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도래기재(770m) - 고치령(760m) / 26.2km
도래기재(770m)는 태백산과 소백산을 가르는 경계지점으로,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과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을 이어주는 998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지금은 터널이 개통되어 소통이 원활하지만 교통량은 많지 않은 편이다. 춘양면 서벽리 북서쪽 2km지점에 있는 마을이름을 따서 도래기재라고 부른다. 이 마을에는 조선시대 역촌이 있었기에 도역리(道驛里)라 부르다가 변음이 되어 도래기재로 통음이 되고, 재 넘어 우구치는 골짜기 모양이 소의 입모양을 닮았다 하여 牛口峙라 부른다.
대간 길은 남서방향으로 처음부터 가파른 비알 길을 오른다. 도래기재에서 1,4km지점에 이르면 귀중한 보물이 숨어있다. 길옆에 조그만 표지판까지 있지만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비알 길에서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으니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수령이 자그마치 400년이 넘는 철쭉나무를 보면서도 모두들 놀랄 수밖에 없다.
4 ~50년 전만해도 벌거숭이 산이었던 우리나라에 이렇게 천수를 누리는 철쭉이 있을 줄이야. 미덥지 않은 눈초리로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영주 영림서에서 인증을 하고 보호림으로 지정을 하고 있으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춘양에서 북서쪽으로 16km, 봉화에서 북쪽으로 14km 지점에 있는 옥돌봉(1,242m)은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면 주실령 갈림길이 나오고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줄기는 내성기맥의 분기점으로 예배령(919m), 문수산(1,205m)으로 이어진다. 대간 길은 서쪽으로 선회하여 비단결 같은 초원지대를 내려서면 박달령(761m)이다.
산신각과 헬기장이 있는 너른 분지에는 휴식공간으로 조성되어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하지만 임도를 따라 올라온 자동차들의 매연으로 숲속의 정화된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으니 우리의 마음이 답답하기만 하다.
왼쪽의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조선조 성종시절 전국에 있는 약수의 수질을 검사한 결과 가장 좋은 약수로 선정되었다는 오전 약수에 이른다. 대간 길은 서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선달산을 바라보며 진행한다. 이곳 박달령에서 경상도와 강원도의 경계선을 따라 5km를 진행하면 선달산(1,236m)정상이다. 대간 길은 남쪽의 늦은 목이재로 내려서야 하고, 서쪽으로 직진하면 어래산(1,063m)과 김삿갓의 묘소가 있는 마대산(1,052m)으로 빠진다.
늦은 목이재(800m)는 오전약수로 유명한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와 충북 단양군 영춘면으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당일 종주 팀들이 이곳에서 구간을 마감하기도 한다. 이곳부터 소백산 국립공원이 시작된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을 1km쯤 오르면 갈곶산(966m)정상에 도착한다. 남쪽의 봉황산(819m)의 명성에 가려서인지 정상에는 표지석하나 없이 마구령 4.9km의 표지만이 서 있고 남쪽의 봉황산 기슭에는 그 유명한 부석사가 자리 잡고 있다.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펼친 곳이다. 삼국유사의 설화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하던 선묘낭자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짓는 동안 훼방을 놓는 도적떼를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앉아 부석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산에 있는 부석사의 전설 또한 똑같으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또한 부석사의 중심건물인 무량수전은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그동안 여러번 개축한 끝에 고려 우왕 2년(1376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광해군시절 새로 단청을 하고 1916년 해체 복원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건물 중에서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건물로, 고대 사찰의 건축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서남쪽으로 달려가는 대간 길이 3km 거리에 있는 1,057봉을 지나 도착한 마구령(820m)은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임곡리를 오가는 비포장 고개길이다. 경상도에서 충청도와 강원도로 통하는 관문이다.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고개라 마구령으로 부르는 이곳에는 산림청에서 세운 정상석이 반겨준다. 경사가 심해 논을 매는 것처럼 힘이 들다하여 매기재 라고도 한다.
1,096봉 헬기장에는 삼각점이 있고, 미내치(820m)에는 마구령5km, 고치령 3km의 이정표가 지친 몸을 반겨준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500m 간격으로 세운 이정표를 따라 산신각이 있는 고치령(760m)에 도착하며 또 한 구간을 마감한다.
12. 고치령(760m) - 죽령(689m) / 25km
이번 구간은 소백산 국립공원을 지난다. 소백산은 백두대간이 강원도 지역을 남진하면서 태백산에 이르러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속리산까지 이어지는 그 중간에 가장 높이 솟아오른 산이다. 소백산 국립공원은 행정구역상으로 충청북도 단양군의 1개읍 3개면, 경상북도 영주시의 1개읍 4개면과 봉화군의 1개면에 걸쳐있는 우리나라 12대 명산으로 선정된 곳이다.
1987년 12월 14일 건설부 고시 제645호에 의해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8호로 지정되었으며, 총면적이 322.383㎢로서 경북지역에 173.56㎢, 충북지역에 148.823㎢가 분포되어 있다.
고치령은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와 마락리를 넘나들며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를 연결하는 고갯길이다. 해발 고도가 760m로 호젓하고 고즈넉하여 운치 있는 오솔길이다. 경사가 가파르고 산세가 험하여 고개 마루까지 4km를 오르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체력적으로도 무리가 따른다.
때문에 좌석리에서 봉고트럭을 이용하여 고치령까지 오르는 편법을 이용하게 된다. 이곳은 소백산의 동쪽 사람들이 마구령과 함께 단양쪽으로 넘어가는 관문으로 고개 마루에는 산신각과 장승이 있고, 종주 팀들이 피로에 지친 몸을 쉬어가는 쉼터로 마구령 8km, 국망봉 11km의 이정표가 반겨준다.
고개 마루에서 서서남 방향으로 1,8km를 진행하면 형제봉 갈림길(1,032m)이 나온다. 이곳에서 충북과 경북의 경계선을 따라 남진을 하는데 북쪽으로 진행하면 1,005봉을 지나 형제봉(1,177m)으로 연결되는 알바코스에 유의해야 한다. 마당치를 지나 연화동 갈림길에 도착하면 국망봉 5km, 고치령 6,1km 연화동 3km의 이정표를 만난다. 피로에 지친 산객들이 좌석리 연화동으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3km를 더 진행하면 구인사 갈림길(1,272m)이다. 이곳에서 대간 길은 남쪽으로 선회하지만 서북방향으로 진행하면 신선봉(1,389m)과 민봉(1,362m)을 지나 구봉팔문(九峰八門)에 이르고 고드너머재를 넘어 구인사에 이른다. 구인사 갈림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벌바위골을 지나면 어의곡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나오고, 잠시 후 상월봉(1,395m) 정상에 오른다.
이곳은 우리나라 천태종의 본산인 구인사를 창건한 상월조사의 불심을 기리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참고로 천태종에 관한 문헌을 살펴보면 지금부터 1,400여 년 전인 594년 중국의 수나라 개황14년, 지지대사가 천태산에서 법화경을 중심으로 5시 8교 교관과 일심삼관의 수행법으로 선과 교를 통합하여 만든 종파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천태교학이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초기 백제 현광법사로부터라고 한다. 고려 숙종2년 대각국사 의천스님에 의해 국청사에서 천태종이 설립되었지만, 조선조에 들어와 숭유억불정책에 의해 500여 년 동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근세에 이르러 상월원각 대조사(1911년- 1974년)에 의해 중창되어 일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상월원각 대조사는 강원도 삼척군 노곡면 상마읍리 봉촌 마을에서 밀양박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15세에 불가에 귀의하여 천태종의 근본 도량인 천태산 수선사를 참배하고 귀국하여 충북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동학입구에 터를 잡는다. 크고 작은 봉우리가 연꽃처럼 생긴 연화지 양지바른 곳에 초암(草庵)을 얽어매고 석굴에서 수행 끝에 천태종의 본산인 구인사를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월봉에서 국망봉 까지는 그리 멀지않다. 두 봉우리가 건너다보이는 능선은 키 작은 잡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부터 비로봉을 지나 연화봉까지 부드러운 굴곡을 이루며 펼쳐지는 초원은 지리의 세석평전이나 덕유평전 보다도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겨울이면 깊은 계곡에 눈이 쌓이고 높은 곳에 설화를 피워내는 환상적인 모습은 소백산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소백산은 삼국이 접경을 이루던 전략적인 요충지로 수많은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암봉으로 이루어진 국망봉(1,420m)에 오르면 신라의 왕자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엄동설한에도 베옷만을 걸친 채 옛 도읍지 경주를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이 있다.
소백산이 오대산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불교의 성지라는 것은 주봉의 이름이 불가의 비로자나불에서 온 빛나는 존재란 뜻이다. 부처의 근원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비로봉(1,439m)으로 부르고, 도솔봉, 연화봉 또한 불가와 인연이 있는 이름이다. 산기슭에는 희방사, 초암사, 비로사를 비롯한 수많은 암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국망봉에서 비로봉 가는 길은 부드러운 초원이 펼쳐지고, 수백리 산과 계곡이 파노라마를 이룬다.
왼쪽으로 초암사 갈림길을 지나면 소백산이 자랑하는 주목의 군락지가 전개된다. 1970년 천연기념물 제 244호로 지정된 주목은 수령이 200- 500여 년 된 고목 1,5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한겨울 많은 눈이 쌓이면 거센 바람 속에서도 설화를 피워내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또한 이곳부터 관측소를 지나 제2 연화봉까지 수 백만평의 광활한 분지에 펼쳐지는 철쭉은 지리산의 바래봉과 함께 철쭉의 명소로 꼽히며, 철쭉이 만개하는 6월이면 전국의 상춘객들이 몰려들어 성시를 이룬다.
비로봉(1,439m) 정상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오른쪽은 천동굴로 내려서는 길이고 서남쪽으로 대간길이 이어진다. 제1연화봉(1,394m)에 오르면 비로봉 2.5km 천문대 2km의 이정표가 반겨주고, 철쭉의 홍수속에 인파의 물결을 헤치며 남쪽으로 진행하여 연화봉(1,383m)정상에 올라선다. 직진하면 희방사를 거쳐 수철리로 내려서는 길이고, 대간 길은 서쪽으로 관측소를 바라보며 진행해야 하는데, 천문대에서 죽령까지 7km에 이르는 시멘트 포장길이 기다리고 있다.
산세와 풍수지리가 좋아서 소백의 산자락에는 고려의 충목왕 ,충숙왕, 충렬왕의 왕태를 안치했고 십승지지(十勝之地)중에서도 풍기가 으뜸이라, 정감록을 신봉하는 자들이 몰려들어 생활의 터전을 일구었다는 기록이 있다. 소백산은 전략적인 요충지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으로 경상도 사람들이 한양을 오고가는 길목으로 문경새재와 함께 꼭 필요한 관문이 죽령(689m)이다. 터널이 개통된 뒤로는 찾는 사람도 별로 없이 한겨울의 세찬 바람만이 고개 마루를 넘어가고 있다.
13.죽령(689m) - 벌재(625m) / 25.7km
도솔봉 구간은 죽령 이남의 삼형제봉- 도솔봉- 묘적봉- 묘적령까지 이어지는 주능선으로 단양군 대강면과 영주시 풍기읍, 봉현면에 걸쳐있다. 도솔봉구간이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고는 하지만 죽령을 경계로 별개의 독립된 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소백산이 유순하고 너그러운 육산이라면, 도솔봉은 암팡지게 솟아오른 암 봉을 넘나드는 암릉 구간이 많고, 주변의 조망이 뛰어난 것도 이곳의 특징이다.
도솔봉이나 묘적봉의 산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곳으로, 도솔봉아래 사동리에는 큰 절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이곳 또한 소백산을 능가하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지만 소백산에 비해 찾는 발길이 많지 않아 호젓하게 산행을 즐길 수가 있다.
죽령 고개 마루에서 도로를 따라 풍기 쪽으로 약40m 거리에 죽령 주막집이 있다. 주막집 건너편으로 대간길이 시작되며 죽령 옛길을 지나 편안하게 전개되는 대간 길에서 힘을 비축하며 속도를 조절한다. 돌탑과 추모비가 있는 도솔봉4.7km 죽령1.3km의 이정표를 지나며 경사가 서서히 급해진다. 너른 공터를 겸하고 있는 헬기장을 지나면서 철쭉동산이 펼쳐진다.
주능선을 따라 군락을 이루고있는 산죽을 헤치며 흰봉산(1,240m) 갈림길인 1,286봉에 올라선다. 죽령 3.3km 도솔봉 2.7km의 이정표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진행하던 대간 길이 동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며 스릴 넘치는 암 릉 구간이 시작된다.
1km 남짓한 암릉 구간에서 진땀을 빼면서도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에 현혹되어 삼형제봉(1,291m) 정상에 올라선다.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암릉과 바위틈을 비집고 함박웃음 토해내는 철쭉의 화원에서 한 없이 머물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151계단을 내려선다.
아슬아슬한 암릉 길에서 곡예를 하는동안 시간도 많이 지체되고 체력도 많이 소진된다. 힘겨운 사투끝에 도솔봉 정수리에 올라서며 고진감래의 희열을 맛본다.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속에 단양팔경의 수려한 경관이 끝없이 펼쳐지고 1,314m의 정수리에는 삼각점과 작은 돌탑, 동판으로 새겨진 이정표가 자리잡고 있다.
정상에서 서남쪽은 사동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고 대간 길은 동남 방향으로 85계단을 내려선다. 또 다시 107계단을 내려가면서,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종주 팀의 어려운 사투를 격려하는 여유로움까지 생긴다. 1,185봉에서 묘적봉 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고 1,148봉의 정수리에는 작은 돌탑과 앙증맞은 표지석, 영주시청에서 동판으로만들어놓은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철쭉의 터널을 헤치면 곧바로 묘적령(1,019m)이다.
묘적령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와 경북 영주시 봉현면 두산리를 잇는 고개 마루이다. 인적이 별로 없는 한적한 이곳이 당일산행을 이어가는 경계지점이고, 무박산행시에는 솔봉과 묘적봉의 중간 쉼터로 사랑받는 안식처가 된다.
이곳 까지가 소백산 국립공원이지만 죽령이나 연화봉을 깃 점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묘적령에서 시작된 국립공원은 동서로 장장 50km에 이르는 마루금을 형성하면서 갈곶산의 늦은목이 까지 대간길이 이어진다. 부드러운 능선의 종주 길은 지리산종주, 설악산종주와 함께 봄이면 철쭉동산에서 겨울이면 매서운 눈보라와 함께 산 꾼들에게 심신단련 장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저수령 10.7km의 이정표가 말해주듯, 이번 구간의 중간지점인 묘적령을 출발하여 모시골 갈림길에 이르면 이정표에는 묘적령1.7km 모시골 1.7km 저수령 9km의 이정표가 반겨준다. 잠시 후 솔봉(1,103m)에 도착하면 흙모봉(1,033m)까지는 3.1km의 제법 먼 거리다. 남남서로 방향을 잡아 1,063봉과 앙증맞은 돌탑을 지나 흙모봉 정상에 오른다.
이곳에서 대간 길은 서쪽으로 선회하여 완만한 주능선에서 피로한 몸을 추스르며 싸리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북쪽은 단양의 유황온천지구로 내려가는 길이고, 남쪽은 2.66km거리에 있는 원두용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휴계소와 주유소가 있는 저수령(850m) 고개 마루에는 고단한 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팔각정이 자리 잡고 있다. 경북 예천과 충북 단양을 이어주는 927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는 이곳은 고개가 하도 높아 머리가 숙여진다고 하여 저수재라 부른다고 한다. 저수령에서 출발한 대간 길은 옛 고개인 장구재(860m)를 지나 문경군과 예천군의 경계지점에서 한 줄기 산맥이 군 경계를 따라 남쪽으로 매봉(865m)을 지나 국사봉(727m)으로 이어진다. 대간 길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완만한 비알 길을 오르면 옥녀봉(1,077m)정상이다.
문복대(운봉산1,074m)까지는 기복이 별로 없는 능선이다. 정상에 오르면 정상석은 있지만 조망이 별로 신통치 않고 문복대에서 벌재까지는 3.7km로 제법 먼 거리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분기하는 산줄기는 수리봉(1,019m), 신선봉을 지나 그 유명한 단양팔경의 상, 중, 하선암이 있는 도락산(964m)에 이른다. 대간 길은 남동쪽으로 선회하여 1,020봉에 오른 후 서쪽으로 진로를 바꾸어 비알 길을 내려서서 또 다시 남서쪽으로 선회하여 들목재에 이르고 곧바로 823봉에 오른다.
이곳에서 유두봉(1059m)을 내려서면 배재에 이르고, 투구봉까지 2.6km의 이정표가 서있다.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진행하다 무명봉에서 서쪽으로 진행하면 시루봉(1,110m)에 이르고 또 다시 남서방향으로 투구봉(1080m)에 올라선다. 촉대봉(1,080m)까지는 지근거리다. 단양군에서 만든 검은 오석의 정상석이 지친 몸을 달래주며 저수령을 넘어가는 차량의 경적 음이 들려온다. 대간 길은 서북방향으로 진로를 바꾸어 벌재까지 큰 어려움이 없이 내려선다.
14. 벌재(625m) - 하늘재(525m) / 26.1km
92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벌재(625m)는 경북 문경시 동로면과 충북 단양군 단성면을 오가는 고개 마루다. 단양 쪽으로 내려서면 단양 팔경의 하나인 상, 중, 하선암이 있는 계곡으로 아름다운 절경에 흠뻑 취한다. 또한 이곳부터 월악산 국립공원이 시작되고 대간 길은 국립공원의 남쪽을 지나게 된다.
월악산 국립공원은 1984년 12월 31일에 17번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이 284,5㎢에 이른다. 행정구역상으로 제천시, 충주시, 단양군, 문경시 4개시,군에 걸쳐 있으며 북으로 충주호반과 청풍호반이 월악산을 휘감는다. 동쪽으로 단양8경과 소백산국립공원이 남쪽으로 문경새재와 속리산국립공원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둘러싸여 있다.
월악산 정상을 국사봉이라 부르며,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져 "영봉" 이라고도 부른다. 해발1,094m인 영봉의 정수리는 한 사람이 겨우 올라설 정도로 협소한 첨봉이고, 오르는 길은 험준한 암릉의 연속이다. 수직으로 단애를 이룬 절벽마다 철 계단이 걸려있고 암벽의 높이가 150m, 둘레가 4km나 되는 거대한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대간 길은 먼저 철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하여 폐백이 재까지 2.1km의 거리를 두고 있다. 처음부터 급경사를 치고 올라야하는 난코스가 이어지며 8시 방향으로 대간 길이 진행된다. 무명봉에 올라 10시 방향으로 선회하여 페백이재와 치마바위를 지나 황장재(985m)에 이른다. 문안고개라고도 하는 이곳에는 황장산 30분, 벌재 2시간 40분, 문안골 2시간 20분의 이정표가 서있다. 고려 공민왕 때 비빈과 상궁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는 문안 골에는 아직도 작성산성의 석문이 남아있다.
황장산(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는 작성산으로 표기가 되어있다)으로 향하는 길은 12시 방향으로 틀어야하고 감투봉(1,042m)을 오르는 기암절벽의 쎄미 클라이밍 지대에는 생명줄인 로프가 걸려있다. 아슬아슬한 암릉 길에서 곡예를 하며 오른 1,077m의 정상에는 아담한 정상석이 자리 잡고 있다.
황장목(왕실의 관목이나 목재, 목선 등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였으며 나라에서 보호구역으로 정하여 관리함)이 생산되는 지역이라 황장봉산으로 부르다가 황장산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오른쪽은 투구봉(975m)을 거쳐 삼선구곡으로 빠지는 길이고, 대간 길은 직진하여 묏등바위에 이르면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국립공원의 전경이 펼쳐진다. 이곳에도 생명줄인 로프가 기다리고 975봉에서 9시30분 방향으로 선회한다.
975봉을 지나며 유순하게 펼쳐지는 대간 길을 따라 작은 차갓재(816m)에 이른다. 이곳에는 대미산 1시간10분, 황장산 1시간, 안생달 50분의 이정표와 헬기장이 있는데 차갓재 와의 사이에 816봉이 가로막고 있다. 양쪽 모두 문경의 안생달에서 단양 쪽의 차갓마을로 넘는 고갯길이다. 차갓재(760m)에 도착하면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자리를 지키고 하늘을 찌를 듯이 울창한 낙엽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차갓재에서 30여분을 진행하면 남한 측 백두대간 중간지점을 알리는 표지석을 만나게 된다. 표지석의 내용을 인용하면 전체 743.65km중 지리산의 천왕봉과 진부령의 거리가 367.325km로 똑같이 적혀있고 경기 평택 여산회 백두대간 종주 팀이 포항의 셀파 산장에서 실측한 거리를 참고로 했다고 적고 있다.
대간을 더듬는 산 꾼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안겨주는 정성이 담겨있다. 완만한 대간 길에 피로를 풀며 억새와 헬기장이 있는 새목재를 지나 문수봉 갈림길(1045m)에 도착한다. 북쪽으로 능선을 따르면 문수봉(1,161m)과 메두막봉(1099m)을 지나 하설산(1027m)에 이른다.
대간 길은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진행하고 눈물샘을 지나 대미산(1,115m)정상에 이른다. 울창한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이 산은 문경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 정상에 서면 멀리 소백산으로부터 주흘산, 조령산, 백화산, 희양산, 속리산까지 볼 수 있다. 원시림과 함께 족도리풀, 천마, 향유, 산부추, 삽주, 병풍쌈 등 특이한 식물들의 군락지가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개비자나무 군락이 유명해 식물학자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이곳에서 부리기재까지는1,4km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대간 길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진다. 부리기재에서 꼭두바위봉(838m)까지는 3.8km의 먼 거리지만 탄탄대로의 주능선을 지나며 국립공원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대간길이다. 1,034봉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꾀꼬리봉(890m)을 지나면 용하구곡에 이르고 대간 길은 직진을 한다. 꼭두바위봉 에서 만수봉 갈림길까지는 3.6km, 이곳 또한 여유 있는 발걸음에 거칠 것이 없다. 888봉과 941봉을 지나 메밀봉 갈림길을 만나고, 잠시 후 만수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만수봉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만수봉(985m)에 오르고 오른쪽의 능선을 따르면 월악산(1094m) 정상인 영봉으로 이어진다. 덕주봉(890m)쪽은 송계계곡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길목이다. 대간 길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2.8km를 지나면 포암산(961m)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돌무더기와 함께 정상석이 있는데 포암산은 속칭 베바우 산이라고 부른다. 베를 짜서 펼쳐 놓은것 같이 너른 암벽이 있어 부르는 별호가 되었고 마골산, 계립산이라는 기록도 보이나 현재는 포암산으로 부른다.
인근의 월악산, 주흘산, 조령산 등과 함께 조령5악으로 손꼽히는 포암산(961.7m)은 월악산국립공원 내 충주시 상모면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또한 백두대간의 주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늘재(525m)를 경계로 월항삼봉과도 연결된다. 포암산을 내려서는 암릉길에는 로프가 걸려있고 지루한 구간도 막을 내리는 하늘재(525m)에 도착한다.
15. 하늘재(525m) - 이화령(580m) / 17.5km
하늘재(525m)는 본디 한훤령으로 불리어졌으며 조선시대에 조령관문이 뚫리기 전까지는 한반도의 남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로 넘어가는 이 고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관음세계에서 미륵세계로 넘어가는 유서 깊은 고개다.
하늘재 밑의 미륵사지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약 4천여 평 규모의 큰 사찰이다. 주흘산을 진산으로 하여 좌우로는 신선봉과 포암산을 끼고 멀리 월악산을 조산으로 하는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옛날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대인 관계로 덕주골에 있는 유적들은 마의태자와 덕주 공주의 한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경 쪽에서는 포장도로가 완공되었지만, 충주 쪽의 공사가 미진하여 하늘 재에서 중단 되었으니 하루 빨리 개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탄항산(일명 월항삼봉 855m)까지는 1.8km, 굴바위 까지 7시(서남)방향으로 완만하게 오름길이 이어지다가 9시 방향(서쪽)으로 선회하여 지그재그로 정상석이 있는 탄항산에 이른다.
옛날에 봉화를 올리던 곳으로 인근 마을 사람들은 봉화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상에는 노송과 어우러진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남쪽으로 너른 골을 사이에 두고 주흘산과 마주보는 전망이 아주 좋은 곳이다.
문경의 평천리와 충주의 미륵리를 이어주는 평천재에서 6시 방향(남쪽)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은 큰 무리 없이 주흘산 갈림길(959m)에 이른다. 산 꾼들의 부적과도 같은 표지기 들이 만국기처럼 빨래 줄에 주렁주렁 매달려 장관을 이루고, 하늘재 3.2km 제3관문 4,7km 주흘산 2,6km의 이정표가 산 꾼들의 나침판이 되어 불을 밝혀주고 있다.
이곳이 월악산 국립공원의 남쪽 끝 지점으로, 한반도의 지도를 연상한다면 부산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삼거리에서 남쪽으로는 문경시의 진산인 주흘산(1,106m)에 이르고 조곡관(제2관문)과 주흘관(제1관문)으로 내려가게 된다. 대간 길은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908봉을 지나 부봉 갈림길에 이른다. 이곳을 목포쯤으로 접어두고 제1봉(917m)에 오르면 주위에 펼쳐지는 조망이 장관을 이루는데, 6개의 암 봉으로 이루어진 부봉에서 제3봉(935m)이 가장 높다.
부봉 갈림길에서 대간 길은 12시(북쪽)방향으로 선회하여 월악산 국립공원의 서쪽 경계선을 따라 진행하면 동암문(730m)에 이른다. 동암문은 지형상으로 볼 때 영남지방에서 충주로 넘어오는 길목의 요충지다. 천혜의 요새인 부봉과 마패봉의 사이에 있는 이곳은 제2관문을 지나 제3관문으로 오르는 길목의 동화원에서 오른쪽의 골짜기로 거슬러 오르게 된다. 북암문과 함께 중요한 길목이다.
허물어진 성터를 따라 50여 분 걸어가노라면 콧노래도 절로 나고 북암문에 이르러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마역봉 오름길에서 비축한 체력을 소진하며 안간힘을 쏟은 후에야 정상(일명 마패봉 927m)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월악산 국립공원의 경계선을 따라가면 2km지점에 신선봉(968m)이 있지만, 대간 길은 국립공원과 이별을 하고 남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곤두박질치며 내려서면 제3관문 조령관(650m)이 반겨준다. 새로 축성한 성벽과 관문이 위엄을 갖추고 있는데, 나는 새도 넘지 못할 천혜의 요새지를 버리고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친 신립장군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우리 역사의 숨결이 거칠고 고단할 때 마다 주 무대로 등장하는 요충지가 아닌가?
옛 고개 문경새재는 산이 높고 험준하여 새들도 날아 넘기 힘든 곳이다. 억새가 많아서 또는 새로 닦은 길이라 해서 새(新)재라고 불렸다고 한다. 조선 초부터 영남에서 한양을 오가는 가장 큰 대로였던 새재길 중턱에는 경상감사가 교체 될 때 마다 서로 만나 업무와 직인을 인계인수했던 교구장터가 있다. 또한 새재는 영남의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를 보러 한양을 오르던 과거 길이기도 하며, 현재는 이화령이 그 모든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임진왜란 뒤에 이곳에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이곳은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과 설화·민요 등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이곳에는 나그네의 숙소인 원 터,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받았다는 교귀정(터만 남아있는 것을 1999년 중창하였다).
옛날에 산불을 막기 위해 세워진 한글 표석 "산불 됴심" 비(지방문화재자료 제226호)가 남아있다. 그리고 역사에 얽힌 갖가지 전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과 신립 장군, 동학과 의병이 남긴 사담이 골골이 서려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 일대를 1974년 지방기념물(제18호),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홍두깨 방망이 팔자 좋아 큰 애기 손짓에 잘 놀아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문경새재 넘어 갈 제 구비야구비야 눈물이 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주흘관: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해 숙종 34년(1708)에 설관 하였다. 영남 제1관 또는 주흘관이라고 하는데,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관광객 유치를 위한 방편으로, 문경시에서 왕건의 세트장을 유치하여 약 2만 여 평의 대지위에 후삼국, 고려시대의 왕궁들과 양반, 서민들의 가옥을 재현한 세트장을 지어 관광객들에게 개방하면서 구름같이 몰려드는 인파로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주변의 웅장하고 수려한 산의 모습과 잘 어울려, 마치 역사 속에 들어선 듯 신비로움까지 든다.
조곡관: 영남 제2관으로 부르는 이곳은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한 곳으로 중성 이라고도 한다. 숙종 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옛 성을 개축하였으나 관은 영성( 3관문)과 초곡성(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 또는 주서문을 설치하였다. 그 후 1907년에 훼손된 것을 1975년에 복원하였다. 이렇게 복원한 문루를 조동문이라 하지 않고 조곡관이라 개칭하여 부르고 있다.
조령관: 영남 제3관으로 부르며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해 선조 초에 쌓고 숙종(숙종 34년:1708) 때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陸築)만 남고 불에 탄 것을 1976년도에 홍예문 및 석성135m 와 누각을 복원했다.
이진 터: 임진년(1592)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18,500명의 왜군을 이끌고 문경새재를 넘고자 진안리에서 진을 쳤다. 그가 천혜의 요새인 새재를 정탐할 때 선조대왕의 명을 받은 신립(申砬) 장군이 농민 모병 군 8,000명을 이끌고 대치하고자 제1진을 제1관문 부근에 배치하고 제2진의 본부를 이곳에 설치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신립장군은 새재에서 왜적을 막자는 김여물 부장 등 부하들의 극간을 무시하고 이곳 조령산 능선에 허수아비를 세워 초병으로 위장하고 충주 달천(탄금대) 강변으로 이동하여 배수진을 치게 된다. 조선 초병 머리 위에 까마귀가 앉아 울고 가는 것을 보고 왜군이 새재를 넘었다고 한다. 한편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친 신립 장군의 조선 농민군은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을 맞아 끝까지 싸웠으나 모두 장렬히 전사하였다. (문경시 자료 인용)
문경새재에서 조령산까지는 용아장성에 버금가는 스릴 넘치는 암릉이 펼쳐진다. 새재의 성벽을 따라 남쪽으로 직진하면 오른쪽으로 낙엽송이 무성한 그늘에는 그림 같은 조령산 자연 휴양림이 있다. 심신이 피로한 도시인들이 잠시나마 자연을 벗 삼아 문경새재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더 없이 좋은 안식처이기도 하다.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가쁜 숨 몰아쉬며 올라선 곳이 깃대봉(812m) 일명 치마바위 봉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건너편의 부봉과 주흘산이 지척에서 손짓하고 그 뒤로 월악의 영봉과 만수봉이 고개를 내민다.
이제부터 잠시도 방심을 할 수 없는 암릉 지대. 아슬아슬한 벼랑길에는 생명줄인 로프도 잡아야하고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발걸음이 마냥 느려진다.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795봉에 오르면, 서쪽으로 선바위 능선이 분기하며 왼쪽의 계곡으로 문경새재 오르는 길이 내려다보인다. 연속되는 암릉 에는 빼 놓을 수 없는 로프가 기다리고 바위틈에 둥지를 튼 낙락장송이 고고한 자태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923봉에서 신선암봉(937m)까지는 조령산 구간에서도 가장 험한 곳이다. 높고 험한 정상을 오르는 고통이 따를 지라도 숭고한 사명감과 보람이라는 달콤한 열매가 있기에 직벽의 로프와 씨름을 한다. 힘겹게 올라선 정상에는 아담한 정상석이 반겨주고 피로에 지친 몸을 쉬어가기 좋은 암반이 기다리고 있다.
한눈 팔 겨를도 없이 오금이 저리는 구간에서 정체현상이 일어나기 다반사다. 앞사람의 느린 행보에 조급증을 내지 말고 인내력을 기르는 것도 산객들이 수양해야할 덕목이 아닌가? 연속되는 암릉 구간에서 밀어주고 당겨주는 넓은 아량으로 무사히 정상에 올라선다. 조령산 정상석(1,025m)이 있는 한쪽에는 서원대학교에서 세운 지현옥 산악인의 추모목이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이 숙연해진다. 苦盡甘來란 말이 꼭 필요한 이곳은 사방을 둘러봐도 막힘없고, 고생고생하며 지나온 암릉 구간이라 정감이 더 간다.
7시 방향(서남)으로 진행하며, 지금까지 사투를 벌이던 암릉 구간도 끝이 난다. 1,005봉에서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억새들이 한 무더기 머리를 조아리는 조령 샘에 도착하면 갈증으로 애를 태우는 산객들의 생명수가 흐르고 있다. 아기 오줌줄기 보다도 작은 양이기에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헬기장을 지나면 곧바로 이화령이다. 이곳에도 터널이 관통된 뒤로는 찾아오는 사람 없이 공허로운 바람만 불어온다.
16. 이화령(529m) -- 버리미기재(490m) / 31.43km
이화령(548m)은 조령산(1,017m)과 갈미봉(777m) 사이에 있는 3번 국도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7km거리에 있는 조령(643m)관문이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옛길이지만, 높고 험한 지세로 어려움이 많던 차에 일제 강점기에 통행의 불편함과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을 말살 하고자 신작로를 만들어 내륙진출의 교두보로 활용 하던 곳이다.
수많은 물동량을 실은 차량들로 성시를 이루었지만, 이화령에 터널이 뚫리고 중부 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된 뒤로는 아흔아홉 구비를 감아 도는 이화령 고갯길도 옛말이 되고 이따금 대간을 밟는 산 꾼들이 구간을 이어가는 중간 기착지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남쪽계단으로 대간길이 열리는 곳에 군부대가 있어 때로는 통행이 금지되기도 한다. 다행히 통제를 하지 않아 낙엽송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산줄기를 가늠해가며 조봉을 지나 봉우리하나를 넘어서면 안부에 헬기장이 나타난다.
왼쪽으로 수천 평 분지위에 펼쳐지는 억새들이 아침햇살에 눈이 부시고, 영주 영림서에서 백두대간 생태복원 작업의 일환으로 조림지를 조성하고 있다. 울창한 낙엽송이 하늘을 가리는 수림 속에는 아담한 연못이 하나있다. 갈증 난 짐승들과 대간 길에 지친 산 꾼들에게 반가운 휴식처가 된다.
잠시 후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무명 봉에 올라서면 주흘산(1,106m)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바위를 지나 황학산(915m) 오름길이 시작된다. 밋밋한 경사각으로 큰 어려움 없이 황악산 정상에 올라서지만, 나무기둥에 걸려있는 비닐코팅이 아니라면 정상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그대로 스쳐 지나기 십상이다.
영림서에서 새로운 수종을 심기위해 벌채한 남쪽의 사면을 지난다. 오르내림의 기복이 별로 없이 완만하게 고도를 높이는 대간 길에서 산책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속도를 낸다. 서쪽으로 이만봉(990m), 곰틀봉의 주능선이 분지마을을 사이에 두고 건너다보인다. 시루봉(914m)에서 이화령이 직선거리로는 3km에 불과하지만 마루 금으로는 18km나 된다고 하니 물길피해 가는 대간 길이 멀기만 하다.
전위 봉에 올라서면 서쪽으로 백화산의 정수리가 손에 잡힐 듯 지척으로 다가온다. 괴산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기라성 같은 명산들의 그늘에 가려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백화산. 한 겨울 눈이라도 내리면 나무에 피어나는 설화가 장관이라 그 이름도 아름다운 白華山(1,063m)이라 부른단다.
전형적인 육산을 걸어가며 낙엽 밟히는 소리에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노라면, 암릉 구간이 빗돌처럼 날카로운 마각을 드러낸다. 편안하던 마음에 긴장감이 감돌고 벼랑 끝에 올라서면 오금이 저려온다. 밧줄 잡고 내려서서 힘겹게 올라 선 정수리에는 하얀 대리석에 이름도 선명한 백화산. 삼각점의 소중함을 알리는 안내문과 판독하기 어려운 삼각점까지 구색을 갖추고 있다.
북녘으로 우리의 발자취가 묻어나는 능선을 따라 조령산(1025m)까지 이어지고, 하늘 금에는 월악의 영봉(1093m)이 다소곳이 고개를 내민다. 동쪽으로 힘차게 솟아오른 주흘산(1,106m)과 운달산(1,097m), 성주산 너머로 문경 시가지와 황금벌판이 펼쳐진다. 동남쪽으로 달려온 대간 길은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급사면을 내려선다. 아담한 전망바위에 올라서면 앞으로 진행할 민 대머리 희양산(983m)과 이만봉(990m), 뇌정산(991m)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산맥을 이루고 있다.
곧이어 상내리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만난다. 상내리 한실마을은 백화산일대의 백두대간을 넘나들며 선교활동을 펼치던 곳이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허기진 몸을 숨겼던 첩첩산중의 은신처라고 한다. 로프 걸친 암 능을 넘어서면 분지리로 내려서는 평전치에 도착 한다. 백화산 50분, 분지리60분, 이만봉과 희양산의 이정표를 바라보며 무 명봉을 몇 차례 넘은 후, 뇌정산 갈림길(981m)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대간 길은 서북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뇌정산(991m)이 있다. 지금까지 등지고 걸어온 대간 길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급경사를 내려서면 사다리재가 반겨준다. 충북 괴산의 분지리와 경상도 문경시 원북리를 오가는 길목으로 그 옛날 보부상들의 발길로 다져진 길이라 한다. 약초꾼이나 대간을 종주하는 산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한가로운 고개 마루에는 분지리 쪽으로만 이정표가 걸려있다.
당일 산행 팀들이 하산지점으로 이용하는 사다리재를 지나면 곰틀봉 오름길에서 또 한 번 비지땀을 흘리는 천신만고의 고통이 따른다. 그 옛날 곰들이 살았대서 곰틀 봉이라 부른다지만, 소나무 둥치에 비닐 코팅이 위치를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빼 꼼이 터진 남녘으로 원북리와 죽문리의 황금 들녘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곰틀 봉에서 이만봉까지는 30여분거리로 지척이다.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힘 드는 줄 모른다. 백화산(1,063m)과 뇌정산(991m)을 따라 힘차게 뻗어 내리는 산줄기는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다. 또한 이화령 오르는 옛 길이 산굽이를 감돌고, 나는 새도 쉬어 넘는 조령산(1025m) 너머로, 월악산의 영봉과 부 봉, 주흘산이 활화산의 불꽃처럼 기치창검을 곧추 세운다.
검은 오석의 정상석이 있는 이만봉(990m). 그 옛날 임진왜란 때 전란을 피해 모여든 사람들이 이만 명이나 되는 숨어살기 좋은 분지리가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전망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고 가파른 비알 길에 울창한 수림 속을 헤쳐 가노라면 산짐승이라도 덤비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20여 분만에 시루봉(914m)갈림길인 배넘이 평전에 이른다.
대간 길은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선회하고 하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한 숲길을 벗어나면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 속에 암릉 길이 이어진다. 잠시 후 성벽을 따라 가면 은티 마을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만나고 희양산(983m) 오름길이 시작된다. 비지땀 흘리며 15분간 성벽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아찔한 벼랑에 로프가 걸려있다. 대간 길로 이어지는 관문이다. 하지만 민 대머리 희양산이 남쪽으로 빗겨 있는데, 어찌 그대로 지나칠 수 있으랴?
시원하게 터지는 너럭바위 조 망 터에 올라서면 수 백길 벼랑위에서 오금이 저려온다. 암릉과 노송. 천수를 누리는 고사목이 천년사찰 봉암사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동양화를 그려내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만단근심이 사라진다. 문경새재와 속리산의 중간 지점에 솟아오른 영험한 희양산. 봉황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에 반하여 신라 헌강왕 5년 지증대사가 봉암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당나라에까지 명성을 떨친 희양 선문은 신라의 구산선문중의 하나로 현재는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곳이다. 부처님 오신 날만 대간 길과 사찰의 출입을 허용한다고 하니 세상인심이 이래서야 쓰나. 삼천리 방방곡곡 수많은 산과 계곡을 다녀 보아도 길을 가로막는 곳이 이곳 말고 또 있단 말인가.
오르고 내리고 암 능을 돌고 돌아 민 대머리 희양산 정수리에 올라서면 초라한 표 지석에 또 한 번 실망을 하고 만다. 멀고먼 대간 길에 유명세를 많이 타면서도 초라한 돌탑의 모습, 스님들의 훼방으로 부셨다 쌓기를 반복한다니 이래저래 희 양산은 구설수의 대상이다.
기차바위에 올라서면 거침없는 조망으로 지나온 대간 길과 장성봉(915m), 악 휘봉(845m)이 삼각형을 이룬다. 건너편의 이 만 봉까지 W의 꼭 지점의 희 양산. 물길피해 달려가는 대간의 험난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신선이 되어 머물고 싶은 마음을 접어두고 대간 길을 달려 벼랑에 걸린 생명줄에 목숨을 건다. 어차피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쳐야할 스님들을 피할 길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안부에 내려서니 하늘의 도우심인가?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공허로운 바람만 불고 있다.
지름 티 재 안부에는 삼국시대 사극의 현장처럼 육중한 목책으로 대간 길을 가로막고, 산을 찾는 이들이 무슨 범법자라도 되는 양, 일일이 검문을 하며 가는 길을 가로막는 험상궂은 스님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오른쪽의 하산 로는 일촉즉발의 험악한 상황을 피해 은 티 마을로 내려가는 탈출로가 된다.
범의 아가리를 빠져나온 안도감으로 가파른 벼랑길을 한달음에 올라서면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 터가 반겨준다. 낙락장송 그늘아래 자리를 잡고 바라보는 희양산. 민 대머리 희양산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긴장이 풀리면 나른한 법이라. 노곤한 육신을 이끌고 구왕봉(877m)과 주치봉(683m)을 지나면 은 티 재에 이른다.
서슬 퍼런 경고문에 주눅이 들고 목책으로 막은 대간을 어디로 가야하나. 스님들의 선 수련장에 방해가 된다고 외부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지만 서로 타협을 한다면 우리도 조용히 지나갈 것인데 지나친 행동이 아닌지 뒤돌아보며 푸념을 하고 만다.
로프를 3군데 통과하며 암릉 구간을 지나면 장성봉과 희양산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철 계단이 나타나고 20여분 후에는 악휘봉(845m) 갈림길에 이른다. 이정표에는 지나온 희양산이 8.2km이고 탈출로인 은 티 마을이 2.8km 악휘봉이 400여 m로 지척에 있다. 잠시잠깐 짬을 내어 층암절벽 사이로 조심조심 올라선 곳은 천하절경 전망대라. 사방을 둘러봐도 막힘이 없고 경상도와 충청도의 수 백리 산과 계곡을 한눈에 굽어보는 명당자리로 1,000m도 안 되는 정수리에 이런 곳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남쪽으로 장성봉(915m)이 지척에서 손짓하고 그길 따라 구불구불 사행천을 이룬다. 서쪽으로 대야산(930m), 조항산(951m), 청화산(984m), 군웅이 할거하는 괴산의 명산들, 그 옆으로 불꽃같은 속리산의 암봉 들이 명함을 내민다.
화양구곡, 쌍계구곡, 선유구곡을 품에 안은 군자산(948m)과 칠보산(778m), 덕가산(858m)이 오곡백과 무르익는 연풍의 분지를 품에 안고 산수화를 그려낸다. 북쪽으로 구왕봉과 희양산이 길잡이가 되어 손짓하고, 이화령 너머로 대간 길의 태산준령이 끝 간 줄을 모른다.
대간이 남서쪽으로 선회하여 급경사를 내려서면 헬기장 공터가 있는 쌍곡리 갈림길이다. 이 고개는 충청도 칠성면의 살구나무 골과 경상도 가은읍의 오봉정 마을을 오가는 곳으로 별 특징 없다. 이어지는 대간 길은 1시간동안 지속되고 막장봉(887m) 갈림길에서 남동쪽으로 선회하면 장성봉(915m)에 이른다.
하지만 서쪽으로 막장봉(887m)과 투구봉(795m)을 지나 제수리치를 넘는 산줄기는 남군자산(827m), 군자산(947m), 갈모봉(582m), 옥녀봉(604m)으로 이어지고 속리산국립공원 동쪽의 절경인 쌍계구곡과 선유동구곡이 펼쳐진다. 장성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급경사를 내려와 1시간 남짓 진행하면 버리미기재에 도착한다.
17. 버리미기재(490m) - 밀재(701m) - 늘재(375m) / 17.5km
버리미기재는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서 충북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를 오가는 922번 지방도로의 고개로 백두대간의 구간을 이어주는 날머리이기도 하다. 이곳은 아홉 번 시집을 가서 낳은 자식들을 벌어먹이던 팔자 센 주막거리 과부의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문경새재가 양반들의 길이었다면 대야산 주변의 고개는 민중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으로 전해진다. 산행들머리는 남쪽으로 전나무 숲을 지나 1시간동안 급경사를 치고 올라 곰넘이봉(733m)에 올라선다. 곰의 등처럼 생겼대서 곰넘이 봉으로 부르고 있는데 커다란 암반위에 정상석이 자리 잡고 있다. 곰넘이봉 구간에서 밀재까지는 위험한 암릉 구간이 도사리고 있어 잠시라도 방심을 할 수가 없다.
20여 분간 암릉과 씨름하며 미륵바위를 지나고 몇 차래 로프의 신세를 지고나면 불란치 재(옛 지명은 불한령)에 도착한다. 버리미기재가 개설되기 전에는 완장리와 관평리를 이어주는 중요한 길목이었지만 지금은 오가는 사람도 없고 너른 헬기장 옆에 옛길이 남아있을 뿐이다.
묘지가 있는 촛대봉(668m)을 넘어 촛대재에 이르면 버리미기재 까지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는 이정표가 있다. 남쪽으로 난 갈림길은 대야산 정상에서 피아골로 내려가는 길과 만나 월영대로 내려선다. 이제부터 올라야할 직 벽은 대간 길에서 희양산의 직 벽과 함께 가장 위험한 곳이라 겨울등반에는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100 여m의 벼랑에 걸려있는 로프를 필두로 아슬아슬한 암 릉 구간을 통과하면 드디어 대야산(930m) 정상이다.
일명 상대봉이라고 부르는 정상에서 남쪽에 있는 용추계곡과 선유동계곡은 아름다운 절경으로 여름철 피서객 들이 즐겨 찾는 곳이며, 서쪽으로 중대봉(846m)을 내려서면 속리산국립공원의 선유동구곡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대야산의 암릉 미가 천하절경이라 하지만 두 계곡을 끼고 있어 더욱 각광을 받는다. 낙락장송이 어우러진 암릉을 넘나들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코끼리바위와 거북바위를 내려서면 밀 재에 도착한다.
동쪽의 용추계곡과 서쪽의 농 바위 골을 넘나드는 밀 재는 경상도와 충청도가 경계를 이루는 분수령이다. 대야산 1.5km 통시바위 2.5km의 이정표가 반겨주는 고개 마루에서 잠시나마 속리산 국립공원과 작별을 하고 남쪽의 급경사를 치고 오르면 849봉이다. 동쪽으로 선회하여 854봉에서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마귀할미 통시바위(889m)에서 동쪽으로 둔덕산(969m)의 줄기를 따라 용추계곡으로 내려 설 수가 있다.
대간 길은 남쪽으로 급경사를 이루며 계곡으로 내려선다. 주위에 펼쳐지는 암릉길은 조물주가 빗어놓은 아름다운 절경의 연속이다. 층층이 쌓아올린 기단위에 올라앉은 솟대바위는 불심을 가득담은 돌탑으로, 낙락장송 휘늘어진 벼랑 끝에 올라앉은 독수리바위는 마귀할미(통시 바위)로부터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진한 모성애와 같다. 정상에 우뚝 솟은 장군바위(집채바위)가 삼라만상을 굽어보지만 애석하게도 경관 좋은 무릉도원에 채석장이 흠집을 내고 만다.
무릉도원의 황홀감 속에 고모치에 도착하면 발치에서 솟아나는 옹달샘이 반겨준다. 멀고도 험한 길을 이어가는 산 꾼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갈증을 풀어주기에 족하다.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와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를 오가는 이곳은 부근에 광산들이 많아 그들이 왕래하는 통로로 이용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항산 1.2km 대야산 3.8km의 이정표를 보면서 조항산(953m)이 머지않았음에 용기를 갖지만 급경사 오르막에서 기력이 쇠진하고 만다.
정수리에는 새로 세운 표지석이 산 꾼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오랫동안 이곳을 지나는 이들에게 길동무가 되어주던 비목이 한 모퉁이에서 초라한 몰골로 서있다. 피곤한 몸을 쉬어갈 수 있는 너른 공터에는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지나온 산들과 가야할 산들이 파노라마를 이룬다.
정상에서 갓 바위재로 내려서는 암릉 길은, 잠시라도 한 눈을 팔다가는 날카로운 비수에 정강이를 훌치기 십상이다. 그래도 하산 길이라 주위에 펼쳐지는 산줄기와 계곡을 바라보며 체력을 재충전할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반대로 거슬러 오른다면 체력의 소진이 극심한 구간이다. 좁은 암벽사이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따라 단애를 이룬 절벽위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한다. 삼송리 의상저수지와 옛날 견훤이 활을 쏘며 무예를 연마한 농암면 궁리를 넘나드는 갓 바위재에 도착한다.
갓 바위재는 헬기장과 함께 너른 공터가 있어 시야도 좋고, 양지바른 곳이라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부드러운 능선 길. 대간의 줄기 따라 청화산을 바라보며 20여 분간 진행하면 801봉(헬기장)에 도착한다. 왼쪽으로 약간 방향을 틀어 안부로 내려섰다가 급경사 암릉 길에서 또 한 번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선 곳이 858봉이다. 이곳부터는 초원을 걸어가는 기분으로 모처럼 편안한 대간길이 이어진다.
물푸레나무와 졸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비알 길을 치고 안부에 올라선다. 이곳은 알바하기 쉬운 곳이라 주의가 요망된다. 왼쪽으로 힘차게 뻗어 내린 능선은 시루봉(876m)과 연엽산(775m)으로 가는 길이고, 대간은 오른쪽으로 90도 방향을 틀어 진행해야 한다. 청화산 정상에 올라서면 암봉의 좁은 공간 속에 아담한 돌비석과 시원한 조망이 터진다.
청화산은 경북 문경시 농암면과 상주시 화북면, 충북 괴산군 청천면이 경계를 이루는 3면 경계 지점이다. 늘재 3.5km 조항산 8.3 km의 이정표가 있는 쉼터에서 정면으로 문장대(1033m)와 천황봉(1057m)도 보이고 관음봉(985m)과 묘봉(874m)에 멀리 형제봉(803m)도 아련히 보인다. 백악산(858m)과 도명산(632m), 지나온 조항산(951m), 구름위의 둔덕산(969m), 시루봉(876m)과 도장산(827m)등 시원하게 이어지는 줄기들은 청화산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멋진 조망이다.
택리지에 의하면 이중환은 스스로의 호를 청화산인(靑華山人)이라 칭하고 다음과 같이 청화산을 극찬했다고 한다. "청화산은 내선유동과 외선유동을 사이에 두고, 앞으로는 용유동을 가까이 두고 있는데, 수석의 기이함이 속리산보다 훌륭하다.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나, 속리산과 같은 험한 곳은 없지만, 흙으로 된 봉우리에 둘린 돌이 모두 맑고 깨끗하여 살기가 적고, 모양이 단정하여 빼어난 기운을 가린 곳이 없으니 이곳이 바로 복지(福地)다."
청화산을 내려서는 발길에는 거칠 것이 없고 헬기장을 지나 벼랑 끝 전망대에 올라서면 속리산의 연봉들이 화려한 불꽃을 피워 올리며 화북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암 능 구간에는 로프도 걸려있고, 정국 기원 단이 조성된 전망 좋은 암 봉에 올라 국태민안을 바라는 마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대간 길의 무사종주를 빌며 구간을 이어가는 고개 마루에 도착한다.
늘 재는 괴산군 청천면과 상주시 화북면을 잇는 32번과 49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고개 마루에는 한강과 낙동강 분수령의 표지판이 있다. 한줄기 빗방울이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가 되어 머나먼 천리 길로 갈라지니 우리네 인생살이도 한번 헤어지고 나면 다시 만나기 어려운 것이 정한 이치이다. 350년 된 엄나무는 당집과 함께 고개 마루의 수호신으로 오가는 길손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18. 늘재(375m) - 갈령(443m) / 19.5km
대간 길은 서쪽으로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다. 또다시 속리산 국립공원으로 접어들어 한동안 비지땀을 흘린 후에야 696.2봉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백악산(858m)줄기가 분기하며, 암 봉에 올라서면 문장대를 비롯한 속리산의 연봉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급경사 비알 길을 20여분 내려서면 997번 지방도로인 밤티재에 이른다. 밤티재는 상주시 장암리와 운흥리를 오가는 고개로 운흥리에서 37번 국도와 연결된다.
문장대 가는 길에 594봉에 이르고, 이곳에서 왼쪽으로 분기된 능선에는 견훤산성이 있다. 경북 상주시 장암리 북쪽에 있는 장바위산 정상부를 외워 싼 퇴뫼식 산성으로 견훤이 쌓았다하여 견훤산성으로 부른다. 상주지역의 옛 성들이 견훤과 관련이 있는 것은 그의 아버지 아자개가 상주출신이란 기록 때문이다.
견훤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신라의 장군으로 있다가 이곳에서 군사를 양성하여 진성여왕 6년(892년)에 반기를 들고 신라의 여러 성을 공격하여 효공왕 4년(900년)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이 산성은 사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성벽의 둘레는 650m이고 성위에 올라서면 상주 쪽으로 조망이 시원하다.
아슬아슬한 암벽의 모서리에는 로프가 걸려있다. 세미 클라이밍 지역을 오르는 손끝에 간담이 서늘하고, 조물주가 빗어놓은 아름다운 절경은 마음을 비워야 오를 수 있는 속리산의 관문이기도 하다.
문장대(1.054m)는 속리산의 천황봉(1,058m)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거봉으로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 위치한다. 거대한 암봉이 구름 속에 묻혀있다 하여 운장대라 하였으나 세조가 이곳에서 문무대신 들과 시를 읊은 이후로 문장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문장대정상에는 50여명이 앉을 수 있는 너른 암반이 있어 이곳에 올라서면 속리산 국립공원의 모든 사물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천하제일의 전망대라 할 수 있다.
문장대에서 오른쪽으로 뻗은 능선은 관음봉(982m), 묘봉(874m), 상학봉(834m), 미남봉(610m), 활목고개를 지나 금단산(756m)으로 이어지는 충북 알프스 제3구간이다. 법주사를 외워 싸고 있는 병풍 같은 암봉을 넘나들며 이어가는 종주 길은, 속리산이 자랑하는 클라이밍 코스이다.
문장대에서 곧바로 하산하면 법주사로 가는 길이고, 대간 길은 왼쪽으로 암릉의 전시장을 넘나들며 문수봉(1,005m)을 지나 신선대(1,016m)에 이른다. 우리 조상들은 명산대찰을 찾아 풍류를 즐기며 아름다운 경승지를 정하게 되는데, 특히 속리산에는 8자와 연관되는 지명이 많이 있다.
광명산, 지명산, 구봉산, 미지산, 형제산, 소금강산, 자하산, 속리산이 8산이요.
내석문, 외석문, 상환석문, 상고석문, 상고외석문, 비로석문, 금강석문, 추래석문을 8석문이라.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은선대, 봉황대, 산호대가 8대요.
천황봉,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을 8봉이라
1,000m를 오르내리는 높지 않은 봉우리들이지만 빼어난 절경으로 대 가람인 법주사를 품고 있어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신선대에 자리 잡은 주막집은 대간 길에 지친 산객들의 객고를 풀어주는 휴식 터로, 막걸리 한사발이면 피로가 싹 가신다. 입석대의 늠름한 기상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내딛으면 오른쪽으로 깊은 계곡의 너른 분지에 법주사가 자리 잡고 관음사, 복천암, 상고암을 끼고 도는 대간 길은 왼쪽으로 상주시 화북면의 들녘이 포근히 다가온다.
이곳 속리산도 불가와 인연이 깊어 봉우리마다 비로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의 이름을 달고 있으며 모든 중생들을 굽어 볼 수 있는 천황봉(1,058m)에 오른다. 천황봉에서 서쪽으로 뻗어가는 능선이 한남금북 정맥이고 이곳을 三破水라하여 동쪽으로 내리는 빗물이 낙동강으로 북쪽은 한강, 남쪽은 금강으로 흘러든다.
일반 등산객들이 많이 오르는 동쪽의 장각 계곡에는 높이 6m의 장각 폭포가 있고 금난정의 정자가 소나무그늘에 자리 잡고 있어 운치를 더 하고 있다. 정상에서 왼쪽으로 급경사를 내려서며 대목리 갈림길에 도착한다. 동남쪽으로 휘어지는 대간 길은 지금까지 암릉에 시달린 지친 몸을 어루만진다. 순하게 열리는 대간 길에서 체력을 보강하며 쉬엄쉬엄 진행하면 봉긋하게 솟은 667봉 정상이다.
667봉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700여 m를 전후로 고도를 유지하며 30여 분간 진행하면 만수리로 내려서는 피앗재에 도착한다. 천황봉 5.8km 형제봉 1.6km의 이정표가 반겨준다. 40여 분만에 형제봉에 올라서면 초라한 표지목이 반겨주고, 직진하면 충북 알프스의 제1구간인 구병산(876m)과 연결된다.
대간 길은 동쪽으로 선회하여 급경사를 10여 분간 내려서면 갈령 삼거리에 도착하며 구간의 종주를 마감하지만 977번 도로인 갈령까지 30여분간 진입로를 따라야 한다.
형제봉에서 속리산 국립공원도 끝이 난다. 충북 보은군, 괴산군, 경북 상주시의 경계에 있는 속리산 국립공원은 법주사지구, 학소대 주변 은폭동(隱瀑洞)계곡, 만수계곡, 화양동지구 화양동계곡, 선유동계곡, 쌍곡계곡과, 장각폭포, 오송폭포(五松瀑布)등의 명소가 있으며, 정이품송(正二品松 천연기념물 제103호),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호) 등 1,055종의 식물과 까막딱다구리(천연기념물 제242호),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제328호) 등 희귀 동물을 포함하여 1.831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자연자원의 보고(寶庫)로 면적이 283.4㎢에 이른다.
이곳에서 잠시 잠간이지만 충북의 경계선을 벗어나 경북의 상주땅으로 이어지고 강원도의 도래기재에서 시작하여 중부지방의 허리를 관통하던 대간 길도 이곳에서 남쪽으로 덕유산을 지나 지리산까지 연결된다.
'나의 작품세계 > 백두대간에 부는 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부. 백두대간 (0) | 2011.02.21 |
---|---|
제2부. 강원지역 (0) | 2011.02.21 |
제4부. 남부지역 (0) | 2011.02.21 |
제5부. 지리산 자락으로 (0) | 2011.02.21 |
제6부. 여 가 (0) | 2011.02.21 |