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호 - (양천 문단)
정선지맥의 곁가지인 노목 지맥을 가다
노목산(1,148m)
산행일시: 2007년 6월 산행시간: 6시간
산행거리: 약 11km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개 요: 정선지맥(금대지맥, 노목지맥)은 남한강의 지류인 골지천과 어천이 정선으로 흘러들어 동강을 이루며 골지천은 금대봉 아래 검룡소에서 발원하고, 어천 역시 금대봉 부근의 백전리 마당목에 있는 용소에서 발원한다. 두 강의 발원지를 품은 금대봉은 두 강의 물을 몰아주기위해 힘찬 맥을 만들어 주니 이 맥이 금대지맥이다. 이 금대 지맥은 금대봉 바로 앞의 1,348봉에서 다시 어천과 지장천의 경계를 이루는 노목 지맥을 분기 시킨다. 두 지맥을 합해 정선지맥이라 부르며 도상거리 95km에 이르는 장대한 맥으로 고양산(1.150m), 문래산(1.082m), 각희산(1.083m), 삼봉산(1.234m), 대덕산(1,307m), 금대봉(10418m), 노목산(1.148m), 지억산(1.116m), 서운산(950m), 기우산(869m), 조양산(640m)으로 연결이 된다.
잊을 만하면 만나게 되는 화요 맥의 동지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아쉬운 그들에게서 진정한 우정을 느끼며 사업에 매인 몸이라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장을 비롯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60 -70대의 노익장으로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전국 오지의 산하를 누비며 여생을 즐기는 그 분들이야 말로 우리들이 갈망하는 선망의 대상이 아닌가?
영춘지맥을 시작으로 계방지맥, 진양지맥, 수도지맥을 두루 섭렵하고 정선지맥을 더듬고 있는 발길이 오늘은 노목지맥을 시작하는 날이다. 앞의 개요에서도 언급한 대로 백두대간 줄기에 있는 금대봉의 바로 앞의 1,348봉을 시발점으로 해야 하지만 싸리재 구간이 휴식년제로 접근을 할 수가 없어 소 두문동을 들머리로 산행이 시작된다.
두문동은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며 고려의 유신들을 등용하려 했으나 72현의 충신들이 不事二君(불사이군)의 지조를 지키며 송악산의 두문동에 숨어들어 세상을 등지고 살게 되니 화가 난 이성계가 은거지에 불을 질러 모두 태워 죽이는 와중에 전오륜 등 7인이 강원도 정선의 서운산에 들어와 망국의 한을 씹으며 세상을 등지고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杜門不出(두문불출)이란 말도 이때부터 생겨나고 그들이 숨어든 곳을 두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첩첩산중 오지마을도 변화의 바람을 타고 강원 랜드의 카지노가 들어서며 협소한 계곡을 깍고 다듬어 현대식 빌딩들이 들어서고 백운산 자락에는 골프장과 스키장이 조성되며 종합레저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니 80년대의 폐광으로 불어오던 찬바람이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른다.
두문동재 못 미쳐 좌측으로 산 비알을 기어올라 작은 계곡을 들어서면 마을 입구에 수 백 년 된 떡갈나무가 수호신으로 자리를 잡고 가파른 경사지에는 고랭지 채소밭에 배추갈이가 한창이다. (10시 55분) 마을 앞을 가로 질러 고랭지 채소밭이 끝나는 지점에 좌측으로 화물차 한 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의 계곡이 들머리가 되어 200여 m를 진행하면 합수머리 갈림길이 나타나고 일부는 좌측으로 나머지는 우측으로 들어선다.
울창한 낙엽송 숲길을 뚫고 20여 분간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주능선의 안부에 도착한다. 고도 1,200m라면 수도권에서는 용문산보다도 높은 곳이지만 출발지가 900m를 넘다보니 싱겁기도 하고 덤으로 거저 얻은 듯 기분이 마냥 좋아진다. 안부에서 물 한 모금씩 마신다음 지난주에 금대봉에서 두문동으로 내려오며 알바를 한 10여명은 마루 금을 잇는다며 우측의1,304봉으로 향하고 나머지는 류민형 회장을 앞세우고 좌측의 능선을 따라 마루 금을 밟는다.( 11시 20분)
하늘을 가리는 낙엽송 아래로 산죽 밭이 질펀하게 펼쳐지고 희미한 족적은 나물꾼들의 흔적인가? 끊어질듯 이어지는 산죽속의 지맥을 찾아 신기에 가까운 독도로 정확하게 목적지를 찾아가는 류 회장이 신비스럽기도 하고 경이롭기만 하다. 왼손은 내 몸이 아니라며 손바닥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놓는 법이 없이 거리와 속도를 일정하게 진행하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사물까지도 체크를 하고 현재의 위치와 가야할 방향을 수시로 확인을 한다.
우측으로는 대덕산(1,307m)과 우암산(1,346m)이 우리의 행보에 표준점이 되고 좌측으로는 1,446m의 두위봉과 1,426봉의 백운산 자락에 건설되고 있는 스키장의 슬로프가 눈길을 끈다. 오늘의 산행이 무성한 숲의 연속으로 답답하고 지루한 곳이지만, 이런 곳에서는 독도의 묘미를 만끽하는 즐거움을 터득해야 한다는 류 회장의 주장에 수긍을 하면서 지금까지 앞 사람만 바라보며 따라 다니는 산행으로 알바를 수 없이 하게 된 연유를 되돌아보며 반성 또 반성을 하게 된다.
1,170봉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1,110봉을 지나 1,114봉의 밀림 속에서 점심 자리를 편다.(12시 35분) 십 분간의 행동 식으로 시장 끼를 면하고 990봉을 내려서는 길목에는 오늘의 산행 길에서 유일한 암릉의 연속으로 겹겹이 쌓인 낙엽의 부엽토아래 숨겨진 너럭바위는 흠뻑 젖은 습기로 미끄럽고 급경사 벼랑은 낙석의 위험으로 앞 사람과의 간격을 멀리해야하며 오금이 저리도록 아슬아슬한 구간을 통과한다.
지도상에서는 완만한 분지를 자나는 것으로 표시가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2개의 무명봉을 넘은 후에야 고랭지 채소밭이 펼쳐지는 개활지가 990고지의 안부가 된다. 3 -40도의 가파른 비알에 돌 자갈이 앙상한 고냉지 채소밭. 사람이 서 있기도 힘든 경사지에 쟁기질은 어찌하며 척박해 보이는 비탈 밭에 파종된 씨앗이 자란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한데, 공기 좋은 무공해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배추가 우리네 밥상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아직도 대덕산은 우리의 곁을 떠날 줄 모르고 내려온 만큼 올라가야하는 1,120봉은 급경사를 이루는데 산초가시와 엄나무 산딸기와 한바탕 전쟁을 치루며 밀림 속을 뚫고 올라서면 북사면을 간벌하여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강원도 오지의 산들이 첩첩이 물결치며 금대 지맥의 연봉들이 파노라마를 이룬다.
이곳에서 십여 분간 땀을 들이며 류회장의 강의가 펼쳐진다. 그의 지도에는 등고선의 높이에 따라 칼라 펜으로 색을 표시하므로 지형의 높낮이를 한 눈에 식별할 수 있는 편리함과 진행하는 방향의 산세를 판독하기 쉽다는 장점으로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며 열심히 찍어대는 사진은 본인이 모르는 산이라도 집에서 편집하는 과정에서 복기를 하므로 다음산행에서 해박한 지식의 자료가 된다고 한다.
북쪽을 향하던 우리의 발길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자세를 바꾸고 발자취도 없는 밀림 속을 헤치며 삼각점이 있는 1.089봉에 오른다. (14시) 442 재설 **7 건설부 로 명명됨 강원도 오지중의 오지에는 그 흔한 리본하나 보이지 않고 산돼지들도 서식지가 불편한지 흔적 조차 찾을 길 없는 밀림 속에 포로가 되어 길섶에 자리를 잡고 갈증을 달래며 류 회장을 기다리는 것이 최 상책이 아닌가? 수 십 년의 산행 길에 자신만만하던 기백은 어디로 가고 풀죽은 모습으로 개척 산행의 어려움을 실감하며 자성하고 반성한다.
다시 류 회장과 합류하여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 많은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970봉을 내려서면 노나무재를 지나는 차량들의 소음소리가 지척에서 들리고 서남쪽의 개활지에서 두위봉과 백운산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이동통신 안테나를 지나 철조망을 끼고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노나무재에 이르고 커다란 돌비석은 심한 매연으로 검게 그 슬려 보기에 안쓰럽기만 하다.(14시 55분)
삼척시 하장면에서 사북읍으로 넘나드는 노나무재는 2차선으로 포장된 지방도로이지만 차량의 왕래가 한적한 곳으로 서쪽의 절개치를 치고 올라 10여 분간 진행하면 900고지에 이르고 간벌한 사이로 북사면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으로 답답하기만 하던 가슴이 툭 트인다. 서북쪽으로는 우리가 올라야할 무명봉이 기를 죽이고 노목산은 좌측으로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부터 오늘의 산행 중에 가장 힘이든 구간에서 진땀을 흘리며 스틱의 용도가 절실하게 실감나는 행보로 무명봉의 정상에 올랐지만 아무런 표시도 없고, 1,000m가 넘는 안부에서 오르고 내림의 기복도 완만하고 노나무 재에서 올라오는 산악회의 리본들이 길잡이가 되어준다. 억새풀이 웃자란 무덤가를 지나 20여 분만에 노목산의 정수리에 올라선다. (16시)
버려진 헬기장 인 듯. 폭염이 내려 쪼이는 정상은 싸리나무가 무성하고 정상석은 없지만 삼각점이 외롭게 졸고 있다. (303 재설 . 776건설부) 무더운 날씨 속에 5시간의 산행이 무리였던지 모두 후줄근하게 늘어져 그늘 속으로 들어선다. 이럴 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감로주는 당연히 막걸리가 아닌가? 어려운 고비 고비 넘나들며 걸머지고 온 막걸리를 표주박으로 한 모금씩 돌아가는 작은 양이지만 갈증에 지친 이들에게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활력소가 아닌가?
정상 다음으로는 내려가는 길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1,070봉까지는 평지를 걷듯 휴식시간이나 진배없이 널널하게 걸어가며 웃음꽃을 피운다. 이제 남은 구간은 옥실 차도까지 급경사 내리막길. 하늘도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속에서 잠시 우왕좌왕하다가 9시30분 방향으로 살짝 틀어 곤두박질치며 고도를 낮추면 등산화의 코가 통증으로 아려오고 하지의 기나긴 해가 중천에 떠있는 오후 5시 옥실차도에 내려서며 산행도 끝이 나고 다음 구간의 시발점인 절개지를 확인하고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직진리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파종도 하지 않은 고랭지 채소밭에 소독약부터 살포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채소는 무공해라는 말이 실종 된지 오래 전이 아닌가?
동강난 마루 금엔 새 역사가 시작되고
소재지 : 인천시 -계양구 서구 산행거리: 약 13km
마른장마 다 지나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릴 휴가철이 한창인데 게릴라성 호우가 일주일 넘게 전국을 강타하며 계곡의 행락객을 몰아내는데 산을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행복한 고민 속에 가보고 후회하는 것이 나을 듯싶어 한남정맥의 종주구간으로 계양산에서 대곶까지 22km에 도전장을 내민다.
어두운 장막을 헤치고 찾아간 지하철 1호선 인천 가는 첫차가 5시 3분으로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부족한 잠을 청하는 이른 새벽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회룡역에서 부평역 까지는 1시간 30분 늘어지게 잠을 자도 넉넉한 거리라 선반위에 배낭을 모셔놓고 팔걸이가 있는 가장자리에 기대어 꿈속으로 빠져든다.
한강 철교 위를 달리는 굉음소리에 놀라 눈을 떠보니 먹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이 한줄기 빛이 되어 가슴속을 녹여주고 인천지하철로 환승을 하여 보름 전에 다녀간 계산역에 내린다. 아직은 마음을 놓을 처지가 아니라 배낭에 카바를 씌우고 방수 등산화에 스피치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4번 출구로 올라서니 아니나 다를까 비라도 한 줄금 하려는 듯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장명이 고개로 향하는 6차선 도로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고 10여분 후 길 양쪽으로 S K 주유소가 마주보고 있는 곳을 지나면 건너편으로 지난번에 올랐던 중구봉이 바라보이고 횡단보도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계양산 들머리가 시작된다.
이곳은 보름 전에 다녀온 곳이라 더욱 정감이 가는데 지난번에 달아놓은 리본이 반색을 하고 중간 중간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나지만 산허리를 돌고 돌아 목상동 안부에 도착하니 8시. 이제부터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길목으로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며 전의를 가다듬고 있는데 공평동에서 올라오는 아주머니 4명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고압철탑이 있는 오르막길로 발걸음을 이어간다.
무명 봉에 올라 갈림길에서 좌측의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기다란 로프가 매여 있고 잠시 후 안부에 도착하면 좌측으로 사유림 펜스가 있어 함께 동행을 하게 되는데 216봉 오르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시작이 되어 로프를 잡고 오르면 우측의 능선을 따라 1분후에 너른 헬기장이 있는 피고개 산 정상에 이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가히 장관으로 계양산이 지척에 바라보이고 남쪽으로 공평동이 서쪽으로 검암동. 북쪽으로 백석의 너른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직진방향으로 1분후에는 깃 대봉이 있는 무명 봉에서 우측의 소로 길이 마루 금으로 이어지는데 잠시라도 방심을 하면 마루 금에서 벗어나게 되는 곳이라 사면 길을 치고 내려서면 고압철탑을 만나고 잠시 후 군부대 훈련장과 통제소의 전망대를 지나 펜스를 끼고 진행을 하게 된다. 군부대 후문을 지나서도 한동안 펜스를 따라가다 안부에 내려서면 요란한 맹견들의 울부짖음에 지레 겁을 먹고 좌측으로 리본을 따라 마루 금을 내딛는다.
한 여름이 다 가도록 오간 사람이 없는지 무성한 잡초 속에 산딸기와 산초나무에 비수 같은 억새풀이 앞을 가리고 풀숲에 맺혀있는 빗물이 바짓가랑이를 휘감고 30도가 넘는 열기로 줄줄 흐르는 땀과 빗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물에 빠진 생쥐처럼 열탕 속에서 곤욕을 치루며 가파른 비알 길을 기어오른다.
10여 분간 정글 속을 헤치며 올라선 133봉.
군에서 토치카를 설치하고 흙으로 덮은 곳이라 전망 또한 일품으로 허기지고 지친 몸을 추 수리며 간식과 함께 물을 마시며 10분간 휴식을 한 다음 우측의 사면길로 내려서면 편안한 산길이 열리고 안부에서 좌측으로 낮은 봉우리에 올라서게 되는데 별 특징이 없는 꽃 메산 정상에 이른다. 송림 속을 헤치듯 무명봉을 살짝 넘으면 차량들의 경적소리와 함께 높다란 절개지위로 올라서고 시원하게 펼쳐지는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와 지하철, 경인운하까지 민족의 대역사가 펼쳐지는 관문으로 차량들이 거침없이 내달리고 한남정맥의 마루금도 두 동강으로 잘리고 만다.
선 답 자들의 가르침대로 좌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절개지위로 길이 열리고 빗물받이 홈통을 따라 5분여 진행하면 고속도로로 내려서는 가파른 철 계단이 나타난다. 신나게 질주하는 고속도로의 차량들과 지하철의 만남은 지구촌으로 향하는 우리의 의지를 불태우고 머지않아 운하가 완공된다면 또 하나의 명물로 우리의 자부심과 긍지를 높여주는 환상의 하이웨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부푼 꿈을 키워본다.
30m의 철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는 양쪽으로 펜스가 처 있고 2m 가 넘는 수직 옹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유일한 통로를 벗어날 길이 없어 어찌어찌하여 내려선 곳은 지하철의 선로 위가 된다. 선 답 자들이 고속도로 뚝 방 길이라고 알려준 곳에는 레일이 깔려있고 1m 남짓한 사이를 두고 복공판위를 걸어 우측으로 걸어가야 하지만 3분마다 지나치는 지하철이 경적 음을 울리며 위험 신호를 보내는데 절개지 쪽으로는 야생동물의 출현을 막기 위함인지 펜스가 끝없이 이어지고 건너편으로는 고속도로가 질주하고 있으니 위험을 감수하며 사지를 탈출하기위한 몸부림이 시작된다.
1km가 넘는 선로 위를 지나는 15분간이 그렇게도 길수가 없고 고속도로 밑으로 빠지는 목상교에 도착했지만 우측의 펜스는 끝날 줄을 모르고 고속도로와 지하철의 중간에 토사가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돌덩이로 계단을 쌓고 가시 철망으로 얽어맨 비상구에 올라섰지만 5m 가 넘는 절벽위에서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키며 밑으로는 공사 차량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한심하고 막막한 현실 앞에서 달리 탈출로가 없으니 위험천만한 유격훈련으로 가시 철망에 매달려 갖은 고생 끝에 바닥에 내려서고 보니 사지에서 탈출했다는 해방감 보다는 마루 금이 상실된 위험한 지역을 꼭 통과 해야만 하는지 종주의 사명감이 한낱 부질없다는 생각이 앞선다.
앞으로 이곳을 지나갈 후 답 자 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절개지위에서 곧바로 우측으로 진행을 해야 하며 무조건 철길로는 내려서지 말고 능선을 따르다 보면 목상동에서 나오는 포장도로를 만나게 되고 수월하게 목상교를 통과하리라 확신을 한다.
35도를 육박하는 가마솥더위에 바람마저 숨을 죽이는 굴 포천 가교.
물에 빠진 생쥐처럼 땀에 흠뻑 절은 몸으로 덤프트럭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공사장을 피해 둑실 마을 삼거리에서 좌측의 2차선 도로를 따라 무거운 발길을 옮긴다. 건너다보이는 계양산은 인천의 진산답게 2시간 반을 지나왔어도 지척으로 바라보이고 마루금 또한 직선거리로는 7-8분이면 통과할 거리를 40여분이나 고생고생하며 지나왔으니 진이 다 빠진다. 10분후 둑실 마을의 입간판이 서있는 갈림길에 도착하며 이제 마루금으로 올라서게 되지만 후줄근하게 늘어지는 몸을 추스르기 위해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미지근하게 식어 버린 물을 마시며 앞으로 진행할 방향을 가늠하며 잠시 후 우측의 숲속으로 들어선다.
이곳 또한 무성한 가시덤불속에 걸려있는 리본을 따라 사투를 벌여야하고 100여m 진행을 하자 비로소 소나무 숲속으로 오솔길이 열린다. 잠시 후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꺽임봉 이지만 앞으로 갈 길이 먼 탓에 왼쪽의 사면 길로 시간을 단축한다.
100여m를 진행하면 꺽임봉에서 내려오는 삼거리 길에 이르고 솔향기 그윽한 비단길에는 군부대의 훈련장이 펼쳐지고 모처럼 호젓한 오솔길에서 마음의 휴식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면 군부대 펜스가 나타나고 계속 진행을 하면 좌측으로 후손들 잘 둔 덕분에 말끔하게 조성된 산소의 상석이 나를 반긴다. 이곳이 점심상 차리기엔 안성맞춤이라 염치 불구하고 상돌위에 점심상을 차리고 시원하게 펼쳐지는 백석리의 너른 들판과 지나온 산줄기를 더듬어 보며 모처럼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포만감속에 느긋한 마음으로 펜스와 동행을 하다보면 좌측으로 공동묘지가 펼쳐지고 이곳 또한 전망이 일품으로 계양산을 마지막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곳으로 전국이 도시화가 되듯이 조용하던 백석리도 아파트의 숲으로 변모가 되어가며 향수 어린 고향마을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군부대 후문을 지나 약간 오름길을 따라 진행을 하면 부대 정문에 이르고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다시 펜스 옆으로 붙어 진행을 하다보면 펜스가 우측으로 꼬부라지는 지점에서 좌측의 오솔길로 방향을 잡는다.
나무그늘 속으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발걸음에 거칠 것이 없고 비온뒤 끝에 고개 내민 버섯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갈 길 바쁜 나그네의 발걸음을 부여잡는데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송림지대를 지나면 태평아파트 정류장이 있는 사거리에 이른다. (11시 20분)
건너편으로는 종주하는 산객들이 눈여겨보는 로사리아 조경 간판이 보이고 가장 반가운 구멍가게로 달려가 캔 사이다와 맥주로 갈증 난 목을 축이는데 삼복더위의 무더위 속에 어디까지 가느냐며 말을 걸어오는 할머니. 이 동네 토박이로 로사리오 조경 간판을 가리키며 자기의 집이라고 지도에도 나오고 인터넷에도 등장한다며 자랑이 대단하시다.
건너편의 건물 뒤로 산마루를 넘어 골프연습장을 바라보고 진행하면 종주길이 열린다고 친절한 안내까지 해주신다. 모처럼 망중한을 즐기며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횡단보도를 건너 우측의 골목으로 들어서면 좌측으로 산길이 열리고 마루금을 밟아 가면 잠시 후에 숲속의 정수리에 도착하지만 별 특징이 없고 바람결에 스치듯 골막산을 통과하고 사면 길로 내려서면 건너편으로 산마루에 백석 스포렉스 건물이 보인다.
잠시 후 4차선 도로를 피해 굴다리를 지나 종말고개에 올라서면 골프연습장의 안마당에 이르고 스틱을 휘두르기에 여념이 없는 그들을 뒤로하고 가마솥이 걸려있는 뒤편으로 돌아서면 오솔길이 반겨주고 외로운 나그네의 발걸음에 매미소리와 산새들이 지저귀는 정겨움 속에 시원한 솔밭 길을 걷게 된다.
느린 걸음으로 20여 분간 진행하면 제법 가파른 오름길에 쓰레기 투기장으로 변한 주위 환경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잠시 후에 소나무 숲속에 산불감시초소와 군 삼각점이 있는 할메산 정상에 오른다. 나무그늘에 앉아 마시는 캔 맥주는 단숨에 갈증을 풀어주고 하염없이 걸어가는 발걸음에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에도 뜨거운 열기가 뿜어 나오고 천근만근 무너지는 몸을 추 수리며 걸어가야 하는 길 뚜렷하게 이어지는 직진은 알바 하는 길이고 직진과 우측의 중간지점으로 길도 없어 보이는 숲속 나뭇가지에 달린 리본이 손짓하는 곳으로 내려서면 길도 점점 선명해지고 완만한 오솔길이 펼쳐진다.
서서히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한동안 오솔길이 이어지고 자동차의 경적소리를 따라 8차선의 도로가 나타나고 건너편으로 공장들이 밀집되어 있는 뒤편으로 마루 금이 이어진다. 횡단보도를 건너 공장의 담을 따라 걷는 발길이 한낮의 열기 속에 무너져 내리고 완만한 비알 길에서도 제자리걸음에 거친 숨결이 목젖을 타고 오르고 능선의 마루금을 지나면 건너편으로 검단리의 신시가지가 빌딩숲을 을 이룬다.(13시)
한낮의 열기는 대지를 불태우고 빌딩 벽에 현란한 조명으로 찜질방 사우나 간판이 크게 부각되며 가현산으로 향하는 나의 의지를 잠재우고 만다. 저항할 겨를 도 없이 사막의 신기루처럼 온천탕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내 몰골이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은신처가 아닌가?
시원한 물줄기가 온몸을 타고 내리며 삼복더위 찜통더위 속을 헤쳐 오며 쌓인 앙금을 씻어 내리고 따끈한 온천탕에 몸을 담그니 세상에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 6시간의 종주길이 나에게는 너무도 벅찬 길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 나머지 구간을 이어가며 오늘의 고행을 되새겨봄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