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세계/바람과 구름이 머무는곳

2. 제 1 장 - 둥지를 날아 오른새

김완묵 2007. 12. 18. 06:16
 


                                           제 1 장

                                        『둥지를 날아오른 새』


                          작은 동산(545m)에서

                                                      충북 제천시 금성면에 위치한 산. 


                          잔잔한 호수에

                          은빛 날개 반짝이고

                          뜰 안의 목련이

                          꽃대를 세우는  봄 날


                          미투리 산 꾼들이

                          작은 동산

                          양지바른 언덕에

                          제단을 모으고

                          삼가 머리 숙여

                          산신님께 인사드립니다.


                          욕심도 자만심도 버리고

                          오로지 산이 좋아

                          호연지기 기르며

                          높은 곳에 올라 겸손을 배우고

                          계곡에 내려와 마음을 비우고


                          금수강산 굽이 따라

                          임을 향할 때

                          뿌리치지 마시고

                          보듬어 주소서


                         


                        고향으로 가는 길

                 계명산(774.9m), 금봉산(일명 남산 636m)

                         소 재 지 : 충북 충주시     

십이월 하순의 기온이 따듯한 봄 날씨라면 (아침최저 영상1도 낮 최고기온8도) 이것도 기상이변이 아닐까? 깜짝 추위(영하8도)도 바람결에 스치고 3-4월에 해당하는 포근함 속에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안개까지 피어올라 어두운 장막을 드리운다. 새벽잠 설치며 집을 나선 승객(모두3명)들이 안락한 의자에 몸을 누이고 편안이 잠들어 있는 사이 새로 개통된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1시간 30분 만에 충주 터미널에 도착한다.(08시15분)


나날이 발전하는 교통문화가 초고속 시대를 열고 40년 전에는 비포장도로에 흙먼지 일으키며 하루 종일 달려가던 한양길이 이제는 출 퇴근 길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시내버스 노선도 모르고 들머리를 어디로 할까 망설이다 안개가 끼어있는 동안 남산을 넘어 산수가 수려한 계명산을 오르면 충주호와 시내를 조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택시를 이용하여 직동의 창룡사까지 가게 되었다.


고즈넉한 산사는 생각보다 제법 규모도 크다. 신라 문무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창룡사는 충주시 향토 제6호로 지정된 청석9층탑이 있다. 택시덕분에 시간도 절약하고 다리품도 덜게 되었으니 느긋한 마음으로 행장을 꾸리고 사찰 뒤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하는데, 겨우내 달고 다니는 감기로 깔딱 고개를 오르는 길이 여간 힘들지 않다.(08시 53분)


깔딱 고개에 이르니 운동시설이 마련된 공터에는 이른 아침부터 산책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노송의 그늘 따라 완만한 경사에 잘 다듬어진 산책로가 이어진다. 충주 산성까지2km 남짓 되는 거리에 중간 중간 쉼터가 마련되어 쉬엄쉬엄 한시간만에 정상에 오르게 된다. 충북 기념물 제31호인 충주산성은 삼한시대 마고선녀가 7일 만에 쌓았다하여 일명 마고성이라고 전해진다. 둘레1,120m에 높이가 5-7m로 4곳에 성문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300여m만 남아있는 상태로 신라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봉산의 정상인 이곳은 전망이 좋은 곳이지만 애석하게도 우유 빛 안개로 앞을 볼 수 없으니 애석할 따름이다. 허전한 마음을 접어두고 마지막 재로 향하는 길을 따라 충주산성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고유한 문화유산과 역사유물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것이야 우리가 해야 할 소명이지만, 그것을 구실로 자연이 파계된다면 차라리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수려한 능선이 잘리고 허물어져 굽이굽이 돌아가는 임도 따라 수 십 년 된 나무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경사진 북사면으로 지난번에 내린 잔설이 미끄러운 빙판길이 되어 곤혹스럽고, 중학교 다닐 때 천운사 근처에서 자취를 하며 일요일이면 남산에 오르던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50여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많은것이 변하고 말았다. 가파른 비알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니 이승에서 돌아 올수 없는 저승길의 분기점이라고 하는 마지막 재가 내려다보인다.(10시 30분) 

 

1시간 40여분 만에 금봉산 산행을 마감하고 마지막 재에 도착하니 충주시내에서 단양, 종민동으로 향하는 고개 길이 아스팔트로 시원하게 뚫려있다. 참전용사 전적비와 계명산자락 양지바른 언덕에 항몽 전적비가 조성돼 있다. 예로부터 충주는 삼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군사요충지로, 임진왜란 때는 신립장군이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항몽 전적비를 통해 충주읍민들의 단합된 모습을 일깨우게 되고 선조들의 주체사상에 새로운 긍지를 느끼게 된다.


1253년 (고종 40년)부터 시작된 몽고군의 침략이 6차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데 5차 침입 시 충주성에서 70일간 치열하게 전개된 공방전은 항몽 전적 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전투로 알려져 있다. 방호별감 김윤후의 뛰어난 지도력과 노비를 포함한 모든 읍민들의 단합된 힘으로 끝까지 지켜낸 자랑스러운 현장이다.


계명산 들머리에서 간식을 들며 30분간 휴식을 한 다음 11시 항몽전적비 뒤편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에 들어선다. 코가 땅에 닿도록 가파른 나무계단이 하늘로 향하고 양옆으로 전개되는 너덜지대에는 앙징스러운 돌탑들이 정성스레  쌓여있다. 30여 분간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선 곳이 615봉, 종민동 휴양림에서 올라오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잠시 땀을 들이며 휴식을 하고 싸리나무와 잡목이 무성한 능선 길을 쉬엄쉬엄 올라서니 울창한 송림사이로 바위들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안림동으로 내려가는 고개를 지나 급경사길을 치고 오르면, 사방이 시원하게 터지는 헬기장이다(12시23분). 동북쪽으로 10여m거리에 정상석이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충주에서 가장 높은 산이건만 이정표 하나 없이 홀대를 받고 있다.

 

헬기장에서 점심을 들며 사방을 둘러봐도 거침없이 펼쳐지는 조망이 엷은 운무 속에 잠겨있고, 눈앞을 가리는 안개속에서 신기루를 쫏아가는 아쉬움 뿐이다. 충주는 교통의요지이다. 삼국시대에는 장수왕이 남으로 중원까지 진출하여 고구려영토임을 확인한 고구려비가 발견되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오원경의 하나인 중원경으로 유서깊은 도시였다.

 

 

악성 우륵이 탄금대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나라의 중앙을 상징하는 국보 제6호인 중앙 탑을 이곳에 세우지 않았던가. 고려 이후로는 영남에서 올라오는 물산들이 가흥창에서 한강을 따라 한양으로 운반되고, 문경새재와 죽령을 넘어온 선비들이 과거보러오는 길목으로 성시를 이루던 곳이다. 

 

1956년 충주시로 승격되고 1961년 충주비료공장이 건설되며 제2의 부흥기를 맞는듯했으나, 내륙지방에 위치한 불리한 여건으로 고속도로 하나 지나지 않는 정체된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충주호가 완공되면서 산자수명한 호반의 도시로 탈바꿈하며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청풍명월의 고장으로 거듭태어나 인구 21만의 아담한 전원도시로 새로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려 쪼이는 헬기장에서 30여 분간 휴식을 하고, 충주댐 주차장을 향해 길을 재촉한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소나무가지에 달려있는 리본을 길잡이로 내려가는 급경사 길에는 미끄러운 빙판의 연속이라, 월동장구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잠시도 방심할 수없는 초 긴장상태가 이어진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노송군락지에 도착하여 잡시 숨을 돌린다. 735봉까지는 암릉 이라고 할 것도 없이 바위들이 듬성듬성 놓여있어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 전망좋은 바위에 올라서니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이 펼쳐진다. 명경지수와 같이 잔잔한 물결속에 충주호가 육지속의 바다를 이루고, 산자락을 파고드는 물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유람선이 단양까지 57km의 물길을 만들며 산자수명한 호반에서 감탄사가 절로난다. 

 

응달편 급경사지에서 신경이 곤두선다. 두발로 서있기도 어려운 빙판길을 30여 분간 기어 내려오니 고압전신주가 나타나며 빙판길도 끝이난다. 이래서 겨울산행이 위험하다고 하지 않던가. 부드러운 흙길에 낙엽까지 쌓여 있는 길을 따라가면, 선착장이 나오고 구성진 노래 소리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1985년 완공된 충주댐은 계명산과 지등산의 협곡을 막아 높이 97.5m에 길이 464m로 27억5천만 톤의 물을 저장하고, 41만 2,000㎾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오늘의 산행이 9km 불과하지만, 5시간에 걸쳐 고향의 진산을 찾아 보람있는 하루였다. 몸은 비록 고향을 떠나 있지만,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항상 고향을 생각하며 생활의 지표로 삼아 남은여생을 활기차게 살아보고 싶다.



                             명성황후의 눈물

-국망산(770m),보련산(765m)-

                                                                    소재지: 충북 충주시 앙성면, 노은면

고향 가는 길옆으로 우뚝 솟아있는 정겨운 산이지만, 마음과는 달리 기회를 잡지 못하여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다.  이곳은 내 어릴 때 꿈을 키워온 곳으로 언젠가는 찾아보리라 다짐을 하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다가 이제야 산행 길에 나서게 되었다. 모처럼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고향 길. 아련히 떠오르는 옛 추억을 더듬어보며 추수가 끝난 들녘을 달려갈때, 밤사이 내린 무서리로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고 있다.


장호원에 도착하여 용포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한적한 시골이라 교통편이 마땅치않아 택시를 이용하였다.(10,000원) 앙성면 소재지인 용포를 지나 매남고개 초입 양지(학 바위)마을에서 산행이 시작된다.(09시) 국망산과 보련산을 잇는 종주 길에는 학바위 마을이 들머리가 되어야 하는데, 마을이라야 여기저기 집이 한 채씩 떨어져 있고, 그나마 한 겨울이라 빈 집이 많아 물어볼 곳이 마땅치를 않다.


한 참을 망설이다 하남고개를 향하여 오른쪽으로 은사시나무가 무성한 계곡에 잘록한 안부가 있어  올라가니 색 바랜 리본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제대로 진입을 했다는 안도감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상으로 향하는 주능선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모든 잎 새 떨 군 갈참나무와 상수리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수북이 쌓인 낙엽이 발길에 채인다. 고도가 높아지며 경사도 심해지고, 가파른 비알 길에는 가시덤불이 앞을 가린다.


심심찮게 암봉이 나타나며 매서운 칼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지난밤에 내린 눈이 낙엽을 쓸어 덮고 낙엽속으로 얼음까지 깔려있어 한발 한발 신경을 쓰며 전위 봉 안부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복성저수지와 승대산쪽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를 만나게 되는데,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탓에 등산로도 뚜렷하고 리본도 많이 붙어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정상을 향해 줄달음친다.


수 십 길 벼랑위에 솟아오른 정상은 전망이 매우 좋은 곳이다. 북쪽으로는 38번국도를 사이에 두고 오갑산이, 서쪽은 금년 말 완공을 앞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달려가고, 동쪽으로는 오늘 걸어가야 할 능선을 따라 보련산이 지척에서 손짓을 한다. 국망산의 옛 이름은 금방산인데, 임오군란 때 장호원으로 피신한 명성황후가 산마루에 올라 한양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며 눈물짓던 곳으로, 7개월 동안 은거하던 집은 국망산 남쪽 가신리 515번지로 대궐 터라는 지명으로 전해온다.


정상에서 하남고개로 내려서는 길은 응달편에 눈까지 갈려있어서, 수 백 년 된 소나무 등걸을 부여 잡고 안간힘을 쓴다. 아이젠도 없이 사투를 벌이다 보니 오금이 저려오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고개 마루에 내려선다. 59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하남고개는 앙성면과 노은면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보련산 등산 안내판이 있는 양지바른 묘 잔등에 자리를 잡고 잠시 휴식을 한다.


보련산 들머리는 011 송신탑 옆으로 이어진다. 경사가 심한 산비알에는 만고풍상의 시련을 이겨낸 수 백 년 된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용포리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에 온 몸이 오그라든다. 코가 땅에 닿도록 안간힘을 쓰며 안부에 올라서니, 능선길도 완만하게 이어지고  솔가피들이 겹겹이 쌓인 비단길이 펼쳐진다.

 

조금 전 깔딱 고개에서의 시련도 봄눈 녹듯 사라지고, 새롭게 전개되는 주위경관에 취해 콧노래가 절로난다. 수 십 길 단애를 이룬 전망 좋은 쉼터가 676봉이다. 산행의 길잡이가 되는 안내판이 땅 바닥에 나뒹굴고 심하게 훼손 되어있다.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해야할 인간들이 기본 양심마저 저버리는 파렴치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착한 심성이 언제부터 이렇게 난폭해졌는지, 즐겁게 마시고 난 뒤 귀찮은 쓰레기들을 바위틈에 쑤셔 박는 행위들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전문산악인들이 찾는 히말라야의 고봉들조차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니 아름다운 금수강산도 쓰레기 천국이 될것이다.

 

로프가 매여 있는 벼랑길을 조심조심 내려서면 왼쪽으로 큰 바위가 얹혀있는 동굴이 나타난다. 그 밑으로 크레바스처럼 아슬아슬한 수 십 길 절벽이 오금을 저리게 한다. 올망졸망한 4개의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다 마지막으로 깔딱 고개를 치고 오르면 가슴이 확 트이는 정상이다. 열 두폭 치마를 펼쳐 놓은 듯 높고 낮은 산과 계곡이 골골이 넘쳐흐르고, 너른 들판 사이로 우리의 젖줄인 남한강이 유유히 흐른다.


700m의 산 중에서 이렇게 전망좋은 곳이 어디에 또 있을까?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아래 사방 백리까지 막힘이 없어라.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치악산, 백운산, 구학산, 박달산, 천등산, 지등산으로 시선이 돌아가고 월악산이 화려한 수를 놓으며, 백두대간이 하늘위로 날아간다.


내가 태어난 곳은 충주시 주덕읍 화곡리 211번지이다. 어릴 때부터 보련산을 바라보며 꿈을 키워 왔고 50여년 만에 이곳에 올라서니 감회가 새롭다. 남쪽 수룡리 천룡에 사시는 큰 고모님 댁으로 세배를 다닐 때 무쇠 점 고개에서 바라보는 보련산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산으로 생각하던 순진한 시절이 있었다.


아!!!

아름다운 내 고향. 내 어릴 때 뛰어놀던 뒷동산이 아련히 내려다보이고 화개산 모퉁이를 돌아 논둑길을 질러가며 요도천의 징검다리에서 무서움에 울음보를 터트리던 그시절. 4km가 넘는 초등학교 등하교 길도 선명하고 어머니의 품속과도 같이 낭만과 꿈이 서려있는 주덕읍내도 바라보인다.


사랑하는 내 고향 충주는 고구려 장수왕이 한강 상류의 여러 성들을 공략한 후 나라의 남방 한계선을 표시한 중원고구려비가 보련산 아래 입석마을에서 발견되었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나라의 중앙을 상징하는 탑평리 7층 석탑을 세워  역사 유물로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그 옛날 영남지방에서 생산한 특산물을 이화령과 죽령을 통하여 가흥 창으로 모아 뗏목으로 한양까지 실어 나른 교통의 중심지였고, 통일신라이후 중원경으로 부르던곳이 이곳 충주를 말함이다. 장미와 보련의 슬픈 전설이 전해오는 돌과 흙으로 쌓은 성이 있다지만, 확인을 못하고 충주시에서 세운 이정표를 따라 쇠 바위 봉에서 용암온천으로 내려선다.


                                 시산 정기산행

                     - 축령산 879m  서리산 825m -

                                                                     소 재 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가평군 상면


8년 동안 정성을 다하여 가꾸어 온 시산에 무임승차하여 처음 가는 야유회에 어찌 무심할 수 있으랴? 새벽부터 분주하게 배낭을 열었다 닫았다 마음을 설레며, 상봉동 터미널로 달려간다. 문 영호 산악국장이 모여드는 시산의 식구들을 안내하고. 대구에서 올라온 장 태현 교수, 인천에서 올라온 전 상열 시인을 비롯해 신입생을 맞아주는 벗들에게서 진한 동지애를 느낀다.


낭만이 가득한 경춘가도를 달려 마석에서 북쪽으로 362번 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서면 수동면 사무소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잣나무 숲에 둘러쌓여 봉긋하게 솟아오른 곳이 그 유명한 축령산이다. 울창한 숲속에는 자연휴양림이 아담하게 자리를 잡고, 통나무로 지은 방갈로가 동화속의 그림처럼 우리를 반겨준다.  뙤약볕이 내려 쪼이는 주차장을 피해 서둘러 숲속으로 들어서면 처음부터 등산로가 급경사를 이룬다. 김 택근 시인과 김 천수 시인은 야생화를 찍는다고 숲속으로 들어가고, 컨디션이 안 좋은 허 은주 시인은 맨 뒤로 처지고 만다.


싱그러운 오뉴월의 아침햇살은 잣나무의 진한 향기속에 몸속의 노폐물을 정화시키고, 산새와 풀벌레소리를 따라 화채봉에 올라선다. 연분홍 철쭉이 서리산 정상까지 수 만평의 분지위에 펼쳐진다, 철 지난 동산에는 연분홍 꽃잎이 떨어진지 오래 이고 푸른 잎만 무성하다. 아쉬움을 간직한 채 정상의 그늘아래 제단을 모으고 유명을 달리한 고 김 홍석 시인을 위한 위령제를 지낸다. 회원들이 모두 모이지는 못했지만, 30여명의 회원이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시를 낭독하고 축령산을 향해 발걸음을 이어간다.


한북정맥이 운악산에서 남쪽으로 지맥을 이루며 주금산을 만들고,  동쪽으로 분기하여 솟구친 산이 축령산이다.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사냥을 나왔다가 짐승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산신제를 지낸 후에야 멧돼지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로 신령스러운 산아라는 뜻에서 축령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서리산 정상에서 절 고개까지는 완만한 능선 길로 온갖 야생화가 만발하는 지상의 낙원이지만, 심한 가뭄으로 억새풀들이 비실비실 생기 없이 고개를 떨군다. 내딛는 발자국마다 뽀얀 먼지가 풀풀 나고 정오의 뙤약볕이 쏟아지는 용광로 속에서 비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절 고개를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잣나무들이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숲속이라 햇볕을 피할 수 있어 더욱 좋다. 북사면으로 철지난 철쭉들이지만, 다소곳이 고개 내밀어 길손을 유혹한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정수리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아래 녹색의 물결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산과들이 겹겹이 주름잡으며 그 사이로 계곡을 따라 내가 흐르고 우리의 이웃들이 숨 쉬고 있는 터전이다.

 

 

빽빽이 들어선 잣나무는 가평이 자랑하는 특산물로 농가소득으로 한 몫을 하고 있다. 정상에서 남이봉까지의 암릉 구간에서는 수 십 길의 단애를 이룬 전망대가 펼쳐지고, 노송의 그늘아래 내려다보는 경관은 가히 축령산의 제일경이다. 솔바람 불어오는 그늘아래서 권 커니 자 커니 주고받는 술잔 속에 시상이 피어오르고 넘치는 우정 속에 내일을 기약한다.


시산의 정다운 벗들이여!!!!

축령산에서 모아온 시의 보따리를 푸느라 오늘밤도 하얗게 지새우며 잠 못 이루겠지요? 오늘의 발걸음이 내일을 기약하는 징검다리가 되어 풍요로운 삶이 지속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태백산(1,566m)의 신년 맞이


송구영신- 또 한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를 맞는다. 신사 년에는 우리 가정에 행복과 건강이 함께하고 하는 일마다 순탄하게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우리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으로 일출 산행을 떠난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지나온 해를 되돌아보며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지만, 이루어진 일이 별로 없어도 무사히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가진다. 지난 11월에는 지리산 당일종주를 성공적으로 완주하며 산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으며, 다음달에는 150산행 특별기념으로 해외원정(말레시아 키나바루)을 계획하고 있어 설레이는 마음을 달랠 길 없다.


화방재 고개 마루에는 차량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정상을 향해 오르는 불꽃의 행렬이 끝 간 데 없이 이어진다.남들에게 뒤질세라 서둘러 대열에 합류하여 굼뱅이 걸음으로 정상을 향하는 발걸음이 시작된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는 은구슬을 뿌려 놓은 듯 영롱한 별들이 머리위로 쏟아져 내리고 영하의 날씨이지만 바람이 잔잔하니 포근함 마저 든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움직이는 행렬이 천제단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으니 평소라면 2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 거리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될지 초조한 마음이 앞선다. 6시 20분 유일사 입구에 도착하니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합류하면서 아수라장 이다. 밑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올라가는 길은 한정이 되어있고 가파른 비알 길에 로프가 매여 있지만, 어두운 밤이라 주위를 분간할 수가 없다.

 

위를 향해 떠밀려 오르다보니 로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벼랑 끝이라고 소리치는 다급한 외침과, 가족들과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대는 애절한 목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난장판을 이룬다. 두 줄로 올라가도 비좁은 등산로에서 대여섯 줄로 밀리다보니 한발이라도 미끄러지는 날에는 압사당하기 십상이다. 40여 분간 고통과 아우성속에 주목 군락지가 있는 능선으로 올라서니 동쪽하늘이 붉게 물든다.

 

정상에서 일출을 보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앞 사람의 발걸음이 늦은 것을 탓하며 등산로가 아닌 곳으로 들어서다가 허벅지까지 빠지는 군상들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장군봉정상과 천제 단에는 수많은 인파들이 함성을 지르며 해돋이를 염원하고, 전망 좋은 명당자리는 새벽부터 진을 치고 있는 사진작가들의 아방궁이다.  틈바구니를 파고들어 카메라의 구도를 잡아본다.

 

높고 낮은 봉우리너머로 검은 띠를 길게 드리우며 힘차게 용솟음치는 거센 파도와 운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태양을 향해 애간장을 태우며 간절한 소망을 빌어본다. 조용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운해 사이로 미인의 실눈썹 같은 태양이 솟아오르며, 일제히 쏟아지는 함성이 끝없이 메아리 친다.

 

태백산 정상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토해내는 함성과 열기는 백두대간의 줄기 따라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울려퍼진다. 먼저 오르겠다고 아귀다툼을 하던, 오만과 이기심에 가득 찼던 그들도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는 이 순간만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고 만다. 순간 포착을 위해 눌러대는 셔터  쉴 새 없이 들려오고 카메라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수 천종의 장비들이 태양을 향해 불을 뿜는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지만,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를 어찌 같다고 할 수 있으랴.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산으로 향하는 나의 열정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벅찬 감동이다. 일출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내 생애 최고의 걸작 품이 될 줄이야.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주목 사이로 붉은 빛이 열십자를 그리며 떠오르는 일출의 황홀함이여. 볼수록 신비스러운 이 모습은 전문인들도 감탄하는 멋진 작품으로, 거실에서 사무실에서 나의 자랑스러운 보물 1호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 긴긴 세월 고락을 함께해온 구상나무 고사목. 고고한 자태로 우리민족의 애환을 간직하며 태백산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오늘도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장군봉에서 천제단까지 입추의 여지없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인파들. 조금 전까지 천진스럽고, 선량하던 모습은 간곳이 없고, 아귀다툼을 하다 보니 또 다시 뒤엉키는 생지옥으로 변하고 만다.

 

 

파도에 떠밀려 천제단 까지는 왔지만, 쌓인 눈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회오리바람이 일고 영하 20도가 넘는 체감온도 속에서 참기 힘든 고역이 계속된다. 장시간 제자리걸음을 하다 보니 등산화에 습기가 차오르며 발가락이 마비가 되는 듯 감각이 무뎌지는데, 아빠 손을 잡고 동동거리던 초등학생의 울음소리가 터지고 만다.


인파에 밀리고 추위에 지친 사람들이 당골로 향하고 있지만, 그 곳은 종점까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기에 거리가 먼 문수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숨토이 트이며 생지옥을 빠져나온 홀가분함 속에 뒤 돌아보는 천 제단은 아직도 수많은 인파와 함께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설화가 만발한 철쭉나무와 구상나무를 헤치는 발걸음에는 그곳에서의 고통이 아직도 가시지를 않는다.


너덜지대위에 돌탑을 쌓아올린 문수봉을 지나 당 골로 내려가며 바라보는 태백산은 한없이 포근하게 다가온다. 이기심으로 가득찬 인간들의 모든 허물을 감싸 안으며, 저마다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보살펴 줄것이다.  




                                       문학공간 제170회

                                          수필부문 추천 신인 심사평 

 

      수필은  체험을 바탕한 자기성찰의 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수필은 자기 고백적일 수밖에 없다. 작가의 인격이 반영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수필은 작가의 사상이 요구 되는 것이다.

       그의 글은 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수필의 표현은 곧 그 사람의 인격과 교양이 반영 되는 것이다.


       김 완묵의 수필은 인간의 물화의식에 대해 생각게 한다.

       바로 모든 삶의 가치를 상품 질서로 환원시키는 생활 속에서

       현실세계로부터 자유로운 자연의 숲길로 향한다.

       자연 속에서 삶의 생기를 되찾아 보려는 의지가 숨어 있다.

       문장력이 뛰어나고  표현의 기법이 순박하며

       감동을 느낄 수 있기에 추천 신인으로 뽑았다.

       앞으로 열심히 글을 쓴다면

       수필가로서 지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한다.


                                                            심사위원   :     박덕은 .   심영구



                                     수필  당 선  소 감

     산이 좋아 산에 오르며

       습작을 하여 온지 어언 십 오년.

       300여 편의 글들을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서도

       감히 누구에게 내 보이기도 부끄러워

       고이 간직하고 있다

       이번에 큰 용기를 내어

       문학공간에 올린 글이 당선 되었다니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 섭니다.


       갑신년의 새해 벽두에 안겨주신

       귀중한 선물은 저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었으며

       밝은 빛으로 다가 옵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선택하여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편달을 바랍니다.?



수필부문 추천신인 작품 

                                                                   보길도 격자봉에 올라서


장마가 시작 되려는가?  동대문 운동장 맞은편의 밀레오레는 야심한 시각이지만 불야성을 이루고,  300년 전의 발자취를 따라 남쪽나라 보길도로 향한다.

 

보길도의 환상에 들뜬 일행들이 하나 둘  버스로 모여들고,  양재동에서 만원을 이룬다.  심야의 고속도로는  꼬리를 무는 차량행렬로 불야성이다. 소등된 실내는 불편하지만, 숨소리도 정지된 듯 조용한 분위기 속에 토끼잠을 청하고 있다. 무박 산행이라고 하면 기본이 20-30km를 달려야 하는 장거리 산행이라, 이력이 난 산꾼들도 망설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오늘의 무박은 여행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스리슬쩍 산을 넘고 관광하는 개념이기에 새로운세계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여유로운 마음으로 널찍한 등받이에 기대어 환상의 세계로 달려간다. 선잠 속에서도 함평 휴게소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대낮같이 밝은 보름달이 가슴속의 먹장구름을  날려버린다. 하지만  남창 휴계소에 도착하니, 또 다시 먹장구름이 달마산 정상을 덮치고 있다.

 

산행이란 날씨가 변수인데,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으니 착잡한 마음으로 체념을 하게 된다. 땅 끝 마을에 도착하여 사 봉 전망대를 오르는 도중, 수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른다. 변덕스러운 날씨로  우리의 마음이 웃었다, 울었다, 를 반복하고 있으니, 나약한 것이 인간이 아닌가.  날씨는 점점 맑게 개이고, 사자봉 정상에서 지르는 우리의 함성은 보길도로 떠나는 마음의 표시이다.


7시정각에 토말리를 떠나는 여객선은 넓은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날아가고,  물길 따라 펼쳐지는 다도해 청정해역의 전복 양식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어민들의 생활 터전으로 일군 양식장이  풍요롭게 보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어민들의 애환이 녹아 있단다.  값싼 중국산이 무차별 수입이 되고, 생산비도 못 건지는 빚더미에서 고통 받고 있는 그들의 심정을 우리가 어찌 실감 할 수 있으랴.


보길도는 행정구역상 완도군 보길면이다. 땅끝 마을에서 12km. 완도에서 32km 떨어져 있고 남북의 길이가 12km. 동서의 폭이 8km. 해안선의 길이가 52km에 3,200명이 살아가는 전국에서 22번째로 큰  섬이다. 연 평균 기온이 17도에 아열대성 기후로 700여종의 식물이 분포되어 있는 청정지역이다.

 

90%이상이 상록수림으로 사시사철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으며, 2개의 유인도와 11개의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는보길도는,  해안일주도로가 개설되어 3대의 군내 버스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웃에 있는 노화도는 읍 소재지로 생활의 중심이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 교량공사가 완공되고 나면 두 섬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명소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보길도라면 무엇보다도 고산 윤선도를 떠 올리게 되고,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로 대표 되는 곳이다. 한 시간 만에 청별 나루에 도착한 우리는 싱그러운 갯바람을 맞으며 군내 버스를 타고 예송리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동남쪽으로 5km지점에 있는 예송리 해수욕장은, 고개 마루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  한 폭의 그림처럼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천연기념물 40호로 지정되어 있는 상록수림이 몽돌해변을 보듬어 안고 해안가를 따라 펼쳐진다.


740여m에 이르는 방풍림은 수고가 12- 12m로 해풍을 막아주는 울타리가 되어 평화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고, 편백나무. 팽나무. 동백나무. 후박나무.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또한 깻 돌이 깔려있는 해수욕장은 청청 해역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사르르 사르르 돌 구르는 소리가 세파에 찌든 때를 씻어주는 청량감으로 보길도가 자랑하는 제일의 명소로 손 꼽힌다.


양지바른 언덕아래 자리 잡은 예송리는 이곳의 특산물인 톳 말리기가 한창인데, 그 너른 벌판이 온통 톳으로 널려 있어 이색적인 모습으로 장관을 이룬다. 마을 안길을 돌아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울창한 오솔길로 들어선다.  햇볕도 스며들지 못하고 바람마저 숨을 죽이는 난대성 식물들이 빼곡히 들어찬 온실 속으로 비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가파른 계곡을 20여분 올라서면 전망 좋은 암릉이 나타나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에 포말을 일으키는 푸른 파도가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수반위에 빗어 놓은 산수화로 살아 움직이고, 긴 꼬리 물보라를 일으키는 여객선과 일터로 떠나는 어선들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고도를 높일수록 시야는 넓어지고 맑은 날에는 한라산까지 보인다는 수리봉.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삼림욕을 즐기며 정상인 격자봉에 올랐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수림 속에 갇히고 만다. 허허로운 웃음 속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서둘러 하산 길에 접어드니 급경사 너덜지대에 음습한 기운이 감돈다. 물기 먹금은  낙엽 밑에 숨어 있는 낙석을 피해 전전긍긍하게 된다.


하산길에서 30여분간 고생하고나면 울창한 밀림도 한발 물러서고, 수 만평 분지위가 연꽃을 닮았다는  부용동 마을 에 도착한다. 이곳이 그 유명한 윤선도의 작은 왕국이다. 그의 나이 51세이던 해,  병자호란의 치욕을 분개하여 벼슬도 버리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의 산세가 너무 아름다워 이곳에 초당을 짓고 후학을 기르며 13년간 생활하던 곳이다.

어부사시사는 그의 대표적인 시조로 춘, 하, 추, 동 사계절로 나누어 초, 중, 장으로 짓고 계절마다 10편씩 40수를 지었으니 그 당시 어려운 한문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일반 서민들이 알기 쉽게 한글로 지었다는데 큰 가치가 있다고 한다.  가장 먼저 낙서재로 발길을 돌렸지만 무상한 세월 따라 기거하던 초옥은 허물어지고 주춧돌만 남아 아쉬움을 더하고 길 건너 그의 아들이 살았다는 곡수당도 잡초만 무성한 채 복원을 위한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한편 낙서재 맞은편으로 개울을 건너 산 중턱에는 동천석실이 그늘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가파른 계단을 힘들여 오르면 한 평 남짓한 정자가 높은 누대위에 날아갈듯이 자리를 잡고 부용동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맞은편으로 부드러운 격자봉은 마치 황소가 바다를 향해 누워 있는 듯  평화로워 보이고, 그 아래 부용동마을이 그림같이 자리를 잡고 있어 이곳에서 어부사시사를 구상했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부용동의 백미는 그 분의 걸작 품인 세 연정이다.  버스로 5분 거리에 있는 세연정은 조선시대 양반 가문의 대표적인 정원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판석보로 막아 물길을 돌리고,  세연정으로 흘러내리므로 명경지수와 같이 맑은 물이 항상 넘쳐흐르른다. 수 백 년 된 소나무아래 정자를 짓고, 연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어 그 주변에 듬성듬성 바위를 배열하여 안정감을 주었으니, 왕실의 정원에 비해도 손색이 없다. 

 

 

주위로는 동백나무와 대나무가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으니, 산새 지저귀는 야산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산수화를 그려 내고 있다.  경내에는 근년에 세운 어부사시사의 노래비가 있어 그 분의 생을 돌아보며 많은 것을 배우는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청별 나루 식당에서 차려 내온 점심도 일미인지라,  소주 까지 한잔 걸치고 나니 보길도 관광이 호사길이었다.



                                      충북 알프스, 구병산을 가다

태풍이 북상한다는 예보가 신간마다 뉴스를 통해 쏟아진다. 하늘의 노여움으로 미물들도 몸을 낮추기에  여념이 없거늘,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천둥번개가 으름장을 놓는 이른 새벽에,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는 것이 무슨 만용인가?  시청 앞 너른 광장에도 인기척 하나 없이 을씨년 스러운데, 미친 산꾼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서울을 출발한 버스에는 산에 미친 산 꾼들이 25명이나 되어 동지애를 느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불안감이 앞선다. 버스는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가고 오락가락 하던 먹장구름이 수안 재를 넘으며 비를 뿌리고 만다. 오늘의 목적지가 속리산 묘봉과 상학봉을 이어가는 코스인데,  악천우에는 불가능한 지역이라 부득히 코스를 변경하고 말았다.

 

장소를 구병산으로 옮기고 보니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충북 알프스를 시작하는 구간이라 꿩대신 닭이라고 할까.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속리산국립공원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지만, 규모가 작고 등산로가 단조로와 아쉬움이 많았는데, 구병산자락의  고시촌인 서원리를 시작으로 형제봉, 천황봉, 문장대, 관음봉, 상학봉, 활목고개까지 43,9km에 이르는 구간을 충북 알프스로 개발하였다. 

 

특허청에 업무포장으로 등록을 하고, 산 꾼들에게 멋진 등산로를 개방하였다. 고도는 800m를 넘나드는 높지 않은 곳이지만, 지리산의 웅장함과 설악산의 화려함이 함께 어우러진 명소가 되었다. 등산로를 제공한 보은군 전 부 군수 정 중환씨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세찬 빗줄기 속에서도 산행이 시작된다.  처음부터 코가 땅에 닿도록 가파른 나무계단을 30여 분간 올라서면 529봉에 이르고, 스릴 넘치는 칼바위 능선을 타게된다. 

 

생각 보다 위험한 구간은 아니지만, 물먹은 바위가 미끄러워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발길을 내딛는다.  빗줄기도 가늘어지고 차분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암릉을 넘나들 때,  자욱한 운무속에서 선경의 세계로 빠져든다. 오르락내리락  안전제일을 생각하며 속도를 조절한다. 스릴 넘치는 칼바위 능선도 무사히 지나고 배지미재에 도착한다.

 

암릉 구간이 끝나면서 무성한 숲속에는 포근한 등산로가 열리지만,  주위를 바라 볼 수 있는 전망대 하나 없이 무명봉을 오르고 내리는 지루함의 연속이다.  젖은 옷이 몸에 휘어 감기고 피로가 몰려오는데, 앞서 가는 젊은 처자가 부럽기만 하다. 나이를 탓해서 무엇하리. 나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는데. 

 

8,5km를 빗속 산행으로 완주하고,  정상석과 입맞춤할 때, 터지는 환호는 역경을 이겨낸 자신만의 만족이 아닌가.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지만 내 앞을 질러간 젊은 처자들. 상큼한 미소에 말대답도 잘하고, 함께 산을 올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스럼이 없다. 깎아지른 봉화대 하늘높이 솟아 오르고,  오르기 두려워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의 일정이 이곳 까지인지라, 90도 방향을 틀어 가파른 벼랑길로 내려선다.

 

 

다시 굵어지는 빗줄기, 기암절벽아래 비를 피할 은신처 하나 없으니, 고목 나무아래 자리를 펴고 조롱박에 넘치는 시원한 동동주 로 분위기를 잡는다.  비가 내린들 어떠하고 안개 속이면 어떠하리. 주고받는 술잔 속에 우정이 꽃피고 흥겨운 노래 가락이 계곡으로  울려 퍼질때, 우리는 자연속으로 동화된다.


옥류 계곡을 빠져나오면 아홉 폭 병풍이 안개 속에 흐르고, 바람결에 흩날리는 안개사이로 선연한 천하절경에 넋을 잃고 만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적암리 돌담길에 감나무가 무성하고, 떨어진 감꽃이 길가에 즐비하여 가을이면 달콤한 향기가 진동하겠지.  보은통신기지국 안테나를 지나며 오늘의 산행을 마감하고, 순하게 지나가는 태풍에 감사하며  겸손한 자세로 산에 오를 것을 다짐해 본다.


                    야생화 천국 

                 금대봉(1,418m),대덕산(1,307m)

                                     소 재 지:강원도  정선군 동면,  삼척시 하장면,  태백시 창죽동 

 

지구촌의 온난화 현상인지? 기상이변 때문인지?

6, 7월의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도 8월내내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으니, 산 꾼들에게는 괴로운 시간이다. 창밖에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갈까 말까 수없이 망설이게 된다. 야생화의 천국인 금대봉쪽으로 마음을 정하고, 이른 새벽 일어나 하늘을 보니 가는 빗줄기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집결지인 롯데월드 시계탑 앞에는 산으로 향하는 몇 사람이 서성이고 있을뿐, 썰렁한 분위기이다. 차에 오르고 보니 두 좌석에 한사람씩 안고도 자리가 남는다. 마음씨 좋은 박 대장, 너털웃음으로 분위를 바꾸어 보려 애쓴다. 우리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는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간다.

 

강원도에서도 오지인 싸리재에 도착하니, 그나마 비가 그쳐 다행이다. 밤새 내린 비로 계곡은 흙탕물로 소용돌이치고, 물구덩이로 변한 등산로를 피하면서 금대봉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일명 두문동재로 불리는 이곳은, 고려가 망하고 불사이군의 충성을 고집하며 개성의 두문동에서 항거하다 방랑의 길에 나섰던 고려 말 유신들이 오지로 숨어든 곳이다.

 

고한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이 길은, 2001년 10월 개장된 스몰카지노 고객과 관광객을 유치하기위해 터널을 뚫어, 1268m의 고개 마루도 옛 영화를 버리고 산 꾼들이나 간혹 찾는 쓸쓸함속에 공허로운 바람만 불고 있다. 아흔아홉구비 돌고돌아 오르는 이 길이 낮 설지 않은 것은, 지난 2월 만항재에서 싸리재까지 함백산 눈산행을 하며,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속을 헤치며 두문동까지 걸어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많던 눈이 다 녹아버리고 울창한 숲 사이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야생화가 정겹게 다가온다. 고갯마루에는 차량 몇 대가 정차하고 있지만, 그 흔한 산새소리도 숨을 멈추고, 높새바람에 밀린 먹장구름만이 대간의 등줄기를 넘어가고 있다.


싸리재가 경기도의 왠만한 산보다도 높다보니, 등산이라기보다는 야생화탐방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듯 평지의 임도를 따라 십 여분을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백두대간 종주길이 나타난다. 오늘의 산행 중 가장 힘들다는 금 대봉 오름길로 접어들었지만, 완만한 경사에 다리에 힘쓸 겨를도 없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정상에 올라선다.


1,418m나 되는 고봉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오를 수 있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는 삼도가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이 여러곳에 있지만, 이곳은 한강(검룡소)과 낙동강(황지)의 발원지가 있는 산으로 양강 발원봉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비가 그친뒤 계곡에서 피어 오른 운해가 산허리를 감아돌고, 금새 지척을 분간할수 없는 운무속에 갖히고 만다.

 

주위를 둘러볼수 있는 조망을 기대 할 수 없어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둘러 하산을 시작한다. 북쪽으로 직진하면 대간길이고, 우리의 진로는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임도까지 내려가야 한다. 다행이 운해가 걷히며, 천상에는 화려한 야생화가 펼쳐진다. 갖가지 꽃들이 시샘을 하듯 화려한 꽃을 피워 올리고, 짙은 향기로 벌 나비를 유혹을 하는데 우리도 그 향기에 취해 갈 길을 잊은 채 샷 타 소리만이 요란하다.

 

우면산을 중심으로 금대봉에서 대덕산까지 펼쳐지는 천연림 126만여 평을 생태계 보존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야생화군락지에 잣나무를 심어 놓았으니, 몇 년 후에는 울창한 잣나무 그늘 속에 야생화가 멸종되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야생화단지로는 점봉산의 곰배령, 방태산의 푯대봉,  덕유산의 향적봉이 유명하지만, 그곳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훼손되었으니,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이곳만이라도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였으면 좋겠다. 앙증맞은 키에 선홍색 둥근 이질풀, 어청하게 큰 키에 탐스럽게 피어나는 꿩의 다리. 짙은 보라색으로 사약의 원료가 된다는 돌쩍이(일명 부자), 노랑갈퀴, 기린초, 까치수염 등 이름 모를 꽃들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우면산에서 되돌아 나와 숲속으로 들어서면 완만한 오솔길에 고목나무 샘을 만난다. 한강에서 가장 멀리 가장 높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옹달샘이 계곡으로 흐르지 못하고 땅속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진정한 발원지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해서 계곡아래있는 검용소를 발원지로 인정하고 있다. 온갖 약초지초 녹아드는 영험한 약수로 갈증을 풀고, 울창한 낙엽송 숲길로 내려서니 포근한 융단길이 펼쳐진다.

 

변덕스런 고냉지 날씨는 빗줄기를 쏟아붓고 만다. 한낮임에도 어둠이 밀려와 해거름의 장막을 드리우니 20여명의 단출한 인원이지만, 후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애가 타는 박 대장이 뒤로 처지고, 선두를 자처하며 산길을 내려갈 때, 싸리나무에서 쏱아지는 물세례로 새앙쥐 신세가 되고 만다. 물이 들어온 등산화에서는 발을 옮길때마다 쿨컥 쿨컥 장단을 맞춘다.

 

목나무 샘에서 출발한지 한시간만에 분주령에 도착하여, 검용소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우리는 대덕산을 향해 직진을 한다. 지금까지의 평탄한 길도 끝이 나고, 급경사 오르막길에서 빗속에 미끄러지고, 허기에 지쳐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발걸음이다. 천신만고 끝에 능선을 넘어서니 드넓은 분지위에 펼쳐지는 화려한 꽃밭이 우리의 가슴을 활짝 열어제킨다. 지금까지 보아온 야생화는 서막에 불과하고, 진귀한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이 세상 어느 곳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우암산의 야생화가 모듬회 짬봉이라면, 이곳은 부위별로 보기 좋게 다듬어 놓은 아름다운 꽃동산이다. 가장 먼저 진홍빛 엉겅퀴가 화려한 자태로 선을 보이고, 지칭게, 우산나물, 쑥부쟁이, 등나무 꽃, 이름 모를 꽃들이 퍼레이드를 벌이며, 공해 없는 오지에서 자란 풀들이 반들반들 윤기를 내며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화원의 늪에 빠져 갈 길도 잊은 채, 야생화에 취해 올라온 곳이 하늘과 맞닿은 대덕산 정상이다. 인공구조물인 표지석 하나 없이 훼손되지 않은 자연속에서 우리는 더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짙은 운무가 또 다시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시선이 머무는 허공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허둥대기 시작한다. 북쪽으로 뻗은 나뭇가지에 나부끼는 리본을 따라 안개 속에서 활로를 찾아보지만, 마음만 조금해 진다.

 

하산 길을 찾지 못한 초조감으로 야생화의 향기도 싫증이 나고, 갈증이 심하여도 누구하나 불평 없이 믿고 따라주는 그 모습이 고맙기만 하다. 즐거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돋으며 숲길을 내려가다 보니 우측으로 방향을 트는 급경사길이 나타나고, 하산길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선임자의 멍에를 벗는다.


낙엽송 숲길을 빠져나오니 계곡물이 넘실대는 건너편으로 검룡소 600m라는 이정표가 반갑게 맞아준다. 검룡소 정자 뒤로 우렁찬 굉음소리가 고막을 진동하고, 힘차게 솟구치는 물구멍에서 하루에 2-3,000톤의 물이 솟아오른다. 사시사철 물의 온도가 섭씨9도를 유지하고 있는 샘물이 한강의 발원지이다. 우리조상이 한강을 중심으로 역사를 만들고, 검룡소는 그 역사를 키워온 원천이다.


한강이 김포시 월곶면 용장리 유도산정으로부터 시작하여 발원지로 알려져 온 오대산의 우통수 보다 32km가 더 길다는 사실을 국립지리원에서 확인을 한 뒤로, 1987년부터 태백시 창죽동 산1-1번지 금대봉 기슭에 있는 검룡소를 한강의 발원지로 인정하고 있다. 총길이가 497,5km에 달하며, 정선의 골지천- 조양강- 영월의 동강- 단양, 충주, 여주로 흘러 경기도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를 하는데, 북한강의 발원지는 금강산 이라고 한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식수원도 고목나무 샘에서 솟아오른 한 방울의 물이 검룡소를 만들고, 굽이굽이 산과 계곡을 지나며 강으로 변신한다. 강물은 평야를 살찌우고, 생태계를 유지하며 인간의 생명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야생화의 천국에서 한강의 발원지를 돌아보는 트래킹의 뒤풀이는 비가 와야만 생겨난다는 백석산의 직벽폭포다. 수 백길 절벽위에서 쏟아지는 물기둥이 장엄하기만 하다.


 

                              용마산 시산제

                                                                  산행장소: 경기- 하남시, 광주시 율봄 공원

오늘은 미투리 산악회의 8번째 생일이자 시산제를 올리는 날이다. 태초에 우리 조상들은 사냥을 나갈 때나 부족 간에 싸움이 일 때 마다 신에게 제를 올리며 많은 소득과 무사귀환을 비는 무속적인 행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풍습들이 지금까지 풍년을 기원하고 가정의 안녕을 비는 고사 등 많은 형태로 이어져 내려온다. 하늘과 땅을 주재하는 우주섭리에 비해 너무도 미약한 인간들이 숭배의 대상으로 천지신명께 정성을 다 하여 장중하고 엄숙한 의식을 봉행하는 제례의 일부가 된 것이다.

 

우수, 경칩에는 대동강물이 풀리고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도 기지개를 켜는 춘삼월이 되었지만, 지구촌 곳곳이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는다. 3월날씨로는 100년 만에 처음 보는 폭설로(대전 지방의 적설량 49cm)국가의 대 동맥인 경부고속도로가 37시간 동안 고립되고, 10,000여 대나 되는 차량들이 뒤엉켜 아비규환의 혼돈이 일어나고 말았다.  

 

 

전 국토를 순례하듯 천둥번개를 동반하며 쏟아 부은 폭설은, 사흘 만에 동해안으로 빠져나가며 악몽같았던 고속도로도 숨통이 트였다. 맑게 개인 하늘은 더욱 높아 보이고, 영하 5도의 매서운 추위속에서도 검단산을 오르기 위해 눈속을 헤친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다져놓은 발자국으로 빼 꼼이 티워진 등산로를 따라 안부에 올라선다.

 

매서운 강바람이 온 몸을 날릴 듯 거세게 불어오고 급경사 북사면이 빙판길로 변하여 아이젠을 차고도 엉금엉금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검단산과 용마산을 연결하는 종주코스가 긴편은 아니지만, 빙판길에 미끄러지고, 사람들의 행렬속에서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정상은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은 정상으로 향하는 디딤돌이 되어, 어려운 고빗길을 넘게 된다. 정상에서의 환호성은 고진감래의 보상품이다. 넓은 들 깊은 계곡으로 울려 퍼지는 메아리는 칼바람 속에서도 그 뜻이 더욱 빛난다. 그만그만한 봉우리를 몇 개 더 넘은 후에야 율 봄 농원 뒤뜰에 마련한 행사장으로 내려서게 된다.


반가운 얼굴들. 잊지 않을 만큼 만나게 되지만, 이산 저산 오르며 익혀온 얼굴들이라 더욱 반갑고, 주고받는 술잔 속에 우정이 꽃을 피운다. 시산제라면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떠들썩하게 굿판을 벌이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겠으나, 최 대장의 검소한 성품대로 제한된 인원만을 초청하여 가족적인 분위기속에서 행사를 주관한다.


용마산 남쪽 양지바른 기슭에 제단을 마련하고, 금년 한 해도 미투리가 향하는 걸음마다 안전산행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회원모두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시기를 빌며, 금년 한 해도 우리 모두에게 행운이 함께 할 것을 기원한다.



                           송년 산행

                       - 금대산에 올라서 -

                                                              소 재 지: 전북 남원시 산내면   경남 함양군 마천면

계미년이 열리는 첫날, 도봉산 포대능선에 올라 무사무탈 하게 하여 달라는 해돋이 의식을 치루었는데, 효험이 있어서인지 한 해가 다 가도록 별 탈 없이 건강한 몸으로 송년 산행을 다녀 올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산 저산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면서도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이벤트가 될만한 곳을 찾다보니, 지리산 천황봉을 정면으로 바라볼수 있는 금대산을 선정하게 되었다.  


동지섣달 긴긴밤은 새벽 6시가 되어도 물러 설줄 모르고, 종각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운 것은 송년산행이라는 홀가분한 마음에서 오는 편안함 때문이다. 지리산의 능선과 골짜기를 더듬어 보지만, 규모가 방대하여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감을 잡기가 어렵다. 해서 지리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찾게 된다.

 

남쪽에서는 하동군의 삼신봉이 으뜸이요. 좀 더 먼 거리에 있는 광양의 백운산이 제격이고, 북쪽에서는 함양군의 삼정산과 오늘 찾아가는 금대산이 포인트가 되는 곳이다. 종각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송년산행의 이벤트가 있어서인지 2대에 80여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여들었다.  

 

경부고속 - 대진고속 - 88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인월 나들목에서 마천면 쪽으로 들어가 천년고찰 실상사를 지나게 되고, 잠시 후 벽송사입구의 의탄마을 금계리에 도착한다. 산골마을에 80여명이나 되는 산 꾼들이 쏟아져 내리니, 조용하던 마을이 부산스럽다.

 

오늘은 송년 산행이라 뒤풀이도 있고, 지난번 산행에서 만났던 윤 여사와 동행을 하다 보니 자연이 발걸음이 느려진다. 후미로 처지다보니 삼봉산 정상까지 가는 것을 포기하고, 송림이 무성한 오솔길을 걷게되고,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싱그러운 솔향기를 마시며 세심정 약수를 지나 대나무숲을 통과하면, 곧 바로 금대암이다.(12시 10분)


금계포란 형의 명당자리인 금대암은, 신라 태종무열왕 3년에 행호조사께서 창건하신 암자이다. 대웅전 뒤편으로 유형문화재 34호인 삼층석탑이 있고, 탑 옆에 있는 바위에 올라서면 금대암 제일의 지리산 전망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천왕봉을 중심으로 주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칠선계곡, 국골, 광 점골, 백무동의 한신계곡, 광대골이 열두폭 치마를 펼쳐 보이며 유혹을 한다.


금대산 오르는 바위마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전망대라. 웅장한 자태에 넋을 잃고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 금대암 정상에 올라서면, 지리산여신이 육감적인 자태로 누워있다.  눈부신 천왕봉에서, 오뚝한 콧날 세운 제석봉, 그 아래로 흘러내린 도톰한 입술 장터목, 봉긋하게 솟아오른 연하봉과 영신봉의 젖무덤, 잘록하게 흘러내린 벽소령의 가는 허리, 풍만한 반야봉의 둔부는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키고, 만복대로 뻗어 내린 각선미는 나그네의 혼을 빼앗고 만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겠다는 욕심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13시25분 백운산 정상에서 내친김에 삼봉산까지 오르겠다는 욕심으로, 빈대골을 지나 급경사진 깔딱고개를 오르며, 앞에 보이는 높은곳이 삼봉산이라는 그릇된 판단으로 달려가지만, 정상은 뒷걸음치며 아직도 1.8km가 남았단다.


지척에 보이는 삼봉산 정상. 고단한 육신을 앞세워 열 발짝에 한 번씩 심호흡을 하며 정상을 향하는 집념을 포기 할 수가 없다. 천왕봉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1,186m). 사방을 둘러봐도 모두가 일망무제라. 대원사에서 성삼재까지 46km의 장대한 산맥이 물결처럼 굽이치며 끝없이 이어진다. 힘든역경을 이겨내고 맛보는 감격을 어디에 비할수 있으리.


4년 전, 성삼재에서 천왕봉에 올라 중산리까지 당일 산행으로 완주하며 감격하던 순간들, 금년 가을 아름다운 한강의 백 리길을 9시간에 완주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300산 등정을 눈앞에 두고 아직도 더 많은 산을 오를 수 있는 건강이 있기에 60의 나이가 많다고 생각지 않는다. 항상 젊음의 기백으로 밝아오는 갑신년에도 산으로 향하는 열정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300산의 발자취

                화왕산(757m), 관룡산(739m) 진달래 축제

                                                                            소 재 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혹독한 추위도 계절의 순환에 따라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만물이 소생하는 따스한 봄볕아래 화전놀이를 떠나는 나에게는 큰 의미를 부여하는 행복한 날이다. 돌이켜 보면 92년 10월 25일 소요산의 단풍놀이를 시작으로 12년 만에 전국의 수많은 산들을 오르내리며 하나하나 간직하다보니, 오늘산행이 300번째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날이다. 

 

그 전에도 틈틈이 도봉산을 다녀오기는 하였지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호구지책으로 십여 평 남짓한 공간속에서 그날그날 무료한 생활을 하다 보니 오십 고개를 바라보게 되었다. 불뚝 튀어나온 배는 37인치나 되고 항상 피로가 누적되어 휴일이면 방구들 신세를 지는 무미건조한 생활 속에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등산이다.


처음에는 산에 오를 엄두를 못 내고 이른 아침 중랑천 뚝 방위를 걷는 것으로 시작을 해 보지만, 그나마도 힘에 벅찬 일이라 부족한 잠으로 애를 먹었다. 한 달간의 조련으로 컨디션 조절을 한 다음 뒷동산의 약수터를 오르며 자신감을 갖게되고 3개월 만에 수락산 정상을 오르며, 나의 건강을 지켜주는 비결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소요산에서의 환호는 설악산의 용아장성에서 50번째의 스릴을 맛보고, 수도산에서 가야산까지 종주 길에서 100번째, 150번째는 말레이시아 키나바루의 등정으로, 중국의 황산에서 200번째, 보길도의 격자 봉에서 250번째로 해를 거듭할수록 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166cm의 키에 60kg의 체중, 33인치의 허리둘레는 산을 오르기에 이상적인 몸매로 다듬어져 60이 넘은 지금도 2-3시간은 쉬지 않고 산행을 할 수 있다.

 

6시간에서 10시간 까지도 무리 없이 등산을 하게 되고, 백두대간에서 정맥으로 종주 길을 넓혀가는 것이 나의 건강비결이 되었다. 산을 오를 때마다 산행일지를 작성하고 습작을 하다 보니, 금년에는 문인으로 등단을 하는 영광도 맛보며, 제2의 인생을 꽃피우는 삶의 활력소가 넘쳐흐른다.


창녕의 화왕산은 봄의 전령사인 진달래로 이름난 명산이다. 대구의 비슬산, 마산의 무학산, 여수의 영취산과 함께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을 활짝열고 진달래를 찾아 떠나는 상춘객이 선호하는 곳이다. 창녕 읍내를 가로질러 부곡 하와이 쪽으로 국도를 따라가면 옥천 저수지가 나오고, 마을어귀의 돌담장 사이로 화사한 복사꽃이 만발하고, 천년고찰 관룡사가 반겨준다.

 

대웅전 뒤로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죽림속을 빠져나오면, 처음부터 등산로가 급경사를 이룬다. 가쁜 숨 몰아쉬며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벌써 부터 수줍은 진달래가 솔푸더기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관룡사에서는 용선대 석불이 진귀한 보물인지라, 석불을 찾아 바위벼랑마다 기웃거려 보지만 찾을길이 막연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일이지만, 대웅전 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한다. 

 

 

뒤늦은 후회를 해 보지만, 되돌아 설수도 없고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관룡산 정상에 올라선다. 시원스레 펼쳐지는 조망 속에 서쪽으로 화왕산의 억새밭이 황금물결로 출렁이고, 붉게 타오르는 진달래가 꽃 물결을 이룬다. 

 

완만한 산등성이를 중심으로 진달래의 향연이 펼쳐지고, 여유로운 발걸음에 묻어나는 이야기꽃이 환상적이다. 청간재를 지나 무명 봉에 올라서면, 지금까지 보아온 완만한 분지와는 다르게, 수십 길 기암절벽에 간담이 서늘하다. 전망 좋은 암반위에 자리를 잡고, 배낭속에서 쏟아지는 먹거리에 회가 동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빼놓을 수없는 것이 막걸리다. 주거니 받거니 화전놀이도 절정에 달아 오른다.

 

양지바른 언덕아래 동의보감 셋트장이 시선을 끈다. 허준의 산골마을은 앞산의 진달래동산을 배경으로 양지바른 언덕아래 초가삼간 집을 짓고, 노모와 처자식을 거느린 행복의 보금자리다. 화왕산 정상에 오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68,000여 평의 너른 분지에는 억새들이 군락을 이루고, 창녕읍내와 너른 들녘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가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화왕산성은 청간재에서 올라오는 길목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석성으로 길이가 1,7km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에는 홍의장군 곽재우가 의병들을 규합하여 밀양부사 이영과 함께 유격전을 전개하여 왜군을 상대로 많은 전과를 올린 곳이다. 또 한 창녕 조씨의 시조에 관한 전설이 전해오는 용지가 있고, 안부에는 우물터가 남아있다.

 

봄바람에 살랑이는 억새밭에는 저자거리의 주막들이 난전을 벌이고, 지나는 길손들을 유혹을 한다. 군립공원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고있는 조 껍데기 술에 도토리묵, 파전은 허기진 산 꾼들에게 인기식품이고, 입담 좋은 주모의 익살에 갈 길 바쁜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또 한 가지 창년 군에서는 민속놀이의 일환으로 2년마다 정월 대 보름날, 주민들이 이곳에 올라 국태민안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며 다음해 억새들이 잘 자라도록 달집태우기를 한다. 어린 시절 어른들을 따라 뒷동산에 올라 불 방망이를 흔들며, 소원을 빌던 생각들이 주마등 같이 떠오른다.


우리인생의 고단함속에서도 잠시 나마 짬을 내어 집을 나서면, 모두가 새로운 사물이요 포근하게 감싸주는 안식처이다. 호젓한 산길에는 사색이 있고, 뒤 돌아보는 여유로움속에 내일이 있다. 땀에 찌든 배낭 속에는 나의 삶이 배어 있고, 앞으로도 산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이 이어진다면, 길섶에 피어나는 풀꽃들도 나의 친구이니,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산을 오르내리며 한세상 살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