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세계/시와산 계간지.2

제 62 호 - 산에 든 마음으로

김완묵 2009. 5. 4. 21:55
 

                     예봉산(683m)을 찾아서

                                - 2008년 12월 25일 -


서울 주변에서도 가장 낙후된 팔당 유원지. 중앙선이 지나고 있지만 단선철로에 산업을 위한 교통수단이라 이용에 불편함이 있고, 양평을 거쳐 설악산을 오가는 길목이지만, 6번 국도가 스쳐 지나는 한적한 곳이었는데 지난해 전철의 개통으로 산을 찾아 모여 드는 인파로 門前成市를 이루고 있으니 桑田碧海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주변의 인구에 비해 번듯하게 지어진 2층 건물, 초현대 시설을 갖춘 팔당역을 나서면 시원한 강바람이 가슴을 파고든다. 예봉산 등산 안내도를 뒤로하고 굴다리를 지나면 새로 개발되는 유원지의 정비 작업이 한창이다. 다락 논이 있는 마을길을 돌아 갈림길에서 계곡을 버리고 송림 속으로 들어서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한 솔밭에는 겨울해도 스며들지 못하는 음침한 그늘 속에 상큼한 솔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든다.


이곳 예봉산은 조선시대 손님을 맞이하던 예빈사가 있던 곳이고, 한양에 땔감을 대주던 곳이라고 한다. 제법 가파른 비알 길에서 숨소리도 턱에 차오르고 목덜미로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전망대 바위에 올라서면 커피와 막걸리를 파는 노점상이 자리 잡고 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한 겨울의 적막한 숲 사이로, 한강변의 라이브 카페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강변을 질주하는 차량들이 홍수를 이룬다. 전망대 바위를 지나 목책계단을 올라서면 한강을 굽어보는 전망대의 시원한 조망으로, 땀 흘리며 올라온 보람으로 환호성이 메아리친다.

 

정상을 목전에 두고 계곡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여 오르는 비알 길에는 한낮의 열기 속에 밤새 얼었던 땅이 녹아 진흙탕으로 변하지만, 고초당초 보다 매서운 강바람이 양 볼을 사정없이 휘몰아친다.


683봉의 정수리에는 원색의 물결로 입추의 여지가 없고,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은 천마지맥의 끝자락에 우뚝 솟은 고봉답게 수 백리 산자락이 시야에 가득하다. 이곳의 매력은 운길산과 연계하여 종주하는 코스로, 조안면 진중리의 분지를 가운데 두고 돌아가는 말발굽 형태로 7시간이 족히 걸리는 장거리 이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맞은편의 산세를 바라보며 걷는 즐거움과 양수리의 두 물머리와 팔당댐의 너른 호수 위를 거니는 듯 끝내주는 조망이 압권이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두 물머리. 수종사의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양수리는 꿈속에서 피어나는 이상향으로 불국정토에 들어 온 듯 신비로움에 빠져든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운길산 정상에 올라서면 예빈산(589m)과 예봉산(683m), 철문봉(630m), 적갑산(560m)이 병풍을 두른 듯 웅장한 자태로 솟아오르고 갑산(545m)을 지나 백봉(589m)까지 천마지맥의 산줄기가 파노라마를 이루는 15년 전 지나온 그 길을 되돌아본다.

    

초가집 추녀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에 쨍하고 산산 조각이 날것만 같은 碧空에 눈이 시리고 살갗을 파고드는 영하의 날씨는 체감온도를 한 없이 끌어 내린다. 밀려드는 인파에 자리를 내 주고 천마지맥을 따라 율리봉(587m)으로 내려서면 남쪽으로 예빈산이 높아 보이고 율리 고개를 지나 응달진 빙판길에서 한 바탕 씨름을 한 뒤에야 예빈산의 직녀봉(589m)에 올라선다.


배를 타고 영월, 정선, 충주, 단양, 춘천을 오고 가던 길손들이 한양을 떠나면서 삼각산이 보이는 이곳에서“예”를 갖추었다고 해서 “예빈산”이라 하지 않았던가. 예봉산 제일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검단산이 팔당의 협곡을 사이에 두고 천혜의 요새지로 입맞춤 하고 북녘으로 흐르는 강물 따라 천년고도 서울의 빌딩숲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암릉을 올라서면 예빈산의 견우봉(581m)이라, 이곳 또한 시원한 조망 터로 팔당댐의 푸른 물이 넘실거린다. 강 아래는 줄어든 수량으로 강바닥이 배를 드러내고 여울물 따라 사행천을 이루고 있다. 고도를 낮추어 내려서면 승원봉(470m)에 이르고 양수리의 두 물머리가 바라보이는 전망대로 그 옛날 다산 정약용이 이곳에 올라 청운의 꿈을 키우던 곳이라고 한다.

 

머리 풀어 헤친 겨울햇살이 두 물머리 호반위에 내려앉으면 능 내리의 산자락이 살포시 고개 숙이고 육지속의 바다가 너른 가슴으로 북한강과 남한강을 품어 안는 두미강(양수강)이 펼쳐진다. 가파른 비알 길에도 낙엽이 지천으로 발길에 채이고 천주교 공원묘지에 도착하며 오늘의 산행도 마감을 한다. 남양주시에서 정성들인 이정표와 자연을 노래한 시들이 삭막한 우리의 가슴에 훈훈한 불길을 지피고 나른하던 몸에도 생기가 돋는다.


서울근교에 하루산행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산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으니 또 하나의 귀중한 선물을 받게 되었으며 29일부터 국수역 까지 연장되고, 내년에는 용문, 후년에는 원주까지 개통이 된다고 하니 멀게만 느껴지던 치악산도 당일 산행으로 다녀 올수 있는 날이 멀지 않기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복계산(1,054m)에 올라서


                                                   일  시: 2008년 9월 18일

                                        장  소: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화천군 상서면



추석(9월 14일)도 지나고 추분이 코앞에 다가 왔건만 식을 줄 모르는 수은주는 30도를 오르내린다. 삼복더위를 방불케 하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독이 오른 모기떼의 극성으로 밤잠을 설치는 우리는 때늦은 오지산행으로 강원도의 철원 땅으로 향한다.


우리가 지나는 연도에는 풍년을 기약하는 벼들이 황금물결로 출렁이고 앞마당에는 고추들이 탱글탱글 영글어 가는데 뒤뜰에는 바람결에 떨어지는 알 암벌어진 밤들이 우리의 동심을 자극 시킨다. 광릉 내와 내촌을 지나며 시원하게 뚤 린 고속화 도로를 따라 신나게 질주하면 어느덧 강원도와 경기도의 접경을 이루는 자등 현을 넘는다.


목적지가 가까워 올수록 차창을 스치는 바람도 싱그럽고 험한 산세와 속살을 파고드는 계곡이 우리의 가슴속을 시원하게 씻어 내린다. 매월동으로 접어들며 기세등등한 매월대가 창공으로 솟아오르고 한가로운 주차장에는 따사로운 햇볕이 사정없이 내려 쪼인다.


복계산의 상징이기도 한 매월대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 선생 등 아홉 선비가 세조의 왕위찬탈에 비감한 나머지 관직을 버리고 산촌으로 은거하여 소일하던 장소로 복계산 기슭 해발 595m의 산정에 위치한 깎아 세운 듯한 40m 높이의 층암절벽을 말하는데 김시습선생이 이곳에 은거한 후부터 사람들은 이 바위를 매월대라 부르고 마을 이름도 매월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김시습선생은 조선 세종16년(1434년)에 태어나서 성종24년(1493년) 59세로 세상을 떠난 조선시대 초기의 천재 기인으로서 그 나이 22세에 사육신의 참화를 듣고 비관하여 세속을 버렸으며 스스로 광인을 자처하고 걸식행각으로 도처를 방랑했는데 이곳에 잠시 은거한 것도 그의 방랑시기 쯤으로 추정을 한다는 안내문을 뒤로하고 산행이 시작된다.


잠시 후 두 갈래의 길로 나뉘는데 오른쪽으로는 임꺽정의 촬영장소인 원골계곡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의 매월대와 폭포로 가는 길을 택하여 그늘 속을 파고든다. 주차장의 열기와는 다르게 울창한 숲속에는 시원한 냉기가 온몸을 감싸 안으며 너덜지대의 날카로운 암석과 다래 넝쿨이 심신 산골의 정취를 물씬 풍겨준다. 잠시 후 왼쪽으로 매월대 오르는 갈림길이 나타나지만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매월폭포의 굉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주차장에서 500m를 거슬러 오르면 만날 수 있는 폭포는 등줄기에 흥건하게 흐르던 땀방울이 순식간에 말라버리는 시원함을 무엇으로 표현하리요. 갈수기 임에도 수량이 풍부한 물줄기가 20여 m의 층암절벽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장쾌한 모습은 금강산의 구룡폭포를 연상하듯 장관을 이룬다. MBC 다모의 촬영 장소로 더욱 유명해진 이곳을 선암폭포라고도 부르는데 이끼 낀 바위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원시의 자연경관을 연출하는 비경이다.


떨어지지 않는 미련을 뒤로하고 층암절벽을 기어오르면 무성한 나무 사이로 매월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김시습이 세상을 등지고 탄식하며 세월을 낚던 매월대는 아홉 선비가 바둑판을 새겨 놓고 단종의 복위를 도모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건너편의 산정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비지땀을 흘리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비무장지대와 가장 근접한 최북단의 산행지로 아직도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곳이라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복계산은 울창한 수림이 터널을 이루고 한 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이 하늘을 뒤덮고 있어 주위를 둘러볼 전망대 하나 없이 답답함 속에 비알 길을 오르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들녘을 바라보며 열린다는 도토리가 몇 년 만에 대풍을 이루어 갈참나무와 굴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아래 지천으로 널려있어 산행을 뒷전으로 도토리 줍기에 여념이 없으니 이 또한 산행의 즐거움이 아닌가? 지금도 도토리묵은 우리의 입맛을 돋우는 별미이지만 보리 고개를 헤쳐오던 우리의 유년시절에는 영양보충으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식량이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만에 840봉의 헬기장에 이른다. 매월대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길목으로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은 아니지만 주위를 둘러보며 답답한 갈증을 풀어본다. 정상은 아직도 1.2km 가파른 비알길이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지고 서너 길은 됨직한 바위 벼랑을 오르면 정상이다. 가슴이 활짝 열리는 정상에는 하얀 대리석에 검은 글씨의 표지석이 자리 잡고 우리 모두 도장 찍기에 분주하다.

 

휴전선에서도 가장 근접한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 또한  거칠 것이 없고 한 반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리고 그 사이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13개의 정맥들이 동서로 산굽이를 이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한강 이북을 아우르는 한북정맥(구 광주산맥)이 금강산의 추가령에서 시작하여 서해의 장명산까지 수많은 산들을 일구며 280여 km를 뻗어 내린다.

  

복계산과 연결된 능선을 따라 촛대봉과 복주산(1152m)을 지나 광덕산(1,046m)과 백운산(904m) 운악산(936m)을 거쳐 도봉산(716m)까지 이어지는 주능선이 파노라마를 이루고 북녘으로 휴전선을 바라보며 조국 수호를 위하여 숭고하게 산화한 전우들의 명복을 빌며

 

-한 명희 詩.   -장일남 曲의  비목(碑木) 을  한수 바친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녁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등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 달 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하 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벼랑에는 가을꽃의 전령사인 쑥부쟁이가 연한 보랏빛의 잎 새에 샛노란 꽃술을 활짝 피워 올리며 애절한 하소연을 하고 있으니 아주 어려웠던 시절 동생들의 먹 거리를 위해 쑥 나물을 캐러 다니던 대장장이네 11남매의 큰딸이 어느 날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을 동네사람들이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이란 뜻으로 쑥부쟁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하니 촌색시의 수더분한 쑥부쟁이가 우리의 시선을 살며시 사로잡는다.


가파른 비알 길에는 비수와도같이 날카로운 돌들이 발길을 부여잡고 달콤한 대래열매에 푹 빠져 발걸음이 마냥 느려진다. 시원한 계곡물은 뼈가 저리도록 차디차고 청석 골을 재현한 임꺽정의 본거지는 20여 채의 초가와 너와집이 허물어진 채 흉물스럽지만 역사의 고증을 위한 산채로 관광의 명소가 되었으니 복계산의 매월대와 함께 우리의 가슴에 아련히 자리 잡는다.

 

 

 

 

 


                    4. 구룡령(1,023m) - 진고개(970m) / 22km

구룡령에서 진고개 까지는 우리나라 불교의 성지인 국립공원 오대산을 지나는 구간으로 구룡령은 홍천군 내면에서 양양군 서면으로 이어지는 56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 마루로 양양쪽으로 내려가는 비알 길은 차량들이 거북이 운행을 하며 간을 졸이는 곳으로 겨울철에는 운행에 특히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산림박물관 뒤편의 오솔길을 따라 동쪽으로 진행을 하면 곧 바로 약수산(1,306m)에 이르고 1,261봉을 지나 응복산(1,359m)에 이른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뻗은 능선은 그 유명한 미천골의 상류를 지나 조봉(1,182m)을 일으켜 장대한 산맥을 이루며 정족산(869m)을 지나 양양읍 남대천까지 산줄기를 이어가고 있다.


또 다시 대간 길은 동남 방향으로 만월산(1,280m)을 이루고 서쪽으로 진행하면 1,210봉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대간 길은 남쪽으로 진행하고 동쪽으로 복용산(1,014m)을 지나 삼형제봉(618m)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주문진까지 연결이 되고 또 하나 820봉에서 북으로 분기한 능선이 만월산(628m)을 지나 하조대 해수욕장까지 연결된다. 남쪽으로 내려온 대간 길은 신배령(1,080m)에 이르러 오대산 국립공원으로 들어서며 두로봉(1,422m)에 도착한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이 양수리의 두 물 머리까지 이어지는 한강 기맥의 시발점이 된다.


비로봉(1,563m), 상왕봉(1,493m), 호령봉(1,560m), 동대산(1,433m), 두로봉(1,422m)을 일컬어 오대산이라 부르며 5개의 산을 선으로 이으면 연꽃 모양이 되고 그 가운데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자리 잡고 있으니(설악산의 봉정암, 함백산의 정암사, 영월의 법흥사, 양산의 통도사) 유서 깊은 월정사는 신라의 선덕여왕 대에 자장율사가 월정사와 적멸보궁을 지으면서 불교의 성지가 되었는데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는 사찰의 역사를 증명하는 표본으로 상원사와 함께 중심역할을 하며 월정사의 대표적인 5대 암자가 있으니 중대 사자암,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이다.


두로봉에서 동대산까지는 전망이 좋아 건너편의 비로봉과 호령봉이 바라보이고 많은 등산객들로 지루함을 덜 수 있으며 차돌백이 쉼터를 지나 동대산에 이르면 건너편의 황병산이 지척에 보이고 삼양목장의 능선들이 파노라마를 이루는데 진고개로 내려가는 급경사는 1.5km이지만 450m의 고도를 극복해야 하는 구간으로 반대로 올라오는 경우 1시간 반이 걸리는 험난한 곳이다.



                       5. 진고개(970m) - 대관령(832m) / 23.05km

298.5㎢의 오대산 국립공원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진 고개는 평창군 진부면과 강릉시 연곡면을 넘나드는 6번 국도가 지나는 길목으로 동대산에서 내려온 대간의 중간 기착지로 동쪽으로 1시간 20여분을 올라서면 노인봉(1,338m)에 이른다. 정상에서 좌측으로 백마봉(1,094m)을 지나는 암릉을 따라 연곡면 소금강지구까지 내려서는 비마봉(505m)줄기와 동남방향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의 소황병산(1,327m)을 지나 매봉(1,173m)에서 천마봉(999m)에 이르는 계곡은 동해안 제일의 협곡으로 오대산 국립공원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대간 길은 매봉에서 삼양 목장을 따라 초원 위를 걷게 되는 환상적인 코스로 이어진다.


소황병산에서 서남쪽으로 분기한 줄기는 황병산(1,407m)을 일구고 장군 바위봉(1,140m)까지 내려오며 진부면의 유천리까지 연결된다. 매봉을 지나온 대간 길은 선자령까지 끝을 모르는 목장지대를 걸어가며 오뉴월의 야생화 단지와 시원스레 돌아가는 풍차의 정경은 불모지의 땅을 전원의 옥토로 만든 삼양그룹 창시자의 피땀 어린 노력이 이루어낸 인간승리로 우리의 식생활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어낸 현장이다. 목가적인 풍경 속에 자연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휴식년제의 일환으로 출입을 금하고 있으니 이 또한 대간의 종주꾼들에게는 크나큰 장벽이 아닐 수 없다. (노인봉에서 매봉까지구간)


목장 길을 가로 질러 오른 곳이 동해안 전망대. 삼양목장을 찾은 관광객이 올라오는 휴식 터로 가슴을 파고드는 짜릿한 희열감속에 동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부서지는 파도에 우리의 찌든 때도 씻겨 내린 듯, 상쾌함 속에 곤신봉(1<131m)의 정상에 오른다. 저 멀리 남쪽으로 대간 길의 선자령(1,157m)이 우뚝하고 좌측으로 보현사로 내려가는 계곡이 가파른데 한겨울이면 폭설로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며 사시사철 불어오는 높새바람이 선자령에 풍력발전기를 만들어내고 북쪽으로 지나온 대간길이 파노라마를 이룬다.


선자령의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강릉시내와 동해바다가 망망대해를 이루고 이제는 지방 도로로 격하된 대관령 고객길이 아흔아홉 구비를 이루는 절경 속에 발왕산의 용평스키장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제 대관령까지는 3.5km. 피로에 지친 몸이지만 주위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절경에 매료되어 새 봉의 전망대를 지나 ❝대관령 국사 성황당❞ 표지판을 뒤로 대관령에 도착한다.


                  

                 6.대관령(832m) - 삽당령(680m) - 백복령(780m) / 42.5km

대관령은 서울에서 영동지방을 이어주는 유일한 고속도로 이지만 피서 철이면 정체현상으로 거북이 운행을 해야 하고 동절기가 되면 폭설 속에 교통이 두절되는 수난 속에 시원하게 터널이 관통되며 아슬아슬하게 곡예운전을 하던 아흔아홉 굽이도 고속도로의 기능을 마감하고 관광객이나 산객들이 찾아오는 한가로운 지방도로로 격하되는 비운 속에 휴계소 또한 화려했던 영화를 뒤로하고 ❝신생 에너지 전시관으로❞ 현판을 바꾸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고속도로 준공기념비가 있는 제단 옆으로 남진하는 가파른 비알 길을 치고 오르면 능경봉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제왕봉(840m)을 경유하여 대관령 옛길을 지나 대관령 박물관까지 9.2km가 이어진다.      


대간 길은 남쪽으로 능경봉(1,123m)에 오르는데 강원도에서도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으로 건너편의 발왕산에는 정수리까지 슬로프가 개설되어 젊음의 향연을 만끽하며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기위한 국민의 염원이 가득한곳으로 급경사를 내려서면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횡계치에 도착한다. 이곳은 그 옛날 국도가 개설되기 전에 강릉에서 도암면 횡계리로 오가는 길목으로 한양으로 과거보러가던 선비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 급경사를 치고 오르면 고루포기산(1,238m) 정상에 이른다. 남진하던 대간길이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왕산 제1쉼터(855m)에 이르고 맹덕목장을 지나 닭목재(706m)에 이른다.


닭목재는 왕산면 오봉저수지 상류의 갈림길에서 35번 국도가 지나는 왼쪽 길은 삽당령을 넘어 정선군 임계면으로 연결이 되고 우측의 9번 도로를 따라 11km지점에 있는 고개 마루인데 ❝전국최고 감자 채종마을❞의 표지판에서 보듯이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고랭지 채소밭이 질펀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노추산계곡과 고단리로 연결이 된다. 닭목재를 출발한 대간길은 동동남 방향으로 가파른 경사지를 치고 오르며 화란봉(1,069m)을 지나 동남방향으로 선회하여 오르락내리락 지루할 정도로 2시간여를 소비하며 석두봉(982m) 정상에 오른다.


석두봉을 내려서면 주능선을 따라 방화선이 시작되고 오년 전 대간 길에서 4시간동안 눈 속에서 고생고생하다 도중에 포기하고 되돌아갔던 대용수동 갈림길(862m)을 지나면 통신 중계소가 나오고 잠시 후에 삽당령에 도착한다. 삽당령에는 동물 이동통로가 시설되어 자연생태계를 지키려는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삽당령에서 두리봉(1,033m)은 4.5km의 먼 거리를 동쪽으로 진행을 하다 북동쪽으로 선회하여 정수리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는 만덕봉(1,035m)을 지나 망기봉(755m)으로 이어진다. 이어지는 대간 길은 남동쪽으로 1.6km를 진행하면 석병산(1,055m) 에 이르고 오랜만에 암봉의 짜릿한 맛을 보며 일월문도 지나게 된다.


석병산의 정상인 일월봉에서 1시간 반을 진행하면 고병이재에 도착하고 삼각점과 백두대간 안내판이 있는 900봉을 지나면 곧이어 생계령(640m)에 이르는데 백봉령 5.4km의 이정표가 있는 카르스트지형을 통과하게 된다. 건너다보이는 자병산(872m)은 백두대간의 전 구간 중에서 가장 훼손이 심한 곳으로 살점 뜯긴 자병산은 말이 없고 정수리로 이어지는 대간 길을 피해 계곡을 오르내리는 산객들의 가슴에 피멍이 든다. 연민의 정으로 자병산을 바라보며 걷는 발길에 백복령(780m)의 고개 마루가 손짓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