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제 4 부 시 낭송회
문학기행 - 4부 詩 낭 송 회
인사의 말씀
양천문학회 회장 오 희창
오늘은 즐거운 날입니다.
양천문학회 회원들이 모처럼 자연과 호흡하면서 그간의 피로를 말끔히 털어내고 산뜻하게 창작 역량을 충전하는 뜻 깊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새들이 노래하고 벌. 나비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숲속을 그냥 지나치기란 너무 아쉬운 감이 있어 낭송회를 주선하였습니다.
회원 여러분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소리로는 심금을 울리고 모습으로는 눈을 즐겁게 하여 작품의 진수를 보여주기 바랍니다. 금년 들어 작가들이 방방곡곡 독자들을 찾아가 낭송모임을 열면서 자신의 작품을 오감으로 전달하면서 독서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일입니다.
우리 양천문학 회원들도 낭송 실력을 차곡차곡 쌓아 앞으로 언제 어느 곳이던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를 바라는 뜻을 금번 낭송회에 담았습니다.
오늘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면서 흡입한 감성을 형상화하여 좋은 작품을 쏟아 내시기를 기대 하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감사 합니다.
지구를 살리는 한 사랑
오 희 창
씨앗을 잉태하려고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사람들은
아름답다
화려하다
아쉽다 호들갑이다.
새끼들이 오물오물
어미속살 다 파먹고
빈껍데기로 둥둥 떠내려가는
어미달팽이는
숭고한 사랑
슬픈 희생
아쉬운 이별 말하지 않았다.
뭇 생명을 아우르는
넘치는 사랑이 없다면
지구는 사막이 될 터...
어미 달팽이의 위대한
종언(終焉)을 보고도
꽃향기 햇살에 부서지는
봄날에...
살리기 위하여 죽어야 하는
대지의 엄청난 사랑을
차마 간사한 입줄에
올리지를 못했지 싶다
사람이라면...
로데오 거리
김 응 만
여기는 서울의 신, 목동(木洞)로데오 거리
포푸라 우거진 아래를 걸으며
장미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만나고 헤어지는 카페
해가 내리고 별이 밝다.
쁘랑땅, 샤론, 상표가 붙은 윈도우 앞
보헤미안의 연인들 속에
예쁜 마네킹은 결 고운 긴 머리로
솜사탕을 만들고
발렌타인 그날이 오면
가로수 껍질은 세월을 떼낸다
사랑의 흉내도 못 낸
레지스탕스가 누구의 손을 잡고
와인의 섬으로 가는지
잃어버린 로라를 찾아
소녀의 기도가 애잔하던
진명 여고 앞을 출발
아카시아 향기 짙던
아파트 숲까지
돌아와 손 흔드는
로데오 여인이 있던 로데오 거리.
산그늘 꽃 덤불
서 영 선
해안에 산그늘 지고
어스름 저녁
개짓는 소리
바람소리 파도 소리 어우러진 저편
생과 사를 가르는 순간에
소프라노 톤의 찢겨진 음성
어쩌나 어쩌나 단장의 비명
50여년 쌓이고 쌓인 산그늘
꽃덤불로 찾아 왔구나
바다 위의 탱고
시: 권 송 일 낭송: 강 진 원
서해안 안면도의
여름 바다는 눈부셨다
바람에 섞여
맨발로 밟는 모래 알
사흘 밤 나흘 낮이
순간의 음악에 머무르고
포도 알이 매달린 방 안에서
뜨거운 감자를 입에 물었다
노수민이 발리섬으로 울고 떠난 해안선
밤 별 같은 시인들이 마련한
은쟁반 위에서
여인은 아픈 허리에 지압을 베풀었다
파도 빛깔의 졸음이 오는 시간에
오 나의 베로니카여
그대는 내 설음을 잠 재웠다
몸에 가시가 돋아나도록
성가신 낮과 밤을 훌훌 털고
신새벽 홰 치는 닭 소리에 놀라
미처 장사 지내지 못한
산호의 여자 곁에서
허리를 일으켰다
달빛의 모래밭에서 춤을 추웠다
바다 복판에 꽃잎이 흩날리고
희미한 어둠 속에
해돋이 조개의 한숨이 퍼졌다
이별이 없던 아침에 흔들었던
파아란 손수건
작 은 새
시: 김 정 인 낭독: 이 영 우
새는, 작은 새는
가냘픈 목소리로 운다
울어도, 울어도, 눈물 한 방울 없는
작은 새의 울음소리
그가 앉았던 마른 나뭇가지
실바람으로, 잠시 흔들어 놓고,
날렵한 몸짓으로, 하늘을 날은다
새는, 작은 새는
그가 소중히 간직한
새털 같은 가벼운 체중을
먼 허공(虛空)을 향해 날은다.
하늘 속으로, 하늘 속으로,
까아만 점(點)이 되어
하늘 속에 곤두 박힌다.
지연(紙鳶)처럼 떠올라
홍 춘 표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온종일 한 생각 내 가슴에 파고든다
한 생애 홀현이 하늘 끝 지연(紙鳶)처럼
서천에 달빛 걸어
가슴속 시린 사랑
활활 타올라 바람을 친다.
고운 사랑 미운 사랑
길섶에 내몰린
흐르는 그리움 차가운 은하로
꽃잎 지는 눈물
긴 겨울 강
솔내음 꽃바람은 언제 오려나.
숲 속의 호반(湖畔)
백 영 웅
저 건너 숲속에서는
산새들의 합창소리 들려 오며
청록 빛 호반(湖畔)에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산 너머 초원에서 불어오던
솔바람은 그녀의 두 뺨을
붉게 물 들였어라.
물안개 피어오른 호반에 앉아
영원한 사랑 찾아 입맞춤하며
그녀와 잠들고 싶어 했어라.
비 목 (碑 木)
시: 한 명 희 낭독: 김 완 묵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녁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등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 달 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충북 충주시 주덕읍 창전리가 고향인 한명희 교수는 주덕 초등학교 선배이시고 서울대학 음악대학 졸업.
국립국악원장 역임. 주덕 읍사무소 앞에 노래비가 있음.
새싹의 비애
박 정 경
봄비를 기다리며
부활의 소식으로 들뜬 생명
무오년의 지상은
어떤 곳인지
하늘 구경 나가자
어서 나가자
경상도가 좋을까
전라도가 좋을까
육지가 아닌 섬이면 어떠랴
이왕지사 볼거리가 많은 서울이 좋겠네
벌써 까마귀 깍깍거리고
하늘을 뒤덮는 것으로 보아하니
식탐 꾼들 밥상에 올라갈
봄나물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가보다
우리 이렇게 살아요
오 희 정
작은 산들이 병풍처럼 두르고
맑은 시냇가
물잠자리 날으는 깊은 산골
무궁화 울타리 소담한 초가집에
상추 쑥깟 오이랑 호박도 심고
평화롭게 떠가는 구름이나 보며
우리 그렇게 살아요
파꽃 부추꽃 흐드러진 봄날이 오면
흰 나비떼 찾아와 온 들을 수놓고
명랑한 햇살아래 병아리를 쫒는 아이처럼
우리 그렇게 살아요
꿀벌이 입맞추던 감자꽃 질 때
밀 보리 밭 이랑에 뻐꾸기 소리나 들으며
토란잎 물방울처럼, 미나리 향기처럼
우리 그렇게 살아요
찔레꽃 필 때면
박 상 임
내가 어릴 때
그리움처럼 피어나던
마을 앞산 진달래와
수많은 꽃들
그중에
줄기를 까서
친구들과 정을 나누던
추억어린
우정의 꽃
지금, 지천으로 피어있는 것이
장미보다 아름답고
순수할 줄이야
대자연의 경치를 보며
찔레꽃도 같이 피어
더욱
귀한 존재로
순수의 마음을 키운다.
수도원에 핀 마가렛
김 철 교
꽃잎이 둘러싼 꽃술의 마을에는
고요한 슬픔과 맑은 기쁨
머금은 눈망울들이
다이아몬드로 정제되어 촘촘히 박혀있다.
병든 육신을 이끌고 새벽마다
젊디젊은 성모님 마리아 상 앞에서
노신부의 눈물로 쓴 일기가
푸른 이파리마다 이슬로 맺혀
마가렛을 길러온 것이다
저 고개 너머 시끌벅적한 도시의 소리들은
나무 사이사이를 지나오는 동안 세탁되어
성모님 숨소리 밑에 납작 엎드려
마가렛 뿌리에 잠기고
숨은 듯 하얀 꽃향기에 잠겨 있는
내님 노랫소리 따라가노라면
언제나 맑고 밝은
에덴의 냇가에 이르리.
회촌(回村)에서
이 장 영
세상의 모든 바람들은 이 곳으로 돌아온다
양안치 고개를 넘어
매지리 들판을 지나
떠났던 새들도 날개를 쉬기 위해
이 곳으로 돌아온다
이 곳을 떠났던 사내의 마음도
이 곳으로 돌아온다
生의 모든 걸 남겨두고
그는 빈손으로 돌아온다
이 곳은 모든 곳이 돌아오는 곳
그래서 회촌(回寸)이었던가
사랑도
미움도
그리움도
다 돌아오라
그냥 본래 모습 그대로
그렇게 돌아오라
* 회촌(回寸): 토지문화관이 있는 곳의 지명
친 구 야
임 병 현
오랜만에 불러보는
친구야!
사는 게 무언지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못 하고
술 한잔 기울이지 못했네
어찌 지내는지
세월 탓하기엔
아직 이른 줄 알았는데
어느새 귀밑머리 희어지고
외로움을 나누는 처지가 되었는지
나도 모름세
늘 곁에 계실 것만 같던 부모님이
세상에 안 계시니
미음 한 숟가락 입에 넣어드리지 못한 죄
불효자식이란 낙인으로 가슴이 메어지고
이런 마당에 고향을 찾는다는 건
염치없는 일인 것을.
어린 시절 개울에서 목욕하고
메뚜기 잡으러 논밭을 돌아다닐 때와
남의 집 참외 서리하던 철부지 때가
마냥 그립구먼
고향을 떠나온 지도 오래지만
돌아가고 싶어도 가지 못할 그곳에
그리웁단 말만 바람에 실려 보내고
텃밭이 있는 삼포에다 살 곳을 마련하여
몇 년 내로 거처를 옮기려 하네
내가 직접 터를 다져서
집을 지어 놓을 테니
혹, 지나가는 길목이라면
잠시 들러 목이라도 축이고 가게나.
처자식이 있으니
처량한 신세는 아니다만
내 오늘 넋두리라도 늘어 놓지 않으면
술과 담배로 밤을 지새울 것 같기에
꾹 눌러 참아오던 수다가 길구나
보고싶다 친구야!
양천(良賤)문단이여, 영원하라
이 정 희
굽이굽이 이어진 산맥(山脈)처럼
용(龍)틀임으로 솟구치며
새 희망(希望)을 위해
새 힘을 위해
오늘이 아닌
내일의 태양(太陽)처럼 솟아 올라라
불멸(不滅)의 양천이여
영원한 양천(良賤)이여
세계화로 뻗어 나가리
양천(良賤)은 하나다.
엄지 손가락의 힘처럼
하나의 장(張)이 되고
최고의 힘으로
제일의 으뜸으로
모든 이 들에게 을 주고
많은 사랑 받으며
한강과 안양천이 만나는
맑은물 그 곳
양천이여! 영원 하리라
굽이굽이 돌아돌아
흐르는 물처럼
만나고 헤어짐 없이
모두가 하나로
온 세계(世界)로
영원히
영원히.
강아지풀과 망초꽃
김 형 태
애인보다 친구가
더 그리울 때가 있는 것처럼
나이테 하나 둘 진한 동그라미 그려갈수록
장미나 백합보다
그림자처럼 피고 지는 들꽃에
더 정이 갈 때가 있다.
오늘도 꼬리 흔들며 나를 쫄쫄 따라오는
강아지풀 하나 꺾어 입에 물었더니
시티지도 않은 휘파람에, 콧노래까지
언덕배기 묵정밭에 오르니
한 우듬지의 망초꽃은
푼수같이 깔깔깔 웃어대다가
내 곁가지를 읽었다는 듯
소쩍새처럼 훌쩍거린다.
지천이 온통 하얀 소금빛이라고
풀꽃 앞에서는
잔뜩 긴장한 현악기처럼
옷깃을 여미지 않아도 되고
넥타이와 허리띠를 약간 풀어놓아도
흉이 되지 않는다
괜스레 초라하게 움츠러들 필요됴 없고
맥없이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된다
허물없이 농담도 주고받아도 되고
속을 다 열어 보여도 걱정이 되지 않는 다.
까짓것 가슴 뛰지 않으면 어떠리
그냥 곁에만 있어도 이렇게 편안한 걸
나, 오늘 강아지풀처럼 네 등에 힘껏 기댈 테니
너, 망초꽃처럼 내 어깨를 맘껏 빌려가렴
변 신
정 동 진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불살라
세상 전체를 녹여 버릴 듯하던
한여름의 뙤약볕에 힘겹게 저항하여
무던히도 더운 여름을 잘도 참아 내더니
이정표도 없는 항로 각자의 갈길 찾아
하나 둘씩 변신을 시도한다.
넓은 대지 위엔 알곡 품은 곡식들이
황금빛 의상으로 단장을 시도하고
동네 어귀 서성이는 몇 그루 감나무도
붉은 색감으로 채색을 하면서
결실위한 가을 향해 길 떠나는데
금의환향 큰 기대는 애시당초 접었지만
아쉬움의 마지막 희망마저 던져 버린
외로운 갈매기는 무엇으로 변신할꼬?
태안 소원 파도리 파도리
석 민 영
민들레 무리 웃음 속 동쪽 일출
그래, 그 파도리 서쪽 월몰
그대 해와 달의 친구들이여!
보물선 개펄 엎드려 천고 세월 지새우고
동짓달 하늬바람 드높은 너울너울
해벽에 설레이던 세월의 구비들아!
만리포 모래알들 사연 참 많겠다.
물새는 가릴 테지 사랑의 빛깔까지
잠들어 발 적시며 꿈길 갔을 게야.
천리포 민 영감님 스물 아홉 홀몸으로
독일사람 뮐러에서 우리 사람 민병갈로
그 푸르디 푸른 보석- 수목원 여기에 펼쳤구나!
푸르고 오묘한 자연 변화 많은 넋 닦고 말고
20리 신두리 해안사구 지금도 황홀하다.
맨발 바다 나아가면 가슴까지 물결친다.
억겁을 두고두고 쌓여가는 모래 인생
학암포 돌아들어 만대로 가는구나.
가로림만 넓은 개펄 어머님 품속인가?
황금산 마주보며 배롱나무 여름 꽃길.
봄
이 덕 주
그가 온다
캐노피의 그림자
햇볕따라 출렁인다
이 방으로 진격할 태세이다
남쪽에서 오는 바람 섞였을지 모른다
키높이 구두를 신은 신간시집(詩集)들이
내 앉은 키 위에서 뛰어 다닌다
캐노피의 흔들림보다 더 빠르다
잠깐사이의 밤과 낮이 뒤바뀌고
미래에서 온 친구 하나 곁에 세운다
물기 가득한 그의 눈빛
외투 벗은 아침이 따뜻하다
패 랭 이 꽃
강 진 원
교태도 자만도 없는 가녀린 매무새
가시 돋친 장미의 음모도 없이
돌올히 피어난 석죽 카네이션
향토 밭 돌 자갈 틈서리 분광의 이슬 담아
라일락 지정향의 향기도 없이 가우숙 내민 빨간 꽃망울
풀꽃 더불어 피어나기 주저로워 수줍은 입술 다물고...
시집(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리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