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호 (시 와 산)
제 56호 원고
07년 10월 8일 출판
시산의 여름산행 보고
장소 : 40년 만에 돌아온 북악마루
일시: 2007년 8월 19일 (일요일)
작은 모임이던 큰 모임이던 준비하는 마음가짐에는 어찌 한 치도 소홀함이 있으리오. 여름장마 피하고 피서를 비껴 잡은 날자가 8월 19일.
일 개월 전부터 독려의 메일을 날리고 잊을 만할 때 또 한 번 회원들의 느슨한 마음을 사로잡으며 D - day 5일전에 안부 겸 확인전화에서 참석의 약속을 받은 회원이 15명. 긍정적인 회원 3명.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거둔다는 간단한 진리를 음미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산행 코스는 지난 7월에 사전 답사 겸 다녀온 곳이라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마른장마 다 보내고 뒤늦게 질퍽거리는 궂은 날씨에 TV에서는 친절하게도 시간마다 일기예보를 전하며 토요일과 일요일에 비가 내린단다. 모처럼 잡은 날짜에 불청객이 끼어드는 것도 불가항력이니 * 진인사 대천명 *으로 차질 없이 준비를 하면서도 연신 하늘을 바라본다.
오늘은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산행을 하는 날이라 설레 임과 부푼 기대로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며 베란다로 나가보니 도봉산과 수락산이 어둠속에서도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니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에 도착하니 8시 20분. 약속 시간보다 40여분을 일찍 나온 탓에 텅 빈 대합실에는 공허 로 운 바람만 불어오고 아내와 들이서 회원들이 도착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가장 먼저 모습을 보이는 전 상렬 전 회장. 곧이어 오 희정 시인. 김 은남 전 회장. 전 호영 부회장의 모습으로 분위기는 살아나고 약속한 회원들의 불참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그래도 양호한 코리안 타임을 30분에 마감을 하고보니 예상대로 14명의 회원들과 오희정 시인이 초청한 고민지 시인이 합류하며 가슴속의 먹구름도 하늘의 먹구름도 녹아내리고 대지를 달구는 열기는 우리의 힘찬 발걸음에 녹아든다.
불볕더위속의 산행이라 속도조절을 하며 집을 나 온 것만으로도 즐거운 듯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처럼 재잘 재잘 웃음꽃을 피워내며 혜화동 로터리를 돌아 경신고등학교 정문의 오르막길을 휘 돌아서면 성벽의 초입에 이른다. 내려 쪼이는 태양은 대지를 달구어내고 수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 길에 지례 겁을 먹고 속도가 느려지며 구슬 같은 땀방울을 훔쳐내기에 여념이 없다.
갈 길이 먼 것도 아니고 산과 시를 사랑하는 문인들이지만 전문 산 꾼들이 아닌 탓에 발걸음이 마냥 느려지고 쉼터마다 그늘을 찾아 늑장을 부리며 즐거운 담소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와룡동과 계동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에는 군부대가 자리 잡고 40여 년간 금족령으로 민간인들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던 신비의 세계로 들어선다. 울창한 솔밭 속에는 600년의 時空을 뛰어 넘은 성벽들이 담쟁이 넝쿨로 몸을 가리고 솔바람의 향기 속에 살포시 우리의 가슴을 보듬어 안는다.
나라님이 계시던 창덕궁과 경복궁, 청와대까지 든든한 성벽에 철조망까지 잡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던 곳에 문호를 개방하여 성벽을 넘는 계단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북악 스카이웨이의 마루금위로 북한산의 영봉이 장엄하게 솟아오르고 장안의 빌딩숲 너머로 남산의 서울타워가 우리의 기상을 일깨워주며 그림 같은 숙정문이 솔밭 속으로 자태를 드러낸다.
40년의 금단 속에 돌아온 솔밭 속에는 청솔무의 천국으로 가지 사이를 오르내리며 온갖 재롱을 부리고 산을 오르며 흘리는 땀방울에 몰려드는 날 파리도 만장봉의 쉼터에 진을 치는 쉬파리와 개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니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살 갓을 스치는 솔바람까지도 오염되지 않은 지상의 낙원이요 우리가 보존해야할 자연유산이 아닌가?
입산신고서를 제출하고 들어서는 무공해 청정지역. 만리장성 부럽지 않은 한양도성18km. 지금은 10여 km에 걸쳐 복원이 되었다지만 휘 늘어진 낙락장송 그늘아래 산굽이를 감아 돌고 곡장에서 치를 떨고 청운대를 지나치면 백악마루 정수리에서 창의문으로 급살 나게 내려딛어 건너편의 인왕산으로 치 다르는 장관이요.
아름드리 노송이 장관을 이루는 숙정문으로 향하는 길은 비단길이요. 그윽한 솔향기에서 피어나는 피톤치드에 만단시름 녹아내리고 출출한 시장 끼에는 먹 거리도 즐거움이라. 주고받는 막걸리에 정을 나누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곡장으로 향할 때 잔인한 일본 놈들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민족의 혈맥을 끊는다며 칼바위 정수리에 쇠말뚝을 박았으니 그 자리에 지석을 세우고 잊지 못할 치욕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북악산 제일의 전망대는 곡장이라 않던가?
성벽을 따라 오르다보면 직각으로 꺾어지는 꼭지 점이 벼랑 끝으로 돌출되어 단애를 이루고 동쪽으로 북악 스카이웨이의 팔각정이 날아갈듯 자리 잡고 북쪽으로는 세검정을 품에 안은 북한산이 열두 폭 병풍을 펼쳐 놓은 듯 시선을 압도하고 서쪽으로는 북악마루 넘어가는 도성의 층층계단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며 인왕산의 치마바위와 마루금을 이어가는 성벽이 장관을 이룬다.
아름다운 조망을 이루는 이곳이 전략적인 요충지로 전시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 거리지 못할 천혜의 요새지가 아닌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청남대로 올라서니 발아래로 경복궁의 전경이 펼쳐지고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면 일직선으로 관악산과 연결이 되고 뒤편으로는 백운대와 맥을 같이 하고 있으니 이성계가 천도를 하며 한양의 지세를 돌아볼 때 이곳에서 풍수지리에 의한 설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길옆으로 총탄자국에 흉한 몰골을 하고 있는 노송 한그루.
김 신조 일당이 탈출하며 격전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으로 40여 년간 민간인의 금족령이 내려진 원인이 되었으니 이제는 남북의 긴장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의 아픈 현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장안의 도성이 600여 년의 세월 속에 새로 쌓은 곳이 대부분이지만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곳으로 성벽에 글자가 새겨진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것은 성벽을 축조할 때 전국에서 인원을 징발하게 되고 구간별로 할당을 주어 책임시공을 하게 하므로 이곳에 책임자의 이름과 지역이름 동원된 사유를 새겨 놓았으니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를 엿볼 수 있으며 지금도 고속도로나 큰 건물에는 기단이나 표지 석을 세우는 효시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몸이 부실한 아내가 용케도 버티며 층층계단 오르고 35도 불볕더위 아래서도 혼신을 다하여 북악 마루 백악산 정수리에 올라선다. 시내서 바라보면 청와대 뒷산의 삼각형의 꼭 지점 이지만 나무 그늘에 벤치가 전부이고 하늘로 오르고 싶은 염원인가? 정수리에 뾰족한 바위가 인상적이다. 기념사진 한 장으로 휴식을 대신하고 곤두박질치는 계단이 천개가 넘는다지만 제대로 세어본 사람이 없다는 창의문으로 내려서며 역사 탐방을 겸한 종주산행에 행복을 한 아름 가득가득 안고 내일을 기약한다.
파이팅 !
詩와山을 사랑하는 文人들이여
永遠하라
참여인원: 고 양규 김 은남 전 상열 김 택근 문 영호 문 영철
전 호영 김 천수 박 천순 오 희정 김완묵 부부 나 용준 부부와 자녀들
초청손님: 고 민지 (오 희정 시인 초청) 총 17명
마음과 마음이 모인 여름산행도 추억의 장을 만들고 돌아오는 10월의 정기산행은 천년 고도의 경주로 떠납니다. 1박 2일의 여정에는 경주엑스포의 관광도 포함이 되고 불교의 유물전시관인 남산의 순례는 우리 시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추억이 될 것이며 소슬한 가을밤에 화톳불을 피워놓고 주고받는 술잔 속에 우리시산의 발전도 지속되리라 기대 합니다. 회원여러분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하며 그날을 기약합니다.
일시: 10월 27일 - 28일 (넷째 토. 일요일)
산악국장 김 완묵
거창의 의상봉을 찾아서
장군봉(956m). 지남산(1,018m). 의상봉(1,032m). 우두산(1,046m)
소 재 지: 경남 거창군 - 가조면 합천군
이삼일 전부터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속이 더부룩하고 아랫배가 살살 아프면서 설사가 나온다. 평소에 장이 좀 약한 편이라 가끔 설사를 하면서도 하루에 한 번씩 정상적인 배변으로 변비를 모르고 살아오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지만 오늘 아침에는 3번씩이나 변기를 타고 앉는 수난을 당하며 뱃가죽이 등짝에 달라붙고 눈은 괭하니 십리나 들어가서야 심상치 않은 사태를 감지하게 된다.
다급한 마음에 병원을 찾았지만 - 날 음식과 찬 음식을 먹지 말고 당분간 음주도 삼가라는 금주령까지 받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하듯” 병을 키우고 말았다. 미음으로 속을 달래며 주사도 맞고 약을 먹으면서도 삼일 앞으로 예정된 산행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초조함으로 걱정이 앞선다. 아내에게는 산에 간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도 못하고 수많은 번민 속에 갈등을 느끼면서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제하지 못함은 무슨 연유인가?
사실 이번 산행은 600산을 오르는 기념으로 거창에 있는 의상봉과 우두산의 9개 봉우리를 넘나드는 암릉 산행으로 점지를 하고 있던 터에 배탈이 나고 말았으니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다행이 금요일부터 설사도 멈추고 기력만 회복하면 되겠는데 어찌 해야 할지 장고를 거듭한 끝에 산으로 향하는 마음을 억제 하지 못하고 예약을 하고 말았다.
토요일 새벽 일찌감치 일어나 배낭을 꾸리고 집결지인 동대문에 도착하니 6시10분 아직 20여분이나 여유가 있어 워밍업을 하며 몸 상태를 확인하니 산행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곧 도착하는 버스에 승차한다. 사당역과 양재역을 순례하며 40인승 버스가 매진이 되어 임원들이 통로에 보조의자를 펼치는 대박으로 순조롭게 출발을 하고 부족한 잠을 보충함인지 고요한 적막감속에 바퀴의 마찰음만이 자장가 소리로 귓가에 아련히 들려온다.
이제 장마도 끝이 나고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어 평소보다 차들이 많이 몰린다. 신갈 인터체인지를 지나며 정상적인 속도를 내는 버스는 죽암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를 한 다음 대진 고속도로에 접어들며 신바람 나게 질주하고 잔뜩 흐려있던 하늘도 서서히 열리며 햇볕이 내 비추고 차창가로 스치는 농촌 들녘 의 알찬 곡식들도 풍년을 예고하듯 알알이 영글어 가고 있다.
함양 휴계소를 지나며 대장의 산행안내가 시작된다. 일반 산악회에서는 고견사 주차장에서 마장재를 거쳐 우두산과 의상봉으로 산행이 이루어지지만 산행거리가 짧은 관계로 서쪽의 병산 마을에서 장군봉을 거치는 종주 산행으로 일정을 잡았다는 설명과 5시간의 산행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잠시 후 대장의 멘트는 다시 시작되고 ...... 오늘의 산행이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암릉 구간이 많아 체력 소모가 많은데다 35도가 넘는 불볕더위 속에서 무리 일 것 같으니 체력에 자신이 없는 회원들은 고견사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코스로 안내를 하겠다며 인원 파악을 하고 보니 종주를 고집하는 준족들은 14명이고 모두가 짧은 코스를 택하고 말았다.
내 노라 하는 건각들 속에서 과연 산행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낙오나 되 않을지?
정상적인 컨디션도 아닌 처지에 무모한 짓이 아닌지 불안한 마음속에 갈등을 느끼며 가는데 까지 가보다 안 되면 중간 탈출로를 이용하기로 작심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11시 30분 산행의 깃 점인 사병리 병산마을에 도착을 한다. 삼복더위의 후끈 달아오른 열기는 대지를 녹일 듯 이글거리고 대장을 포함한 16명의 전사들은 곧 바로 산행 길에 오른다. 충효의 마을 입구에는 병산마을의 돌비석과 함께 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듯 천수를 다하고 밑둥치만 덩 그러니 남아있는 고사목이 인상적이며 고샅길을 빠져 나가면 고추밭 사이로 소림사 가는 이정표가 우리를 반겨준다.
완만한 임도에서 피치를 올리는 선두 그룹은 저만치 달아나고 예상대로 처음부터 후미로 밀리지만 삼복더위의 열기 속에서 체력안배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차분하게 뒤를 따른다. 십 여분 만에 소림사의 갈림길에 도착하며 임도도 끝이 나고 빽빽이 숲을 이루고 있는 송림사이로 등산로가 열리고 곧이어 가파른 비알길이 시작된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무성한 숲속에 포로가 되어 구슬 같은 땀방울을 연신 훔치며 비알 길을 기어오를 때 앞서 가던 일행들이 더위 속에 갈증이 나는지 하나둘 풀밭에 주저앉는다. 그들을 추월하며 갈지자로 산허리를 감아 도는 비알 길은 멀기만 하고 턱에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1시간 만에 주능선의 안부에 올라서니 선두 그룹이 반가이 맞아준다. (12시 35분)
내 뒤로 10여명이 있다는 확인으로 자신감이 생기고 초반의 고 빗길을 무사히 오라왔다는 안도감으로 여유를 가지며 서서히 나타나는 암 봉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장군봉을 향하지만 머리위에서 내려 쪼이는 태양의 강렬한 열기 속에 발걸음이 마냥 느려진다.
암 봉을 넘나들며 전위 봉에 올라서니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이 펼쳐진다. 사진에서만 보아 오던 의상봉의 빼어난 자태.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연봉들이 선경의 아름다움으로 펼쳐지고 수 십 길 단애를 이룬 벼랑길에 신이 빗어 놓은 조각품들이 전시장을 이루고 있다. 이곳부터 마장재 까지 이어지는 암릉길이 5km에 걸쳐 펼쳐지고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연출되는 능선 길에서는 잠시도 방심 할 수 없으므로 스틱을 접어 배낭에 찌르고 반 피 수갑으로 무장을 하고 신발 끈을 조여 맨다.
첫 번째 벼랑길을 통과하면 돌무더기 봉우리에 당도하고 곧이어 또 한 번 곡예를 한 다음 장군봉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 스텐으로 만든 정상표지판이 반가이 맞아주는 정수리는 너른 암반으로 낙락장송 그늘아래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가슴속이 후련하게 씻겨 내린다. (13시 10분)
잠시 조가면의 너른 들판을 조망하며 땀을 들인 후 그늘 속으로 들어가 점심상을 차린다. 새벽 5시에 밥 한술을 뜨고 버스 안에서 김밥 한 줄을 먹었지만 설사 뒤 에 시원치 않은 컨디션으로 폭염 속에 땀을 어찌나 흘렸는지 미역국에 말아먹는 밥알이 입안에서 맴돌고 있으니 이런 난감할 때가 있는가? 하지만 저 험준한 고산준령을 넘자면 허기를 면해야 하기에 억지로 밀어 넣으며 누워 떡 먹기보다도 어려운 밥 먹는 고행의 시간이 이어진다. (식사 시간 15분 )
잠시 벼랑길을 타고 내려서면 안부에 이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쉼터에는 친절하게도 의상봉 2.7km, 장군재 0.3km, 장군봉 0.2km의 이정표가 자리를 잡고 있다. 무성한 송림사이로 펼쳐지는 완만한 등산로는 식사 후의 나른한 식곤증을 덜어주는 편안한 비단길로 십여 분간 달콤한 산책로를 지나가면 산사태 지역을 만나게
된다. (13시 30분)
산에서 남긴 것은 당신의 마음과 발자국뿐
가져온 쓰레기는 모두 가져가 주세요. -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
평범한 진리 속에서도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밀림의 숲을 뚫고 나온 터라 펼쳐지는 조망이 시원하고 뒤돌아보면 지나온 장군봉이 마루 금을 이루고, 전망대의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모진세월 이겨내는 소나무 한그루. 연약한 야생화가 벼랑 끝에서 꽃을 피우는 모습은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값진 교훈이다.
이제부터 지암산의 암릉 구간으로 접어들며 천태만상의 조각전시장으로 아름다운 황홀경속으로 빠져드는데 나 홀로 산행 길에 도란도란 인기척 소리가 들려오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보니 대장을 비롯한 선두 일행이 환자의 다리에 응급치료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30여년의 산행경력에 바위 오르는 재미로 산에 온다고 자신 만만하더니 바위에서 미끄러지며 부상을 당했으니 순간적인 방심으로 본인은 물론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말았다. 큰 부상이 아니기를 빌며 먼저 자리를 뜨는데 암릉길로 오르지 말고 우회로를 따라가라고 신신당부하는 대장의 말이 아니라도 현장을 목격한터라 어찌 무모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름다운 조망을 머리위에 두고 바위틈을 비집으며 오르고 내리는 길은 암릉을 타는 것보다 더욱 힘이 들고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주체 못하며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발걸음에 허벅지가 뻣뻣하게 저려온다. 갈 길이 구만리 같은 암릉 길에서 자 욱 자 욱 마다 심해지는 통증을 달래기 위해 전망 좋은 바위 위로 올라서니 시원한 조망 속에 지옥 같은 산행 길도 봄눈 녹듯 사라지고 의상봉의 아름다운 자태에 흠뻑 빠져든다.
널찍한 암반위에 자리를 잡아 물 한 모금 마시고 배낭을 베개 삼아 네 활개 활짝 펴고 누었으니 선경의 그늘 속에 신선이 따로 없다. 달콤한 10분간의 휴식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내딛는 발걸음에 아름다운 정경들이 가슴속으로 파고드는데 어찌 그 지옥 같은 우회로를 또 다시 따르겠는가? 조심조심 옮기는 발자국에 시간을 빼앗기면서도 벼랑 끝을 타고 올라선 지 암산 정상. 송곳 같은 암 봉 위에 거칠 것이 없고 힘들여 올라온 보람으로 즐거움을 만끽한다. ((14시 20분)
가마솥 같은 삼복더위의 열기는 천 미터가 넘는 높은 지대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고 머리위에 쏟아지는 직사광선을 피해 그늘 속으로 들어가 벼랑을 내려서니 안부의 그늘 속에 우두산의 표지석이 자리 잡고 의상봉 0.4km 장군봉 2.7km 고견사 0.7km의 이정표가 반겨준다. (14시 50분)
이곳이 고견사에서 의상봉으로 오르는 길목으로 좌측의 사면 길을 따르면 잠시 후 장군봉에서 오는 우회로와 만나게 되고 100여개가 넘는 나무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의상봉아래 안부에 도착한다.
하늘에 닿은 첨봉을 오르기 위해 철사다리를 걸치지만 한 번에 다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연결시킨 다섯 개의 사다리에 계단은 수도 없으니 수직으로 곧추세운 생명줄에 온몸을 맡기고 모골이 송연한 어지러움 속에 가까스로 올라선 정상은 여남은 명이 쉬어 갈수 있는 너른 전망대로 시원스런 조망이 펼쳐진다. (15시)
우두산 아홉 봉우리 크고 작은 능선과 계곡이 의상봉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의상대사와의 깊은 인연으로 불리고 있다는데 좌측으로는 별유산이 우측으로는 지남산과 장군봉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능선마다 계곡마다 펼쳐지는 조물주의 걸작 품들이 천태만상으로 머리를 조아리니 늠름한 기상과 빼어난 자태는 차라리 제왕봉이라 하는 것이 어떠할지?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고 수백 척 단애위에서 사방을 굽어보면, 남쪽으로 닭이 날아오르는 형상의 비계산(1.125m)과 가조면의 너른 뜰을 품에 안은 두무산(1.038m), 미녀봉(930m), 오도산(1.134m), 그리고 숙성산(895m), 서남쪽으로는 금원산(1.353m), 기백산(1.331m), 거망산(1.184m), 황석산(1.190m)이 서쪽으로는 보해산(911m), 금귀산(710m)너머로 덕유종주의 대간길이 마루금을 이루고 북쪽으로 수도산(1.316m), 단지봉(1.327m), 두리봉(1.133m), 가야산(1.430m), 매화산(954m). 숨이 차도록 수많은 거창의 고봉들이 옹골차고 힘찬 기백으로 산세를 이루고 그 중앙에 의상봉이 자리 잡고 있으니 아름다운 정경을 어디에 비하리.
다시 안부로 내려와 별유산으로 향하는 무딘 발걸음에 혼신의 힘을 다 하여 암릉길을 오르면 무성한 숲속에 삼거리 갈림길이 자리 잡고 의상봉 0.6km 우두산 정상 1046m의 이정표와 뿌리가 드러난 삼각점이 별유산의 정상임을 알려준다. (15시 35분)
苦盡甘來(고진감래) 이제 지옥의 문은 끝이 나고 천국의 문이 활짝 열린다.
주차장 까지 모이는 시간이 4시 30분. 한 시간이 남아 있지만 암릉 구간을 지나자면 시간이 촉박하므로 서둘러 자리를 털고 하산 길로 들어선다. 10여분 후 샘물이 있는 공터를 지나면 본격적인 세미클라이밍 지대가 펼쳐진다. 오늘의 암릉길에 절정을 이루는 10여 m의 로프를 타고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을 둘러보는 중에 머리위에서 헬기소리가 요란하다.
헬기의 행선지는 지남산 정수리. 우리 일행의 부상자가 제 발로 하산을 못하고 헬기의 신세를 지고 말았으니 마음이 어둡기만 하다. 수석의 전시장도 고개 삼거리에 도착하며 끝이 나고 앞에 보이는 무명봉을 넘으면 마장재가 나오겠지만 그곳까지 가자면 시간도 촉박하고 계곡물에 지친 몸을 씻어내는 것이 더욱 절실하기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계곡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 16시 05분 -
무성한 나무숲으로 들어선 계곡은 원시림을 방불케 하지만 마른장마로 갈수기보다도 더한 건천이 흉물스럽고 하류로 내려가다 겨우 만난 웅덩이. 발 담그고 머리감고 찌든 때 털어내니 온몸이 날아갈듯 시원하다. 주차장에 내려서니 약속 시간보다 30분이 늦었지만 부상자를 후송하는 대장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모두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 17시 -
다행이 헬기로 수송이 되었던 환자도 응급치료를 끝낸 뒤 다시 버스에 합류를 하여 가조면 식당의 보양식으로 몸보신을 하고 서둘러 귀경하는 버스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설사의 뒤끝이지만 무사히 완주를 하게 된 것을 내 자신에게 감사하며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 새겨본다.
대암산(1304m)의 용늪이 장관이더이다.
산행일시: 2007년 6월 16일
소 재 지: 강원도 인제군, 양구군
금년 들어 산행 안내지에는 대암산에 관한 기사가 심심 찬케 오르내린다.
대암산이라면 방송국의 일기예보에서 초겨울의 동장군이 기습을 할 때 화악산, 대성산과 함께 곧 잘 인용되는 곳으로만 기억을 하며 우리 산 꾼들에게는 아주 머나먼 나라의 가고 싶어도 갈수 없는 산으로만 기억되는 곳인데, 반가운 소식에 어찌 외면 할 수 있으리 요.
지난주에도 집안의 사정으로 참석을 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는데, 이번에 또 다시 대암산을 가는 산악회가 있어 예약부터 해놓고 자료를 찾아보지만 미진한 부분이 너무도 많아 무작정 출발 지점인 종로 3가 12번 출구로 찾아 나선다.
중동부 전선의 민간인 출입금지 구간인 대암산은 개방 된 것이 아니고. 사전에 군 당국에 허가를 얻어야 출입이 가능하다는 설명으로 이해를 하며 천연 기념물 제 246호로 지정된 용늪의 생태계를 보호 하는 차원에서 한 번에 많은 인원의 출입은 불가능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금년에도 10여 곳이 넘는 산악회가 대암산을 찾았지만 정상에 오른 팀이 없다는 것으로 허가를 얻기가 까다롭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설레 임과 부푼 꿈을 안고 7시 정각 종로 3가를 출발한 버스는 양재동과 복정역을 순례하며 만원을 이루고 안락한 41인승 버스에는 대암산으로 향하는 기대감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홍천가도의 신당고개에 있는 홍천 휴게소를 들려 목적지를 향해 순항을 한다.
우리의 산행에 신의 축복이 계심인지 30도가 넘는 불볕더위 속에서도 쾌청한 날씨가 우리의 가슴을 활짝 열어놓고, 인제를 지나 양구 땅으로 들어서며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육지속의 바다 소양호. 봄 가뭄이 심한 탓인지 담수 량은 많이 줄었지만 계곡을 파고드는 물줄기는 끝이 없고.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으로 호숫가를 이어달리며 6-70년대 전선으로 향하는 신병들이 비상도로를 넘어가며 눈물을 지었다는 전설 아닌 실제의 일화를 다시한번 되새겨 본다.
때 약 볕이 내려 쪼이는 생태 식물원 주차장.
이곳이 대암산을 오르는 들머리로 깔끔하게 단장한 사무실을 지나 계곡에 걸린 초롱다리를 건너면 나무계단이 무성한 숲 사이를 뚫고 가파른 오름길로 이어진다. 나무계단이 끝나는 곳에 너른 야생화 밭의 천국으로 자세한 설명서가 붙어 있지만 한가롭게 관찰할 수도 없고 *소 닭 처다 보듯이*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재촉 할 뿐이다.
식물원 농장이 끝나는 지점에 우측으로 등산로 이정표가 서 있고 숲속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데 강원도 산이 거의 그러하듯 가파른 비알 길이 처음부터 기를 죽이고 새로 맨 로프가 유일한 보조 수단으로 1시간 만에 삼거리 갈림길에 오른다. 후곡 약수터 4.6km 생태공원 1,8km 등산로 정상 0.3km의 이정표를 배경으로 스냅 사진을 찍고 잠시휴식을 취한다.(11시 45분)
간간이 나타나는 전망대 바위에서 심호흡을 하며 1,122봉의 정수리에 올라서면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너른 공터에 표시 없는 삼각점이 있고 대암산정상 이라는 표시와 대암산 용늪 등산 불가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에서 대암산의 정상까지는 북쪽으로 6km가 넘는 거리에 있지만 생태식물원을 개장하면서 후곡 약수를 경유하는 등산로를 개설하고 대암산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이곳에 이정표를 세우게 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산악회의 어느 한 팀이 이곳에서 후곡 약수로 내려서는 것을 볼 수가 있다.(11시 45분)
우리는 산악대장의 사전 설명으로 부담 없이 북쪽으로 진행을 하고 잠시 후, 북쪽으로 대암산의 암 봉이 처음으로 모습을 선보이며 서쪽으로 동면의 소재지인 임당리를 중심으로 중동부 전선의 산하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무명봉의 정수리로 올라서면 알바를 하는 곳으로 좌측으로 대암산을 바라보며 절 개지를 내려서서 참호를 따라 진행을 해야 한다.( 12시 10분)
우리 장병들의 피땀 어린 참호가 등산로로 활용이 되고 산 사면을 돌아가는 포근함으로 키 큰 활엽수의 그늘아래 원추리의 천국이 펼쳐지며 서울이야 3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지만 1,000고지를 넘나드는 곳이다 보니 23도의 쾌적한 날씨에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는 오지산행의 진수를 보여준다.
잠시 후 임도를 만나 그대로 길을 따라가도 되지만 정수리를 고집하는 산 꾼들이 어찌 한가로이 임도를 따르겠는가? 임도를 가로질러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서면 시원한 그늘 속으로 오솔길이 이어지고 수 백 년 된 떡갈나무가 자리 잡은 그늘 아래로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탓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곰취, 떡취, 참취에 당귀까지 화초지초 흐드러진 천국을 이루고 있다.(12시 30분)
5분여를 진행하면 다시 임도와 합류를 하고 잠시 임도를 따르다 우측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임도를 버리고 숲이 울창한 산등성이로 올라붙는다. 완만한 오름길에는 산새들의 천국으로 인기척에도 놀라는 법이 없이 짝을 찾는 구애의 목소리로 산울림이 이어지고 질펀한 풀숲에 자리를 잡고 점심상을 차린다.(12시 45분- 30분간 식사와 휴식)
식사 후의 포만감으로 완만한 산행 길에도 숨이 가빠 오고. 느림보 걸음으로 산등성이를 넘어서면 군인들의 작전 통로인 듯 등산로를 따라 야전 전화선이 깔려있어 지루함을 달래주고 대암산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무명봉에 올라서면 무거운 발걸음에 마음이 급해지지만 아직도 그곳까지는 십리길이 남아 있다. (13시 30분)
오르고 내리고 지루한 발걸음에 산돼지의 천국인가? 수백평의 분지위에 밭갈이를 하였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지리산의 바래봉에 염소와 양을 방목하며 철쭉나무의 군락지가 형성 되었듯이. 무지막지한 산돼지의 주둥이로 온 산천을 뒤집어 놓았지만 신기하게도 옥잠화만은 한 포기도 상한 곳이 없이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으니 산돼지의 천적은 옥잠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 무더기의 산 꾼들이 웅성거리며 발걸음을 멈춘 곳에 철조망이 가로막고 우리는 대장의 안내를 받으며 좌측으로 철조망을 돌아 나가는 곳에 녹슨 양철 조각에 표시된 지뢰의 경고문은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사각지대임을 알려주는 최전방의 보루이다.
무성한 숲을 헤치고 내려서면 경계 초소가 있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초병들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 막는다. 이곳까지가 민간인들이 올수 있는 마지막 지점으로 지난번에 다녀간 산악회의 리본들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발길을 되돌렸으리라 추측을 해본다.(14시 30분)
뙤약볕이 내려 쪼이는 갈림길 초소 앞에는 큼지막한 안내문이 서있고 그 뒤로 녹슨 철조망 너머로 천연 기념물 246호인 용늪이 자리 잡고 정면으로 봉긋한 대암산이 우리의 애타는 심정을 헤아리고 있는지? 원주 지방 환경청장 명의로 *이 지역은 습지 보전법 제15조 2항의 규정에 의거 습지 보호 지역으로 지정(99. 8. 9)된 곳으로 출입이 금지된 곳임을 알려드립니다.*
10분, 20분 시간이 흘러가며 자신만만하던 대장의 안색도 어두운 빛의 그늘이 드리워지고 사전허가의 용건이 무엇인지 알 길은 없지만 군부대와의 전화 접촉의 시간이 길어지며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며 안내문과 용늪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재 시간이 2시 50분. 본래의 계획으로는 하산 지점을 팔랑리로 한다고 하였지만 거리가 짧은 그곳으로는 수 십 년간 사람의 왕래가 없던 곳이라 갈수가 없다는 확인으로 우리의 출발지인 생태식물원으로 되돌아가자면 한시가 급한 처지에 답답하기 그지없다.
초조한 순간순간이 피를 말리며 여기저기서 불만의 소리가 들려오는 오후 3시. 행운의 여신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았다. 군부대의 OK 싸인 은 우리에게 무한한 희망을 안겨주고 우리 모두 환호성으로 고마움에 답하며 한달음에 달려가기 시작한다.
1.5km의 거리를 어떻게 달려 왔는지 등줄기에서는 땀으로 얼룩지고. 사면 길을 오르고 내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힘 드는 줄 모르고. 위험한 암릉을 기어오르면서도 무서움을 몰랐으니. 천재일우의 이런 기회가 또다시 찾아 올수 있을까? 15시 20분 드디어 우리는 대암산의 정상에 올라섰다.
감격의 이 순간 1,304m의 정수리는 수 백리 인근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티끌 하나 기리는 곳이 없이 터지는 조망에 청명한 날씨는 무공해 청정지역의 특징으로 그 흔한 가스도 찾아 볼 수 없이 백리 밖의 물체도 선명하게 보이고 심장의 고동소리가 동부전선의 휴전선 너머로 멀리멀리 퍼진다.
대암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펀치볼로 유명한 해안면일대가 도솔봉과 대우산, 가칠봉, 달산령으로 연결되는 지름 10km의 너른 분지가 운석이 떨어지며 생겨났다는 학설에 수긍을 하며 자연의 신비로움이 장관을 이루고, 동쪽으로 매봉산(1,271m) 너머로 진부령과 마산, 설악산의 안산과 불꽃같은 가리봉과 주걱봉의 연봉들이 하늘 금을 이룬다.
남쪽으로는 이름 모를 산들이 첩첩이 주름을 잡고 하늘 끝에는 영춘 기맥의 연봉들로 가늠을 해보며 서쪽으로는 우리나라 오지중의 오지인 양구의 산하가 평화로운 모습으로 펼쳐지지만 비목의 노랫말이 떠오르는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포성이 멎 은지 반세기가 흘렀어도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이 버림받고 있다는 사실에 눈시울을 적시며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새삼 감회가 새롭다. 휴전선 155마일 비무장지대의 수많은 산들이 우리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지만 오늘 대암산의 정수리에 오른 것만으로도 일말의 갈증이 풀린 듯 가슴속이 후련하고 감개무량할 뿐이다.
10분간의 휴식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초소 있는 곳으로 되돌아와 용늪을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되었으니 1,200m의 고지에 자리 잡은 이곳은 큰 용늪과 작은 용늪으로 나누며 우리나라 유일의 고원습지로 년 중 안개 끼는 날이 많고 물이끼, 삿갓 사촌, 꼬리 조팝나무, 꽃쥐 손이풀등 식물군락과 손바닥 난초, 비로용담, 끈끈이식물성 주걱 등 희귀식물, 식물성 푸랑크톤 63종, 돌말 19종, 천연기념물인 산양, 검은 독수리, 도룡용 무당개구리 , 줄 흰나비 등이 서식하고 있는 귀중한 자연 유산으로 천연기념물 246호로 보호를 하고 있다지만 무지몽매한 우리야 제대로 실감할 수 없어 안타까움이 더한다.
용늪 가는 길 - 키를 넘는 관목을 지나면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설치한 나무계단을 따라 용늪의 탐방이 시작된다. 앉은뱅이 수변식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용늪의 중심부는 가뭄 탓인지, 토사가 밀려온 탓인지 습지가 말라 먼지가 풀풀 나고. 목책으로 둘러친 연못마저 말라 안타까움을 더하는데, 초지 가운데 서너 평의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어 희귀 동식물들의 서식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듯, 이대로 방치한다면 멸종의 위기를 맞겠다는 안타까움으로 서둘러 자리를 뜬다.
민간인들의 접근이 어렵다는 대암산과 용늪까지 순례를 하고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만 아침에 출발한 식물 생태공원까지 되돌아 가야한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끔찍한 8km가 아닌가? 일년 중에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6월이니 망정이지 다른 계절이라면 일반에게 공개가 된다 해도 찾아오기 어려운 곳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후 4시 음료수와 간식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을 한다. 이제 사진 찍는 일과 메모하는 일도 생략하고. 잠시 쉴 틈도 없이 땅을 주름잡으며 1시간 50분 만에 삼각점과 대암산 정상이라는 표지판이 있는 헬기장에 도착하여 한 숨을 돌리고 가파른 비알 길을 내달리기 40분 만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을 하고 후미가 도착하는 7시 40분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행복한 꿈나라로 여행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