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한남금북정맥 4 부

김완묵 2009. 10. 27. 09:58

 

 

                          제 7구간: 82번국도(140m) - 칠장산(472m) / 27km

 

정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마루금은 농공단지조성으로 실종 된지 오래되고, 그나마 표교가120-130m에 불과한 분지 속에서 독도를 한다는 자체가 무의미 하므로 선답자들의 표지기와 산행기를 중심으로 뒤를 따라야 하는 구간이다. 음성 나 들목을 빠져나온 뒤 82번 도로를 따라 금왕읍 터미널을 경유하여, 대소면 오산리와 금왕읍을 오가는 82번 국도에서 시작한다.

 

미호천 최상류 지역인 금왕읍의 낮은 구릉으로 이어가는 정맥은, 목우촌 앞의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신호등 사거리를 횡단한다. GS 주유소 맞은편에서 좌회전하여 한솔신약(주) 작은 간판 옆길로 진입하여 밤색 2층 건물(울 엄마 보신탕집)의 뒷길로 접어든다. 농공단지 삼거리 절개지에 SAMPO 건물이 보이면 좌회전하여 비포장 수레 길을 따라 583번 지방도로와 만난다.

 

이곳에서 금왕읍 내송리 산59 라는 나무이정표를 들머리로 해야 하지만 도로공사로 정맥이 없어지고 절개지가 앞을 가로 막는다. 앞에 보이는 184봉도 군부대지역이라 철조망을 따라 진행하는 길이 가시덤불과 함께 많은 시간이 소비되는 까닭에 코니아일랜드(주)까지 도로 따라 진행한다. 선우전기 입간판이 있는 곳에서 임도 맞은편의 인삼포 둔덕으로 올라선다. 밭둑을 따라 넘어가면 쌍봉초등학교가 나온다.

 

쌍봉초교를 지나 시멘트길 삼거리에서 오른쪽의 묘지 앞으로 정맥을 이어간다. 마을의 시멘트 길을 따라 가면 현대금속 입간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또다시 583번 도로와 만난다. 도로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가면 높은봉 인데, 도로를 따라 500m 정도 진행하면 능선은 다시 도로와 합류하여 583번 도로를 버리고 전문건설공제조합기술교육원을 알리는 입간판을 보며 오른쪽의 2차선포장도로를 따라가는 도로변으로 소나무 숲의 시원한 그늘 속을 지난다. 교육원정문이 나오고 농로를 따라 태정푸드도 지나 삼아물산 정문에서 뒷길로 들어선다.

 

삼아물산의 울타리와 비포장 마을길을 따라가며 정맥의 흐름을 가늠해본다. 다시 583번 도로를 만나 잠시 진행하다 믿음창호 간판이 있는 오른쪽으로 농로를 따른다. 너른 들판 사이로 비포장과 시멘트 길을  번갈아 진행하면 명인산업과 (주)에코 인조 목재를 지나고, 2차선 포장도로인 8번 군도를 건너 오른쪽에 채움엔비티라는 회사 앞으로 시멘트 길을 따라 (주)청한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다홍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안부 에서 정맥은 왼쪽으로 선회한다.

 

안부 너머로 마이산 능선이 더욱 가깝게 보이고, 수레 길을 따르다 외딴집을 지나 오른쪽 능선으로 붙어 진주소씨묘 옆으로 올라 산길의 능선을 내려서면 승순농장 옆으로 2차선포장도로가 지나고 유림기업, 조선판넬의 간판이 보인다. 그동안 난마와도 같이 어지러운 정맥을 지나오며 도시 주변으로 개발되는 환경 속에서 언제까지 정맥이 명맥을 유지할지 심히 걱정이 되며, 한북정맥의 양주신시가지와 파주의 운정지구를 떠 올리게 된다.

 

이제부터 마이산의 들머리가 되는 산길로 들어선다. 묘목농장을 지나 빨간색지붕의 외딴집 옆으로 등로를 따라 급경사를 치고 오르면 270m의 능선삼거리다. 왼쪽으로 구부러지는 정맥은 급경사를 이루고 소나무가 무성한 396봉에 올라선다. 오늘의 구간에서 처음으로 산을 오르는 쾌감을 느끼며 단숨에 마이산 정상으로 향한다.

 

덧없는 세월 따라 허물어진 망이산 성터에는 돌무더기만이 흔적을 남기고, 조상들의 얼이 바람결에 흐른다. 남문터에서 망이산성이 시작되고, 너른 분지를 이룬 정상부근은 외부에서 관찰하기 어렵고 공격하기도 까다로운 지리적인 여건을 십분 활용하여 삼국시대에 축조된 내성과 외성으로 쌓은 퇴뫼식 산성이다. 백제, 신라, 고려시대의 유물이 출토되고 봉수대가 있었던 자리로, 오랑캐를 관찰하던 망이산(望夷山)이 마이산으로 불리게 된듯하다.

 

넓은 산성으로 둘러싸인 정상부(472m)에는 삼각점과 정상석이 자리 잡고, 잘생긴 소나무와 벤치가 있어 쉬어가기 좋은 쉼터이다. 산성을 따라 헬기장을 지나 능선을 따라가면 갈림길에 또 다른 정상석이 있다. 운치 있는 산성길 노송의 향기에 흠뻑 취해 모처럼 호젓한 오솔길을 지나며 사색에 잠겨본다. 180m의 수레티고개로 내려서는 비알 길은 또 한 번 산길의 묘미를 만끽하는 곳이다.

 

화봉육교는 중부고속도로가 지나는 차현고개(수레티고개)를 2차선인 583번 도로가 지나는 다리인데, 금왕읍에서 시작한 583번 도로를 다섯 번이나 만나고보니,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화봉육교를 경계로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으로 들어선다. 건너다보이는 황색골산을 바라보며 완만한 능선을 20여 분간 오르면 정상(352m)에 도착한다. 무성한 소나무와 참나무가 시야를 가리고, 좌로, 우로 방향을 바꾸며 내려서면 저티고개다. 바람결에 스쳐 지나 356봉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썬 벨리 C.C 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356봉과 252봉을 지나면 세월을 비껴간 듯, 정적만이 흐르는 마을이 언뜻언뜻 내려다보이고, 2차선 포장도로인 당목고개(170m)로 내려선다. 용설리와 당목리를 오가는 9번 군도를 건너 절개지에 올라서면 지나 온 능선들이 파노라마를 이루고, 수종개량을 위해 벌목을 한 산등성이가 바리깡으로 밀어버린 입산수도자의 머리와 같이 말끔하게 단장을 하고 있다.

 

호젓한 능선을 돌아 오르면 이름도 생소한 도솔산 비로봉 정상(278m)이다. “풀 한포기 마저 사랑하는 것이 불심”이라는 이정표 옆으로 일등삼각점이 있고, 이름에 비해 초라 하지만 불심만은 충만한 듯, 돌무더기가 있는 안부를 건너가면 능선 갈림길에 “나와 자연이 한 덩어리임을 아는 것이 불심”이라는 또 다른 이정표가 있는데, 이번에는 도솔산 보현봉 이라고 한다.

 

완만한 오솔길을 따라 등로를 이어가면 280봉이고, 북쪽으로 고도를 더하면 바가프미산(322m)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다. 정맥은 왼쪽으로 급하게 절개지를 내려서면 17번국도가 지나는 걸미고개다.

 

걸미고개는 진천과 용인을 往來하는 국도인데, 정맥이 도로의 개설로 끊어져 있어 안성골프장 입구 도로를 따라간다. 벚나무와 잣나무의 가로수가 사열을 하듯, 우리를 반겨주고 골프장건물 본관 앞 시계탑이 있는 기사대기실 옆으로 정맥을 이어간다. 남쪽으로 방향이 바뀌는 정맥은 안성골프장 경내를 내려다보며 진행한다. 270봉을 돌아가면 삼각점이 반겨주고, 좌벼울고개(250m)를 지난다.

 

좌벼울고개에서 서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10여분을 더 올라가면 360m 지점에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등로 주변으로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소나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벤치가 두 개가 있는 봉을 지나 375봉을 넘어간다. 375봉에서 남쪽으로 그 유명한 칠장사가 자리 잡고 있지만, 무성한 수림 속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잠시 후 칠장사에서 올라오는 갈림길(310m)을 만나며, 정상으로 향하는 탄탄대로 등산로가 송림속으로 이어진다.

 

“藥補보다 食補가 낫고, 食補보다 行步가 낫다”는 말은 名醫 허준이 東醫寶鑑에서 밝힌 건강법으로, 산을 찾는 우리는 가장 모범적인 수행자로 자부심을 가지며 三 靜脈 이정표가 있는 정수리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속리산의 천왕봉에서 장장 150여 km를 이어온 한남금북정맥의 종지부요.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시작되는 정점에서 새로운 감회를 맛본다.

 

칠장사: 경기도 칠현산(七賢山)에 있는 칠장사는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현종 5년(1014)에는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넓혀 세웠는데 ‘칠장사’와 ‘칠현산’이라는 이름도 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선하게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인조 원년(1623)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명복을 비는 절로 삼아서 크게 된 곳이기도 하다.

 

세도가들이 이곳을 장지(葬地)로 쓰기 위해 불태운 것을 초견대사가 다시 세웠으나 숙종 20년(1694) 세도가들이 또 다시 절을 불태웠다. 숙종30년(1704)에 대법당과 대청루를 고쳐 짓고 영조 원년(1725)에 선지대사가 원통전을 세웠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원통전을 비롯한 12동의 건물과 혜소국사탑과 탑비, 철제당간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