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 -1-
安東 金 家門의
完자 黙자의 손주로 孕胎(잉태) 된지도
6개월 반이 되었구나.
어미의 至極(지극)한 精誠(정성)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너의 모습이 대견스럽기 그지없다.
태명으로 지은 사랑 은
엄마 아빠의 작품으로
외할머니의 胎夢(태몽)에 의하면
누 우 런 황금반지를 친 할머니에게 드리고
답례품으로 아주 큼지막한
다이야 몬드 반지를 받는 꿈을 꾸었다고 하는구나.
이런 吉夢(길몽)을 가슴에 안고 태어나는
손주에게 뿌리를 찾아주는 일이야말로
할 애비가 보내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宇宙(우주) 萬物(만물)의 모든 事物이
根本(근본)이 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인간에게
어찌 뿌리가 없을 소냐?
가장먼저 알아야 할 根本을
찾아 修身齊家(수신제가) 後에 治國 平天下 라는
大義(대의)에 順應(순응)해야 할 것이다.
뿌리를 찾아서
金 氏의 始 祖 金 閼 知 (김 알 지)
勢 漢 (세 한) 阿 道 (아 도) 首 留 (수 유)
郁 甫 (욱 보) 仇 道 (구 도) 末 仇 (말 구)
奈 勿 王 ( 내 물 왕 ) 卜 好 ( 복 호)
習 寶 (습 보) 智 證 王 (지 증 왕)
眞 宗 (진 종) 欽 運 (흠 운) 摩 次 (마 차)
法 宣 (법 선) 義 寬 (의 관) 魏 文 (위 문)
孝 讓 (효 양) 元 聖 王 (원 성 왕)
禮 英 (예 영) 均 貞 (균 정)
神 武 王 ( 신 무 왕) 文 聖 王 ( 문 성 왕)
安 ( 안 ) 敏 恭 (민 공) 實 虹 (실 홍)
孝 宗 (효 종) 敬 順 王 ( 경순왕)
金 氏는 크게 나누어 가락국의 김 수 로 왕을 始祖로 하는 金海 金 씨와 신라의 김알지를 始祖로 하는 120여 본의 김 씨들이 후손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의 인구가 4천5백만이나 되지만 2000년의 통계를 보면 287개의 성이 있는데 그중에 김씨 21.9% 이씨 14.9% 박씨 8.5% 최씨 4.8%로 4대성의 인구가 절반을 차지하고 그중에 우리의 뿌리인 구 안동 김씨가 18번째로 많은 425,264명이 된단다.
경주의 계림에서 태어나신 김 알 지 할아버지를 시조로 모신 모든 김 씨 들이 같은 후손이라고 하지만 위에 있는 도표대로 내려오면서 수많은 본관이 태어나고 우리의 시조는 경순왕의 손자이신 叔자 承(숙승)자 할아버지를 모시며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新 安東과 舊 安東은 같은 안동을 본으로 하고 있지만 아무런 血緣關係(혈연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의 뿌리는 구 안동으로 신라의 마지막 임금이신 56대 경순왕으로부터
시 작을 해보자
敬 順 王 (경 순 왕) 신라 56대 임금
경순왕 릉에 참배를 한다.
殷 說 (은 설) - 대안군
경순왕의 넷째 아드님으로 工部侍郞 平章事
叔 承 (숙 승) 구 안동의 실제적인 始祖
대안군 은설의 셋째 아드님으로 안동김씨의 시호로 봉해짐
- 工部侍郞 平章事 -
日 棘 (일 긍) - 태사 대광
金紫光祿大夫 尙書 右僕射 三韓功臣 太師大匡
利 請 (리 청) - 상락군
安東 太守
義 和 (의 화) - 시랑공
敏 成 (민 성) - 한림공
文科에 及第 翰林 直史館兼 掌冶署令
孝 印 (효 인) - 상서공
- 二 子 -
고종 40년( 1240년) 11월 15일 졸
配 : 金官國 大夫人 金寧 宋氏(금관국 대부인 김령송씨)
高麗 熙宗 戊辰年 文科에 及第하여 正議大夫(정의대부) 兵部上書(병부상서) 翰林學士(한림학사) 知制誥(지제고) 追封金紫光祿大夫(추봉금자광록대부) 三韓(삼한) 壁上功臣(벽상공신) 三重大匡(삼중대광) 修文殿太學士(수문전태학사) 判史兵部御史臺事(판사병부어사대사) 中書令(중서령)
方 慶 (방 경) - 충렬공
- 長 子 -
配: 冷平國 大夫人 竹州 朴 氏(냉평국 대부인 죽주 박씨)
配 : 慶州 加氏 ( 경주가씨)
선영: 경북 안동시 녹전면 죽송동 산 19번지 능촌
충렬공 김방경 할아버지께서 가문을 크게 빛 내셨으므로 중시조로 모시고
1212년(강종 1년)에 태어나서- 1300년(충렬왕 26년) 89세에 돌아가시다.
고려의 명장으로 16세에 散員(산원)이 되어 拭目錄事(식목록사)를 겸하고 監察御使(감찰어사)를 거쳐
西北面兵馬判官(서북면병마판관)에 이르렀다.
刑部尙書(형부상서), 樞密院副使(추밀원부사), 삼별초의 난을 평정하는 대원수로, 여원 연합군으로
일본을 정벌할 때 중군장이 되셨고 , 문무를 겸비한 재상으로 萬人之上 一人地下(만인지상 일인지하)
현재의 국무총리로 上洛郡開國公(상락군개국공)으로 壁上三韓三重大匡(벽상삼한삼중대광) 에 이르셨다.
고려의 명장 김방경 장군
녹전면 구송리 구송삼거리
"고려충신 충렬공 김방경 장군 신도비"
고려 충렬왕 33년(1307)왕명으로 건립, 그 후 유실되어 1971년 현 위치에 재건하였다.
고려 원종14년(1273) 삼별초 난을 평정하였고,
충렬왕 7년(1281) 원나라가 일본정벌시 고려군 도원수로 종군하였다.
1283년 "추충정난정원공신 상락군개국공"의 호를 받았고,
"삼중대광 첨의중찬 판전리사사 세자사"로 벼슬에서 물러났으며,
"첨의령"을 더하여 "상락군개국공 식읍일천호식실봉삼백호"에 봉해졌다.
충선왕 때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에 추증되었다.
녹전면 죽송리 "음수재(飮水齋)"
충렬공 김방경의 묘제를 위한 재실, 2001년 11월 중건했다.
김방경 장군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
충렬공의 묘 (음소재 뒤 산)
"고려추충정난정원공신벽상삼한
삼중대광첨의중찬세자사상락군
개국공 시충렬 김방경 지묘"라는 비문
1966년 김방경의 23세 손 김사옥이 쓴 글씨다.
오른쪽 묘비는 1602년 충렬공의 외손인 이시발이 비문을 쓴 것이며,
뒷 쪽에는 광산김씨 입향시조 김시로의 묘이다.
충렬공의 묘는 고려 충렬왕 26년(1300) 9월에 조성된 후
오랫동안 유실되어 찾지 못하였는데, 이 곳에 광산김씨 시조 김효로의 묘를
조성하던중 "고려충렬공 김방경지묘"라는 지석이 출토되어 앞뒤로 묘를 조성했다고 한다.
이 묘는 국내에 몇 안되는 고려 중기 묘소중의 하나다.
가운데가 충렬공의 재실인 음소재
왼쪽은 광산김씨 재실, 오른쪽은 관리인의 집
재실 주변에 농사용 도구들이 아무렇케나 방치되어 있어 볼상 사납다.
충렬공 유허비
1825년 세워졌으며 풍산읍 회곡리 회곡삼거리 옆에 있다.
비문은 대산 이상정 선생의 글씨이다.
"고려첨의중찬충렬공상락 김선생휘방경유허"
상락재(上洛齋)
충렬공의 부인 "냉평국대부인"의 재실
2012년 2월 12일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를 참배 함.
소재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임진강 언덕)
고려 태조 왕건의 영정
고려 오백년사에 16 명신의 위페를 봉하여 매년 봄가을 로 제사를 올리는 숭의전에는
충렬공 김방경 할아버지의 위페가 모셔저 있으니 후손으로 어찌 감읍하지 않으리요.
시대별로 복지겸 부터 5명은 고려 건국의 개국공신이다.
해서 실질적으로 고려를 빛낸 신하는 11명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충렬공 할아버지께 참배
恂 ( 순 ) - 문영공
- 三 子 -
1258년(고종 45년) - 1321년(충숙왕 8년)
配; 劑平郡夫人 陽川 許氏 (제평군부인 양천 허씨)
1279년 문과에 급제 - 郎將(낭장)에서 學士. 直講에 전직, 일본 정벌때 종군하고 돌아와 殿中사사가 되었다. 1297년 좌부승지, 좌승지를 거쳐 밀직부사, 삼사좌사, 판삼사사로 승차하고 예서를 잘 쓰시고 거문고와 퉁소에도 즐겼다함.
永 煦 (영 후) - 상락후공
- 四 子 -
1292년(충렬왕 18년) - 1361년(공민왕 10년)
配 : 上黨郡 夫人 淸州 韓氏 (상당군 부인 청주한씨)
충숙왕때 三司右尹(삼사우윤)이 되고 충혜왕을 모시고 심양에 다녀온 공으로 贊成使(찬성사)가되고 提調政房(제조정방), 左政丞(좌정승), 右政丞(우정승)을 역임하셨다.
蕆 (천) - 영삼사공
- 長 子 -
配 : 三韓國大夫人 玄風郭氏(삼한국 대부인 현풍 곽씨)
奉翊大夫(봉익대부) 副知密直司事 (부지밀직사사) 上護軍(상호군)
贈 輔國 崇祿大夫 領三司事 上洛軍( 증 보국 숭록대부 령삼사사 상락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