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호 (시 와 산)
2009년 1월 23일 출판
죽여주는 다락능선(도봉산)
망월사역에서 시작하는 산행 길에는 우측으로 산악인 엄홍길의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1960년 9월 14일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엄홍길은 167cm의 키에 66kg의 아담한 체구이지만 세계의 고봉인 히말라야의 8,000m 가 넘는 14좌를 세계에서 8번째로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등정한 산악인이다.
의정부시에서 호원동 사무소로 사용하던 건물에 한국이 낳은 훌륭한 산악인의 발자취를 한곳에 모아 놓은 전시장을 둘러보며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서울외곽 순환 고속도로가 지나는 다리의 갈림길에서 우측으로는 망월사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다락능선을 오르는 들머리가 된다. 처음부터 된 비알 길 을 올라서면 주차장이 자리 잡고 북한산 국립공원의 안내간판이 반겨준다.
평소에도 일반등산객들이 찾지 않는 호젓한 길이지만 오늘따라 오가는 사람도 없이 적적한 산길에는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결에 싱그러운 풀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십여 년 전만해도 새벽마다 약수터를 오르내렸던 길이지만 장거리 산행에 맛을 들여 발걸음이 뜸하였지만 이제 근교산행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으니 나이 탓이 아닌가 싶다.
계절을 잊은 듯 무더운 찜통더위가 식을 줄 모르더니 10월에 들어서도 한낮의 기온이 25도를 오르내리고 있으니 알알이 영글어가는 결실의 계절이 풍년을 기약하며 산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계절이 되었다. 울창한 수림 속으로 등산로가 이어지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안부에 올라서면 심원사의 산문이 반겨준다. 비좁은 산기슭에 터를 잡은 심원사는 십 오년 전 동광당 명진 대선사께서 수도권의 신도들이 해인사 길상사 까지 기도하러 오는 모습을 보시고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기 위해 이곳에 산문을 열게 되었다는 유래를 보며 신앙의 심오한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심원사를 뒤로하고 주능선에 올라서면 본격적인 다락능선의 암능 길이 시작된다. 집 채 만 한 바위들이 앞길을 가로막고 수 십 길 벼랑에는 로프가 걸리고 통천 문을 비집고 올라선 곳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서울외곽 고속도로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수락산 광폭터널이 돼지 코의 구멍처럼 꼬리 무는 차량들이 시원스레 빨려 들어간다. 이리저리 암봉을 피해 벼랑길을 기어오르면 따사로운 햇살아래 의정부시가지가 눈부시고 포대 능선아래 망월사가 천년세월 터를 잡고 치마바위 벼랑 아래로 푸른 숲이 바다를 이룬다.
망월사가 바라보이는 바위아래 한 뼘은 됨직한 좁은 공터에 고추를 심어 놓은 그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척박한 땅에 물을 주는 정성으로 삼복더위를 견디었으니 앙증맞은 열매 속에서 생명의 신비함을 음미하며 바위틈을 비집고 모진 생명을 이어가는 소나무의 늠름한 기상에서 생명의 고귀함을 느낀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이 모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오늘아침 우리는 너무도 큰 충격 앞에 말문이 막히고 만다. 온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톱스타(최 진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니. 얼마나 말 못할 억울함이 많았기에 사랑하는 자식과 가족을 버리고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생명을 경시하는 시회풍조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혼돈의 세계가 도래하고 있으니 종말이 가까워 왔음인가. 어려운 처지에서도 생명을 담보로 하는 만행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뉴스의 끝자락이 머릿속을 짓누르며 심란한 마음으로 느릿느릿 발걸음을 이어가는 중에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도봉공원에서 올라오는 산객들로 부산스럽다. 깔딱 고개를 치고 오르느라 비지땀을 흐리며 후줄근하게 몰려오는 피로도 잊은 채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 자신감으로 웃음꽃이 만발한다. 아직도 주봉까지는 1.3km가 남았고 험난한 쎄미 클라이밍지대가 기다리고 있지만 그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는 듯 웃음보따리가 터진다.
정성들여 만든 나무계단을 지나면 자운봉과 만장봉이 우리의 곁으로 슬며시 다가오고 바위를 넘나들며 노송의 그늘 속을 비집고 올라서면 마들 평야에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들이 우리의 시선을 압도하는데 광활하게 펼쳐지는 건물들이 수도서울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 저 많은 집들의 주인이 누구란 말인가?
하늘은 높고 말들이 살찐다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 속에 푸른 숲이 바다를 이루고 있는 북한산 국립공원이 도심과 가까이 있다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은덕으로 사람이 하루에 만 번의 숨을 쉬고 5.4kl의 산소가 필요하다고하니 도심 속에 가득 찬 공해를 정화시키고 피로에 지친 심신을 단련시켜주는 안식처가 아니겠는가?
도봉공원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지나면 본격적인 암능 지대가 펼쳐지고 수 십 길 협곡, 바위 틈사이로 가냘픈 쑥부쟁이가 수줍은 미소로 유혹을 하지만 저려오는 오금에 혼비백산하여 곁눈질도 못하고 안부에 올라서면 또 다시 아슬아슬한 슬 랩이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발자국에 반질반질 윤기 나는 바위, 오도 가도 못하는 외길에서 허공중에 몸을 맞기고 사력을 다한다. 머리위의 바위 에 올라서면 만장봉이 더욱 가깝고 노송의 그늘에서 물 한모금마시며 둘러보는 경치는 가히 절경이라.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에 거친 숨소리로 삼각점이 반겨주는 벙커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는 조망은 고진감래의 진수로다.
자운봉(740m)과 만장봉(718m) 선인봉(708m)이 다정하게 자리 잡은 주위로 아득한 벼랑에 펼쳐지는 푸른 숲이 하얀 바위와 대조를 이루며 어우러진 노송이 운치를 더한다. 선인봉정상에서 사자후를 토하는 젊은이들, 부러운 눈초리에 시샘이 나지만 언감생심 될 법이나 한 소리인가?
Z형 협곡에서 로프와 씨름하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지. 뱁새가 황새를 쫒다가 어찌되는지 잘 알고 있겠지. 날카로운 비수 위를 걸어가듯 천야만야 아득한 벼랑 위에서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동아줄에 몸을 내 맡기고 도봉주릉을 타고 오를 때 저려오는 오금을 어찌 피할 수 잇단 말인가? 살얼음 위를 걸어가듯 협곡을 통과하여 뒤돌아보는 지나온 길이 섬뜩하고 아찔하기 그지없다.
긴 한숨과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 자부심으로 내딛는 발걸음에 신선대의 벼랑길이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고, 아찔한 암릉 길이지만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을까 싶어 대열에 합류하니 반질반질 윤이 나는 절벽에서 안간힘을 다하고 가까스로 정상에 올라서면 일반등산객이 올라올 수 있는 가장 높은 신선대(725m)의 전망대라. 저 멀리 남쪽으로 오봉과 우이암을 지나면 인수봉(810m)과 백운대(837m) 망경대(799m)가 불꽃을 피워 올리고 200여 km를 달려온 한북정맥이 상장봉(534m)을 지나 노고산(496m)으로 치닫는다.
손에 잡힐 듯 자운봉이 지척이라. 조물주가 만든 형상, 만 가지 모양으로 산에 오르는 즐거움이 이보다 더할 손가? 나무그늘에 모여앉아 주거니 받거니 한잔 술에 만단시름 잊어지고 솔향기 가득 담아 내장을 우려내면 십년은 젊어지는 박장대소라. 오늘도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고 가벼운 발걸음에 인생이 간다.
추풍에 낙엽 지는 광교산(582m)
시산 가을 산행
아름다운 멜로디가 귓전을 파고든다.
새벽잠 설치며 달려온 몸이라 곤하게 잠이든 사이 어느덧 지하철은 군포역을 지나고 전상열 시인의 반가운 음성에 마음이 후끈 달아오른다. 부산에서 포항에서 대전에서 원정을 오고 경향각지의 회원들이 모두모여 엊저녁부터 술 파티로 정담을 나누며 신선노름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자랑이 늘어진다.
화서역의 개찰구에는 주진하 시인, 문영호 시인, 라 용준 교수가 아들 재균이와 함께 일찍 도착하여 반갑게 맞아주고 잠시 후 정선에서 온 전 재옥 시인까지 합류하여 재회의 기쁨에 분위기는 절정을 이룬다. 전호영 부회장이 마중 나온 차편으로 해장국집으로 이동을 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반겨준다.
아침 시장 끼에는 뜨끈한 해장국이 제격인지라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수원이 자랑하는 장안문을 지나 광교산의 들머리를 찾아가면 우리 민속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항아리 화장실을 만나게 되는데 이외에도 반딧불이 화장실, 달맞이 화장실, 진달래 화장실, 다슬기 화장실 까지 지역 특성에 맞는 이름을 지어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면서도 멀리하고픈 곳을 친근감 있고 정겨운 쉼터로 만든 수원시민들의 자연사랑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단풍의 마지막 절정을 찾아 모여든 행락인파로 등산로 입구가 만원을 이루고 완만한 산등성이를 오르는 길목에는 주황색으로 갈아입은 갈참나무의 잎들이 소슬바람에 꽃비를 내린다. 입담좋은 신 익현 시인, 대전 토박이로 호탕한 웃음 속에 시한 수 풀어내면 온갖 시름 사라지고 千山을 넘어 금수강산 누비며 지구촌의 명산을 찾아 넘나드는 주유천하에 두주불사로 풍류를 즐기니 우리시산의 보물이 아닌가?
한때는 시산의 꽃동산에 모여드는 회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어 분기별로 문학지를 발행하며 전국의 명산을 순례하고 문학의 향기로 꽃을 피웠으나 순수한 문학의 동인들로 구성되어 외부의 재정지원이 없이 운영하는 사이 하나둘 자리를 뜨고 시산의 맥을 이어가는 20여명의 회원들이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는 사명감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분기별로 꼬박꼬박 문학지를 발행하여 타의 귀감이 되고 있으니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보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은 생명이라는 한철 약수터를 지나 오솔길을 오르면 갈림길마다 자연석에 그려진 이정표를 세워 산을 찾는 이들에게 포근한 정감을 안겨주고 심신이 피로한 도시인들이 잠시나마 자연의 품속에서 안주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흐뭇한 마음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담을 나누며 오른 헬기장, 지지대 고개에서 오르는 길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남쪽으로 수원시내의 정경이 펼쳐진다. 시인들이 가는 길에 어찌 술 한 잔이 없을 소냐. 복 분자에 매실주, 권하는 술잔 속에 마음은 하늘로 날아오르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발걸음에 풍악이 넘쳐난다. 만고강산 유람할 제 삼신산이 어디 메 뇨 ~
인생이 가는 길에 어찌 순탄한 길만 있겠는가? 헬기장을 지나며 가파른 비알길이 시작되고 통신대 정문을 지나며 시작되는 계단길이 수백으로 헤아리기 어려우니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苦盡甘來라. 백운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절경을 이루고 오늘도 정수리에 올랐다는 희열감으로 가슴속이 뜨겁게 용솟음친다. 오르고 내리고 수많은 발걸음을 비켜가며 올라선 광교산의 정상, 서해의 무인도에 천국을 이루는 괭이갈매기와 같이 많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뤄도 모두가 한마음, 마음을 비웠기에 얼굴에 화색이 돌고 오가는 인사에도 정감이 간다. 산이 있기에 순한 양이 되어 속세의 무거운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순진무구한 동안이 되어 破顔大笑를 한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 또한 일품으로, 북쪽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는 통신대 안테나가 장관을 이루는 백운산(567m)을 중심으로 바라산(428m)을 지나면 청계산(618m)과 관악산632m)이 맥을 이어가고 아늑한 분지마다 수도권의 도시들이 웅지를 틀고 남쪽으로 백만 인구의 수원성이 자리를 잡고 시민들의 안식처로 사랑을 받고 있다.
지방 자치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수원시에서 정상에 표지석을 세웠으나 금싸라기 땅이 된 광교산에 성남시에서 연고권을 주장하게 되었으니 수천 수 만년을 지나오며 산은 옛 모습 그대로인데 인간들의 욕심이 한이 없으니 애석하기 그지없고 연유는 잘 몰라도 정수리에 표지석 공사가 한창이니 다음에는 어떤 변화가 올지 지켜 볼일이다.
광교산의 지맥을 더듬어 본다면 백두대간이 속리산의 천황봉(1,508m)을 지나며 한남 금북정맥이 분기하여 말티고개, 선도산(547m), 상당산성, 좌구산(657m), 보현산(481m)을 지나 칠현산(516m)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갈라지며 한강과 금강을 나누는 분수령이 된다. 이곳에서 한강 유역과 경기 서해안 지역을 분계 하는 한남정맥이 칠현산 북쪽 2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칠장산(492m)에서 시작되어 백운산, 보개산, 수원의 광교산(582m), 안양 수리산(395m)을 넘어 김포평야의 낮은 등성이와 들판을 누비다 계양산(395m), 가현산(215m) 지나 강화도 앞 문수 산성에서 끝을 맺는다.
또한 금강의 북쪽 울타리인 금북정맥이 한남정맥과 헤어진 후 칠현산(516m), 안성 서운산, 천안 흑성산(519m), 아산 광덕산(699m), 청양 일월산(560m), 예산 수덕산(495m)을 지난다. 산줄기는 예산 가야산(678m)에서 멈칫거리다 성왕산(252m), 백화산(284m)를 거쳐 태안반도로 들어 반도의 끝자락인 안흥 진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시산회원들의 능력으로는 조금 버거운 산행으로 피곤한 기색들이지만 마음만은 개선장군처럼 활기가 넘치고 항아리 식당에서 시작되는 뒤풀이는 홍안의 소년들처럼 화색이 돌고 한잔씩 순배하는 불 소주의 화끈한 열기처럼 시산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며 불원천리 머나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부산의 정혜임 시인, 포항의 이용숙 부회장과 그 일행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2008년 시산의 가을 산행도 막을 내린다.
백두대간이 부는 바람 - 2 -
제1부 강원지역
1.향로봉(1.293m) - 진부령(529m) - 미시령(767m) / 34km
향로봉은 금강산 1만 2천 봉우리중의 하나로 인제, 고성, 간성의 3군 경계지역에 위치한 1,293m의 높은 고지로서 구름이 덮인 날이면 향로에 불을 피워놓은 형상이라 하여 향로봉으로 부르고 있으며 맑게 개인 날이면 금강산의 비로봉과 고성의 적벽강이 보이고 동해 해금강의 만경창파가 넘실거리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산이다. 사실 이곳은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민간인들이 갈수 없는 통제 구역이었지만 사전에 신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이곳은 최전방의 보루로써 조국의 수호를 다짐하는 을지 부대 장병들의 의지가 담겨있는 비석이 자리 잡고 살신성인의 귀감이 된 고 “김 칠섭 중령”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향로봉을 가는 길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게 된다. 남하하던 대간 길은 칠절봉(1,172m)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진부령에 이른다.
본격적인 대간 길의 시발점이 되는 진부령 스키장 뒤편으로 오르는 마산(1,051m)을 오르면 동해안으로 뻗어 내린 능선이 죽변봉(680m)을 거쳐 운봉산(286m)으로 이어진다. 대간 길은 동남방향의 너덜지대를 지나게 된다. 미시령이 개통되기 전에는 고성군에서 인제군으로 넘나들던 대간령(642m)에 이르게 되는데 고개 마루에는 말에 풀을 먹이던 마장 터와 주막거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1,204m의 신선봉에 오르면 동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남쪽으로 설악산의 전모가 펼쳐진다. 잠시 후 상봉(1,239m)을 지나 미시령에 도착하는데 이곳이 금강산과 설악산의 접경지역으로 향로봉과 마산, 신선봉이 금강산 1만 2천봉우리 중에 남한에 있는 3개의 봉우리로 부르고 있다.
2. 미시령(767m) - 한계령(917m) / 19.2km
국립공원 설악산을 지나는 구간으로 지금은 미시령에 터널이 개통되어 용대리에서 속초까지 시원하게 달리지만 구 도로를 따라 올라선 미시령,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황철령과 마등령구간은 휴식년제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으로 감시원들과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 지나는 대간 길이 대청봉까지는 내설악과 외설악을 아우르고 한계령까지 서북능선은 내설악과 남설악이 경계선을 이루는 설악의 대표적인 등줄기이다.
미시령에서 고도를 높이며 1,092봉 삼거리에 이르면 좌측으로 계조암과 울산바위(873m), 달마봉(635m)으로 연결되는 분기점으로 남으로 직진을 하면 대간길이 된다. 1,318봉에서부터 시작되는 너덜지대는 넌덜머리가 나도록 지루하고 험난한 구간으로 안개라도 끼는 날이면 길을 잃고 미아가 되기 십상이다. 내외설악에서 가장 높은 황철봉(1,381m)에 올라서면 미시령과 남한최대의 암릉인 울산바위 신흥사와 백담사 마등령과 대청봉등 설악 제일의 진풍경이 펼쳐진다.
깊고 깊은 협곡인 저항령은 백담계곡으로 이어지는 길골과 설악동 쪽의 저항령 계곡으로 오가는 길목이지만 휴식년제로 탈출로를 찾기에 어려움이 많은 곳이다. 나는 새도 넘지 못할 험준한 저항봉(1249m)에 올라서면 이곳 또한 설악산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조망터로 밤새워 걸어온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 마등령(1.326m)에 올라서면 넌 덜 머리 나도록 건각들을 괴롭히던 너덜지대도 끝이 나고 비선대와 오세암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기도하고 설악산의 대명사인 공룡능선의 시발점으로 건너편으로는 용아장성이 자리를 잡고 나한봉과 1.275봉을 지나 신선봉에 올라서면 지나온 공룡능선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외설악의 천불동계곡과 내설악의 가야동계곡의 분수령인 무너미 고개에는 휘운각 대피소가 있어 이곳에서 체력을 보강하고 대청봉을 향해 오르게 된다.
철 계단에서 진을 빼며 소청봉(1633m)에 오르면 소청산장 아래 봉정암이 자리 잡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1300m)곳에 위치한 절로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 중에 한곳이며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곳으로 용아장성이 시작되는 곳으로 구곡담 계곡과 수렴동 계곡, 백담사 계곡의 발원지이기도하다. 중청봉(1,676m)의 너른 분지에는 대청 대피소가 자리 잡고 있는데 지하 1층 지상2층의 목조 건물로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사전에 예약을 해야만 숙박이 가능하다. 1970년 전국에서 다섯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설악산의 정상인 대청봉(1708m)에 오르게 된다.
남한에서 한라산(1,050m), 지리산(1,0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대청봉에 오르면 내설악과 외설악 남설악과 점봉산의 모든 곳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일출과 운해는 대청봉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절경이고 동북쪽으로 갈라지는 화채능선은 화채봉(1,300m)에서 칠성봉(1,077m), 집선봉을 거쳐 권금성에 이르러 토왕성 폭포를 빗어 놓고 케불카로 많은 관광객들이 설악산의 천하 절경을 즐긴다.
대간 길은 중청봉으로 되 내려와 끝 청봉(1,604m)에서 서북능선을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이곳 또한 내설악과 남설악이 경계를 이루는 능선으로 한계령에서 내려오는 아흔아홉 구비를 손금 들여다보듯 전망이 좋은 곳으로 우리의 가슴속을 시원하게 쓸어내리고 1,459봉을 지나 4시간 만에 한계령 갈림길에 이르면 대간 길은 남쪽으로 한계령에 이른다. 직진하는 서북능선은 귀때기 청봉(1,577m)과 1,408봉을 지나 대승령(1,210m)에 이르러 남쪽으로는 장수대로 향하는 길목이고 우리나라 삼대 폭포중의 하나인(금강산의 구룡연폭포, 개성의 박연폭포) 대승령 폭포가 있는 곳이다. 안부에서 북쪽으로는 흑선동 계곡으로 들어가 백담사로 가는 길이고 서북능선을 계속 따르면 안산(1,430m)과 십이 선녀탕을 지나 남교리에 이른다.
3,한계령(917m) - 구룡령(1,023m) / 45.2km
한계령은 설악산을 관통하는 고개(진부령, 미시령)중에서도 교통량이 가장 많고 아름다운 절경으로 인제군에서 양양으로 오가는 관문으로, 설악산을 오르는 들머리로 사시사철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제 대간 길은 남설악으로 들어서며 필례약수 가는 도로의 절개지를 치고 남진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또 하나 서쪽으로 뻗어 내린 가리능선은 필례령(1,082m)을 지나며 날카로운 암 봉들이 병풍처럼 치솟아 전문가들이 아니면 오르기 어려운 코스로 가리봉(1,519m), 주걱봉(1,472m), 삼형제봉(1,225m)까지 아슬아슬한 구간의 연속으로 건너편의 서북능선이 시야에 가득하다.
대간 길은 공룡능선, 용아장성에 버금가는 암릉 들이 앞길을 가로막고 망대암산(1,236m)에 오르면 동쪽으로 남설악의 주전골과 오색약수가 자리 잡고 있다. 설악산에서도 단풍으로는 주전골이 으뜸이라 그 옛날 엽전을 주조했던 곳이라 주전골로 불리는 이곳은 인적이 드믄 후미진 곳이었다. 남설악의 주봉인 점봉산(1,424m)은 설악산과는 대조적으로 거대한 육산으로 갖가지 식물들의 보고로 약초와 산나물의 채취로 유명하고 한 여름이면 야생화의 단지로 명성이 높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작은 점봉산(,1295m )과 가칠봉(1,164m)에 이른다. 다시 대간 길은 정상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단목령(920m)까지 직진을 하는데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주전골로 내려서게 되고 남쪽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궁벽한 하늘아래 첫 동네인 진동리에 이른다.
354.6㎢의 설악산 국립공원도 끝이 나고 북암령(940m)을 지나 잠시 후엔 양수발전소의 상류에 도착하게 된다. 강원도 오지의 대간 길은 사방을 둘러봐도 첩첩산중이요 멧돼지들의 천국으로 조침령(약 780m)의 이정표가 있는 고개 마루에 도착하면 양양군 서면 서림리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를 넘는 험한 길이지만 이제는 새로 관통된 터널로 418번 지방도가 국도로 승격이 되었으니 13년 전 이곳을 지나며 진동리의 나무꾼과 선녀의 간판이 있는 팬션에서 새우잠을 잔 기억이 생생하다.
한계령까지 23km, 구룡령까지 22km가 되니 이번구간의 절반이 되는 조침령 고개 마루를 지나면 특별히 어려운 코스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오지답게 굽이치는 대간 길은 울창한 활엽수림에 하늘마저 가리고 답답한 마음을 진정하며 50여분을 진행하면 쇠나들이 고개(구 조침령 고개)에 이르고 다시 1시간거리에 연가리골 샘터(1080m), 1시간 30분간 지루한 길을 이어가면 왕승골 안부에 이른다. 지루한 오르내림이 이어지는 가운데 구룡령을 내려온 56번 국도가 깊고 깊은 계곡을 파고들며 양양쪽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갈전곡봉(1,201m)에 이르게 된다.
갈전곡봉의 정상 또한 울창한 수림에 싸여 시야가 제로이지만 대간을 지나오며 피로한 몸을 쉬어가기에는 좋은 휴식처이다. 하지만 리본이 많이 붙어있는 곳으로 직진을 하면 가칠봉(1,240m)을 거쳐 응복산(1,155m)에서 서쪽으로 구룡덕봉(1,388m)에 이르고 이곳에서 방태산(1,443m)과 개인산(1,341m)이 갈라지며 내린 천이 굽이치는 상류지점으로 그 유명한 개인약수가 있는 곳이다. 정상에서 좌측으로 이어나가는 대간 길은 구룡령 옛길을 지나 1시간 만에 구룡령에 도착하게 된다.
갈전곡봉에서 50여분이면 구룡령 옛길의 정수리에 도착한다. 양양군 서면 갈천리와 홍천군 내면 명개리를 연결하는 구룡령 옛길은 진부령과 미시령, 한계령보다 비교적 평탄해 양양과 고성지방 사람들의 한양 나들이 길로 많이 이용을 하였다고 한다. 수백 년 넘게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아름다운 전설이 깃든 이곳을 옛길로는 전국 최초로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을 했다고 하니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안내 간판을 보면 양양 쪽으로 듣기에도 생소한 지명들이 있으니 옛 문헌에 의하면 옛날 상여꾼들이 장례식을 치르면서 나무뿌리가 관을 뚫지 못하도록 뿌렸던 횟가루를 채취하던 「횟돌 반쟁이」를 비롯하여 200-300년 된 금강송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솔 반쟁이」는 경복궁 복원에 사용된 사례가 있어 지어진 이름이고 「묘 반쟁이」는 옛날 조선시대 양양과 홍천의 경계가 애매하던 시절, 당시 고을 원님들이 서로 만나 경계를 정하기로 하고 젊고 발이 빠른 젊은이를 대동했는데 양양의 청년이 빠르게 달려 홍천군 명계리에서 만나 그곳을 경계로 하였지만 돌아가는 길에 청년이 죽자 그 공덕을 기려 묘를 만든 곳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