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죽여주는 다락능선

김완묵 2008. 10. 6. 11:50

죽여주는 다락능선(도봉산)

2008년 10월 2일

 


망월사역에서 시작하는 산행 길에는 오른쪽으로 산악인 엄홍길의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1960년 9월 14일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엄홍길은 167cm의 키에 66kg의 아담한 체구로, 世界의 高峰 히말라야의 8,000m 가 넘는 14좌를 세계에서 8번째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등정한 山岳人이다.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사나이 엄홍길의 발자취를 한곳에 모아 놓은 전시장. 호원동 사무소로 사용하던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아담한 이층 건물이다.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서울외곽 순환 고속도로가 지나는 다리 밑에서 오른쪽은 망월사가는 길이고 왼쪽이 다락능선 오르는 들머리가 된다. 된 비알 포장 길을 따라 주차장에 올라서면 북한산 국립공원 안내간판이 반겨준다.

 

 


포장 길도 끝이나고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평소에도 사람들의 발 길이 뜸한 곳이지만, 오늘따라 오가는 사람도 없이 적적한 산 길에 나뭇잎 스치는 바람소리와 싱그러운 풀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십여 년 전만해도 새벽마다 약수를 떠 나르던 곳이라 바위하나 풀한 포기까지도 훤히 꿰둘러 볼 수있는 낯익은 길이다. 하지만 장거리 산행에 맛을들인 뒤로 발걸음이 뜸하다가, 이제야 근교산행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으니 나이 탓이 아닌가 싶다.

 

 


계절을 잊은 듯 무더운 찜통더위가 식을 줄 모르더니, 10월 들어서도 한낮의 기온이 25도를 오르내린다.  알알이 영글어가는 결실의 계절이 풍년을 기약하며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울창한 수림속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거친 숨을 몰아쉬면 심원사의 산문이 반겨준다.

 

비좁은 산 기슭에 터를 잡은 심원사는 십 오년 전,  수도권 신도들이 해인사 길상사까지 기도하러 오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기 위해 동광당 명진 대선사께서 이곳에 산문을 열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심원사를 뒤로하고 주능선에 올라서면 본격적인 다락능선이 시작된다. 집 채 만 한 바위들이 앞 길을 가로막고 수 십 길 벼랑을 오르내리는 다락능선은 만만한 코스가 아니다. 도봉산에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능선들이 많은탓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통천문을 비롯하여 숨은 비경을 타고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울외곽 고속도로의 상징인 수락산 광폭터널속으로 차량들이 시원스럽게 빨려 들어간다. 이리저리 암봉을 피해 벼랑을 올라서면, 전망이 툭 터지는 바위위에 올라선다. 건너편으로 수락산의 연봉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의정부 신시가지의 아파트들이 아침 햇살에 장관이다. 포대 능선아래 망월사가 천년세월 터를 잡고, 치마바위 벼랑 아래로 푸른 숲이 바다를 이룬다.

 

 

                                                  의정부시의 평화로운 모습

 

 

 

                                                   메마른 박토위에 고추밭


망월사가 바라보이는 바위아래 한 뼘은 됨직한 좁은 공터에 고추를 심은 그가 누구인가.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 물을 주는 정성으로 삼복더위를 견디었으니 앙증맞은 열매속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음미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벼랑끝에서 모진 생명을 이어가는 소나무를 바라보며 생명의 고귀함을 느낀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이 모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오늘 아침 우리는 너무도 큰 충격앞에 말문이 막히고 만다. 온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톱스타(최 진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니.  말 못할 사연이 얼마나 많았기에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하고 소중한 목숨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는데, 무슨 한이 그렇게도 많았는지. 생명을 경시하는 시회풍조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혼돈의 세계가 도래하고 있으니 종말이 가까워 왔음인가.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생명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될일이다.

 

 

 

 

 


뉴스의 끝자락이 머릿속을 맴돌며, 불편한 심기로 느릿느릿 발걸음을 이어간다. 층층계단을 지나면 도봉공원에서 올라오는 안부와 만나 수직단애를 이룬 깔딱고개에서 한 바탕 비지땀을 흘린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도봉산의 주봉이 늠름한 자태로 반겨주고, 도봉동과 상계동, 의정부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별천지에서 산을 오른 보람으로 마음이 한껒 부풀어 오른다.

 

주봉까지는 1.3km. 아슬아슬한 클라이밍 지대가 앞 길을 가로막고, 영 자신이 없는지 老 山客이 쓸쓸이 걸음을 되돌린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현장이다. 내 나이 육십대 중반을 넘고보니 남의 일이라고 지나치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성들여 만든 나무계단을 지나면, 자운봉과 만장봉이 우리의 곁으로 슬며시 다가오고 바위를 넘나들며 노송의 그늘 속을 비집고 올라선다. 마들 평야에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와 광활하게 펼쳐지는 건물들이 수도서울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  저 많은 집의 주인이 누구일까.

 

 

 

 

 

 

 


푸른 숲이 바다를 이루는 북한산. 국립공원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행운이요. 소중한 자산이다. 天高馬肥의 청명한 가을 날씨를 골라 산을 찾아오니 만단시름이 봄눈녹듯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다.  사람이 하루에 만 번의 숨을 쉬고 5.4kl의 산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도심속에서 찌든 심신을 달래주고 허파를 정화시켜주는 산이야 말로 건강을 지켜주는 산소 공장이다. 

 

 

 

 

  

 


도봉공원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지나면 본격적인 암능 지대가 펼쳐지고, 수 십 길 협곡사이로 가냘픈 쑥부쟁이가 수줍은 미소로 유혹을 한다. 하지만 수 십길 벼랑끝에서 손끝이 오그라붙고 간담이 서늘한데, 어찌 곁눈질인듯  함부로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가까스로 안부에 올라서면 또 다시 아슬아슬한 슬랩이 미소짓는다.

 

                                                    포대능선의 연봉들

 

 

 

 

 

 

 

 

수 많은 발자국에 윤기나는 바위들, 외통수 길에서 허공중에 몸을 내 맡긴다. 삼각점이 반겨주는 벙커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는 조망은 苦盡甘來 珍秀로다. 자운봉(740m), 만장봉(718m), 선인봉(708m)이 첨봉을 이룬 벼랑길에 한 자락 구름이라도 걸친다면 선경이 따로 없다. 하얀 속살을 드러낸 화강암과 어우러진 노송이 산수화를 그려내고, 건너편의 선인봉에서 사자후를 토하는 젊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도봉산이 자랑하는 Z형 협곡.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현기증이 나는 아슬아슬한 장애물 코스다.  바위에 박힌 쇠 말뚝이 수 십만번의 마찰로 반질반질 윤기가 나고, 발 한번 잘못디디면 천길 벼랑이 곧바로 천당 길이다.  날카로운 비수 위를 걸어가듯 천야만야 아득한 벼랑 위에서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동아줄에 몸을 내 맡기고, 도봉주릉을 타고 오를 때 저려오는 오금을 어찌 피할 수 잇단 말인가? 살얼음 위를 걸어가듯 협곡을 통과하며 뒤돌아보면 섬뜩하고 아찔하기 그지없다.

 

 

 

                                                   포대능선 너머로 사패산

 

 


긴 한숨과 어려운 고비. 장애물을 통과했다는 자부심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희말라야의 고봉에라도 오른듯 신바람이 난다.  또 한구비 아슬아슬한 신선대의 벼랑 길이 인파로 장사진을 이룬다. 피하고 싶은  암릉 길이지만 오늘이 아니면 영영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대열에 합류한다. 반질 반질 윤기나는 절벽에서 신경이 곤두선다. 정상에 올라서면 일반등산객이 올라올 수 있는 가장 높은 신선대(725m) 전망대라.

 

 

 

 

 

 

 

귓 볼을 스치는 바람마져도 서늘하고 아슬아슬하게 솟아오른 벼랑위에 올라서면, 삼라만상의 모든 사물들이 발아래 읍조린다. 저 멀리 남쪽으로 오봉과 우이암을 지나면 인수봉(810m)과 백운대(837m) 망경대(799m)가 불꽃을 피우고 200여 km를 달려온 한북정맥이 상장봉(534m)을 지나 노고산(496m)으로 치닫는다. 

 

 

 

 

 

 

 

 

 


손에 잡힐 듯 자운봉이 지척이라.  산을 오르는 즐거움이 이보다 더할 손가? 나무그늘에 앉아 주거니 받거니 한잔 술에 만단시름도 잊혀지고, 솔향기 가득 담아 내장을 우려내면 십년은 젊어지는 박장대소라. 오늘도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고 가벼운 하산 길에 인생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