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3 부
제 5 구간: 질마재(334m) - 행치재(200m) / 21.5km
중부고속도로 증평 나들목으로 내려선 뒤 증평읍에서 592번 도로를 따라 청천면으로 진행하던 중 질마재 고개에서 하차한다. 질마재는 그 옛날 소의잔등에 질마를 얹어 물건을 싣고 넘든 고개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최원용공적비 옆으로 낙엽 깔린 완만한 능선을 돌아 비알 길을 올라서면 410봉이다. 능선 왼쪽으로 바위 사이에 안테나와 하얀 분전함을 지난다. 큰 어려움 없이 460봉을 올라선 뒤 소나무와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430봉이다.
능선의 오른쪽으로 부흥농원에서 장뇌삼 재배를 위해 벌목을 한 현장에 도착하면 주위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칠보산과 객골을 바라보며 벌목능선을 내려서면 칠보치(350m)가 반겨준다. 청안면의 배나무골에서 객골로 넘어가는 칠보치는 비포장 길이지만 자동차가 다닐 정도로 선명하다. 바람에 나부끼는 표지기 들을 바라보며 절개지를 올라서면 410봉이고 낙엽송 숲길을 따라 분지로 내려서면 우측으로 방대한 비닐하우스와 거대한 건축물이 산비 알을 온통 차지하고 있다.
산과 산을 이어주는 능선이 지맥을 이루고 그길 따라 정맥이 흐른다. 450봉을 지나면 또다시 갈림길이 나타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가파르게 올라선 542봉에서 칠보산은 60여 m 빗겨 나있다. 쌍곡계곡에 있는 칠보산과는 同名異山(동명이산)으로 별 특징이 없지만 정상에는 아담한 비석이 있다. 다시 돌아온 갈림길에서 비알 길을 내려서서 430m 안부를 지나며 임도 수준의 등로를 이어간다.
쪽지봉(556m)정상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고 전망도 신통치 않다. 하지만 이곳부터 사리면과 청안면이 경계를 이룬다. 경계선을 따라 왼쪽의 정맥을 따르면 오른쪽으로 산자락에 거대한 염소 사육장이 펼쳐지고 철조망을 따라 진행을 한다. 5분후에는 염소목장의 철조망도 끝이 나고 왼쪽으로 소나무와 암릉이 어우러진 등로를 급하게 내려서면 또 다시 농장의 철조망을 만나 송치재까지 동행을 하게 된다.
송치재는 사리면의 수암리와 청안면 조천리를 이어주는 곳으로, 호젓한 산길에 낙엽이 분분하다. 송치재에서 넓찍한 등로를 따라 올라가면 의성김씨묘를 지난다. 이곳 400봉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는 면 경계 능선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보광산을 바라보며 사리면 수암리 쪽으로 내려서야한다. 보광산 아래 채석장도 보이고, 산림병해충방제안내문 간판이 있는 곳에는 979번 삼각점이 있다.
어지럽게 널 부러진 벌목현장을 지나면 모래재도 멀지 않은 듯, 자동차의 경적 소리도 들리고, 철탑이 있는 보광산 관광농원 건물 뒤편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대규모 위락 시설이 있는 보광산 관광농원의 후문을 통하여 경내로 들어와 모래재(228m)로 내려선다. 증평읍에서 괴산읍으로 통하는 34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 마루에는 모래재의병격전유적비가 있다.
수암 낚시터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34번국도의 지하통로를 빠저나가 보광산 등산로 안내간판이 있는 곳이 정맥의 들머리가 된다. 군이나 면의 경계선이 정맥의 주릉선을 따라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인데 송치재에서 보광산 까지는 사리면의 중간을 관통하며 방축리와 수암리를 갈라놓고 금강과 한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으니 두 마을의 往來(왕래)도 별로 없이 생활도 불편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청기와 집이 있는 수례길을 따르면“천혜의 기도도량 보광사 차도500m-인도500m”이정표에서 인도를 따라 올라간다. 보광사10분-보광산15분을 알리는 이정표에서 차도를 버리고 임도로 올라서면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다. 잠시 후 왼쪽 아래편으로 옛날 보광사 절터인 봉학사지가 펼쳐진다. 밤나무가 군락을 이룬 분지에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5층 석탑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지방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괴산“봉학사지 5층 석탑”안내문이 있다.
탑 뒤쪽에 있는 묘 2기는 봉학사와 관련 있는 김 참판의 묘라고 하는데, 이 묘 자리는 봉학사의 대웅전이 있던 자리인데 이 터가 "금계포란형"으로 천하에 드문 명당자리라 참판의 자손들이 세도를 등에 업고 절을 허물어 김참판의 묘를 썼다고 한다. 봉학사가 철거된 후 괴승이 나타나 앞산의 물길을 막아 다른 곳으로 돌린 후로는 후손을 잇지 못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고리티재 30분, 보광산5분, 모래재50분의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찾아가는 보광산(539m)은 정맥에서 200 여m 빗겨나 있다. 무성한 잡목으로 시야를 가리고 아담한 정상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되돌아온 갈림길에서 고리티재 쪽으로 진행되는 정맥은 소수면과 사리면이 경계를 이룬다. 비알 길을 내려서서 호젓한 능선을 진행하면 둔터골(30분), 소암리(30분)갈림 이정표가 나오고 395봉에는 삼각점과 측량안내판이 있다.
395봉에서 경사가 심한 비알 길을 내려서면 시멘트로 엉성하게 포장한 고리티 고개에 도착한다. 동쪽의 소수면 소암리와 서쪽의 사리면 소매리를 오가는 임도는 굴곡이 심한 비알길이다. 시야를 가리는 잡목을 헤치는 발길이 분주하고 20여 분간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379봉을 지나 백마산가는 능선으로 음성군과 경계를 이루고 주봉저수지 쪽으로 진행하는 정맥 또한 음성군과 경계를 이루니, 현재 위치가 괴산군과 음성군이 만나는 꼭 지점이 된다.
소나무 둥치에 매어있는 이정표를 뒤로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진행하면 곧 바로 내동고개(350m)를 지난다. 괴산군 소수면 내곡마을과 음성군 원남면 안골을 이어주는 고개는 찾아오는 발자취도 끊긴지 오래되어 희미한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오르고 내리며 50여 분간 산줄기를 따라가면 410봉에 올라선다. 이제 서서히 보천 고개로 내려서는 중에 시야가 터지며 음성 시가지와 가엽산(709m)이 조망된다.
원남면과 소수면을 잇는 보천고개(230m)는 515번지방도로가 지나며 도로가에는 450년 된 느티나무 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피로에 지친 길손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보천고개를 뒤로하고 북진하는 정맥은 378봉까지 고도를 높이며 정수리에 올라선다.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분기하는 능선은 군경계선을 따라 오대산(297m), 국사봉(416m)으로 연결되고, 정맥은 왼쪽(서북쪽)으로 급경사를 이룬다.
378봉에서 급하게 비알길을 내려서서 낮은 능선을 이어간다. 포장된 도로를 건너 인삼밭의 둔덕을 어렵게 통과하여 솔밭 길을 넘어가면 전방으로 큰산(509m)이 보이고, 포장된 임도삼거리인 가정자(180m)를 건넌다. 주변으로 반씨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다시 시멘트 길을 건너 벌목된 능선을 돌아 벽돌참호를 지나면 행치재가 보이는 석재공장 절개지를 따라 왼쪽으로 진행한다. 행치재로 연결되는 임도를 따라가면 36번 국도를 통과할 수 있는 지하통로와 연결된다. 지하통로의 벽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생가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는 암문을 통해 행치재(200m)를 건너간다.
행치재는 청주와 충주를 연결하는 36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참고로 36번 국도는 충청북도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대동맥으로 서쪽의 보령시 대천해수욕장에서 시작하여 청양의 칠갑산, 공주시, 조치원을 지나 충북으로 진입하면 도청소재지인 청주시를 관통하여 증평읍, 음성읍, 충주시와 충주호반을 돌아 단양읍까지 충북의 주요도시를 순례하고 경북의 영주시, 봉화읍에서 불영 계곡을 끼고 울진까지 한반도의 중부지방을 동서로 연결하는 忠淸大路(충청대로)로 명명되고 있다.
제 6구간: 행치재(200m) - 82번국도(140m) / 20.5km
행치재 지하통로를 빠져나오면 곧바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고향인 행치마을이고, 입구에는 보덕정과 광주 반씨 행치종중 위적연혁비가 있고 총장의 생가로 이어진다. 나의 고향이 이곳에서 멀지않은 주덕이고. 같은 시대를 살아온 탓에, 반기문 사무총장의 업적이 더욱 위대하고 고귀하므로 간단히 그의 발자취를 적어본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1944년 6월 13일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행치마을에서 태어났다. 행치마을은 약 500년 전 광주 반씨 장절공파에 의해 자리를 잡고, 현재 15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 마을은 한남금북정맥의 큰산(509m)을 주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고, 마을 앞으로 36번 국도가 지나는 임산배수의 명당자리라 할 수 있다.
1963년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충주고 2학년 때“외국학생의 미국 방문 프로그램(VISTA)”에 선발되어, 3학년 때 미국을 방문하였으며 이때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고 외교관의 꿈을 키우게 되며,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진학을 한다. 1970년 2월 대학졸업과 동시에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외교관 시절을 거쳐 외교통상부 차관과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다.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2006년 2월 유엔 사무총장직에 출마해서 단독 후보로 추대되어 UN 총회에서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공식 임명되어, 2007년 1월 1일부터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유엔사무총장이 된 그는 평생의 좌우명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미쳐 있었고, 남 앞에 나서는 법 없이, 겸손한 성품을 가지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꿈을 잃지 않고 있었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우리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행치마을에서 큰 산으로 향하는 정맥은 생가 터 저수지 앞으로 도로를 따라 행치재 휴게소 옆 축대를 올라선다.
완만한 봉우리를 넘어가면 큰산(509m)의 모습이 보인다. 행치마을에서 큰산은 200 여m의 고도차를 극복해야하는 비알길이지만 행치마을에서의 큰 감명을 받아서인지 거뜬하게 정상에 올라선다. 모처럼 터지는 조망은, 원남면의 아늑한 분지위로 지나온 정맥이 손금 들여다보듯이 선명하고, 동판으로 된 대삼각점이 있는 정상에는 무인 감시초소가 자리 잡고 있다.
높은 산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 4400여개 山들이 있고, 그중에 1000m 가 넘는 山만도 수 백 개에 이르는데, 509m의 작은 봉우리를 큰 산으로 부르는 것은, 옛 선현들의 先見之明(선견지명)으로 반 기문이라는 위대한 인물의 출현을 예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산준령으로 맥을 이어가는 한남금북정맥이 보은, 청주, 청원, 괴산을 거쳐 오며 낮아지다 음성지경에 들어서며 힘차게 솟아오른 큰 산은 주위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에“큰산과 반기문”을 같은 맥락에서 보면 반기문 사무총장은 큰산의 정기를 받았음이 확실해 보인다.
큰 산을 일명 보덕산 이라 부르며, 잠시 비알 길을 내려서면 낙석주의라는 팻말이 있는 임도 삼거리를 만난다. 임도에서 완만한 주능선을 따라 517봉에 오르면,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다. 정맥은 오른쪽으로 급경사를 이루며 선회하여 마사토가 깔린 비알 길에서 의지할 나무도 없이 잠시라도 한눈을 팔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비알길을 내려서서 완만한 능선을 진행하다 오른쪽으로 선회하면 전방의 돌고개 방향으로 시멘트 도로가 나타난다. 돌고개 능선 너머로 보현산과 부용산이 보이는 주능선은 산이라고 하기에는 빈약한 구릉지대로 잡목이 무성하여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능선의 오른쪽으로 하당저수지가 보이고 좀 더 내려가면 차량통행이 한적한 515번 포장도로인 삼실고개(250m)에 도착한다.
삼실고개에서 인삼밭 옆으로 포장도로를 따라 능선을 올라가면, 100여 평이 넘는 가족 묘지를 만난다. 전망 좋은 묘지에서 지나온 삼실고개 위로 보이는 517봉은 한 없이 높아만 보이고, 잣나무 숲속을 넘어가면 잡초와 뒤엉킨 잡목지대에서 애를 먹는다. 삼각점이 있는 351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51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돌고개(254m)다.
돌고개는 맹동면과 원남면, 음성읍을 연결하는 지방도로지만 곳곳에 갈림길이 있어 돌고개와 삼실고개도 서로 연결이 된다. 돌고개에서 정맥의 들머리는 도로와 쓰레기 매립장, 임도와 도로를 미로와 같이 지나지만, 하영유리 입간판이 있는 곳까지 도로를 따르면 정맥과 연결이 된다. 묘지주위로 운치 있는 소나무들이 도열하고 있는 능선을 지나 임도(본티고개)를 건너고 낮은 구릉지대를 지나면 287봉과 철탑이 나온다.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나 2차선 포장도로인 구례고개(260m)로 내려선다.
보현산약수터를 알리는 삼각형의 표지석과 약수터로 이어지는 보현산임도 안내간판이 있는 입구에서 낙엽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능선을 따라가면 “쉬는터 소지명 유래비”가 있는 임도에 내려선다. 이곳은 보현산을 오르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쉼터로 한남금북정맥을 이어가는 산악인들에게도 더없이 반가운 쉼터가 된다. 이곳 쉬는 터 소지명(所地名)을 후손들에게 알리고자 한금괴수목(漢錦槐水木)이라 명칭 한 느티나무를 심어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전하고저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쉼터에서 임도를 따라가면, 오른쪽으로 “제1정상, 약수터”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비알 길을 5분정도 올라서면 산 사면을 돌아온 임도와 다시 만나고, 능선으로 5분정도 더 올라가면 무명봉(400m)정상이다.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전방으로 보현산 전위봉인 480봉이 머리를 내밀고 가족묘지 위를 지나면 조금전의 임도와 또다시 만난다. 길가에는 유래비와 약수터가 있다.
<所地名由來>
이곳은 음성군 음성읍 소여리 산 173-11 보현산 해발 430m로, 6.25. 전란시 최초의 승전지로 소여리 전투에서 적 1개 소대 40명을 사살한 곳으로 유명하다. 또 이 산은 萬生山下 可活 萬人之地라 하여 예로부터 수많은 난을 피하여 목숨을 유지한 사람의 수가 만명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만생산이란 더 깊은 뜻은 백두대간이 남북으로 흐르다 머무른 산이며 금강의 발원지로서 萬種이 넘는 동식물이 분포되어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있다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다. 지금도 이산은 많은 산악인들이 줄지어 오르내리는 淸淨지역으로 동북 방향의 국도변의 소여리 에는 조국의 독립과 자유평화를 위해 거룩하게 숨져간 음성군출신 독립유공자, 군/경의 영령들 864명의 위패를 모신 충혼탑과 전승비가 있다. 또한 서쪽 백양동에는 3.1 운동 독립유적지가 마을 앞 광장에 있어 후손들에게 이곳의 유래를 전하고자 1998년 임도개설 준공기념으로 이곳에 이 비를 세운다.
소나무와 갈참나무가 어우러진 전위봉을 지나면 곧 바로 보현산 정상(483m)이다.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 정상은 부영지맥의 분기점이다. 소나무 그늘아래서 주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이 펼쳐진다. 음성군 최고봉인 가엽산(가섭산709m)과 부용산(644m)의 지맥이 음성의 분지를 감싸고 37번 도로가 정맥을 따라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괴산의 보광산에서 북쪽을 향하여 달려온 정맥도 보현산을 지나 승주고개로 내려서며 서쪽으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미로와도 같은 금왕읍을 지나게 된다.
보현산 동쪽 473봉에서 분기된 부용지맥(芙蓉枝脈)은 부용산(644m), 수레의산(579m)을 거처 수레의산 0.9km 지난 641봉에서 두개의 산줄기가 분기된다. 보현산에서 43.1km인 부용지맥은 수레의산을 지난 641봉에서 능안고개, 덕고개, 자주봉산(438m), 평풍산(395m)을 거처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탄금교으로 이어진다.
달천과 청미천의 분수령인 부용 2지맥은 641봉에서 또 하나의 산줄기(보현산 기준 43.9km)가 행덕산(447m), 원통산(656.m) , 오갑산(609.m) , 마골산(250m) , 개내골산(150mm)에서 남한강과 청미천의 두물머리까지 이어진다. 또한 부용지맥의 사정고개와 부용산 중간 지점 능선에서 주덕 요도천을 가르며 음성 최고봉인 가섭산(709m), 어래산(393m), 고양봉(525m), 풍류산을 지나 달천에 닿는 가섭지맥이 분기한다.
정상에서 잘생긴 소나무를 지나, 수례길 처럼 편안한 길을 따라 자작나무 군락지를 내려서면 곧바로 승주고개(360m)에 도착한다. 지도에는 포장도로로 표시가 되어있지만 아직까지 비포장 길이다. 도로 옆에는 도로개통을 칭송하는 반남박씨 송덕비가 있고, 감우리 고개로 부르는 이곳은 서쪽의 동읍리와 감우리를 오가는 길목이다.
승주고개를 건너가면 곧바로 삼각점이 있는 375봉이고,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진행하면 승주고개 2.6km 소속리산 5.7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400봉에 올라선다. 정상에서 정맥은 서남쪽으로 급선회한다. 북쪽의 용계 저수지를 돌아가는 능선이 물길 피해가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음성읍과 금왕읍의 경계를 따라 심한 굴곡을 이룬다.
하얀색의 이등삼각점이 있는 346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면 청주양씨 묘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임도가 능선의 산 사면을 돌아가고 무명봉을 넘어서면 백야 고개(260m)에 도착한다. 백야리와 동음리를 잇는 시멘트도로는 용계저수지 방향으로 이어진다.
백야고개에서 철탑을 지나면 326봉이다. 지금까지 남쪽으로 달려온 정맥이 서쪽으로 급선회하며 능선왼쪽으로 꽃동네 영성원 건물이 보인다. 무명봉에 올라서면 영성원 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등로를 따라 400봉에 올라선다. 왼쪽의 산기슭에는 그 유명한 음성의 꽃동네가 자리 잡고 있다.
음성 꽃동네: 사랑의 결핍 때문에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길가에서 다리 밑에서 아무 말 없이 죽어가는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분들을 따뜻이 맞아들여 먹여주고 입혀주고 치료해주며,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살다가 돌아가시면 장례해드리는 데까지 보살펴드리는 사랑과 구원의 공동체. 천주교 오웅진 신부의 사랑을 실천하는 현장으로, 각박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어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꽃동네가 보이는 400봉에서 정맥은 북쪽으로 급선회하여 소속리산(431m)으로 향한다. 음성군 금왕읍과 맹동면의 경계를 이루며 금왕읍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사랑의 보금자리(꽃동네)를 품고 있는 산이지만, 정상에는 표지석하나 없이 이등변 삼각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령이 오래된 노간주나무에는 준.희님의 표지판과 리본들이 바람결에 나부낀다.
철탑이 있는 안부를 지나 빽빽한 소나무 숲속을 헤치며 436봉을 넘어 문안고개(280m)로 내려선다. 나무꾼들이 등짐을 지고 줄줄이 넘나들던 문안고개. 어느 분의 회고담이 적혀있는 글귀를 되뇌어본다. 봉곡리와 백야리를 오가는 문안고개에서 북쪽으로 능선을 따르면 삼각점이 있는 345봉이다. 감우리 400봉에서 345봉까지 직선으로는 가까운 거리지만 용계저수지 계곡을 돌아오는 길이 멀고도 지루한 길이다. 왼쪽으로 된 비알을 내려가면 정맥은 지반 공사로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맞은편의 솔밭을 기준으로 너른 벌판을 가로 지른다.
인삼밭과 그라운드 건물뒤로 돌아서면 21번국도(120m)가 지나는 바리고개에 도착한다. 맹동면과 금왕읍을 오가는 바리고개에는 느티나무와 바리가든 이 있다. 이제 산이라는 말이 실종되고 마을의 뒤 언덕을 넘어가며 물길을 피하는 형국이다. 도로를 건너 숲속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하나하이테크공장의 앞마당을 가로질러, 고추밭과 염소농장을 지나 금왕공단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돌아 철탑과 건물 뒤편으로 빠져나오면 대망의 82번국도가 지나고 월드 사우나 건물이 반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