이 내려 쪼이고 있으니 이무슨 천지조화인가? 광활하게 펼쳐지는 초원은 끝이 없고 산등성이들이 겹겹이 포개진 사이로 협곡을 이룬다. 백두산은 고도에 따라 식물의 분포가 형성되어 생태학적으로도 귀중한 보고라 하겠다.

 

 1,500m - 1,800m 까지는 구상나무와 낙엽송이 주종을 이루고 2,000m까지는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한겨울의 모진 바람에 키가 크지 못하고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지들이 부러져 앙상한 모습이다. 이후로 관목지대가 사라지고 융단 같은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천연골프장으로 활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해보며 부드러운 초원위로 말달리는 연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행복에 젖는다.

 

 

구절양장의 임도를 따라 오르는 도중에 지난겨울 내린 눈이 7월 말에도 그대로 남아 있으니 자연의 신비함에 감탄하면서 남파 주차장에 도착한다. 검은 화산석에 천지라는 글씨가 선명한 주차장은 표고가 2,500m가 넘는 탓에 초본식물도 자라지 못하는 툰트라 지역으로 화산재와 앙상한 돌과 암석만이 우리를 반겨준다. 이곳은 대부분이 북녘 땅이지만 중국에서 관광객을 유치하기위해 사용하고 있는 곳으로 수년전에 개방된 곳이라 우리 말고는 한국 사람은 볼 수가 없다.

 

 

이곳부터 천지를 볼 수 있는 관명봉(2,656m)까지는 그리 멀지않다. 길옆으로 넘지 말라는 경고문과 함께 나이론 줄로 국경선표시를 하였지만 마음대로 넘나들며 사진을 찍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으니 신기하기만 하다. 이웃 나라끼리도 마음대로 넘나드는데 내나라 내 민족이 사상과 이념의 갈등 속에 155마일 휴전선에 육중한 철책으로 장벽을 막고, 나는 새도 넘지 못할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었으니 가슴 아픈 현실을 무엇으로 설명 할 수 있는가?

 

 

구름이 몰려온 탓으로 관명봉의 모습이 희미하게 앞을 가려 우리의 가슴을 무겁게 한다. 관명봉 전망대에 올라서니 수십 길 벼랑 아래로 천지가 희미하게 선을 보인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지만 그래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20여분을 기다린 끝에 운해가 서서히 거치며 건너편의 천문봉(2,670m)이 신비의 베일을 벗는다. 신 바람난 가이드의 너스레를 뒤로하고 오늘의 트레킹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내려온다.

 

 

 

 

                                    제 2 부 : 야생화 (남파에서 서파로)

 

주체 측에서 나누어준 개념도에는 관명봉(2,565m)에서 옥설봉(2,593m), 마천우(2,564m)로 종주를 하게 되어 있지만 험한 산세와 함께 등산로가 없기 때문에 오를 수가 없다. 해서 주차장에서 올라온 길을 되돌아 10여분을 내려오면 트레킹이 시작되는 1800고지에 도착한다. 일반 관광객은 천문봉(2,650m)에 올라 천지를 본 후 장백폭포를 보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남파에서 북파까지 트레킹 코스가 있는지 조차 모른다.

 

 

산을 사랑한다는 사명감으로 백두산의 분지를 횡단하며 야생화 단지를 탐방한다는 것은 내 생애 꼭 하고 싶은 목표중의 하나이다. 우리를 태우고 온 미니버스도 자취를 감추고, 수백만평의 초원위에 내려선 우리(36명 가이드 3인 포함)는 서파 산장까지 5시간 동안 자연의 숲을 헤치는 트레킹이 시작된다.

 

 

처음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감각으로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 고산지대의 이끼와 키 작은 초본식물들이 오랜 세월동안 쌓이고 싸여 스폰치와 같이 탄력성이 생긴 탓이다. 때문에 폭우로 쏟아지는 빗물을 흡수하여 맑은 물이 흐르지만 수림이 울창한 낮은 지대에서는 산사태와 함께 흙탕물이 소용돌이를 치게 된다. 하늘도 무심하여 천지를 보여 주는 것으로 생색을 내더니 기어코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주위에 펼쳐지는 야생화가 수십 수백종류에 이르지만 아는 것이라고는 열손가락에도 미치지 못하니 수 십년 산행경력이 무색하기만 하다. 이름 모를 야생화에 둘러싸여 진행하는 트레킹은 중국 국경수비대가 다니는 길목으로, 현지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따라가는 길이라 산행하기에 어려움이 없고 높은 고지에서 고도를 낮추며 진행하기 때문에 편안한 산행이 이어진다.

 

 

우리나라에도 덕유산의 중봉, 점봉산의 곰배령, 대덕산의 분주령, 대관령의 삼양목장의 야생화 단지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많은 인파로 훼손이 심하여 안타까움이 많다. 하지만 이곳 백두산의 야생화 단지는 사람의 발자취가 미치지 못하는 원시림 속에 숨어있어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발길이 닿는 곳마다 탄성이 절로 난다. 트레킹 2시간 만에 하늘을 가리는 낙엽송 사이로 우렁찬 굉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일명 금강폭포다. 천지의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계곡을 따라 절벽을 타고 흐르는 삼단 폭포로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내린다. 가파른 비알 길을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지만, 폭포를 보고 싶은 열정 앞에 장애물 이 될 수가 없다. 일 년의 대부분이 겨울인 백두산에 잠시 잠깐 왔다가는 여름을 시샘하며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앞 다투어 피어나고, 녹색 초원이 펼쳐지는 백두산 트레킹. 잠시도 멈출 줄 모르는 빗줄기에 온 몸을 내 맡기고, 빗물에 밥 말아 먹는 도시락도 시장이 반찬이라 허기를 달랜다. 폭포의 상단으로 계곡물을 건너면 때맞추어 빗줄기도 가늘어지고 본격적인 야생화 단지가 펼쳐진다.

 

 

이곳이 대략 1,600고지로 국경수비대가 차량으로 다니는 임도가 나타나며 더욱 편한 트레킹이 펼쳐지고 단지별로 야생화가 군락을 이룬다. 멀리 고지에는 아침에 우리가 올랐던 관명봉과 옥설봉 , 마천봉의 화구들이 병풍을 두른 듯, 기암절벽을 이루고 그 아래로 경사가 완만해지며 진초록의 초원에는 구상나무와 야생화가 어우러져 그림 같은 분지가 펼쳐진다.

 

 

흐드러진 곰 취 - 우리가 지나는 연도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노란 꽃대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대산이나 점봉산을 하루 종일 헤매도 한 두 잎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씨가 말랐는데,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한 입 가득히 씹어보면 소태같이 쓴맛으로 진저리가 처진다. 예로부터 쓴 것은 약이요 단것은 독이라 하지 않았던가? 입안에 가득 넣고 꼭꼭 씹어 삼키는 맛이 나중에는 달착지근한 향이 오래도록 남는다.

 

짓 굳게 쏟아지던 빗줄기도 임도에 들어서며 잦아들고, 싱그러운 해살이 내려 쪼이는 광활한 대지위에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사진에 담고, 가슴에 담고, 몸도 마음도 꽃밭 속으로 푹 빠져든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원, 종주거리 14km에 5시간이 넘는 트레킹으로 난초지초 흐드러진 야생화도 싫증이 나고 장백산 캠프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낙엽송과 자작나무의 밀림 속으로 아스콘 포장길이 나타나고 그림 같은 캠프가 반겨준다. 샤워도 하고 편히 쉴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달려가지만 우리의 안식처는 그곳이 아니다. 건물 뒤로 돌아서면 여름한 철 임시로 사용하는 천막촌. 4인 1실의 천막이 20여동 숲속에 자리 잡고, 공중변소 2개에 샤워장은 가릴 곳 없는 공동 우물터. 볼멘소리로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거처로 기어든다.

 

 

노천 우물터에 남녀가 따로 없이 고양이 세수로 머리만 감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8명씩 둘러앉은 원형탁자에 돌아가며 차려 내는 메뉴가 입맛에 맞아 식욕이 나고, 배낭 속에 소주 팩이 나올 때마다 즐거운 웃음꽃이 피어난다. 야생화에 취한 여흥으로 백두산 캠프의 밤이 깊어만 간다.

 

 

개구리 울음소리에 잠이 깨어 밖에 나오니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은 초롱 별 초롱, 별 하나 나하나.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 인간들의 숨결도 미치지 못하고, 모기들도 범접하지 못하는 청정지역, 백두산의 정기를 받은 장백산 캠프가 적막 속에 잠들어있다.

 

 

촉수 낮은 가로등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서면 구름 한 조각도, 티끌 하나도 없이 은백색의 미리내(은하수)가 흐르고 있다. 해도 달도 숨어버린 어둠속에는 3대가 덕을 쌓아도 보지 못할 황홀함이여! 북극성에서 5뼘을 재어 가면 북두칠성이 반짝이고 오리온 좌, 카시오페아, 삼태성까지 은하수가 흐르는 무한의 우주 속에 기라성 같은 별들이 춤사위를 벌이고 있다.

 

 

어린 시절 마당가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위에 팔베개를 하면, 하늘에서 쏟아지던 별들의 행진곡, 남십자성을 바라보며 향수에 젖던 병영생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추억의 갈피를 들춰본다. 편안하고 안락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면 백두산의 별밤은 상상도 못하고, 일생일대의 진기한 보물단지를 어찌 가슴속에 품을 수가 있단 말인가? 불편한 잠자리에 뒤척이는 천막이 오늘의 행운을 안겨다 준 것이다.

오!!!! 황홀한 밤이여 영원 하라.

 

 

새벽 4시 기상으로 시작되는 천지 트레킹.

컵라면에 밥 말아먹고 새벽길을 가르며 달려갈 때, 자작나무가 하늘 숲을 이루고 시원한 공기가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40여 분간 곡예운전으로 서파 주차장에 도착하면 초가을의 스산한 아침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만주벌판의 산자락이 너울처럼 흐르고, 계곡 사이로 피어오르는 운해가 우리의 장도를 축원하는 듯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제 3 부 와! 천지다.

 

천지를 바라보며 트레킹이 시작되는 출발점에는 1,272개의 계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만만하게 바라본 계단 길. 하지만 1,272개라면 만만하게 볼일이 아니다. 천지를 보겠다는 욕심으로 성큼성큼 올라서지만 400계단을 지나 800계단에 올라서며 오버패스의 후유증으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백두산의 천지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5호경계비가 있는 언덕에 오르면 눈이 화등잔만큼이나 커진다.

 

 

하늘아래 가장 가까운 연못. 天池가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와!!!!!!! 천지다. 어제와는 다르게 선명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건너편으로 장군봉(2,750m)과 천문봉(2,670m)이 하늘높이 솟아올라 첨봉을 이루고 있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별천지가 시야에서 사라질까봐 조바심치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높은 하늘에 걸린 새털구름이 호수의 표면위로 내려 안고,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연봉들이 호수 속으로 잠겨든다.

 

 

일 년이면 300일이 눈비가 내리고 안개 끼는 일수가 많아 천지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데,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오니 이런 행운이 또 어디에 있는가? 아! 이 순간을 얼마나 갈망하였던가?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천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16개 봉우리들이 왕관의 꼭지 점으로 화려하게 펼쳐진다. 직접 오르지는 못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듯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든다.

 

 

푸르다 못해 잉크를 풀어놓은 청 보라의 물빛. 해수면이 2,189m 면적이 9.82㎢ 둘레 14km 동서길이 3.82km 남북길이 4.55km 평균수심 213m 최고수심 384m의 규모로 화산 폭발로 생긴 호수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고 한다. 또한 백두산은 3번의 화산 폭발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1702년 폭발로 휴면기에 있으며 2500m가 넘는 16개의 봉우리 중에서도 으뜸인 장군봉(2750m)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이며 백두대간의 시발점이다.

 

 

삼천리금수강산의 높고 낮은 산과 계곡이 이곳에서 시작이 되고 나라의 근본이 이곳이 아니던가? 꿈결 같은 30분이 지나고도 자리를 뜨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오늘의 일정이 9시간의 대장정으로 어제의 트레킹이 전주곡이라면 오늘은 천지를 돌아가는 하이라이트의 행사가 아닌가? 5호경계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트레킹이 시작된다. 서파에서 북파로 시작되는 종주 길에 마천루(2,634m)의 직 벽을 피해 돌아가는 길에는 지난겨울 내린 잔설이 반겨주고 서쪽으로 길림성의 초원지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우리 땅을 우리가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고 중국 공안당국의 안내를 받아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백두산의 개념도 또한 여행사마다 산 이름도 다르고 높이도 다르다 보니 기준점을 잡기가 어렵고 산세를 보아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지만 우리를 동행한 뫼솔 산악회에서 제공한 개념도를 참고하기로 한다.

 

 

마천봉을 우회하여 올라서면 또 다시 천지가 모습을 보인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새로운 모습을 보일 때 마다 감탄사가 절로 난다. 천지를 우측으로 끼고 돌아가는 암릉 길은 수십 길의 단애를 이룬다. 전면의 청석봉(2,682m)에 올라서면 천하일품의 조망대가 펼쳐진다. 우측으로 천지너머로 장군봉(2,750m)이 선명하고 어제 올랐던 관명봉(2566m)과 옥설봉(2593m),이 남측 벽을 싸고돌면, 정면으로 백운봉(2,691m) 이 우뚝 솟아오르고 그 너머로 천문봉(2,670m)이 호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무도 자라지 못하는 초원지대가 광활한 지평선을 이루며 한 없이 펼쳐진다.

 

 

바위틈의 야생화도 앉은키로 미소 짓고, 쑥부쟁이 들국화, 노란 만병초가 저마다 자태를 뽐낸다. 진홍색의 야생화. 천지와의 만남은 천생의 인연인가? 속궁합까지 잘 어울리는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낸다. 청석봉의 비알 길을 더듬어 내려가면 백운봉가는 길에 직 벽이 가로 막고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운해가 신비감을 더한다. 白雲峰(백운봉) 해설이 필요 없이 현실이 우리에게 가르침으로 일깨워주고 고도 500여 m를 내려서는 한허 계곡으로 이어진다.

 

 

짙은 운무가 사방을 외워 싸고, 어둠속을 헤치는 발걸음에 포근한 융단길이 펼쳐진다. 천지의 물길이 바위틈을 비집고 흘러내려 내를 이루고, 우렁찬 계곡물이 흐르는 한허 계곡에 내려서면 뼈가 저리는 천지의 얼음물을 체험하게 된다며 발을 벗고 들어서라고 재촉을 한다. 손가락이 빠질 듯 시린 얼음물에 누구하나 발 벗을 생각을 못하고 세수하는 것으로 인연을 끝내고 안내원의 뒤를 따라 백운봉 오름길이 시작된다.

 

 

오늘의 트레킹에서 가장 험난한 길이다. 60여도의 경사에 돌 자갈길, 2,000고지라면 희박한 공기가 연상되지 않겠는가? 안개 속을 헤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한데 도봉산을 오르는 고도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한발 두발 오르다 쉬고, 오르다 쉬고 발걸음이 마냥 느려지며 선두와 후미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고진감래의 의미를 되새기며 발길에 채 이는 야생와의 향기로 피로를 풀어본다.

 

 

백운봉의 안부에 올라서면 너덜지대가 펼쳐진다. 경사는 완만하지만 너덜의 장애물이 더디기만 하다. 귀때기 청봉의 너덜과 황철봉의 너덜지대를 안주삼아 쉬엄쉬엄 올라서면 김 광문씨의 호언대로 막막하던 안개도 자취를 감추고 천지의 별천지가 우리를 반겨준다.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장군봉과 천문봉 아래로 펼쳐지는 그림은 가히 환상적이다.

 

 

중국에서 장백산으로 부르는 백운봉. 군계일학으로 높은 산세와 험준한 벼랑길이 트레킹 코스로는 위험도가 높은 곳이기에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속에 천지와 어우러진 경관은 가히 환상적이다. 용암의 분출로 생긴 분화구인 탓에 천지로 내려가는 길이 없고 수십 길 직 벽이 단애를 이루고 있다. 천지를 돌아 가는 봉우리마다 천하의 조망 터가 펼쳐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곳이 괴물바위가 있는 금병봉(2603m)가는 길이다. 천지를 내려다보는 둔덕에는 야생화가 만발하고, 편안하게 쉬기 좋은 너른 분지에서 때 이른 점심상을 차린다.

 

 

어제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빗물에 밥 말아 먹는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삼삼오오 짝을 찌어 옹기종기 모여앉아 정상 주까지 맛을 보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야생화의 향기보다도 맛깔스런 점심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반찬 없는 도시락으로 민생고를 해결하고 관일봉을 넘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천지의 둔덕에서 팔베개를 하고 누었으니 산사나이들의 염원이 하늘까지 올랐는데 세상만사 부러운 것이 무엇이랴.

 

 

아름다운 노래도 세 번이면 싫증이 난다는데 천지를 눈이 시리도록 보고 난 터라. 이제는 신물이 난다는 방정맞은 입방아로 장군봉도 천문봉도 구름 속으로 몸을 감추고 천지의 물가로 운해가 내려앉는다.

 

아!!!!!!! 다시 보고 싶은 천지여.

언제다시 볼 수 있을까.

영원히 가슴속에 묻어 두고 가련다.

 

 

관일봉에서 차일봉(용문봉 2596m)의 직벽이 있는 안부에 도착하면 앙증맞은 돌탑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천지신명의 보살핌으로 험준한 천지트레킹을 무사히 완주하고, 천지를 바라볼 수 있는 행운까지 안겨 주셨으니, 감읍한 마음으로 하나둘 올려놓은 정성이 하늘에 닿은 것이 아닐 런지?

 

 

후미가 도착할 때 까지 잠시 휴식시간이 이어지고 천지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큼지막한 돌멩이도 거뜬하게 들어 올리니, 장미란도 부럽지 않고 전병관도 부럽지 않다. (*화산석이라 부피에 비해 무게가 절반 밖에 안 된다.) 인원점검이 끝난 뒤 빗방울이 흩날리는 초원지대를 내려서며 비가 오면 어떠하고 눈이 오면 어떠하리. 우리가 가슴속에 품어 왔던 5시간의 천지 트레킹을 무사히 완주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 홀가분한 마음으로 콧노래가 절로 난다.

 

 

1909년 청·일 간에 체결된 간도협약으로 두만강이 국경선으로 결정되고, 백두산의 천지까지도 분할되어 천지 북쪽 2/5는 중국 측에, 남쪽 3/5은 북한 측에 속한다. 8·15해방 당시까지는 최고봉이 병사봉(2,744m)으로 알려졌으나 그 후 이름이 바뀜과 더불어 다시 해발 2,750m로 측량되었다. 장군봉의 높이 는 2,750m. 백두산의 최고봉으로 천지의 동쪽 화구벽에 솟아 있다.

 

 

백두산에는 650여 종의 식물종이 분포해 종류별로는 한국의 다른 지역보다 적은 편이다. 이는 최근 200~400년 전의 화산활동의 영향으로 새로운 식물 천이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지의 총저수량은 20억t으로 그 가운데 70%는 빗물이며, 나머지 30%는 지하수가 솟아 오른 용천수이다. 천지에는 물고기가 없고, 식물성 플랑크톤이 5종, 작은 동물과 곤충류가 4종, 그리고 이끼가 생장한다. 천지의 물은 중국 측의 달문으로만 유출되어 장백폭포의 절경을 만들고 송화강[松花江]을 이룬다.

 

 

변화무쌍한 것이 백두산의 날씨라고 하더니 빗줄기가 거세지며 짙은 안개가 우리의 몸을 감싼다. 세찬 비바람 속에 백두산 관리소에 도착하여 인원점검을 하고 새우등 능선으로 내려선다. 우리의 일정대로 진행한다면 차일봉(용문봉)의 사면 길을 돌아 달문에서 천지 물에 손도 씻어 보겠지만 지난번 폭우로 달문 오르는 계단이 붕괴되어 출입이 통제된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악천후 속에서도 우리의 표정은 밝기만하다. 모든 일정을 완벽하게 소화 했으므로. 하루 종일 천지 트레킹에도 사람하나 구경 못했는데 천지를 보겠다며 올라오는 일행과 마주친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고 보니 충남 대학생들, 달문의 통행금지로 천지를 보기위해 이곳으로 오른다는 그들의 바램 이 비바람으로 무산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망연자실한 표정들이다.

 

 

아름다운 새우등. 비수같이 날카로운 암릉에서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하며 순식간에 생겨나는 실줄 같은 폭포들이 산책로를 집어 삼킨다. 소천지로 향하는 날 등의 무명봉에 올라서면 비바람 속에서도 장백폭포가 선명하게 바라보인다. 장백폭포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전망 봉이다. 좌측으로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옥백 폭포. 옥백봉(2649m)에서 흐르는 물기둥이 급류를 타고 장관을 이룬다.

 

 

이제 우리의 여정이 마무리되는 온천관광호텔과 매표소가 보이지만 내려가는 길이 벼랑이라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폭우 속에 벼랑길을 더듬어 내려간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도 한순간.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사 인가? 미끄러지는 발목이 나무뿌리 사이로 끼어들며 발목이 틀어진다. 심한 고통 속에 중심을 잡고 일어서보니 불편하긴 하지만, 큰 부상이 아닌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길가에 주저앉아 발목을 주물러보지만 발목이 점점 부어오르고, 거동이 불편해진다. 난감한 현실 앞에서 이 일을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일행 중에 가장 먼저 내려오면서도 남들보다 먼저 장백 폭포를 다녀와야겠다는 강박관념이 불상사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輕擧妄動(경거망동)을 자책하며 비상구급약을 가지고 있는 일행의 도움을 받아 응급처치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

 

 

절룩절룩 다리를 끌면서도 트레킹을 끝내고 당한 부상이라 千萬多幸(천만다행)이지 산행도중이라면 이 일을 어찌 수습할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도백하 주차장에서 장춘까지는 500여 km. 서울에서 부산보다도 먼 거리. 부상당한 몸으로 9시간동안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아찔 하기만하다. 옹색한 차안에서 부어오르는 발등을 어루만지며 신중하지 못한 경솔함을 자책하며,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장춘의 호텔에 여장을 풀고 부어오른 다리에 얼음찜질로 하룻밤을 지새우며 귀국을 하였지만, 뼈에 금이 가고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이 모두가 자업자득으로 영광의 상처를 가슴에 안고 내일을 기약한다.

 

 

 

 

 

 

 

연재- 백두대간에 부는바람 .5

 

 

                         제2부 중부지역

 

 

                   11. 도래기재(770m) - 고치령(760m) / 26.2km

 

도래기재(770m)는 태백산과 소백산을 가르는 경계지점으로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과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을 이어주는 998번 지방도로의 고개이다. 지금은 터널이 개통되어 소통이 원활하지만 교통량은 많지 않은 편이다. 춘양면 서벽리 북서쪽 2km지점에 있는 마을 이름을 따와서 도래기재라고 부르는데, 이 마을에는 조선시대에 역촌이 있었기에 도역리(道驛里)라 부르다가 변음이 되어 도래기재로 통음이 되고 재 넘어 우구치는 골짜기 모양이 소의 입모양을 닮았다하여 牛口峙라 부른다.

 

 

대간 길은 남서방향으로 처음부터 가파른 비알 길을 오른다. 1,4km지점에는 귀중한 보물이 숨어있다. 길옆에 조그만 표지판까지 있지만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비알 길에서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으니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수령이 자그마치 400여년이 넘는 철쭉나무가 있다는데 우리 모두 놀랄 수밖에. 우리나라와 같이 산불이 자주 일어나고 헐벗은 산야에서 그토록 오래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주 영림서에서 인증을 하고 보호림으로 지정을 하여 보호하고 있는 귀중한 자산이다. 춘양에서 북서쪽으로 16km, 봉화에서 북쪽으로 14km 지점에 있는 옥돌봉(1,242m)은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면 주실령 갈림길이 나오고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줄기는 내성기맥의 분기점으로 예배령(919m), 문수산(1,205m)으로 이어진다. 대간 길은 서쪽으로 선회하여 비단결 같은 초원지대를 내려서면 박달령(761m)에 이른다. 산신각과 헬기장이 자리 잡고 있는 너른 분지에는 휴식공간으로 조성되어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하지만 임도를 따라 올라온 자동차들의 매연으로 숲속의 정화된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으니 우리의 마음이 심란하다.

 

 

좌측의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조선조 성종시절 전국에 있는 약수의 수질을 검사 한 결과 가장 좋은 약수로 선정이 되었다는 오전 약수에 이른다. 대간 길은 서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선달산을 바라보며 진행한다. 이곳 박달령에서 경상도와 강원도의 경계선을 따라 5km를 진행하면 선달산(1,236m)정상이다. 대간 길은 남쪽의 늦은 목이재로 내려서야 하고 서쪽으로 직진을 하면 어래산(1,063m)과 김삿갓의 묘소가 있는 마대산(1,052m)으로 빠지게 된다.

 

 

늦은 목이재(800m)는 오전약수로 유명한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와 충북 단양군 영춘면으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당일 종주 팀들이 이곳에서 구간을 마감하기도 한다. 이곳부터 소백산 국립공원이 시작된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을 1km쯤 오르면 갈곶산(966m)정상에 도착한다. 남쪽의 봉황산(819m)의 명성에 가려서인지 정상에는 표지석하나 없이 마구령 4.9km의 표지만이 서있다. 대간 길은 서쪽으로 진행하고 남쪽의 봉황산 기슭에는 그 유명한 부석사가 자리 잡고 있다.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펼친 곳이다. 삼국유사의 설화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하던 선묘낭자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짓는 동안 훼방을 놓는 도적떼를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앉아 부석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산에 있는 부석사의 전설 또한 똑같으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또한 부석사의 중심건물인 무량수전은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는데 그동안 여러 번 개축을 한 끝에 고려 우왕 2년(1376년)완공된 건물로 광해군시절 새로 단청을 한 것을 1916년 해체 복원공사를 하였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건물 중에서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건물로 고대 사찰의 건축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를 받고 있다.

 

 

3km 거리에 있는 1,057봉을 지나 마구령(820m)에 도착하면 산림청에서 세운 정상석이 반겨주고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임곡리를 오가는 비포장 고개 길이다. 경상도에서 충청도 강원도를 통하는 관문으로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고개라 마구령으로 부르며, 경사가 하도 심해 논을 매는 것처럼 힘이 들다하여 매기재 라고도 한다. 1,096봉 헬기장에는 삼각점이 있고, 미내치(820m)에는 마구령5km, 고치령 3km의 이정표가 지친 몸을 반겨준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500m 간격으로 세운 이정표를 따라 산신각이 있는 고치령(760m)에 도착하며 또 한 구간을 마감한다.

 

 

 

                      12. 고치령(760m) - 죽령(689m) / 25km

 

이번 구간은 소백산 국립공원을 지난다. 소백산은 백두대간이 강원도 지역을 남진하면서 태백산에 이르러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속리산까지 이어지는 그 중간에 가장 높이 솟아오른 산이다. 소백산 국립공원은 행정구역상으로 충청북도 단양군의 1개읍 3개면, 경상북도 영주시의 1개읍 4개면과 봉화군의 1개면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12대 명산으로 선정된 곳이다. 1987년 12월 14일 건설부 고시 제645호에 의해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8호로 지정되었으며, 총면적이 322.383㎢로서 경북지역에 173.56㎢, 충북지역에 148.823㎢가 분포되어 있다.

 

 

고치령은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와 마락리를 넘나들며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를 연결하는 고갯길이다. 해발고도는 760m로 호젓하고 고즈넉하여 운치 있는 오솔길이지만 경사가 가파르고 산세가 험하여 고개 마루까지 4km를 오르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체력적으로도 무리가 따른다. 때문에 좌석리에서 봉고트럭을 이용하여 고치령까지 오르는 편법을 이용하게 된다. 이곳은 소백산의 동쪽 사람들이 마구령과 함께 단양쪽으로 넘어가는 관문으로 고개 마루에는 산신각과 장승이 있고, 종주 팀들이 피로에 지친 몸을 쉬어가는 쉼터로 마구령 8km, 국망봉 11km의 이정표가 반겨준다.

 

 

고개 마루에서 서서남 방향으로 1,8km를 진행하면 형제봉 갈림길(1,032m)에 이른다. 이제부터 충북과 경북의 경계선을 따라 남진을 한다. 갈림길에서 북쪽으로 진행을 한다면 1,005봉을 지나 형제봉(1,177m)으로 연결되는 알바코스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마당치를 지나 연화동 갈림길에 도착하면 국망봉 5km, 고치령 6,1km 연화동 3km의 이정표를 만난다. 피로에 지친 산객들이 좌석리 연화동으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3km를 더 진행하면 구인사 갈림길(1,272m)이다. 이곳에서 대간 길은 남쪽으로 선회하지만 서북방향으로 진행하면 신선봉(1,389m)과 민봉(1,362m)을 지나 구봉팔문(九峰八門)에 이르고 고드너머재를 넘어 구인사에 이른다.

 

 

구인사 갈림길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늦은맥이재에서 벌바위골을 지나 어의곡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나오고, 잠시 후 상월봉(1,395m) 정상에 오fms다. 이곳은 우리나라 천태종의 본산인 구인사를 창건하신 상월조사의 불심을 기리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참고로 천태종에 관한 문헌을 살펴보면 지금부터 1400여 년 전인 594년 중국의 수나라 개황14년, 지지대사가 천태산에서 법화경을 중심으로 5시 8교 교관과 일심삼관의 수행법으로 선과 교를 통합하여 만든 종파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천태교학이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초기 백제 현광법사로부터라고 한다.

 

 

고려 숙종 2년 대각국사 의천 스님에 의해 국청사에서 천태종이 설립되었지만, 조선조에 들어와 숭유억불정책에 의해 500여 년 동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근세에 이르러 상월원각 대조사(1911년- 1974년)에 의해 중창되어 일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상월원각 대조사는 강원도 삼척군 노곡면 상마읍리 봉촌 마을에서 밀양박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15세에 불가에 귀의하여 천태종의 근본 도량인 천태산 수선사를 참배하고 귀국하여 충북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동학입구에 터를 잡는다. 크고 작은 봉우리가 연꽃처럼 생긴 연화지 양지바른 곳에 초암(草庵)을 얽어매고 석굴에서 수행 끝에 천태종의 본산인 구인사를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월봉에서 국망봉 까지는 그리 멀지않다. 두 봉우리가 건너다보이는 능선은 키 작은 잡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부터 비로봉을 지나 연화 봉까지 부드러운 굴곡을 이루며 펼쳐지는 초원은 지리의 세석평전이나 덕유평전 보다도 방대한 규모로 넓다. 겨울이면 깊은 계곡에 눈이 쌓이고 높은 곳에 설화를 피워내는 환상적인 모습은 소백산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소백산은 삼국이 접경을 이루던 전략적인 요충지로 수많은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암봉으로 이루어진 국망봉(1,420m)에 오르면 신라의 왕자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엄동설한에도 베옷만을 걸친 채 옛 도읍지 경주를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이 있다.

 

 

소백산이 오대산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불교의 성지라는 것은 주봉의 이름이 불가의 비로자나불에서 온 빛나는 존재란 뜻이며, 부처의 근원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비로봉(1,439m)으로 부르고, 도솔봉, 연화봉 또한 불가와 인연이 있는 이름이다. 산기슭에는 희방사, 초암사, 비로사를 비롯한 수많은 암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국망봉에서 비로봉 가는 길은 부드러운 초원이 펼쳐지고, 수 백리 산과 계곡이 파노라마를 이룬다.

 

 

왼쪽으로 초암사 갈림길을 지나면 소백산이 자랑하는 주목의 군락지가 전개된다. 1970년 천연기념물 제 244호로 지정된 주목은 수령이 200- 500여 년 된 고목 1,5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한겨울 많은 눈이 쌓이면 거센 바람 속에 설화를 피워내는 모습은,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사가 절로난다. 또한 이곳부터 관측소를 지나 제2 연화봉까지 수백 수 천 만평의 광활한 분지에 펼쳐지는 철쭉은 지리산의 바래봉과 함께 우리나라 철쭉의 명소로 꼽히며, 철쭉이 만개하는 6월이면 전국의 상춘객들이 몰려들어 성시를 이룬다.

 

 

아침햇살에 비치는 비로봉(1,439m)의 정상석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인자한 부처님의 자애로운 모습으로 산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주목을 보호하는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우측은 천동굴로 내려서는 길이고 서남쪽으로 대간길이 이어진다. 제1연화봉(1,394m)에 오르면 비로봉 2.5km 천문대 2km의 이정표가 반겨주고, 철쭉의 홍수 속에 인파의 물결을 헤치며 남쪽으로 진행하면 연화봉(1,383m)정상이다. 직진을 하면 희방사를 거쳐 수철리로 내려서는 길이고, 대간 길은 서쪽으로 관측소를 바라보며 진행해야 하는데, 천문대에서 죽령까지 7km에 이르는 시멘트 포장길이 기다리고 있다.

 

 

산세와 풍수지리가 좋아서 소백의 산자락에는 고려의 충목왕 ,충숙왕, 충렬왕의 왕태를 안치했고 십승지지(十勝之地)중에서도 풍기가 으뜸으로 정감록을 신봉하는 자들이 몰려들어 생활의 터전을 일구었다는 기록이 있다. 소백산은 전략적인 요충지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으로 경상도 사람들이 한양을 오고가는 길목으로 문경새재와 함께 죽령(689m)은 꼭 필요한 관문이었지만 지금은 터널의 개통으로 한겨울의 세찬 바람만이 고개 마루를 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