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속의 한강 아름다워라
우산속의 한강 아름다워라.
-의정부의 고수부지에서 한강대교까지-
제주에서 시작한 비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지리산 무박산행도 수포로 돌아가고 먼동이 터 오는 이른 아침. 베란다에 나와 보니 도봉산에 걸린 구름이 비를 흠뻑 머금고 하염없이 내리는 빗속에 돌덩이 하나 가슴에 올려놓은 듯 답답하기만 하다.
침대에 누워 게으름을 피워보지만 천성이 부지런한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 일어났다 앉았다 몸 둘 바를 모르다가 모처럼 맞은 휴일을 무료하게 보낼 수 가 없다는 생각에 산책삼아 우산을 받쳐 들고 고수부지로 내려선다.
사람들로 붐비던 자전거 전용도로도 굳은 날씨 탓으로 인적도 없이 고요한 정적만이 흐른다. 게으른 사람 낮잠 자기 좋을 만큼 차분하게 내리는 빗속을 하염없이 걸어가며 의정부시에서 표시한 거리에 흥미를 느끼며 그 시작이 어디인지 호기심이 든다.
지금은 말끔하게 단장된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오르면 이문동과 석관동, 망우리에는 연탄을 찍어내는 공장들이 밀집되어 분진가루와 함께 석탄더미가 산을 이루어 사람이 살기에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나마 중랑천 제방아래 판자촌은 여름 장마철만 되면 물난리를 겪던 곳이었는데 연탄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고 시가지가 정비되어 살기 좋은 동리로 변모되었으니 격세지감이 든다.
15km지점인 중랑교를 지나며 고수부지위로 피어나는 코스모스 꽃길이 발걸음에 활력을 불어 넣으며 장안교, 장평교를 지나며 강남의 무역센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18km지점인 군자교를 지나며 강 하구에 조성된 갈대숲이 세찬 비바람에 멋진 춤사위로 장관을 이루는데, 동부간선도로가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낮은 다리 밑을 지나는곳이 의정부에서 출발한 마라톤의 반환점이기도하다.
장안평에서 시작하는 제방 도로가 의정부에서 23km. 집 앞에서 21.8km지점이다.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3시간 40분동안 빗속을 걸어온 보람으로 마냥 즐겁기만 하다. 2년 전 이곳을 왔을 때는 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 없었는데 그동안 도로 밑으로 터널을 만들어 한양대 앞으로 연결된다.
의정부까지 되돌아가기에는 체력이나 시간상으로 감당하기가 어렵고 탈출로를 생각하다보니 한양대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수월하다는 생각에 새로 개통된 전용도로를 따라 청계천을 가로질러 고수부지에 도착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도 축구경기에 여념이 없는 젊은 함성에 고무되어 살곶이 다리를 지나 성동교 아래서 마음이 바뀐다.
불현듯 한강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발걸음은 양궁장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붉은 빛 토해내며 탐스럽게 피어나는 칸나의 꽃길을 지나 용비교아래서 뚝섬과 한강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을 만난다.
현재 시각이 오후 1시40분. 저녁 모임을 감안하면 3시까지는 여유가 있어 8km거리에 있는 한강대교까지 갈수 있겠다는 욕심이 든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강 건너 빌딩들이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잠실 나루터.......“桑田이 碧海”로 변한 한강의 기적을 바라보며 동호대교를 지난다. 국토의 대 동맥을 이어주는 한남대교를 지나고 반포대교를 지나 한강대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며 완주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새로운 용기를 갖는다.
도도히 흐르는 한강은 무한히 넓은 가슴으로 우리를 포용하고 동작대교 건너 순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묘지의 울창한 숲이 더욱 푸르게 보이는 것은 우리의 뻗어나가는 기상이요. 한강변으로 솟아오르는 빌딩들이 우리의 번영을 상징하는 표상이니 나의 발걸음도 그곳을 향하여 멈출 줄을 모른다.
드디어 거북선이 정박해 있는 이촌 지구에 도착하여 시원한 맥주로 갈증을 달래고 63빌딩의 황금빛 손짓 따라 한강대교 계단을 오르며 09시 20분부터 시작한 33km의 종주 길도 5시간 40분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