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양수리의 봄

김완묵 2009. 4. 6. 20:34
 

                                                 양수리의 봄

            2009년 4월 6일

                                                    개군면의 산수유 축제

 

 

 

 

 

삼월중순의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어 겨울이 다 간줄 알았더니,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눈까지 몰고 와 맹위를 떨친다. 추위를 핑계 삼아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나이 탓인가?  겨우내 산행 한번 나서지 못하고  소일하다 보니 몸이 근지러워 견딜 수가 없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를 지나며 평년의 날씨를 되찾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를 쫒아 두 물머리 양수리로 향한다.

 

 

 

회기역에서 팔당가는 전철을 갈아타기 위해 건너편 환승장을 찾아가니, 국수역까지 연장 운행을 하고 있단다. 겨우내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동안 세상이 이렇게 변하였으니 꼭 외국에라도 다녀온 듯 신기 하기만하다.

 

 

 

 

주말만 되면 교통지옥이 따로 없이 몇 시간씩 정체되는 구간이라 양수리 쪽으로는 발걸음이 뜸 하였는데, 30분마다 한 번씩 운행하는 전철이 있어 마음 놓고 찾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차창을 스치는 풍광에 눈을 떼지 못한다. 내년에는 양평을 지나 용문까지 연장 운행을 하고 머지않아 원주까지 전철이 개통된다고 하니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팔당역을 지나며 길고 긴 터널 속을 달리던 전철은 운길산역을 지나 목적지인 양수리 역에 도착한다. 모처럼 나들이 길에 마음 만큼이나 하늘도 푸르다. 코 끝을 파고드는 추위도 아랑곳없이 내려선 양수리 역은 천지개벽이 따로 없다. 에스컬레이터와 장애인을 위한 에레베터까지 서울의 어느 지하철 역 보다도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으니 백년대계를 위한 일이지만 분에 넘친다.

 

 

 

 

 

 

양수리는 마을 전체가 물길로 둘러싸인 천혜의 절경이다. 호반의 도시 춘천보다도 물이 풍부한 팔당호를 끼고 있어 주변의 풍치가 뛰어난 마을이다. 역을 뒤로하고 오솔 길을 나서면 한 여름 연꽃으로 가득 피어날 연못에는 살얼음위로 앙상한 연밥이 고개를 숙이고 봄이 머지않은 듯, 냇가의 버들가지에도 물이 통통하게 오른다.

 

 

 


가장먼저 향하는 두 물 머리는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화천과 춘천, 청평을 지나온 북한강과 대덕산의 검룡소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정선아리랑의 가락속에 영월과 충주를 지나며 남한강으로 모여들어 합류하는 두 물머리. 400년이 넘은 고목나무아래서 바라보는 물줄기는 오대산의 비로봉에 내리는 빗물이 남북으로 갈라져 수 백리의 먼 길을 돌아 재회의 기쁨속에 한 몸이 되었으니, 우리민족의 중심을 이루는 수미강으로 다시태어난다.

 

 

태초에 우리조상들이 기름진 옥토위에 생활의 터전을 잡은 것이 한강이요. 양수리의 두 물줄기가 수미강으로 거듭 태어나 도도히 흐르는 강물따라 우리의 역사가 번영을 이루고 있다.

 

 

 

 

또한 건너편 조안면 능내리의 마재마을은 茶山(정약용)이 태어나서 자라고 학문을 익히며 청운의 꿈을 키우던 고향집이다. 오랫동안 객지를 떠돌다가 돌아온 고향집은 더욱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감회를 시 한수로 읊은 그 유명한 『환소천거(還苕川居)』를 감상하자.

    

 

 

     갑자기 고향 마을에 이르고 보니                   忽已到鄕里 
    문 앞에선 봄물이 흐르고 있네                      門前春水流 
    기쁜 듯 약초밭에 다다라 보니                      欣然臨藥塢 
    예전처럼 고깃배 눈에 보여라                       依舊見漁舟 
    꽃들이 어우러져 산집은 고요하고                  花煖林廬靜 
    솔가지 늘어진 들길은 그윽하다                    松垂野徑幽 
    남녘 땅 수 천리를 노닐었으나                      南遊數千里 
    어디 메서 이런 언덕 찾아 보리요                  何處得玆丘

 

 

 

  

 

조안면 능내리에서 정약용 선생의 생가는 차도에서 1,2km 떨어진 풍양나루의 경안천이 합류하는 경관 좋은 야산에 임산배수의 명당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아래 분지에는 새로 단장한 문화재 건물이 자리잡고 그 분의 철학이 담겨있는 거중기는 도르래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기중기의 효시로서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발굴하고 연구한 업적이 돋보인다.

   

 

천마지맥과 한강기맥의 정기가 모여드는 두 물머리는 운길산의 수종사 앞마당에서 바라보아야 제격이다. 청계산을 정점으로 산줄기가 수백 수천가닥으로 퍼져 나가고, 수천 가닥의 계곡물이 한데 모여 강을 이룬다. 이른 아침 강가의 수초 사이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골골마다 산자락을 휘감으며 피어오르는 정경은 꿈속에서나 만나는 이상향으로 신비롭기 그지없다.

 

 

또한 부용산과 청계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유혹을 하는데, 해질녁의 두 물머리는 능수버들 휘 늘어진 너른 바다위에 낙조의 그늘이 드리워 질 때 황금빛 물결로 출렁인다. 자! 이제 마을길로 걸어보자. 수반위에 빚어놓은 카페들이 물그림자를 드리우고 종이학이 있는 카페는 백조의 호수 위를 거니는 듯 동심의 세계로 흠뻑 빠져든다. 

 

 

 

 

 


북한강을 따라 청평 쪽으로 십 여리를 거슬러 오르면 지금처럼 호안공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자연그대로 강물이 흘러가던 시절, 홍수가 나면 강물이 범람하여 물을 내민다하여 내미리, 물에 받친다하여 바치리, 물이 들어 온다하여 무드리, 물이 넘친다하여 무너미로 부르다가 지금은 문호리가 되었다는 지명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해학이 묻어나는 곳이다.

 

 

 

 

 

 

 

어머니의 품속과도 같이 아늑하고 포근하던 양수리에도 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활발한 개발 붐이 일고 있다. 자칫 마구잡이로 파헤치는 개발이 돌이킬 수 없는 난개발이 되지 않을까하는 노파심이 앞선다. 부디 바라건대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점을 살려 양수리만의 특성을 살린 전원도시로 개발되어, 언제든지 찾아와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휴식의 공간으로 개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