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한남정맥 마지막 구간

김완묵 2008. 3. 9. 11:01
 

한남정맥 마지막 구간

문수봉(376m)과 애기봉(75m) 연계 산행

 

 


                         산행일시: 2008년 3월 7일           산행시간: 4시간 40분             산행거리: 약12km

                                    소 재 지: 경기도 김포시 - 월곶면 하성면       날 씨: 쾌 청        

     찾아 가는 길: 의정부 우체국 앞 - 김포공항(공항버스) - 지하철 -송정역 (강화행: 3번 버스) - 강화대교 직전 

                                    성동리에서 하차  - 보구곶리까지 5km 도보로 1시간 소요.

 

 


시샘하던 꽃샘추위도 물러가고 목덜미로 찬바람이 파고드는 춘 삼월.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통통히 물이 오르고 머지않아 화사한 꽃들이 피어난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한껒 부풀어 오른다. 

 

 

한남정맥도 어느덧 마지막 구간을 장식하게 된다.  서울 근거리에 있는 문수산을 찾아가는 길이 이다지도 번거로운지. 지하철을 이용하면 종로3가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여 송정역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과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싫어서 공항을 오가는 리무진을 이용한 것이 잘못이다. 

 

의정부 우체국 앞에서 20여분을 기다린 뒤에야 버스에 올라 원당을 지나 일산으로 들어서더니, 시내를 골고루 순례하며 1시간 만에 김포공항에 도착한다. 또 다시 지하철로 송정역까지 환승을 하는 통에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하고 6천원을 지불한 버스비가 아깝다는 생각에 기분이 영 말씀이 아니다.

 

 

 


보구곶리에서 산행을 시작하자면 강화대교를 건너기 직전 성동리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지만, 강화 가는 직행버스는 정차하지 않고 3번 완행버스를 기다리는 30여분을 허비하고 보니 이래저래 기분을 잡치고 만다. 가까스로 성동리에 도착하니 8시 50분. 길거리에서 소비한 시간을 보충하려는 생각으로 종종 걸음을 치지만, 새로 복원 된 문수 산성을 그대로 지나칠 수 있으랴.

 

 

 

사적 제139호인 문수산성(文殊山城)은 포내리에 있는 문수산의 정상부에서 서쪽의 산줄기를 따라 해안지대를 연결한 성곽 길이 2.4km의 성채로서 강화도를 건너는 길목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기록에 의하면 문수산성은 조선조 숙종 20년(1694년)에 축성하였고 순조 때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고종 때 일어난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격전을 치르면서 해안쪽 성벽이 파괴되고 문루가 불탄것을 1995년 사적으로 지정한 이후 산성 북문과 일부 성곽을 복원하였다.

 

 

 

 

병인양요(丙寅洋擾)라 함은 프랑스가 조선조 말인 1866년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프랑스 신부 9명을 학살한 것을 빌미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을 가리킨다. 1866년 프랑스 함대 로즈 제독은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문수산성과 마주하고 있는 강화도 갑곶진(甲串鎭)을 공격하여 강화성을 점령하고 그 여세를 몰아 문수산성을 공격한다.

 

이에 대원군의 명을 받은 한성근(韓聖根)이 별파군 50명을 이끌고 산성에서 프랑스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으나 성을 점령한 프랑스군은 성 안에 있는 민가를 모두 불태우고 마구 유린한다.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의 외규장각에는 전란을 대비하여 6,400여 도서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사료적 가치가 높은 340여 책을 본국으로 보내고 나머지 도서는 외규장각과 함께 불 태워 없앴다고 한다.

 

 

 

역사의 뒤안 길을 돌아보며 우울했던 마음도 한결 풀어진다. 육중한 철조망과 해병대의 붉은 구호들을 바라보며 문수골 산림욕장을 지나면 새로 복원된 북문이 반겨준다. 김포와 강화도 사이를 강물처럼 흐른다하여 염하라 부르는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1시간동안 부지런히 걸어간 후에야 민통선 마을인 보구곶리(60여호)에 도착한다. 마을이 끝나는 산 모랭이를 돌아가면,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속에 육중한 바리케이트가  앞 길을 가로 막는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강화도가 건너다 보인다.

 

                                                 머머리섬이 물위에 떠있다.


육중한 철책으로 둘러쌓인 정맥을 바라보며, 넘지못할 장벽 앞에서 무거운 발길을 돌린다.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는 간판 옆으로 한남정맥 표지기들이 바람결에 흩 날리고, 김포산우회 이정표를 뒤로하고 들머리로 올라선다. 지능선을 따라 20여분을 오른 후에야 정맥과 합류한다. 전망 좋은 벙커위에 올라서면 포근하게 누워있는 머머리 섬(유섬)이 강위에 한가로이 떠 있고, 건너편으로 북한의 개풍군이 선명하게 바라보인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오두산성 앞) 지점에서 이곳까지를 조강(祖江)이라 부르니 할애비 강이다. 의좋은 형제가 한강과 임진강으로 나뉘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孫子江이다. 부귀다남하여 골골마다 수 많은 자손들을 거느리며 품안으로 받아들이니 팔자좋은 영감님이요. 자손만대로 번영을 누릴 요람이 아닌가.

 

                                                   바다와 강물이 만나는 강화 북쪽의 하구

 

 

                                                      염하가 흐르는 강화대교

 

 

고도가 높아지며 바다와 맞닿은 조강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강 건너 북녘땅은 무슨연유가 있길래  벌거숭이로 변하고 말았는지. 단군이래 오손도손 살아온 이웃인데,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곳.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경계삼아 철책선이 가로 놓이고 지구상에 하나뿐인 분단의 현장에서 우리의 가슴 아픈 현실을 되돌아 보며, 서쪽으로 눈 길을 돌리면 강화도의 전경이 펼쳐진다.

 

  

 

30여분 만에 270봉에 오르면 사방으로 펼쳐지는 전망이 너무도 아름다워 시원한 해풍에 거친 숨소리도 잦아든다. 허물어진 성터를 따라 비알 길을 내려서면 암문이다. 북문 갈림길을 지나면 문수산 정상도 정면으로 보이고, 가파른 비알 길에서 가쁜 숨 몰아쉬며 비지땀을 흘리며 전위 봉에 오른다.  정상은 군부대가 있어 왼쪽으로 타이어 방공호를 따라 헬기장을 겸한 너른공터에 도착하면 삼각점과 정상 표지석이 반겨준다. 

  

 

 

정상을 대신하는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수 백리 산하가 한 눈에 들어오고, 강건너 북녘의 개풍군이 실 눈금 들여다 보듯이 선명하다. 정상을 찾은 등산객들이 주위를 돌아보며 행복을 만끽한다.평일이라 인적이 별로 없는데도 여전히 막걸리 통은 제 자리를 지키고, 컬컬하게 넘어가는 막걸리 잔에 속리산의 천황봉에서 분기한 한남정맥 180여km의 긴 여정을 마무리 하는 감회가 남다르다.

 

 

                                                         문수산성 암문

 

 

 

정상에서 다음 행선지는 김포의 새로운 명승지로 각광받는 애기봉이다. 전망 좋은 헬기장에서 동쪽으로 4km거리에 있는 애기봉으로 마음이 앞서 간다. 조강저수지를 기점으로 시원하게 조성된 간척지의 뚝 방을 따라가면 애기봉에 쉽게 오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로프가 걸려있는 벼랑 길을 내려선다. 20여분 만에 월곶면 소재지인 군하리에서 용강리로 오가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를 만난다.

 

 

 

 

 

울 안니 마을로 들어서면 낮선 이방인을 향하여 짖어대는 개들의 합창으로 온 동리가 떠들썩하다. 괴면쩍은 생각에 부지런히 마을을 빠져 나간다. 저수지로 향하는 중에 한 무리 철새들이 군무로 날개짓이 한창이다. 이색적인 풍경을 감상하며 저수지 뚝 방 길을 돌아가면 해병대 초소가 나타난다.

 

이들 또한 낯선 방문객이 신기한듯, 절도있는 모습으로 거수경례를 한다. 지금까지 문수봉을 거쳐 애기봉으로 가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면서, 이곳은 민통선 지역이니 조강리 마을로 들어가 남쪽의 마원동(2km)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산등성이 하나만 넘으면 되겠는데, 5km나 되는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 맥이 풀리고 만다.

 

 

 

 

  

                                                    조강저수지 너머로 문수산

 

사실 이곳은 최전방 민통선 지역으로 겹겹이 외워 싼 철조망에다 경비 또한 삼엄한 곳이라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다. 조강리 마을에 들어서며 원주민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남쪽으로 200여m를 가면 석원동 마을입구에서 동쪽으로 넘어가는 산 길이 있다고 알려주신다. 

 

포기하려던 마음에 불씨를 살리는 구세주를 만난 기쁨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마원동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낮은 고개를 넘으면 마을이 나타나고, 동쪽으로  폐허가 된 공장 앞 마당에 이른다.

      

 

 

 

군부대에서 작전용으로 만든 비상도로를 10여 분간 따라가면 고개 마루에 도착한다. 북쪽으로 난 능선 길을 따라가지만, 철조망에 가로막혀 제자리로 돌아와 동쪽으로 5분간 내려서면 애기봉가는 포장도로를 만난다. 5km나 되는 먼 길을 돌아오지 않고 20여 분만에 애기봉 진입로를 찾았다는 즐거움에 피로도 잊은채  애기봉 전망대 출입신고소에 도착한다.

 

 

 

 

 

 

너무도 수월하게 도착한 기쁨으로 초소 안으로 들어갔지만, 이곳부터는 걸어서는 갈 수가 없고 차량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생각지도 못하던 난관에 봉착하여 사정을 해보지만 군에서 하는 일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힘들여 찾아 온 보람도 없이 되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난감해 하던 차, 옆에서 신고서를 작성하던 분의 호의로 애기봉 전망대에 무사히 도착을 한다. 

 

우여곡절끝에 도착한 애기봉이기에 더욱 정감이 가고, 전망대에 올라서면 따사로운 햇살아래 강 건너 북녘 땅 개풍군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155마일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전망대(700야드). 오전에 문수산성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또 다른  감회가 서린다.

 

 

 

 

동쪽으로 오두산성 앞에서 임진강과 한강이 하나 되어 얼싸안고 드넓은 강 하구에 모래톱을 만들었으니, 북쪽의 황소가 이강을 건너 남으로 왔다고 한다. 또 한 크리스마스가 되면 30m가 넘는 오색찬란한 트리에 점등하여 북녘동포들에게 밝은 복음을 전한다. 수직 절벽위에 조성된 2층 전망대에 오르면 망원경이 아니라도 북쪽의 마을과 산, 계곡까지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이곳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 온다. 1636년 조선 인조14년에 청나라 태종이 10만대군을 이끌고 침범한 丙子胡亂때. 평양감사는 사랑하는 애첩 “애기”를 데리고 수도 한양으로 피난 길에 오르게 된다. 감사는 강 건너 개풍군에서 청나라 오랑캐에 포로가 되어 북으로 끌려가고 애기만 한강을 건너 이곳 김포반도 조강리 마을에 머물게 된다. 

 

매일같이 이 봉우리에 올라 일편단심으로 감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병이들어 죽어가면서 이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하였다고 한다. 1966년 10월 7일 이곳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 사실을 전해 들으시고 우리 일천만 이산가족들의 슬픔과 같다는 뜻에서 이 봉우리를 애기봉으로 명명하고 친필휘호로 비석까지 세우면서 애기봉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20여 분간 애기봉 관람을 하면서 우리민족의 한이 서린 휴전선 최북단 애기봉을 안보 관광지로 육성한다면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월곶면 군하리까지 편하게 도착하여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강 건너 북녘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