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세계/문학공간

제 203호 - 2006년 10월 (문학공간)

김완묵 2007. 6. 30. 08:55

해룡산을 아시나요?

천보산(423m), 해룡산(660m), 왕방산(737m)

산행일시: 2006년 1월 21일  08시- 15시     산행시간: 7시간     산행거리: 약 13km

소 재 지: 경기도 포천시 - 포천동 - 신북면   양주시 - 회암동    동두천시 - 탑동동    날   씨: 맑음




산에 대한 상당한 경력을 가진 산 꾼들도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해룡산은 강원도나 경상도의  오지에 있는 산도 아니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절해고도의 산도 아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으면서도 교통의 사각지대 인데다가 주위의 유명세에 눌려 찾아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으니 세간의 입방아에서도 멀어져 있는 것이다.


한북정맥이 남으로 내려오다 축석고개를 지나며 북쪽으로 내달리는 천보지맥이 천보산을 넘어 장림고개 못 미쳐 동북으로 뻗은 능선위로 우뚝 솟은 산인데 오지재 고개를 뛰어넘어 왕방산으로 연결되는 종주길이다.


해룡산만 둘러본다는 것이 진입로도 그렇고 산행시간이 어중간하여 어차피 내친걸음 종주길로 왕방산까지 달려보자는 욕심으로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요즘 문화재 발굴 작업이 한창인 회암사지도 둘러볼 겸 덕정리 쪽으로 산행 들머리를 잡다보니 종로5가에서 덕정리를 오가는 108번 버스가 집(회룡역) 앞을 경유하는 노선이 다시 생겨 회암리 입구에서 내리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른 새벽 집을 나선다.(7시)


양주군이 시로 승격이 되며 의정부 북부지역이 급속도로 발전이 되고 천보지맥의 서쪽으로 군사보호지역이 풀리면서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대 역사가 이루어지니 조용하던 산골마을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주위가 부산스러운 가운데 덕정리에서 송우리로 이어지는 316번 도로가 지나는 율정 삼거리에서 하차를 한다.


송우리 쪽으로 차도를 따라 500여m를 가다보면 동두천으로 가는 374번 지방도의 삼거리길이 나오고 길 왼편으로 김 삿갓의 고향 회암동 이라는 이정표가 눈길을 끄는데 500m를 더 가면 회암사지 이정표와 왼쪽으로 창암 2교를 건너며 발굴현장으로 진입하게 된다.(08시 15분)




울울 창창 전나무들이 천년고찰의 회암사 입구를 장식하고 요란스런 현수막에는 김 삿갓(병연)기념사업을 적극 추진하자는 양주문인협회의 호소문을 바라보며 문인의 한 사람으로 흐뭇한 미소를 보내며 김 삿갓은 1807년(순조7년) 아버지 김 인근과 어머니 함평이씨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는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강원도 마대산 기슭에 육신을 누이고 말았으니 방랑시인 김 삿갓으로 우리의 가슴속에 연민의 정으로 남아있는 분이다.


곧이어 너른 벌판에 구획정리를 하듯 펼쳐진 발굴현장.

여주의 고달사 지를 둘러보고 큰 감명을 받았지만 어느 왕궁보다도 큰 규모에 놀라며 천년 전의 재정형편으로 과연 가능했을까하는 의구심과 불심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에 입이 딱 벌어진다.


                                     회암사지의 당간지주

천보산의 양지바른 구릉위에 자리잡은 회암사지는 고려 충숙왕 15년(1328년)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이 인도의 아라난타 사원을 본떠 266칸의 대규모 사찰을 건립하고 보우선사가 거처하던 200여 년간 영화를 누리다가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 의해 점점 쇠퇴해져 19세기 초에 폐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 규모는 8구역으로 나누고 8개의 계단으로 석축을 쌓고 30여 채의 가람이 들어섰다고 하지만 지금은 중앙부의 서쪽 편으로 당간의 지주로 보이는 석조기둥 3개가 보존되어 있고 가장 북쪽에 세워져있는 높이 6m의 부도는 경기도 보물 52호로 지정이 되어있는데 팔각원당형부도로 안정감이 있고 조각기술이 정교하여 조선초기의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08시 20분부터 15분간 관람) 


                                    회암사지 발굴현장

벅찬 감동으로 회암사지를 돌아보고 본격적인 산행길에 나서는데 회암사입구에 버티고선 경비견은 아프리카의 청소부 하이애나 처럼 흉측하게 생긴 놈이 사슬도 풀린채 이방인의 접근을 경계하며 주위에는 여러 마리의 개들이 어슬렁거리며 시위를 하고 있다. 아무리 불심을 키우기 위해 동안거를 한다지만 이런 방법으로 쌓은 공덕이 무슨 소용 있을까? 


공포의 분위기속에 작전상 뒤로 물러서 우측의 산기슭으로 올라서니 뚜렷한 등산로가 길을 틔워주고 천보산 정상이 아침햇살에 눈이 부신데 쌀쌀한 날씨지만 흥건히 땀을 흘리며 주능선에 올라서니 양주 시에서 세운 이정표가 반갑게 맞아준다.(09시 10분)


                                    황금빛으로 물든 천보산

완만한 능선길 앙증맞은 암봉을 지나 가파른 비알 길에 로프도 걸려있고 전망 좋은 정상에는 벤치가 두개 길손을 반겨주는데 정작 정상임을 표시하는 이정표가 없으니 허전한 마음으로 리본하나 걸어놓고 발길을 재촉한다.(9시25분 7분휴식)


칠봉산으로 이어지는 주 능선은 전망이 아주 좋아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시원하게 펼쳐지는데  건너편으로 오늘의 목적지인 해룡산이 우뚝 솟아있고 정수리에는 거창한 통신 탑이 솟아 있다.

오호라 이제야 알겠다. 사람들이 해룡산을 꺼리게 된 이유를.


지난번에 송추 유원지 건너편의 형제봉을 오르다 군부대의 철조망이 가로 막아 되돌아선 경험이 있어 어찌해야할지 망설이며 답답한 마음으로 등산로가 없다면 포기를 하고 칠봉산으로 하여 동두천으로 빠지리라 작심을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데 이정표가 서있는 갈림길에서 해룡산 가는 길이 너무도 잘 나있고 산악회의 리본들이 원군이 되어 어서오라 손짓을 한다.(9시 40분)


                          해룡산으로 향하는 갈림길 우측은 하산로

가파른 비알 길 미끄러운 왕사토가 앞을 가려도 신바람 나게 달려가는 발걸음을 막을 자 누구더냐? 엄동설한에 소대한이 다 가도록 눈을 �고 눈을 봐도 수북히 쌓인 낙엽위에 먼지만 펄펄 날고 솔 그늘 쉼터에는 우측으로 하산길이 열려있지만 종주 길은 직진이라 그대로 내 달리다 잠시 후 정성스레 다듬어진 묘 잔등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서면 비포장 임도 길을 만나게 되는데 굽이굽이 돌아가는 비상도로는 오지재 고개까지 7km임을 알려주고 서둘러 주능선으로 올라선다.(10시)


                                       비상도로

잠시 후 능선을 하나 넘어서면 다시 비상도로와 만나게 되는데 소나무 숲이 무성한 그늘 속에는 갈참나무 기둥에 128번이라는 표식이 달려있고 많은 리본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10시 7분)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데 좌측의 비상도로는 산허리를 끼고 돌며 멀어지고 건너편으로 칠봉산이 피라밑 형으로 첨봉을 이루며 장림고개는 잘록한 허리에 억새의 군락이 황금물결로 출렁이는데 천보 산을 맛보기로 해룡산 가는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급경사 비알 길에 먼저 간 산 꾼들의 발자취 따라 가쁜 숨을 몰아쉰다.


                       해룡산이 바라보이는 헬기장

노송의 그늘 속을 쉬엄쉬엄 올라서니 전망 좋은 헬기장.

해룡산 정상이 먼발치에 바라보이고 정수리에는 통신 탑이 하늘높이 치솟아 육중한 철조망이 가슴을 조리게 하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민간인 접근 금지 경고판이 보이지 않고 부대 쪽으로 등산로가 뚤려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을 하니 군견들이 먼저알고 마구 짖어대는데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다.(11시)


하지만 철조망주위로 돌아가는 길이 있어 지은 죄도 없으면서 주늑이 들어 콩알만 해진 가슴을 쓸어내리며 철조망을 끼고 남쪽으로 돌아가는데 부대안의 병사들은 본체만체 자기들의 임무에만 충실하고 있으니 다소 긴장감을 풀며 주위를 둘러보니 송우리와 천보지맥이 그림같이 펼쳐지고 수락산과 도봉산이 하늘 금에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데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대로 주머니속의 카메라를 만지작 만자작하며 망설이다 괜한 오해를 살까 두려워 아쉬움 속에 포기하고 궁지를 벗어나기 위한 행보를 빨리한다.


7분만에 철조망을 통과하고 숲속을 바라보니 꼬리를 감추었던 리본들이 손짓을 하고 사지를 벗어났다는 안도감으로 하산 길로 들어서니 된비알 쇠 음달엔 낙엽속에 얼음이 복병으로 숨어있고 간벌된 나무들이 즐비하게 쓰러져있어 마음 급한 산 꾼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오지재 고개

군부대에서 내려오는 비상도로와 만나 잠시 후에 도착한곳은 동두천의 왕방이 마을과 포천의 선단 마을을 오가는 오지재 고개로 2차선으로 포장된 고개 마루는 오가는 차량도 별로 없는 한적한 곳으로 동두천 터미널에서 하루에 7번씩 포천의 대진대학까지 다니는 대양운수가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포장마차 하나가 세찬 바람 속에 졸고 있어 반가운 마음에 동동주 한잔으로 갈증을 풀고 왕방산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11시 30분 - 20분간 휴식)


오지재 고개에서 왕방산 까지는 3.3km로 이곳을 들머리로 하는 산악회가 많다보니 포천시에서 총총히 이정표를 세워놓고 등산로도 훤히 뚫려있어 오늘의 산행 길에 처음으로 탄탄대로를 걷는 기분으로 산행을 즐기는데 영춘 지맥을 종주하는 팀들도, 동두천의 지목회, 포천 중고 총동문회, 청운산악회 등 수많은 리본들의 발자취 따라 돌탑으로 소원을 빌어 올린 570봉에 올라서니 송우리의 너른 들녘과 대진대학의 캠퍼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12시 12분)


                                570봉의 돌탑앞에서

737m의 왕방산을 오르는 길이 만만치는 않지만 동두천과 포천의 경계선을 이루는 주능선이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이어지고 대진대학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 포천의 자작리 갈림길에는 왕방산 1.7km 오지재 고개 1.6km의 이정표가 잡목사이로 자리를 잡고 낙엽 쌓인 육산 길에 제법 큼직큼직한 바위들이 선을 보이며 지도에 표시된 장기바위를 찾기에 여념이 없지만 마주치는 사람들도 처음 들어보는 지명인지라 고개를 갸웃갸웃 답답하기 그지없다.(12시 40분)




헬기장을 지나며 왕방산도 지척으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장기바위 찾기에 여념이 없는데 우람한 바위하나 하늘로 치솟고 혼신의 힘을 다해 정수리에 올라서니 낙락장송 3그루 독야청청 푸른속에 왕방산 제1의 전망대로 장기판의 눈금을 찾을 길은 없지만 대진대학의 최용림 씨가 초등학교 삼학년의 아들과 함께 너른 암반위에 자리를 잡고 망중한을 즐기는데 그들은 이곳을 삼송정이라 부르며 시간이 날 때 마다 이곳에 올라 호연지기 기르며 부자의 정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들과 어울리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13시 - 15분간 휴식)


                                    최용림씨 부자

                         장기바위 위의 소나무 세그루

오르는 것 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어려운 얼음 깔린 장기바위 아슬아슬한 바위모서리와 씨름하며 내려서니 모골이 송연하고 두 다리가 후둘 거린다. 이제 왕방산을 찾은 임무를 완수한 듯 홀가분한 마음으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너른 공터에 억새가 꽃을 피우는 정수리는 멀리서도 황금빛 춤사위로 마음을 사로잡는데 서울이 가까운 탓으로 산악회들이 시산제장소로 많이 이용하고 있는 곳이다.


정상에는 낙락장송 한그루, 힘들게 올라온 산 꾼들이 달아놓은 리본들이 홍수를 이루고 무인지경으로 사방팔방 거 칠 것이 없는 정수리는 넓디넓은 포천의 분지를 감싸고 한북정맥의 고산준령들이 남으로 내달리고 천마산과 축령산, 수락산, 도봉산 방금 지나온 해룡산 그 너머로 칠봉산, 감악산, 마차산, 소요산이 시선에 가득하고 왕방이 고개 너머로 국사봉이 지척에서 종현산으로 내달리는데 북녘의 산하는 아득하게 멀어만 보인다.(13시 35분-10분 휴식)


                                    왕방산 정상의 소나무


 



왕방산은 972년경 도선국사가 정업을 닦을때 광종 임금이 친히 행차한데 유래하여 불려지고 있으며 제법 큼직한 정상 석을 다시 세우고 1982년 재설된 포천 23호 삼각점 옆에는 지리원의 측량의 기준이 되는 삼각점을 보호하자는 안내판과 전국을 일정한 간격으로 구분하여 16,000개의 삼각점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동쪽으로 100여m 전방에는 헬기장을 겸한 너른 광장이 있고 수 백 년 된 소나무 숲길을 지나 직진을 하면 무럭 고개로 종주를 하게 되고 우측으로는 왕ㅅ사 하산길이 이어진다. (13시 50분)


                               소나무 숲이 무성한 하산로



처음에는 완만한 하산 길에 운치도 좋아 콧노래 흥얼거리며 발걸음을 내딛는데 700m가 넘는 정수리에서 어찌 한가롭고 편안한 길만이 이어질 수 있단 말인가? 7-80도의 깍아 지른 벼랑길에는 반질반질 유리알 같은 빙판길이 앞을 가로막고 그 흔하던 로프 하나 없이 빙벽을 이루니 아이젠을 차고도 오금이 저려 엉금엉금 기는데 비상연락을 받은 구급대원들이 정상을 향하여 비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으니 그들의 멸사봉공의 희생정신과 사명감에 감사드리며 겨울산행의 안전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왕산사 대웅전

수 백 년 된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왕산사.

왕방산의 정기를 한 몸에 받은 왕산사는 너른 분지위에 대웅전과 요사채, 신선각으로 천년고찰의 웅장한 모습은 찾을 길 없고 고즈넉한 산사에 시원한 약수가 일품이며 특별히 자랑할만한 문화재는 없어도 은은한 풍경소리에 불심만은 가득하다.(14시 30분)


한적한 오솔길에 포장길을 내려오는 호병골 계곡이 포천시내까지 3km나되어 북서풍의 찬바람을 맞으며 마지막 까지 안간힘을 쓰며 13km의 먼길을 7시간에 걸쳐 완주하며 겨울산행도 마감을 한다.(1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