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의 성벽따라 가는 정기산행
시산의 여름산행
장소 : 40년 만에 돌아온 북악마루
일시: 2007년 8월 19일 (일요일)
날씨: 쾌청 산행거리: 약 8km 소요시간 : 3시간 30분
참여인원: 고 양규 김 은남 전 상열 김 택근 문 영호 문 영철
전 호영 김 천수 박 천순 오 희정 김완묵 부부 나 용준 부부와 자녀들
초청손님: 고 민지 (오 희정 시인 초청) 총 17명
작은 모임이던 큰 모임이던 준비하는 마음가짐에는 어찌 한 치도 소홀함이 있으리오. 여름장마 피하고 피서를 비껴 잡은 날자가 8월 19일.
일 개월 전부터 독려의 메일을 날리고 잊을 만할 때 또 한 번 회원들의 느슨한 마음을 사로잡으며 D - day 5일전에 안부 겸 확인전화에서 참석의 약속을 받은 회원이 15명. 긍정적인 회원 3명.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거둔다는 간단한 진리를 음미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산행 코스는 지난 7월에 사전 답사 겸 다녀온 곳이라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마른장마 다 보내고 뒤늦게 질퍽거리는 궂은 날씨에 TV에서는 친절하게도 시간마다 일기예보를 전하며 토요일과 일요일에 비가 내린단다. 모처럼 잡은 날짜에 불청객이 끼어드는 것도 불가항력이니 하늘에 맞기고 무사히 지나가는 토요일이 부럽기도 하지만 차질 없이 준비를 하면서도 연신 하늘을 바라본다.
오늘은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산행을 하는 날이라 설레 임과 부푼 기대로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며 베란다로 나가보니 도봉산과 수락산이 어둠속에서도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니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에 도착하니 8시 20분. 약속 시간보다 40여분을 일찍 나온 탓에 텅 빈 대합실에는 공허 로 운 바람만 불어오고 아내와 들이서 회원들이 도착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가장 먼저 모습을 보이는 전 상렬 전 회장. 곧이어 오 희정 시인. 김 은남 전 회장. 전 호영 부회장의 모습으로 분위기는 살아나고 약속한 회원들의 불참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그래도 양호한 코리안 타임 30분에 마감을 하고보니 예상대로 14명의 회원들과 오희정 시인이 초청한 고민지 시인이 합류하며 가슴속의 먹구름도 하늘의 먹구름도 녹아내리고 대지를 달구는 열기는 우리의 힘찬 발걸음에 녹아든다. (9시 30분 출발)
불볕더위속의 산행이라 속도조절을 하며 집을 나 온 것만으로도 즐거운 듯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처럼 재잘 재잘 웃음꽃을 피워내며 혜화동 로터리를 돌아 경신고등학교 정문의 오르막길을 휘 돌아서면 성벽의 초입에 이른다. 내려 쪼이는 태양은 대지를 달구어내고 수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 길에 지례 겁을 먹고 속도가 느려지며 구슬 같은 땀방울을 훔쳐내기에 여념이 없다.
갈 길이 먼 것도 아니고 산과 시를 사랑하는 문인들이지만 전문 산 꾼들이 아닌탓에 발걸음이 마냥 느려지고 쉼터마다 그늘을 찾아 늑장을 부리며 즐거운 담소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와룡동과 계동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에는 군부대가 자리 잡고 40여년의 금족령으로 민간인들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던 신비의 세계로 들어선다. 울창한 솔밭 속에는 600년의 時空을 뛰어 넘은 성벽들이 담쟁이 넝쿨로 몸을 가리고 솔바람의 향기 속에 살포시 우리의 가슴을 보듬어 안는다.
나라님이 계시던 창덕궁과 경복궁, 청와대까지 든든한 성벽에 철조망까지 잡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던 곳에 문호를 개방하여 성벽을 넘는 계단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북악 스카이웨이의 마루금위로 북한산의 영봉이 장엄하게 솟아오르고 장안의 빌딩숲 너머로 남산의 서울타워가 우리의 기상을 일깨워주며 그림 같은 숙정문이 솔밭 속으로 자태를 드러낸다.
40년의 금단 속에 돌아온 솔밭 속에는 청솔무의 천국으로 가지 사이를 오르내리며 온갖 재롱을 부리고 산을 오르며 흘리는 땀방울에 몰려드는 날 파리도 만장봉의 쉼터에 진을 치는 쉬파리와 개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니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살 갓을 스치는 솔바람까지도 오염되지 않은 지상의 낙원이요 우리가 보존해야할 자연유산이 아닌가?
입산신고서를 제출하고 들어서는 무공해 청정지역. 만리장성 부럽지 않은 한양도성18km. 지금은 10여 km에 걸쳐 복원이 되었다지만 휘 늘어진 낙락장송 그늘아래 산굽이를 감아 돌고 곡장에서 치를 떨고 청운대를 지나치면 백악마루 정수리에서 창의문으로 급살 나게 내려딛어 건너편의 인왕산으로 치 다르는 장관이요.
아름드리 노송이 장관을 이루는 숙정문으로 향하는 길은 비단길이요. 그윽한 솔향기에서 피어나는 피톤치드에 만단시름 녹아내리고 출출한 시장 끼에는 먹 거리도 즐거움이라. 주고받는 막걸리에 정을 나누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곡장으로 향할 때 잔인한 일본 놈들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민족의 혈맥을 끊는다며 칼바위 정수리에 쇠말뚝을 박았으니 그 자리에 지석을 세우고 잊지 못할 치욕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북악산 제일의 전망대는 곡장이라 않던가?
성벽을 따라 오르다보면 직각으로 꺾어지는 꼭지 점이 벼랑 끝으로 돌출되어 단애를 이루고 동쪽으로 북악 스카이웨이의 팔각정이 날아갈듯 자리 잡고 북쪽으로는 세검정을 품에 안은 북한산이 열두 폭 병풍을 펼쳐 놓은 듯 시선을 압도하고 서쪽으로는 북악마루 넘어가는 도성의 층층계단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며 인왕산의 치마바위와 마루금을 이어가는 성벽이 장관을 이룬다.
아름다운 조망을 이루는 이곳이 전략적인 요충지로 전시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 거리지 못할 천혜의 요새지가 아닌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청남대로 올라서니 발아래로 경복궁의 전경이 펼쳐지고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면 일직선으로 관악산과 연결이 되고 뒤편으로는 백운대와 맥을 같이 하고 있으니 이성계가 천도를 하며 한양의 지세를 돌아볼 때 이곳에서 풍수지리에 의한 설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길옆으로 총탄자국에 흉한 몰골을 하고 있는 노송 한그루.
김 신조 일당이 탈출하며 격전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으로 40여 년간 민간인의 금족령이 내려진 원인이 되었으니 이제는 남북의 긴장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의 아픈 현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장안의 도성이 600여 년의 세월 속에 새로 쌓은 곳이 대부분이지만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곳으로 성벽에 글자가 새겨진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것은 성벽을 축조할 때 전국에서 인원을 징발하게 되고 구간별로 할당을 주어 책임시공을 하게 하므로 이곳에 책임자의 이름과 지역이름 동원된 사유를 새겨 놓았으니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를 엿볼 수 있으며 지금도 고속도로나 큰 건물에는 기단이나 표지 석을 세우는 효시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가냘픈 몸매로 층층계단을 오르고 35도 불볕더위 아래서도 혼신을 다하여 북악 마루 백악산 정수리에 올라선다.
생각 보다는 시원치 않은 조망. 시내서 바라보면 청와대 뒷산의 삼각형의 꼭지점 이지만 나무 그늘에 벤치가 전부이고 하늘로 오르고 싶은 염원인가 정수리에 뾰족한 바위가 인상적이다. 기념사진 한 장으로 휴식을 대신하고 곤두박질치는 계단이 천개가 넘는다지만 제대로 세어본 사람이 없다는 창의문으로 내려서며 역사 탐방을 겸한 종주산행에 행복을 한 아름 가득가득 안고 내일을 기약한다.
파이팅 !
詩와山을 사랑하는 文人들이여
永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