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 2 장 - 높새 바람 불어 오는 대간길
제 2 장
『 높새바람 불어오는 대간 길 』
봄이 오는 길목에서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총 총
쌍계사 십 리 벚 길 검은 장막 드리우고
불일폭포 굉음 소리 귀청을 파고 들 때
손전등 길라잡이 눈 뜬 장님 더듬더듬
상불재 산마루에 여명이 밝아오면
계곡에 피어나는 운해 저편에
광양의 백운산 눈이 부시고
쇠통바위 구멍으로 기어오르면
좌청룡 우백호 아늑한 보금자리
삼성궁, 도인촌, 청학동...
환인, 환웅, 단군왕검 삼성궁에 모셔 놓고
한민족의 맥을 잇는 한풀선사 수련도장
일망무제 내 삼신봉 높기도 하여라.
천왕봉, 세석산장, 반야봉, 노고단 운해
장쾌한 지리산 시선이 가득하고
갓걸이 재 돌아서면
고로쇠 수액이 넘쳐 흐르고
섬진강 물결 따라
매화 향기 그윽하다.
불타는 서북능선
일시: 2003년 10월 소 재 지: 강원도 인제군 속초시
요 근래 지리산으로 발길이 잦다보니 자연히 설악산 산행이 뜸한 편이다. 오랜만에 일반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곡 백운 계곡으로 산 행지를 정하고 뫼솔산악회와 동행하게 되었다.
언제 찾아도 새로움을 안겨주는 곳이 악산이다. 그래도 사랑을 많이 받는 계절은 가을이 으뜸이다. 9월 하순부터 대청봉에 불꽃이 피어오르면 하루에 40m 씩 계곡으로 번져가며 만산홍엽의 화려한 불타오르고 외설악의 천불동, 내설악의 구곡담 계곡, 수렴동 계곡, 십이 선녀탕, 남설악의 주전골이 절정에 이르면 수많은 인파들이 설악으로 몰려들게 된다.
야심한 시각이지만 장수대 주차장에도 10여 대의 버스에서 토해내는 인파들이 너른 광장을 가득 메우고,헤드렌턴으로 불을 밝힌 불나비들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줄행랑을 친다. (03시)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 폭포와 함께 3대 폭포로 알려진 대승령 폭포가 자장가처럼 아스라이 들리는 가운데(오랜 가뭄으로 건폭이 되었음) 뒷사람의 가쁜 숨소리에 등 떠밀려 고지를 향하여 발걸음을 이어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길가에 주저앉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대승령 고개 마루에 도착했을 때는 선두그룹과 합류하여 한숨을 돌린다. 대승령은 서북능선의 주요한 갈림길이다. 직진을 하면 백담사로 넘어가는 흑선동 계곡이고, 좌측으로는 안산을 거쳐 십이 선녀탕으로 내려가는 길목이요, 우측은 귀때기청봉을 지나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대청봉을 지나 공룡능선과 연결이 된다.
대승령을 지나 10여분 후에는 로프가 걸려있는 장벽이 가로막고 거침없이 뛰어 넘는 준족들의 행보를 따르기엔 힘이 부친다. 2-3년 전만해도 오기를 부리며 뒤쳐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 봤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란 걸 알고부터는 내 몸에 맞는 산행습관을 길러 보폭과 호흡을 조절하게 된다. 앞지르는 사람에게 길을 터주고 뒤처지는 사람에게 미소 지으며 뚜벅 뚜벅 내딛는 황소걸음이 방정맞은 토끼걸음보다 낫다는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주위를 감싸고 있는 어둠 속에서 인기척 하나 없는 고산의 줄기를 나 홀로 걷고 있음에도 무섭다거나 외롭지 않은 것은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난 해방감으로 나만의 자유를 만끽하기 때문이다. 새벽이 밝아오며 어둠도 서서히 계곡으로 물러나고, 주위의 산 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기치창검 고추 세운 암봉들의 질서정연한 모습이 우리의 가슴속을 시원하게 쓸어 내린다.
큰 감투봉(1,409m)을 지나면 오늘의 구간 중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어둠 속 수 십 길 절벽 아래로 동아줄이 길게 늘어져 있고,앞서간 사람들의 라이트 불빛이 절벽의 중간에 매달려 내려설 줄을 모른다. 심호흡을 하고 스틱을 접어 허리춤에 찌르고,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벼랑으로 발을 내딛으며 동아줄에 몸을 맡기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휴우... 긴 한숨과 함께 두 다리가 땅에 닿는 순간 또 한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으로 뒤 돌아보니,하늘에서 내려오는 불빛들이 애처럽게 보인다.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며 귀때기 청봉이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 오고 협곡 사이로 재량박골의 기라성 같은 암봉들의 틈바구니로 구상나무와 단풍나무가 화려한 불꽃을 피워 올린다. 그 너머로 가리봉의 톱날 같은 암 봉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주걱봉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아 보는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황홀한 시선도 잠시뿐 귀때기 청봉에서 흘러내리는 안개가 순식간에 모든 사물을 집어삼키고 만다. 온몸을 휘어 감는 안타까움과 냉기서린 바람이 엄습하니 짙은 농무속에 포로가 되어 막막하기 그지없는데, 한계령에서 출발하여 십이 선녀탕으로 향하는 부산 갈매기들을 만나 그나마 마음의 정을 되찾는다.
대승령을 출발한지 3시간 20분 만에 서북능선의 정수리인 귀때기 청봉에 올라선다. 태백산보다도 함백산보다도 높은 정수리이건만 낡은 비목에 이름표를 달고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은 대청봉의 그늘에 가려 외면당하고 있는 탓이 아닌가 싶다, 내설악과 남설악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서북능선 제일의 전망대에서 짓궂은 안개속에서 포로가 되고 말았으니 막막하기 그지없다.
8시 30분 한계령에서 올라오는 갈림길 100여 m 못 미친 지점에 십자로 갈림길이 있는데, 오른쪽으로는 도둑 바 위골로 내려가는 길이고, 좌측이 오늘의 행선지인 곡백운계곡의 진입로인데 흰 로프에 등산로 아님이라는 팻말이 우리의 발길을 가로 막는다. 일반인들의 안전을 위해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곳으로 위법인줄 알면서도 도둑고양이 숨어들 듯 재빠르게 계곡으로 몸을 숨기고, 두려운 마음으로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발길을 내 딛는다.
설악산에는 위험한 능선과 계곡이 수도 없이 많아 일반 등산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 이곳 또한 그 중의 한곳이다. 계곡을 내려갈수록 음습한 기운이 감돌며 이끼 낀 고목들이 즐비하게 넘어져 가는길을 가로막고 계곡의 양쪽으로는 깍아지른 절벽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 간담이 서늘하다.
이름 모를 약초들이 지천으로 깔려있는 심산유곡에서 신경이 곤두선다. 심마니아들이 다니던 희미한 흔적을 따라 내려가면 올망졸망 앙증맞은 폭포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이끼 낀 바위를 조심스레 내려서니 우렁찬 굉음소리와 함께 수 십 길 백운폭포가 앞길을 가로 막는다.
폭포의 우측으로 벼랑에 기다란 로프가 걸려 있고 물 먹은 바위를 조심스레 내려서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룬다.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깊숙한 골짜기에 이런 비경이 숨어 있을 줄이야. 넋을 놓고 바라보는 우리 앞에는 벼랑위로 붉게 물든 단풍이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계곡을 빠져 나아가는 길을 찾을 수 었으니 이런 난감한 일이 있는가.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수도 없고, 낙엽이 되어 물길 따라 흐를 수도 없으니, 자신 만만하던 박대장도 속수무책으로 우왕좌왕하며 허둥대기 시작한다. 어려운 난관일수록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 될 일이고,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여 대처해야 하겠기에 계류의 오른쪽 벼랑위로 안전판을 확보한다. 풀숲을 헤치는 중에 빛바랜 리본이 구세주가 되어 아슬아슬하게 벼랑을 통과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가 있었다.
뒤돌아보면 위험천만한 곳이다. 깔때기처럼 움푹 파진 계곡에서 갑자기 소나기라도 쏟아지는 날에는 수중고혼이 되기 십상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머리털이 곤두선다. 폭포를 지나서도 희미한 길을 따라 계곡을 수십 번이나 건너다닌 끝에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구곡담 계곡과 합류하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행락객의 인파들, 황홀경속에 취해 움직일 줄 모르는 행락객들의 발걸음이 마냥 느려지고 골짜기 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으니 단풍구경 사람구경에 혼이 빠진다.
가까스로 수렴동 산장에 도착하니 부어라 마셔라 흥청대는 저자거리의 난장판이 벌어진다. 아직도 용대리 까지는 10여 km의 여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흥청대는 인파들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크고 작은 용소가 백여 개나 되어 백담사 계곡이라 했다던가?
신라의 자장 율사가 창건한 한계사가 그 전신으로 각종 전란과 화재로 십여 차례나 소실이 되는 수난을 당한끝에 정조 시절부터 백담사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3.1운동 민족지도자 33인중의 한분으로 민족시인이며 불교 개혁의 선구자 이신 한용운 선생이 기거하며 "님의 침묵"을 탈고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용대리에서 8km나 떨어진 궁벽한 곳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 전 두환 전 대통령이 은거하면서 세간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명소가 되었다. 단풍이 절정인 백담사를 뒤로하고, 25km의 긴 여정을 10시간 반에 주파하고도 재한 두 다리에 감사하며 곡백운 계곡 종주를 마감한다.
다시 찾은 공룡능선
소재 지: 강원도 인제군 속초시
내설악 광장. 산행에 필요한 마지막 점검과 김밥으로 아침 요기를 하고, 황철봉의 환상 속에 미시령 고개 마루에 도착하지만 차에서 내려 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되돌려야 하는 안타까운 순간이다. 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곳이라, 도둑고양이 담 넘어가듯 은근 슬쩍 통과하려고 하였지만, 쌍불을 켜는 순시원의 제지로 이마져도 허사가 되고 말았으니 ...
어디로 향하는지 목적지도 모르는 채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버스 안은 쥐죽은듯이 조용하다. 한참 후에야 더듬거리며 사태를 수습하려는 최대장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대로 미시령에서 황 철봉을 오르는 계획을 포기하고, 그 대신 한계령에서 서북릉을 거쳐 공룡능선을 타는 코스로 변경을 하고야 말았다.
오래 전부터 황철봉을 거쳐 마등령까지의 코스를 눈여겨보게 된 것은 백두대간을 징검다리 식으로 건너 뛰다보니 완전한 종주를 못하고 있었는데 이 구간만 지나게 되면 진부령에서 대관령까지 연결이 되기 때문에 부푼 가슴에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달려왔지만, 다음으로 기약을 할 수밖에 없다.
한계령의 서북능선은 여러 번 다녀온 곳이라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도 전혀 낮 설지가 않다. 비수기인 탓에 인적도 드믄 호젓한 길이지만, 식수를 비롯하여 비옷까지 20kg이 넘는 배낭의 무게와 실망감까지 더하여 된비알에서 어깨ㅔ가 짓 눌린다. 놀란 토끼처럼 달려가는 젊은 산 꾼들과는 견줄 바가 못 되므로, 멀고 먼 태산준령을 넘자면 황소걸음이 제일이라 뚜벅 뚜벅 산길을 오른다. (03시 30분)
어둠도 서서히 계곡으로 밀려나고 여명이 밝아 오는 삼거리 갈림길을 1시간 20분 만에 통과를 하게 된다. 어려운 고비를 넘긴 자신감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하늘에는 은구슬을 뿌려 놓은 듯 오색영롱한 별들이 어둠 속을 밝히고 내설악의 연봉들과 깊고 깊은 계곡들이 속살을 드러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운해가 연봉들을 감싸 안으며 신비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고 동녘하늘의 끝자락에 솟아 오른 대청봉을 바라보며 발길을 재촉한다.
끝청의 암봉위에 올라서면 한계령에서 오색으로 내려가는 구절양장의 굽이 길이 장관을 이루고, 시원한 바람결에 속새의 묵은 때를 훌훌 털어버린다. 군부대 철조망을 옆으로 돌아가면 때늦은 진달래가 유혹을 하고 중청 산장 너른 분지에는 제철 만난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오늘의 일정을 생각하여 대청봉을 오르지 않고, 서둘러 휘운각으로 발길을 돌린다. 소청분기점에 올라서면 용아 장성 품에 안긴 봉정암이 그림 같이 아름답고, 아침 햇살에 기지개를 켜는 신선대의 침봉들이 기치창검 높이 들고 열병하는 모습에 저마다 환호성이 터진다. 휘운각으로 내려딛는 벼랑길이 한 없이 곤두박질치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날렵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김밥에다 반주를 겯들이며 아침요기를 한다.
낮 모르는 작자 옆자리로 파고들더니, 느닷없이 담배 연기 뿜어내며 여유 작작하는 꼬락서니 ... 날벼락도 유분수지 공기 좋은 산정에 힘들게 올라와서, 한다는 짓이 니코친 마셔대며 역겨운 냄새를 풍겨댄다. 예의도 모르는 무뢰한과 다투기도 싫어 자리를 박차고 벼랑길을 내려오며 마음을 달래본다.
깊고 깊은 벼랑길의 철 사다리를 내려서면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소리에 불쾌한 생각들을 씻어 버리고 밤새 달려온 「반더룽」의 식구들과 합류한다. 공룡능선과 설악동의 분기점이기도 한 휘운각은 이곳을 지나는 산객들이 지친 몸을 달래는 휴식처로,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8시 20분 대장정의 막이 오른다.
사실 공룡능선은 십여 년 전 삼복더위에 갖은 고생을 하며 넘던 기억으로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던 곳이다. 아직까지도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아있어서, 설악동으로 빠지자는 유혹으로 무너미 고개에서 망설이기를 수십번, 사나이 한번 죽지 두 번 죽느냐? 눈을 질끈 감고 공룡능선을 향하여 발걸음을 이어간다.
가쁜 숨 몰아쉬며 깔딱 고개 올라서니 시원한 조망 터인 신선봉 이라. 티 없이 맑은 하늘아래 펼쳐지는 공룡의 등줄기는 삼지창을 곧추세운 침봉들의 전시장이다. 내설악과 외설악을 아우르는 1.275봉과 천화대의 기암절벽들은 우리의 기상이요. 심장의 맥박이 고동치는 선경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북쪽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은 마등령까지 5km에 불과한 곳이지만, 첨봉을 오르내리는 우리의 발길은 깊은 계곡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첨봉으로 올라서기를 반복한다. 오죽하면 날카로운 암벽지대를 공룡능선의 축소판이라 부르겠는가. 1,275봉을 오르는 비알 길에서 개미들의 행렬처럼 장사진을 이룬 인파들이, 연체동물의 흐느적거림으로 천국의 문을 향하여 몸부림 친다.
등줄기의 중심점인 1,275봉은 주위의 연봉들을 압도하며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지만, 아직까지 이름을 얻지 못한 것은 합당한 수식어를 찾지 못함이 아니겠는가? 기암 절벽아래 둥지를 틀고 오가는 산객들에게 따끈한 차를 제공하던 산지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엄동설한속에서도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다 동상이 걸려 하산을 하고 말았다니 안타까운 사연이다. 남에게 양보를 하면 되는것을,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화를 자초하고 말았으니, 피하지 못할 업보인가 보다. 손수 채취한 삼지구엽초를 건네주던 그 손길이 그립기만하다.
오르내림은 계속되고, 범봉을 끼고 도는 나한봉 오름길에서 또 한번 고비를 맞는다. 체력이 소진데데다가 험준한 산세가 앞길을 가로 막고 있으니, 젖먹던 힘까지 발휘하여 고개 마루에 올라선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환희의 순간이다. 발 아래로 굽어보이는 용아장성의 날카로운 암봉들이 구곡담계곡과 가야동계곡을 품에 안고 내 달리는데, 십여 년 전에 다녀온 용아장성을 바라보며 감회가 깊어진다.
어려운 고비를 넘고 보니 유순한 마등령이 살포시 누워있고, 난초지초 흐드러진 분지에는 초여름의 따가운 햇살아래 철쭉꽃이 만발하고 있다. 돌무더기 위에 둥지를 틀고 있는 독수리(나무로 만들었음)의 가호아래 대간 길을 오가는 길손들에게 안락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11시 50분)
마등령에서 바라보는 황철봉이 더욱 높아보이는 것은, 언젠가는 꼭 넘어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산은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조급하게 마음조릴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기다려야 할 것이 아닌가. 기약 없는 약속의 땅을 한 없이 바라보며 비선대로 발걸음을 이어간다. 내려오는 하산 길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너덜지대이다. 절뚝이는 일행을 바라보면서도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에 겨우니, 도와줄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사면 길을 돌고 돌아 세존봉을 지나면, 깎아지른 벼랑에 걸린 철사다리로 금강굴과 연결된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서너 평의 공간이지만, 천불동을 바라보는 설악산 제일의기도처가 아닌가. 좁은공간속에서 스님들은 무엇을 얻고 깨달았을까? 비선대로 내려오면 뒤풀이 하는 목로집이 반겨준다. 시원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공룡능선에 대한 두려움도 말끔히 씻어내고, 설악동 광장을 향해 행복한 발걸음이 이어진다.(14시)
남설악 신선대(1,155m)
소재지: 남설악 한계령에서 오색 쪽으로 내려오다 금포교 위 흘림 골이 들머리
후드득 떨 구는 빗줄기는 집을 나서는 풍운아의 가슴에 찬 물을 끼얹고 모처럼 미투리를 찾아가는 부푼 꿈에 멍울이 든다. 일기예보에도 비소식은 없었고, 처서가 지난 계절의 변화는 아침저녁으로 선들매까지 불어와 남설악 주전골로 향하는 경쾌한 발걸음을 막아서는 빗방울에 마음이 답답하다. 여명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 잠실역 1번 출구로 올라서니, 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른 최 대장과 일년만의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남설악의 흘림골을 찾아 모여드는 반가운 얼굴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며 홍천 가도를 달려간다. 다행이 비도 그치고 소양강가에서 피어오르는 운해가 산등성이를 감아돌며 또 한가지 걱정거리를 만들고 있다. 오늘의 산행지가 만물상에 올라 남설악의 화려한 기암절벽을 감상하는 것인데, 하필이면 안개까지 우리의 마음을 몰라주니 야속한 생각마져든다.
한계령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야속하던 안개도 자취를 감추고, 조물주가 빗어 놓은 만물상이 남설악 구비구비 마다 갖가지 형상으로 다가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흘림 골은 20여 년간 휴식년제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진입로도 뚜렷하지 않고, 경사가 심해 그대로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한계령에서 오색쪽으로 내려오는 U 자형 커브 길을 2번 지나 일직선으로 내려오다 금포교 못미처 90도 급커브를 돌면 오른쪽으로 희미한 오솔길이 나타난다.
이곳도 경사가 심한 비알길이라 차를 오래 세워 둘 수가 없어 재빠르게 숲속으로 들어선다. 휴식년제를 풀면서 공원관리공단에서 진입로를 다듬고 다리를 놓는 공사로 계곡 안이 어수선하다. 사람들의 숨결이 미치지 못하던 자연속에서 길가에 널 부러진 고사목과 푸른 이끼로 가득찬 계곡의 신비로움이 펼쳐진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오른 암봉 사이로 기화요초들이 피어나고, 다래넝쿨사이로 신비스러운 여심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람난 수캐들을 불러들이는 여심폭포는 졸라맨 단속곳 풀어헤치고 은밀한 음부를 들어내고 있으니, 발정 난 남정네들의 춘정을 어이 할거나. 한 줌의 햇볕도 스며들지 못하는 흘림 골의 암벽사이로 한 송이 금강초롱이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숨소리도 거칠게 깔딱고개에 올라서면 그 유명한 남설악 만물상이 펼쳐진다.
내친김에 올라선 등선대는 신선들이 노닐던 곳으로, 수 백길 벼랑위에 솟아오른 첨봉에는 서너 사람이 쉬어 갈만한 공간으로 산꾼들을 유혹한다. 남산타워 전망대에 올라선 듯, 한계령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서북능선의 암 봉들이 기치창검을 높이들고, 주전골의 암봉들과 합세하여 신비로운 선경이 펼쳐진다. 도심지에서 오염된 오장육부가 말끔히 씻겨 내리고, 수 만가지 조각전시장에서 오래도록 머물고만 싶다.
만물상에 홀린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어, 맞은편에 우뚝솟은 무명봉에 올라서면 군계일학이라, 수많은 암봉중에서도 유난이 뾰족한 첨봉하나가 우리의 시선을 압도한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뒤로하고 가파른 벼랑길을 내려서면, 햇볕도 스며들지 못하는 음습한 등선폭포는 울창한 수림속에서 베일을 벗고, 가녀린 물줄기를 벼랑밑으로 흘려 내린다.
풀어진 마음을 추 수르는 데는 깔딱 고개 오름길이 제격인지라, 막걸리에 백세주, 매실주까지 얼근한 몸짓에 벼랑길을 만나 숨이 턱에 차도록 구슬땀을 흘린다. 남설악의 진수는 주전골 계곡이다. 날카로운 바위모서리에 뿌리를 박고 모진세월을 이겨낸 낙락장송의 늠름한 자태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단풍나무들도 찬서리가 내리는 가을이면 붉게 물든 불꽃의 향연으로, 주전골을 불태우리라.
주전폭포를 지나 십이 폭포에 이르면, 암반위를 흐르던 계곡물이 층층폭포를 빗어 놓는다. 층층폭포는 남성다운 장엄함이 아니라, 열두 폭 명주자락을 풀어 헤치고 수줍은 듯 조용히 미소 짓는 산색시로 비교된다. 우리의 일정은 십이폭포 갈림길에서 이담계곡을 거슬러 망대암산까지 다녀오기로 했지만, 신선대와 등선폭포에서 지체한시간이 길어서 주전골 계곡에서 자리를 펴고 말았다.
20여 분간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한계령 차도와 만나는 중간지점에 용소폭포가 우리를 부른다. 우렁찬 굉음소리와 함께 깊고 깊은 소를 이루고 있으니, 주전골 제일의 폭포로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금강문을 지나며, 마음을 닦고, 감질 나는 오색약수에 도착한다. 6km의 짧은 산행이지만, 자연속에 동화되어 내일을 향한 재충전의 기회로 삼고 싶다.
심설 덕유산(1614m) 산행
소 재 지 : 전북 무주군 경남 거창군
겨울산행의 계획에 따라 한라산 등반에 이어 덕유산으로 일정을 잡는다. 그동안 산행을 함께한 친숙한 산악회도 많이 있지만, 일요산행은 고속도로의 교통체증으로 돌아오는 것이 변수이다. 가능한 집에서 가까운 곳을 선정하다보니 이름도 생소한 「참 우리산악회」로 예약을 하고 창동역 1번 출구에 도착하니 시간에 맞추어 정차해 있다.
서울의 아침기온은 벌써 봄기운이 완연하다. 추위도 한풀 꺾기고, 봄이 머지않은 듯 시원한 훈풍을 맞으며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버스 내에서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모두들 꿈나라를 헤매고 있다. 덕유산은 겨울산행으로 정평이 나 있는 산이다. 소백산과 함께 세찬 눈보라 속을 헤치는 산사나이들이 성지순례와 같이 무용담의 원천이 되고 있다.
덕유산 등산로는 수십곳이 넘지만, 우리가 선택한 곳은 안성면 소재지에서 들머리로 이용하는 용추계곡이다. 덕유산을 오르는 차량들이 안성면 소재지에서 부터 밀리기 시작하여 주차장 매표소에서는 인산인해를 이루며 원색의 물결을 이룬다. 겨우내 내린 눈으로 등산로만 빼 꼼이 길을 티 우고, 계곡의 얼음장 밑에서도 봄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눈구덩이 사이로 뚤 린 등산로는 사람들이 비켜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협소하고, 완만한 경사이지만, 빙판길을 피할수가 없다. 등산에 서툰 초보자가 앞에서 주춤거리면, 마냥 느려지는 행렬 속에서 마음만 급해진다. 유달리 큰 덩치에 비해 폭포가 별로 없는 덕유산의 유일한 칠연폭포는 매표소를 지나 1km쯤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이정표가 나타난다.
심설산행으로 행보도 느린데다 겨울해가 짧은 탓에 그곳을 다녀오기가 엄두가 나지 않아 그대로 통과를 한다. 2km를 지나면서 경사도 가팔라지며 길가에 주저앉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추월할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남들이 쉴 때 쉬지 않고 꾸준히 오르면서 페이스를 조절하면 큰 힘들이지 않고 시간을 단축할 수 가 있다. 계곡을 벗어나 능선으로 오르면, 시원한 바람에 흐르던 땀도 멎어 버리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행렬도 여유가 생긴다.
고도가 높아 질수록 거세지는 바람과 미끄러운 눈길로 체력소모가 심해진다. 여간해서는 착용하지 않는 아이젠으로 무장을 하고 털벙거지까지 뒤집어쓰고 보니, 우주공간에서 날아온 외계인같이 우수꽝 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추위를 견디자면 무엇인들 못하랴. 1시간 20분 만에 덕유산의 등줄기인 동업령에 올라서면 겨울의 백미라 부르는 덕유산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세차게 몰아치는 맞바람속에서, 단 몇 분이라도 참아내기 어려운 추위를 피해 언덕 아래로 내려선다. 바람을 피해 몰려든 인파들, 남극의 펭귄들처럼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고 있다. 눈구덩이가 내 집 안방인양 옹기종기 둘러앉아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의 틈을 비집고 자리를 잡은 나도 한 무리가 되어 누릉지 깡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맛이 일품으로 곁들이는 고량주의 화끈한 열기는 언 몸을 녹이는 데는 더 할 나위없는 영양 간식이다. 남쪽으로는 무룡산을 거쳐 남덕유산으로 이어지고 우리가 진행할 향적봉은 북쪽으로 5km의 지근거리에 있어 완만한 주능선의 눈길을 걷게 되는데 티 없이 맑은 하늘아래 태양이 빛나고 있지만 호남 벌의 거센 북서풍이 눈보라를 일으키며 무서운 속도로 휘몰아치는 맞바람은 겹겹이 옷을 껴입고 완전무장을 하였지만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추위에는 속수무책으로 악명 높은 칼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덕유산의 진수를 만끽한다.
백암봉 오르는 길은 남 덕유에서 치고 오는 건각들의 지친 몸을 사정없이 밀쳐내는 구간으로 어머니의 젖무덤같이 펑퍼짐하게 보이지만 한없이 높아 보이고 겨우내 내린 눈이 쌓이고 쌓여 오가는 발자국에 다져지기를 수 만 번 계단의 침목이 눈 속에 잠이 들고 터널 속을 헤집고 정상에 올라서면 끝없이 펼쳐지는 덕유 평전과 백두대간의 분기점으로 동쪽으로 90도 회전하여 신 풍령으로 달려가는 산맥은 삼 도봉을 거쳐 설악산까지 이어지고 남으로 남덕유의 정수리를 지나 지리산까지 이어진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며 남북으로 길게누워있는 덕유의 연봉들에 가로막혀 서해안에서 밀려온 구름들이 덕유 평전을 넘지 못하고 쏟아 부으니 많은 비와 눈이 내려 호남 벌을 살찌우고 강원도의 고산준령에는 눈이 없어도 지리산과 덕유산에는 이듬해 봄까지 눈이 쌓여 구상나무와 철쭉나무, 원추리가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5-6월에는 철쭉의 화려한 빛깔로 7-8월에는 덕유 평전의 너른 분지에 원추리의 향기로 벌 나비를 불러 모으는 천상의 화원을 이루니 항상 마음속의 고향을 찾게 된다.
혹독한 추위로 발걸음은 느리지만 덕유 평전의 너른 분지 위를 걷는 묘미는 겨울산행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묘미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길을 양보하면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름다운 메아리가 되어 내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주고 산 꾼들만이 갖는 여유로, 한길 넘는 눈구덩이 속에서 거센 바람에 맞서는 구상나무의 대거리와는 사뭇 다른 풍류를 갖게 된다.
산행시간 4시간 만에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에 올라서니 이곳 또한 많은 인파로 입추의 여지가 없이 정상 표지 석을 중심으로 기념촬영을 위한 행렬이 수라장을 이루고 있으니 점잖게 차례를 기다리다가는 해가저도 끝이 보이지 않을 난장판으로 단체사진 찍는 이들의 사진사로 변신을 하고 틈새를 이용하여 찰칵 실례를 할 수밖에.......
무주구천동에서 백년사를 경유하는 등산로를 이용한다면 엄동설한의 악조건 속에서 향적봉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릴 수가 없지만 무주리조트에서 몇 년 전부터 10분 거리에 있는 설천봉 까지 슬로프를 만들면서 곤도라로 일반 관광객을 실어 나르다 보니 덕유산의 아름다운 장관을 만끽할 수 있게 개방이 되어 산 꾼들의 전유물인 향적봉의 겨울산행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1510m의 설 천봉 정상에도 스키 메니아들과 관광객, 산 꾼들이 한 무리를 이루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곤 도라 를 타려는 인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국제대회 유치를 목표로 시설된 무주리조트는 용평스키장과 함께 겨울 스포츠의 꽃을 피우며 많은 인파를 불러 모으고 백설 위를 질주하는 원색의 물결로 장관을 이루며 젊음을 만끽하는 그들이 부러워 ?아휴 십년만 젊었어도?아쉬움 속에 곤 도라 탑승으로 마음을 달랠 수밖에......
곤 도라 덕분에 2시간이상의 산행시간을 단축하고 아름다운 설경을 마음 것 감상하며 편리함을 맛보게 되지만 사시사철 수많은 관광객을 실어 나르다보면 아름다운 덕유산이 몸살을 앓고 자연이 파괴되어 되돌릴 수 없는 과오를 범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된다.
조봉(1,182m)에 올라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구름도 쉬어 넘는 구룡령 산마루에서 심호흡을 하고 아흔아홉 구비를 돌아 내려가면 하늘아래 첫 동네 미천 골에 도착한다. 이곳부터는 덩치 큰 버스는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현지에서 겔로퍼를 급조하여 짐짝 실리듯 1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태우고 달리는 비알 길에서 숨도 제대로 쉴 수없는 오징어포의 신세가 되지만 삼 십리 미천 골을 파고들면 수 억년동안 갈고 다듬어 만 가지 형상으로 빗어 놓은 기암절벽 사이로 쏟아지는 폭포와 용소가 절경을 이룬다.
미천 골에는 천연기념물로 귀한 대접을 받으며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산천어가 활개 치고 다슬기가 살아 숨 쉬는 지상의 낙원이며 백두대간이 구룡령을 가로질러 동으로 내달리며 응 복산을 일구어 내고 그 북쪽 사면으로 험준한 협곡을 형성하고 있으니 삼 십리에 걸쳐 펼쳐지는 계곡은 골골마다 절경이요. 탄산수가 풍부한 불 바라기 약수는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하여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에 의해 구전으로 전해오는 곳으로 양양에서도 가장 후미진 오지에 자리 잡고 있어 십여 년 전만해도 외부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고려 때 창건되었다는 선린원지에는 삼층 석탑을 비롯하여 석등, 흠각 전사탑, 부도 등 4점의 문화재가 있고 전성기에는 대 가람으로 스님들의 공양미를 씻는 물이 계곡으로 흘러 내렸다하여 쌀미(米)자를 써서 미천 골이라 불리고 있지만 세월 따라 사찰도 흔적만 남기고 울창한 전나무 숲속에 그림 같은 방갈로가 행락객을 유혹하며 피서 철에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숙소를 구할 수 없는 명소가 되었다.
미 천골 정자가 있는 광장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벼랑길에 걸려있어 힘이 부치는 아내와 대다수 인원들이 일찌감치 등산을 포기하고 불 바라기 약수가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내 노라 하는 17명의 산 꾼들만이 조봉을 향해 산 행 길을 열어간다.
수령이 50여년이나 됨직한 신갈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조봉은 미천골을 중심으로 응복산과 마주보고 있는 산으로 서울에서 300여 km 떨어진 첩첩산중 후미진 곳으로 아직까지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그 흔한 리본도 보이지 않고 심메마니의 발자취가 끊어질듯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급사면을 치고 오르면 완만한 분지에는 원시림들이 울울 창창 하늘을 가리고 떡취와 곰취, 꿩의 다리, 보라색 도라지꽃이 손을 내밀고 산새들 지저귀는 천상의 화원이 펼쳐진다.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나무들의 키도 작아지고 주위에 펼쳐지는 절경에 현혹되어 어렵지 않게 정수리에 올라서니 엷은 운해로 동해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서쪽으로 장쾌하게 뻗어 내린 백두대간 길 따라 3년 전 진부령에서 대청봉으로 한계령을 넘어 구룡령까지 달려온 그 길이 파노라마를 이루며 눈앞에 펼쳐진다. 한반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의 줄기를 따라 지리산 까지 달리고 싶은 욕망으로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하며 응복산 과 신 배령, 두로봉과 동대산으로 눈길이 간다.
의야 산악회의 내 노라 하는 산 꾼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누어 마시는 동동주의 짜릿한 맛이란 어디 불 바라기의 약수에 비할 손가? 희미한 족적을 따라 내려딛는 하 산길. 한낮의 열기 속에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향기에 취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선 묵정밭에는 탐스럽게 익어가는 산 딸기밭을 만나는 횡재로 심 보았다는 외침과 함께 포식을 하고 의기양양한 개선장군이 되어 시원한 계곡물로 달려든다.
굽이치는 용소에 몸을 담그고 세속의 탐욕과 묵은 때를 씻어 내리니 마음은 벌써 하늘위로 훨훨 날아오른다. 널찍한 암반위에 자리를 잡고 웃음꽃 피워 올리며 풀어 헤친 보따리에는 모두가 진수성찬이라 솔바람 불어오는 그늘아래서 산새 풀벌레소리의 향연 속으로 녹아든다.
양지바른 언덕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수 백 개의 벌집들. 세상이 모두 눈속임을 할지라도 미 천골이 만들어 내는 꿀이야말로 진짜중의 진짜 신선들이 드시는 영약이 아닐까?
오늘의 즐거움이 내일의 행복으로 산이 주는 교훈을 가슴에 안고 구룡령 휴 계소에 마련된 임업 박물관을 돌아보며 아름다운 우리강산 가꾸고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아름다운 계곡과 명산을 안내하는 의야 산악회를 더욱 사랑하고 즐거운 만남이 지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삼신봉(1,354m)의 신기루
소 재 지: 지리산 남부능선
지리산!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곳
설악산과 함께 등산 애호가들이 가장 많이 찾고 가장 많이 사랑 받는 곳으로 3개도 5개 군 16개 면의 광대한 면적에 걸쳐 자리 잡고 있는 지리산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동서로 40여 km 에 이르는 장대한 등줄기를 이루며 1,500m의 고봉이 16개나 솟아 있어 능선마다 계곡마다 수 백 개의 등산로가 거미줄 같이 얽혀 있으니 수 십 번을 오르고도 지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어 북쪽의 삼정산과 남쪽의 삼신봉이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라 하기에 지난봄 염주를 꾀듯 올망졸망 바위틈에 둥지를 틀고 있는 5개의 암자를 지나 삼정산에 올라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만복대에서 바래봉까지 지리산의 장쾌한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벅찬 감회를 맛보고 나머지 삼신봉에 오를 꿈을 간직하고 있다가 이름도 생소한 늘보 산악회와 함께 무박으로 산행 길에 오른다.
산행에는 언제든지 날씨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을 하지만 특히 오늘은 지리산의 모습을 조망하기 위한 산행이므로 쾌청한 날씨가 아니면 의미가 없으므로 각별히 신경이 쓰인다. 버스는 심야의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선잠 속에 덕유산 휴게소에 도착하여 하늘을 처다 보니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는 별빛만이 은구슬을 뿌려놓은 듯 영롱하고 부질없는 걱정도 사라지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달콤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양철통 스치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그 유명한 쌍계사의 십리 벚꽃 터널을 지나며 버스 지붕이 스치는 소리로 모두가 잠이든 하 계천 계곡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목적지를 향해 살금살금 기어간다.
04시 10분 쌍계사 주차장을 출발한 우리는 입에 재갈을 물린 듯 침묵 속에 가쁜 숨소리와 경쾌한 발놀림으로 천년 고찰 쌍계사를 꿈결에 지나치고 돌층계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외눈박이 전구의 힘을 빌어 40여분 만에 불일폭포 휴게소에 도착하니 하늘의 별들은 더욱 영롱하고 봄의 화신으로 눈 녹은 계곡물소리가 시원하게 가슴속을 열어준다. 지리산에서 가장 크다는 불일폭포의 실체는 보지 못하지만 우렁차게 들리는 굉음소리로 만족하며 사면 길을 거슬러 오르다보니 계곡물 소리도 잦아들며 산 꾼들이 가장 싫어하는 너덜지대를 통과하며 먼동이 터오고 응달 편에 쌓인 눈길이 고단한 발걸음에 족쇄가 되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6시 50분 상불 재에 올라서니 어둠 속에 걸어온 계곡의 실체가 드러나며 쌍계사가 아련히 내려다보이는 지리산 자락이 깊은 계곡을 품에 안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며 시원한 바람결에 흐르던 땀방울도 잦아든다.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며 지리산이 기지개를 켜는 순간.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일출을 기다림은 소녀의 기도처럼 순진무구한 마음이다. 회색 빛 띠가 산마루에 걸치며 그 속에서 붉은 점 하나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살그머니 고개를 내밀더니 곧 이어 불덩이로 활활 타오르며 온 누리를 비추고,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아래 황금색으로 물들이는 암 봉들. 불무장등 넘어온 산줄기가 화개천 따라 섬진강으로 이어지고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운해 까지 우리의 눈을 황홀하게 하며 불일폭포 기어오르며 흘린 땀방울을 보상이라도 하듯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전망 좋은 바위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곁들이는 간식은 일미를 더하고 조릿대가 무성한 능선 길을 오르며 고도가 높아질수록 주위의 경관이 아름답게 펼쳐지는데 그냥 지나치기 쉬운 쇠 통 바위 구멍으로 올라서면 도인 촌으로 유명한 청학동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상불 재에서 쇠 통 바위로 내 삼신봉, 외 삼신봉이 바람막이 울타리가 되어 속세를 떠난 별천지로 환인, 환웅, 단군왕검 세분을 모신 삼성궁은 10여 만 평에 이르는 너른 분지에 한풀선사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이 엄격한 수행을 하는 곳으로 현대판의 무릉도원이 바로 이곳이 아닌가 싶다.
키를 넘는 조릿대 밑으로 깔려있는 빙판길은 겨우 내 오르내린 발자취 따라 반들거리는 위험한 구간으로 잠시라도 방심 할 수 없는 곳, 조심스런 발길로 오르락 내리락 1,354m의 정상에 올라서니 지리산 제일의 조망터로 내 삼신봉의 정수리가 아닌가? (8시)
보라 !
저 장쾌한 지리산의 연봉들.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웅장하게 솟아오른 천왕봉, 제석봉 아래 장터목산장이 다소곳이 머리 숙이고 유월이면 붉게 타오르는 세석평전, 하동과 함양을 넘나들던 벽소령, 삼 도봉 지나 반야봉이 우뚝한데 노고단 운해가 아름다워라.
웅장하고 장엄한 저 모습을 보기 위해 얼마나 마음조리며 기다려 왔던가?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은 우리 민족의 애환을 간직한 곳으로 동학혁명과 의병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하고 해방 이후 빨치산 시절 남부군으로 유명한 이 현상의 부대가 이곳에 은거하며 마지막 항전을 하던 곳으로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삼신봉의 정상에는 춘삼월의 칼바람이 불어오지만 장쾌한 파노라마에 혼미하여 내려 설줄 모르고 영신 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유혹의 손길을 보내는데 남으로 백운산이 운해위로 우뚝 솟아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시다.
세 갈래길 삼거리에는 쌍계사 9,7km 세석산장 7.5km 청학동 2.8km의 이정표가 선명하고 신라의 최치원 선생이 삼 신봉에 오르다가 용변을 보기위해 갓을 걸었다하여 이름 지어진 갓걸이 재를 지나 청학동으로 내려오는 길옆으로 나무의 밑둥치에 여러 가닥의 비닐호스가 달려 있으니 고로쇠의 수액 을 받는 것도 좋지만 국립공원에서 만큼은 자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30분 만에 청학동 입구에 도착하여 옛 정취를 찾아 심산계곡에 있는 도인 촌으로 향했지만 현대 문명에 물들어 저자거리를 방불케 하며 자동차의 경적 소리와 휴대폰의 신호음이 골짜기에 울려 퍼지고 가전제품이 홍수를 이루고 있으니 실망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다.
맨 상투에 도포자락의 도인들,
초가집의 평상에 자리를 잡고 인심 좋은 주모가 따라 주는 동동주 한 사발에 위안을 삼으며 서둘러 하산을 하여 버스에 오르며 6시간의 삼 신봉 산행도 마감을 하고 일출과 함께 지리산의 아름다운 조망을 가슴에 안고 섬진강 가에 피어나는 매화향기에 취해 꿈속으로 향한다.
눈길 따라 민주지산
민주지산(1,242m), 석기봉(1,205m), 삼도봉(1,172m)
소 재 지: 충북 영동군, 전북 무주군, 경북 김천시
추적추적 내리던 겨울비도 멎고 먼동이 터 오는 동녘 하늘에는 샛별이 유난히도 반짝이며 논현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상쾌하기만 하다. 일 년여 만에 찾아오는 정토 산악회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바뀐 탓인지 낮선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고 말벗 할 사람 하나 없는 어색한 분위기속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버스 안은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다.
오늘의 산행 깃 점인 민주지산은 각호봉과 석 기봉을 양옆으로 거느리고 백두대간이 지나는 삼 도봉에서 서북쪽으로 갈라진 산맥으로 1,000m 가 넘는 고산준령인 이곳은 수년 전 특공대가 동계훈련 도중 불상사를 당한 곳으로 겨울이면 강원도의 태백산이나 선자령 보다도 많은 눈이 내리고 덕유산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정상을 민둥산으로 만들었으니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겨울산행으로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이라 긴장도 되고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지만 여러 사람이 동행을 하는 안내산행이라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경부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황간으로 들어서니 초입부터 겨우내 내린 눈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자욱한 안개 속에 겨울잠에 빠진 시골풍경이 한가롭기만 한데 목적지를 향하는 버스는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빙판길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한다. 물 한리 종점의 너른 광장에는 영남지방에서 모여든 산 꾼들이 수 십대의 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로 만원을 이루고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거북이걸음을 하며 지난밤에 내린 눈이 아름다운 설화를 피워내는 동화속의 요정으로 포근한 날씨에 눈 벼락 까지 맞는 즐거움이 연출된다.
황룡사를 지나며 쌓인 눈이 깊이를 더하고 외줄로 다져진 등산로는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으로 12km가 넘는 종주 길을 어찌 넘을지 조바심 속에 느림보 행렬을 추월하며 질러가다 보면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구덩이 속에서 수난을 겪게 된다. 삼도봉 오르는 갈림길을 지나며 경사도 심해지고 눈길에 지친 사람들이 휴식을 하는 사이 추월을 해보지만 행렬의 끝은 보이지 않고 너덜지대에서는 앞지르기도 수월하지를 않아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짜증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가까스로 정상에 올라서니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에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펼쳐진다. 구정을 지나고 처음 맞는 휴일이라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내는 팀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전의를 불태우는 함성이 깊고 깊은 계곡사이로 울려 퍼진다. 오늘 걸어야 할 석기봉과 삼 도봉이 흰 눈을 머리에이고 유혹을 하는데 겨울의 짧은 해에 갈 길은 멀고 잠시도 지체 할 수 없어 서둘러 발길을 재촉한다.
민주지산은 3년 전 삼복더위에 올라온 적이 있지만 한 여름의 무더운 날씨에 종주를 포기하고 오늘 또 다시 도전을 하게 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점으로 되돌아 내려가고 정토 산악 팀의 십여 명이 종주 길에 나서지만 무사히 완주를 하게 될지 불안한 마음으로 석기봉을 향해 달려간다. 민주지산을 오르며 많은 힘이 소진된 탓인지 눈구덩이를 헤치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며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다.(오후 1시)
잠잠하던 바람도 점점거세지고 외길로 빼 꼼이 틔워진 등산로에서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비껴 서다보면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구덩이에 빠지기 일쑤이고 경사진 비알 길에서는 두발로 서 있기도 힘에 겨운 난관을 극복하며 안간힘을 쏟는다. 눈이 시리도록 청명한 하늘위로 솟아오른 석 기봉이 지척에 있지만 손에 잡힐 듯 뒷걸음치는 안타까움으로 몰아치는 회오리바람에 온몸이 날아갈듯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급기야는 몸의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며 속수무책으로 굴러 내리기 시작한다.
가까스로 나뭇가지를 잡고 위험한 고비는 모면했지만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에서 체력까지 고갈되는 극한 상황을 맞으며 짧은 해는 서산너머에 걸리고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이 온몸을 엄습하며 만만하게 보아오던 산길에서 겨울산행의 위험을 다시 한 번 체험하며 길옆에 주저앉아 찰떡 파이와 더운물로 허기를 면해보지만 입안에 침이 말라 삼켜지지를 않는다. 되돌아서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정상을 지척에 남겨두고 포기한다는 것이 너무도 애석하여 흐느적거리는 몸동작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로프가 걸려있는 벼랑길 을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정수리에는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반갑게 맞아주고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해냈다는 희열감으로 행복을 느낀다.
1.8km의 거리를 1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수많은 산을 다녀 봤지만 이렇게 고전해 보기도 처음이고 두려움 속에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뒤돌아보는 민주지산이 더욱 높아 보이고 서쪽으로 덕유산의 연봉들이 흰 눈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발치아래 남쪽으로 삼도봉이 대간의 중심에 우뚝 솟아오르는데 동쪽으로 물 한 계곡 너머로 직지사를 품에 안은 황악산 줄기 따라 대간길이 열린다.
10여 분간의 달콤한 휴식으로 몸과 마음을 추 수르며 완만한 능선의 무 명봉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그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완주할 수 있다는 자신감속에 조금 전의 위기상황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있으니 이 무슨 망령인가? 드디어 길고 지루하던 삼도봉 정상에 도착하니 너른 공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 해를 여는 의식이 한창이고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모습이 엄숙 하고 진지하기만 하다 (오후2시 40분)
충청도의 영동군, 전라도의 무주군, 경상도의 김천시가 접경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태종(1,414년)이 조선을 팔도로 나누며 분기점이 되었는데 지리산과 거창에도 삼도봉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으로 1,989년 삼도봉에 화합탑을 세우고 매년 10월 10일 12시에 삼도의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화합을 다지는 기원 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석기봉과는 다르게 수백 명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너른 광장에는 삼도에서 모인 수많은 인파들이 삼 도비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함성을 지르고, 경상도 쪽의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운해가 능선을 타고 넘나들며 다도해를 만들고 줄기마다 해질녘의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자연의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막힘없이 탁 트이는 전경으로 높고 낮은 산들이 파노라마를 이루며 삼도를 향하여 뻗어나가고 고산준령을 넘나드는 백두대간이 덕유산으로 황악산으로 힘차게 요동치며 살을 에는 칼바람이 살갗을 파고들어도 그 어려운 길을 완주했다는 희열감에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소백산(1,439m) 대종주
산행일시:2003년 11월 30일 소 재 지: 충북 단양군, 경북 영주시
따르릉 따르릉......
아 여보세요
김 완묵 선생님 댁이신가요?
네 그런데요
여기는 oo산악회인데요. 죄송하지만 이번 주 산행이 취소되어 전화를 드립니다.
요즈음 전문 산악회가 겪고 있는 실상으로 비수기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약속을 지켜야만 하는 것이 도리이거늘 영리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10여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는 운행을 못하게 되고 큰 기대와 희망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실망으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영암의 월출산에서 이어진 지맥으로 높이는 4- 500m에 불과하지만 두륜산과 연결된 남해의 용아릉으로 아기자기한 암봉과 억새가 환상의 나래를 펼치는 주작산과 덕룡산 종주를 위해 지난주에 예약을 하였다가 취소가 되어 이번 주에 같은 장소를 거듭 예약을 하였지만 또 다시 취소가 되었으니 허탈감으로 맥이 풀린다.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배낭까지 챙겼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일이라 부리 나게 신문을 뒤적이며 꿩 대신 닭을 찾다보니 소백산 종주 산행 팀을 발견하고 서둘러 예약을 하고나니 조금은 마음이 진정된다.
토요일 저녁10시 동대문 시장 주차장에 도착하니 그 너른 광장에 7대의 버스가 덩그러니 노여 있고 어쩌다 나타나는 등산객을 향하는 대장들의 눈빛이 애처롭기만 하다. 몇 년 전만해도 주차장이 비좁을 정도로 버스들이 줄지어 늘어서고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성시를 이루었는데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
예약을 한 소백산 행 버스도 예외는 아니어서 3개 산악회가 합동으로 차 한대를 출발시키게 된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만큼이나 무겁게 내려앉은 밤하늘은 금 새 비라도 내릴 듯 먹장구름으로 덮여있고 11월말이면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이지만 아직까지 서울지방에는 눈 한번 내리지 않고 수은주가 영상에 머물고 있으니 계절도 잊은 듯 한주일 내내 비를 뿌리고 있다. 심야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바퀴의 마찰음만이 정적을 깨트리고 선 잠속에 눈을 떠보니 어느덧 단양 휴게소 에 도착해 있다.(00시 30분) 이제 죽령까지는 20분도 채 안 걸리는 지척이라 4시30분부터 산행이 시작 된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어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며 마지막으로 점검을 한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된 뒤로는 차량들이 터널을 빠져 나가는 바람에 아흔아홉 구비를 돌아 오르는 차들이 없다 보니 그 옛날의 영화는 간곳이 없고 쓸쓸한 바람만이 불어오는 죽령고개마루에는 강한 바람과 함께 짙은 안개가 온몸을 휘감으며 한기가 느껴진다. 주차장 한구석에는 버스한대가 조용히 잠들어 있고 우리도 그 옆에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며 소등을 한 채 새우잠을 청해보지만 마음이 급한 몇몇이 행장을 꾸리고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7시에 날이 샌다고 하니 4시간 반 동안 어둠속을 헤치다 보면 종주길 의 반을 지나치게 되고 산을 오르는 의미가 무엇인지? 수십 번 설악산을 오르며 설악폭포 구경 한번 못 하듯이 무박에서 장거리산행을 하자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야간산행을 하게 되지만 4시30분에 출발을 해도 2시간이나 어둠속을 헤쳐야하는데 왜들 서두르는지 모를 일이다.
잠시 후 버스한대가 도착하여 곧바로 산행 준비를 서두 루니 우리 차에서도 웅성웅성 모두들 서둘기 시작하고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남들에게 뒤처지기 싫어 산행 길에 나서고 말았다.(03시 35분) 손전등도 짙은 운무 속에서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희미한 불빛만이 발밑에 어른거리고 천문대까지는 산 꾼들이 제일 싫어하는 깔딱 고개 오르막길도 아니고 너덜지대 바위 길도 아니요 굽이굽이 돌아가는 경사진 시멘트 길이다.
7km에 걸쳐 이어지는 시멘트길이 처음부터 우리를 고단하게 하고 가뿐 숨소리와 무거운 발걸음만이 새벽하늘에 정적을 깨트리며 더듬더듬 천문대를 향한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한 시간여를 걸어왔을까. 제 2 연화봉 갈림길 을 올라서니 강한 바람이 불어오며 눈앞이 활짝 열리고 머리위에서 쏟아지는 별빛이 화려하게 새벽하늘을 수놓으며 산등성이에 높이 솟아오른 천문대가 어둠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발밑을 휘감던 운무도 계곡으로 밀려나고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별들의 향연에 동화되어 포장길에 지친 심신이 되살아나 콧노래 부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5시10분 천문대에 도착하니 어둠속에 졸고 있는 죽령 7km, 비로봉 4,5km의 이정표가 반겨준다. 곧 바로 철쭉나무 숲길로 들어서면 말끔하게 단장된 포장길도 끝이 나고 험한 등산로에는 나무판자를 깔고 계단을 설치하여 철쭉나무를 보호하고 있지만 삐죽삐죽 솟아나온 돌과 나무뿌리에 걷어 채이며 방향감각도 잊 은채 앞사람의 불빛 따라 걷고 또 걸으며 계곡 속에서 운무와 실랑이를 한다.
저 앞에 높이 솟은 봉우리 희미한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계단, 제1연화봉 정상에는 천문대 2km, 비로봉 2,5km의 이정표가 우리를 반겨주고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며 어둠도 서서히 물러날 기미를 보이는데 덩달아 우리의 마음도 조급해 진다(6시 05분)
백두대간이 북에서 남으로 달려오다 태백산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덕유산까지 가는 중에 처음으로 솟아오른 산이 소백산으로 여름에는 습한 남동풍이 불어오고 겨울에는 한랭한 북서풍이 불어 많은 눈이 내리고 모진 바람에 시달려 큰 나무들이 자랄 수 없는 환경 탓에 키 작은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244호인 주목을 보더라도 다른 곳과는 달리 작은 키에 모질게 자라고 있으며 산 전체가 어머니의 젖무덤같이 부드러운 육산으로 6월에는 그 너른 분지위에 수많은 식물들이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십 승 지지 중에 제일지가 있는 명산으로 87년 12월 14일 제18호 국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었다.
제1 연화봉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할 때 주위의 사물들이 기지개를 켜며 먼동이 터오고 민 백이재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에는 하얀 서릿발이 솟아나고, 철쭉나무에 피어난 상고대는 화려한 산호 밭으로 변신을 하여 주위를 아름다움으로 수놓으며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운해가 다도해의 섬들을 빚어내니 밤새워 걸어온 고통이 한순간에 환희로 바뀐다.(06시 30분)
무명 봉에 올라서면 비로봉이 지척에 바라보이고 광활한 평원위로 수 만평의 주목군락지가 자생하고 있는데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초겨울의 세찬바람에 주목들도 몸을 움츠리고 정상에 오르기 전에 해가 솟아오를 것 같은 조바심에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전망 좋은 암반위에 자리를 잡고 일출을 기다리며 시린 손 호호 불며 배낭을 열어보니 엊저녁 동대문 포장마차에서 산 순대가 모락모락 김을 뿜어내며 군침을 돌게 한다. 추위에는 독주가 제격인지라 고량주(56도)를 입안에 털어 넣으니 목구멍을 타고 내리는 화끈한 열기에 뜨끈한 순대는 찰떡궁합으로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든다.
잠시 후 운해사이로 불끈 솟아오르는 태양이 소백산의 정상을 붉게 물들이고 삼라만상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다.(07시 10분)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의 경계지점인 정상은 비로사에서 올라오는 길목으로 커다란 표지석이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시고 죽령에서 11,5km 지점으로 아직 절반도 못 왔는데 일출과 간식 사진 찍기에 많은 시간이 지체되어 후미로 처진 우리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한다.
국망봉을 향해 높고 낮은 봉우리를 넘으며 중간그룹으로 합류를 하여 한숨 돌리고 뒤돌아보는 능선은 부드러운 곡선미로 우리를 유혹하는데 사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너무도 시원하여 저 멀리 천문대 너머로 도솔봉, 묘적봉까지 하늘 금을 그으며 이어지고 북으로 선달산 그 너머로 태백산의 자태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니 이런 날이 일 년에 몇 날이나 될까?
소백산에서 유일하게 암봉으로 이루어진 국망봉에 도착하니 08시34분, 죽령에서 15,5km지점이다. 캔 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발길을 재촉하면 0,6km지점에 구인사 창건주인 상월조사를 기념해 상월 봉으로 부르고 있는 1,394봉에 오른다. 이곳에서의 조망도 압권으로 대간 길을 따르다 보면 늦은맥이 재 삼거리에 도착하게 되는데 직진을 하면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구인사 가는 길목으로 이정표에는 형제봉 10,6km만 표시가 있고 구인사 구간의 표시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09시20분)
오늘의 구간이 1300m이상의 높은 곳을 지나게 되지만 완만한 경사에 부드러운 흙길이라 큰 어려움은 없지만 19km의 멀고도 먼 길을 걷다보니 피로가 누적되어 무뎌지는 발걸음을 추 수리기 위해 신선봉아래에 자리를 잡고 간식을 들며 휴식을 한다. 버스의 옆자리에서 함께 왔다는 인연으로 음식도 함께 나누고 대화도 나누며 고행 길의 동반자가 되어 어려운 산길도 수월하게 넘으며 민봉을 지나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1244봉에 올라서니 구인사 5,3km의 이정표가 우리를 반겨주고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으니 고생길도 끝이 난 셈이다.(10시 36분)
1244봉에서 서쪽으로 산세를 자세히 보면 구봉 팔 문이라 하여 9개의 산줄기가 뻗어 내리고 능선사이로 8개의 협곡을 이루고 있으니 위쪽으로부터 아곡문봉, 밤실문봉, 여의생문봉, 뒤시랭이문봉, 덕평문봉, 곰절문봉, 배골문봉, 귀기문봉, 새발 문봉과 그 사이로 아곡문안, 밤실문안, 여의생문안, 덕평문안, 곰절문안, 배골문안, 귀기문안, 새발문안으로 풍수지리상 영험한 곳으로 천태종의 본산인 구인사가 제3봉인 여의생문봉 끝자락 금계포란 형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 범상치 않은 곳이다.
여의생문봉과 뒤시랭이문봉 사이로 난 제삼협곡인 여의생 문안으로 들어서면 하늘을 찌를 듯이 깍 아 지른 벼랑사이로 급경사 너덜지대가 이어지고 다래넝쿨 머루넝쿨이 하늘을 가리는 음습한 계곡이 별천지를 이루는데 잠시 후 계곡물 소리가 들려오고 반가운 마음에 세수하고 머리감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하류로 내려가면 임도와 함께 평화로운 보발리 마을이 나타난다.(11시 20분)
우측으로 임도를 따라 10여분을 가다보면 여의생문봉에서 내려오는 산줄기가 임도로 인해 끊어져있는데 왼쪽으로 뻗어나간 능선 길에 희미한 족적을 따라 들어서면 가파른 봉우리가 나타나고 초겨울답지 않은 따듯한 날씨에 지친 몸으로 숨이 턱에 차도록 안간힘을 쓰며 정상에 올라서지만 애타게 찾고 있는 구인사는 보이지 않고 또 다른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저 높은 곳을 어찌 넘는단 말인가?
가까스로 정상에 올라서니 소나무 숲 사이로 가지런히 손질된 묘소가 나타나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품위 있게 조성된 이곳이 구인사를 창건하신 상월조사의 법체를 모신 적멸궁이다.( 11시50분)
끊임없이 이어지는 참배객의 행렬들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가파른 벼랑에는 수천 개의 계단이 갈지자로 이어지고 그 아래로 펼쳐지는 구인사의 전경은 좁은 협곡에 5-6층의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고 60,000여명이 상주 할 수 있고 시간당 6,000명의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니 신앙의 힘이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제일위에 있는 건물은 대조사전으로 3층 건물에 4만장이나 되는 황금기와로 치장을 하고 중앙에 상월조사의 금 동상을 모신 곳으로 엄숙한 분위기속에 향내가 그 윽 히 피어오른다.
수많은 건물들의 회랑을 돌고 돌아 일주문까지 내려오는데 는 30분 이상 소요되는 대가람으로 기원 6세기경 중국의 천태지자께서 천태 산에서 개창을 한 이래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문왕의 4째 왕자이신 대각국사 의천이 불교에 귀의하여 송나라로 구법의 길을 떠나 천태법화사상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천태종을 개창하였으며 찬란했던 고려불교는 조선조의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위축되어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일제시대 의 탄압으로 황폐화된 것을 상월대조사가 소백산 연화지에 구인사를 창건하고 천태종의 총본산을 중흥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주차장에 도착하며 9시간 35분의 대장정도 마감을 하고 26km를 걸어오는 동안 쌓인 피로도 구인사를 지나오며 즐거움으로 변하고 꿩 대신 닭을 잡으려다 봉황을 만났으니 행운의 여신을 따라 행복의 나래를 활짝 핀다.
눈 속을 헤치며
- 능경봉(1,123m), 고루포기산(1,238m) -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평창군 도암면
가로수의 앙상한 가지에도 눈망울이 솟아 나오고 출근길의 활기찬 모습에서 봄이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음에 겨우내 움 추렸던 몸을 활짝 펴고 새로운 활력소를 찾아 모처럼 미투리 산악회를 찾았지만 노란 버스 우등 좌석엔 한사람씩 앉아도 자리가 남아 허전하지만 고정 멤버들이 키나바루 원정으로 자리를 비웠으니 그럴 수밖에......
둔 내 터널을 지나며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눈의 고장답게 흰 눈에 덮인 마을이 평화롭고 횡계리를 지나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하니 그 옛날 화려했던 영화는 어디로 가고 고속도로에서 지방도로로 격하되는 비운을 맞으며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움에 가슴이 아려온다. 시류 따라 움직임이 세상인심이라 하지만 모두들 등 돌리고 떠난 자리엔 겨우내 내린 눈으로 휴게소 지붕위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고 고개 마루 밑으로 뚤 린 터널을 관통하여 강릉까지 순식간에 내 달리니 대관령 산마루에 불어오는 모진 바람에 옛 정취도 날아가고 만다.
파 아란 하늘, 그 아래 펼쳐지는 설원에는 빼 곡이 들어찬 상수리나무와 전나무사이로 백두대간을 오르는 길이 선답자 들의 발자취 따라 빼 꼼이 길을 틔우고 가파른 비알 길에서는 길게 늘어진 로프에 의지하면서도 미끄러지기 일쑤이니 시작부터 어려움의 연속이다. 평소 체력단련의 일환으로 계단을 오를 때 두 계단씩 오르는 습관을 기르다보니 실제 산행에서 속도는 느리지만 큰 보폭으로 일행들과 보조를 맞추게 된다. 하지만 지난번 민주지산을 오르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눈이 많이 쌓인 오르막에서는 보폭을 크게 하면 체력소모가 많아 빨리 지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폭을 짧게 하여 산행을 하여보니 체력소모도 적고 컨디션 조절에도 무리가 없이 일행들의 선두에서 눈길을 헤쳐 나간다.
눈이 시리도록 청명한 하늘 아래 겨우내 내린 눈이 쌓이고 쌓여 거대한 성채를 이루고 동화속의 루돌프 사슴이 썰매를 끄는 설경 속에 들어온 듯. 환상의 세계를 연출하며 이곳에서 찍은 사진은 명함의 전면을 장식하는 나의 분신이 될 줄이야. 높은 키의 상수리나무가 눈 속에 뭍 혀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정상석도 겨우 머리 부분만 내밀고 있다.
눈의 천국에서 내려오는 비알 길은 넘어져도 자빠져도 다칠 염려 없는 신 나는 썰매 장에서 동심의 나래를 펴고 안부에 도착하면 오가는 등산객들의 염원으로 쌓아올린 돌탑이 하얀 솜이불 둘러쓰고 한겨울 깊은 잠에 취해 이곳을 찾는 길손들에게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치며 횡계치에 도착한다. 지금은 희미한 오솔길로 흔적만 남아 있지만 그 옛날 강릉에서 평창으로 넘나들던 고갯길로 숱한 애환을 간직한 곳으로 낙락장송 드리운 너른 쉼터가 우리를 반겨주고 물 한 모금 마시며 숨을 돌리고 전망대 까지 이어지는 깔딱 고개 오름길에서 안간힘을 쏟는다.
어려울수록 돌아가라는 옛 말대로 천천히 눈(雪)속에 도장을 확실하게 찍으며 눈 속을 헤치다 보니 가파른 전망대 정상에 올라서게 되고 세파의 찌든 가슴속이 후련하게 열리며 북으로는 우리가 힘들여 걸어온 그 뒤로 선자령과 수백만평의 대관령 목장이 펼쳐지고 백두대간 길 따라 황병산과 동대산, 노인봉의 연봉들이 하늘로 치솟고 왼쪽으로 오대산의 바로봉과 호령봉, 계방산을 가로질러 운두령을 넘어서면 보래봉과 회령봉 그 너머 태기산까지 한강기맥 줄기 따라 파노라마를 이루며 서쪽으로 달리고 남쪽으로는 고루포기 정상이 지척에서 손짓을 한다.
어려운 고 빗길을 지나왔다는 안도감으로 우리 일행들은 너른 공터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끄른다. 이곳저곳에서 쏟아지는 먹 거리들이 또 다른 즐거움을 연출하며 잠시 후 완만한 능선 길을 헤치며 고루포기 정상에 올라서면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용평스키장. 이곳에서는 전국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겨울 스포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스키장으로 발왕산 정상까지 시원하게 민 대머리로 만들어 수 km에 이르는 슬로프, 광활한 설원 위를 질주하는 스키 메니아들의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이 후련하고 동화속의 진풍경이 연출된다.
꿈의 동산인 이곳에서 2010년 다시 한 번 지구촌의 축제인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아래 I. O. C 심사위원들의 실사를 받고 있으니 88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또 한 번의 쾌거를 이루게 될지 큰 기대 속에 우리 모두 성원을 보낸다. 다시 남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닭 목재를 지나 화란봉에 이르고 청옥 두타의 연봉을 지나 함백산과 태백산으로 겹겹이 산맥을 이루며 달려가고 동해의 푸른 물결이 우리 국토의 희망을 열어준다.
왁자지껄 한 바탕 웃음 속에 시원한 정 상주를 한 순배씩 돌이며 대 간길 접어두고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전신주가 있는 갈림길에서 스키장 쪽으로 행보를 내 딛는다. 발치아래 횡계리 실내체육관이 지척에 보이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적었던 탓인지 눈길이 변변치를 않아 허리 까지 빠지는 눈 속에서 러셀을 하며 길을 만들고 한 시간의 사투 끝에 마을로 내려서니 따듯한 봄날이 따로 없다.
우리의 겨울산행도 4시간 30분간으로 마감을 하고 따끈한 우거지 국에 언 몸을 녹이며 한겨울 눈밭에서 다져진 체력으로 삼복더위를 이겨내고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희망에 찬 내일을 향해 달려간다.
함백산(1,572m)에 핀 설화
소 재 지: 강원도 -태백시. 정선군. 영월군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 레이는 성스러운 곳.
하얀 눈 속에 우뚝 솟아오른 그 곳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영험한 기운이 서려 있기에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설화 속으로 몸을 내던진다.
태백산의 명성에 가려 찾아오는 발걸음이 뜸하다보니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곳이지만 속살을 살짝 들여다보면 70년대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석탄의 보고로 후미진 산골에 철로가 놓이고 산 비알에는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탄광의 식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곳이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에너지 정책이 바뀌면서 버려진 탄광에는 찬바람만 불어오고 천덕꾸러기였던 산간 마을이 카지노로 대표되는 강원 랜드가 들어서며 활기를 되찾고 있다.
궁벽한 산 비알에 현대식으로 건설되는 건축물. 스키장과 골프장까지 완공이 된다면 다시 한 번 그 옛날의 영화를 누리게 될지 기대해 볼만하다.
남한에서 7번째로 높은 함백산은 강원도의 산간오지에 교통이 불편하여 개인적으로는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에 찾아오기가 어려운 형편이라 산악회와 동행을 해야 하지만 그 또한 여의치를 않아 애를 태우다 백두 산악회와 연결이 되어 만사 접어두고 집을 나섰다. 전국적으로 눈이 내리고 있는 와중에 태백산 눈꽃 축제로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영월 땅으로 몰려들고 도로가 빙판길이 되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으니 이러다가 산에도 오르지 못하고 되돌아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으로 애간장이 녹아내린다.
그래도 기사의 노련한 운전솜씨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며 천년 사찰인 정암사를 지나게 되는데 1300여 년 전에 신라의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의 계시에 따라 큰 구렁이를 잡아내고 그 자리에 절을 짓고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셨다고 하는 곳으로 울창한 송림 속에 자리 잡은 적멸보궁을 직접 둘러보지는 못하고 차창 너머에서 바라보며 아쉬움을 남긴다.
고한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만 항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개로(1,280m) 가슴을 조리는 곡예 운전으로 많은 시간이 지체된 가운데 무사히 고개 마루에 도착을 한다. (12시 10분) 겨우내 쌓인 눈으로 철쭉나무와 물푸레나무의 절반은 눈 속에 뭍이고 잔가지들만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눈의 천국에서 포근한 날씨에 바람까지 잠잠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산행 길에 나선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구덩이 속에서 빼 꼼이 틔워진 길을 따라 전국에서 몰려든 수백 명의 행렬이 느림보 걸음을 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늦은 시간에 싸리 재 까지 언제 넘을지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에 조바심이 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람도 거세지고 온몸이 얼어붙는 강추위 속에 하나둘 추월을 하며 정상으로 향하는데 키 작은 잡목들이 북풍한설에 모진 목숨 이어가는 애절함 속에 목 놓아 슬피 울어대지만 오뉴월 호시절이 돌아오면 기화요초가 피어나는 천상의 화원에서 벌 나비를 불러 모으는 화려한 축제가 펼쳐질 것이니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광야를 걸어가는 모습이야 평화로워 보이지만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구덩이 속에서 엎어지고 자빠지는 괴로움은 실제로 당해보지 않고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가까스로 정상에 올라섰지만 세차게 불어오는 눈보라는 주위를 온통 집어 삼키고 체감온도 영하 20여도의 맹추위는 빼 꼼이 틔워진 눈 속을 후벼 파는 칼바람 속에 양주 한잔으로 몸을 녹이며 발 거음을 재촉한다.
비몽사몽간에 정상을 지나 안부에 내려서서 몸을 추 수 려 보지만 매서운 추위 속에 카메라의 건전지도 얼어버리고 온몸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리는 설화가 꽃을 피우는 혹독한 시련 속에 어제는 태백에서 오늘은 함 백으로 풍운아의 발걸음이 백두대간 고산준령을 넘나들지 않는가? 중 함 백으로 내려서는 비알 길에서 히프스키로 미끄러지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설화로 피어나는 구상 목의 화려한 자태는 꿈속에서나 만나보는 환상의 세계를 연출한다.
거센 눈보라 속에서도 키를 넘는 눈 속을 헤치고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는 산죽의 푸른 잎이 독야청청 고운자태를 뽐내고 싸리 재에서 올라오는 안면 있는 산객들이 반가워 두 팔 벌려 환호하며 정암사로 내려가는 쉼터에 도착한다.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은 대봉에 올라서면 백건 산악회에서 달아놓은 손바닥만 한 안내표지로 싸리재가 멀지않았음을 확인하고 어렵고 힘든 고 빗길을 용케도 지나왔다는 안도감으로 새로운 용기를 얻어 급사면 비알 길을 내려선다.
드디어 싸리 재
고한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38번 지방 도로인 이고개의 표고가 1,268m로 웬만한 산들의 정수리보다도 높아 초겨울 눈이 한번 내리면 삼동이 다가도록 교통이 두절되는 교통의 사각지대로 수년전 두문동 터널이 개통된 뒤로는 인적이 끊긴 적막강산에 제설작업도 없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으로 별천지를 이루고 4km가 넘는 2차선 포장길에 허벅지 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치며 두문동 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은 허공을 내딛는 무력함으로 아득하게 멀어만 간다.
지리산 당일종주 (약 40km)
소 재 지: 경남 -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 전북 - 남원시 전남 - 구례군
지리산은 3개도 5개 군 16개면에 걸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에서 면적이 가장 큰 민족의 영산으로 동쪽의 천왕봉을 중심으로 서쪽의 반야봉까지 장대한 산맥을 이루며 1500m이상의 고봉이 16개나 되는 웅장한 산새를 자랑하며 백두대간의 남쪽 시발점으로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33km, 중산리까지 7km를 합해 장장 40km에 달하는 장거리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1박2일로 종주를 하고 있지만 요즘 들어 백두대간을 시작하는 이벤트행사로 몇몇 산악회에서 당일종주를 시도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등산에 자신을 갖지 않고는 도전 할 수없는 마라톤 코스에 버금가는 험난한 철인 경기라 할 수 있겠다.
국내의 웬만한 종주코스는 거의 경험을 갖게 되고 지리산 당일종주라는 새로운 목표가 정해 ?을때 힘에 벅차다는 것을 알면서 도전해 보겠다는 욕망이 가슴속 깊이 자리 잡으며 결전의 순간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10여일 전부터는 무리한 운동도 자제하며 절제된 생활로 종주코스의 난이도와 예상시간표까지도 자세하게 점검하며 13시간대에 완주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까지 마련하였다.
2000.11.11. 21시
스산한 초겨울의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며 가로수의 은행나무 잎들도 낙엽이 되어 땅위로 뒹굴고 귀가 길을 재촉하는 이들의 분주한 발걸음을 뒤로하고 잠실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한솔관광버스에 오르니 박종철 대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출발 시간이 되어 주위를 살펴보니 30~40대가 주축을 이루며, 최고령자는 65세 로 어림잡아 3번째는 되는 듯(57세) 싶으니 긴장이 더 될 수밖에 그 중에는 여자도 4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오늘의 이 순간을 위해 한 달 전에는 지리산의 심메마니 능선으로 반야봉에 올라 피아골을 연결하는 종주(9시간)코스도 다녀오고 강천산으로 민둥산으로 다니며 체력단련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은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박대장의 인사말이 동대문에서 내 노라 하는 분들이 모두 모였으니 성공적으로 모두 완주 할 것으로 믿으며 시속 4km의 속도를 유지 해야만 완주가 가능하며 예정시간에 미달되면 세석산장에서 거림으로 중도 하산할 수밖에 없다는 주의사항과 5분이상의 휴식은 삼가해야하며 연하천 산장까지 4시간30분, 세석산장까지 8시간30분 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자세한 설명이 계속된다.
소등된 버스 안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쥐 죽은 듯이 조용하고 선잠을 청해보지만 천리만리 달아나고 주마등 같이 스쳐가는 상념 속에 부질없는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초조한 마음으로 후회도 해 보지만 어렵고 힘든 고비를 넘기고 정상에 오를 수만 있다면 새로운 인생의 활력소가 되어 젊음을 보장 할 수 있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자아실현의 성취감으로 활기 넘치는 상상의 나래를 펴며 심야의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지리산 휴게소에서 야간산행에 필요한 물품을 점검하고 성 삼재에 도착하니 2시30분. 인원점검과 동시에 천왕봉을 향해 출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보름달이 밝게 비추고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야심한 시각, 돌을 박아 만든 포장길을 따라 한 무리를 지어 출발했지만 선두와 후미가 구분 되는 것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굶주린 맹수가 우리를 뛰 쳐 나아가듯 달려가는 그들을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으로 내 나름대로의 속도를 유지하며 노고단을 중간 그룹으로 통과를 한다. 영하의 날씨에 세찬 바람까지 불어오며 이마에 흐르던 땀방울도 잦아들고 심원계곡에서 피어오르던 안개가 보름달을 삼켜버리니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랜턴으로 불을 밝히며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달리기는 계속된다.
가벼운 발걸음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걸령에서 5명을 추월하고 앙상하게 튀어나온 돌길을 뛰어넘어 노루목, 용 수목을 지나 반야봉을 끼고 돌아 삼 도봉을 2시간 10분 만에 통과한다.
온 세상이 잠들어 있는 삼 도봉 정상.
운무 속에 모습을 감추었던 보름달이 온 누리를 비추고 지난달에 올랐던 반야봉의 웅장한 모습이 가까이 다가오며 갖가지 사연을 간직한 피아골은 더욱 어둡게만 보인다. 물 한잔 마실 겨를도 없이 심호흡으로 전의를 불사르며 달리기는 계속된다. 화개재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밑으로 한없이 이어지고 뱀사골에서 피어오르던 운무가 눈으로 변하여 우리의 종주를 축원 하는 듯 양 볼을 때리며 흩날린다.
윙윙 소리를 내며 새벽하늘에 정적을 깨트리는 구상나무의 울음소리, 강풍에 힘없이 쓰러지는 고사목의 굉음소리, 토끼봉을 오르며 거칠게 토해내는 숨소리가 교향곡을 연출하고 정상의 억새들이 세찬 바람에 파도를 이루며 서산마루에 걸려있는 보름달과 별들이 지리산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신비로움을 펼쳐 보이고 있다. 30여명이나 되는 일행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앞을 봐도 뒤를 봐도 그들의 모습은 간곳이 없다. 어차피 인생의 길도 나 홀로 가는 것이고 보면 외로움 속에서도 묵묵히 자연의 소리를 벗 삼아 달님이 만들어준 그림자와 동행으로 연 하천 산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세찬바람은 계속되고 새벽이 될수록 기온이 점점 내려가 허리춤에 찔러둔 오이를 입에 무니 오이가 캔디가 되어 서걱거리고 박카스 뚜껑을 열어보니 물 반 얼음 반으로 빙수가 되어 오이도 얼고 물도 얼고 갱엿같이 딱딱한 초콜릿이지만 그래도 믿을 건 너뿐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 달콤한 그 맛이 지친 몸에 원기를 회복 시켜준다. 털모자를 깊이 눌러 썼지만 양 볼이 얼얼하고 면장갑을 낀 손이 마비되어 오는 듯 시려온다. 오늘의 산행은 중량과의 싸움이니 불필요한 물건을 차에 두고 내리라는 대장의 지시대로 방한 장갑을 차에 두고 내린 것을 후회하며 그래도 따스한 쿨 맥스가 나의 몸을 보호하고 있으니 천만 다행이다.
잠시도 쉴 틈도 없이 높고도 험한 명선봉을 향하여 돌부리를 걷어차며 뛰다보니 등산화 끈은 왜 그리 자주 풀리는지 곱은 손을 호호 불며 힘들여 매어 보지만 얼마못가 풀어지고 나중에는 끈 매는 것조차 귀찮아 그대로 달리다보니 먼동이 터오고 첫 번째 관문인 연 하천 산장이 조용히 잠들어 있다. 깊은 산중을 헤 메다 고향집에 돌아 온 듯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 내려가니 6시25분이다. 4시간 만에 무사히 중간지점에 도착하고 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컨디션도 아주 좋아 오늘의 종주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으로 12시에는 천왕봉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여기서도 선두그룹은 만날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은 시간차이가나면 그들의 흔적을 볼 수가 없단 말인가? 10여명정도가 내 앞에 있을 거란 짐작만 할 뿐이다. 하지만 예정시간 보다 빨리 진행하고 있으며 컨디션도 좋은데 무슨 걱정이랴. 초코렛과 더운물로 목을 축이고 붉게 물들어 오는 동쪽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산장을 나와 다시 열심히 발걸음을 내 딛는다.밤새도록 달고 왔던 랜턴도 배낭에 넣고 삼각고지 사이로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른다.
이 감격, 이 환희. "지리산 당일종주" 라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걸고 달려가고 있는 나의장도를 축원 하는 듯 온 누리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능선 아래 4-5명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가 보니 다른 산악회원들로 성 삼재에서 1시에 출발 했단다. 간단히 수인사만 하고 다시 홀로 산행이 계속 된다. 상쾌한 아침이지 만 초속10m 가 넘는 강풍에 1500m 가 넘는 고봉에서 체감 온도가 영하20도는 되지 않을까?
어느덧 벽소령 산장이다.
새로 지은 벽소령 산장은 2층 건물로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지리산 종주를 하는 이들의 포근한 안식처로 남쪽의 하동군 화개면 대 성리에서 북쪽의 함양군 마천면 삼 정리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머지않아 이 길도 자동차가 넘나드는 포장길이 된다니 자연을 파괴하는 원흉이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된다. 덕평봉의 산허리를 한 바퀴 감아 돌면 길옆의 선비 샘이 목마른 길손에게 손짓을 하고 그곳을 지나 바위를 넘어 설 때 왼쪽 무릅이 시큰하여 이상한 예감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산행을 계속하는데 오르막에서는 큰 무리가 없지만 내리막의 계단을 딛게 되면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갈 길은 멀고 험한 고산준령이 즐비한데 다리에 이상이 온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으로 중도에서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중압감에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그래도 큰 불편 없이 칠 선봉을 넘고 영 신봉을 지나 하늘이 활짝 열리는 세석산장에 도착하니 길목을 지키고 있는 박대장이 격려를 해 주며 7번째로 도착했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시간을 보니 9시55분, 7시간30정도 걸린 셈이다.
세석산장
수 십 만평의 넓고 넓은 평원위에 펼쳐지는 철쭉나무 군락지.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지만 신록이 우거지는 6얼이 되면 평원 전체가 붉은빛으로 불타오르며 한 여름 야생화로 뭍 시선을 유혹한다니 상상만으로도 황홀하지 않은가? 성치 않은 다리를 이끌며 연하봉에 올라서니 구상나무 사이로 장터목산장이 눈에 들어온다. 한 다름에 산장에 가서 제일먼저 찾은 곳은 매점, 카메라의 건전지가 벽소령산장 세석산장 장터목산장 모두 없단다. 그동안 다리를 절며 힘든 고행을 한 것도 기념사진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참고 견디어 왔는데 모두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너무도 허망하여 온 몸의 힘이 쭉 빠지며 다리의 통증도 점점 심해지고 움직이는 것조차도 힘이 든다.
매점 안에는 추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아수라장이다. 얼음 박힌 김밥을 입에 넣어 보지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폐기처분하고 마지막 남은 초코렛을 씹으며 마음도 몸도 지친 상태에서 앞에 가로 놓인 장벽을 넘는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그대로 중산리로 하산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심하게 동요되는 갈등 속에서 정신이 퍼뜩 들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며 질책을 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천천히 가도 한 시간이면 갈수 있는 정상을 코앞에 두고 포기하다니 언감생심 될 법이나 한 생각이냐?
사진은 다음 기회도 있지만, 만약 오늘 정상에 오르는 것을 포기한다면 앞으로는 영영기회도 없겠지만 평생을 두고 후회할 일이 생길 테니 힘을 내라고, 빨리 일러나라고, 채찍질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한발 한발 가파른 돌계단에 각인을 하듯 힘겨운 행군이 시작된다. 철 지난 계절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정상으로 향하는 모습은 성지순례자들의 진지함으로 고통을 이겨내며 엄숙한 의식을 치루는 경건한 모습 들이다.
지리산 최고의 명물인 고사목 지대
정상을 향하는 길목에 수호신이 되어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의 고귀한 품결대로 천수를 다 하고 헐벗은 몸으로 매서운 칼바람 맞아가면서 오늘도 천왕봉을 찾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고 있다. 드디어 고사목 지대를 지나 힘겨운 사투 끝에 정상에 섰다. 기쁨에 목이 메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얼마나 험하고 고통스런 순간들이었나? 나의 나약한 두 다리가 30km라는 멀고먼 길을 넘고 넘어 드디어 천왕봉 정상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니...
장하다 김 완묵.
오늘의 이 감격은 사진으로는 증명을 못하지만 평생토록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어떠한 어려운 난관도 돌파 할 수 있는 수호신이 될 것이다.
현재시각 12시30분
육십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10시간에 도착을 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지 않은가? 배낭을 뒤져봐도 남은 것은 사과 1개 세상의 어느 것 보다도 달콤하고 감미로운 그 맛을 음미하며 하산을 서두른다. 하지만 환희의 순간도 잠시잠깐 내리막의 고통은 너무나도 큰 상처가 되어 촌보도 내딛기 힘든 아픔이 연속된다. 돌층계에 주저앉아 맨소래담을 바르고 맛 사지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정상에서의 환희와 감격은 뒷전으로 사라지고 가시밭길을 헤치는 고통으로 이를 악물고 한 계단 한 계단 정말 사력를 다해 법계사에 내려오니 오후1시40분 식은땀이 온몸을 적신다.
영광의 상처라 했던가? 엉금엉금 기어내리는 발자국마다 고난의 연속으로 칼바위에 도착하니 계곡물 소리도 들리고 돌계단도 끝이 나는 듯 평탄한 길이 보인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구세주를 만난 듯 계곡으로 내려가 머리감고 세수하고 차디찬 물속에 발을 담그니 정신이 맑아지며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하다.
포장길은 경사도 완만하고 내딛는 발걸음이 한결 부드러워지며 통증도 많이 수그러 든다. 매표소에서도 2km를 더 내려가야 주차장이고 우리를 싣 고갈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다리를 절며 차에 오르니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반갑게 맞아주고 나도 해냈다는 즐거움과 기쁨보다는 심한 고통 속에서 해방이 되고 보니 허전한 마음이 앞선다.
김치찌개에 소주를 겻 들이는 조촐한 상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식사로 기념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과 무릅 부상으로 당한 고통도 풀어지고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주마등같이 스치며 고난의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끈질긴 도전으로 완주를 하였으니 어떤 수식어를 둘러대며 자화자찬을 해도 모자람이 없을 많 큼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12시간30분에 완주. 도착시간 오후 3시
젊은이들도 감히 생각지 못하는 험난한 길을 오십대 후반의 나이로 도전한다는 자체도 가상하려니와 완주를 하고보니 내 나이는 사십대 초반으로 젊어져 있고 아픈 다리를 절룩이며 보금자리로 돌아오니 새벽1시. 늦은 시각까지 기다리는 아내의 환영을 받으며 종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는 중에 정상에서 사진도 찍지 못하고 돌아와 괴로움이 많다고 하소연하자 무릅에 찜질을 해주며 내년 봄에 다시 한 번 도전해서 멋진 장면을 찍어오면 두고두고 가보로 간직 할 테니 너무 상심 말라는 위로의 말에 새로운 용기를 갖게 된다.
힘이 다 할 때까지 매년 도전해볼 각오를 다져보며
천왕봉아! 반야봉아! 내년에 다시 보자. 그때까지 잘 있거라.
등산 코스와 소요시간
성삼재(02시 30분 출발) - 노고단(03시 15분) - 임걸령(04시) - 노루목(04시 25분) - 삼도봉(04시 40분) - 화개재(04시 50분) - 토끼봉(05시 25분) - 연하천 산장(06시 25분, 5분 휴식) - 벽소령(07시 40분, 5분 휴식) - 선비샘(08시 34분) - 세석산장(09시 55분, 10분 휴식) - 촛대봉(10시 25분) - 장터목 산장(11시 30분, 10분 휴식) - 천왕봉(12시 30분, 10분 휴식) - 법계사(13시 40분, 5분 휴식) - 칼바위(14시 25분) - 중산리( 15시)
총 산행시간: 12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