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5년 4월 18일
구 간: 양구시외버스터미널 - 버스 - 관대리 정류장 - 38대교 - 제2둘레길 - 군축교 - 제1둘레길 - 살구미교 -인제 터미널(24(km)
인제1구간: 소양강 둘레길
6시50분에 출발하는 관대리행 버스를 타기위해 하룻밤 신세를 진 백두산 모텔을 나선시각이 6시30분이다. 양구에는 모텔들이 유난히도 많다. 자식이나 애인을 면회 온 가족들이 하룻밤 회포를 풀어야할 숙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양구를 수호하는 부대와 같은 이름이라 숙소로 정했던 것이다.
하루에 3번 왕래하는 관대리행 버스를 타지 못하면, 모든 일정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새벽잠을 설치며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승객이라야 모두 2명뿐이다. 썰렁한 분위기속에 달려가는 버스는 40분 만에 인제군 남면 관대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관대리는 배산임수의 지세를 형성하고 있는 마을이다. 대암산(1.263m)자락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398봉을 이루고, 반달처럼 휘어진 소양강이 잔잔하게 흘러가며 포구를 이루고 있다. 소양 댐이 축조되기 전에는 큰 마을이었으나, 호수에 마을이 잠기고 육지 속에 고립된 마을로 변하면서 지금은 50여명이 살아가는 호젓한 마을이다.
지난겨울의 가뭄이 심했던지 소양강의 수위가 낮아 벌거숭이 황토밭으로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관대리 주민들이 외지와 소통하기위해서는 관대두무로를 따라 양구나 38대교를 건너 인제로 나가야한다. 왕복 2차선으로 포장된 도로는 소양강을 끼고 울창한 숲을 관통하는 천혜의 드라이브코스다. 매연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이다.
관대리를 출발한지 1시간 만에 38대교에 도착한다. 소양강이 호수로 흘러드는 강어귀에 건설한 인제38대교는 길이가 700m로, 최신공법인 라멘교((Rahmen橋)로 건설하여 외관이 매우 아름답다. 38선은 우리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안겨준 곳인데, 상징적인 의미로 다리남쪽에 휴식공간을 조성하고 소양강 둘레길도 이곳에서 시작하고 있다.
소양강 둘레 길을 1, 2구간으로 나누어 총 길이가 인제읍내까지 18km에 이르는 멋진 코스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환상의 둘레 길을 어찌 마다 하겠는가. 일정을 변경하여 둘레길로 들어선다. 군에서 비상도로로 사용하던 길을 개조하여 둘레 길로 다듬었다.
울퉁불퉁 돌 자갈 길이지만, 차량이 다닐 정도로 넓고 강변에서 백여 m 높은 산중허리로 연결하여 시야가 너무도 좋다. 가장먼저 만난사람이 벌통관리인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집시생활을 하는 직업이다. 꽃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그들의 삶이 고단할지라도 나름대로 희망이 있을 것이고 보면, 금년 한해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게 된다.
인제대교까지 9km를 진행하는 동안 전망대 2곳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소양강은 구절양장처럼 사행천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퇴적층이 쌓인 고수부지에는 청록색의 보리들이 푸른 물결을 이루고 있다. 벼랑길 바위틈서리엔 토종벌통이 자리를 잡고, 길바닥에 쏟아진 낙석더미를 지날 때는 등골이 오싹하다.
오르락내리락 장승모형으로 만든 이정표를 길잡이삼아 관대리 협곡에 내려서면, 두무리와 관대리를 연결하는 국유임도 시발점을 만난다. 16km에 이르는 임도를 잘못 들어서는 날이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산속에서 무원고립의 신세가 되고 만다. 인제대교에 내려서며 둘레길 2구간이 끝나고, 인제읍내와는 반대방향으로 군축교를 건너 소양강 둘레길 1구간과 연결된다.
소양강 2구간이 군 비상도로를 개조하여 조성했다면, 1구간 소류정에서 살구미까지 8.5km는 깎아지른 벼랑을 다듬어 새로 만든 길이다. 사람이 비켜갈 정도로 협소한 오솔길에, 자연을 살리면서 나무 테크로 다리를 놓아 아슬아슬한 구간을 지날 때면, 간담이 서늘하도록 스릴 넘치는 구간이다.
제2구간이 활엽수림 속을 걸었다면, 1구간은 아름드리 소나무사이로 길을 내어 솔 향 그윽한 오솔길을 걷게 된다. 강물에서 20여 m 높이에 길을 내어 푸른 강심을 바라보며 걷는 것도 소양강 둘레 길에서만 볼 수 있는 사색의 길이다. 솔 향이 그윽한 전망대에 올라서면, 험준한 산과 계곡을 돌아온 하늘 길과 다시 만난다.
하늘아래 첫 동네 금바리마을은 세월을 비껴간 듯, 낮은 지붕에 토담을 두르고, 무성한 잡초사이로 소양강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마을이다. 서낭당에 돌 하나 올려놓고, 산마루에 올라서면 생뚱맞은 춘향 터를 만난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소양강이 굽이쳐 흐르고, 고개를 들어 멀리 보면 인제읍이 아련히 보이는 명당자리다.
오월단오절이 되면 마을처녀들이 창포로 머리감고 갑사댕기 나풀거리며, 그네 뛰는 모습이 마치 남원의 춘향이를 연상시킨다는 비유로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어찌됐던 시원한 소나무 그늘 속에 펼쳐지는 경치가 장관이다. 살구미 마을이 가까워오며 소양강 둘레 길도 끝이 난다.
소양강 둘레길은 행정안전부에서 친환경생활 공간사업으로 선정하여 탐방객의 여가생활을 활용하여 심신을 단련하고, 체험을 통해 지역의 가치와 관광기반을 제고하기 위해 조성하였다고 한다. 생각지도 않은 둘레길을 답사하며 청정지역, 인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보람을 느낀다.
사구미대교를 건너 시가지로 들어선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60년대 전방으로 배치되어가는 장병들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비포장 길에서 군용차량 뒷자리에 앉아 배고 품과 추위에 떨며 부르던 애절한 노랫가락이다. 이제는 왕복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린 길을 따라 설악산도 단 숨에 달려가는 시절이 되었다.
인제가 배출한 현대시인 박인환 문학관을 찾았다. 1926년 인제에서 태어나 30세의 짧은 생을 살아온 시인의 일생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의 암흑기에 현대문학사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활동을 하다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고 말았으니 너무도 애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