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라산의 눈꽃 축제

김완묵 2008. 6. 18. 14:31

한라산(1,950m)의 눈꽃 축제


산행일시: 2004년 1월 10일                  

산행일정: 인천 연안부두에서 9일 저녁 7시 15,000톤 급 유람선으로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8시 제주항에 도착하여 관광버스 로 성판악에 올라 산행을 시작 한다.


갑신년 신년 산행을 한라산의 눈꽃 축제로 계획을 세우고 한 달 전부터 교통편을 점검 하던 중 인천에서 제주까지 운행하는 유람선을 이용하여 한라산 등산을 하는 이색적인 이벤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밤새 13시간의 항해와 8시간의 등산 또 다시 13시간의 배를 타야하는 강행군이지만 새로운 세계를 체험 할 수 있다는 호기심과 저렴한 경비가 매력적이어서 미투리 산악회에 예약을 하고도 과연 내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유람선에서의 낭만적인 생각들을 하게 되면 설 레이는 마음으로 후 꾼 달아오른다.


금년 겨울은 유난히 포근하면서 눈까지 내리지 않아 벌거숭 이 산들이 을씨년스러운데 한라산에는 어느 정도의 눈이 있을지? 혹시나 그곳에도 눈이 없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반 기우 반으로 초조하게 기다리는 중에 마침내 출발일이 돌아오고 꼼꼼하게 짐을 챙겨 의정부에서 동 인천까지 전철로 오는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펴며 환상의 세계로 달려간다. 동 인천역의 승강장에는 화려한 등산복 차림의 인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연안부두로 줄달음친다. 땅거미가 지는 연안부두 대합실에는 제주로 향하는 등산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10여개가 넘는 산악회에서 모집한 700여명의 인원을 점검하랴 승선 티켓을 나누어 주랴 그야말로 잠시도 한눈을 팔 겨를도 없는 아수라장이다.


7시 정각 뱃고동 소리를 신호로 오하마나 호는 제주를 향해 선수를 돌리고 칠 흙같이 어두운 바다 위를 미끄러지며 순항을 하고 있다.  산악회 별로 한 방에 40여 명씩 배정을 하고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이듯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일찌감치 술판이 벌어진다. 모두들 산 꾼다운 영웅담으로 목청을 높이고 한라산으로 향한다는 하나 만으로도 금 새 친숙해지고 주고받는 술잔 속에 십년지기나 된 듯 흥이 무르익는데 아내가 마련해준 보따리를 풀어보니 갈피갈피마다 정성이 가득 담겨있는 음식과 쪽지 편지로 둘러앉은 동료들의 환호와 갈채로 감칠맛을 더 하고 이사람 저 사람의 보따리에서 쏟아지는 안주들이 산해진미로, 코끝을 톡톡 쏘는 홍어회는 입안에서 살살 녹는 안줏감으로 백미를 이룬다.


우리가 타고 가는 오하마나 호는 15,000톤급의 호화 여객선으로 편도 요금이 3등석 기준으로 46,000원인데 먼 거리 항해에서 오는 불리한 여건으로 비행기에 손님을 빼앗기고 주로 화물을 운반하는 용도로 사용하다가 산악 대장을 하던 분이 청해진 해운의 상무로 부임해 오면서 산악회를 상대로 한라산 등반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여 금년 1월 1일 해돋이 행사로 출발을 하여 대박을 터트리는 히트 상품이 되었다고 한다. 일주일에 3회씩 운행하던 스케줄도 매일 운항하게 되어 저녁 7시에 인천항을 출발하여 다음날 8시에 제주항에 도착하고 저녁 7시에 제주항을 출발한배는 다음날 8시에 인천항에 도착하게 된다.


우리가 잠든 사이 밤새도록 달려온 배는 시속 40km의 속도를 유지하며 달려가고 별도 달도 먹장구름 속에 가려 우중충한 날씨에 비라도 내리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 속에 새벽 5시를 지난다. 초조와 긴장 속에 선실을 드나들며 여명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는데 서해안의 얕은 수심 때문인지 조용하게 순항하는 배는 멈추어 선 듯 배 멀미 하는 사람이 없으니 신기하고 엊저녁에 마신 술로 정신이 몽롱하지만 한라산을 넘자면 배를 든든히 해 두어야 하겠기에 우거지 국에 밥 한술로 요기를 하고 예정시간 보다 30분이 빠른 7시 30분에 제주항에 도착한다.


서둘러 버스에 올라 성판악을 향해 오르는 도중 버스에서 불이 나는 소동으로 모두들 버스에서 내려 새로운 버스가 올 때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30여분을 기다린 끝에야 새로 온 버스로 성판악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한라산의 겨울 등산은 11월부터 2월까지 4개월 동안 개방이 되는데 해가 짧은 겨울산행은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성판악에서 9시가 넘으면 출입을 통제하게 된다.


가까스로 9시에 현지에 도착하여 지체된 시간을 벌기위해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서둘러 출발을 하는데 전국에서 모여든 축제의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등산 행렬은 제 자리에 멈추어 선 듯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완만한 경사에 철도 침목으로 길을 만들고 군데군데 돌 자갈을 깔아 산행에는 큰 무리가 없지만 사람들의 행렬을 추월하기가 만만치가않아 애를 태우며 5km지점인 사라 대피소를 1시간 만에 통과를 하고 고도가 높아지며 제법 많은 눈이 쌓여 겁에 질린 초보자들은 아이젠으로 무장을 하고 뒤뚱거린다.


12시에 입산을 통제한다는 진달래 대피소에 11시에 도착을 하여 잠시 휴식을 하며 세찬 바람에 무릅까지 빠지는 눈구덩이 속에서도 진달래와 구상나무가 설화를 피어내는 횐상적인 설경속에  추위도 잊은채 정상을 향한 발걸음이 이어진다.


얼마를 지나왔는지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온 듯 쨍하고 햇볕이 내려 비추며 뒤돌아보는 산 중허리로 구름이 펼쳐지고 오색 창연한 빛깔로 구상나무에 피어나는 설화와 조화를 이루며 한라산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진다. 고진감래라 어려운 고비를 헤치며 올라온 보람을 만끽하며 점점 더 거세지는 바람을 가슴에 안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진달래 능선의 철도 침목을 건너뛰며 12시 05분, 1,500m의 등고선을 지나 추위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두꺼운 파카에 겹겹이 장갑을 끼고 뒤뚱거리며 백록담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12시 10분)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 곱은 손 호호 불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데 발 아래로 펼쳐지는 백록담은 흰 눈 속에 몸을 웅 쿠리고 서귀포 쪽의 시가지가 구름 속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설경으로 오로라의 광속에 반사되는 은빛 세계가 우리의 발걸음을 정지된 시간 속으로 유인을 한다.


8년 전 진달래 축제에 다녀간 추억이 새롭게 되살아나며 계절 따라 색다른 신비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한라산은 땅속에서 잠을 자던 용암이 분출하여 백록담을 만들고 삼성혈에서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 삼씨 성의 시조가 태어났으며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삼신산으로 불리는 이곳은 중국의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보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신비한 곳으로 변화무쌍한 모습에 매료되어 추위도 잊 은채 나무계단과 고무깔판으로 만든 등산로를 따라 왕 관능 가는 북사면으로 들어서니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길 속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겨우내 내린 눈이 쌓이고 쌓여 구상나무의 끝자락까지 차오르는 눈길은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길 따라 깊은 골이 되어 자연의 봅슬레이 코스가 펼쳐지며 완만한 경사에 누워만 있어도 가속도가 붙으며 미끄러지는 놀이동산의 슬로프로 동심의 세계에서 즐거움을 만끽한다. 백록담의 북벽이 바라보이는 왕관릉은 평평한 분지로 바람도 잠잠하여 이곳에서 휴식을 하며 식사도 하는 전망 좋은 쉼터로 우리 일행들도 자리를 잡고 차에서 나누어 주는 도시락을 펼쳐 보니 싸늘하게 식었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더운밥 찬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13시)

 

식사하는 주위로는 사람들의 손길에 길들여진 까마귀들이 모여들어 호시탐탐 우리의 눈치를 살피며 청소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니 한라산의 자연 정화에 한 몫을 하고 있는 파수꾼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왕관 능에서 용진각 대피소로 내려오는 길은 한라산 등산로에서 가장 가파른 곳으로 길게 로프가 매어있어 그나마 다행으로 용진각 대피소는 사람들이 상주하지 않는 곳으로 굼주림과 추위에 지친 조난자들의 피난처인데 쓰레기 더미처럼 너무나도 지저분하게 사용을 하여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 13시 30분통과)


탐라계곡의 상류 지점인 용진각 대피소를 지나 하늘 높이 솟아오른 삼각봉(1,895m)아래 개미 목에 이르면 넓은 분지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맑은 날에는 제주시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한 여름 온갖 야생화가 만발하는 천상의 화원이지만 지금은 모든 사물들이 눈 속에서 새 생명을 잉태하며 새 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동면기로 세찬 바람만이 온몸을 휘어 감는다. 개미 등에 이르면 한라산을 넘으며 지친 몸을 어루만지고 피로를 회복 시켜주는 완만한 구간으로 고도가 낮아지며 바람도 잔잔하여 따사로운 햇살에 얼었던 몸을 녹여주며 두터운 외투를 벗어 가벼운 옷차림으로 눈길을 헤치며 탐라 대피소까지 이어진다. (14시 40분)


탐라계곡 대피소를 지나며 눈의 양도 적어지고 나무계단과 널찍하게 다져진 자갈길을 지나게 되는데 일행들이 모두 뒤로 처진 탓인지 오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한적한 길에 건천으로 변해버린 계곡의 검은 돌들은 용암이 흘러내리며 만들어 놓은 조물주의 걸작 품으로 울창한 숲을 지나면 너른 광장이 나타나고 관음사 코스의 시발점이 되는 곳으로 오늘의 산행도 마감을 하게 된다. (15시 30분)


성판악에서 정상까지 9.6km 정상에서 관음사 주차장 까지 8.7km 도합 18.3km를 6시간 30분 만에 완주를 하고 아침에 우리가 탔던 1호차를 찾아보니 후미로 처진 일행들이 빽 산행을 하면 태우고 오기위해 성판악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이다. 참고로 설명을 하자면 백록담에서 13시가 넘으면 관음사 쪽으로 하산이 통제 되므로 빽 산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16시 30분까지는 그들을 기다려야 하고 17시에 도착한 버스에도 15명이 승차하고 있으니 30여명이나 되는 인원이 아직도 관음사 코스에서 하산중이라는 결론이다.


예정대로 라면 우리는 제주항으로 출발을 하고 후미그룹은 각자 항구로 찾아와야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속속 도착하는 일행들을 맞아주며 지루하게 기다리다 보니 18시 20분이 되어서야 후미가 무사히 도착을 하여 가까스로 19시에 출항하는 배에 승선을 하게 된다. 백여 명이 넘는 일행들이 큰 사고 없이 한라산 눈꽃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감을 하며 행사를 주관한 최 효선 총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모두들 개선장군이 되어 축배의 잔을 높이 들며 깊어가는 밤이 아쉬운 듯 열광의 도가니로 제주항의 불빛이 아스라이 멀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