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세계/시산의 행사

시산의 정기 산행

김완묵 2007. 10. 31. 07:07
 

詩山의 가을 定期山行

지리산의 弄平마을과 피아골

 


 

산행일시: 2007년 10월 27 - 28일 (1박2일)

소 재 지: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농평 마을

 

 


시월은 상달이라

한여름 떼 약 볕 아래 구슬땀을 흘리는 농부들도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맛보기 위함이요. 우리 시산도 가을 산행으로 천년고도 경주의 남산을 찾아 불교문화의 진수를 만끽하기 위하여 여름부터 계획을 세우고 추진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현 주소를 실감하며 심한 좌절감속에 비애를 맛보게 된다.

 

 


한창시절 5-60명의 회원들이 관광차를 대절하여 괴산의 칠 보산. 정선의 민둥산. 춘천의 호반에서 밤을 지새우며 정담을 나누고 김유정의 생가를 돌아보는 뜻 깊은 행사를 치루기도 하엿 건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회원들의 관심도 전만 못하니 높은 장벽 앞에서 그때 그 시절이 그리울 뿐이다.

 

 


꺼져 가는 불씨를 되살리는 데는 선풍기의 강한 바람도 아니요. 수북이 쌓여있는 장작더미는 더욱 아니다. 적당하게 불어대는 풀무의 실바람 속에 갖은 정성과 보살핌으로 잘디잔 불쏘시개로 새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이 아닌가?  나 용준 회원의 협조로 장소를 지리산으로 정하고 전화와 메일을 보내며 동참을 유도 해 보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고 가까스로 가족들과 친지들까지 동원하여 18명으로 행사를 추진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불편한 자리지만 이창기회원의 선처로 15인승의 봉고를 지원받고 문영철 회원의 6인승까지 합세하여 대충 준비가 되었지만 행사 날짜가 임박해 오면서 무박 여행이 부담스러웠던지 여성회원들이 불참의 통보를 해오며 위기를 맞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행사준비는 계속되고 김 천수 회장이 회사의 행사 관계로 뒤 늦게 승용차로 오기로 되어있어 3대의 차량이 동원되는 큰 행사가 되고 말았다.

 

 

盡人事待天命 으로 하늘도 맑고, 마음도 푸르고 시산이 나들이하는 날은 전형적인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청명함으로 모임장소인 양재역 7번 출구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11시 45분 양재역 에는 미리 도착한 전상열 전 회장과 동행한 이기희 여사, 태산 같이 무거운 배낭으로 쩔쩔매는 주 진하 시인, 우리 모두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양재 주차장에 도착하니 나용준 교수가족 5명이 합세하며 시산의 코리안 타임도 옛말이 되어 12시 이전에 전원이 모여 봉고차 오기만을 기다린다.

 

 

남양주에서 직접 출발한 문영호 감사일행은 벌써 진천을 지난다는 소식으로 축제의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르고 40여분을 기다린 끝에 도착한 봉고에 탑승하며 불원천리 지리산의 통곡 산장을 향해 달려 나간다. 남도지방의 단풍이 절정인지라 연도에는 행락객의 차량으로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버스전용차선으로 들어선 우리는 신바람 나게 달려가지만 350km가 넘는 장거리 길이라 천안 망향휴게소에서 식사부터 한다.

 

                                                   아내의 정성은 하나의 예술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일주일 전부터 점심식사와 술은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주진하 시인의 보따리가 풀어지고 아내가 준비한 술안주까지 합세를 하며 10명의 점심상으로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든든하게 배도 채우고 반주까지 곁들였으니 우리야 거나하게 의자에 몸을 누이면 되지만 기사를 자청한 전호영 부회장의 수고로 경부, 대진, 88고속도로의 끝자락에 있는 남원에 도착할 무렵에는 서산마루에 걸터앉은 태양이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며 아름다운 저녁놀이 펼쳐진다.

 

 

문 영호 감사일행은 현장부근의 화계장터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는 전갈이고 김 천수회장 부부는 대진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이라니 삼원중계로 우리일행의 상황을 시시각각으로 파악을 하며 순조로운 진행의 안도감으로 오늘저녁의 모닥불 파티를 떠 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남원 시내를 관통하는 19번 국도를 따라 30여분 만에 구례에 도착하여 이마트에서 시장보기를 하고 15만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하는 나 용준 교수의 사모 앞에서 울컥 하는 감정으로 목이 메인다. 어둠속에 달리는 19번 도로는 하동의 이정표를 거울삼아 15분후에 연곡사입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문영호 감사일행과 합류를 하여 당치 마을 을 찾아간다.

 

 

지리산을 수십 번 다녀오고 지난 가을에는 불무장등 경유하여 연곡사로 내려 왔지만 듣도 보도 못하던 곳. 작은 지도에는 표시도 없는 생소한 곳으로 커다란 돌비석에 새겨진 당치마을 이정표 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신천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30도의 가파른 경사에, 아스팔트와 세멘트 포장길이 구절양장을 지나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며 당치마을에 도착하지만 우리의 숙소는 이곳에서도 1.5km를 더 가야 한다니 어둠속이지만 간담이 서늘하고 도대체 그 높은 곳에 무슨 집이 있는지 속새를 떠난 도인들이 숨어 사는 곳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속에 도착한 곳은 저자거리와도 같이 가로등이 즐비한 큰 마을이 아닌가?

 

 

세상에 이런 별천지가 있다니.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나 교수의 설명에 수긍을 하며 해발 803m의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농평 마을로 몇 년 전만해도 몇 가구가 안 되는 산간 오지마을 이던 곳이 한사람 두 사람 입소문을 타고 작가와 화가, 고시준비생들이 자리를 잡으며 지금은 이십여 호가 넘는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휘영청 밝은 열이레 달이 별들을 집어삼키고 대낮같이 밝은 농평마을의 밤은 깊어가고 우리는 서둘러 저녁준비를 하며 한 켠에서는 앞마당의 잔디밭에 숯불을 피워대며 삼겹살을 굽기 시작한다.

 

 

매캐한 연기와 신선한 공기, 농익어가는 술자리에 권주가는 금상첨화가 아닌가?

나 교수의 장모이신 최 순자 여사님이 경기민요의 명창이실 줄이야. 우리 시산에게 내려 주신 홍복이요 오늘의 산행에 더 없는 영광이 아닌가?

  

 

 

 

 

 

오봉산 타령에서 풍년가로 한강수타령으로 이어지는 가락 속에 우리의 혼이 녹아들고 주진아 시인이 담아온 송엽주와 복분자술에 매실주까지 1.8리터짜리 팻트병 3개가 동이 나도록 우리의 신선놀음은 도끼자루가 썩어간들 탓할 일이 아니요. 낭낭 하고 걸쭉하게 쏟아지는 시낭송은 농평 마을 열린 이래 처음으로 쏟아지는 시인 묵객들의 흥겨운 잔치판이 아닌가? 하늘의 보름달도 머리위로 자리바꿈을 하는 子時를 훌쩍 넘기며 거나한 술기운에 하나둘 잠자리로 돌아가고 사그러지는 모닥불아래 도란도란 시산의 미래가 밝아온다.

 

 

 

선잠 속에 아련히 들려오는 장 닭의 울음소리.

농평 마을의 새벽을 여는 저 울음소리를 들어본지 얼마만인가?

폭음에 객기로 무거운 몸이지만 자리보전하기에는 아까운 시간이라 살그머니 일어나 댓돌로 내려서니 보름달은 어느새 서쪽 하늘에 걸리고 동쪽하늘에 주먹만한 샛별이 반겨준다. 아직도 날이 새기에는 이른 새벽5시 가로등 불빛 따라 동네 한 바퀴 산보를 하다 동네 어르신을 만나 인사를 드리며 이 마을의 내력을 들어본다.

 

 

 

 

마을의 입구에는 농평 마을의 연륜을 말해 주듯. 수 백 년 된 당산나무가 자리를 잡고 시원한 그늘아래 서면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산골마을이 생긴 지는 확실치 않으나 화전민들이 일군 다랑논이 마을 가운데로 자리를 잡고 뒤란으로는 감나무에 탐스러운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어둠속의 농평마을

 

                                                 잘록한 산마루가 당재


일제시대 로 거슬러 오르면 60여 호가 넘는 큰 마을 이었으나 6.25의 전쟁으로 불에 타고 빨치산의 준동에 대비하여 주민 대피령에 따라 마을을 비우고 그 뒤 서너 가구가 마을의 명맥을 유지하며 세인들의 무관심으로 잊혀져가던 중에 고시생이 들어오며 입소문을 타고 외부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뱀사골의 심원마을 보다도 50 여m가 더 높은 지리산에서 하늘아래 첫 동네로 풍수지리설에는 老號弄骨(노호농골)의 대지에 평평한 곳이라 농평으로 부르고 있단다.

 

 

 

날이 밝아오며 동쪽의 당재로 태양이 솟아오르고 우리는 서둘러 아침을 지어먹고 피아골의 단풍 나들이를 떠난다. 어둠속에 올라간 그 길을 내려오며 산간오지의 비알 길에서 능숙하게 차를 모는 전 호영 부회장에게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연곡사 입구에 도착하니 국립공원의 입장료가 폐지되었는데도 큰 길을 가로막고 요금을 받고 있으니 피아골 전체가 즈네들 땅도 아니면서 횡포를 부리는 모습에 봉이 김 선달이 자빠질 일이 아닌가? 하지만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고 2000원씩 하는 티켓 7장으로 타협을 보고서야 통과를 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잠을 잔 산장의 천장에는 요즘 보기드문 상량문이 보인다.

 

 

찜찜한 마음도 잠시 계곡을 중심으로 절정을 이루는 단풍의 터널 속을 지나며 감탄사가 절로난다. 이곳 피아골은 지리산에서도 단풍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으로 유명하며 지리 십 경의 4번째 절경으로 피 빛이 뚝뚝 떨어지는 듯 진홍색의 단풍이 직전마을 입구에서 삼도봉까지 계곡을 따라 물들이고 조정래 씨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무대로 흘러가는 강물 따라 옛 상처는 씻겨 내리고 행락객의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직전마을의 식당 앞에 차를 세우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계곡 길을 거슬러 오른다.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은 법이라 반야봉과 삼도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계곡을 타고 흐르며 크고 작은 폭포를 만들고 시퍼런 용소를 휘돌아 부서지는 계곡물에 타 오르는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황홀경속에서 발걸음이 마냥 느려진다.

 

 

 

 

 

 
엣 날 표고버섯을 재배하던 표고 막 터에서 땀을 들이며 인원점검을 하고 삼흥소까지 올라오는데 1시간 반이 소요된다. 느린 걸음에 장사진을 이루는 인파속에서 피아골 산장까지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너른 암반위에 자리를 잡는다. 우리 가락에는 막걸리가 제격으로 걸직하게 한잔씩 한 순배를 돌리고 명창의 노래 가락으로 흥을 돋운다. 

 

 

 

 

 

폭포수 흘러흘러 삼흥소를 휘감아 돌고  정선 아리랑,  밀양 아리랑,  진도아리랑...........  우리민족의 한이 서린 애절한 노래 가락이 물길 따라 흘러가며 흥겨운 춤사위에 어깨춤이 절로난다.  신명풀이로 30분간의 시간이 꿈결같이 흐르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의 발걸음을 되돌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3시간의 단풍놀이로 출출하게 시장끼가 감도는데 피아골 아베스 산장의 뒤 뜨락에 점심상을 차리고 시원한 계곡물소리와 어우러진 단풍의 숲속에서 닭백숙에 메기탕, 파전에 토토리 묵까지 복분자로 삼합을 이루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일박이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행사가 마무리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피아골을 떠나며 연곡사를 둘러봄이 마땅하나 주차장이 초만원이고 귀경길의 고속도로가 염려되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리며 간략하게 소개하면 제비가 나는 형상의 명당자리에 터를 잡은 연곡사는 신라 진흥왕 5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한 절로 많은 부도와 보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

 

 

  

남원에서 임실, 전주를 경유하는 17번 국도는 탄탄대로 하지만 호남고속도로에서 많은 시간이 지체되고 논산 천안간의 고속도로에서 신나게 질주하지만 경부고속도로에서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정체로 버스전용차선이 무색하여 3대의 차량이 죽전 휴게소에서 합류하는 행운으로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고 8시 30분 양재역에 도착하며 시산의 모든 일정도 끝을 맺게 된다.

 

 

 

이번행사로 우리는 보았다.  시산의 밝은 미래를.

비록 몸집은 작아 젖지만 서로 보듬어 안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 없이 충만 되고 참석한 회원이나 불참한 회원이나 시산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대단히 감사 합니다.

시산가족 여러분 우리는 금년이 가기 전에 남한산성에서 다시 한 번 만날 것이며 송년회를 겸하는 자리이니 이번에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도 모두 동참하시어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가꾸어 나갑시다.

 

 

산악국장 풍운아 김 완묵 드림

011-9922-9306

 

 

          이번 행사에 참여한 회원

 

 김 천수 회장 부부         문 영호 감사 외 3인         전 상열 전 회장 외 1인

 나 용준 회원 가족 5인     전 호영 부회장              주 진하

 김 완묵                   총 16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